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정교분리의 원칙은 기독교라는 공통된 문화적·정신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서구의 국가들이 정교유착으로 인한 오래된 폐해에 대한 반성으로 근대에 들어서면서 채택한 원칙이다. 서구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교회(ecclesia)라는 형식으로 제도화된 종교로서 단순한 영적 권력을 넘어서는 권력장치로 작동하여 왔으며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세속적인 정치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정치권력과 끊임없는 길항관계를 유지하여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의 결과 발생한 기독교 내부의 분열로 인한 종교적·정치적 내전을 경험한 이후 서구의 근대국가는 세속적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국가와 종교의 상호불간섭의 원칙은 이념사적으로 본다면 근대의 계몽적 합리주의 사상, 즉 인간의 이성에 의해 파악할 수 없는 초월적 관념을 부정하는 사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주의의 관점에서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종교적 교리와 규범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계몽의 이념 하에 중세를 지배하던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계몽사상에 의해 추동된 서구의 근대화는 국가를 종교적인 구원이나 복음전파와 같은 초월적 목적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안전, 평화, 질서의 확보라는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는 단체로 파악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국가의 ‘세속화’로 인하여 종교는 더 이상 국가의 공적 영역에 개입할 수 없는 개인의 사적 신앙으로 ‘사사화’(私事化)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화’ 혹은 ‘사사화’라는 테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계몽사상가들은 종교는 인간의 신화적 사고에 기인한 것으로서 인간이 이러한 미몽에서 깨어나게 되면 종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였지만 최근의 세계적인 종교부흥 현상, 종교적 확신과 열정에 기초한 종교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운동 등은 종교연구자들로 하여금 세속화, 사사화라는 테제에 의문을 제기하게끔 만들었다. 이들은 근대화가 반드시 종교의 쇠퇴로 이어진다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탈세속화, 탈사사화라는 테제를 내세우면서 종교와 정치와의 관계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1) 이러한 정치영역으로의 ‘종교의 재귀’현상은 서구의 근대국가가 유지하여 왔던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한국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해방이후 헌법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명시하였지만 그동안의 헌정사를 뒤돌아 볼 때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최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정치참여 요구는 동 원칙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헌법상의 정교분리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원인 중의 하나는 헌법제정당시에 정교유착의 폐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지 법문만을 계수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헌법상의 정교분리원칙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결여된 채 단지 정치적 수사로 활용된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헌법상의 정교분리원칙의 규범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동 원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서구의 정교분리원칙이 나타나게 된 역사적·정치적·철학적 배경 및 한국사회에서의 의미 등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정교분리모델은 개별국가마다 그 역사적 맥락의 차이로 인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왔으며 따라서 한국사회의 정교분리원칙도 서구의 정교분리원칙과 다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만 한다. 즉, 한국은 서구의 기독교국가나 이슬람국가와 같이 단일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가 아니라 다종교국가이므로 한국사회에서의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함과 동시에 다수의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원칙으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특정종교가 그 종교의 제도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치적 권력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이는 타 종교의 반발을 불러 옴으로써 종교사이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이상의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우선 서구와 한국의 정교분리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정교분리로 인한 국가의 세속화 테제, 정치와 종교의 차이점 그리고 구체적인 정교분리의 내용 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헌법의 정교분리원칙의 의미를 구체화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논문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정교분리원칙을 살펴 본 이유에 대하여 첨언하자면 정교분리의 원칙이 서구의 기독교국가로부터 나온 원칙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기독교가 정치참여 요구가 가장 강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II. 정교분리의 역사
