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COVID-19 대유행(Pandemic) 이후에 누구나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 5인 이상 집합 금지,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 등의 용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우리 삶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환자가 진료나 정기검진 등을 위해서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데도 감염의 위험성으로 내원을 꺼리거나, 의료기관 측에서 환자 이외에 보호자 등의 방문을 최소화하고 있다. 환자는 여전히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나 쉽지 않고, 의료기관은 환자의 급감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의 공공성은 환자에 대한 개별적 의료서비스의 제공과는 다른 개념으로,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대도시 대형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편중,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 의료기관 간의 의료격차, 능력 있는 의료인의 지방 중소도시 의료기관 기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료의 공공성, 지방의료기관의 활성화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젊은 의료인의 양성 및 지방 중소도시로의 파견, 지방의료기관의 확충 등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할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은 시간적·비용적 문제로 이른 시간 내에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원격의료 등의 대안들도 나왔으나 의료계의 반발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지금까지의 COVID-19 상황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가져왔고, 의료영역도 진료와 관련해서 의료기관, 의료인, 환자 모두가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2020년 12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제4차 감염병관리위원회 심의·의결에 따라서 정부는 COVID-19의 병원 내 감염을 막고 조기진단을 위해서 경증환자, 만성질환자 등에게 의사의 판단에 따라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 상담 및 처방, 대리 처방을 허용했고, 병원에 방문한 환자는 병원 내 별도 공간에서 간호사 등 의료인의 보호 속에 화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1)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히 반발했으나, 대한병원협회는 1) 초진환자 대면 진료 원칙, 2) 적절한 대상 질환 선정, 3) 급격한 환자 쏠림 현상 방지, 4) 의료기관 종별 역할의 차별 금지, 5)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 등을 전제로 비대면 진료 도입을 찬성했다. 이는 COVID-19와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택이었으나, 의료계가 지금까지와 달리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를 해보고,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며, 앞으로 이와 유사한, 또는 전혀 새로운 위기상황에 빠지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Ⅱ. 의료 공공성의 법적 의의
공공성은 주로 행정학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헌법에 직접 의료의 공공성 또는 공공의료를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의료의 공공성을 법적인 차원에서 규율하더라도 충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성을 법적인 차원에서 규율하게 되면 의료의 공공성 실현을 위한 입법 여부는 입법자의 자유재량에 맡겨지므로 국민이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헌법은 완성된 규범 체계가 아니라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할 수 있기 위해서 추상성·개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헌법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오늘날의 COVID-19(코로나19, 이하에서는 “COVID-19”라 한다)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의 확산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현대적 위기 사회에서 기존의 헌법 질서의 재정립이 필요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국민의 요구는 헌법을 통해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과거의 사스(SARS), 메르스(MERS)에 이어 현재의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서 의료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기본적인 내용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각종 질병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입법자에게 의료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공공성은 헌법 차원에서 논의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여 국가가 국민 보건을 위해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 그런데 이 조항은 국민의 보건을 국가의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직접 보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국민의 보건권을 긍정하는 것이 다수 견해이고, 보건권의 헌법상 근거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제1항), 환경권(제35조 제1항), 국가의 국민보건 보호 의무(제36조 제3항), 인간의 존엄과 가치(제10조 제1문),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제12·13조) 등을 들고 있다.3)
비록 이 조항이 국민의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국민에게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국가의 보호 의무만을 부과하는 것은, 만약 국가가 제대로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국가에 대해 국민이 적극적으로 이행을 요청할 수 없으므로 기본권 체계상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다수 견해와 같이 헌법에서 국민의 보건권이 도출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4)
헌법상의 보건권은 국민이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에 대해서 국가의 침해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제삼자의 침해 방지 또는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에 필요한 급부와 배려를 적극적으로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권은 강제적 의학실험·불임시술 등과 같이 국가의 직접적 침해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소극적 권리와 함께, 전염병의 예방 및 관리·감독, 식품 유통과정의 관리·감독, 국민건강보험제도와 같은 보건의료 정책실시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성격도 갖게 된다.5)
