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제제기
‘넓은 의미에서의 조약범죄(treaty-based crimes)’란 집단살해,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범죄 및 침략범죄와 같이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관할권이 인정되는 좁은 의미에서의 국제범죄뿐만 아니라 테러, 무기밀매, 국제 마약거래, 국제 인신매매, 자금세탁 등 국제조약에 의해 규율되고 있는 범죄를 지칭한다.1) 우리 형법은 총칙에서 세계주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조약범죄와 관련하여 꾸준히 세계주의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1992년 10월 법무부에 의해 제안된 형법개정법률안에는 세계주의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2)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회의 검토를 거치는 과정에서 세계주의 규정을 제외하고 통과되었다.3) 이후 법무부는 2011년에 다시 사실상 형법총칙의 전면개정안에 해당하는 형법(총칙)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였는데, 이 개정안에 다시 세계주의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었다. 이 개정안은 다음과 같이 세계주의를 명문화하는 규정을 신설하고자 하였다.
제7조(세계주의) 이 법은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 적용한다.
1. 제119조의 죄
2. 제207조, 제208조 및 제212조(제211조의 미수범은 제외한다)의 죄
3. 제214조, 제218조 및 제223조(제214조, 제218조의 미수범만 해당한다)의 죄
4. 제287조부터 제289조까지, 제291조, 제292조 및 제294조(제293조의 미수범은 제외한다)의 죄
5.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 있는 조약에 따라 처벌하는 범죄
개정안 제7조의 도입배경에 대해 법무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인류공통의 보편적 보호법익을 침해하는 초국가적 성격을 띤 범죄와 이를 규율하는 국제조약이 늘어감에 따라 속지주의, 속인주의 또는 보호주의에 의해서도 우리 형법이 적용될 수 없는 외국인의 국외범에 대해서도 국제연대성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우리 형법의 적용을 인정할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국제형법의 적용원칙인 세계주의의 근거규정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형법 제6조와 일본형법 초안에서도 세계주의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개정안 제1호의 폭발물은 테러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전세계의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세계주의의 적용대상에 포함시켰으며, 제2호와 제3호는 현행형법 제5조의 제4호와 제5호 가운데 세계주의적 형법적용의 보호필요성이 있는 범죄들을 선별한 것이며, 제4호는 (아동)인신매매방지 등을 위한 국제협약에 나타난 세계주의적 정신을 우리 형법에 반영한 것이다. 개정안 제7조 제5호는 세계주의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인류공통의 법익의 가변성을 고려하여 탄력성 있게 대처하기 위한 조항으로서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있는 조약”이 근거가 되므로 국가간의 조약 뿐 아니라 국제기구와의 사이의 조약도 구속력있는 조약으로 되어 이러한 조약에 의해 처벌할 범죄도 세계주의의 적용대상이 된다.”4)
그러나 2011년 형법(총칙)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의 회기만료로 통과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형법총칙에 일반적인 세계주의 규정을 두는 것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초국경적 조직범죄에 대항하기 위한 유엔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을 국내법으로 이행하기 위해서 2012년 12월 13일 형법개정법률안을 제안하였는데, 이 개정안은 약취・유인・인신매매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5) 대상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6) 이 개정안이 2013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현행 형법 제296조의2에 의해 약취・유인・인신매매죄는 외국인이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해당 범죄를 범하더라도 우리 형법이 적용된다. 그리고 2016. 3. 3.부로 시행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7) 테러 관련 유엔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8) 동법 제19조는 동법 제17조상의 테러단체구성죄 등을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위와 같이 형법총칙에 조약범죄를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자 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우리나라가 가입한 형사법 관련 국제조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형법각칙 또는 특별법을 통해 일부 범죄가 명시적으로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되었다. 그리고 개정안 제안이유서에 의하면 우리 입법자는 ‘관련 국제조약에 의해 우리나라가 관련 조약을 국내법으로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 그러한 범죄는 ‘인류에 대한 공통적인 범죄’라는 것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연대성’을 근거로 그러한 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개정안 제안이유서는 관련 국제조약이 조약 가입국에 해당 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관련 국제조약은 외국에서 해당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 조약 당사국에 있는 경우 당사국이 그 외국범을 관할권 가진 국가에 인도하지 않는 경우에 당사국 스스로 그 외국범을 처벌하여야 한다는 ‘인도 또는 처벌 원칙’을 규정하고 있을 뿐, 해당 범죄가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국제협약에 나타난 세계주의적 정신을 우리 형법에 반영하기 위하여” 약취・유인・인신매매를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면서 형법 제296조의2를 신설하였다. 따라서 국제조약이 해당 조약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은데, 해당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국제법의 일반원칙인 ‘개별 국가 주권 존중의 원칙’과 ‘우리나라에 있지 않은 외국인의 국외범을 소추하는 것은 사실적 측면에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약취・유인・인신매매 및 테러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고 실효성을 가지는가는 의문이다.