서구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는 로마제국 당시에 초기의 박해를 벗어나서 공인된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된 이래 서구의 정신적·문화적 동질성을 보장하는 토대로 자리를 잡았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국교가 되었고 교회는 제국교회가 되어 로마제국으로부터 보호와 특혜를 받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을 통하여, 즉 황제의 특별한 보호를 통하여 기독교를 제국의 보편종교로 만들었으며 그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세계의 그리스도화’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보호와 특혜는 교회가 초기 원시교회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내지 정치화되는 위험을 불러 오게 되었다.2) 기독교를 통한 하나의 정치적·종교적 통일체를 구현하려는 생각은 중세를 거치면서 세속적 권력(제권)과 영적 권력(교권)의 끊임없는 대립, 그리고 16세기경부터 나타난 종교개혁운동으로 인하여 기독교 내부의 분열이 가시화되면서 실현하기 힘든 이상이 되어 버렸다.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항하여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은 기독교의 통일을 파괴하였고 그 결과 세속군주들에 대한 교황의 절대적 지배권을 약화시킴으로써 각 국가의 군주권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주도하였던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지도자들도 카톨릭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종파적 교리의 정당성에 도전을 하던 세력들을 억압하기 위하여 세속적 권력의 개입을 요청하거나 스스로 정치권력화하기도 하였다.3) 이와 같이 16세기경부터 유럽에서는 프로테스탄트파와 교황지지파, 그리고 정통신앙과 이단 등의 대립된 종파들이 세속적 권력을 수단으로 하여 타종파의 자유로운 종교활동의 권리를 박탈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유럽에서 백년이상 이어진 종교전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6-7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의 유럽국가들은 종교의 진리를 둘러싸고 참혹한 내전상태에 돌입하였으며 이러한 진리투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권위와 구속력을 가진 최종적인 결정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4) 유럽은 이러한 사태를 종결시키기 위하여 30년전쟁(1618-1648) 이후,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을 체결하고 개신교 국가에 종교선택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5) 그러나 세속적인 국가권력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종교와 정치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차단되지는 못하였다.
정교분리원칙은 17-8세기경에 등장한 계몽주의 사상에 의하여 그 사상적 기반을 얻게 된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신과 낙관에 기초한 계몽주의자들은 종교에 있어서도 이성에 기초한 이신론(理神論), 자연종교, 이성종교, 더 나아가 무신론 등을 주장하면서 신앙의 자유, 종교적 관용, 교권으로부터의 해방 등을 요구하였다.6) 그리고 이러한 계몽사상을 기초로 한 근대혁명은 제도적으로 국가를 종교로부터 해방된 존재로 확정하고자 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국가는 종교적 색채가 배제된 순수한 사회체(corps social)로 규정되었다. 즉, 국가는 개인의 자연적 권리와 자유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적 결사체이며 그 정당성은 더 이상 역사적 혹은 종교적 근거에서 도출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동 선언문 제10조7)와 뒤 이어 제정된 1791년 헌법에서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8) 국가는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는 종교가 국가의 영역으로부터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미국에서도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 제16조에서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고9), 1791년의 수정헌법 제1조에서 “연방의회는 국교를 수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정교분리의 원칙과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문화하였다. 이는 국가와 교회 사이에 ‘분리의 장벽(a wall of separation)’10)을 세움으로써 종교적으로 가장 다원화된 국가의 시민적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일찍이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화의에서 종교분쟁을 해결하고자 ‘cuius regio, eius religio’(영주의 종교가 그 영지의 종교)의 원칙을 도입하였으나 이 원칙은 개인의 신앙선택의 자유를 영주가 제한할 수 있게 하였으며,11) 근대시민혁명기인 18세기말부터 비로소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프로이센의 1788년의 종교칙령과 1794년의 프로이센 일반란트법(제1-6조 II-11)은 개인에 대한 완전한 신앙과 양심의 자유, 공인된 종교단체(루터교회, 칼빈교회, 카톨릭교회)에 대하여 공적 세계에서의 종교활동을 보장하였고, 1849년 바울교회헌법 제144조-147조에서 그리고 1850년의 프로이센헌법 제12조에서 완전한 신앙의 자유와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였다.12)
그러나 시민혁명기에 확립된 정교분리의 원칙과 종교의 자유는 뒤이어 나타난 왕정복고기에는 기독교 국가의 이념이 재등장함으로써 위기를 겪기도 하였고, 이후에도 예컨대 19세기말 독일의 비스마르크시대의 소위 ‘문화투쟁’으로 명명되는 카톨릭에 대한 억압정책이라든지 1905년 프랑스의 세속주의적·반교권주의적인 정교분리법제정 등으로 인한 국가와 종교 사이의 긴장관계는 계속적으로 유지되어 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타종교를 가진 이민자들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서구사회의 문화적·종교적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국가가 종교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13)