한편, 국가는 국민의 생명 및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각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다른 개별기본권을 행사하는 전제가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가의 의무는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국가적 의무로 볼 수 있다.6) 이는 단순히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소극적 의미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침해하려는 다른 제삼자에게도 적절한 조치를 하고 국민의 보건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나 국민의 권리나 국가의 의무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국민의 보건을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광범위한 형성권을 가지므로, 각 국민은 국가에 대해 보건의료와 관련하여 특정한 정책이나 조치를 요구할 권리까지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 해석해야 한다.7)
보건권과 관련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공공성’이다. 보건권이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실효성을 가지려면 다양한 의료행위로 생명의 유지와 건강 회복 등의 의미 있는 결과가 중요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런데 의료의 문제는 단순히 어떤 한 환자의 생명 유지와 건강 회복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국민의 보건권 또는 국가의 보건권 보호 의무는 다수 또는 전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헌법상 보건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건강보험제도(의료급여제도), 의약분업제도, 지역보건의료제도 등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기본법’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건강권(제10조), 보건의료에 대한 자신의 기록 등 열람 및 사본 청구권(제11조), 국민이 자신의 질병을 치료 방법과 시기 등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제12조) 등을 규정하였다. ‘국민건강증진법’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담배의 직접흡연 또는 간접흡연과 과다한 음주가 국민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교육・홍보해야 할 의무(제8조),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건강생활의 실천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주민·단체 또는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건강생활실천협의회 구성 의무(제10조), 검진결과의 비공개의무(동법 제21조) 등을 규정하였다. 그밖에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감염병이 발생 및 유행 우려가 인정되는 경우 역학조사 실시 의무(제18조)가 있으며, 신고 및 허가받은 고위험병원체의 분리 및 이동에 대한 감독의무(제21조 이하) 등을 보건권의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공성이란 한 개인이나 특정한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 정의할 수 있고,8)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공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그 이익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공성의 개념은, 1) 국가에 의한 공권력 차원에서 이해하거나, 2) 개인과 국가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그 중간에 존재하는 제3의 영역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9) 1)은 국가가 모든 형태의 정당성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공공성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할 또는 업무에 대한 정당성을 승인하고, 또한 승인된 것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2)는 공공성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고, 공공성에 관한 공론의 장은 국가와 사적 영역 간의 공공적 가치가 계속해서 정당성을 획득해간다는 것이다.10)
우리 법에서 ‘의료’에 대해 직접 정의하지는 않고, 다만 보건의료기본법에서 ‘보건의료’를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하여 국가 등이 행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11) 이는 문진, 검사 등의 사전 단계와 진료, 수술 등의 과정과 함께 건강의 증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명과 건강은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본이 되므로, 각 개인은 평생 관심을 가지고 생명과 건강을 유지·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의료 문제는 각 개인이나 유아 또는 노인과 같은 특정한 계층에 있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가 평생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국가도 국민의 의료에 관한 관심과 책임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이 강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의료는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일부에 의한 독과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므로 규범적 의미의 공공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12)
헌법재판소도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한 구 의료법 제25조 제1항에 관한 위헌제청심판에서, 의료행위의 공공성과 국가의 국민 보건에 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견해를 밝혔다.13) 그러므로 공공의료는 공중보건과 기본 의료를 제공하여 국민의 건강한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공공성의 개념을 2가지로 구분한 내용을 바탕으로 의료 공공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1) 국가의 공권력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정부에 의한 것으로, 2) 개인도 국가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서비스 수혜대상이 보편화 되면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료의 공공성은 개인의 이익 보다 사회( 또는 전체)의 이익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대체로 공적 기관에 의해 설립 및 운영되는 의료기관의 소유 주체에 대한 의미도 있으나, 다수를 대상으로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편익을 위해 의료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14)
