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인(仁)의 개념에 대한 인권법적 접근:

채형복 *
Hyungbok CHAE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법학연구원 연구위원
*Professor, Law School in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 Copyright 2022,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r 03, 2022; Revised: Apr 22, 2022; Accepted: Apr 23, 2022

Published Online: Apr 30, 2022

국문초록

인(仁)은 유학 혹은 유교를 이해하는 기본이념이자 핵심 개념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 인륜(人倫)을 내세우며, 인(仁)을 그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仁은 논어 전편을 관통하는 핵심주제이며, 그 실천 주체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논어에는 정작 仁의 개념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며, 공자도 仁에 대해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유교는 전근대적 사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기본적 인권의 부재는 유교를 비판하는 주된 근거로 원용되고 있다. 인권은 근대 유럽의 정치사상의 산물이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나 활동하였으므로 유교가 현대적 의미의 인권사상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유교에 대한 비판을 대변하기에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이 비판을 적극 수용하여 인권의 관점에서 유교가 가진 한계를 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현대 인권법적 관점에서 仁을 개념 정의하고, 인권유학의 성립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仁의 인권법적 실천 주체인 군자와 소인이 가지는 의미를 검토하고, 효제(孝悌), 극기복례(克己復禮)·선난후득(先難後得), 충서(忠恕)를 仁의 인권법적 실천방법으로 제시한다.

Abstract

Benevolence(仁) is the basic ideology and core concept for understanding Confucianism. In the Analects, Confucius puts forth the principle of humanity (人倫) as a principle to be followed in life, and takes benevolence as its ultimate goal. In a word, Benevolence is a core theme that runs through the entire Analects, and the noble man(君子) is the subject of its practice. However, the concept of benevolence is not clearly revealed in the Analects, and Confucius never directly mentioned benevolence.

In modern society, Confucianism is regarded as a pre-modern ideology. In particular, the lack of basic human rights is cited as the main basis for criticizing Confucianism. Human rights are a product of modern European political thought. Since Confucius was born and worked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it is also true that Confucianism does not contain human rights ideology in the modern sense. However, this position is too difficult to represent criticism of Confucianism. Rather, it is necessary to actively accept this criticism in order to examine the limitations of Confucianism from the point of view of human rights.

In this paper, this paper, the concept of benevolence is defined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human rights law, and the possibility of studying Human Rights-Confucianism is proposed. To this end, we examine the meaning of the noble man and the inferior man, who are the subjects of human rights law practice of benevolence. And we consider the four practical methods of human rights;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孝悌), overcome selfishness and return to the rituals(克己復禮), do the hard work first, then take care of your own profit later(先難後得), and loyalty and forgiveness(忠恕).

Keywords: 유학; 유교; 공자; 논어; 인(仁); 인권
Keywords: Confucianism; Confucius; the Analects of Confucius; Benevolence(仁); Human Rights

Ⅰ. 서론

유학(儒學) 혹은 유교(儒敎)란 “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그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는 전통적인 학문”이다.1) 이 사전적 정의는 유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인의 통념이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유학은 다양한 사상과 학풍을 바탕으로 형성, 발전되어 왔으며, 이를 명확하게 개념 정의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2) 유학에 대한 개념 정의의 부재 혹은 어려움을 떠나 그 중심에 공자란 인물이 있음은 분명하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생존한 시기는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가 천도하면서 시작된 춘추시대이다. 이 시기는 7개 내외의 크고 작은 국가들이 천하를 두고 다투었는데, 혼란이 수습되지 못하고 전국시대로 이어졌다. 기원전 221년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정치적 무질서가 정리되었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약 550년간 지속된 이 시기를 중국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 혹은 선진시대(先秦時代)라 부른다.

춘추전국시대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으로 인민들은 질곡에 빠져 형극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철기의 도입으로 전쟁 능력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상업과 농업이 발달하였다.3) 또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리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나 학파를 형성하여 중국사상의 꽃을 피웠다. 공자의 학설과 학풍을 따르고 연구하는 학자나 학파인 유가(儒家)를 비롯하여 묵가, 도가, 법가, 명가, 음양가, 종횡가, 병가, 잡가, 농가, 소설가 등 실로 다양한 학파가 활동하였다. 이 가운데 유가, 묵가, 도가, 법가를 지칭하는 유묵도법(儒墨道法)을 춘추전국시대 유학 혹은 선진유학(先秦儒學)의 4대 학파라 부른다.

유묵도법을 비롯한 다양한 학파가 형성되어 있지만 선진유학은 공자의 사상을 담은 논어(論語)를 핵심 경전으로 삼고 있는 유가에서 파생, 발전되어 왔다. 논어는 사서삼경(四書三經)4)의 하나로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논어의 편찬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공자 자신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나누어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논어는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5) 논어에서 공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 인륜(人倫)을 내세우며, 인(仁)을 그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仁은 논어 전편을 관통하는 핵심주제이며, 그 실천 주체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6)

유가의 대표적 경서인 논어에는 정작 仁의 개념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공자도 仁에 대해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仁은 유가가 지향하는 인륜과 그 실천주체인 군자가 갖춰야 할 기본덕목임은 분명하다. 그동안 유가로 대표되는 유학은 전근대적 사상이자 이념으로 간주되었으며, 특히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인권의 보장 관념이 부재하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7)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대 인권법적 관점에서 인륜의 핵심 주제인 仁의 개념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인권유학8)의 성립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 인권법적 관점에서 仁을 개념 정의하고(II), 仁의 인권법적 실천 주체인 군자와 소인에 대해 살펴본다(III). 그리고 仁의 인권법적 실천(이행)방법(III)에 대해 검토하고(IV), 결론에서 仁의 현대적 실천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인(仁)의 인권법적 개념

