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오늘날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인류가 불치병 또는 난치병이라고 여겨온 질환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언젠가 이러한 질환들이 완전하게 극복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법적 규제에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배아복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인간배아복제는 인류의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진보를 초래하였고, 인간의 노화를 규명하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있지만, 체세포배아복제를 통해 동물과 인간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생명윤리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1) 이처럼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한편, 2005년 겨울 황우석 박사의 연구논문들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배아복제 논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인간배아복제가 정말 가능한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였다.2) 왜냐하면 동물복제 경험을 가진 연구팀이 구하기 힘든 인간 난자를 2200개 이상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줄기세포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은 황우석 스캔들로 이어지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주춤거리게 되었고 다른 나라의 줄기세포연구의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체세포배아복제연구의 지체는 단순히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여론의 관심에 따라 생명윤리의 도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이라 함)의 법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3)
따라서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의 가능성이 예견되면서 생명윤리와 안전을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줄기세포연구를 비롯한 일련의 생명공학에 대한 규범적・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증가하면서 세계 각국은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행 생명윤리법은 배아줄기세포의 수립・처리・결과의 보호 등 기본 방향은 마련되어 있어나 여전히 세부적인 면에서는 미비한 실정이다. 이는 생명윤리법이 너무 광범위하여 배아줄기와 관련된 전 영역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방향만 제시할 뿐, 개별사안에 대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생명윤리법상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현황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것 이외에도 이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정책 변화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그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윤리의 진보를 위해서 생명공학 분야는 계속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책적으로나 법제도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Ⅱ. 국내외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법적 현황
우리나라는 황우석 사태 이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하여 연구촉진에서 연구규제로 정책방향이 전환되었다. 우리나라는 배아줄기세포만을 취급하는 별도의 법률은 없다. 다만 생명윤리법이 2004년에 제정되어 2005년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다. 초창기의 생명윤리법은 사실상 법적 요건에4) 따르면, 황우석 교수팀만 연구가 가능하도록 자격조건이 한정되어 있어서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에 불과하였다. 생명윤리법은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 제정되었지만, 황우석 스캔들로 인하여 체세포복제 연구가 불가능해지자 다른 줄기세포연구를 방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비판도 있었다.5)
생명윤리법은 배아연구의 근거법이면서도 2008년 법 개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줄기세포주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그 후 2012년 2월에는 생명윤리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적용범위를 배아 및 유전자 등에 관한 생명과학기술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대상연구 및 인체유래물연구까지 확대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체세포 배아복제는 물론이고 잔여배아, 성체줄기세포 연구까지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에 속한다.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모든 종류의 줄기세포연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6)
생명윤리법상 인간배아줄기세포7) 연구에 관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법 제23조 제1항은 누구든지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배아는 오로지 임신의 목적으로만 생성할 수 있다. 그리고 배아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난자 기증자, 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대상자 및 해당 기증자・시술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의 서면동의가 필요하다(제24조).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는 발생학적으로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 연구의 목적이 “난임치료법 및 피임기술의 개발을 위한 연구”이거나, 일정한 “희귀・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 또는 “그 밖에 국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구”일 경우에는 허용된다(제29조). 그러나 잔여배아 연구를 위해서는 배아연구기관으로 등록하여야 하며(제29조 제2항), 배아연구계획서에 대한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제30조). 이처럼 인간배아연구에 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명윤리법은 제한적으로나마 이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각 영역별로 독립적인 법률에서 줄기세포, 위원회, 유전자 진단 등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다. 배아에 관해서는 연구와 보호를 위해 각각 별개의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해 1990년 12월 13일에 제정된 배아보호법(Embryonenschutzgesetz)에 의해 직접적으로, 2001년 6월 28일에 제정된 줄기세포법(Stammzellgesetz)에 의해 간접적으로 수정시점부터 배아를 보호하고 있다.
