경쟁법

유가의 형성과 변동 현상에 관한 경쟁법/정책적 연구*

신영수 1
Young-Su Shin 1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1Pr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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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Mar 29, 2018 ; Revised: Apr 25, 2018 ; Accepted: Apr 25, 2018

Published Online: Apr 30, 2018

국문초록

최근 국제유가의 하락에 따라 국내 석유시장의 유가 내지 기름값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나라에서 목격되어 온 것으로서, 유가수준이 정유사나 주유소별로 유사하게 형성되는 병행행위가 카르텔의 결과인지 여부 및 신속히 인상하고 더디게 인하하는 비대칭적 가격변동, 그리고 유가가 급등과 하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주기적 순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최근 경쟁법 및 경쟁정책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가는 통신비, 금리와 함께 국민의 소비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중대한 가격 사안으로서 정부 안팍에서 줄곧 관심과 과제로 부각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과학적, 중립적 접근과 방안모색 보다는 민원해결 차원의 정책적 접근방식이 주도해 왔던 것으로 지적되며, 그 결과 사안에 대한 본질적 해소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연구는 우리 정유시장의 구조 및 상품으로서 휘발유 등 연료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현재 시장에서 목격되는 유가의 형성과 변동현상을 경쟁법/정책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그 위법성을 심사해야 할 것인지를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시장의 특징과 현황에 대한 법/정책적 평가를 토대로 예상가능한 사업자들의 행태를 법리적 측면에서 추측하고, 시장상황을 반영한 위법성 판단의 기준과 접근방식을 도출함으로써, 국내 정유시장에서 유가의 형성 및 변동과 관련하여 흔히 지목되는 정황에 대한 과학적 규명과 법리적 평가를 시도하였다.

Abstract

The recent drop in international oil prices has reignited the debate over the appropriateness of oil and gas prices in the local oil market. This is something that has been observed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most countries, where the price of oil is rapidly raised in parallel with oil refineries and gas stations.

Oil prices are a major price issue that is closely related to the people's spending lives along with telecommunications costs and interest rates, and have always been a hot topic in the government and its internal and external sectors. Nevertheless, it is pointed out that the policy approach has led to the resolution of civil complaints rather than objective, scientific, and neutral approaches and the fundamental solution to the problem is still insufficient.

The study aims to assess how the current market sees oil price developments and fluctuations in competition law, and to analyze their illegalities. Based on the legal and policy assessments of market characteristics and status, the study inferred the possible behaviors of the operators from the legal standpoint, and drew the criteria and the judgment of violation of the law reflecting the market situation. Through this process, the government attempted to make scientific clarifications and to assess the legal conditions commonly identified in relation to the formation and fluctuations of oil prices in the local oil market.

Keywords: 유가; 담합; 경쟁법; 병행행위; 비대칭적 가격변동
Keywords: oil price; cartel; competition law; parallel behavior; Asymmetric pricing: rockets and feathers

I. 서론: 유가에 대한 경쟁법적 분석의 착안점과 쟁점의 소재

1. 분석의 착안점

한국경제에서 유가(油價) 내지 연료비(road fuel price)는 소비와 물가 정책측면의 관심과 논란을 유독 많이 불러일으킨 소재였다. 가계지출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한 점도 원인이지만 국제유가의 변동이 있을 때마다 국내 정유시장의 기름값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점도 정부의 정책적 대응 필요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키웠던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수년간 국내 정유시장에서 유가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부정적 시각이나 목소리는 대략 “기름값이 비싸다”거나(유가 수준의 적정성), 정유사나 주유소마다 “기름값이 비슷하다”거나(가격책정에 관한 담합의 의혹), 혹은 “기름값이 오를 때는 빨리 오르고 내릴 때는 더디 내린다”는 등(비대칭적 가격변동)의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1)

이 같은 현상은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나라에서 흔히 목격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유가수준이 정유사나 주유소별로 유사하게 형성되는 병행행위(parallel behavior)가 과연 카르텔에 따른 것인지 여부, 가격인상은 신속한데 비해 인하는 더디게 나타나는 가격의 비대칭적 변동 내지 비대칭적 가격반응(rockets and feathers; asymmetric price responses)의 원인, 그리고 유가가 급등과 하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주기적 순환현상(regular price cycle)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도 그에 따라 주요국 및 국제기구를 통해 다수 제시되어 왔다.2) 일응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사업자들간의 명시적, 묵시적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에 기반한 가격남용 등 반경쟁적 행위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반면에 일견 보기에 의심스러운 유가가 자연발생적 현상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유산업 및 석유시장을 통해 유통되는 석유화학제품에는 여타 시장이나 상품과 명징하게 구별되는 차이점과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요국의 논의와 대응방안 속에 명쾌한 원인진단과 해법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와 관련되어 있다. 시장에서 목격되는 유가 형성과 변동현상을 경쟁법/정책적으로 어떤 기준에서 평가하고 위법성을 심사해야 할 것인지는 정책당국은 물론 이론적 측면에서도 규명이 쉽지 않은 난제로 여겨져 왔다.

요컨대 유가의 적정성 내지 적법성 여부는 사업자의 반경쟁적 행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한편 유가의 형성과정 이면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영향요소들, 이를테면 정유산업의 구조 및 석유의 연료적 특성과 거래행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이 같은 유가의 산업 및 경제적 특수성에 착안하여 정유산업의 구조와 석유거래 현황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사업자들의 행태의 원인을 실태와 법리적 측면에서 추론하고, 시장상황을 반영한 위법성 판단의 기준과 접근방식을 도출함으로써, 국내 석유시장에서 유가의 형성 및 변동과 관련하여 지목되는 정황에 대한 과학적 규명과 법리적 평가를 시도해 보려는 취지에서 작성되었다. 유가가 통신비, 금리와 함께 국민의 소비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중대한 가격 사안으로서 여겨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과학적 접근과 방안모색 보다는 민원해결 차원의 정책적 접근방식이 주도해 왔던 까닭에 현안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대안모색에는 미흡했다는 문제의식도 연구의 배경이 되었다.