한편 정부는 2007년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을 이행하기 위해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는데, 동 법률 제3조 제5항은 “이 법은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집단살해죄 등을 범하고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게 적용한다”고 하여 해당범죄의 외국범이 우리나라에 있는 경우에만 동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이러한 입법례를 ‘제한적 세계주의’라고 한다). 동 법률안 제안이유서에 따르면 동법 제3조 제5항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자는 인류전체에 대한 범죄자로서 이에 대한 관할권을 확립함이 국제법상 규범에 부합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의 취지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10) 법무부는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와 기타 조약범죄를 모두 ‘인류공통의 보편적 보호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라고 하면서도 전자를 제한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하고 있고, 후자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현재 국제형법에서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야말로 세계주의로 규율되어야 할 전형적인 범죄인데,11) 우리나라는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는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면서, 기타 조약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과연 법무부는 조약범죄라는 통칭개념(Sammelbegriff)에 속하는 다양한 범죄유형 간의 차이점을 적절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형법총칙에 세계주의 규정을 신설하여야 하는가’는 오래 전부터 형법적용법의12) 한 테마이다. 현행법상 형법각칙 또는 특별법을 통해 일부 조약범죄는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인데, 이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뿐만 아니라, 조약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특정 조약범죄와 관련하여 절대적 세계주의를 도입하는 법률개정안이 제안될 수 있다. 따라서 조약범죄 관련 국제조약이 과연 해당 조약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국제법의 일반원칙인 ‘개별 국가 주권 존중의 원칙’과 ‘우리나라에 있지 않은 외국인의 국외범을 소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조약범죄에서 우리나라 형벌권의 범위를 어떻게 규율하는 것이 적절한지가 규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하에 필자는 먼저,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국제조약과 몇몇 국가를 대상으로 하여 국제조약과 개별 국가가 세계주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규율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II). 다음으로 조약범죄에서 우리나라의 형벌권의 범위를 어떻게 규율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살펴본다(III).
Ⅱ. 국제조약 및 각 국가 형법상의 세계주의 규정
1950년대까지 채택된 국제조약의 경우 조약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를 형사범죄로 규율하여 처벌할 의무를 조약 당사국에 부여하고, 조약 당사국 상호간의 협력의무를 규정할 뿐 조약 당사국의 관할권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거나 관할권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속지주의에 의한 관할권 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에 대해서만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예컨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1948년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1948)」13) 제6조가 그러하다.14) 1949년 8월 12일 채택된 「무력충돌 희생자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과 추가의정서(Geneva Conventions and Protocols 1949」는15) 협약 당사국에 금지되는 행위를 형사범죄로 처벌할 의무를 부여할 뿐 관할권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16) 그리고 「노예제, 노예무역 및 노예제와 유사한 제도 및 관행의 철폐에 관한 1956년 보충협약(Supplementary Convention on the Abolition of Slavery, the Slave Trade, and Institutions and Practices Similar to Slavery 1956)」도17) 제3조에서 금지되는 노예제 등을 형사범죄로 규율할 의무와 그러한 행위를 방지할 의무를 협약 당사국에 부여하고, 제8조에서 협약 당사국 상호간의 협력의무를 규정할 뿐, 협약 당사국의 관할권에 관해서는 규정하지 않았다.
UN에 의해 채택된 국제조약에서 협약 당사국의 관할권에 대해 상세히 규정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항공기내에서 행한 범죄 및 기타 행위에 관한 1963년 UN 협약(Convention on Offences and Certain Other Acts Committed on Board Aircraft)」18) 제2장은 “관할권(Jurisdiction)”이라는 표제하에 제3조에서 기국주의에 의한 관할권을 규정하고, 제5조에서 적극적 속인주의와 보호주의에 의한 관할권을 인정하였다.19)
1970년대부터는 관할권과 관련하여 이른바 ‘인도 또는 처벌 원칙(the aut dedere, aut judicare rule)’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었다. 「항공기의 불법납치 억제를 위한 1970년 협약(Convention for the Supperssion of Unlawful Seizure of Aircraft 1970)」은20) 제4조에서 항공기불법납치에 대한 당사국의 관할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제1항에서는 기국주의와 불법납치된 항공기의 착륙국에 관할권을 인정하면서, 제2항에서는 “각 체약국은 또한 범죄혐의자가 그 영토 내에 있고, 제8조에 따라 본조 제1항에서 언급된 어떠한 국가에도 그를 인도하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 범죄에 관한 관할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제반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하여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따른 관할권을 규정하고 있다.21) 1970년대에 채택된 국제조약에는 속지주의에 의한 관할권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조약도 있다. 예컨대 「인종차별 범죄의 억제 및 처벌에 관한 1973년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Suppress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Apartheid 1973)」22)은 서문에서 “인종차별은 반인도범죄(crime against humanity)에 해당하고 … 국제 평화와 안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제1조에서 인종차별(apartheid)을 형사범죄로 규정할 의무를 협약 당사국에 부과하고 있는데, 제4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속인주의에 의한 관할권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2조에 나열된 인종차별범죄로 기소된 자는 해당 피고인에 대하여 관할권을 가지는 협약 당사국의 법정에서 또는 관할권을 가지는 협약 당사국이 재판소의 관할을 인정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될 수 있다.”