1. 서설

인권(human rights)이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갖는다고 생각되는 생래적이며 기본적 권리”이다. 이를 부연 설명하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국적, 인종, 종교, 언어, 문화, 성별, 출신, 신체적·정신적 조건 등에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게 인정되는 법적 지위가 있는데, 이를 인권이라 한다. 이와 같은 인권의 개념은 오늘날 보편적인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9)

하지만 인권의 개념은 근대사회에 형성된 것으로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시민계급은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자연법과 사회계약론을 사상적 무기로 하여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10) 대혁명 이전 시민들의 사회적 지위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신분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대혁명을 통하여 모든 시민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법적·정치적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근대사회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11)

이처럼 인권 개념은 국가가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전국가적·초국가적 권리(前國家的·超國家的 權利)라는 자연권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관념은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하며...”라고 규정하고 있는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전문을 비롯하여 국제인권규약 등 여러 인권문서에서도 수용되고 있다.12)

인권이 천부적 권리로서 인간의 ‘권리’을 내세우는 반면, 유학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사명을 인식한 바탕 위에서 인간의 ‘윤리’로써 인륜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우리 인간이 일생 동안 행하는 일은 仁이라는 한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仁이란 인륜을 사랑하는 일인데, 천하의 일 가운데 인륜을 벗어나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그는, “仁이란 한 글자는 논어 전체의 주재이다(仁之一字二十編主宰)”라고 말한다.13) 이를 현대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유학은 仁의 학문인 인학(仁學)이자 사람을 위한 학문인 인학(人學)이다. 또한 仁에 의거한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인권법(人權法)은 인권법(仁權法)으로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공자는 인륜에 바탕을 두고 仁이 실현되는 이상사회를 대동(大同)이라 불렀다.14) 한마디로 공자가 꿈꾸는 대동세상이란 모든 사람이 사리사욕을 극복하여 도덕과 예를 회복함으로써 현실에서 仁이 실현되는 사회이다. 그 仁을 실천하는 주체가 바로 군자(君子)이다.

공자도 논어에서 仁과 군자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공자는 仁의 개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논어에서 仁은 약 60장에 걸쳐 약 109회나 언급되고 있다. 논어가 총 12,700여자로 이뤄져 있음에 비춰볼 때 仁은 출현 횟수는 물론 여러 개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15) 따라서 아래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인권과 유학을 결합할 수 있는 핵심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2. 仁은 애인(愛人)이다.

仁은 애인,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仁을 체계화하고, 공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표현이 바로 애인이다. 흔히 공자의 사상을 ‘仁의 철학’으로 부르는데, 그 중심에 애인이 있다. 이 관점에서 仁은 곧 ‘애인의 철학’이다. 그 만큼 仁의 모든 덕목은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에 포함되고 귀결된다.16)

애인은 논어 안연편에 나온다. 번지가 仁을 묻자 공자가 답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17) 仁이란 인간 마음이 지니고 태어난 보편적인 덕이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보편적인 덕인 仁을 베푸는 것이다.18) 따라서 국적이나 신분 등에 따라 사람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仁과 애인이 아니다. 이 해석은 차별을 금지하는 현대인권법의 가치이념과도 전적으로 부합한다.

애인은 사람을 중시하는 공자의 인본사상으로 연결된다. 논어 향당편에 보면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공자가 퇴정하여 돌아와 보니 집안의 마구간이 불탔다. 공자는, “사람이 상했느냐?” 하고는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19) 이 일화는 사람을 중시하는 공자의 인본주의 혹은 휴머니즘을 대표하고 있다.

논어의 이 구절에 대해 주자는, “공자가 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이 상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말에 대해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고 주해하고 있다. 그리고는 “대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가축을 천하게 여기는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고 부연한다.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일과 사물을 사랑하는 일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막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일을 듣고는 오로지 사람이 다쳤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말에까지 물을 겨를이 없었다”20)는 장식(張栻)의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위 견해를 따르고 있다.

춘추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은 시대로 당시 말은 전차(戰車)를 끌 수 있는 주요 동력이었으므로 사람의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재산이었다.21) 이러한 현실이니 사람들은 사람보다도 말(물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에 길들여져 있었다. 공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도록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왕필(王弼)은, 공자가 “말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당시 말을 중히 여기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22)고 지적하고 있다. 왕필의 풀이는 물건 보다 사람을 중히 여기는 공자의 인본사상을 드러내는 대표적 예화라는 기존의 통설적 견해와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왕필에 따르면, 이 예화는 당시 사람들이 사람의 생명보다는 재산이나 물질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경계하는 사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 두 가지 해석에 대해 평가하면, 어느 입장에서 이 일화를 풀이하더라도 공자가 물질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마구간 화재와 같은 사고나 재난상황에서 인명구조를 우선함으로써 말(馬)로 대변되는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거나 차별해야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동물권과 동물복지가 인권의 새로운 영역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이다. 그런 만큼 오늘날의 시각으로 공자 당시의 현실과 현재를 단순 비교하여 공자가 사람에 비하여 동물의 생명을 차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3. 仁은 사람과 사람의 상호관계이다.

仁은 사람과 사람의 상호관계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본래 仁은 두 명(二)의 사람(人)으로 이뤄진 혹은 두 명의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人人)이다. 이처럼 仁이라는 글자는 처음부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공자가 내세우는 仁은 상호 호혜적 내지는 평등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가족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인간관계를 전제로 한 봉건적·전근대적 가치 이념이다. 공자는 주나라 군주였던 주공을 흠모하고, 봉건제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구조라고 생각했다. 봉건제는 왕을 중심으로 지배층인 제후, 대부 및 사(士)가 피지배층인 백성(인민)을 통치하는 체제를 말한다. 문왕은 봉건제 중심의 지배체제를 구축하면서 주나라 고유의 종법(宗法)을 모델로 삼았다.

