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법

H.L.A.하트의 형벌이론에 관한 일 고찰

안준홍 *
Junhong Ahn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가천대학교 법학과 부교수
*Associate Professor, Gachon University

© Copyright 2020,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10, 2020; Revised: Oct 27, 2020; Accepted: Oct 28, 2020

Published Online: Oct 31, 2020

국문초록

이 연구는 하트-데블린 논쟁에서 하트가 전개한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에서 비롯하는 몇 가지 의문을 풀어보고자 그의 형벌이론을 검토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그의 형벌이론이 그의 법일반이론 및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과 어떻게 어울리거나 어긋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하트는 『형벌과 책임(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에서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문제와 형벌을 배분하는 문제를 구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형벌 일반은 해악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공리주의적 목표로 정당화하고, 형벌 배분에서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공리주의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형벌 배분에서 공리주의를 제한하는 목표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현대 문명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관념과 정의의 일반원칙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고한 사람을 벌하지 않는 것, 야만적이거나 잔인한 형벌 금지, 범죄의 도덕적 경중에 따라서 형벌을 과할 것, 책임능력이 있는 사람만 처벌할 것, 법을 준수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형벌을 감경할 것, 비슷한 사안은 비슷하게 다룰 것 등을 형벌 배분원리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하트의 형벌이론은 ‘선택하는 존재’로서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면에서 그의 법일반이론 및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가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표로 응보를 전적으로 배척하고 사회보호라는 공리주의적 목표를 제시한 것은 그의 형벌이론 안에서 뿐 아니라 법일반이론 및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그의 이론과는 잘 맞지 않아 보인다.

Abstract

This study reviews H.L.A. Hart’s theory of punishment to solve several questions arising from his theory of normative relationship between law and morality in the Hart-Devlin debate. And based on this, it examines how his theory of punishment fits with his general theory of law and his theory of the normative relationship between law and morality.

Hart argued in "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that there should be a seperate approach to the questions of the general justifying aim of the system of punishment and the distribution of punishment. Further, he argued that punishment in general should be justified as a utilitarian goal to protect society from harm, and that utilitarianism needs to be restricted for various purposes in the distribution of punishment. The goals of restricting utilitarianism in the distribution of punishment are to protect individual freedom and to respect the normal conception of morality in modern civilized society and the general principles of justice. Based on this he suggested the following requests as limiting principles in the distribution of punishment; innocent people should not be punished, brutal or cruel punishment should be prohibited, the severity of punishment should reflect the moral gravity of offences, only those who are capable of responsibility are punishable, punishment for those who have special difficulties in complying with the law should be mitigated, and similar matters should be treated similarly.

Hart's theory of punishment goes well with his general theory of law and his theory of the normative relationship between law and morality in that it values highly the freedom of the individual as a ‘choosing being’. However, his suggestion of utilitarian goal of social protection for justification of punishment in general, while thoroughly rejecting retributive theories, does not seem to fit well with his general theory of law and his theory of the normative relationship between law and morality.

Keywords: H.L.A.하트; 형벌; 책임; 공리주의; 자유주의
Keywords: H.L.A. Hart; Punishment; Responsibility; Utilitarianism; Liberalism

Ⅰ. 서론

H.L.A.하트(H.L.A.Hart, 1907-1992)는 현대의 영미 법철학, 나아가 세계 법철학의 지형을 일신한 탁월한 법철학자이다. 오스틴(John Austin, 1790-1859) 이래 오래도록 정체되어 있던 ‘명령설’ 중심의 영미권 법실증주의 철학은 그를 만나서 법을 ‘다양한 규칙들로 이루어진 체계’로 설명하는 진일보를 이루었고, 이후 법철학은 그에 동조하든 아니든 그의 법이론을 발판으로 삼아서만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하트의 학문여정은 여러 유명한 논쟁으로 점철된 것이기도 하였다. 법의 속성에 관한 풀러(Lon L. Fuller, 1902-1978), 드워킨(Ronald Dworkin, 1931-2013)과의 논쟁,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데블린(Patrick Devlin, 1905-1992)과의 논쟁이 대표적이고, 그의 학문과 세계 법철학의 수준은 그 논쟁들을 거치면서 한층 발전할 수 있었다.

하트의 활약은 좁은 의미의 법철학에 그치지 않았고, 개별 법학과 관련해서는 특히 형벌이론을 중심으로 형법학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하지만 그의 형벌이론에 관한 국내의 연구가 아직 그리 활발하거나 풍성해 보이지는 않는다.2) 법철학계와 형법학계 양쪽 다 조심스러웠던 결과일 수 있겠고, 한국의 형법과 형법학이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것도 원인의 하나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중에 여기서 하트가 범죄와 형벌에 관하여 전개한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단이나마 살펴보고자 용기를 낸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관심이 계기가 되었다. 하나는 법과 도덕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하트의 이론을 보면서 드는 몇 가지 의문을 풀어보고 싶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하트의 형벌이론과 분석적 법이론, 그리고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 사이의 연관을 살펴보고 싶어서이다. 뒤의 관심은 세기의 법철학자 하트가 전개한 여러 분야의 이론들이 서로 어떻게 어울리는지 또는 그 사이에 잘 맞지 않는 점은 없는지 검토해서 그의 법이론을 그만큼 넓고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한다. 앞의 관심에 대하여는 조금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트-데블린 논쟁은 법철학의 주된 문제 중 하나인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하여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 학계에서도 진작부터 관심을 가져왔다.3) 그리고 울펀든(J. Wolfenden)이 이끈 영국의 “동성애범죄와 성매매에 관한 위원회(Committee on Homosexual Offences and Prostitution)”가 1957년에 제출한 보고서(“울펀든 보고서”)가 그 논쟁의 계기가 된 사정도 잘 알려져 있다.4) 그런데 하트-데블린 논쟁과 울펀든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하트의 형벌이론에 관심이 생긴다.

첫째, 하트와 데블린의 논쟁은 법 특히 형법이 관여할 수 있는 행위의 ‘영역’ 또는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데블린은 사회의 관행도덕에 위반하는 행위를 형법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5) 하트는 J.S.밀(J.S.Mill)의 해악원칙(Harm Principle)을 기본적으로 지지하면서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거나 피해자가 없는 행위’와 ‘사회도덕에서 보편적이고 필수적이지 않은 영역’은 형법이 관여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역이라고 주장하였다.6) 그리고 울펀든 위원회는 “공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사적인 도덕에 형법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울펀든 원칙)”을 자신들의 활동지침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죄와 벌’을 다루는 형법에서 어떤 행위를 ‘죄’로 취급할지가 그 논쟁의 관건이었고, 하트와 데블린은 개인의 자유가 소중하다는 점을 공통분모로 삼으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범죄화의 ‘범위’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범죄자를 ‘어떻게 얼마나 처벌할지’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는데 이는 두 사람의 논쟁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형벌이론에 관심이 가고, 이런 관심은 다음의 사정 때문에 하트 쪽에 더 크게 생겨난다.