그러나 「외교관 등 국제적 보호인물에 대한 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1973년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Crimes against Internationally Protected Persons, including Diplomatic Agents)」23) 제3조는 제1항에서 기국주의를 포함한 속지주의, 속인주의 그리고 보호주의에 따른 관할권을 규정하였고, 제2항에서는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따른 관할권을 인정하였으며, 제3항에서는 동 협약이 개별 국가 형법에 의해 인정되는 관할권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24) 이후 유엔에 의해 채택된 형사적 성격의 국제조약에서는 모두 관할권과 관련하여 속지주의,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에 의한 관할권,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의한 관할권이 인정되고 있고, 개별 국가 형법에 의한 관할권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1970년 이후의 국제조약에서도 속지주의, 속인주의, 보호주의 및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의한 관할권의 인정유형 및 인정범위는 조약마다 (즉, 조약의 규율대상인 범죄에 따라) 상이한데, 크게 다음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a) 전통적 의미의 속지주의(기국주의 포함)와 자국민 불인도시의 관할권 설정을 의무적 사항으로 부과하고, 기타 사유에 의한 (확장된) 관할권 설정을 개별 국가의 재량으로 하고 있는 경우
첫 번째 유형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속지주의(기국주의 포함)에 의한 관할권 설정과 외국에서 해당 범죄를 범한 자국민을 관할권 가진 국가로 인도하지 않는 경우의 관할권 설정을 조약 당사국에 의무적 사항으로 부과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조약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적극적 속인주의와 보호주의에 의한 관할권 그리고 조약당사국 내에서 체포된 외국인의 국외범을 관할권 가진 국가로 인도하지 않는 경우의 관할권 설정을 조약 당사국의 재량적 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속인주의를 당사국 국민뿐만 아니라 당사국 내에 통상적 거주지를 가지는 외국인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보호주의를 당사국 내에서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협약상의 일정 범죄를 외국에서 범하는 경우25) 또는 외국에서 범했지만 당사국에 상당한 효과를 가지는 경우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약 및 향정신성물질의 불법거래방지에 관한 1988년 UN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Against Illicit Traffic in Narcotic Drugs and Psyschotropic Substances 1988)」 제4조,26) 「UN 초국경적 조직범죄 방지 협약 2000(United Nations Convention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2000」 제15조,27) 「부패방지에 관한 2003년 국제협약」 제42조가28) 위와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마약 및 향정신성물질의 불법거래방지에 관한 1988년 UN협약」 제2조는 동 조약의 적용범위를 “국제적 성격을 가지는(having an international dimension)” 마약 및 향정신성물질의 불법거래로 한정하고 있다. 「UN 초국경적 조직범죄 방지 협약 2000」 제3조에 의하면 동 협약은 초국경적 조직범죄에 적용되는데, 조직범죄가 한 국가 이상에서 범해졌거나,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과 관련되거나, 한 국가에서 범해졌지만 다른 국가에 상당한 효과(substantial effects)를 미치는 경우에 초국경적 성격(transnational in nature)을 가진다.29)
b) 전통적 의미에서의 속지주의(기국주의 포함), 적극적 속인주의와 (자국민인가 또는 외국인인가를 불문하고)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의한 관할권 설정을 의무적 사항으로 부과하고 있는 경우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1997년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Terrorist Bombings)」30) 제6조,31) 「테러자금조달의 억제를 위한 1999년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the Financing of Terrorism)」제7조 그리고 「원자력을 이용한 테러리즘 억제를 위한 2005년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Acts of Nuclear Terrorism. 2005)」제9조가 이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협약들은 인도 또는 처벌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범죄혐의자가 당사국 자국민인가 아니면 외국인인가를 불문하고 당사국에 의무적으로 관할권을 설정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이 협약들은 공통적으로 초국경적(transnational) 성격을 가지는 테러행위에만 적용된다고 하고 있다.32)
c) 전통적 의미에서의 속지주의(기국주의 포함), 적극적 속인주의, 보호주의 그리고 (자국민인가 또는 외국인인가를 불문하고)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의한 관할권 설정을 의무적 사항으로 부과하고 있는 경우