종법은 중국 고대에 형성된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가족 질서를 사회 운영과 국가 통치의 기본으로 삼던 제도이다. 이 법에 따르면, 왕의 적장자만이 왕위를 계승하고, 적장자 아닌 아들은 제후나 대부가 된다. 주왕이나 제후 또는 대부가 되는 맏아들을 종(宗) 혹은 대종(大宗)이라 부른다. 적장자인 종자(宗子)와 구별하여 다른 아들은 별자(別子) 혹은 소종(小宗)이라 한다.23) 소종에 비하여 대종은 왕위와 가문을 계승하는 독점적 지위와 배타적 특권을 누렸다.24)

문제는 공자가 봉건제도의 해체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던 종법에 의거하여 자신의 주요 사상인 仁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이론적 논거로 삼은 것이다. 논어 안연편에서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군주는 군주 노릇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하는 것이다”25)고 대답한다. 한마디로 개별 인간에게는 각자에 어울리는 사명과 역할이 있으므로 그에 충실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의 이 생각은 정명(正名)론으로 정립된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를 하려고 하시니,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라는 자로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명칭(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26) 자로의 물음에 공자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자는 그 이유를, “위나라 출공은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그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모셔 이름(名)과 실제(實)가 문란했다.27) 그래서 공자께서 정명을 우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로 대표되는 인간관계는 인륜에서 나오고, 그 인륜은 예(禮)에 의거한 도덕적 실천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28)

공자사상에서 禮는 사회질서의 원리이면서 도덕적 실천이다. 그리고 그 禮는 현실에서 정치(통치 爲政)를 목표로 사회질서의 원리인 정명사상(正名思想)과 도덕적 실천론인 仁사상(仁思想)으로 나타난다.29) 정명과 仁은 사회질서의 원리이자 도덕적 실천인 禮가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한 양대 기둥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禮의 원리와 실천은 정명을 전제로 하나로 일치되어야 한다.30) 명분(이름)이 바르게 세워 실질(본질)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공자가 추구하는 사회는 성립할 수 없다. 정명이 도덕적 실천인 仁과 조응할 때 비로소 禮가 실현될 수 있다. “이름이 그 실제와 합당하지 않으면 말(言; 주의·주장)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그 실제를 고칠 수 없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양씨(楊氏)의 풀이31)는 공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후대로 가면서 공자의 군군신신부부자자로 대변되는 정명은 지배 권력의 기득권을 강화·고착화시키고 피치자인 백성(개인)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논리로 변질된다. 즉, 정명론은 군주와 신하, 부모와 자식 각자에게 ‘다움(혹은 답게)’을 내세워 형식에 얽매인 신분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는 등 기성권력의 지배구조를 위한 지배이론으로 활용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Ⅲ. 인(仁)의 인권법적 실천 주체: 군자와 소인

1. 군자란 어떤 사람인가

공자는 사람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仁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옳은 일(대의)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논어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구차히 삶을 구하여 仁을 해침이 없고, 그 몸을 죽이어 仁을 이룸은 있다.”32)

지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 신념에 따라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의로운 사람이고, 인인은 仁의 가치와 덕목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사와 인인은 공자가 지향하는 仁을 해쳐서는 아니 되고, 설령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이뤄야 하는 것이 仁이다. 이처럼 공자는 仁을 실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도덕적인 인간상33)으로 군자를 설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자는, “군자이면서 仁하지 못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소인(小人)으로서 仁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34)고 하면서 仁을 중심으로 그 실천 주체로 군자와 소인을 언급하고 있다.35) 이 관점에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중심으로 仁의 실천적 주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군자는 아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36)

첫째, 군자는 물질적 삶의 여유보다 공부 속에서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군자는 도(道)를 도모하고 밥을 도모하지 않는다. 밭을 갊에 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고, 학문을 함에 녹(祿)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군자는 도(道)를 걱정하고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는다.”37)고 말한다. 공자의 이 말에 대해 윤돈은, “군자는 그 근본을 다스리지 그 말단을 걱정하지는 않으니, 어찌 밖에 있는 것으로 근심하거나 즐거워하겠는가?”고 설명한다. “도(道)란 대체(大體, 마음)가 따르는 것이고, 먹을 것(食=밥)은 소체(小體, 耳目=몸)가 누리는 것이다”는 고금주의 뜻도 이와 같다. 군자에게도 밥(食)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군자는 배부름이나 거처할 때 편안함을 구하기보다는 배우기를 즐기고 도(道)을 중시하여야 한다는 취지라고 보아야 한다.38)

둘째, 군자는 말과 행동의 일치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다.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고, 실행은 민첩하고자 한다.”39)고 하였고, 헌문편에서도 “군자는 말은 신중하게 하고, 행동은 충분하게 한다.”40)고 말하였다. 공자가 말은 ‘어눌’ 또는 ‘신중’하게 하면서도 행동은 ‘민첩’ 또는 ‘충분’하게 하도록 요구하는 이유는 군자라 할지라도 말을 내뱉기는 쉬워도 힘써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량좌는, “말은 내뱉기 쉽기 때문에 어눌하고자 하고, 힘써 행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민첩하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언행일치는 군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임을 알 수 있다.