한국에서 정교분리에 관한 담론은 조선 말기에 기독교라는 서양종교가 들어오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세기말 20세기초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국교제도 금지와 교파교회의 전통14)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종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종교의 정치개입금지를 강조하였다. 이들은 신앙의 개인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와 정치 사이에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당시 조선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 선교가 현실정치와 연결되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교분리의 강조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점점 강화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정책과 부합되게 되었다.15) 즉, 일제 강점기하에서 정교분리의 담론은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선교 및 교회의 존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제의 입장에서는 교회의 항일적 저항운동을 차단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정교분리를 통하여 민족주의와 기독교의 연결을 차단하려는 선교사 및 교회지도자들의 노력16)은 일제 강점기 하에서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민족주의적 저항운동17)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특히 일제말기에 일본이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국가의 지시와 통제하에 들어감에 따라 종교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보장될 수 없었으며18) 그 결과 정교분리는 사실상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일제하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일본이라는 현실적 국가와 한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 사이에서 갈등을 겪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인들에게 복종의 신학을 내면화할 것을 요구하는 원칙으로서 교회의 존립을 위하여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으나 이것도 식민지상황에서는 일본의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1948년 대한민국 헌법에서 처음으로 명문화 되었다. 동 헌법은 제12조에서 “① 모든 국민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②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고 규정하였다. 이 조항은 미국헌법상의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19) 그런데 헌법기초의원들은 ‘국교부인과 정교분리의 원칙’을 규정한 제12조 제2항을 당시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역사적 연문(衍文)’20)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수정안들이 제출되었다. 이들 의원들은 국교부인과 정교분리의 원칙의 도입이 종교의 자유를 제압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표명하면서21) 동 조항을 삭제하고 더 나아가서 국가가 종교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조항을 삽입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하였다.22) 이에 대하여 원안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의견도 상당수 있었는데23) 결과적으로 수정안들은 부결되고 원안이 그대로 가결되었다. 최초헌법의 종교조항에 대한 헌법기초의원과 국회의원의 논의를 살펴보면 대부분 정교분리의 의미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없었음을 보여 준다. 수정안을 제안한 의원들은 정교분리조항이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훼손할 의도가 배후에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고 수정안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기독교계 국회의원들이 특정 종교에 대한 국교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정교분리 조항의 삭제를 반대하였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의미에 대한 인식부족은 우리의 과거역사가 서구의 정교분리원칙이 도입되게 된 역사적 배경, 즉 정교유착으로 인한 정치적 내전에 대한 경험을 가지지 않았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최초 헌법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헌정사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쉽게 지켜질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제1공화국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개신교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으로 인하여 개신교와 이승만 정권의 유착관계가 매우 심하였으나 이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제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24) 한편, 군사정권이 출범한 이후 기독교계내의 소위 보수진영은 정권의 반공이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유신체제의 정당화에 앞장서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교세의 급속적인 증가 등의 반대급부를 얻어 내기도 하였다.25) 이 당시 보수 기독교진영들은 정교분리를 기본적으로 현실 국가권력에 