「외교관 등 국제적 보호인물에 대한 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1973년 협약」 제3조, 「인질억류에 관한 국제협약 1979(International Convention Against the Taking of Hostage 1979)」 제5조,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1984년 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e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1984)」제5조가33) 여기에 해당한다. 이 협약들은 인도 또는 처벌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범죄혐의자가 당사국 자국민인가 아니면 외국인인가를 불문하고 당사국에 의무적으로 관할권을 설정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d) 범죄지 국가와 범죄자 국가에 우선적 관할권을 인정하면서 독립된 국제형사재판소에 보충적 관할권을 인정하는 경우
마지막 유형은 독립된 국제형사재판소에 보충적 관할권을 인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의 보충적 관할권 행사요건을 규정하면서 개별 조약 가입국의 관할권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규정」이 이에 해당한다. 먼저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학살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죄 및 침략범죄에 대해 보충적 관할권을 가진다. 국제형사재판소인 ICC가 보충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이러한 범죄를 가리켜 ‘좁은 의미 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international crimes)’라고 한다. 보충적 관할권이란 국제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가지는 개별 국가가 해당 범죄를 진정으로 수사・소추할 의사가 없거나 능력이 없는 경우에 국제형사재판소가 해당 범죄를 수사・소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로마규정 제17조 제1항 참조).34) 보충성 원칙이 충족되는 것 외에도, ICC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로마규정 당사국 내에서 범해진 국제범죄, 당사국 국민이 범한 국제범죄를(로마규정 제12조 참조) 관할권 가지는 국가35) 또는 UN 안보리가36) 사태(situation)를 ICC에 회부하거나 ICC가 직권으로 수사개시를 한 경우이어야 한다(로마규정 제14조 및 제15조 참조).
로마규정 당사국은 ICC에 협력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고(로마규정 제86조 참조), ICC가 범죄혐의자 체포 및 인도 요청을 하면 모든 당사국은 이에 협력해야 하고, 국제범죄 혐의자가 있는 당사국은 ICC의 체포・인도 요청에 응해야 한다(로마규정 제89조 참조).
국제조약은 적극적 속인주의와 보호주의를 당사국의 임의적 관할권 설정 사유로 규율하는경우도 있고, 의무적 관할권 설정 사유로 규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적극적 속인주의와 보호주의는 속지주의와 함께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관할권의 근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조약에서의 이러한 차이가 개별 조약 당사국의 적극적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에 의한 관할권 설정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국제조약이 인도 또는 처벌 원칙을 어떻게 규율하고 있는가는 개별 조약 당사국의 세계주의에 의한 관할권 인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국제조약이 인도 또는 처벌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규율대상인 범죄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외국에서 범죄를 범한 당사국 국민이 당사국 내에 있지만 자국민이라는 이유로 관할권 가지는 다른 국가로 인도되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는 모든 국제조약이 당사국에 의무적으로 관할권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자국민 보호원칙과 조약 당사국의 국제 연대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적극적 속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의 국외범이 당사국에 있지만, 그 범죄혐의자를 관할권 가지는 국가로 인도하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는 당사국의 관할권 설정을 당사국의 재량으로 하고 있는 국제조약이 있는가 하면, 당사국에 관할권을 설정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국제조약이 있다.37) 전자에 속하는 국제조약은 (a)유형에 속하는 국제조약, 즉 마약 및 향정신성물질의 불법거래, 초국경적 조직범죄 그리고 부패범죄를 규율하는 국제조약이다. 후자에 속하는 국제조약은 (b), (c) 및 (d)유형에 속하는 국제조약, 즉 테러, 인질억류,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행위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의) 국제범죄를 규율대상으로 하는 국제조약이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모든 국제조약에서 외국인의 국외범에 관한 인도 또는 처벌 원칙에 있어서는 당사국의 관할권 설정을 재량적 사항으로 하는지, 의무적 사항으로 하는지에 상관없이 그 외국인 범죄혐의자가 당사국 내에 있을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이다.
독일형법 제6조는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법익에 대한 국외범”이라는 표제하에 다음 범죄들을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핵에너지, 폭발물 및 방사선에 관한 범죄, 항공기・선박운항 방해・파괴죄, 성적 착취 및 노동목적의 인신매매 및 인신매매조장죄, 향정신성의약품의 권한 없는 판매행위, 음란물 반포죄, 통화・유가증권・수표 등 위조죄, 보조금사기죄 그리고 범죄가 국외에서 실행된 경우일지라도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하여 구속력을 갖는 국가 간 조약에 근거하여 소추되는 범죄.