셋째, 군자는 자신의 도덕적 발전에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편안하게 해주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경건함으로 자기를 닦는 사람을 말한다”고 했다. 자로가 “이와 같을 뿐입니까”라고 되묻자, 공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서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공자는 이어 말하기를, “자기를 수양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오히려 병통으로 여기셨다”고 부연하고 있다.41) 자기 자신을 닦아(修己) 경건함을 갖는 것(以敬) 또는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것(以安人; 以安百姓)은 성군으로 추앙받는 요임금과 순임금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경건(敬)이 어떤 의미인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오규 소라이에 의하면, “경은 하늘을 공경하는 것(敬天)이다. 자기를 닦아 하늘을 공경한다”고 주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남을 편안하게 한다(安人)는 것은 효제(孝悌)와 돈목(敦睦)으로 구족(九族)을 친애하는 것이다. 백성은 백관과 만인을 말한다. 병통으로 여긴다는 어렵게 여긴다”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42)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공자는 자기를 닦는 것을 군자의 기본자세로 보고 있다. 군자에게 수기(修己) 혹은 수신(修身)은 공사적 활동의 판단기준이고, 평생 지켜야 할 가치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큰일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군자는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익적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넷째, 군자는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공자는 자하에게, “자네는 군자 유가 되어야지 소인 유가 되지 마라”43)고 말한다. 그리고는 “군자는 세상일에 관하여서는 가까이 할 것도 없고 멀리 할 것도 없다. 오로지 의로움에 따를 뿐이다.”44) 유(儒)는 유자(儒者)를 말한다. 공자는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로서 유자를 군자 유(君子儒)와 소인 유(小人儒)로 나누면서 그 판단의 기준은 의로움(義)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주자는 사량좌의 말을 인용하여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의(義)와 리(利)의 차이일 뿐이다”고 주석하고 있다. 공자의 이 말에 대해 다산은, “도를 배우고 시·서·예·악·전장·법도를 익히면서 도를 지향하면” 군자 유이고, “도를 배우거나 시·서·예·악·전장·법도를 익히지만 자신의 명성을 지향하면” 소인 유라고 말한다.45) 한마디로 주자집주에서 정자(程子)가 말하듯이 군자 유는 자기를 닦는 공부(爲己)를 하는 반면, 소인 유는 자기의 이익이나 명성을 위한 공부(爲人)하는 소인이다.

결론적으로, 군자는 仁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이다. 또는 군자는 이미 그 세계에 들어왔으나 다만 공자가 원하는 도덕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도 군자는 큰 덕과 두루 적용되는 법을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소인은 도덕, 즉 仁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다.46) 도덕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한 사람인 소인은 현실에서의 안온한 삶과 작은 혜택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는 말한다.

“군자는 큰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안온한 삶의 터를 생각한다. 군자는 두루 적용되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작은 혜택을 생각한다.”47)

회(懷)는 생각함이다. 군자는 큰 덕을 생각하고(懷德), 법을 두려워(懷刑)하지만 소인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안온한 현실에 안주하고(懷土), 작은 이익이나 혜택만을 생각한다(懷惠). 이처럼 공과 사에서 군자와 소인은 그 생각에서 크나큰 차이를 보인다. 공자는 군자가 지향해야 할 절대적 도덕가치기준으로 仁을 내세워 모든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가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2. 군자와 소인의 관계

공자는 仁을 중심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고, 仁의 실천 여부는 자기 자신(=개인)에게 달려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봉건적 신분제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에 따라 누구나 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공자의 주장은 근대 유럽에서 개인의 주체성 확립에 버금가는 가히 혁명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군자와 소인 양자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군자와 소인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도덕적 수양의 정도를 기준으로 양자를 주종의 관계로 파악하고 다분히 이분법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소인은 도덕적 수양의 정도가 가장 낮은 사람이다. 소인과 대비되는 인물이 대인(大人)이다. 군자는 이 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도덕적 수양의 상태가 부족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인물이다. 따라서 도덕 수양의 완성 상태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면, 소인 〈 군자 〈 성인 〈 대인 〈 천명의 순이다. 공자에게 성인은 만나볼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사람이고, 대인은 더욱 바라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논어에서 대인은 인간이 바라볼 수 없는 영역의 인물상인 셈이다. 공자는 군자가 두려워하는 인물로 ‘성인-대인-천명’으로 보고 있다.48)

둘째, 에도시대의 유학자 소라이는 군자와 소인의 관계는 정치제도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즉, 군자는 지배자·권력자·통치자이고, 소인은 피지배자며 권력이 없는 민초이자 피치자라는 것이다. 소라이의 이 주장은 군자와 소인의 관계를 철저하게 정치권력상의 위계관계로 보고, 양자를 수직적·계층적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양자를 지배자와 피지배자, 통치자와 피치자로 파악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의 봉건적 지배구조의 시대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49)

셋째, 위 두 가지의 견해에 대해 군자와 소인은 동일한 차원의 인간에 대한 가치평가를 나타내는 것50)으로 양자 모두 같은 위계서열 속에서 단지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51) 논어 이인편에서 군자란 큰 덕과 두루 적용되는 법을 생각하는 사람인 반면, 소인은 안온한 삶의 터와 작은 혜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공자의 말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인물상이다. 공자가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켜 사람의 유형을 나누어 강조하는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현실의 안온한 삶을 추구하는 ‘소인배’들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공자는 군자를 내세워 사리사욕보다는 인륜도덕의 보편적 가치이념을 추구하고, 인간관계와 사회질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하고 형평한 법이 적용되는 대동 세상을 꿈꾼 것이다.

위 견해 가운데 세 번째 주장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현대인권법의 기본원칙과 가장 부합한다. 하지만 이 주장을 하고 있는 김용옥의 견해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김용옥이 공자가 말하는 군자와 소인은 모두 같은 위계서열 속에서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기술한 바와 같다.

김용옥에 따르면, 군자와 소인이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만, 소인의 개념이 진정한 경멸이나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군자의 개념이 진정한 존경이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다른 도덕 가치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켜 양자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관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점에서는 적절하다.