의료 공공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의료의 공공성은 서비스의 수혜대상이 보편적인 다수를 의미한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에 대한 의료서비스는 소수 또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적 서비스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공영역은 다수 인구를 대상으로 건강증진, 질병 예방 등을, 반면에 민간영역은 비교적 소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형 등의 의료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둘째, 정부 또는 공공기관에서 설립한 의료기관이나 보건의료인력 및 관련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것은 공공의료기관을 기능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공적 소유로 판단하여, 정부에게서 위탁 받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거나 공공성이 높은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제외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의료서비스의 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인적·물적 자원은 공공성을 기본으로 하면서 정부의 의료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셋째, 최소한의 인간적 삶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보편적인 사회보험으로써 의료서비스는 형평성을 갖춰야 한다. 그러므로 의료 공공성은 국민의 의료비 납부 능력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빈부나 계층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자원의 유용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15)
기본권 보호의무는 헌법상 기본권적 법익을 국가가 아닌 제삼자의 위법한 위해를 예방하거나 위해로 인한 피해 발생을 방지해야 할 국가의 의무이다. 국가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기본권 주체가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논의는 개인-국가 간의 문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아닌 제삼자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할 때 국가-가해자-피해자라는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기본권 보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때 국가는 침해자가 아닌 보호자의 지위에 있고, 국가가 아닌 가해자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도 객관적 가치질서성을 근거로 방어의 필요성이 있다. 이렇게 국가-개인, 개인-개인의 관계 속에서 위법한 위해 예방 또는 피해 발생 방지를 위해 나타나는 것이 기본권 보호의무이다.16)
헌법 제36조 제3항의 국민은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을 통해서, 국민의 보건권과 국가의 보호 의무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 밝혔다. 그러므로 국민은 누구나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해서 동등한 수준의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국가도 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런 점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의료는 공중보건 및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민의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17) 공공의료를 규율하기 위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공공보건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동법 제2조 제1호). 여기에서 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공공단체가18)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주요 목적으로 설립·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을 의미하고,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은 공공보건의료기관 등을 포함한다(동법 제2조 제4호).19) 공공보건의료사업은 보건의료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과 분야에 대한 의료공급에 관한 사업 등을 의미하는데,20) 이 규정은 주로 공적인 보건의료에 대한 사항들을 규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는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에 해당하는 보건의료를 우선 제공해야 한다(동법 제7조).21) 공공보건의료는 민간보건의료와 비교하여 의료기관의 수, 의료기관 종사자 수, 환자구성, 의료비 지출 등의 공급 수준이 높지 않고, 투입되는 시설과 장비의 부족 또는 노후화와 인력의 질적 수준 등 전반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높지 않은 상황이며, 공공보건의료의 관리운영은 보건의료기관에 대한 관리 주체의 분산, 공공보건의료기관 간의 연계 부족, 조직 내부 관리운영의 전문성 부족 등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22)
따라서 공공의료기관만으로 의료의 공공성 확보는 한계가 있고, 민간의료기관도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도 국민의 보건의료가 중요한 의미가 있고, 국가의 보호 의무를 강하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료의 공공성 확보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면 민간의료기관도 공공의료기관과 유사한 정도로 공공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3) 정부는 의료 취약지역과 공공 전문진료센터가 필요한 지역에 민간의료기관을 공공의료기관으로 지정하기도 한다.24)
Ⅲ. COVID-19 상황에서 의료환경의 변화와 의료 공공성 강화
국민은 누구나 헌법상의 보건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에 건강의 보장·보호를 요청할 수 있고, 반대로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의료의 공공성 측면에서, 건강한 사람은 건강의 유지와 사전 조기 예방을 위해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회복 또는 사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국가에 요청할 수 있고, 국가는 공공의료기관의 설립 등으로 국민의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25)
2013년 2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공공의료 정책의 기본방향은 공공의료기관의 소유 기준에서 공공의료의 기능을 기준으로 정책적인 변화를 도모했고, 2016-2020년 제1차 공공보건의료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민간 중심의 보건의료 체계의 보완을 위해서 공공보건의료 3대 영역인 지역 간의 균형, 취약계층을 위한 진료, 필수보건의료서비스에 집중했다. 그러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매우 포괄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으로 제시하여 한계를 가진다.26)
2020년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국내 공공보건의료기관의 비중은 2008년 전체 의료기관의 6.3%에서 2019년 5.1%로, 병상 수 기준도 2008년 11.1%에서 2019년 8.9%로 줄었다.27) 많은 선진국은 공공의료기관이 다수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공공의료기관이 중심이 되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비교해서,28) 우리는 민간의료기관이 전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을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29) 현재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이 전체 국민의 건강을 유지·회복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정부 주도의 초고속 경제성장 속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인구의 집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많은 영역에서 도시와 지방 간의 격차가 벌어졌다. 