데블린은 범죄화의 범위와 관련해서,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일반적인 비난의 정도가 그 행위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때 참을 수 없을 정도여야 형법으로 규율할 수 있고,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며, 법은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에 관여해야 하고, 법이라고 하는 도구와 그런 도구를 운용하는 기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등의 지침을 제시하였다.7) 그리고 어떤 행위를 범죄로 다룰지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을 어느 정도로 할지가 분리될 수 없는 문제들이라고 주장하였다.8) 그러니까 위의 지침들은 범죄에 대한 처벌의 정도를 얼마간 시사한다고 하겠다.9) 반면에 데블린과의 논쟁에서 이 문제에 관한 하트의 생각은 위와 같은 법도덕주의자들의 견해가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율할지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 한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어떤 행위를 범죄로 금지할지는 그 행위의 해악에 따라서 정하고 그에 대한 형벌의 양은 그 행위자가 도덕적으로 사악한 정도를 고려해서 결정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 말고는 따로 자세하게 논한 바를 찾기가 어렵다.10) 게다가 형벌에 관한 하트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는 다음의 사정 때문에 증폭된다. 하트는 “공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사적인 도덕에 형법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울펀든 위원회의 원칙을 기본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런데 울펀든 위원회는 그 원칙을 적용해서 성판매여성들이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행위가 공중(公衆)을 불쾌하게 만드는 공공소란행위이기 때문에 형법으로 금지해 마땅하다고 보고, 그런 다음에는 “목적달성에 필요한가” 하는 관심에 추동되어서 기존에 없던 구금형을 도입하는 등 그들을 길거리에서 내쫓기 위해 필요해 보이는 강압적 조치들을 알뜰하게 모색해서 권고하였다.11) 그러니 외견상 자유주의적으로 보이는 울펀든 원칙이나 자유주의에 입각한 하트의 범죄화 원칙에 따르더라도, 일단 어떤 행위가 범죄로 규율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형벌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박탈할 정도로 가혹하게 부과될 위험이 있지 않은지가 문제되고 자유주의자 하트가 이런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제어하려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둘째, 하트의 형벌이론에 대한 관심은 그가 데블린과의 논쟁에서 펼친 여러 논변들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평가할 필요에서도 생겨난다. 하트는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자신의 주저(主著)라 할 수 있는 『법, 자유, 도덕(Law, Liberty, and Morality)』 에서 데블린의 법도덕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개진하였고, 그가 다른 저작들에서 보인 섬세한 분석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제시된 논거들이 다 자명하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아니고, 특히 다음과 같은 논거들에 관하여는 그의 형벌이론을 살펴보면서 비판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이미 위에서 보았다. 어떤 범죄나 범죄자가 도덕적으로 나쁜 정도가 그에 대한 적절한 형벌의 정도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이니까 형법의 기능은 사회도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는 법도덕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율할지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비판하면서 범죄화 여부는 해당 행위가 해악을 발생하는가에 따라서 결정하고, 처벌의 정도는 해당 범죄가 도덕적으로 나쁜 정도를 고려하여 결정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 부분이다.12) 과연 어떤 행위를 범죄로 정할지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의 정도를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또, 어떤 행위가 도덕규칙에 위배될 뿐이고 그로 인한 해악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도 그런 행위를 한 사람에게 응보로서 벌을 하자고 하는 것은 부도덕이라는 악(惡)에 형벌이라는 고통의 악(惡)을 더하면 도덕적 선(善)이 만들어진다고 하는, 그러니까 검은 것 두 개를 합하면 흰 것이 된다고 하는 설득력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한 대목도 평가가 쉽지 않은 논변이다.13) 형벌의 정당화는 과거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형벌이 가져올 미래의 결과에 기초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되는데, 이런 논변에 대한 평가는 하트의 형벌이론 전반을 개관한 다음에라야 더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14)

이렇게 하트-데블린 논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하는, 하트의 형벌이론에 관한 위와 같은 관심을 충족하기에는 아직 국내의 관련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여기서 형벌이론에 관한 하트의 주저인 『형벌과 책임(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Oxford University Press, 1968)』 를 개관해서 위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파악한 하트의 형벌이론을 그가 『법, 도덕, 자유(Law, Liberty, and Morality,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3)』 에서 전개한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 그리고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 Oxford University Press, 1961)에서 제시한 분석적 법일반이론에 비추어서 보고, 그 사이의 연관과 혹시 있을지 모를 서로 잘 맞지 않는 지점들을 찾아봄으로써 하트의 법이론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자 한다.

Ⅱ. 하트의 형벌이론

여기서 하트의 형벌이론을 살펴보기 위하여 개관할 『형벌과 책임(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Oxford University Press, 1968)』 은 1957년부터 1967년까지 그가 형법과 형벌에 관하여 행한 강연과 출판한 논문들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이 시기는 그와 데블린 사이에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펼쳐진 시기와 대략 겹친다.15) 하트 스스로 그 글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하였다고 하기도 하지만,16) 그가 제시한 형벌이론의 영역들에 따라서, 형벌이론의 영역을 구별할 필요, 형벌 일반에 대한 정당화, 형벌의 대상자, 형벌의 정도로 항목을 나누어서 그의 형벌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이하 본문과 각주에서 괄호 안의 숫자는 『형벌과 책임』 의 면수를 표시한다.17))

1. 형벌이론의 영역 구별
(1) 여러 가지 문제들

하트는 1959년에 발표하고 『형벌과 책임』 의 첫 번째 장에 수록한 “형벌원리 서설(Prolegomenon to the Principles of Punishment)”에서 형벌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정당한 형벌에 관한 모든 문제를 응보나 억지, 교정 등 하나의 가치나 목표로 해명하고자 하는 지나치게 단순한 시도는 서로 다르고 부분적으로 상충하는 원리들이 절충해서 형벌제도를 구성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어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1-3). 그는 형벌에 관하여 도덕적으로 수긍할만한 설명이 되려면 상이한 지점들에서 상이한 원리들이 문제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면서, “형벌제도 일반을 정당화하는 근거”, “형벌을 받을 사람”, “형벌의 정도”를 각각 구별해서 설명해야 할 문제들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다룰 때 하나의 목적이 다른 목적들 때문에 제한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3). 그 기저에는 모든 사회제도는 그것의 일반적인 목표나 가치를 밝힌 다음에는 그 목표나 가치를 무제한으로 추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원리들을 규명해서 그런 상이한 가치와 원리들 사이의 절충을 추구해야 한다는 다원적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0).

(2) 형벌의 개념

하트는 주로 법규칙으로 이루어진 사회제도라는 점에서 형벌과 재산이 비슷하며, 거기에는 개념규정과 목적 정당화, 그리고 지위(title)와 정도(amount)를 배분하는 것이 문제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형벌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형식적으로 제시하였다(3-6). 즉, 형벌의 표준적인 사례는 (ⅰ) 통상 불쾌하게 여겨지는 고통이나 결과를 포함하며, (ⅱ) 법규칙 위반에 대한 것이고, (ⅲ) 규칙을 실제로 어기거나 그랬다고 여겨지는 범죄자에 대한 것으로서, (ⅳ) 그 범죄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집행하며, (ⅴ) 그 범죄가 어긴 법체계에 의하여 구성된 당국이 부과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그와 달리 공직자가 부과하거나 집행하지 않거나, 법규칙이 아닌 규칙 위반에 대한 것이거나, 타인의 행위 때문에 대신 혹은 집단적으로 처벌을 받거나, 위반자가 아닌데 처벌을 받는 경우는 형벌의 부차적이거나 이차적인 사례들로 분류한다. 이렇게 형벌의 표준적인 사례와 부차적인 사례를 구별하는 이유는 법을 준수하게 만드는 면에서 형벌을 정당화하는 공리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개념적 정지(definitional stop)’로 회피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부연하였다. 즉, 형벌을 통하여 법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면 무고한 사람이나 타인을 처벌하는 것도 정당화될 것 아니냐고 하는 비판을 형벌의 ‘개념 때문에’ 안 된다고 반박하지 못 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5-6). 그리고 하트는 어떤 행위가 범죄로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에 알리고 되도록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위”라고 대단히 형식적으로 답을 하고, 범죄를 도덕과 결부시키지 않으려고 하였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부당하더라도 현실의 법은 그것을 범죄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며(6-7), 국가독점사업에 관련한 형법규정처럼 도덕과 무관한 범죄들도 있기 때문이다(37).