독일의 배아보호법은 배아줄기세포의 수입 및 이용행위를 허용한다. 배아줄기세포를 연구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허용되며, 연구목적으로 외국에서 제조된 배아줄기세포를 수입하는 행위 역시 허용된다. 또한 연구목적으로 외국에서 제조된 인간의 배아를 사용하기 위한 모든 충동을 억제하기 위하여 2002년 6월 28일 ‘인간배아줄기세포의 수입 및 사용에 관한 배아보호를 위한 법률’, 소위 ‘줄기세포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줄기세포법 제4조에서 배아줄기세포의 수입 및 이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제6조의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배아줄기세포의 수입과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2002년 1월 1일 이전에 생성된 것으로서, 생성국의 적법절차에 따라 배양되거나 저온보관된 것이어야 한다.8) 또한 다음의 사실을 확인한 경우, 임신 목적으로 체외 수정의 방법으로 얻은 잔여배아를 더 이상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줄기세포의 획득을 위한 배아의 양도가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연구목적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수입하고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었다.9) 그러나 줄기세포가 인간배아로부터 획득되었다는 이유 이외에 배아줄기세포의 획득이 독일 법질서의 근본원칙과 명백하게 배치될 경우에는 허가가 거부될 수 있다.
이처럼 생명과학기술의 진전과 더불어 새로운 생식기술이 발전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독일의 법처럼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를 열거하여 주는 입법방식도 연구될 필요가 있다.
영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매우 폭넓게 허용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세계 최초로 시험관아기를 성공시켰고, 1997년에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키는 등 체세포핵치환에 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가이며, 세계 최초로 배아복제를 허용한 국가이다.10)
영국에서 배아연구에 관한 논의는 1982년 말에 보조생식술의 사회적・법적・윤리적 함의를 검토하기 위한 워녹(Mary Warnock) 박사가 주도한 생명윤리위원회가 보고한 총 13장으로 구성된 워녹보고서 중 11장이 인간배아를 과학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12장은 인간배아를 약물연구 및 기타연구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13장은 이에 대한 권고안으로 인간배아 사용에 대한 엄격한 통제, 불임치료를 위하여 생식세포를 기증하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인간배아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핵심적인 것은 인공수정과 배아연구 양쪽을 모두 감독하고 관리할 새로운 법적 기관을 설립하여야 한다는 것이다.11)
영국은 1990년에 ‘인간 수정 및 발생에 관한 법률(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ct)’을 제정하여 배아의 생성・보관・연구에 대하여 국가에서 법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배아에 대한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수정 후 14일이 경과한 배아는 특별히 보호해야 하며, 그 이전은 ‘초기배아’로 보아 배아연구를 인정하고 있다. 줄기세포연구에서 배아의 이용은 오직 인간수정 및 배아기관(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uthority, HFEA)에서 관리될 수 있다.
2001년 종전의 ‘인간 수정 및 발생에 관한 법률(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ct 1990)’을 개정하여 배아의 발달에 대한 이해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치료 목적의 줄기세포연구를 허용하면서 이를 확대하였다.12) 이후 영국은 개별적으로 진행해 오던 줄기세포연구를 차세대 산업의 근간이 되는 분야로 인식하여 국가가 연구개발 단계부터 총체적 관리를 위해 2005년부터 10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즉 줄기세포은행(Stem Cell Bank), 줄기세포 치료 생산용 유닛센터(Center of Excellence, Stem Cell Therapy Production Unit) 등 다양한 규모와 수준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존의 연구개발 프로그램과의 제휴를 통해 줄기세포연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재정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줄기세포은행을 통해 영국 내 줄기세포연구를 효과적으로 발전시키고, 전 세계적으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선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 분야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3)
미국은 연구목적으로 인간배아를 파괴, 손상시키는 행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았기 때문에 체세포복제와 같이 연구목적으로 탈해된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주입하여 하나의 배아를 생성하는 연구는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였다. 또한 불임치료 후 일정시간이 경과하여 폐기될 예정인 배아를 이용하여 만든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경우에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려고 하였다.14) 이처럼 부시 대통령은 생명윤리 논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1년 8월 9일 이전에 추출하여 존재하는 배아줄기세포주의 연구에만 연방자금 지원을 허용하고, 그 이후에 추출되는 배아줄기세포주의 연구에 대해서는 인간배아의 파괴를 초래한다는 윤리적 관점에 근거하여 연방자금 지원을 금지한다고 선언하였다.15) 즉 연방자금을 지원 받으려면 금전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를 한 부부로부터 불임치료를 위해 생성된 잉여배아로부터 추출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이에 반해,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3월 9일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5개 조항으로 구성된 ‘인간줄기세포에 관한 책임있는 과학적 연구에 대한 방해 장벽의 제거(Removing Barriers to Responsible Scientific Research Involving Human Stem Cells)’라는 행정명령16)을 발하였다. 