이 같은 연구의 목적과 배경을 감안하여 우선 국내 정유의 상품적, 산업적 특성을 선행적으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2. 정유산업의 구조와 석유의 상품적 특징

주지하다시피 정유산업은 원유의 탐사에서 정제된 석유화학제품의 판매에 이르기까지 대규모의 초기 설비투자와 기술력 보유가 요구되는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에 속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정비 부담을 감당할 여력을 갖춘 상태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는 대기업들에 의한 과점적 구조가 정유시장에 형성되어 있다. 이 같은 형태의 시장선점이 존재하는 경우에 후발기업의 시장진입이 더욱 어려워지게 됨은 물론이다. 국내 정유산업 역시도 정제설비의 막대한 투자규모와 과점구조의 고착화로 신규 시장진입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는 소위 정유산업의 하류(downstream)부분에 해당하는 원유수송, 정제, 석유제품판매만을 담당하고 있는데,3) 이들 분야에서는 국내 4대 정유사 주도의 과점적 시장구조가 형성되어 있으며4) 허핀달-허쉬만지수(HHI)는 대략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2,700 안팍으로 집계된다. 국내 정제능력이 내수 규모를 크게 초과하고 있으나 정유사간의 과당경쟁을 지양하는 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 내수시장의 경쟁강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다만 수출시장은 참여기업의 수가 많고 가격경쟁이 치열한 양상을 보여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한편 정유시장은 가격이 주기적으로 공시되는 까닭에 투명성이 매우 높고5), 상품이 균질하며6), 시장점유율도 안정적이라는 특징도 나타나고 있다. 즉 품질 측면에서 차별성이 거의 없고 판매가격, 판매정책 등이 경쟁사에 비해 차별성을 갖기가 어려우며, 소매 유통망인 주유소 점유율에 의해 국내 시장 점유율 결정되고 있어서 시장점유율의 변동폭이 크지 않은 특징을 보인다. 수요도 비탄적적7)이며 사업자별로 비용요소도 균등하고 시장환경도 혁신지향적이지 않은 편이다.

국내 정유산업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수직적 연계구조를 들 수도 있다. 즉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된 수직적 구조가 이 산업에 존재하는데, 특히 유통채널은 정유사에서 실수요자로 이어지는 2단계 구조나 정유사->대리점->실수요자로 이어지는 3단계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이 산업 특유의 배타조건부 거래를 고착시킨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정유산업은 대부분의 산업분야에 에너지 공급원으로 기능하는 한편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를 공급하는 산업으로 거의 모든 산업에 전방위적 관련성을 맺고 있다. 대개의 경우 소비국에서 원유를 수입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소비지정제주의(消費地精製主義, 혹은 원유수입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8) 생산, 판매의 많은 부분에 정부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에너지산업으로서 정유산업이 가지는 국가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석유사업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석유제품의 생산, 판매 등 여러 분야에서 직/간접적인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환경, 안전규제 등 제도적 진입장벽 이외에 유통망, 물류, 금융조달능력 등 경제적 규제를 두고 있으며 특히 소매단계에서 등록과 의무저장 시설 요건이 부과되어 있어서 제도적 진입장벽과 영업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소매 부문 이외에도 소비자가 정유의 품질과 양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정유의 품질과 수량에 대한 고도의 규제가 뒤따랐다. 다만 국내 정유시장의 경쟁환경이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지적과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1997년 이래 일련의 규제완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수입사의 등록요건이 완화되고 수평거래가 허용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상품으로서 석유는 특정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이 인접 제품의 생산을 필연적으로 연계하는 소위 ‘연산품’(joint products, 連産品)9)의 성질을 가진 상품이다. 즉 원유의 정제과정에서 시장성 내지 상품성이 뛰어난 제품에서부터 생산시 오히려 손해가 발생하는 저급품까지 함께 생산되기 때문에 제품별 수급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다. 게다가 수요탄력성도 낮아 가격투명성이 높으며 표준화로 인해 제품차별화가 어려우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원가, 세금, 환율, 비용, 마진 등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환율, 세율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가격 변동의 주기를 짧게 하거나 그 폭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는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는데다, 벌크 공급에 따른 투명화, 표준화로 인해 제품차별화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브랜드 내(intra-brand) 경쟁도 역시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소비자들은 대개 미세한 가격 차이를 기반으로 정유사 내지 주요소를 선택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아래에서는 이 같은 특수성을 가진 정유시장에서 석유제품에 대한 가격책정 행위가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어느 부분에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간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을 집행한 사례의 양상과 특징은 어떠한지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II. 유가 책정 문제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가능성

1. 유가의 책정과 관련한 공정거래법상 규정

전술한 바와 같이, 정유사나 주유소의 유가책정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적 관심 소재를 대략 i> 유가의 적정성 문제와 ii> 유사한 가격대(병행행위)의 문제, 그리고 iii> 비대칭적 가격변동의 문제로 구분해 본다면, 각각의 문제에 대한 공정거래법의 적용가능성도 구분해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유가의 적정성은 곧 유가가 너무 비싸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는데, 만일 고가의 기름값이 독과점 상태의 정유사나 주유소에 의해 공급가가 높게 책정된 결과라면 이는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가격남용)한 것으로서 동법 제3조의2 제1항 제1호의 포섭대상이 될 수 있으며, 정유사나 주유소간 담합 즉 공동행위의 결과라면 동법 제19조 제1항 제1호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유사한 가격대(병행행위)의 문제는 담합 여부의 이슈로 귀결되므로 적용법조는 동법 제19조 제1항 제1호의 가격관련 공동행위 금지규정으로 국한될 것이다.

끝으로 비대칭적 가격변동의 현상은 가격 인상이나 하락의 속도와 폭이 문제될 수 있다. 만일 원가 변동에 비해 가격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면 사업자간의 합의 즉 부당한 공동행위(제19조 제1항 제1호)의 결과 여부를 의심해 보아야 하며, 가격 인상의 폭이 너무 크다면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정유사들의 가격남용(제3조의2 제1항 제1호)이거나 정유사 또는 주요소의 공동행위(제19조) 가능성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반면 원가 변동에 비해 가격인하의 속도가 느리다면, 즉 원가와 같은 비율로 내리더라도 늦게 내리는 동안 원가와 유가사이의 간격이 커질 경우에는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금지규정(제3조의2 제1항 제1호)이 적용될 수 있으며, 원가 인하폭에 비해 덜 내릴 경우 즉 하락 폭 문제될 경우에는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금지규정(제3조의2) 및 부당공동행위 금지규정(제19조) 위반여부를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2. 유가 문제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 기조