(3) 형벌 대상자

하트는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표로서의 응보와 법위반자만을 처벌해야 한다는 형벌배분 문제로서의 응보를 구별할 필요를 강조한다. 그래서, 응보론만이 후자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며, 응보가 아니라 형벌의 이로운 결과에 기초해서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면서도 범죄자만 처벌하는 형벌배분원리를 지지하는 것이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8-10). 형벌에 대한 일반적 정당화와 형벌을 받을 대상자를 구별할 필요는 특히 형벌 일반을 공리주의로 정당화할 때 크게 제기된다. 형벌을 통하여 법준수를 확보하겠다는 공리주의적 목표에 따른다면,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도 되는가 하는 비판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트는 무고한 자를 처벌할 수 없는 이유는 응보론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복리 때문에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개인을 사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정의 원리(the principle of fairness)를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이런 이해가 공리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80-82). 한편 응보에 기초해서 형벌을 일반적으로 정당화하더라도 그 두 문제 영역의 구별은 필요하다. 법이 도덕적으로 나빠서 그 법을 위반하는 것이 부도덕하지 않을 때라도 법을 어긴 자들한테만 형벌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도덕원칙의 하나이며, 도덕적으로 나쁜 법들이 시행되는 곳에서라도 이런 원칙이 지켜진다면 그만큼이나마 정의에 대한 존중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조차도 무시된다면 그 체제의 사악함이 더 특별해지기 때문이다(11-13).

(4) 형벌의 정도

하트는 형벌의 정도를 다른 문제들과 따로 고찰할 필요의 일단을 여러 가지 감경(減輕) 사유에서 발견한다. 예컨대 공리주의자라면 형벌로 예방할 수 있는 범죄의 고통보다 무거운 형벌에 반대하며, 더 큰 고통을 야기하는 범죄에 더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식으로,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표에 따라서 형벌의 정도가 부분적으로 정해지지만, 범죄자의 상황이나 정신상태를 감안해서 형벌을 완화하는 감경은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표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4-15).

2. 형벌 일반 정당화

하트는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응보주의에 반대하고, 그와 거꾸로 순전히 미래지향적이기만 한 사회위생학(social hygiene)적인 체제에도 반대하면서, 일정하게 제한된 공리주의를 중도(中道, the middle way)로서 지지하였다.

(1) 응보론, 급진 개혁론, 사회위생학

하트는 응보론의 단순한 형태를 다음의 세 가지를 주장하는 이론으로 정리하였다(231). (ⅰ)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의도적으로 행한 자를 그리고 그 자만을 처벌할 수 있다, (ⅱ) 그에 대한 형벌은 그가 저지른 범죄의 사악함에 부합해야 한다, (ⅲ) 그런 조건에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행한 도덕적 잘못을 고통으로 갚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에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응보론의 맞은편에는 범죄를 형벌이나 치료가 필요한 징후로만 여기고, 범의(犯意, mens rea)나 주관적 책임요소를 범죄성립요건에서 배제하고 외적인 행위에만 기초해서 형벌이나 치료처분을 부과하자고 하는, 우튼(Wootton) 부인으로 대표되는 급진 개혁론이 있다(193-209, 232). 거기서 더 나아가면, 범죄행위가 없더라도 반(反)사회적이거나 범죄적 경향이 믿을만하게 입증되면 강제조치를 정당하게 취할 수 있다고 보는 사회위생학적 관점이 있다(232).

(2) 응보론 비판

하트는 응보론을 다음과 같은 근거로 비판한다. 먼저 형벌 일반을 응보에 기초해서 정당화하는 것은 범죄라는 악(惡)에다가 형벌로서의 고통이라는 악(惡)을 더하면 선(善)이 된다고 하는 신비한 도덕적 연금술이거나 실은 형벌을 정당화하기를 포기한 것이고,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는 것과 형벌을 혼동하였다는 것이다(234-235). 그리고 형벌은 범죄에 상응하는 고통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도덕적 사악함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권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는 새롭게 유행하는 응보론(비난이론 또는 표현이론)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도적인 도덕적 악행과 범죄의 사악함에 비례하는 형벌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리주의 형벌론과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검토하였다. 하나는 형벌로 표현되는 공적 비난을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하여 범죄자가 자신의 도덕적 실수를 깨닫고 자발적으로 개선하거나, 사회도덕을 유지하는 등 여타의 가치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형벌이 가치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는 후자의 이론은 공리주의와 닿아있는 것으로 파악하고(235), 형벌의 비난요소가 범죄를 억지하는 효과를 가지는 측면을 지적하기도 하였다(208-209).

응보론이 범죄의 도덕적 나쁨에 상응하는 정도의 형벌을 요구하는 데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233-234).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단순한 상응은 대부분의 범죄에 적용할 수 없거나 수용할 수가 없다. 그것을 범죄자가 사악한 정도에 상응하는 정도의 고통으로 순화시켜서 보더라도, 그런 정도를 판정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현대의 응보론은 구체적인 범죄와 구체적인 형벌의 상응이 아니라 형벌체계 안에서 상이한 범죄들에 대한 형벌의 비례성에 주안하지만, 이는 공리주의로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상이한 범죄의 상대적인 도덕적 무게라는 관념을 구현하는 것은 범죄자가 사악한 정도와 그가 끼친 해악의 크기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도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한편 하트는 현대의 응보론 대부분이 범죄를 예방하는 방편으로서 형벌제도를 정당화하는 공리주의적 견해도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235).

(3) 급진 개혁론 비판

하트는 과거가 아닌 미래만 보는 방향으로, 그래서 범행 당시의 범의(犯意)가 아니라 현재의 내적 상태와 외적 상황을 고려해서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자를 관리하거나 치료하기에 적절한 조치를 하는 쪽으로 형벌제도를 개혁하자는 주장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하였다. 먼저 그런 주장들 중에서 범죄성립 요건 중 주관적 요소는 응보론에 따를 때만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에 대하여는, 법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과 공정한 기회가 있는 사람들만 처벌하는 것이 공정하거나 정의롭기 때문에 주관적 책임요소는 응보론에 따르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200-201).