독일형법은 제6조에서 세계주의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형태로 규율하고 있고, 국제조약에 의해 규율되고 있는 조약범죄 외에도 보조금사기죄와 같은 범죄도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38) 그러나 독일은 형법전에서는 세계주의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형태로 규율하고 있지만, 형사소송법 제153조의c 제1항 제1호에서 모든 국외범을 소추재량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세계주의 대상 범죄도 소추재량주의의 대상이다. 한편 제153조의c 제3항에 의하면 실행행위지는 외국이지만 범죄결과 발생지가 독일인 이격범에서 해당 범죄를 소추하는 것이 독일에 중한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경우이거나 기타 중요한 공적 이익을 손상케 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범죄의 소추를 배제할 수 있다. 그리고 독일 국제형법전상의 범죄도 형사소송법 제153조의f에 의하면 국제범죄가 외국에서 범해졌고, 범죄혐의자가 독일에 머무르지 않거나 독일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러한 국제범죄의 소추를 배제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 형법 제6조와 독일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을 종합하여 이해하면 독일은 실제로는 제한적 세계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9)
스위스 형법 제5조에 의하면 외국에서 미성년자에게 다음 범죄를 범한 자가 스위스에서 발견되고, 관련 외국으로 이송되지 않는 경우 스위스 형법이 적용된다: 인신매매(제182조), 성적 강요(제189조), 강간(제190조), 준강간 등(제191조), 그리고 스위스 형법 제6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세계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제6조 국제조약상의 의무에 따라 소추해야 하는 국외범
1. 외국에서 중죄 또는 경죄를 범한 자에게는 국제조약에 의해 스위스가 그러한 범죄를 소추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라면 다음의 경우에 본법이 적용된다:
a. 그 행위가 범죄지국에서도 형사범죄로 처벌되거나 범행지가 어느 국가의 관할권에도 속하지 않고,
b. 범죄자가 스위스에서 발견되고, 그 외국으로 이송되지 않는 경우.
2. 제1항의 경우 법원은 범죄지 국가 법에 의해서 인정되는 형량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일본 형법 제2조는 “모든 자의 국외범”이라는 표제하에 내란의 죄, 외환의 죄, 통화・유가증권 위조 등의 죄 및 동 행사죄, 지불용 카드 또는 전자적 기록 부정작성 및 동 행사죄, 옥새 또는 공인의 위조 및 부정사용 등 죄를 나열하여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40) 그리고 제4조의2는 “조약에 의한 국외범”이라는 표제하에 “제2조 내지 전조에 규정한 것 외에 이 법률은 일본국 외에서 제2편의 죄로서, 조약에 의하여 일본국 외에서 범한 때에 벌할 것으로 되어 있는 죄를 범한 모든 자에게 적용된다”고 하여 하여 조약에 의해 일본이 처벌의무를 부담하는 범죄에 관한 포괄적 세계주의 규정을 두고 있다.41)
영국은 특별법의 형태로 국제조약에서 인정되고 있는 국제법상 중대한 범죄행위들에 대해 절대적 세계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한 범죄는 「제네바협약법 1957과 1995(Geneva Convention Act 1957 and Geneva Convention(Amendment) Act 1995)」에 의한 제네바협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42) 「형사사법법 1988(Criminal Justice Act 1988)」제134조의 ‘공적 지위로 행동하는 자에 의한 고문’,43) 「인질억류법 1982(Taking of Hostage Act 1982)」 제1조에 의한 인질억류 행위이다.44) 한편 영국은 국내법인 「국제형사재판소법 2001(International Criminal Court Act 2001)」의 적용대상인 국제범죄가 외국에서 범해진 경우 영국 국민, 영국에 통상 거주지를 가진 자 또는 영국 군인에 의해 범해진 범죄로 한정하고 있다.45)
비록 소수의 국가만을 살펴보았지만, 조사대상 국가들의 형법은 세계주의를 규율하는 방식에서 상이하다. 스위스는 실체법에서 제한적 세계주의를 명시하고 있고, 독일은 실체법에서는 절대적 세계주의를 규정하고 있지만 소송법을 통해 절대적 세계주의 대상 범죄에 대한 관할권 행사를 제한함으로써 실제로는 제한적 세계주의를 취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절대적 세계주의를 취하고 있다.
한편 영국을 제외하고 조사대상 국가는 모두 세계주의의 대상범죄를 조약 범죄 이외의 특정범죄로 확장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보조금사기죄도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편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국제조약에서는 초국경적 성격을 가지는 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부분의 국가가 초국경적 성격을 가지는 조직범죄인가를 불분하고 조직범죄를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46)
Ⅲ. 검토
속지주의,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에 의해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일지라도, 즉 외국인이 외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범한 경우일지라도 자국의 형사 관할권을 인정하는 경우를 가리켜 ‘세계주의(Weltrechtsprinzip)’ 또는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이라고 한다.47) 세계주의 또는 보편적 관할권은 추가적인 다른 요건을 요구하는가에 따라 크게 다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48) 절대적(absolute) 세계주의/보편관할권과 제한적(restrictive) 세계주의/보편관할권.49) 전자는 외국인의 국외범이 자국 내에 있지 않을지라도 자국법의 적용 및 자국 재판권의 행사를 허용하는 입법례를 의미한다. 반면에 후자는 외국인의 국외범이 자국내에 있을 것 또는 외국인의 국외범이 범행 이후 자국민이 되었을 것과 같은 기타 요건을 조건부로 하여 자국 관할권을 인정하는 입법례를 뜻한다.