나아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중요한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치료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자금 지원을 허용하였다.17)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인해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본격적인 재정지원이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하여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것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난치병 혹은 불치병 치료를 블루오션 의학산업으로 간주한 미국이 동 연구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18)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인하여 2009년 연방차원에서 줄기세포연구향상법(Stem Cell Research Improvement Act of 2009)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하여금 인간배아로부터 줄기세포가 추출된 날짜와는 상관없이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수행하고 지원할 것을 명시하였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2013년 5월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슈크라트 미탈리포프(Shoukhrat Mitalipov) 교수 연구팀이 126개의 난자를 사용해서 4개의 줄기세포를 만들게 되면서 넘기 힘든 벽으로 알려졌던 인간배아복제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국제 규범의 동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는 2005년에 발표된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 가이드라인과 2006년 말에 발표된 국제줄기세포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Stem Cell Research)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처럼 배아연구와 관련하여 각국의 정치이념 및 윤리원칙이 어떠한 철학적 근거를 가지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배아연구의 한계 범위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생명과학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 등과 관련된 헌법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앞서 독일과 미국은 원칙적으로 배아연구를 금지하고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법률로써 규정함으로써 진보하는 과학의 기술과 헌법적 문제(사생활의 보호, 배아 세포주 제공자의 자기결정권, 생명권, 평등의 문제 등)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19)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헌법이 보호해야 할 궁극적 가치의 보장을 위하면서도 오히려 배아연구를 통한 기본권의 보장을 도모하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각국은 생명윤리와 관련된 위원회를 두어 생명윤리 관련 법안 및 관련 사안들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위해서 하루빨리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얻고 있다.20) 그러나 인간배아를 이용한 연구는 생명체 파괴, 인간 경시 등의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고려 또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Ⅲ.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제한과 한계
배아줄기세포란 줄기세포 획득과정에서 배아(embryo)에서 추출했는가 여부에 따른 분류에 근거할 때, 수정란 이후 배아로부터 채취해 낸 줄기세포를 말한다. 이는 다시 줄기세포 자체가 하나의 개체 곧 생명체로 분화할 수 있는 전능줄기세포(totipotent stem cell)와 하나의 개체는 될 수 없지만,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여러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될 수 있는 다능줄기세포(pluripotent stem cell)로 나눌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발달 초기 단계의 배아, 태반 또는 탯줄의 혈액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다.
배아복제를 연구하는 주된 이유는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란 이처럼 배아줄기세포의 분화와 관련된 복잡한 절차나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응용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를 의미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성과는 상실 혹은 파괴된 세포나 신체기관 또는 조직의 재생에 응용되거나, 그동안 난치병이나 불치병으로 분류된 여러 질병의 치료와 신약개발에 이용될 것이다.21) 난치병이나 불치병 환자로부터 얻은 줄기세포를 활용하면 이 환자의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분석하여 배아줄기세포주(cell lines)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환자의 질환을 치료할 수 있으며, 또한 환자의 치료를 위한 병리학 및 치료요법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에 사용될 수 있다.22) 배아줄기세포에 비하여 성체줄기세포는 출생 후 특정 종류의 조직에 미량으로 존재하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세포를 제공하는 것인데 반해, 배아에서 유래하는 배아줄기세포는 배양 가능한 특별한 조건에서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고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만능세포’라고도 부른다. 이처럼 배아는 줄기세포 추출을 위한 유용한 연구자원으로서 오늘날 그 가치를 크게 인정받고 있다.23)
생명과학연구는 개인의 생명과 신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져올 수 있다. 인류에게 엄청난 위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을 헌법적 차원에서 보호한다는 것은, 오히려 개인의 생명권 등을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불확실하고 위험한 연구는 그 위험성 때문에 처음부터 헌법상 보호되는 학문의 범위에서 배제하려는 시각도 있다.24)
흔히 위험한 연구결과에 대한 책임이란 것은 사실상 연구자 자신이 질 수 있거나 혹은 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의 통제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연구자의 연구결과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그러한 연구결과를 사회가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혹은 남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책임은 바로 국가에게 있는 것이다.25) 그렇기 때문에 학문의 개념에서 위험한 연구라는 이유로 이를 배제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고, 위험한 연구에 대한 결과는 연구자 개인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와 국가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26)
우리나라는 인간배아복제와 관련하여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아복제연구는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에 연구가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27) 실제로 생명과학기술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과연 기술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러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기술적으로는 가능해도 윤리적으로 또는 법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행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28) 이처럼 배아연구의 한계와 둘러싼 논쟁은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배아연구가 허용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관용이 형성되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29) 앞서 살펴본 국제적 규범 현황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이미 각국에서도 인정된 바 있다.