그리고 치료나 감독이 필요한데도 범의(犯意)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방면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거나, 책임능력 또는 법준수능력의 존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위와 같은 급진적인 개혁을 지지하는 견해에 대하여는 세 가지 이유로 반대하였다. 첫째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범의(犯意)가 범죄성립요건으로 요구되지 않는다면 당국이 개인의 삶에 간섭하고 강제할 기회가 크게 늘어나고 개인의 삶은 그만큼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206). 둘째는 형벌과 치료를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는 형벌의 목적을 범죄예방에서 찾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근거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도덕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반론으로서, 특별예방 뿐 아니라 일반예방을 위해서 구금되는 범죄자는 그만큼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조치는 그 사람이 달리 행위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점이 입증되어야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그렇게 이용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207-208). 다른 하나의 측면은 사회학적, 범죄학적인 것이다. 치료와 달리 형벌은 그 대상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범죄를 억지하게 위해서도 이용되며, 이 점은 형벌의 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구금형을 선고하는 유죄판결은 병원에 감금해서 치료를 받게 하는 의학적 검사와 달리 사회의 비난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 말고 다르게 행위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유죄판결을 하고 구금하는 것은 도덕적 반발을 부른다(208-209). 급진 개혁론에 반대하는 세 번째 이유는 의도나 기타 정신적 요소 등 주관적인 요소가 없이는 규정할 수 없는 범죄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수에 그쳤지만 처벌이나 치료를 받아야 할 행위들도 있는데, 행위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서 그런 행위들을 판별할 수 없다(209). 하트는 다시 위와 같은 자신의 반론이 각각 (ⅰ) 개인의 자유와 사회보호 사이에서 상이할 수 있는 가치 평가에 기초하고, (ⅱ) 유죄판결에 수반되는 공개성과 비난 및 본보기 효과로서의 억지가 형법의 실효성에 이바지한다고 하는, 어쩌면 사실과 다를 수 있는 믿음에 근거하고, (ⅲ) 새로운 제도나 타협으로 극복될 수 있을지도 모를 근거라는 점을 시인한 다음, 그래도 급진 개혁주의자들의 제안이 그만큼 ‘멋진 신세계(the Brave New World)’를 초래할 위험을 경계하였다(209).18) 그 대신 그는 정신이상자의 경우는 책임을 따지지 않고 바로 치료처분에 처하고, 정신이상이 아니면 범죄성립요소로 범의(犯意)를 요구하는 ‘온건한’ 개혁을 지지하였다(205).

(4) 교정주의 비판

하트는 교정(reform)을 형벌제도의 일반적인 목적이나 형법의 지배적 목표로 보는 생각에 반대하였다. 교정은 기회를 박탈하는 형벌체계 안에서만 자리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형벌제도를 일반적으로 정당화하는 목적이 아니라 형벌체계 안에서 형벌의 양을 결정할 때 정의나 비례의 원칙을 제한하거나 배척하는 식으로 작동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살인죄에 형벌을 부과하는 이유는 살인을 막기 위한 것이지 살인자를 교정하기 위함이 아니며, 형법의 주된 임무는 나쁜 짓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고, 그러지 못 하였을 때에만 교정이 들어설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26-27).

(5) 제한 공리주의 지지

이처럼 하트는 응보론에 반대하고 공리주의에 기초해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해서, 범죄를 예방해서 사회를 보호하는 데서 형벌을 일반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는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을 유념하고 공리주의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수정해서 타당한 형벌이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는 형벌로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공리주의 형벌관에 대한 근원적 비판으로,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거나 터무니없이 가혹한 처벌을 하거나 고문을 하는 것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을 든다(75-76). 그리고 이런 비판에 대하여, 제정신인 공리주의자라면 범죄보다 형벌의 고통이 더 무거워서는 안 되고, 고문이나 너무 가혹한 형벌은 범죄보다 더 큰 불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일단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범의(犯意)가 없이 행위한 사람을 처벌하는 엄격책임을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통상적인 신념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다. 또, 벤담이 내면적 하자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면책할 이유로 그런 경우에는 형벌의 위협이 사회적으로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도 불합리한 추론(non sequitur)이라며 반대한다. 그런 사유로 면책되기를 기대하고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43, 76-77). 여기서 그는 제한 없는 공리주의를 ‘통상의 도덕관념’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 즉, 법을 위반하지 않았거나 법에 따를 능력이 결여되었던 사람을 단지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77).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반대하기 위해서 응보론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포함해서 너무 야만적이거나 잔인한 형벌에 대한 반대, 상이한 범죄들의 도덕적 경중에 따른 형벌 부과 등의 제한을 공리주의적인 형벌 일반 정당화가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나’라고 하는 형벌배분의 문제로서 부가할 수 있으며, 이렇게 공리주의에 제약을 가하는 것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생각이다(79-82).

3. 형벌의 대상자

형벌을 받을 사람과 관련하여 하트는 위에서 보듯 공리주의에 따르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면 안 될 이유를 밝히는 데서 더 나아가서, 고의 또는 범의(犯意)와 과실 등 범죄성립에 요구되는 책임 또는 주관적 요소를 해명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의 동인은 공리주의 형벌관에 따르면 범죄성립에 책임요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냐고 하는 응로본의 비판과 한편으로는 책임요건을 부정하고 사회보호의 필요만 내세우는 극단적인 공리주의 형벌론 사이에서 상식에 부합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공리주의 형벌이론을 구축할 필요였던 것으로 보인다.

(1) 주관적 책임요소의 의의

하트는 고의와 과실 등 주관적 책임요소를 범죄성립에 필요한 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공평 및 정의를 요청하는 보편이념에 기초한 것으로서, 응보론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180-181). 책임원칙은 자신의 행위를 법에 맞출 능력과 공평한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법의 제재를 부과해서는 안 되다는 이념이다(181). 주관적 책임요건 그래서 소극적으로는 면책요건을 인정하게 되면 형벌의 위하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개인을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44). 그는 여기서 법을 단지 개인을 위협해서 순응하도록 몰아세우는 자극체계(a system of stimuli)가 아니라 선택체계(a choosing system)로 여길 것을 제안한다. 선택체계에서 개인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하면 치러야 할 비용을 알 수 있다. 면책요건을 인정하는 법체계는 개인들에게 순응하는 쪽으로 선택할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행위선택을 향도하지만, 선택은 개인들의 몫으로 둔다(44). 민법의 기능은 일정한 영역에서 개인의 선호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법은 거래의 성질에 관한 착오나 무지와 강박 및 정신이상과 같은 내적 요소가 거래의 효력을 제약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그런 상황의 거래는 진정한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형법과 형법의 면책요건은 강제적인 형법의 틀 안에서 개인이 장래를 예측하고 숙고해서 선택하는 것의 실효성과 장래 예측능력을 극대화하는 메카니즘으로 기능한다(45-46). 그래서 형사책임에 덧붙여지는 면책요건은 개인에게 다음과 같은 이익을 제공한다(47). 첫째, 형법의 제재가 그에게 적용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한다. 둘째, 개인은 법을 준수하는 비용과 형벌을 치르고 얻는 만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어서, 개인의 선택이 형법의 제재가 그에게 적용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되게 한다.19) 셋째, 형법의 재제가 적용된다면, 형벌의 고통은 각 개인에게 법을 어겨서 얻은 만족의 대가로 표상된다. 만약 형법이 면책요건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고나 실수 또는 강요 때문에도 형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들의 미래예측능력이 비할 바 없이 떨어질 것이며, 선택의 의의가 줄어들 것이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제재를 받을 수 있다(47-48). 그렇기에 면책요건은 벤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벌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실효성이 떨어지더라도 모든 개인을 선택하는 존재(a choosing being)로 여기고 선택체계를 부여해서 보호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하다(48-49). 이것은 정의관념의 핵심이고, 면책조건을 통해서 책임을 제한하는 법제도를 선호하는 기저에 깔려있는 여러 원리들 중 하나이다(49). 또한, 인간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이나 타인들을 그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몸뚱이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동작을 저마다의 의도와 선택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며, 그런 주관적 요소들이 사회관계에서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점을 책임원칙이 필요한 근원적인 이유로 들면서, 이런 사정은 응보론처럼 형법과 형벌을 도덕에 결부시켜서 이해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정은 누가 다른 사람을 쳤을 때 그것이 의도적인지 아닌지가 그들 사이에 상대가 친구인지 적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는 도덕만이 문제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182-183).

(2) 형사책임능력

그래서 하트는 형벌은 행위 시에 법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고 법이 금지하는 바를 회피할 수 있는 통상적인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그 능력들을 발휘할 공정한 능력(the normal capacities, physical and mental, for doing what the law requires and abstaining from what it forbids, and a fair opportunity to exercise these capacities)을 가진 사람에게 부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0) 그런 능력과 기회가 결여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거나 ‘다르게 행위할 수 없었다’ 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것이므로, 거기에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당하다는 항변을 할 수 있다(152).