이처럼 유가형성 및 변동에 대한 적용법조는 이론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의 금지나 부당공동행위의 제한을 중심으로 한 복합적인 규제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관련 사례들은 사실상 카르텔 즉 부당공동행위 사례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환언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의 결과로서의 유가형성이나 변동은 실제 사례로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유가관련 남용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이유를 추측하면, 우선 공급비용의 투명성이 높은 시장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을 문제삼기에 용이한10) 반면에 투명성이 높은 정유시장에 대해 가격남용을 문제 삼을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통상 이런 환경에서는 공급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현저히 높은 가격책정이 실현되기 어려우므로 남용행위 자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실제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11)은 2% 안팍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12) 또한 정유시장은 고정고객층 확보가 쉽지 않아서 거래상대방(소비자)에 대한 독점적 내지 우월적 지위 형성도 용이치 않다. 공급자에 대한 고객의 접근성, 선택가능성이 비교적 높게 보장되어 있으므로 고객의 특정 정유사 및 주유소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지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현행 공정거래법상 가격남용 규제에 존재하는 소극적 집행기조도 원인의 하나일 수 있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3조의2 및 시행령 제5조는 금지되는 가격남용의 경우를 “정당한 이유없이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수급의 변동이나 공급에 필요한 비용(동종 또는 유사업종의 통상적인 수준의 것에 한한다)의 변동에 비하여 현저하게 상승시키거나 근소하게 하락시키는 경우”로 규정함으로써, 가격의 실질적 인상만을 문제삼는 접근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원가 불변시에 가격을 인상하거나 원가인상 폭에 비해 과도한 가격인상, 혹은 원가인하시의 가격고정이나 원가인하폭에 비해 과소한 가격인하 등이 가격남용으로 의율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 가격남용 판단에는 수급 변동요인 외에 사업자가 해당 상품을 공급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게 된다. 그런데 현행 규정 내용(공급비용 요인)에 따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위법한지를 규명하는 일은 실무상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작업인데다,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기반하는 가격형성 매커니즘에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시장질서와 부합하지 않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가격변동분에서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이용하여 변동된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기업이 다수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공통비용의 배분 등의 문제로 당해 제품의 비용인상율을 산정하기 어렵고 설령 비용인상율이 산정되더라도 그것이 적정한지 부당한지가 명확히 판단되지 않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13) 높은 가격 자체를 경쟁법 위반사안으로 포섭하지 않는 주요국의 규제 기조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로 하여금 제도 운영을 소극적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컨대 유가 문제를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규제로 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경쟁당국은 향후에도 유가 문제를 주로 카르텔 내지 부당 공동행위 규제 측면에서 접근하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예측이라고 생각된다.

3. 정유시장에 대한 공정거래법 집행 사례

정유시장에 대한 그간의 공정거래법 적용 사례들은 상품과 사업자 측면에서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상품을 기준으로 분석해 보면 정유사들이 취급하는 석유화학제품들이 매우 다양함에도 그간의 정책적 관심이 주로 자동차용 연료(road fuel) 즉 휘발유, 정유, 액화천연가스 등의 시장에 집중되었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교통운임 규제 하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시대에서 자가용 시대가 전환하면서 소비자의 자동차 연료비 추이에 대한 체감도와 민감성이 높아진 점에 기인한다. 즉 연료비가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증대하면서 통신비, 대출금리와 함께 서민경제의 핵심과제로 부각되었으며, 그에 따라 LPG를 포함한 ‘유가 인하’ 정책의 관심과 정책효과적 선명성도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제반 상황을 배경으로 유가 문제는 순수 경제정책 및 경쟁법 측면에서만 조망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이슈로 변질되어 왔고, 그간 일부 정부 하에서는 핵심적 경제현안으로 까지 정책 순위가 제고되기도 하였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 사례는 연료에 관한 담합 사건을 위시하여 불공정거래행위 등 비교적 다양한 영역에 걸쳐 집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 사업자 즉 피심인 측면에서는 주로 정유사와 주요소에 관하여 부당공동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 사례가 집중되어 왔으며 그 외에 석유공사와 같은 공기업이 연루된 불공정거래행위 사안도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 이 가운데 정유사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수평적 담합유발요인과 수직적 거래제한요인이 상존하는 시장 및 거래구조라는 인식을 토대로 엄정한 법 집행기조를 견지해 오고 있다. 정유사들은 법집행 초기부터 가격담합이나 물량제한 등 카르텔 이슈를 주로 야기하여 왔고,14) 거래상 지위남용15), 거래거절 등16) 불공정거래행위가 적발된 예들이 있으며 그 밖에 기업결합(수평, 수직형)17)과 대기업집단 규제 관련 사례도 발생하였다. 최근 들어 전형적인 가격담합 사건은 감소하는 추세이나 거래상대방제한 등 새로운 유형들도 적발되고 있다.

다음으로 주유소와 관련한 사례는 초기에 부당표시광고나 담합 관련 사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주유소들이 서로 다른 정유사의 석유제품을 혼합판매하면서도 자신의 영업장소에 특정 정유사의 상표(폴사인)만을 표시·광고함으로써 판매대상 석유제품의 공급자에 관해 소비자를 오인시킨 행위들이 주로 문제되었었는데, 이후 혼합판매가 가능해 지면서부터는 표시광고 이슈의 상당수는 소멸하였으며, 현재는 카르텔 즉 부당공동행위에 연루된 사례가 주를 이루고 있다.18)

그 외에 한국석유공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대부분 거래상 지위남용 등 불공정거래행위19)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수행하는 특수한 역할과 지위, 즉 석유비축 및 유통을 담당하면서 국내 정유사 등의 수급 불안요인 발생시 적기에 비축유 및 비축시설을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유사 등에 대하여 갖게 되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기인한 결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정유 관련 사업자 외에 사업자단체(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가 구성사업자를 상대로 행한 사업활동제한 사례(2002.11.)도 발견된다.

III. 유가 담합에 대한 규제의 메커니즘

1. 정유시장의 환경

정유제품은 전술했다시피 가격이 주기적으로 공시되어 투명성이 매우 높은데다, 상품이 균질적, 안정적이며 수요도 비탄적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된 수직적 구조를 보이는 가운데 사업자별로 비용요소도 균등하며 사업자들도 혁신지향적이지 않은 편이다. 이처럼 투명성과 동질성, 안정성, 비탄력성을 가진 정유시장은 사업자간 협력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협력으로 부터의 이탈자에 대한 감시와 제재도 용이하게 해서 카르텔 우호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20) 정유시장에서 사업자들의 일치된 행태에 대해 담합 내지 카르텔 여부를 의심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의 하나가 이 같은 시장환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 목격되는 사업자들의 행위일치는 그 원인이 다양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합의는 없었으나 의식적 병행행위나 동조행위의 결과일 수도 있으며, 사업자들이 경제환경의 변화에 합리적으로 대처한 결과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치한 단순 병행행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가에 관한 병행행위나 가격변동의 비대칭성 등의 특이현상들 역시도 명시적, 묵시적 합의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정유시장의 특수성에 기반한 다른 요인이 작동한 결과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과점시장의 참가자들은 상호간의 의존성에 대해 인식하면서 경쟁자의 행동패턴을 예측하여 전략을 수립하는데 초과경쟁가격은 이러한 상황이 빚어낸 결과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원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21)