일부 견해는 세계주의란 입법관할권(jurisdiction to prescribe), 즉 '개별 국가가 어떤 행위를 자국 형법으로 규제할 권한을 가지는가(다른 말로, 자국 형법의 적용범위로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가)‘에 관한 문제이고, 범죄 혐의자가 자국 내에 있는가 등의 추가적인 요건은 세계주의에 의한 관할권의 행사에 관한 문제, 즉 집행관할권(jurisdiction to enforce)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한다.50) 이러한 지적은 적절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계주의를 절대적 세계주의와 제한적 세계주의로 구분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입법관할권은 집행관할권을 위한 전제요건이고, 입법관할권과 집행관할권이 모두 행사됨으로써 개별 국가의 형벌권이 행사된다.51) 절대적 세계주의이든, 제한적 세계주의이든 형벌권 행사의 전제요건인 입법관할권과 관련하여서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단지 집행관할권에 있어서 다른 요건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제한적 세계주의 또한 세계주의의 한 유형이다.52) 이것은 세계주의의 행사요건인 ’외국인 범죄자가 자국 내에 있을 것‘을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일의 입법례와 실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스위스의 입법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행사요건을 어디에서 규정하든 그것이 집행관할권에 관한 것이라는 성격을 잃지 않지만, 그러한 추가적인 행사요건이 요구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세계주의의 세부유형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53) 재판관할권과 집행관할권의 구별은 세계주의의 유형 구분보다는 절대적 세계주의의 허용여부와 관련하여 큰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모든 국제조약은 제한적 세계주의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지, 어떠한 국제조약도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해당범죄를 규율할 의무를 개별 조약 당사국에 부과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보편적 관할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테러리즘에 관한 국제조약의 입법적 설명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정 이익의 경우 보편적 보호를 향유한다. 국제공동체의 이익이 관련되는 경우에 그러하다. 그러한 경우 보편적 관할권 원칙(universality principle)이 적용된다. 보편적 관할권은 특정 중대 행위의 범행자가 자국에서 체포될 것을 요건으로 하여 그 자국에 관할권을 인정한다. 테러리즘은 그러한 중대 행위에 해당한다. … 테러리즘에 관한 국제조약은 보편적 관할권을 필연적 귀결(corollary)로 하는 인도 또는 처벌 원칙(the aut dedere, aut judicare rule)을 따르고 있다. 모든 국가는 범죄혐의자가 자국 내에 있고, 협약에 의할 때 그 범죄혐의자를 관할권을 가지는 국가에 인도할 수 없거나 인도해서는 아니 되는 경우라면 그 국가가 관할권을 행사하여야 한다.”54)
국제조약에서 인정되는 보편적 관할권이란 ‘제한적 세계주의’를 의미하지, 절대적 세계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55) 국제조약이 절대적 세계주의가 아니라 제한적 세계주의를 인정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개별 국가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일반 원칙 때문이다.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국제조약은 ‘개별 국가 주권 존중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56) 또한 이른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인 ICC 관할범죄에서도 ICC는 관련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기 위해 관련국가, 특히 범죄지 국가와 범죄자 국가에 우선적 관할권을 인정하고, ICC는 보충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국제조약이 제한적 세계주의만 인정하고 있다고 하여, 국제조약이 개별 조약 당사국이 조약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확장된 범위로 세계주의를 규율하는 것, 즉 해당 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규율하는 것을 불허하는 것은 아니다.57) 국제조약에서 의무적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개별 조약 당사국이 이행해야 하는 최소한을 의미하고, 조약 당사국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해당범죄를 규율하는 것은 조약 당사국의 재량이며, 그렇게 하더라도 조약상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의 개별 국가 형법 부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현재 조약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규율하는 나라가 있으며, 조약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범죄도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개별 국가가 조약범죄뿐만 아니라 일반범죄도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규율하더라도 조약상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국제법상의 일반원칙인 타국가 주권존중의 원칙과 현실적 측면을 고려할 때 과연 이러한 규율이 적절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별 국가는 어떠한 범죄를 의무적으로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규율하여야 하는가’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개별 국가가 어떠한 범죄를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할 수 있는가’는 논란거리인데, 이러한 논란에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문제의 쟁점이 명학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개별 국가는 관련 국제조약이 해당 범죄를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할 수 있고, 해당 범죄 이외의 범죄도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이러한 규율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약범죄를 규율하고 있는 모든 국제조약은 제한적 