특히 최상급 의료기관은 서울 등의 대도시에 집중해 있고, 의사들이 지방 근무를 꺼리는 경향이 심화하면서 지방 거주 주민들이 의료서비스에서 비슷한 정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각 지역의 중소 의료기관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것은 지역 거점의 의료기관 체계의 약화 또는 붕괴를 초래할 수 있으며, 결국 전체 의료서비스 환경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할 것이다.30)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주민들에게 지방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공공의료의 문제 분석과 이의 여러 대안이 수차례 제시되었어도 예산, 전문인력 양성, 지리적 여건, 교육 등의 이유로 한계에 부딪혔다.31) 특히 지방공공의료기관의 인력부족 문제는 의료기관 내의 의료인의 수 부족과 함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부족한 지원으로 의료기관종사자들이 오랜 기간 근무할 수 없고, 이는 의료인들의 전문성을 강화하지 못하며, 결국 지역 환자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해당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게 되어서 지방공공의료기관들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현재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COVID-19 확진자의 70% 이상을 공공의료기관에서 담당하고 있으나, 의료기관의 수나 병상 수 등 여러 지표에서 민간의료기관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밝힌 한계 속에서 공공의료기관이 COVID-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취약계층은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렵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응급 상황에서 민간의료기관으로부터도 진료 거부와 차별적 조치를 겪기도 했다. 결국, 지방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의료기관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고, 지역주민들도 정상적인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의료의 공공성 확보가 더욱 요원하게 되었다.
COVID-19 상황이 개인에서 가족·직장 등의 지역사회로, 국가를 넘어 전 세계로 감염이 확산하여 대유행(Pandemic)하게 된 것은 개인 각각의 보건이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손 씻기, 마스크 착용, 정기적인 실내 환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은 우리 일상에서 헌법상 보건권을 구체화하여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과 의무로 나타났다.32)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COVID-19의 병원 내 감염으로부터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호흡기 환자와 비(非)호흡기 환자를 분리하여 진료하는 ‘국민안심병원’,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갖추고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호흡기전담클리닉’, 코로나19가 의심되거나 역학적 연관성이 있는 사람에게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는 ‘선별진료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33)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의하면 COVID-19 환자 치료를 위한 전체 병상 중 지방의료원의 병상 비율이 76.4%에 이르고,34) 2020년 5월 중순을 기준으로 COVID-19 환자의 76.1%는 지방의료원과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감염병 전담병원 70개 중에서 공공병원은 57개(81.4%)로 COVID-19의 진단·치료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35) 그러나 이것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나 병상 수와 비교하면 의료의 공공성이 확보되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15년 이상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공공보건의료 개혁은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현 정부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확정했고 ‘공공보건의료발전위원회’를 설립하면서 2018년 10월에 필수의료의 지역 격차 없는 포용 국가 실현을 위한 ‘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1)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보건의료 책임성 강화, 2)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전 국민 보장 강화, 3)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 및 역량 제고, 4) 공공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36)
COVID-19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의과대학의 정원 확대와 공공의과대학의 설립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감염병 대응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에 반대한 의사들의 진료 거부와 의과대학 학생들의 국가고시 거부라는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 속에서 대통령은 ‘공공의료의 확충’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하면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였다.37)
국민은 대체로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비전과 방안, 추진체계의 구성, 그리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전략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지금까지 공공의료의 강화는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의 수와 병상 수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의료의 공공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항목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공공의료서비스의 강화 또는 공공성이 높은 보건의료 제공과 같은 목표, 특히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정책적 목표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38)
우리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은 설립 및 운영 주체가 공공 또는 민간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민간의료기관의 비중이 훨씬 높아서 의료 공공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의료기관에 의료 공공성을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료부문의 역할은 민간의료부문의 역할과 차이가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영역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재고해야 하고, 공공의료기관의 존립 근거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보건의료서비스의 범위와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39) 지금까지의 재난 상황은 응급한 상황은 많이 발생하지만, 보건의 위기가 크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COVID-19와 같은 감염병 대응에서 공공보건과 공공의료의 역할 모두 중요하다.