(3) 과실범 처벌 근거

과실범을 처벌할 이유는 응보론과 공리주의 모두 쉽게 제시하기 어렵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악함’이 결여되어서 그렇고, 후자의 경우에는 형벌을 통한 억지력 발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133). 여기서 하트는 과실범 처벌의 억지효과를 보다 넓게 이해할 것은 제안한다. 형벌과 형벌의 위협이 행위자의 구체적 사고(思考)를 향도할 뿐 아니라 생각 또는 주의(注意) 자체를 환기할 수 있으므로, 특별예방과 일반예방의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134). 그리고 그는 결과를 예견하지 못 한 과실범을 처벌하는 것은 범죄성립의 주관적 요소를 부정하고 형법을 엄격책임(strict liability) 체계로 바꾸게 될 것이며, 과실과 중과실을 나누는 것은 불합리하고, 보통법에는 과실범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하는 과실범 처벌에 대한 회의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응함으로써 과실을 형사책임의 주관적 양태 중 하나로 유지하고자 하였다(136-139). 즉, 형사책임에 필요한 범의(犯意, mens rea-guilty mind-)에서 mens(mind)는 인식이나 예견의 인지(認知) 요소 뿐 아니라 자기 행위를 생각하고 통제할 수 있는 통상의 능력을 포함한다고 보고, 과실은 그런 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서 범의(犯意)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다(140). 그래서 과실은 그저 심리상태가 아니라 행위기준 준수에 실패한 것이며, 의무위반이라는 것이다(147-148). 또 그래서, 마음의 상태는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등급을 매길 수 있게 된다(148-149). 하트는 결과를 아는 것이 자기통제능력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하는 생각은 낡은 것이라 비판하면서, 주의능력과 책임에 대하여 이렇게 규범적인 이론을 전개하였다(150-151).

(4) 미수범 처벌 근거와 처벌 정도

미수범을 처벌할 근거를 응보론은 쉽게 댈 수 있다. 사악한 의도를 행위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형벌의 근거를 억지에서 찾는 쪽은 미수범을 처벌할 근거를 그만큼 분명하게 제시하기가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하트는 미수범이 범죄를 감행하였기 때문에 위험한 성향을 보였고, 형벌이 그의 장래 범죄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범죄목적 달성에 확신을 가지지 못 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일반예방효과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128-129). 그가 보기에 더 어려운 문제는 미수를 기수보다 가볍게 처벌할 이유이다. 행위로 표현된 사악함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를 응보론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며, 억지이론도 사정이 비슷하다. 범죄에 착수한 자로 하여금 돌이킬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근거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 것 같다고 한다(130). 그는 실제 발생한 해악의 정도에 따라서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것이 옳다는 일종의 응보론은 형벌을 손해배상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미수범보다 기수범의 피해자가 느끼는 분노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하는 다른 종류의 응보론이 직관에 더 부합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131). 하지만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그런 응보론을 과연 수용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하면서, 응보론을 거부한다면 미수를 기수만큼 무겁게 처벌해야 할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표하였다(131).

(5)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

하트는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선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이 일치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실현된 적도 없고 개념적 진실도 아니다(223). 피할 수 없었던 행위나 통제할 수 없었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도덕에서는 드문 일이거나 저등한 도덕체계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형법에서는 야만적이거나 불의롭다고 할지언정 불가능하지는 않다. 형법은 범죄성립에 주관적 책임요건을 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대위책임(代位責任)을 인정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도덕체계의 개념을 심대하게 수정하지 않는 다음에는 도덕체계가 그런 것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226).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하는 표현은 대부분 그 사람이 일정한 통상적인 능력이 있음을 의미하고, 이런 능력책임(capacity-responsibility)이 도덕책임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체계는 부분적으로만 또는 소극적으로 이런 능력을 법적 책임의 일반적 기준으로 삼는다(227). 문제되는 능력들은 법이나 도덕이 요구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런 요청을 고려해서 결정하고, 결정에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법체계가 책임능력의 결함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기 쉬운 까닭에는 입증곤란의 문제도 있다(228-229). 법체계가 심리적인 책임기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도덕적 책임이 없는 사람에게 제재를 가할 수도 있지만, 법체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충분히 많은 수범자들이 위에서 든 능력책임의 기초가 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수범자의 다수가 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 하거나, 준수할 의사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없다면 법체계는 성립하거나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능력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법이 실효적일 조건의 하나이다(229). 하지만 그것이 꼭 책임요건으로서 법규칙으로 수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데 비하여, 도덕에서는 그것이 실효성의 조건일 뿐 아니라 그런 능력을 책임요건으로 삼지 않는 도덕체계는 오늘날 도덕체계라고 할 수도 없다는 차이가 있다(230).

4. 형벌의 정도
(1) 정의의 일반적 요청

하트는 법을 준수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형벌을 감경할 것, 비슷한 사안은 비슷하게 대할 것, 무게가 다른 상이한 범죄는 다르게 처벌할 것을 정의(正義)의 요청이라고 제시하고, 이는 형벌 일반을 어떤 목표로 정당화하든 마찬가지라고 하였다(24-25). 하지만 범죄에 ‘적합한’ 형량이라는 생각은 여러 가지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응보론과 공리주의를 검토한다(161).

(2) 응보론 비판

앞에서 하트가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서 응보론을 비판한 데서도 소개하였지만, 하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형벌의 정도에 관하여 응보론에 반대한다. 그는 먼저 동해보복(同害報復)이 적절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 중 가장 원시적인 관념으로서 검토한다(161). 이런 관념에 따른다면, 절도나 명예훼손, 위조, 간통처럼 동해보복이 불가능한 범죄가 있어서 곤란하다. 살인과 같이 동해보복이 가능해 보이는 범죄도 두 사람의 목숨이 실은 무게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형벌이 범죄결과와 등가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동해보복론을 조금 더 다듬어서 형벌의 고통과 범죄의 사악함 사이에 비례를 추구할 수 있지만, ‘고통’과 ‘사악함’을 측정하기가 어렵다. 개별 범죄와 형벌이 아니라 범죄유형 사이의 비례적 처벌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비교할 원점(原點)을 합리적으로 설정하기 어렵고, 범죄가 ‘심각한’ 정도를 결과에서 찾을지 주관적인 의사에서 찾을지 판단하기 어려우며, 주관적 의사를 고려한다면 과연 객관적인 확인과 비교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 사이에서 대강의 척도를 찾을 수 있을지라도, 범죄와 범죄자가 천차만별인 데 비추어보면 거기서 객관적 정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161-163).

(3) 공리주의 지지

그래서 하트는 범죄자가 저지른 짓의 사악함보다 형벌이 사회와 범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안하는 생각에 눈을 돌리고, 응보주의가 아니라 이 쪽이 옳은 방향이라고 주장한다(163). 그 출발점은 벤담이 제시한 특별예방과 일반예방이라고 하는 공리주의적인 틀이다. 예방하지 못 한 범죄의 고통보다 무거운 불행을 가져오는 형벌을 부과해서는 안 되며, 덜 해로운 범죄에는 더 가벼운 형벌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163).