세계주의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고, 조약에 따라 이를 임의적 사항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를 의무적 사항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개별 국가가 어떠한 범죄를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규율해야 하는가’가 명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좁은 의미 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와 ‘좁은 의미에서의 조약범죄’의 구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002년 7월 1일 로마규정이 발효된 이후 ‘국제범죄(international crime)’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하는 죄, 전쟁범죄 및 침략범죄와 같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보충적 관할권이 인정되는 범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58) 이러한 범죄를 ‘진정한 의미 또는 좁은 의미에서의 국제범죄’라고 칭하기도 한다.59) ‘넓은 의미에서 조약범죄’라고 하면 국제조약에 의해 규율되는 범죄를 통칭하지만60) 조약범죄를 좁은 의미로 사용하면 ICC 관할 범죄인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를 제외하고 국제조약에서 규율되고 있는 범죄, 즉 해적행위, 고문, 항공기 납치, 테러, 마약거래, 국제조직범죄 등의 범죄를 뜻한다. 이러한 ‘좁은 의미에서의 조약범죄’와 비슷한 용어로 ‘초국경적 범죄(transnational crimes)'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61)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와 ‘좁은 의미에서의 조약범죄’를 구별할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로마규정상의 국제범죄는 “권력을 가진 국가조직 또는 국가유사조직의 정책에 따라 체계적으로 또는 광범위하게 범해지는 거시적 집단범죄”라는 성격을 가지고,62)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국제범죄는 대부분 처벌되지 않아 왔기에 이러한 불처벌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ICC가 설립되어 보충적 관할권을 가진다. 반면에 좁은 의미에서의 조약범죄는 초국경적 성격 또는 반인도적 성격을 가질지라도 ‘권력을 가진 국가조직 또는 국가유사조직에 의해 정책적으로 범해질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기에 ICC의 관할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개별 국가 법원에 의해 심판된다.63)
ICC 관할 범죄와 기타 조약범죄 간의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현재 전자야말로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제한적 세계주의로 규율되어야 할 범죄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ICC 관할 범죄 외에도 개별 국가가 의무적으로(!) 제한적(!) 세계주의로 규율해야 할 범죄는 관련 국제조약이 당사국 내에 있는 외국인의 국외범과 관련하여 당사국에 의무적으로 제한적 세계주의에 의한 관할권을 설정하도록 하는 경우이다. 그러한 범죄는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 인질억류 그리고 테러리즘이다.64) 이러한 범죄는 반인도적 성격을 가지기에 비록 ‘ICC 관할범죄인 인도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국제조약에서 당사국에 제한적 세계주의에 의한 관할권을 설정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별 국가가 조약상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에 더 나아가서 조약범죄 및 기타 특정 일반범죄까지도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살펴본다. 이러한 규율은 조약상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국제법의 일반원칙인 타국가 주권 존중의 원칙에 합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효성 없는 상징적 입법에 불과하다.
절대적 세계주의에 의해 자국 내에 있지도 않은 외국인의 국외범을 소추하기 위해서는 그 외국인 범죄혐의자가 있는 국가로부터 범죄혐의자를 인도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속지주의, 적극적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에 의해 관할권을 가지는 국가가 그 범죄혐의자를 소추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를 쉽게 생각할 수 없다. 그러한 경우일지라도 범죄혐의자가 관할권 가지는 국가에 있다면 이론적으로 인도요청의 적절성이 의문시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도 관할권 가지는 국가가 인도요청에 응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65) 절대적 세계주의가 실익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속지주의, 적극적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에 의해 관할권을 가지는 국가가 범죄혐의자를 소추할 의사・능력이 없고, 범죄혐의자가 관할권을 가지는 그러한 국가에 있지 않은 경우이다. 이 경우에도 범죄혐의자가 있는 국가는 제한적 세계주의에 의해 관할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절대적 세계주의는 범죄혐의자가 있는 국가에 제한적 세계주의에 의한 관할권도 인정되지 않거나 그러한 관할권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모든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일지라도 그러한 범죄혐의자를 법치주의적 소송절차에 따라 소추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어느 국가가 이러한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오로지 전세계를 위한 경찰국가로서’ 그러한 범죄혐의자를 소추하려고 하겠는가?66) 실제로 소추하려고 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특정 목적을 위해 부당하게 절대적 세계주의를 이용하는 경우일 수 있다. 부당하게 절대적 세계주의를 이용하는 경우가 아니면서 그러한 범죄혐의자를 소추하는 경우라면, 그 국가가 절대적 세계주의를 원용할지라도 실제로는 그 국가와 그 범죄와 어떤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일 것이다. 세계주의에 관한 리딩케이스로 소개되는 ‘아이히만 사건(Eichmann case)’이나 ‘피노체트 사건(Pinochet case)’은 실제로는 자국 국민 또는 민족이 피해자였던 경우이다. 이러한 연관성 없이 절대적 세계주의에 의해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은 오히려 외교적 마찰이나 정치적 분쟁을 초래하는 등 해약이 보다 더 크다. 