복종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그 성서적 근거는 로마서 13장의 권세에 복종하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하는 것이었다.26) 이러한 정교분리담론은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진보적 기독교 진영27)에 대한 비판의 담론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이들은 기독교 진보진영의 민주화 운동을 정교분리원칙의 위반으로 간주하였고 반대로 군사정권을 적극 옹호하는 자신들의 활동을 정교분리원칙의 이름하에 정당화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민주화 이전의 군사정권하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계가 정부로부터 종교조직의 ‘제도적 이익’을 보호·확대하기 위하여, 혹은 반대로 정부가 종교계로부터의 정치적 비판과 저항을 차단하기 위한 매우 유용한 수사학적 구호로 활용되어 왔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 정부이후 일부 보수 기독교진영에서 그동안의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입장을 비판하면서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정교분리의 원래 의미는 교회가 정치를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교회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정교분리에 관한 교회법과 이론은 중세적 종교유착에 관한 반대이론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교회가 정치에 적극 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28) 특히 이들은 개신교의 뿌리 깊은 반공주의29)를 다시 한 번 표방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주한미군 철수 반대 운동 등을 하면서 보수단체들과 공동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였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래로 구국기도회 등의 대규모 집회를 계속적으로 열고 있으며 동시에 2004년부터는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제도권 정치영역으로의 진입을 계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30)
이와 같이 해방이후 한국헌정사에서 종교의 정치참여는 때로는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혹은 반대로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그 과정 속에서 헌법상의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하에서는 정교분리원칙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국가의 ‘세속화’라는 테제를 통하여 살펴보고, 정치와 종교의 차이점 그리고 정교분리의 원칙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Ⅲ. 정교분리원칙과 국가의 ‘세속화’
정교분리원칙은 크게 보면 계몽주의의 대두와 함께 서구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정치, 법, 학문 등의 영역이 종교적 기구와 규범으로부터 분리 내지 자율화되는 소위 ‘세속화’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이러한 세속화과정을 통하여 근대국가는 종교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며 근대국가는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인 국가, 즉 무신론적 국가가 되었다. 종교와의 관계에서 국가의 세속화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세속화된 국가는 자신의 권력, 권위 및 근거를 더 이상 초월적인 신성함에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즉, 세속화된 근대국가는 그 정치질서의 정당성을 과거와 같이 종교적인 신성함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하였다. 세속국가의 목적과 기초에 관하여 체계적인 이론을 수립한 홉스에 의하면 국가는 외적인 평화와 질서를 보장하는 주권적 결정통일체이고, 주권자의 의무는 시민들의 행복(felicitas)를 보장하는 것이며 이는 “1)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방어; 2) 내부적 평화의 보존; 3) 공공의 안전과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의 부의 획득; 4) 순수한 자유의 완전한 향유”31)를 보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국가의 목적은 종교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세속적인 목적인 시민적 삶의 보존조건의 보장에 국한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국가는 초월적·윤리적 목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안전, 유지, 국민의 복지라는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파악되기 시작하였으며 세속화되기 시작한 근대초기의 국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고유한 현실적이고 합목적적인 합리성, 즉 국가이성(Staatsräson)의 준칙에 따라서 통치하기 시작하였다.32) 이러한 국가고유의 합리성의 발견은 중세의 정치질서를 지배하고 있었던 우주론적 신학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둘째, 세속화된 국가는 개인의 신앙, 양심 등과 같은 종교적·도덕적 판단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개인의 신앙 및 세계관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세계관적으로 중립적인 국가를 말한다. 세속국가는 이러한 ‘중립성의 원칙’을 통하여 절대적인 타당성을 주장하는 종교적 진리에 관한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에 관한 결정은 국가의 몫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진다. 세속국가는 절대적인 진리문제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직 시민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공공질서(ordre public)를 산출하는 과제를 가질 뿐이다. 아울러 세속국가는 “종교적 진리의 문제를 배제함으로써 대립되는 종교의 공존이라는 목적”33)을 달성하고자 한다.