현재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분화와 증식의 어려움이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면 여기서 각종 성장 호르몬 등을 처리해 특정한 세포로의 분화를 유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배아줄기세포를 세포 치료에 쓰기 위해서는 균질하면서도 단일한 특정세포가 다량으로 필요한데 지금의 기술로는 쉽지가 않다.30) 둘째, 유전자의 비정상적인 발현이다. 배아줄기세포가 특정한 세포로 분화되면서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게 일부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 실험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31)
오늘날 배아복제는 인간생명의 보호시기에 관한 문제를 넘어 무엇이 인간 생명인지, 복제된 배아를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더 깊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32) 배아복제는 난치병 치료 등에 긍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명경시를 불러일으키고 인간복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윤리적 관점에서 많은 논쟁의 중심이 되어 왔다.33) 이처럼 배아줄기세포의 잠재적 가치 및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성체줄기세포 연구보다 늦게 발전하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는 환자의 면역거부 반응을 극복하여야 하는 기술적 한계 외에도 생명윤리 논쟁이 함께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된 논쟁을 살펴보면, 첫째,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인간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생명체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인간배아줄기세포연구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배아를 연구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배아의 인간존엄의 침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34) 특히 입법자들은 배아연구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여성의 난자가 물건처럼 매매될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연구를 위해 난자를 제공하게 되면 금전적인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여성의 몸이 수단화될 수 있다.35) 셋째, 배아줄기세포는 배아를 연구과정에서 파괴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체세포복제를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난자를 필요로 한다. 이에 난자 획득과정에서의 윤리적 비난이라는 부담을 필연적으로 질 수 밖에 없으며, 핵치환된 난자가 정상적으로 수정된 난자와는 달리 내부적인 유전적 결함이 발생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36) 넷째, 생명윤리법은 임신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배아생성의 수에 대하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는 난임치료의 목적으로 체외수정에 있어서도 다수의 수정란을 만들어 모체에 착상하고 난 잉여배아는 보존하다가 보존기한의 만료로 폐기하거나 연구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37) 사실 보존기간이 지난 배아의 처리 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연구목적으로 전용하는 방안과 폐기하는 방안 중에서 어느 것이 인간존엄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판단하고자 할 때,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인간존엄 논증을 ‘배아의 인간존엄’이라는 각도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38)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제한은 법률로써 또는 법률의 근거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연구의 제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명확해야 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서 법률에 규정 자체를 마련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은 법치주의의 원칙에 명백히 위배될 수 있다.39)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법률로써 분명하고 명확한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심각한 윤리적 법철학적인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인하여 배아의 생명권이나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다면 헌법질서유지를 이유로 일정한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40) 생명윤리법을 통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한다면 그 제한은 기본권의 제한으로서 마땅히 헌법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자율적 규제 이외의 법적 규제의 필요성은 항상 제기되었으며,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연구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연구자로 하여금 일정범위 안에서 자신의 활동이 적법한 것이라는 법적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생명과학자들 중에는 법적 규제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41)
생명윤리법은 생명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42)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과학기술의 개발・이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즉 서로 긴장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도 있는 두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하여 생명과학을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면,43) 그와 동시에 일정한 방식으로 -생명권에 영향을 미친다고도 볼 수 있는- 생명과학연구를 허용하는 양면적 규정을 동시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생명보호를 위한 방안과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의 근본개념에서 특히 인간의 존엄성 보장과 생명권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 문제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44)
생명윤리법은 원칙적으로 배아를 생성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임신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허용하고 있다(제23조 제1항). 또한 누구든지 금전, 재산상 이익 또는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배아, 난자 또는 정자를 제공하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안된다(제23조 제3항). 직접적인 난자 매매는 물론이며,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난자의 공유까지도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는 난자의 순수한 기증과 구별하여 이를 모두 포괄적으로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자와 난자는 상업적으로 매매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정자와 난자의 경우 기증을 통해서만 배아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45)