COVID-19의 국가적 위기 사태에서 국가 대응체계 변화에 따라 공공의료기관은 기존의 업무를 대폭 축소하거나 중지하고 선별진료소로 전환하여 전국적으로 검체 검사(PCR 검사)를 할 수 있었고, 환자들을 격리하여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에서 전국의 병상을 관리하면서 초기에는 지역별로 공공의료기관의 수용한계를 초과하는 때도 있었고, COVID-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일부 의료기관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것은 의료서비스 취약지역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방에서 의료기관 수용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기관을 폐쇄한다면 환자들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어 다른 응급 상황의 치명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COVID-19 대응 과정에서 인구 과밀 지역이 바이러스 감염증상의 확산에 취약한 것과 비교해서 인구 과소 지역은 의료서비스 제공 자체가 힘들게 된다. COVID-19 확진자의 수용은 주변의 의료기관에서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안 요양기관이 없거나 충분한 병상 확보되지 않은 지역에서 의료기관이 폐쇄된다면 이는 해당지역의 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을 분리해서 운영하면, 공공의료기관이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 의료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기관의 비중이 매우 높으므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만으로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민간의료기관들과의 협조와 연계가 필요하다.40)
Ⅳ.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 시행의 방향과 강화방안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서 국민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일관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물론 정부는 공공의료를 포함한 보건의료, 건강보험, 보건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는데, 이런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지방의료기관의 설립, 의료인의 확대 등을 위한 체계적·구체적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의료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보편적 의료서비스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과대학 설립 등과 관련해서 의료계와의 충돌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큰 목표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게 되거나 국민이 서로 충돌하거나 갈등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도입된 원격의료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의료사각지대 해소, 지역 간 의료서비스격차 해소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이나 시민단체의 치열한 찬성과 반대의 논란 속에서 아직 의료인 간의 의료행위에서만 적용하고 있어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제도의 시행에 앞서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일관된 정책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해당 정책을 시행한 이후에도 계속 확인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
실질적인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고려할 수 있고, 그중에서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는 헌법상 기본권인 보건권과 의료 공공성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입법자의 재량행위이다. 비록 입법자에게 폭넓은 재량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다음의 사항들을 고려한다면 원만한 제도 시행·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41)
첫째, 의료의 공공성은 개념에서 본 바와 같이 개인이나 특정한 단체가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므로 국민의 입장과 편의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의료 관련 제도의 도입은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 등과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대단히 부족하고, 의료의 사각지대와 보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COVID-19 대응 과정에서 드러나 상황들을 보면 공공의료의 확충이 단순히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의 보건의료체계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한 병상 수 확대 증가에 관심을 두기보다 민간의료기관과 대등한 수준으로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고 공공보건의료 전문인력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원의 마련이나 국가의 적극적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42)
둘째, 정부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정책을 시행하거나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는데 공정성, 객관성과 명확성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한정된 재원 속에서 지방 공공의료기관을 건설하는 경우 특정한 지역이나 집단에게만 이익을 주거나 손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공공의료기관 건설의 결정은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명확해야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공공의료영역과 민간의료영역이 균형을 맞추고 역할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민간 의료영역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의료의 공공성이 대단히 취약하다. 여러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사실상 공공성 강화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간의료기관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야 하고, 이를 전제로 COVID-19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이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들을 계속 수행하면서 보건의료체계에서 민간의료기관과 업무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공공의료기관만의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협치가 필요하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 제도적 강화방안을 마련하는 경우에 생명과 건강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운영이 필요하지만 긴급한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 탄력적인 운영과 정부의 계획과 정책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신뢰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43)