셋째. 세속국가는 신을 가지지 않는다. 세속국가는 공인종교를 부정함으로써 종교로부터 해방되었으며34) 종교는 국가영역에서 시민사회영역으로 이동되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국가의 공인종교의 부정과 이로 인한 ‘종교의 사사화’(Privitalisierung der Religion)는 종교의 후퇴나 소멸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속국가에서의 종교의 사사화는 개인과 종교단체가 그 동안의 국가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종교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한편, 종교의 사사화는 종교를 개인적 내면의 신앙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종교를 공적 영역으로부터 추방시킨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사사화는 단지 “다양한 종파에 대한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의미”35)하는 것이며, 공적 공간에서의 종교적 담론과 행위의 자유를 금지하는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또한 종교의 사사화는 개인과 종교단체의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종교와 정치권력의 유착을 끊어 내고 정치권력을 ‘탈신성화’함으로써 종교가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동하는 것을 막게 하였다.
넷째, 세속국가는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누가 결정하는가’(Quis iudicabit)라는 서구의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최종적인 결정권한, 즉 ‘주권’을 가지게 되었다. 세속국가에서는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자신의 고유한 판단에 따라 종교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지만 그 범위와 한계는 국가의 최종적인 해석 및 결정권한을 통하여 정해진다. 즉, 어떠한 종교를 합법적 종교로 인정할 것이냐, 또한 종교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보호를 할 것이냐 등의 문제들에 대하여 국가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표제화의 수많은 작은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는 거대한 인간(magnus homo)은 검과 주교의 지팡이를 양 손에 들고 도시 위에 서 있다. 이것은 “정치와 신학을 동시에 관장하는 국가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이다.”36)
다섯째, 세속국가는 종교적 진리나 종교적 권위가 아니라 법에 의하여 통치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국가의 법은 이전의 전통적인 종교적·도덕적 기초로부터 해방된 세속적이며 합리적인 근거를 확보하여야만 하였다.37) 세속국가에서의 법의 효력근거는 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국가적 ‘권위’이며(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 세속국가의 “법은 인간과 신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간과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대상으로 한다. 법은 인간의 영원한 구원이나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외적 질서의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법의 세계는 도덕과 진리의 질서가 아니라 평화와 자유의 질서이다.”38) 따라서 세속국가의 법은 개인의 신앙이나 양심과 같은 내적인 영역에 개입하지 않으며, 개인의 외부적 행위가 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위협할 경우에만 개입한다.
Ⅳ. 정치와 종교의 차이점
정교분리의 원칙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속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원칙이다. 그런데 세속세계의 평화를 위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정치와 종교는 그 추구하는 목적과 방법 등에 있어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양자가 융합될 경우에는 세속세계의 혼란을 촉발시킴으로써 세속세계의 평화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종교와 정치는 그 추구하는 목적에 있어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본질적 목적은 개인의 구원, 도덕적 완성 등의 초월적·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데 반하여 정치는 현세의 인간사회의 평화, 안전, 질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또한, 종교적 언어와 세속적·정치적 언어는 서로 다른 문법을 가진다. 종교는 자신의 도그마 내지 교리가 절대적 진리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절대적 진리에 관한 종교적 언어는 사실에 관한 경험적 진술도 아니며 이성에 의해 그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분석적 진술도 아니다. 따라서 종교적 명제에 관한 진술은 입증할 수도 없고 따라서 반박할 수도 없는 것이다.39) 이와 같이 종교적 교리의 진리여부는 이성의 관할권 밖에 있는 믿음의 대상이다.40) 이에 반하여 정치적 언어는 설득과 협상의 언어로서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진리여부를 가지고 다투는 언어가 아니다. 정치영역은 다양한 가치와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으로서 정치영역에서 자신의 가치와 이익을 관철하려는 자의 언술은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여야만 한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가치를 절대화하면서 다른 가치를 허위로 간주하고 이를 부정한다면 정치는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정치 영역에서의 진리에 대한 확신은 독재와 억압적인 정체를 탄생시키는 계기로 작동하였으며, 따라서 민주적이고 다원화된 정치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치영역에서의 절대적 진리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