그는 영국의 법관들이 범죄의 중대성에 비례한 형벌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으며, 그들이 그로써 사회보호와 일반예방 및 특별예방을 다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점을 비판하였다(167-168). 그리고 스티븐(J.F.Stephen, 1829-1894)의 저작에서 잘 드러난, 법과 도덕의 상호 의존성과 침투성을 강조하고, 억지나 교정이 아니라 도덕적 분노와 증오를 표현하는 데서 형법의 목적을 찾는 생각이 여전히 영국의 법관들에게 널리 펴져있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168-170). 하트는 이런 생각이 법관들로 하여금 판결의 결과를 숙고하는 것을 가로막고, 공동체가 스스로의 도덕적 평가척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지 못 하게 만들고, 사회도덕이 다원적이고 이질적일 수 있다는 점을 못 보고 법관 개인이나 법관이 속한 사회계급의 도덕관에 매몰되게 한다고 비판한다(170-171). 또, 형벌을 부과할 때 통상적인 도덕적 구별을 까닭없이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이는 ‘비슷한 사안은 비슷하게 대하라’는 정의의 요청 때문이며, 그런 요청이 형벌에 대한 비난이론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주의를 촉구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비난하는 것이지, 비난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형벌을 궁극적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또 평등대우가 범죄자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한 확정적인 원칙이 아니라 억지와 예방 및 교정이라고 하는 미래지향적인 목적들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 있는 잠정적 지위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하지만 범죄자들 사이의 평등대우 요청을 희생하는 것은 조심해서 그리고 충분한 설명을 제시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71-173).

(4) 사형제 반대

하트는 사형(死刑) 존폐 논쟁을 고찰하면서, 사형제도가 도덕적으로 요구된다거나 금지된다고 주장하는 ‘절대주의(absolute attitude)’에 반대하고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사실적으로 탐구하는 공리주의를 지지하였다(71-73). 그리고 그런 공리주의에 따르면, 영국에서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입증책임은 존치론자들이 부담한다고 주장하였다. 생명을 박탈하는 데 상응하는 이익을 보일 필요가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사형으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영국에서 사형집행은 법원의 판결 이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개입해서만 가능하였기 때문이다(89).21)

Ⅲ. 몇 가지 고찰

형벌과 책임에 관한 하트의 이론을 이만큼만 살펴보아도, 보는 이들의 관심에 따라서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생각과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만 이를 바탕으로 삼아서 이 연구의 계기가 된 몇 가지 의문과 궁금한 점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그래서 먼저 『법, 자유, 도덕』 에서 하트가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하여 전개한 생각들을 보면서 든 몇 가지 의문을 풀어보고, 그 다음에는 여기서 살펴본 그의 형벌이론이 그가 『법의 개념』 에서 제시한 분석석 법이론, 그리고 『법, 자유, 도덕』 에서 펼친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생각과 어떻게 어울리거나 상위한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1. 『법, 자유, 도덕』 에서 제기된 몇 가지 의문에 대하여

『법, 자유, 도덕』 으로 대표되는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하트의 생각을 보고 드는 의문으로서 이 연구에서 풀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형법으로 금지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에 관하여 그가 견지한 자유주의가 형벌의 정도에 관하여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데블린이나 스티븐 같은 법도덕주의자들이 형법의 기능을 사회도덕 보호에서 찾으면서, 그 근거의 하나로 범죄나 범죄자가 도덕적으로 나쁜 정도가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들었던 데 대한 하트의 반박이 적실한가 하는 문제이다. 즉, 하트는 형벌 일반을 도덕적 응보나 비난으로 정당화하지 않더라도 형벌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할지는 범죄나 범죄자가 도덕적으로 나쁜 정도를 중요하게 고려해서 결정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렇게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적과 형벌 배분의 목표를 상이하게 파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도덕규칙을 어겼지만 피해자는 없는 행위를 한 사람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검은 것 두 개를 합하면 흰 것이 된다고 하는 설득력 없는 주장이라는 비판의 의미와 적실성이다.22) 차례로 살펴보자.

첫째 의문을 조금 더 확장하면, 하트가 형벌을 배분하는 문제로 제시한 “누구를 얼마나 벌할까”가 되겠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하트는 투박한 공리주의를 자유주의와 현대 문명국의 통상적인 도덕관념, 그리고 정의(正義)의 일반적인 요청에 따라서 제한함으로써 개인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공리주의 자체에 기초하여서는 범죄의 고통보다 형벌의 고통이 더 커서는 안 되고, 형벌은 범죄의 해악에 비례해야 한다는 요청이 나온다. 이에 더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요청이 개인의 자유와 통상의 도덕관념 및 정의의 요청에서 도출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면 안 되는 것은 개인에게 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야만적이거나 잔인한 형벌이 금지되는 이유는 공리주의자라도 ‘제정신이라면’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현대 문명국의 통상적인 도덕관념에 반하기 때문이다. 셋째, 범죄의 도덕적 경중에 따라서 형벌을 과할 것 역시 통상의 도덕관념에 부합한다. 넷째, 주관적 책임요소가 필요하고 책임능력자만 처벌할 이유는 ‘선택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다르게 행위할 가능성’이 없었던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통상의 도덕관념과 정의의 일반요청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법을 준수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형벌을 감경하는 것은 정의의 요청이다. 여섯째, 비슷한 사안은 비슷하게 다루고 무게가 상이한 범죄는 다르게 처벌할 것은 공리주의에 국한되지 않는 정의의 요청이다. 그리고 하트는 형법과 형법의 주관적 책임요건을 ‘개인이 장래를 예측하고 숙고해서 선택하는 것의 실효성과 장래 예측능력을 극대화하는 메카니즘’이라는 관념으로 이같은 자유주의적 형벌관을 뒷받침하였다. 하트가 이렇게 형벌의 배분에 관하여 제시한 견해는 매우 추상적이어서, 형벌에 대한 자유주의적 제한으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구체적인 문제에서 얼마나 실효적인 지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범죄로 다루어서 억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행위를 ‘억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만큼’이라고 하는 단순한 목표에만 추동되어서 처벌할 위험이 개인의 자유와 통상적인 도덕관념 및 정의의 일반적 요청에 따라서 위와 같이 제한되는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문제를 보자.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적과 형벌 배분을 향도하는 원리를 구별하고 각 문제영역에 상이한 목표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할까? 하트는 그렇다고 답을 하고, 형벌 일반은 해악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겠다고 하는 공리주의적인 목적으로 정당화하고, 형벌 배분은 위에서 본 대로 자유주의와 통상의 도덕관념 및 정의원리로 공리주의적 목표를 제한하였다. 이런 하트의 시도가 성공적인지를 살펴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서둘러 답을 하여보자면, 결국 형벌의 배분을 공리주의적인 결과고려 뿐 아니라 범죄와 범죄자가 도덕적으로 나쁜 정도도 고려해서 하고, 책임능력 있는 범죄자 자신만을 원칙적으로 처벌할 수 있으며, 형벌의 비난요소도 인정한다면 굳이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형벌배분 문제와 구별해서 미래지향적이고 형벌의 효과를 중시하는 공리주의만으로 형벌 일반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가 제창한 것처럼 형벌제도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상관된다면, 문제영역을 구별하고 그 각각에 상이한 목표를 부여하기보다는 복합적인 목표들을 가지고서 형벌 일반도 정당화하고 형벌의 배분문제도 다루는 것이 일관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면에서 응보론과 급진 개혁적인 공리주의, 그리고 그가 사회위생학이라고 제시한 견해들은 하트의 형벌이론보다 일관성에서 앞선다. 그러니 하트도 자신의 형벌이론을 ‘여러 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복합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이를 형벌 일반 정당화와 형벌 배분 문제에 일관하였더라면 이론의 일관성에서 더 낫지 않았을까 한다.23)