하지만 소인의 개념을 ‘진정한 경멸’이나 ‘증오의 대상’으로 삼고, 군자의 개념을 ‘진정한 존경’이나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이분법적’ 접근 방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이에 반하여 군자와 소인은 도덕적 가치관이 다른 동일한 차원의 인간에 대한 가치평가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그의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공자에게 군자와 소인은 도덕적으로 지향하는 가치관이 다를 뿐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다. 비록 근현대법에서 말하는 개인의 주체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공자는 분명 군자와 소인 모두 차별 없이 대우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공자의 이러한 사상은 현대 인권법적 관점에서 보아도 가히 혁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Ⅳ. 인(仁)의 인권법적 실천(이행)방법

1. 효제(孝悌)

논어 학이편에서 유자(有子)52)는 “효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53)이라고 하였다. 공자도 위정편에서 서경(書經)을 인용하면서, “이 책에서 효에 대해 말하기를,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치에 베푼다’고 하였다.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니 어찌 벼슬을 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겠는가.”54)라며 유자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처럼 공자는 효제를 가정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가족윤리 혹은 도덕의무로 보고 있다.55)

공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와 사회질서의 근간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을 공경하는 효제이다. 이때 부모와 형은 좁게는 혈연으로 맺은 직계존속과 형제뿐 아니라 넓게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윗사람과 웃어른을 포함하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이렇게 보면, 논어에서 효제는 가족관계에 필요한 모든 수직적·수평적 질서를 총망라하는 핵심 원리로 제시하고 있다. 가족 간의 자연스런 사랑의 감정인 효제가 가정을 넘어 사회·국가·천하로 확산되면, 마침내 천하가 仁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효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는 유자의 말에는 그 뜻이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유교는 효제에 기반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정에 도덕의 기초를 두고, 그 감정을 자발적·자율적으로 확산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실천방식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56)

공자가 인의(仁義)정치의 기본모델로 삼고 있는 주나라 종법의 시작은 가족 혹은 가정이다. 국가(國家)라는 낱말에서 보듯이 유학에서 나라(國)는 가족 혹은 가정(家)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양자는 엄밀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국가는 가족의 확장형57)인 셈이다. 이런 면에서 공자는 직접 정권을 잡아 한 나라의 정사를 전담하는 위정(爲政)과 효제를 통하여 일상의 정치를 행하는 유정(有政)을 구별하고 있지 않다. 공자의 이 생각은 생활정치(life politics)로 바꾸어 불러도 좋다.58)

기든스에 따르면, 생활정치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제에 대한 논쟁과 토론의 사회적 성찰을 거치는 과정이며, 종국적으로 현대인의 자기(자아)실현과정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제에 대해 개인과 집단 상호 간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사회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개인의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시민의 활동이 바로 생활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공자가 말한 유정은 효제를 통하여 일상의 정치로서 생활정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효제는 가족 간의 관계에 기초하여 인을 실천하는 것으로 다분히 사적·개인적 차원의 윤리이다. 만일 인의 현실적 실천이 효제에 머물고 말면 개인과 사회질서는 사적 윤리에 의해 규율되고 만다. 이에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와 선난후득(先難後得)를 내세워 자칫 사적 윤리로 머물 수 있는 仁을 공적 차원으로 전환하고 있다.59)

2. 극기복례·선난후득
(1) 극기복례

仁을 인권법적으로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논어 안연편에서 仁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연의 물음에 공자는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안연이 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시길,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고 禮로 돌아가는 것이 仁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루를 극기복례하면 세상이 仁으로 돌아갈 것이다. 仁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니 남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하기를, “청컨대 그 조목을 묻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 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안연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청컨대 이 말씀들을 실천하겠습니다.”60)

예(禮)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혹은 규범을 말한다. 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하는 사회적 질서의 규범과 행동의 표준적 절차의 의미로 禮를 사용하고 있다.61) 仁을 실천하기 위해 인간은 우선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사적인 욕망(사욕 私慾)을 자제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 욕망을 자제하는 도덕적 기준이 바로 禮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仁을 실천하는 여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며 남 탓을 하지 말라고 단언한다. 그리고는 그 구체적 및 세부적 실천목록을 묻는 안연에게 말한다. “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 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후대로 가면서 禮는 종교적·제례적 의식과 결합하고, 인민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형식적 지배논리로 변질한다. 하지만 자신의 개인적 욕망 추구가 능력주의로 포장되어 정당화되는 현실은 사욕을 극복하고(克己) 예로 돌아가라(復禮)는 공자의 준엄한 가르침은 인권유학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2) 선난후득

선난후득 혹은 선난후획(先難後獲)은 극기복례와 함께 仁을 공적 윤리 차원에서 실천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말한다.

번지가 ... 仁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려운 것을 먼저하고, 얻는 것을 뒤로 여긴다면 仁하다고 할 수 있다.”62)

인자(仁者)는 남보다 앞장 서 어려운 일을 처리하고(先難), 그 공로로 생기는 이익을 얻는 것은 뒤로 제쳐놓는(後獲) 사람이다. 이때 획(獲)은 얻음(得)을 말하니 선난후획을 선난후득이라 하기도 한다.63) 이 점에서 선난은 극기이고, 후득은 복례이다. 따라서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혹은 극복한다”는 극기(克己)와 “어려운 것을 먼저한다”는 선난(先難)은 모두 仁을 사적 윤리의 차원에서 공적 윤리의 가치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이와 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탕으로 禮로 되돌아가고(즉, 회복하고; 復禮), 얻는 것을 뒤로 미루는 것(後得)이야말로 仁을 실천하는(爲仁)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공자는 공적인 도덕규범 혹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仁이 된다고 말하여, 仁이 사적·개인적 윤리로 전략하는 것을 경계했다.64)

3. 충서(忠恕)

효제가 인의 사적 윤리이고, 극기복례와 선난후득이 공적 윤리라면, 충서는 仁을 실천하는 황금률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仁의 최종적 실천원리로 충서를 제시하고 있다.65) 한마디로 충(忠)이란 마음(心) 혹은 마음의 본바탕(心地)이 올곧고 굳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다(中)는 뜻이고, 서(恕)란 남의 처지에 서서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충과 서는 논어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공자는 충보다는 서를 보다 많이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서란 서로의 입장이나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관용의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서를 중시하는 공자의 이 생각은 여러 곳에서 확연히 드러나 있다.