한편, 종교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진리를 추구하나 정치는 다양한 이념을 추구한다. 정치의 이념은 가변적인 것이며 따라서 정치적 이념변화에 따라 정치질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의 정치질서, 중세의 정치질서, 근대의 민주적 정치질서는 각각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종교도 각 시대의 정치질서와 정치적 이념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분파들이 발생하여 왔지만 근본적으로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 이러한 종교의 초월성과 보편성이라는 특징은 종교가 현실적으로 존립할 수 있게 만드는 인적·물적 토대인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종교는 초월적·보편적 진리를 주장하면서 특정한 국민과 국가를 초월하는 정신적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에 반하여 국가는 주권에 의해 획정된 일정한 공간위에서 그 구성원인 국민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적 공동체를 지향한다. 따라서 종교의 보편주의주장은 국가의 정체성과 충돌할 가능성을 발생시킨다. 기독교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서구와 달리 다종교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특정종교가 그 종교적 신념과 교리를 정치적 영역에 투사하게 된다면 국가의 정체성에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현실적으로 제도로서의 종교는 그 종교가 터를 잡고 있는 국가라는 틀 속에서만 존립이 가능하다.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종교제도도 국가라는 제도가 없다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은 일제식민지를 통하여 이미 경험한 바 있다.
Ⅴ. 정교분리원칙의 구체적 내용
정교분리의 원칙이란 용어는 우리 헌법이 제20조 제2항에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유래한 용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조항에서 해석상 특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단어는 ‘분리’라는 단어이다. 헌법 문언상 분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경우는 드문 예에 해당하는데 비교적 엄격한 정교분리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헌법에서 분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는 않다. 분리란 ‘서로 나누어 떨어지게 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정교분리에서의 분리를 국가와 종교 사이의 상호작용을 완전히 부정하는 의미로 엄격하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 내의 다양한 영역들은 국가와 필연적으로 상호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고 종교영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국가와 종교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원칙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역사적으로 본다면 특정한 종교나 교파에 대한 국가의 특권부여를 금지하기 위한 원칙으로 나타난 것이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그 국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나 종파, 그리고 무신론자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은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나 수동적인 관용을 의미하기 보다는 종교적으로 대립된 집단들을 포괄하여 그 대립성을 상대화함으로써 국가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립성’이란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다. 종교가 정치영역에 개입하여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세속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가와 종교의 쌍방향적 관점, 즉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과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우선 국가로 하여금 종교적 중립성을 요구한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종교문제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여서는 아니 되며(불개입 내지 비간섭의 원칙) 더 나아가서 특정종교나 종파를 우대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해서는 아니 된다. 이는 국가의 중립의무에서 도출되는 ‘공평성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특정종교에 대한 우대나 차별조치는 정교분리의 목적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한 국가내의 다양한 종교 내지 종파의 존립, 즉 종교적 다원주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이나 법령은 단지 ‘세속적’ 목적을 가져야만 하고 종교를 장려하거나 반대로 억제하려는 의도나 효과를 가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41) 더 나아가서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보호하거나 우대하는 조치도 무종교의 자유를 고려하면 헌법이 규정하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원칙에 어긋난다.”42) 이와 관련하여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종교단체 및 종교인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세제혜택들은 정교분리원칙의 관점에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43)
또한 국가기관의 결정은 종교적 근거가 아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속적 근거에 기초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입법은 세속적 근거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만 하며, 공직자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적 편향성을 보이는 발언이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44) 법관의 경우에도 판결에 있어서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의 특정한 종교적 견해를 자신의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한편, 국가의 종교적 중립의무는 국가가 특정종교를 선호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금지시킨다. 따라서 국가의 상징물이라고 볼 수 있는 국기, 국가(國歌) 등에 종교적 상징물을 채택하는 것은 금지되며 국가적 의례에 있어서 특정 종교의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또한 국·공립학교에서의 특정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은 금지된다.45)