세 번째로, 도덕규칙을 어겼지만 피해자는 없는 행위를 한 사람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검은 것 두 개를 합하면 흰 것이 된다고 하는 것으로서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하트의 비판을 간단히 살펴보자. 알쏭달쏭한 이 논변이 응보론에 대한 공리주의자들의 비판 중 하나라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관건은 그 논변의 설득력이겠다. 곧장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는 세계’와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지 않는 세계’ 중 어느 쪽이 나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전자로 귀일한다면, 공리주의자들은 응보론을 “검은 것 두 개를 합하면 흰 것이 된다”고 하는 연금술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죄지은 자를 벌함으로써 더 나은 세계가 되었고, 그러니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하는 마법의 논변이 아니기 때문이다.24)

2. 『형벌과 책임』, 『법의 개념』, 『법, 자유, 도덕』 의 어울림과 어긋남

여기서 『형벌과 책임』 을 개관해서 살펴본 하트의 형벌이론, 그리고 『법의 개념』 으로 표현된 그의 분석적 법일반이론, 『법, 자유, 도덕』 에 담긴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그의 생각은 ‘자유’로 꿰어진다. 우리는 앞에서 하트의 형벌이론이 형벌 일반을 미래지향적이고 실증적인 공리주의적 목표로 정당화하면서도, 형벌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할지에 관하여는 개인의 자유와 문명국의 도덕관념 및 정의의 요청에 따라서 공리주의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잘 보았다. 데블린과의 논쟁에서 그가 주장하고 지키려 한 것도 개인의 자유였다. 그는 거기서 자유의 가치가 적어도 ‘피해자 없는 관행도덕 위반행위’를 형법의 관여범위에서 배제할만큼은 된다고 웅변하였다. 남는 문제는 자유주의와 무관하게 법 일반을 일반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그의 분석적 법이론과 자유의 연관이겠다. 이 점은 그가 형법을 도덕과 구별하고 분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장래를 예측하고, 계획하고 선택하는’ 개인을 보호하는 메카니즘으로 제시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법의 개념』 에서 하트는 법을 ‘제재의 위협을 수반한 명령’으로 파악하는 법명령설을 비판하고, 법을 ‘여러 가지 종류의 규칙들로 이루어진 체계’로 설명하였다. 하트의 이론과 법명령설의 차이는 여러 가지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다음의 면이 주목된다. 즉, 하트가 법명령설의 설명이 잘 어울릴만한 법영역으로 형법을 들고서도, 형법마저도 그 주된 기능을 범죄자 처벌이 아니라 일반인의 행위를 향도하는 데서 찾았던 면이다.25) 법이라고 하는 제도에 부응하기에 실패해서 법정에 선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전에 법이 제시하는 바를 보고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선택하는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로 법을 이해하는 하트의 시각은 이렇게 그의 법일반이론과 형벌이론을 관통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세 영역에 관한 그의 이론에서 서로 잘 맞지 않는 면은 없을까? 이 물음에 관하여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하트가 형벌의 일반적인 목적을 공리주의적 예방에서 구하면서 응보론을 배척한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며, 이는 여러 사람이 지적한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맥코믹은 승인규칙(rule of recognition)을 중핵으로 삼는 하트의 법일반이론은 사회적 규칙 이론(theory of social rule)에 기반하며, 다시 그 핵심은 규칙 수범자들이 가지는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라고 하는 점에 주목해서 이 문제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런 내적 관점에서 볼 때 법규칙 위반에 대한 ‘비난’은 자연스럽고, 그래서 하트의 법일반이론은 형벌을 ‘공적인 비난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응보론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26) 하트가 『형벌과 책임』 의 여러 곳에서 응보론의 한 형태인 ‘비난이론(표현이론)’의 요소를 수용하거나 우호적으로 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까지 포함해서 응보론을 단호하게 배척하는 데에는 부자연스러운 긴장이 있다. 이 문제는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그의 생각에까지 넓혀서 보면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다. 앞에서 보았듯이 하트는 피해자 없는 관행도덕 위반 행위를 벌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경우에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검은 것 둘을 합해서 흰 것을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거기서도 하트가 응보론의 설득력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며, 응보론은 피해자 있는 범죄에는 그리고 그 경우에만 설득력을 가지지만, 어떤 경우에는 분명히 설득력을 가진다고 인정하였다.27) 정리하자면, 하트가 형벌이론을 전개하면서 응보론을 배척하는 태도를 고수한 것은 특히 비난이론 혹은 표현이론 형태의 응보론에 대하여는, 위에서 보았듯 그의 형벌이론 체계 내에서도 일관적이지 못 한 면이 있고, 지금 보듯 그의 분석적 법이론 및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과도 잘 맞지 않는 면이 있다. 종합해서 보면, 형벌 일반을 공리주의만이 아니라 적어도 비난에 기초한 응보론의 요소도 수용해서 정당화하였다면 그의 형벌이론은 내적으로 그리고 그의 다른 영역의 이론들과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한다.

Ⅳ. 결론

이제까지 우리는 현대 법실증주의를 대표하는 법철학자 하트가 형벌과 책임에 관하여 개진한 이론을 살펴보고, 몇 가지 고찰을 하였다. 연구의 계기는 그가 데블린과의 논쟁을 통해서 펼친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을 보면서 드는 의문들을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하트의 형벌이론과 법일반이론 그리고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 사이의 어울림과 어긋남도 일부 살펴보았다.

하트의 형벌이론은 미래지향적인 공리주의적 목표를 자유주의와 현대 문명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관념, 그리고 정의의 일반요청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형벌이론은 ‘선택하는 존재’로서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면에서 그의 법일반이론 및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이론과 잘 어울린다. 다만 그가 형벌 일반을 정당화하는 목표로 응보를 배척하고 사회보호라는 공리주의적 목표를 제시한 것은 그의 형벌이론 안에서 뿐 아니라 법일반이론 및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한 그의 이론과도 잘 맞지 않아 보인다.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하여 현대의 고전인 하트-데블린 논쟁에 대한 관심이 촉발한 하트의 형벌이론에 대한 고찰과 검토는 형법학에 어두운 필자에게는 여러모로 벅찬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많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앞선다. 보시는 분들의 비판과 질정을 기대하면서, 부족한 연구를 맺는다.

각주(Footnotes)

1) John Gardner, “Preface to the Second Edition” in H.L.A. Hart, Punishment and Responsibility-Seco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ix면; Michael D. Bayles, Hart’s Legal Philosophy-An Examination-,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2, 253면; Nicola Lacey, A Life of H.L.A.Hart-The Nightmare and the Noble Dream-,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279-281면; Neil MacCormick, H.L.A. Hart, Second Edit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8, 18-21면; Malcolm Thorburn, “The Radical Orthodoxy of Hart’s 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in Markus Dubber(ed.), Foundational Texts in Modern Criminal Law,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279-295면 중 279면 등 참조.

2) 오세혁, “형벌의 철학적 기초-영미 형벌 정당화이론의 동향-”, 『중앙법학』 제14집 제3호, 2012, 7-40면; 김대근, “하트(H.L.A.Hart)의 형법학방법론”, 『형사정책연구』 제28권 제4호, 2017, 89-120면 등. 그리고 여기서 개관할 하트의 『형벌과 책임(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을 김대근 박사가 번역하여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3) 심헌섭, 『法哲學 Ⅰ』, 법문사, 1982, 125-131면; 최봉철, 『현대법철학』, 법문사, 2007, 369-391면; 김정오 외, 『법철학-제2판-』, 박영사, 2017, 65-79면 등.