경쟁당국의 입장에서 합의와 단순 동조행위를 구별해 내는 일은 언제나 난해한 작업이다. 병행행위, 가격변동의 비대칭성 행위의 원인으로서 명시적, 묵시적 합의 등 의사의 연락(meeting of the minds)을 추정할 만한 추가적 요소(plus factors) 내지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22) 정황증거로는 과점적 시장구조, 가격의 선행적 공시, 가격담합의 선례, 가격정보의 교환 등이 꼽혀 왔다.23) 단 합의를 입증할 수 있는 정황증거는 개별의 증거 각각에 대한 평가 보다는 증거 전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이 적절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유시장의 가격책정 및 변화 양상만 놓고 보면 담합의 혐의를 갖게 만들지만 이제까지의 사례를 살펴보면 경쟁당국이 합의의 직접적 증거를 발견해 내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경우 설령 고도로 집중된 정유시장이라고 하더라도 병행적인 가격책정 만으로는 담합 성립을 인정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기도 하였다.24)

2. 합의 입증에 필요한 정황증거
(1) 담합의 정황증거와 경쟁법 집행

유가의 형성이나 변동이 경쟁법에 반하는 카르텔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각국의 경쟁법상 카르텔 요건에 따라 결정되나, 일차적으로는 유가의 형성 등이 합의 혹은 의식적 병행행위(conscious parallelism) 내지 동조적 행위(concerted practice)로서 합의를 추정할 만한 정황증거를 가진 경우이어야 적어도 행위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단, 미국이나 EU의 경우 이 같은 정황증거는 당해 의식적 병행행위의 발생이 담합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인정되어 왔다.25)

이와 관련하여 의식적 병행행위로 부터 묵시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정황증거로서 Kovacic 교수 등은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제시한 바 있다.26) 독립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체로서, 공동의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더라면 행하지 않았을 행위의 발생, 공동행위의 결과로서만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의 존재, 경제주체들끼리 정기적인 정보교환의 기회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 초과이익 등 성공적인 협력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성과지표, 문제된 행위에 대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의 부재, 혹은 특정행위에 대한 작위적 근거의 제시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주요국의 판례와 논의 흐름은 우리 공정거래법상 카르텔규제의 집행에 있어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이어졌으나 최근 들어서는 동조적 행위 자체를 카르텔의 일종으로 규제하는 외국 법제와는 달리, 현행 공정거래법은 명확히 합의로 국한하여 행위의 공동성 요건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사업자들 사이에 가격 결정 등 행위를 ‘공동으로 한다’는 점에 관하여 의사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정황증거를 통한 합의 입증에 훨씬 엄격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27)

(2) 현행 규정과 관련 사례

현행 공정거래법 제19조 하에서 합의는 제1항을 토대로 한 사실상 추정과 제19조 제5항에 의한 법률상 추정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2007년 법 개정에 따라 법률상 추정의 요건이 대폭 강화되면서 양자의 실무상 차이는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28) 실제로 법 제19조 제5항을 통해 합의를 추정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종전의 합의 추정 관련 법원 판례와 공정위 심결례들을 통해 추정의 요건들을 추출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합의추정 복멸의 사정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부당한 공동행위의 합의의 추정을 복멸시킬 수 있는 사정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상품 거래분야 시장의 특성과 현황, 상품의 속성과 태양, 유통구조, 가격결정 구조,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내외부적 영향, 각 개별업체가 동종 거래분야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 가격의 변화가 개별사업자의 영업이익, 시장점유율 등에 미치는 영향, 사업자의 개별적 사업여건에 비추어 본 경영판단의 정당성, 사업자 상호간의 회합 등 직접적 의사교환의 실태, 협의가 없었더라도 우연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개연성의 정도, 가격모방의 경험과 법위반 전력, 당시의 경제정책적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거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다.29)

한편, 정유시장에서 합의의 정황증거를 감안한 경우로는 1999년 제주도 주유소 담합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의 유가자유화 조치로 각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휘발유 판매 가격을 차별화해 오다가 1998.1.9.부터 1999.3.4. 기간 중에 가격을 거의 동일하게 유지한 점, 정유사의 휘발유 가격인하 조치로 독자적인 가격인하 요인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손실보전을 이유로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타 경쟁사와 동일하게 유지한 점, 가격결정과 관련하여 정유사의 가격변동 폭 만큼 그대로 반영하여 주유소의 공급가격을 결정한다고 하면서도 동 정유사의 가격변동 폭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타 경쟁사와 동일한 가격으로 유지한 점, 정유사가 각 대리점 사장들에게 팩스로 발송한 제품가격 통보공문에 직영대리점의 휘발유 판매가격 인상액이 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 공문서 통보이전부터 타 경쟁사와 같은 가격으로 판매한 점, 외환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휘발유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휘발유판매가격의 마진폭은 상승하였는바 휘발유 수요감소로 인한 초과공급상태에서는 각 경쟁사간 시장점유율 확보와 경기불황극복을 위하여 판매경쟁이 극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판매 마진폭이 상승한데 대해 경제논리의 관점에서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주유소들 사이에 사전합의가 전제되지 않고는 동일한 가격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합의를 추정한 바 있다. 이 사안에서 주유소들은 해당 기간 중 휘발유 판매가격이 동일한 이유에 대해 협소한 시장상황과 혈연, 학연 등의 연관에 의한 지역적 특수성을 들어 자연적으로 발생된 현상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오히려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가격결정에 있어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대법원은 현행 공정거래법 제19조의 요건을 조문 중심으로 엄격히 해석하면서, “합의에는 명시적 합의뿐만 아니라 묵시적 합의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지만, 이는 둘 이상 사업자 사이에 의사의 연락이 있을 것을 본질로 하므로 단지 위 규정 각 호에 열거된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었던 것과 일치하는 외형이 존재한다고 하여 당연히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고, 사업자간 의사연결의 상호성을 인정할 만한 사정에 대한 증명이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증명의 책임은 그러한 합의를 이유로 시정조치 등을 명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있다”고 하여30) 합의의 사실상, 법률상 추정의 입증책임을 강화하는 기조를 명확히 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014년에 있었던 LPG 담합사건31)에서는 설령 석유화학제품 시장의 경쟁정책 측면에서는 정유사들이 서로 다른 LPG 가격을 통해 상호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가격책정을 강제할 수 없는 가격이 외형상의 일치를 보인다고 해도 명확한 합의가 없는 한 공동행위로 규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재차 확인하였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석유 등 연료시장의 유가 형성 및 변동에 관하여 가격의 외형상 일치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정유사들이 가격결정행위를 공동으로 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의사의 일치 내지 의사연결의 상호성이 실증되어야만 비로소 합의가 성립되어 카르텔 규제가 가능해 질 것이다.