그리고 국가의 공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는 종교적 중립의무를 지켜야 한다. 따라서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종교적 차별행위를 하거나 자신의 지시를 받는 하급자에게 그 차별행위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금지된다.46) 더 나아가서 공직자는 하급자에게 특정종교를 신봉하거나, 종교행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할 수 없다. 다른 한편,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은 국가로 하여금 종교단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할 것을 요청한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종교단체 내부의 의사결정이나 행위에 대하여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자제하여야만 한다.47)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의무와 함께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를 종교인의 모든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적 공간에서의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자신의 특수한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비종교인도 공감할 수 있는 합당한(reasonable) 근거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세부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사항들을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성직자의 공직참여문제이다. 일반평신도의 경우에 국가공직을 맡는 것은 헌법상의 공무담임권의 보장으로 인하여 문제가 될 소지가 없으나 종교단체의 직업적 성직자가 공직을 겸직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상 금지되어야만 한다. 이는 종교단체의 내부규범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카톨릭의 ‘교회법전’ 제285조 제3항에 의하면 “성직자들은 국가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맡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동법전 제287조 제2항은 “그들(성직자들-인용자)은 정당이나 노동조합 지도층에서 능동적 역할을 맡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교리와 장전’(2017) 제7편 재판법 제4조 제6항에 의하면 교역자가 “정당에 가입하거나 또는 직접 정치활동을 하였을 때”에는 벌칙(견책 또는 근신)을 부과하고 있다. 성직자의 공직참여금지와 관련하여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 당시 도입한 군종제도이다. 현재 군종제도에서 군종은 성직자이면서 동시에 군장교라는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의해 도출되는 성직자의 공직참여금지라는 원칙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군종제도의 위헌의심을 제거하려면 군종요원들을 민간인으로 대체하여야만 할 것이다.48)
둘째, ‘종교단체’가 특정정당이나 공직 선거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금지되어야만 한다. 종교단체는 현재 비영리단체로서 정부로부터 각종 세제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는 그 단체의 성격이 공익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단체의 특정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는 이러한 공익적 목적을 넘어서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는 행위이므로 이는 금지되어야만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54년의 존슨 수정법령에 의하면 교회를 비롯한 면세혜택을 받는 모든 비정부단체가 특정 공직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면세 혜택이 박탈된다.49)
셋째, 종교정당의 허용여부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종교정당은 해방정국에 잠시 출현하였으나 그 이후 반세기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특히 개신교에서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기 위한 기독교정당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50) 종교정당은 ‘특수한 종교적 이념과 세계관을 현실세계에 관철시키기 위하여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려는 정당’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51) 기독교라는 공통된 정신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서구의 경우 기독교이념에 기초한 정당은 쉽게 용인될 수 있었으나 한국과 같은 다종교국가에서 특정종교가 위의 의미에서의 종교정당을 창설하는 것을 용인하게 되면 이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으며, 또한 타종교의 종교정당의 창설을 유발함으로써 다수의 종교정당이 출현하여 종교 간의 정치적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다. 종교의 정치세력화는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항상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종교정당의 창설은 오히려 종교의 권위와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종교정당 찬성론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52)
종교의 자유는 정교분리의 원칙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정교분리의 원칙은 정교유착으로 인한 세속적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타난 원칙이다. 국가는 자신의 질서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종교에 대하여 분리의 벽을 쌓음으로써 스스로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 무신론적 국가가 되고자 하였다. 동시에 국가는 관용의 원칙을 통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다양한 종교 내지 종파의 병존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의 자유의 근거가 된 관용의 원칙은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세속질서의 안전과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원칙이다. 즉, “관용의 원칙은 종교적 논거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질서와 관련된 정치적 논거이다.”53) 따라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이 도입되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설명이라고 볼 수 없다. 정교분리원칙의 도입목적은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세속적 질서와 평화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도입된 원칙이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정교분리원칙과 종교의 자유를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볼 수는 없다. 정교분리의 원칙과 종교의 자유는 논리적으로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정교분리의 원칙을 도입하지 않는 국가의 경우에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다.54) 반대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공적 공간에서의 종교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55)