4) 울펀든 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졸고, “울펀든 보고서의 이중성에 관한 고찰”, 『인하대학교 법학연구』, 제23집 제2호, 2020, 129-159면 중 134-149면 참조.

5) 패트릭 데블린(Patrick Devlin)/졸역, “도덕과 형법”,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83-312면 참조.

6) H.L.A. Hart, Law, Liberty, and Morality,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3, 58-60, 70-71, 73면 등 참조.

7) 데블린, 앞(주5)의 글, 302-308면 참조.

8) P. Devlin, The Enforcement of Morals, Oxford University Press, 1965, 130-131면.

9) 데블린의 이런 생각은 하트-데블린 논쟁에 한 세기 쯤 앞선 J.S.밀과 J.F.스티븐 (J.F.Stephen)의 논쟁에서 스티븐이 개진한 것과 비슷하다. 스티븐은 형법의 기능은 중대한 악행을 낙인 찍고 벌해서 사회도덕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는 자기보호와 상관 없이도 수행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J.S.밀이 제시한 해악원칙에 반대하였다. 그는 영국 형법의 상당한 부분이 악을 금압해서 덕을 조장하는 데 쓰이고 있으며 형벌은 사회적 위험 뿐 아니라 건강한 복수심 때문에도 요구된다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그런 근거들이 형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 상관된다고 주장하였다. James Fitzjames Stephen, Liberty, Equality, Fraternity and Three Brief Essay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 152-153, 162면; 졸고, “도덕의 법적 강제에 관한 일 고찰-스티븐과 데블린의 보수주의적 사유-”, 『가천법학』 제9권 제4호, 2016, 125-152면 중 133-134면 참조.

10) H.L.A. Hart, 앞(주 6)의 책, 34-38면 참조.

11) 앞(주 4)의 졸고, 142-149면 참조.

12) 이는 데블린이 형법의 기초가 사회의 관행도덕이라고 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하나로 영국 형법이 정하는 상당수의 범죄가 도덕원칙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든 데 대하여 하트가 그렇게 보이는 것들 중 일부는 도덕 자체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든 세 가지 근거 중 하나이다. 다른 둘은 형법이 피해자의 동의를 항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도덕을 강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들을 본인 자신들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후견주의(paternalism)의 일환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중혼(重婚)과 같은 행위를 범죄로 만든 까닭은 도덕 자체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연한 소란행위(public nuisance)로 불쾌(offense)를 자아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두 논거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졸고, “울펀든 원칙의 몇 가지 문제와 하트-데블린 논쟁”, 『가천법학』, 제13권 제2호, 2020, 135-162면 중 151-154면 참조.

13) H.L.A. Hart, 앞(주 6)의 책, 58-60면 참조.

14) 하트-데블린 논쟁과 울펀든 보고서에 관한 최근의 연구 중에는 고의가 없는 행위자에게도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엄격책임(strict liability)’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도 있다(졸고, “울펀든 보고서 이후 영국 성매매법제의 변화”, 『서울法學』 제28권 제2호, 2020, 287-328면 중 318면). 울펀든 보고서 이후 영국 성매매 형사법제의 변화를 추적하고 이를 하트와 데블린의 논변에 기초해서 평가한 이 연구에서 필자는 영국이 2009년 법개정을 통하여 “제3자의 폭력, 협박, 강제, 기망으로 인하여 착취를 받고 있는 성판매자의 성적 서비스에 대가를 치르거나 대가를 약속하는 행위”를 범죄로 정하고, 행위자가 성판매자의 피착취 상황을 몰랐어도 성립한다고 규정한 것(2009년 경찰활동 및 범죄 법-Policing and Crime Act, 2009- 제13조)에 대하여, 하트는 “형사범죄를 최대한 엄밀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를 사전에 합리적인 확신을 가지고서 알 수 있게 하는” 합법성 원칙(the principle of legality)을 중시하였으므로(H.L.A. Hart, 위의 책, 10-12면) 비판적일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하트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형벌이론을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 데블린과 하트 사이의 논쟁은 데블린의 1959년 맥커비 강연(Maccabaean Lecture in Jurisprudence)에서부터 시작해서 하트가 데블린의 주장에 뒷받침되어야 할 경험적 증거를 다룬 1967년 논문에 이르기까지 8년에 걸쳐서 여러 차례의 강연과 기고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연대기적 개관은 Michael Martin, The Legal Philosophy of H.L.A.Hart, Temple University Press, 1987, 239-271면 참조.

16) Nicola Lacey, 앞(주 1)의 책, 280-282면 참조.

17) Punishment and Responsibility 의 초판은 1968년에 나왔고, 제2판은 2008년에 나왔다. 두 판본에서 본문의 면수는 동일하다.

18) 잘 알려진대로 헉슬리(A.L.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는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고 개인의 자유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보여주었다.

19) 하트는 법이 면책요건을 인정하는 것은 개인의 운명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자기제한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덕성을 강화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182).

20) 하트는 영국 법조계에서 오랫동안 범의(犯意)보다 근원적인 주관적 형사책임요건으로 여겨져 온 의식성 또는 의도성(volutariness) 요건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는 형사책임 인정에 필요한 심(心)과 신(身)의 최소한의 연결로서 도대체 행위라고 할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으로서, 엄격책임이 인정될 때라도 필요한 요건이다. 하트는 이를 “의식적인 근육수축”과 관련지어서 설명하는 이론을 18세기 원자론적 행위론에서 비롯한 낡고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행위에 관한 일상적인 용어로 이해해서 “동작에 대한 의식적 통제 결여”로 파악할 것을 제안하였다(90-112).

21) 영국은 1957년 살인죄법(the Homicide Act of 1957)이 제정되기 전에는 살인을 murder와 manslaughter로 구별하고, 전자는 사형을 후자는 종신형까지의 구금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였다. 1957년 법은 다섯 가지 종류의 murder에 사형을 규정하였다. 이 때문에 사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지만 도덕적으로 부당하게 느껴지는 판결이 많았고, 그래서 내무장관이 국왕의 은사권(恩賜權)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다. 하트는 글을 쓸 즈음에 이전 반 세기 동안 사형집행이 면제된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고 밝혔다(59-61).

22) 그밖에 앞의 각주 14에서 제기한 ‘엄격책임’ 문제를 간단히 본다. 앞에서 보았듯, 하트는 응보론에 반대하면서도 주관적 책임요소를 개인의 자유와 공평 및 정의를 요청하는 보편이념에 기초한 것으로 파악하고 고수하고자 하였으며, 엄격책임의 확대에 부정적이었다. 이로써 각주 14에 소개한 필자의 추론을 보완할 수 있겠다.

23) 그래서인지 하트의 형벌이론을 간단하게 ‘절충설’로 분류한 설명들이 보인다. 예컨대 오세혁, 앞(주 2)의 글, 25-26면; 니콜라 레이시/장영민 역, 『국가형벌론-정치적 원리와 공동체 가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2, 68-69면 등 참조.

24) 이런 점은 『형벌과 책임』 제2판의 서문을 쓴 가드너(J. Gardner)도 지적하였다. 응보론도 형벌을 통하여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므로, 공리주의만이 미래지향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J. Gardner, 앞(주 1)의 글, xv면 참조.

25) 허버트 하트/오병선 역, 『법의 개념』, 아카넷, 2001, 53-57면 참조.

26) Neil MacCormick, 앞(주 1)의 책, 168-170면, 175-179면 참조. 베일스(M.D. Bayles)도 같은 생각을 피력하였다. M.D. Bayles, 앞(주 1)의 책, 260면 참조.

27) H.L.A. Hart, 앞(주 6)의 책, 58-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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