IV. 세부 쟁점에 관한 분석

1. 유가에 관한 병행행위의 원인
(1) 석유시장의 투명성과 담합

가격투명성 높은 석유시장이 병행행위를 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임은 부인하기 어려우며, 시장의 투명성이 높을수록 카르텔 참여자들이 이탈자를 감시하거나 제재하기에도 용이하다는 점도 전술한 바와 같다. 환언하면 가격투명성은 의식적 병행행위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가격투명성이 높을수록 사업자들은 의식적 병행행위가 발생되기에 용이하다. 시장투명성이 높은 시장에서 가격선도자들은 일단 가격을 인상한 후 경쟁자들의 인상여부를 점검하게 되며, 이때 경쟁자들이 가격인상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곧바로 가격을 재조정(인하)하여 가격인상에 따른 점유율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투명한 시장 자체가 사업자간 정보교환(information exchange)의 결과일 수 있으며, 의식적 병행행위나 반경쟁적 협조행위를 촉발할 수 있다.32)

반면에, 가격투명성은 일면 소비자의 정보탐색비용을 줄여주고 사업자들의 카르텔 이탈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유가시장의 정보교환과 관련하여 독일 연방카르텔청(Bundeskartellamt)은 정유사와 주요소들이 실시간으로 제공받는 공급가가 정보교환으로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33) 단 우리의 경우 최근 대법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여러 사례를 통해 합의의 존재에 관하여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면서, 경쟁사업자들이 가격 등 주요 경쟁요소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 경우, 그 정보교환은 가격 결정 등의 의사결정에 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담합을 용이하게 하거나 촉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으므로 사업자 사이의 의사연결의 상호성을 인정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 정보 교환 사실만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한 합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34)

(2) 정보교환과 관련한 최근 대법원의 기조

전술한 2014년 LPG 담합 건에서 대법원은 “과점시장에서는 경쟁사업자가 가격을 책정하면 다른 사업자는 이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하기 마련이고, 이 때 어느 사업자가 경쟁사업자의 가격을 모방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판단되면 경쟁사업자와의 명시적 합의나 암묵적인 양해 없이도 독자적으로 실행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므로, 과점시장에서 경쟁상품의 가격이 동일․유사하게 나타나는 외형상의 일치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사업자들이 이러한 사정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에 더하여 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과 관련된 명시적․묵시적 의사 연락이 있다고 볼 만한 추가적 사정이 증명되지 아니하면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35)

또한 같은 해에 있었던 생명보험 담합사건에서도 “정보교환이 합의 인정에 어떻게 고려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기존에 합의 인정 기준으로 논의되던 관련시장의 구조/성격, 교환 대상 정보의 성격, 정보교환의 시기 및 방법, 정보교환의 주체 등 객관적인 사정 외에 ‘정보교환의 목적과 의도, 정보교환 후의 가격/산출량 등의 사업자간 외형상 일치 여부 내지 차이의 정도 및 그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내용, 정보교환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담합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고, 이듬해 있었던 라면담합 사건36)에서도 이를 재차 확인한 바 있다.37)

한국석유공사에 의한 유가정보 공개와 정유사 간의 정보교환행위 등이 석유시장의 투명성을 높고 있는 현실은 이 시장의 카르텔 발생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이유에 분명하지만 투명한 시장환경만으로는 경쟁당국의 유가 관련 규제실무 자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시장 투명성이 유가에 관한 사업자들의 의사연결의 상호성을 용이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는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에게는 그 더 나아가 정유사들 사이에 적어도 암묵적 합의가 존재함을 입증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2. 유가의 변동주기와 공동행위
(1) 이른바 “saw-tooth price” 현상

석유시장의 saw-tooth price현상이란 단기간에 급등하고 서서히 하강을 반복하는 유가 변동의 패턴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 이 같은 현상은 주로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미국, 독일 등지에서 자주 목격되어 온 것으로 알려지는데,38) 그 동태와 원인은 에지워드가격순환이론(Edgeworth Price Cycle theory) 등을 통해 분석되어 왔다.

독립적인 자영주유소들이 주도하는 주유시장은 에지워드가격순환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는데, 예컨대 주유소의 유가는 일주일을 주기로 할 때 수요일이나 목요일 시점부터 오르기를 시작하였다가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조금씩 하향하여 통상 화요일 즈음에 최저가를 유지하고 이내 다시 상승하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담합의 결과라기보다는 소매업자들 즉 주유소들이 상호간에 가격경쟁에 대응한 결과에 따른 현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에지워드가격순환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가격변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상품/용역이 동종의 일용품이고 고객들이 가격에 극도로 민감한 경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판매자가 경쟁자보다 가격을 인하할 경우 시장점유율을 크게 확대하게 됨.

2> 처음에는 균형을 이루었던 가격이 앞의 1> 사업자의 가격인하에 따라 다른 사업자들도 발빠르게 대응하여 가격을 균형점 이하로 인하함.

3> 이후로도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결국은 도매비용 이하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됨.

4. 이때 경쟁자중 하나가 가격을 다시 원상회복하기 시작하며, 나머지 경쟁자들도 뒤따라 즉시 가격을 인상하며, 이후 이런 일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됨.

통상적으로 소규모 사업자들이 가격인하를 개시하는 역할을 하고, 대규모 사업자들은 가격회복을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비대칭적 성향을 띠게 되는데, 가격의 회복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가격의 인하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에지워드가격순환은 타성가격(sticky pricing, price-stickiness)이나 원가기준 가격책정(cost-based pricing)과 대비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타성가격은 한번 정착된 가격이 좀처럼 변동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데 공격적 가격경쟁이 잘 일어나지 않는 시장에서 주로 목격된다. 수직적으로 통합된 소수가 주도하는 시장에서는 타성가격(sticky pricing)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해 원가기준 가격책정은 소매상들이 도매가격의 일정 수준 위에서 소매가격을 책정하는 경우에 소매가격의 변동이 도매가격의 변화에 연동하여 진행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2) 주기적 유가 변동패턴의 원인

가격순환(변동)이 치열한 경쟁의 결과일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가가 순환주기상 가장 낮게 형성되는 시점에서는 가격인상을 하는 것이 모든 사업자들에게 득이 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사업자간의 가격차이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상황에서는 사업자들로서는 선뜻 가격인상조치를 감행하기 쉽지 않다. 가격을 인상하면 소비자들이 인상하지 않은 사업자로 거래선을 옮길 것이기 때문에 가격인상이 뒤따르기 전까지는 일정부분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소모전(war of attrition)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암묵적 협조를 강구할 가능성이 있다. 석유시장에는 투명성 등 여러 담합유발요인들이 존재하지만, 소매상인 주유소의 경우 저장용량, 제공하는 서비스, 수직적 구조 등에 있어서 이질성(heterogeneity)이 크다.