종교의 자유는 적극적 종교의 자유와 소극적 종교의 자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적극적 종교의 자유는 신앙을 가질 자유, 신앙을 표현할 자유, 신앙에 따른 행위를 할 자유를 말하며 소극적 종교의 자유는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 신앙을 고백하지 않을 자유, 종교단체로부터 탈퇴할 자유,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를 거부할 자유 등을 말한다.56) 그런데 종교인이 적극적 종교의 자유에서 도출되는 신앙에 따른 행위의 자유를 정치영역에까지 확대시키게 되면 헌법상의 정교분리의 원칙과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물론 종교인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인의 정치적 권리는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인하여 일반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적 교리와 신념을 사적 공간이 아닌 정치적 공간에 투사하는 것을 자제하여야만 하며, 정치적 문제에서 종교인은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기초하여 공공선을 지향하는 ‘공적 이성’(public reason)57)을 사용하여야만 한다. 또한 종교의 자유는 입헌국가에서 헌법의 틀 내에서만 허용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는 다른 시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헌법내재적 한계를 가진다. 예를 들면 종교적 행위가 타인의 종교선택 및 무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든지, 강제헌금을 요구한다든지, 맹세나 서약 등으로 종교의식에의 강제참여를 요구하는 것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경우 이는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이를 종교적 자유의 행사로 무조건 정당화할 수는 없다.58) 더 나아가서 종교의 자유도 다른 자유와 마찬가지로 헌법상의 기본권제한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59)
Ⅵ. 맺는 말
현실세계의 경험적 삶을 초월하는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은 사라질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세속적 관심을 실현하기 위한 권력을 획득하려는 인간의 정치적 본능도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양자가 결합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종교는 우선 자신의 제도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정치세계에 개입한다. 종교는 교세의 확대를 위하여 정치권력의 보호와 지원을 필요로 하므로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에 협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를 탄압하는 정치권력에 저항하기도 한다. 또는 종교의 공공성,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불의의 정치권력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가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세속세계를 종교적 신념과 교리에 기초한 세계로 변혁시키고자 하기도 한다. 반대로 정치세계에서는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혹은 정치적 의제를 정당화하고 관철시킬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종교가 정치권력과 맺는 동맹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이러한 정교유착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하여 도입된 원칙이다. 그러나 종교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이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운동은 이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세속세계의 평화를 위한 정교분리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채택하는 국가들은 개별국가의 특수한 역사적·정치적 상황의 차이로 인하여 그 엄격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으며 개별국가마다 그 국가에 합당한 정교분리모델을 찾으려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대한민국도 한국사회에 적합한 정교분리모델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서구사회와 달리 다종교국가이므로 서구의 정교분리모델을 참조는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선 한국에서의 정교분리는 다원주의모델에 기초하여야만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다양한 종교와 종파 그리고 불신론자가 공존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종교적 다원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만 한다. 즉, 국가는 종교일반 그리고 특정종교에 대한 편향적인 입법적·행정적·사법적 조치를 취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국가의 종교적 중립의무와 함께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각이 되지 않았던 종교의 정치적 중립의무도 강조되어야만 한다. 특히 직업적 성직자나 종교단체가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는 발언이나 행위를 통하여 ‘제도화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야만 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근원적으로 본다면 종교가 정치세력화하여 발생하는 폐해를 막기 위하여 도입된 원칙이다. 종교가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자신의 절대적 진리를 세속세계에 관철하려고 할 때 그 결과는 세속세계의 ‘치리’(治理)가 아니라 오히려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종교가 정치권력과 연대를 맺게 된다면 그 종교는 정치권력이 야기시키는 적대감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종교에 대한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게끔 만든다. 종교는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종교가 그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에는 정치권력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정치참여를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