논어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말한다. “한마디로 평생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66) 만일 사람이 자신과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서(恕)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견지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바른 깨달음인 도(道)와 멀지 않다. 이에 대해 공자가 말한다. “參아, 나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 공자의 이 말에 증자가 “예.”하고 대답했다. 공자가 나가자 문인(門人)들이 “무슨 말씀입니까?”하고 물으니, 증자가 대답했다. “부자(夫子)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67) 공자 자신도 대학(大學)에서 “충서는 도에서 멀지 않으니 나에게 베풀어짐을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단언하고 있다.68) 이처럼 공자에게 충서는 곧 자신이 지향하는 ‘한 가지 이치로 만 가지 일을 꿰뚫는 도’(吾道一以貫之)로 간주될 만큼 충서는 인도(仁道)를 실천 여부를 판단하는 가늠자와 같다.

그렇다면 이 충서를 현실적으로 실행하는 구체적 방법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을 척도로 하여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혈구지도(絜矩之道)이다.69)

공자는, 충서는 혈구지도라고 하면서 군자가 남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마음 없이 仁을 내세우지 말라고 경계한다.70) 즉, 공자는, 남에게 무엇을 하도록 권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실행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소인은 남에게 추궁한다.”71) 이를 달리 말하면, 군자는 자기 스스로가 仁을 실행함으로써 비로소 남에게도 仁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자는 소인(小人)이 하는 짓은 곧잘 군자와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하면서 군자에게 仁을 실행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72)

공자의 이 생각은 군자는 소인에 비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73) 군자는 높은 사회적 신분 혹은 지도층 인사이므로 소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 한마디로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또는 군자는 군자답게 처신해야 한다. 소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와 신분 혹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만큼 군자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군군신신부부자자를 지향하는 공자의 사상을 수용하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군자의 바른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Ⅴ. 결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의 상호관계에 바탕을 둔 仁이 어떤 이유로 정치적 억압구조로 작용하게 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경일은 그 원인을 ‘처음부터 거짓을 안고’ 출발한 유교의 태생에서 찾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유교는 쿠데타로 왕권을 찬탈한 조갑이라는 한 중국인 사내의 정치적 탐욕을 감추려는 목적 아래 출발했다. 그 후 이 정치적 사건은 도덕적으로 위장되어 전해오다가 공자에 의해 전해졌다. 공자는 사건의 내면에 숨겨진 불순한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지 못한 채 도덕만을 외쳐댔다. 그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74)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학은 많은 문제점이 있고, 현대사회에 적용되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살고, 모든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공자를 죽이지 않고도 나라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론의 하나가 인권적 시각에서 유학을 재해석하고 재적용하는 ‘인권유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유학의 관점에서 仁을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능근취비(能近取譬)를 그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능근취비란 자기 자신 가까운데서 일어나는 사실에 비추어 남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로 역지사지와 일맥상통한다. 논어 옹야편에서 제자 자공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공자는 仁의 실천 방법으로 으로 능근취비를 강조한다.

자공이 말하기를,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능히 대중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길, ”어찌 仁일 뿐이겠는가? 반드시 聖일 것이다. 요순도 그것을 病으로 여기셨다. 무릇 仁者는 자기가 입신하고 싶음에도 남도 입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기가 영달하고 싶음에 남도 영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능히 가까운 데서 취하여 깨닫는다면 仁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75)

공자가 말하듯이 현실의 삶에서 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까운데서 취하여 깨닫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仁이 지향하는 대상은 백성, 즉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이다.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 연민의 마음으로 대중을 구제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곧 仁을 실천하는 것이다. 공자는 그런 정치는 仁을 넘어선 聖이라고 단언한다. 인자(仁者)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인자는 자기가 입신하고 싶음에도 남도 입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기가 영달하고 싶음에도 남도 영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자의 이 말은 仁이 현대적으로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유학이 인권과 통하는 사상이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Notes

1) 출처: 고려대한국어대사전(유학). 유교(儒敎)는 불교, 기독교와 같은 종교로 봐야 할 것인가? 유교도 조상에 대한 제례를 모시고 중시하는 등 신이나 초자연적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에 따른 종교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교의 교(敎)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 혹은 ‘신앙’보다는 ‘가르침’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유교로 써야 할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유학으로 통일하여 사용한다.

2) 유학의 정의에 관한 한중일의 대표적 사례에 대해서는, 신정근, 「인권유학」(유교문화연구총서 19), 유교문화연구소, 2017, 17-29쪽. 신정근 교수는 유학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유학은 사람이 전승 문화를 평생 학습하여 삶의 제도로 습관화시키고 내재적 역량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질을 통제하고 부족하고 과도한 부분을 변화시켜 일상과 정치 영역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상생과 평화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가치 체계이다.” 신정근, 같은 책, 35쪽.

3) 한성구, 「원시유교: 동아시아 문명의 축」(살림지식총서 590), 살림, 2020, 39쪽.

4) 논어·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를 사서(四書),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 혹은 주역(周易))를 삼경(三經)이라 한다.