2013년 진주의료원의 폐업으로 의료의 공공성 문제가 외부로 표출되면서 ‘착한 적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착한 적자는 지방의료기관이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적·사회적 안전망 유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수행, 지역사회의 공익적 활동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손실을 말한다.44) 우리나라에서 의료법 제33조에 의해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45) 그런데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대도시 중심의 민간의료기관으로 의료인력이 집중되고 환자들도 대도시로 원정 진료를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부분 지방의 중소 공공의료기관은 의료인력과 환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 공공의료기관의 재정적자는 우수한 의료인력의 유출, 시설 노후화로 연결되면서 의료서비스의 수준 저하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지방의 공공의료기관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정부는 지방의료기관의 운영평가와 진단, 회계지도와 감독 등 정책에 관한 총괄 임무를 수행한다. 지방의료기관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제는 지방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운영평가인데, 이 평가는 지방의료기관의 경영 상태, 지방의료기관이 수행하는 사업 중 공공보건의료사업이 차지하는 비중,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에 대한 기여도, 업무의 능률성과 고객서비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지방의료기관의 재정 손실이 커지면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적인 부담을 받게 되어 공공의료기관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현상 유지나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의료의 공공성 측면에서 착한 적자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충분한 재정지원과 의료기관의 평가에 공익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46)
그러나 착한 적자라 하더라도 계속 적자의 폭이 커지는 상황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에서 필요한 비급여를 모두 급여화하고 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재조정하게 되면 공공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도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되고,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인 부담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47)
공공의료기관의 양적 확대가 필요한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우선 적절한 병상을 공급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병상 공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7조48)·제19조49), ‘지역보건법’ 제10조50)·제13조51)·제14조52) 등에 보건소 등 지역보건의료기관의 설치·운영 및 지역보건의료사업의 연계성 확보에 필요한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들에는 보건의료자원의 관리와 관련된 내용은 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의료기관 또는 병상의 신설· 증설의 적합성을 판단하거나 규제할 기준과 수단 등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므로 충분한 병상 공급을 위해서는 우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병상 자원을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53) 그리고 공공의료기관을 민간의료기관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기능별 역할 부여가 필요하다. 국립대학의료원 규모의 의료기관은 광역진료권 내에서 공익적 교육과 연구중심의 병원으로 육성하여 권역 내 의료인력의 교육과 표준진료를 선도하고, 보건기관과 의료기관 그리고 국립대병의료원 간의 연계하여 연구와 예방사업을 시행한다. 중소 공공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과 차별화하여 의료의 공공성을 추구하기 적합하도록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해야 한다.54)
공공의료기관의 규모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료기관은 합리적인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질병 예방과 적정진료가 핵심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비용-저효율’의 낭비적 지출구조에서 벗어나 ‘적정 비용-고효율’의 지출구조로 개편하는 의료서비스 공급의 개선은 공공의료기관, 특히 지방의 소규모 공공의료기관이 계속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공공의료기관이 합리적인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지위와 역할을 갖기 위해서는 공공의료기관이 저소득층 진료를 담당하는 기관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고, 환자를 진료하기에 충분한 장비와 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55)
2002년 사스(SARS),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A(H1N1), 2015년 메르스(MERS) 등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할 때마다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시행착오를 겪다가 시간적·비용적 손실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2021년 현재의 COVID-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병원체 또는 이를 통해 발생하는 질병을 확인하여 기본적인 자료를 산출하고, 질병의 원인과 임상 연구 등을 포함한 질병 발생의 효과적인 감시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감염병이 발생한 경우의 대책이 미흡하기도 하고,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할 때도 특별한 대응 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영역에서 감염병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56)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할 