공급비용면에서 편차가 큰 사업자들간에 동일한 가격수준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경우, 이를 이행하고 통제하기 쉽지 않다. 동일 가격의 유지가 공급비용이 적은 일부 사업자에게는 큰 이득이 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업자(고비용 사업자)에게는 큰 이득이 되지 않으므로 카르텔 결성에 소극적이거나 카르텔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구조가 다른 사업자들이 가격변동의 주기를 조정하는 방안이 대두될 수 있다. 즉 비용구조상 가장 여유가 있는 사업자가 가격인상의 대열에서 가장 늦게 인상하는 역할을 하고, 반대로 가격을 인하시에도 역시 여유있는 사업자가 가장 먼저 내리기로 협의하는 방안이다. 즉 가격자체를 조정하기 보다는 가격변동의 주기와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주유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주기는 이 같은 사업자간 조정의 결과일 수 있다.39) 단, 이런 조정이 성공하려면 가격선도자의 가격인상에 경쟁자들이 신속히 뒤따르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만일 경쟁자들이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가격인상을 지체할 경우에는 카르텔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요컨대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병행행위 내지 동조적 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일방적인 가격추종이나 개별적 대응을 통한 병행행위 발생인지, 혹은 합의에 준하는 의사연결의 상호성 즉 자사 혹은 타 정유사의 유가 변경에 대해 상호간의 연쇄 반응을 예상하였는지에 따라 부당공동행위 규제 여부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3. 가격변동의 비대칭성(rockets and feathers 현상)과 카르텔
(1) 담합의 혐의

유가의 인상 속도는 빠르고 하강속도는 느린데 따른 비대칭적 유가변동 문제는 정유산업의 소매와 도매단계에서 공히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석유시장의 경우 원유가 변동과 국내 정유사의 도매가 변동(환율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할 경우), 그리고 정유사의 도매가 변동과 직영주유소의 소매가 변동 사이에는 비대칭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에, 국내 정유사의 도매가변동과 자영주유소의 소매가 변동 사이에는 비대칭성 문제가 실재해 오고 있다.

각국의 경쟁당국들은 원유가격의 인하에도 불구하고 휘발유 등 소비자가격 인하의 속도가 더딘 것은 시장지배력의 남용이나 담합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사업자들(특히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은 통상 원가 인하시에 판매가격을 인하할 유인을 적게 가지기 마련이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의 가격이 기준점(focal point)이 되고, 기존의 가격에 대한 고착현상(price stickiness)이 나타난다.

(2) 담합 이외의 원인

일각에서는 탐색비용, 정제 및 도매 비용의 조정, 유가변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대응력 제고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탐색비용을 원인으로 꼽는 이유는, 소비자들은 대개 유가가 인상할 때에는 가격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격정보의 탐색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반면에, 가격이 하락할 때에는 다소 둔감한 성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에 따라 사업자들은 가격인하에 좀 더 시간을 소요하면서 단기적 이윤을 극대화하게 된다. 가격변동의 비대칭은 소비자의 탐색행태의 차이에 따른 문제로 볼 수 있다.(단 이런 형태의 가격비대칭은 소매주유시장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소비자가 주유소별 가격 탐색에 집중할수록(즉, 가격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소매시장의 경쟁이 촉진되며 사업자들은 지배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도매가격인상시에 주유소들은 인상분을 소매가에 전가시키기는 하되 마진폭을 넓히지는 못하게 된다. 반면 하락시에는 반대의 결과(가격인하의 지체 및 하락폭의 축소)가 도출될 수 있다.

한편 정유사나 도매상들의 조정비용(adjustment cost)도 원인일 수 있다. 정유사나 도매상(특히 수입상)들은 단기적으로 가격변동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적이다. 정유과정에는 수주일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며, 비축여력이나 계약을 거쳐야 하는 특성상 정유사의 원유수입 여건도 경직적이다. 원가가 인하하고 수요가 증가할 경우, 정유사가 비축량 내지 재고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판매량을 늘리게 되면 다른 한편 평균적인 보관비용이 증가하는 역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보관비용의 증가는 부분적으로는 원가 인하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다. 반대로 원가가 인상되고 수요가 감소할 경우, 재고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며 규모의 경제에 따라 평균적인 보관비용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부분에서 가격변동의 비대칭성 문제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 진다. 즉, 정유사나 도매업자들은 원가의 인상시 설령 저장고에 정유를 계속 보관하게 되더라도 보관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들기 때문에 원가에 연동하여 즉시 가격인상 조치를 해도 무방한 반면에, 원가인하 시에는 바로 도매가격을 인하하면 재고량이 줄고 보관비용이 증대하여 판매량 증대에 따른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되므로 보관비용을 감안하여 서서히 가격을 인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관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차원에서 가격을 통해 물량을 조절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정유단계나 도매단계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소매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유소들 역시 개별 주유소가 비싸게 구입한 재고 석유를 모두 처분해야 비로소 가격이 인하된 제품을 새롭게 구입할 수 있는데, 통상 주유소 재고 물량을 소진하는 데 2~3주가 소진되므로 유가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하락된 유가를 공급함에 있어 일정한 시차가 필요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끝으로 유가변동에 따른 소비자의 대응행태도 원인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유가인하시에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구입을 유보하는 반면, 유가인상시에는 추가인상에 대비하여 미리 사두는 경향이 있다.(주식시장과 유사한 양상) 따라서 주유소 등 사업자들은 가격인상시 소비자들의 수요증대에 맞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신속히 인상하는 반면에, 가격인하시에는 가격을 곧바로 내리면 수요가 더 감소하기 때문에 가급적 천천히 내린다는 것이다.

한편 정유사들은 아시아 역내의 거래시장인 싱가포르 국제제품가격에 따라 현재 가격이 아닌 전주 의 주간 공급가격을 책정하는데 그에 따른 시차가 국제유가와 기름값 사이에 괴리를 발생시키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3) 주요국의 경

미국의 경우 FTC가 중심이 되어 주유시장에 가격변동 비대칭 현상이 존재하는지를 연구한바가 있으나 존재 사실은 확인한 반면 그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고 다만 시장지배력이나 카르텔로부터 가격탐색, 조정비용 등 다양한 원인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정도만 확인하였다.40) 영국의 경우도 경쟁당국(旧 공정거래청; office of fair trade)의 조사결과 가격변동의 비대칭 문제에 관하여 인위적 조정이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41) 반면 호주의 경우 가격변동의 비대칭 현상을 발견하지는 못하였으나, 주기적 순환(saw-tooth pattern) 현상은 존재한다고 보았다.42)

요컨대 현재까지는 비대칭적 유가 문제를 경쟁법 적용 방식으로 해결한 사례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한 사회, 경제적 관심과 정책수요가 증가해 온 만큼 제도적 대응방안들은 모색되고 있다. 그 방안으로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i> 소매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소비자들의 가격탐색비용을 낮추는 방안, ii> 원유수입시장의 법적, 기술적 진입장벽을 낮추어 원유 공급원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방안, iii> 경쟁당국에 의한 가격감시(카르텔, 가격남용)기능을 통한 경쟁법 집행의 강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43)