5) 「한서」에 의하면, 한나라 때에는 세 가지 종류의 논어가 전해오고 있었다 한다. 제(齊)나라 사람들이 전해온 제논어, 노(魯)나라에서 전해 온 노논어, 그리고 공자의 옛집 벽 속에서 나온 고문(古文)의 논어가 그것이다. 지금 전해지는 논어는 전한 말의 장우(張禹)가 노논어를 중심으로 편찬한 교정본(校定本)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논어(論語))

6) 임헌규, 「3대 주석과 함께 읽는 논어 III: 고주, 주자 집주, 다산 고금주」,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20(이하, 임헌규 III), 202쪽.

7) 문병도는 유교가 오늘날 비판받는 이유를 1) 권위주의와 그 억압성: 효 문화에 기인하는 수직적 명령과 복종, 의사결정의 경직성, 2) 가족주의와 그 억압성: 여성에 대한 억압과 남성중심주의, 그리고 혈연중심주의 및 배타적 집단주의, 3) 도덕적 이상주의와 그 억압성: 도덕과 무관한 다양한 욕구의 자유로운 추구를 억압하는 도덕적 엄숙주의와 이상의 강조로부터 나타나는 위선적 현실, 4) 정치, 학술계의 무오류주의와 배타성: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근본주의로부터 나타나는 토론과 비판에 대한 억압, 당쟁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타방에 대한 정치적 폭력 등으로 제시한다. 문병도, “전통적 유교와 다원성의 억압”, 「중국학보」 제48권(2003), 한국중국학회, 560쪽.

8) ‘인권유학’이란 표현은 신정근 교수가 펴낸 상기 「인권 유학」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권과 유학의 결합가능성’을 전제로 ‘인권 유학’을 제안한다. 하지만 유학자로서 인권(법)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탓인지 ‘인권 유학’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과 분석은 시도하고 있지 않다.

9) 채형복, 「국제인권법」(개정3판), 높이깊이, 2020년, 23쪽.

10) 김병묵·윤명선, 「인권과 역사」, 형설출판사, 1987년, 7쪽.

11) 채형복, 앞의 책, 31쪽.

12) 채형복, 위의 책, 23-24쪽.

13) 임헌규 III, 위의 책, 221-222쪽.

14) 「예기」 예운편(禮運篇)에는 공자가 그리는 대동사회(大同社會) 혹은 대동세계(大同世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세계에서는 천하가 공평무사하게 된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재주 있는 자가 정치에 참여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함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부모만을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다. 나이든 사람들이 그 삶을 편안히 마치고 젊은이들은 쓰이는 바가 있으며 어린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고 홀아비·과부·고아, 자식 없는 노인, 병든 자들이 모두 부양되며, 남자는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갈 곳이 있도록 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들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으니 이를 대동이라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동세계(大同世界))]

15) 임헌규 III, 위의 책, 202쪽.

16) 김지수, 「선진법사상사」, 전남대학교출판부, 2014년, 33쪽.

17) 논어, 안연: 22-1.

18) 임헌규, 「3대 주석과 함께 읽는 논어 II: 고주, 주자 집주, 다산 고금주」,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20(이하, 임헌규 II), 247쪽.

19) 논어, 향당: 12.

20) 이토 진사이(최경열 옮김), 「논어고의」, 그린비, 2016년, 361쪽.

21)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3」, 통나무, 2019년, 216쪽.

22) 이한우, 「논어로 논어를 풀다」, 해냄, 2021년, 700쪽.

23)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종법 宗法)

24) 공자의 이 생각은 중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정치의 성패는 사람에 달려 있다. 사람을 취함은 몸으로서 할 것이요, 몸을 닦음은 도(道)로서 할 것이요, 도를 닦음은 仁으로서 할 것이다.

24) 仁은 人이니 친족을 친애함이 크고, 의(義)란 의(宜)이니 어진 이를 높임이 크다. 친족에 대한 친애의 강살(降殺)과 어진 이에 대한 높임의 등차(等差)가 예(禮)의 발생근거이다.” (중용 4-2)

25) 논어 안연: 11-2. 일반인에게 이 말은,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여, 이 말은 임금과 신하와 부모와 자식이 각자 제구실을 다하는 것을 뜻한다. 이경무, “공자의 정명사상 연구”, 인문논총, 20권, 1990.12.,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8쪽. 마찬가지로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신하가 인군을 사랑하고, 목민관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모두 仁이다”라고 주해하고 있는 다산의 말도 같은 의미이다.

26) 논어 자로: 3.

27) 주자는 호인(胡氏)의 말을 인용하여 공자가 자로에게 정명을 강조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위나라 세자 괴외(蒯聵)는 그 어머니 남자(南子)의 음란함을 부끄러워하여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국외로 도망갔다. 영공(靈公)은 공자 영(郢, 둘째 아들)을 세우려 했으나 영이 사양했다. 영공이 죽자 부인이 영을 세웠지만, 또 사앙했다. 이에 괴외의 아들인 첩(輒)을 세워 괴외를 막았다. 저 괴외는 어머니를 죽이려 해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첩은 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았으니 모두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니 이들은 나라를 가질 수 없음이 명백하다.” 임헌규 II, 앞의 책, 268쪽.

28) 논어 안연편에 언급된 “군군신신부부자자”는 공자의 ‘정명’ 사상의 구체적 사례로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자의 사회 정치적 관심을 ‘정명’의 관점에서 그의 자아수양론이나 현실 지향적 성격과 관련지어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오상현, “「논어」 ‘정명’의 현실 지향적 독해”, 양명학, 54, 2019.9., 301-326쪽.

29) 이경무, 앞의 논문, 212쪽.

30) 이경무, 위의 논문, 212쪽.

31) 임헌규 II, 앞의 책, 267쪽.

32) 논어 위령공: 8.