때는 ‘지역보건법’으로 지역보건의료기관의 설치・운영 및 지역보건의료사업의 연계성 확보 등을 규정했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7조57)에 의해 감염병 전담병원을 설치할 수 있는데, COVID-19 상황에서 실제로 지정된 의료기관 중 상당수가 공공의료기관이라는 점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할 때마다 전담병원을 지정하게 되면 시행착오를 겪게 되거나 시간적·비용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을 감염병 전문의료기관으로 특성화하면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의료기관이 COVID-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는 것에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지 않은데,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손실 때문이다. COVID-19 확진자나 유사한 증상이 있는 환자는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기관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 다른 질환자들은 해당 의료기관에 출입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검사·진료·수술·입원 등을 할 수 없고, 이는 결국 경제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난 2020년 4월부터 감염병 전담병원 등 COVID-19 환자 치료의료기관의 손실을 신속하게 보상하기 위해서 매월 개산급(손실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이전에 잠정적으로 산정한 손실액 일부를 지급하는 것) 형태로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58) 그러나 손실보상금이 의료기관의 손실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 아니므로 특히 지방공공의료기관의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된 이후에 지정 전의 외래 또는 입원환자가 병원을 다시 방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보전받지 못하게 되는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59)
Ⅴ. 결론
COVID-19 대유행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게 되면서 외부활동이 위축되고 가정 내 체류하는 기간이 늘어났다. COVID-19 상황에서 의료영역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노력해왔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의 대응실패 경험을 통해서 조기 방역의 중요성을 인지했고 COVID-19의 위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조기에 적극적인 검사·자가격리 등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아직 대유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체계를 갖추고 신속한 검사, 진단, 역학조사, 치료 등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공공의료기관은 많은 공헌을 해왔고, 의료의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 수나 병상 수와 같은 공공의료부문의 기본적인 인프라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반대로 민간의료부문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논의하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법적인 논의를 통해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은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의료영역에서의 문제는 대도시 대형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편중,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 의료기관 간의 의료격차, 젊은 의료인의 지방 중소도시 의료기관 기피 등으로 의료의 공공성, 지방의료기관의 활성화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었다.
COVID-19 상황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논의도 함께 진행해야 하므로, 단순히 지방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여 병상 수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의료부문이 담당할 역할을 민간의료부문이 담당할 역할과 구분하여 독자성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공공의료기관만의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어 향후 발생할 또 다른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 정부는 국민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제도 시행을 위해서, 1) 의료의 사각지대와 보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서 국가의 재정적 지원 확대, 2)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의료 공공성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 공정성, 객관성, 명확성 유지, 3) 공공의료영역과 민간의료영역이 서로 균형을 맞추고 역할을 분담하여 COVID-19와 같은 위급한 상황 대비, 4)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경제적 손실, 소위 ‘착한 적자’의 공공성 기여에 대한 평가이다. 지방 공공의료기관의 재정적자는 우수한 의료인력의 유출, 시설 노후화로 연결되면서 의료서비스의 수준 저하와 만성적인 재정적자의 악순환으로 나타나는데, 공공의료기관의 평가에서 공익적 활동에 따른 불가피한 적자는 방만한 운영에 따른 적자와 구분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이다. 민간의료기관과 비교해서 아직 부족한 의료기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COVID-19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고, 환자를 진료하기에 충분한 장비와 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보건의료 영역에서 감염병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을 감염병 전문의료기관으로 특성화하면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1년 현재 COVID-19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언젠가 이 위기는 종식되겠지만 언제,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는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보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하고 강화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는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는 다른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고, 국가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