국제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에서 개별 국가의 절대적 세계주의에 의한 관할권 행사보다는 ICC의 보충적 관할권 행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67)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범죄에서조차 제한적 세계주의가 채택되고 있는데, 보호법익의 보편성이 보다 약한 기타 조약범죄에서 개별국가에 절대적 세계주의를 허용하는 것은 사물논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타당하지 않다. 실체법에서 절대적 세계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일부 국가가 소송법을 통해 명시적으로 제한적 세계주의를 취하거나(독일의 경우) 일부 국가는 절대적 세계주의를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범죄혐의자가 자국 내에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영국의 경우) 이러한 이유에서다.68)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제한적 세계주의의 방식에 따라 모든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것이 국제법의 일반 원칙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합성 있는 방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ICC 관할범죄를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ICC 관할범죄에 비해 보호법익의 보편성이 약한 약취・유인・인신매매죄나 테러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약취・유인・인신매매죄나 테러범죄에서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외국인의 국외범을 소추하려고 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도 없으므로 전형적인 상징입법에 해당한다. 외국에서 약취・유인・인신매매죄나 테러범죄를 범하고 우리나라로 도피한 외국인을 수사기관이 발견한 경우 체포・구금 등 강제수사조치를 하기 위한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제한적 세계주의를 취함으로써 충분이 달성될 수 있다. 차후에 약취・유인・인신매매죄나 테러범죄도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개정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편 국제조약은 제한적 세계주의로 규율하는 것을 임의적 사항으로 하는 경우와 의무적 사항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세계주의 관련 개정안에서 포괄적 규정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 있는 조약에 따라 처벌하는 범죄”라는 안은 그 의미가 불명확하다. 동 개정안의 자구에 의하면 동 개정안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조약에서 당사국에 형사범죄로 규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모든 범죄’를 뜻하게 된다. 그러나 제한적 세계주의는 우리 형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문제이고, 관련 조약에서는 개별 조약 당사국의 형법이 적용되는 범위에 관해서는 관할권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동 개정안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 있는 조약에서 의무적 또는 임의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범죄’로 표현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조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태양을 넘어서서 다른 범죄까지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 예컨대 초국경적 성격을 가지는 국제조직범죄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직범죄를 제한적 세계주의로 규율하는 것이 그러하다. 관련 국제조약이 우리나라 국민 또는 우리나라 법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만 국제조약에서 규율하고 있는 범죄의 범위를 넘어서서 제한적 세계주의의 대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관련 국제조약은 개별 국가의 법익을 충분히 보호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경우 제한적 세계주의 외에도 속지주의,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를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확장적 관할권을 관련 범죄의 적용범위에 대한 확장적 해석을 통해서 인정하거나 관련 범죄에서 명시적으로 적용범위를 확장하는 규정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방법은 유추해석금지원칙과 관련하여 문제가 될 수 있고, 후자의 방법은 일일이 법개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총칙에서 포괄적 규정으로 임의적 세계주의와 의무적 세계주의뿐만 아니라 속지주의 등을 확장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 있는 조약에 따라 우리 형법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와 같이 규정하는 안을 제안한다.69)
Ⅳ. 맺음말
조약범죄를 규율하고 있는 모든 국제조약은 ‘인도 또는 처벌 원칙’을 기초로 세계주의를 규정함으로써 제한적 세계주의를 취하고 있고, 어떠한 국제조약도 절대적 세계주의로 해당 범죄를 규율할 의무를 조약 당사국에 부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별 국가 주권 존중의 원칙을 고려한 것이다. 국제조약은 조약 당사국이 절대적 세계주의의 형태로 조약범죄 및 일반범죄를 규율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지만, 절대적 세계주의는 주권존중의 원칙에 합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효성 또한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제한적 세계주의에 따라 조약범죄를 규율하는 것이 적절하다. 진정한 국제범죄인 ICC 관할 범죄에서도 제한적 세계주의가 인정되고 있는데, ICC 관할범죄보다 보호법익의 보편성이 약한 기타 조약범죄, 특히 초국경적 범죄를 절대적 세계주의에 따라 규율하는 것은 사물논리적 관점에서도 타당하지 않다. 조약범죄에서 우리나라 국민 또는 우리나라 보호법익을 충분히 보장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에 대하여 구속력 있는 조약에 따라 우리 형법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와 같이 확장된 속지주의, 적극적 속인주의 및 보호주의 그리고 제한적 세계주의를 포괄하는 일반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