33) 임헌규 III, 앞의 책, 202쪽.

34) 논어 헌문: 7.

35) 임헌규 III, 위의 책, 207쪽. 임헌규는 仁의 실천주체로 군자만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소인도 仁의 실천주체로 보아야 한다.

36) 본고에서 분석하는 군자의 개념은 진함, 위의 논문, 7-8쪽을 참고하여 필자가 보충한 것이다.

37) 논어 위령공: 31.

38) 논어 학이: 14; 이인: 2; 이인: 9; 이인: 15; 위정: 18 등에서도 공자는 같은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39) 논어 이인: 24.

40) 논어 헌문: 14.

41) 논어 헌문: 45.

42) 임헌규 II, 524쪽.

43) 논어 옹야: 13.

44) 논어 이인: 10.

45) 임헌규 III, 623쪽.

46) 진함, “공자의 ‘군자’: 최선의 마음 상태를 가진 자”, 동양철학, 2019.12., 제52권 1호, 8쪽.

47) 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자왈, 군자회덕 소인회토. 군자회형 소인회혜). 논어 이인: 11.

48) 진함, 위의 논문, 8쪽.

49)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2」, 통나무, 2019, 166-168쪽.

50)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3」, 통나무, 2019, 383쪽.

51)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2」, 위의 책, 168쪽.

52) 제자 유약(有若)을 말한다.

53) 논어 학이: 2. 원문은,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54) 논어 위정: 21. 원문은, 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書』云: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55) 최문기, “‘효제’의 확장과 보편윤리: 공맹사상을 중심으로”, 효학연구, 14, 2011.12., 3쪽.

56) 임헌규 III, 앞의 책, 208쪽.

57) 임헌규 I, 앞의 책, 241쪽.

58) 기든스에 의하면, 생활정치란 “지역 및 지구적 논쟁 그리고 내부준거 체계의 현대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실현의 정치”를 말한다. 즉 그가 말하는 생활정치에서 정치란 국가의 통치영역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을 말하는 협의의 정치는 물론 이와 대립하는 이해나 가치가 충돌하는 논쟁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보는 광의의 정치를 포괄하고 있다. 남재걸, “‘생활자치’ 개념 정립을 위한 시론적 고찰”, 지방행정연구, 제32권 제3호(통권 114호), 2018.9., 17쪽.

59) 임헌규 III, 앞의 책, 208쪽.

60) 논어 안연: 1.

6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禮)

62) 논어 옹야: 20

63) 임헌규 III, 앞의 책, 656쪽.

64) 임헌규 III, 앞의 책, 209쪽.

65) 임헌규 III, 앞의 책, 209쪽.

66)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 논어 위령공

67) 논어 이인: 15.

68) 忠恕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충서위도불원, 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 중용 13-3.

68)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서 범순인(范純仁)은 말한다. “평생 배운 것 중에서 오직 충서(忠恕) 이 두 글자만을 얻었다. 이 충서의 도는 일평생 두고두고 쓰면 쓸수록 깊은 맛이 있다.”

69) 대학 제10장

70) 맹자는 공자의 이 충서(忠恕)를 계승하여 “사람은 누구나 차마 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으로 표현하고(맹자 공손추 上: 6), 사단(四端)으로 발전시킨다. 사단이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란 뜻이다. 맹자는 네 가지 마음씨 중에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인(仁)의 실마리(端)로 본다. 맹자는 사단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70) “측은(惻隱)해 하는 마음은 인(仁)의 실마리요, (惻隱之心, 仁之端也)

70) 불인(不仁)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은 의(義)의 실마리요, (羞惡之心, 義之端也) 사양(辭讓)하는 마음은 예(禮)의 실마리요, (辭讓之心, 禮之端也)

70) 옳고 그름(是非)을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실마리이다.(是非之心, 智之端也.)

70) 사람이 네 가지 단서(四端)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단(四端)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者)는 스스로를 해(害)하는 자(者)이며, 또 자기 임금더러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者)는 자기 임금을 해(害)하는 자(者)이다.

70) 무릇 나에게 있는 이 사단(四端)을 모두 미루어 넓혀 채울 줄 안다면,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아오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일 채울 수 있다면 온 천하를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하고, 그것을 채우지 못한다면 제 부모조차도 섬기지 못할 것이다.”

71) 君子有諸己 而後求諸人(군자유저기 이후구저인). 大學 제9장 4.

72)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서 범순인(范純仁)이 제자를 훈계한 아래의 말에는 군자가 가져야 할 충서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 있다.

72) “남을 질책함에 있어 엄중한 것처럼 남을 질책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질책할 일이다. 또 자기에게 대해서는 관대하나 그와 같은 충서의 마음을 가지고 남을 대할 일이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무릇 성현의 지위에 도달하기는 어렵지 않다.”

72) “세상 사람들은 자기는 어리석으면서도 사람을 질책할 때는 매우 자세한 데까지 밝히려 한다. 반대로 총명한 사람은 자기의 과실에 대해선 어떻게 해서든지 모른 체하려 한다. 이것이 인정(人情)의 결점이기도 하다.”

73) 이와 관련하여 다산 정약용은 고금주에서 이미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어렵고 고된 일을 남보다 먼저하고, 이익을 얻는 일은 남보다 뒤에 하는 것은 서(恕)이다. 힘써 서(恕)를 행하면, 仁을 구함이 이보다 더 가까운 것은 없다.” 임헌규 III, 앞의 책, 656쪽. 다산은 선난후득과 극기복례를 충서(특히 서)와 연결함으로써 주자를 비롯한 기존의 입장보다 훨씬 앞선 해석태도를 보이고 있다.

74)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바다출판사, 1999, 6-7쪽.

75) 논어 옹야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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