가격변동의 비대칭성도 담합의 징후인지 여부를 주목해야 하는 현상임에 분명하나, 일응의 부정적 시각과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 자체를 곧바로 위법으로 연계하기는 어려우므로 사전적으로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조치나 사후적으로 합의의 규명을 통한 경쟁법 적용이라는 일반적 방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V. 결론에 대신하여: 유가의 형성 및 정부의 관련 정책에 대한 경쟁법적 평가

1. 유가에 관한 경쟁정책의 딜레마

현재로선 비싸고 비슷하게 느껴지는 유가와 오르내리는 모습이 달라 보이는 유가 주변에 담합의 정황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가 지속됨에도 최근의 적발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쟁법을 위반하지 않은 가격에 대해 여전한 불신과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 담합이 없는데도 생각 보다 기름값이 비싸 보이는 난관에 직면한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무엇이 시장가격이고 경쟁가격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즉 담합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형성된 소위 ‘비싸게 보이는’ 유가가 과연 시장가격인가 초과가격인지, 그에 따라 민간 정유사나 주유소는 독점적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국내 유가시장에는 ①시장기능 -> ②경쟁질서 -> ③품질제고 및 가격인하 -> ④소비자후생 증대의 선순환구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즉, 시장이 기능하고 경쟁질서가 유지되는데도 가격인하에 따른 소비자후생 효과가 발생하지 않으며, 특히 ② 경쟁질서가 유지되는데도 ③ 가격이 인하하지 않는 점이 문제의 핵심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유가에 관한 경쟁법의 기능과 효용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유가 형성에 특유한 현상에 대한 경쟁법 적용 가능성

정유산업 및 석유시장에서는 가격정보의 공개 등에 기반한 투명한 시장환경이 담합을 용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가격이 일정 주기를 두고 상등과 하강을 반복하는 소위 saw-tooth price현상, 그리고 오를 때는 신속하다가 내릴 때는 더딘 양상을 보이는 이른바 rockets and feathers 현상 등 독특한 상황들이 존재해 왔다. 이들 현상에 대한 경쟁법의 직접 적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신중한 기조를 보이는 것이 주요국 및 국제기구(OECD)의 동향으로 정리된다.

먼저 시장의 투명성과 관련해서는 유가정보의 공개조치나 일련의 정보교환행위 들이 석유시장의 투명성을 높고 있지만, 투명한 시장정보가 유가에 관한 사업자간 카르텔 즉 의사연결의 상호성을 용이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을지언정, 공정거래위원회에게는 그 더 나아가 정유사들 사이에 적어도 암묵적 합의가 존재함을 입증할 것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투명성 자체를 가지고 규제실무에서 직접 정황증거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유가가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소위 saw-tooth price 패턴은 일종의 병행행위 내지 동조적 행위로 볼 여지가 있으나, 그것이 일방적인 가격추종이나 개별적 대응을 통한 병행행위로서 발생한 것인지, 혹은 합의에 준하는 의사연결의 상호성 즉 자사 혹은 타 정유사의 유가 변경에 대해 상호간의 연쇄 반응을 예상하였는지에 따라 부당공동행위 규제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끝으로 rockets and feathers 현상 즉 비대칭적 가격변동 역시도 담합의 징후인지 여부를 주목해야 하는 현상임에 분명하나, 일응의 부정적 시각과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 자체를 곧바로 위법으로 연계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사전적으로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조치나 소매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소비자들의 가격탐색비용을 낮추거나 원유 공급원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등의 사후적으로 합의의 규명을 통한 경쟁법 적용이라는 일반적 방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3.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 및 석유시장 개입에 대한 평가

이 지점에서 경쟁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경쟁의 유지(소극적 혹은 시장감시형 경쟁정책) 혹은, 경쟁의 촉진(적극적 혹은 시장참여형 경쟁정책)의 두 가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 공정거래법의 경우 제1조 목적조항에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촉진을 직접적인 목적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지만, 경쟁의 촉진 부분에 관해서는 입법론적 측면의 비판 소지를 안고 있다. 즉 경쟁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것 자체가 자칫 반경쟁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우려 때문이다. 경쟁법 본연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기껏해야 경쟁을 제한하는 상태를 배제하는 것일 뿐이며, 유가와 관련한 경쟁정책에 있어서도 기름값을 올리기로 담합하는 일을 막을 수는 있지만, 억지로 끌어내릴 수는 없는 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정부는 지난 수년간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관련 정책기조를 선회하는 방안을 채택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종래 유가를 포함한 가격 정책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한 경쟁법 집행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다가 지난 수년간은 비경쟁법적 논리와 정책 중심으로 즉, 시장감시형 경쟁정책에서 시장참여형 물가정책으로 전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알뜰주유소’는 이런 정책 전환을 상징하는 징표로 삼을만 하다. 즉 경쟁정책을 통한 유가안정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물가안정 내지, 가격인하정책, 혹은 소비자보호정책의 성격의 직접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경쟁당국에 대해서는 감시자 역할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당국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 역할로의 전환을 요구한 것으로서 정부는 특히 공공기관(석유공사, 도로공사, 농협 등)을 통해 석유시장에 개입하였고 유가의 인하를 유도하였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볼 점은 과연 유가는 인하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일면 석유공사의 개입으로 석유시장의 가격경쟁이 촉진되었으나, 경쟁촉진이 비용절감이나 혁신으로 연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석유공사 및 알뜰주유소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한 시장재편 효과는 발생하였으나 정유 소비자의 후생증대 효과가 가시적인지는 불분명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우산효과(Umbrella effect)가 발생하였으며, 알뜰주유소로서는 저렴한 공급비용과 일반 주유소의 소비자가격 사이에 폭넓은 마진율 향유가 가능한 구조 즉 일반 주유소보다 싸기만 하면 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정책의 수혜자가 소비자가 아닌 알뜰주유소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 이유이다.