배아생성의료기관으로 지정받은 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하여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 동의권자로부터 배아생성의 목적에 관한 사항, 배아・난자・정자의 보존 및 폐기에 관한 사항, 잔여배아 및 잔여난자를 연구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하여 서면동의를 받아야 하며, 서면동의를 받기 전에 동의권자에게 동의내용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여야 한다(제24조 제1항 및 제2항).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구기관이 배아연구기관으로 등록하고(제29조, 제33조) 배아연구계획서를 승인받아야 한다(제30조). 배아연구계획서의 승인을 위해서는 먼저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심의를 요하고, 다음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제30조). 체세포복제배아의 연구를 법률로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극히 적은데, 우리 생명윤리법은 이를 일정 범위에서 허용하고 있다(제31조).46)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체세포복제배아를 착상하여 출산하거나 핵이 제거된 인간의 난자에 동물의 체세포핵을 이식하는 연구 혹은 이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을 착상하여 출산하는 것 등은 금지된다(제21조). 체세포복제배아 연구를 하려면, 연구목적이 희귀・난치병의 치료여야 하며, 체세포복제배아등을 생성하거나 연구하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시설 및 인력 등을 갖추고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제31조). 이러한 등록요건은 연구내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물적・인적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연구기관이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배아의 파기가 무차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47)
생명윤리법 제35조 제2항은 “제1항에 따라 배아줄기세포주를 이용하려는 자는 해당 연구계획서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당 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들은 배아단계로부터 일정한 경우에는 배아줄기세포주를 수립하거나 수입할 수 있으며, 다만 배아줄기세포를 가지고 허용되는 연구는 질병치료 등의 목적으로 제한됨을 알 수 있다. 줄기세포주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줄기세포주 등록신청서에 줄기세포주 특성 설명서, 배아줄기세포주의 수립에 사용된 잔여배아 또는 잔여난자의 연구용 이용에 관한 동의서 사본, 잔여배아 또는 잔여난자 이용 목록을 첨부하여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시행규칙 제30조 제2항).48) 따라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계획서가 요구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게 되면, 보건복지부장관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드시 승인하여야 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사항들을 심의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제7조 이하), 인간대상이나 인체유래물 연구를 수행하는 자가 소속된 교육기관・연구소 또는 병원 등도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이하). 배아줄기세포주를 수립한 자가 이를 타인에게 제공하려면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제34조 제1항). 기관위원회는 배아줄기세포주 이용기관의 기관위원회 심의결과, 제공되는 배아줄기세포주의 특성 및 수량의 적절성에 대하여 심의하여야 한다(시행규칙 제31조 제1항).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생명윤리법 제7조 제6호에 의해 잔여배아를 이용할 수 있는 연구의 종류・대상 및 범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할 수 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한 희귀・난치병의 치료 목적을 제외하고 체세포복제배아의 연구를 규제하고 있다. 그 요건은 ① 체세포복제배아를 생성하고 이를 이용하여 배아줄기세포주를 수립하는 연구로써, ②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체세포복제배아를 체외에서 이용하는 연구로써, ③ 난자이용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49) 한편, 인간대상 연구와 인체유래물 연구에 대해서 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관위원회에 연구계획서 심의를 받아야 한다.50) 따라서 줄기세포연구도 인간대상 연구와 인체유래물 연구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면 당연히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Ⅳ.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지원을 위한 방안
배아줄기세포는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 치료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 질병의 원인 규명 등 그야말로 적용범위가 너무 많아 21세기 생명공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래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다 줄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과소평가 되어 왔다. 이것은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후, 사회전반에 드리워진 냉소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그나마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지원과 관련하여, 생명윤리법은 배아줄기세포주를 등록한 자에게 배아줄기세포주의 검증 등에 든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제33조 제3항), 체세포복제배아 연구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승인에 따라 정부의 자금지원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도 일부 가능해지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제26조 제1항).51) 그러나 인체유래물은행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지원을 재량행위로 규정하고 있어(제45조), 정부의 지원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난치병 치료의 희망인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 각국의 줄기세포연구 지원 규모를 볼 때, 국내 연구비는 세계 10위권 밖이며, 정부의 지속적인 연구비의 지원이 있어야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줄기세포연구 선진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통하여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자금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자는 정부의 지속적인 연구비를 지원 받아 연구수행을 통하여 연구범위를 확장할 수 있고, 정부의 지원 하에서 얻어진 연구업적은 이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 대외적 신뢰도를 구축하여 단번에 기술이전의 선두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52) 이처럼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규제가 없다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윤리적・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심사없이 계속 수행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승인도 반드시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53)
생명윤리법에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제23조 제1항에서는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생성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배아연구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제29조에 잔여배아를 이용한 배아연구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3조부터 제35조까지 배아줄기세포주의 등록, 제공, 이용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배아줄기세포주54)를 배아줄기세포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배아줄기세포주를 수립하는 연구와 배아줄기세포주를 분양받아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배아줄기세포주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배아를 이용해야 하므로, 이 연구는 생명윤리법상 배아연구의 범주에서 규율된다. 그런데 이미 수립된 배아줄기세포주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분양받아 연구하게 되는 경우에는 직접 배아를 연구하는 것은 아니므로 생명윤리법상 배아연구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이 든다.55)
한편, 생명윤리법 제29조에서는 잔여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허용하고 있으며, 이때 연구의 목적을 희귀병이나 난치병 치료 등 의학적 목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독일 배아보호법을 근거로 생명윤리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잔여배아의 숫자를 제한하는 것을 입법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56) 또한 우리 생명윤리법에서는 배아의 연구와 보호를 같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독일은 배아의 연구를 위해서는 체세포법에서 규율을 하고 배아의 보호를 위한 것은 배아보호법에서 각각 규율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과 달리 우리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규정이 없다. 잔여배아를 이용한 연구나 체세포핵이식술에 의한 인간배아복제나 모두 그 목적은 줄기세포의 획득 및 임상적 적용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줄기세포연구 및 임상적 적용에 대하여 직접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57)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그 구성에서 특히 중립성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 생명윤리법 제7조에 따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둔다. 위원회의 구성원은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명을 포함한 16명 이상 2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이처럼 복수의 위원들로 구성되는 합의제 기구를 둔 것은 생명과학기술 분야에서 예상되는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의 과정의 투명성 확보, 합리적 해결을 위한 고도의 전문성 활용, 다양한 분야의 의견 수렴 등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통한 논란의 민주적 해결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58)
그러나 최대 20명의 위원 중 6인의 행정각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겸하고 있으며, 나머지 14인의 선출도 결국 대통령이 위촉하고 있어서 위원회가 정부 주도로 운영될 소지가 많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6인의 행정각부 장관59)이 위원회에 당연직으로 포함된 것은 생명윤리법 제7조 제1호에 따라 국가의 생명윤리 안전에 관한 정책 수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6인의 장관이 포진되어 있는 위원회에서 위원회의 중립적 활동이나, 각계 각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위원회의 성격이 국가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생명윤리에 반하지 않는 연구계획에 대한 범위 등을 설정할 전문적인 위원회인지 그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60) 또한 종교계와 여성계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반영하는 위원들은 단체나 기관의 대표로 참여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개인으로서 자신의 전문성과 윤리적 양심으로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61) 이것은 자격 조건에 대한 규정이나 기준 없이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는 점과 극소수이지만 생명윤리학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윤리와 무관한 사람들이 위촉되었다는 점에서 위원회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62)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적 구성원에 대한 규정을 정비하고 위원회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63) 이를 위해, 위원회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구성에 있어서도 행정각부 장관은 배제하여 생명윤리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타당하다.
Ⅴ. 결론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불치병 또는 난치병이라고 여겨온 질환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언젠가 이러한 질환들이 완벽하게 극복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배아줄기세포는 질병의 원인 규명,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치료제 개발, 손상된 장기 대체 등 다양한 연구에 이용되어 국가경쟁력 확보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부분의 기존 의약품은 인종별, 개인별 특성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64) 즉 이론적으로 난치병 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난치병 치료를 해결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적어도 배아줄기세포가 성체줄기세포 등 非배아줄기세포에 비하여 더 나은 치료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치료목적 연구를 위해 제공될 배아복제가 그로 말미암은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문제를 상쇄할 만큼 필수불가결하거나 과학적으로 충분히 뒷받침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증명된 바는 없다.65)
이제 생명과학기술을 둘러싼 법적・윤리적・사회적 논의는 허용이냐 금지냐의 논의로부터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로 넘어가야 할 시기이다. 즉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어떠한 절차에 의하여 규율할 것인가가 논의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특정 집단이나 특정 개인의 신념이나 믿음이 아닌 당사자들 모두 참여하는 합리적인 논의가 필수적이다.66) 그래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정부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국가경쟁력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생명윤리와 균형을 맞춘 정책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나아가 배아 및 성체줄기세포, 역분화줄기세포 등 다양한 기술 분야의 종합적인 육성 및 교류가 필요하고, 해외에 있는 한국 과학자들과 연계하여 줄기세포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