보론으로 유통사업자로서 석유공사와 소매업자로서 알뜰주유소의 경쟁우위 상태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향후 분석도 필요하다고 본다. 알뜰주유소라는 정부공인 브랜드의 프리미엄는 유가가 저렴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정부가 제공한 것인데다, 무엇보다 원가구조가 같지 않은 사업자간의 경쟁구도(유가구성에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과 기금에 대한 조세특례제한법 상의 우대조치, 알뜰주유소에 대한 시설개선 정부지원)가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 원칙에 반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뜰주유소 브랜드 내 경쟁제한의 소지와 더불어 관련 공기업의 정유사에 대한 거래상 지위의 남용 가능성도 향후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각주(Footnotes)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A2A01015134)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15S1A5A2A01015134)

1. 이투데이 2018.4.19. 기사 참조

2. 다만 한국시장의 경우, ‘유가의 주기적 순환현상’(유럽, 호주 등지에서 주로 발생)은 목격되지 않는 대신,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형성되어 있는 ‘유가 자체의 적정성’에 관한 논란이 상시 제기되어 왔다는 점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

3. 이에 반하여 정유산업의 상류(upstream)부문에서는 원유의 탐사, 시추, 개발, 생산이 이루어진다.

4. 국내 정유산업은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업자가 과점하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인 경쟁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5. 정유사의 공급가격은 한국석유공사에 매주 보고되며, 그 결과는 한국석유공사 오피넷(www.opinet.co.kr)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공개된다.

6. 2017년 수도권대기환경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자동차연료 환경품질등급 평가결과 국내 4개 정유사들이 휘발유 종합등급에 관하여 국제최고기준인 5성급과 4성급을 2개 업체씩 각각 부여 받은 바 있다.

7. 석유제품은 품질 측면에서 차별성이 거의 없고 판매가격, 판매정책 등이 경쟁사에 비해 차별성을 갖기가 어려워, 소매 유통망인 주유소 점유율에 의해 국내 시장 점유율 결정되고 있어서 시장점유율의 변동폭이 크지 않은 특징을 보인다.

8.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여, 계절에 따라 변동하는 수요량이나 유종 등 실정에 맞추어 가면서 제품을 소비지에서 탄력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서, 대형 탱커에 의한 원유수송비용의 절감, 소비지의 다양한 수요에 대한 적응성, 국내산업에의 파급효과 등의 이점이 있다. 석유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내의 안정공급이나 극단적 가격변동에의 대응 등을 목적으로 이 방침을 에너지정책의 기본으로 삼아 왔다.

9. 예를 들면 석유화학공업에서 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화학적 정제를 하는 경우, 동일한 공정에서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아스팔트 등이 생산되는데, 이들 제품 사이에는 주종관계가 없으며 또 서로 종류가 다르므로 연산품으로 불리고 있다.

10. 예를 들어 조달금리가 공개되는 금융시장을 들 수 있는데, 실제 신용카드 여신금리를 가격남용 문제로 의율했던 사례가 존재한다. 즉 공정거래위원회는 카드회사가 자금조달금리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할부수수료 연체율 등을 내리지 않은 경우에도 가격남용으로 시정명령을 내린 바가 있다(공정거래위원회 2001.3.28, 의결 제2001-040호).

11. 원유 1배럴을 공정에 투입했을 때, 공급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제품판매 가격과 원재료 가격 간 차이를 의미한다.

12. 정유사들이 내수 판매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영업이익률은 통상 1%대인 것으로 분석된다. 2018.1.18. 뉴스1 기사(정유사, 고유가에 폭리?…정제마진 하락에 '속앓이') 참조.

13. 이 때문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행위 판단기준에서 공급비용 요건을 삭제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14. 대표적인 사례로는 5개 석유제품 제조․판매사업자의 거래상대방 제한 및 정보교환(2011. 9.), LPG 수입 2사 및 정유 4사의 가격카르텔(2010.4.), 7개 액화석유가스 공급회사의 가격카르텔(2007. 4.), 군납유류 입찰담합(2000. 10), 제주지역 3개 석유판매대리점 및 LG-Caltex정유(주)의 가격카르텔 사례(1999. 7.), 5개정유사의 가격카르텔과 3개 정유사 및 1개 석유대리점의 거래조건(판촉물지원중단) 카르텔(1996.11), 6개 정유회사의 생산량조절 카르텔(1988.4.), 정유 4사의 윤활유 가격카르텔 (1985.12.) 등을 들 수 있다.

15. 정유사가 자기의 대리점과 체결한 대리점계약서상에 거래상대방을 제한하는 조건 및 계약의 일방해지 등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설정한 사례(1996.10.), 정유사가 대리점계약서상 분쟁발생시 서울에서 중재법에 따라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분쟁발생시 정유사의 본점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을 합의관할로 규정한 사례(1996.5.), 대리점과의 계약해지시 대리점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 사례(1992.7.)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16. 거래거절 사례로는 정유사가 계속적인 거래관계에 있는 거래상대방에 대하여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한 사례(1994.10)가 발견되고, 부당한 고객유인 관련 사례로서 정유사가 주유소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면서 주유소 보수 및 영업활동지원금으로 무이자 및 저리의 자금을 지원한 행위(1994.9.)가 문제되었던 경우가 있다.

17. 호남석유화학(주)의 기업결합 건(2004.12.)과 (주)LG화학 및 호남석유화학(주)의 기업결합 건(2003.9.)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18. 대표적인 사례로 주유소 및 액화석유가스판매업소간 공동행위 사건(1999, 2002)을 들 수 있다.

19. 거래상대방에 대한 지연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이미 시공이 이루어진 부분까지 설계변경을 통한 부당 감액한 사례(2005.3.)와 석유공사의 필요에 의하여 원유와 석유제품의 순환저장을 위하여 정유사에 대여 형식으로 출하시키면서 수송비와 출하과정에 소요된 인건비, 전력료, 소모품비, 시험분석비 등 출하비용을 정유사에 부담시킨 사례(1999)를 예로 들 수 있다.

24. Petroleum Prods. Antitrust Litigation, 906 F.2d 432, 445 n.9 (9th Cir. 1990)

25. Suiker Unie v Commission case [1975] ECR 1663, Imperial Chemical Industries v Commission (Dyestuff) case [1972] ECR 619, A. Ahlström Osakeyhtiö and others v Commission (Woodpulp II) case [1993] ECRI-1307

27.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4두3853 판결

29. 대법원ᅠ2003. 12. 12.ᅠ선고ᅠ2001두5552ᅠ판결

30.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2두17421 판결

31. 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1두23085 판결

32. OECD(2001), “Price Transparency”, Policy Roundtables, available at http://www.oecd.org/competition/abuse/2535975.pdf.

34. 대법원 2015.12.24. 2013두25924판결

35. 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1두23085 판결

36. 대법원 2015.12.24. 2013두25924판결

37.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4두3853 판결. 공정거래위원회 등 실무에서는 정보교환 내용이 관여 사업자들의 가격결정 과정에 반영된 경우 이를 ‘합의’ 인정의 주요 근거사실로 본 경우가 상당수 있었는데, 이 판결에서는 사업자들의 정보교환 목적/의도나 사업자들이 정보교환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한 것인지 등 주관적 요소를 함께 고려한 점이 주목된다.

41. Id, p.326.

42. Id, p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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