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한비자의 법과 법치(法治)사상의 핵심 내용과 쟁점

채형복 *
Hyung Bok Chae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법학연구원 연구위원
*Professor, Law School in Kyungpook Nat’l University

© Copyright 2023,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l 02, 2023; Revised: Jul 24, 2023; Accepted: Jul 24, 2023

Published Online: Jul 31, 2023

국문초록

중국 전국시대 말기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는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에 의거한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제국 체제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엄형주의에 의거한 법률만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주된 관심은 국가보다는 군주 1인에 대한 권력의 집중에 있었다. 오늘날 그의 법치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치주의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적 견해와는 달리 현대적 의미에서 그의 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본고에서는 한비자가 주장하는 법의 성질과 법치사상의 핵심 내용과 구조를 살펴본다. 또한 그의 사상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대법의 관점에서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Abstract

Han Fei-tzu, a legal thinker in the late Warring States period of China, argued that a strong centralized imperial system should be formed based on the rule of law based on the name of the sentence and the law.

Han Feizi's rule of law can be said to be a legalistic absolutism based on severe punishment. Han Feizi's main interest was in the concentration of power in the hands of the monarch rather than the state. There are a number of problems in accepting his rule of law theory as it is today. However, there is also a view that his philosophy should be re-evaluated from a new perspective in the modern sense, unlike the above critical view of Han Feizi's rule of law.

This paper examines the nature of the law and the core content and structure of Han Feizi's rule of law theory. It also analyzes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his philosophy and evaluates it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law.

Keywords: 한비자; 법가(法家); 법치주의; 엄형주의; 신상필벌
Keywords: Han Feizi; Legalism; Rule of Law; Severe Punishment; Reward and Punishment

Ⅰ. 서론

연쇄살인이나 아동성범죄 등 소위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언론에서는 사형제를 중심으로 법(률)을 강화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의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범죄자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조각상은 판사는 정의의 관념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하게 법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받아야 한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이자 기본이념이기도 하다. 이처럼 법과 법치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원칙이다. 만일 법과 법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수 있고, 개인의 인권도 보장받을 수 없다. 법과 법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 강력한 법치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한비(韓非, 기원전 280년?∼기원전 233년?)다. 그는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한비자(韓非子)」를 저술한 정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한(韓)나라의 공자(公子) 가운데 한 명으로 순자(荀子)에게 배웠다고 한다. 한비는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을 익혀 중앙집권적 제국 체제를 이끈 법가(法家) 이론의 집대성자로 평가받고 있다.1)

한비자는 전제군주에 의한 무단정치를 옹호하였으며, 법과 법치를 바탕으로 군주에 의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구축을 위한 사상을 제시하였다. 한비자는 인의(仁義)의 정치로는 부국강병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엄형주의(嚴刑主義)에 기반한 강력한 법치주의를 통치와 지배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진나라는 건국 1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한비자의 법치사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를 다스리고 평정하는 방법으로는 적합하지만 평화로운 시대를 다스리는 통치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2)

하지만 한비자의 법치사상이 가진 장점도 적지 않다. 그는 국가의 안정과 공공의 이익은 군주가 법(法)의 기반 위에서 술(術)을 활용하고 세(勢)를 확립하는 것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법의 확립으로 백성과 신하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법을 통한 관료제의 확립으로 정권이 유지되며(法術), 법과 술의 확립으로 군주의 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법·술·세가 군주에게 집중되게 되어, 부국강병을 기초로 한 국가의 안정과 공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3)

인의의 정치를 추구하는 유가가 보기에 상벌에 의거한 한비자의 법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로 패왕에 의한 전제정치가 행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강력한 법규범의 제정으로 사회의 불안을 해소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한비자의 법치는 상당히 현실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유학을 통치이념의 기반으로 건국한 조선은 유교국가를 표방했으나 지배와 통치를 위한 실질적인 이념은 법가사상을 따랐는데, 이를 내유외법(內儒外法)이라 한다.

하지만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공식적으로 법가를 표명한 적이 없다. 유가의 대표적 경서인 사서삼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저서가 발간되었으나 「한비자」 주석서는 한 권도 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왕도정치를 표방한 조선도 현실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는 강력한 법치를 내세우는 법가사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법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법가사상이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공맹이 지향하는 유가사상과 충돌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또한 강력한 법과 법치를 통한 왕권의 강화는 군신공치(君臣共治)의 근간을 위협할 뿐 아니라 백성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신분제의 근간을 뒤흔들 우려도 있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성리학을 정치의 기본이념으로 삼되 실질적인 통치와 지배는 법가의 법치에 의거하는 ‘내유외법’을 채택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임금과 관료들의 고민이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법과 법치는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원칙일 뿐 아니라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핵심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패도에 의한 전제정치가 행해질 가능성이 높고, 개인에 대한 인권의 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한비자의 법과 법치사상이 현대 인권법의 측면에서 가지는 의미와 한계를 검토하기로 한다.

Ⅱ. 한비자가 바라보는 법의 성질

1. 서설

“법은 명확히 드러날수록 좋고, 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法莫如顯 術不慾見).”4)

“나라는 언제까지나 늘 강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나 늘 허약할 수도 없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도 강해지고, 약하면 나라 또한 약해진다.”5)

위에 인용한 문장에는 법에 대한 한비자의 기본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던 전국시대는 난세 중의 난세였다. 한비자는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에 신도의 세(勢)를 더하여 법술세(法術勢)를 바탕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법과 법치이론을 수립하였다.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상앙(商鞅, 본명: 공손앙(公孫鞅), B.C.390∼338)의 법(法)에 의거한 엄중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상앙이 말하는 법은 백성(民)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자 통치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기본 장치인 성문법을 지칭한다. 상앙은, 모든 성문법은 언제나 공개적으로 선포되고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무차별적인 성문법의 적용과 준수 및 극단적인 법치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주장이 “형벌로써 형벌을 없앨 수 있다”는 이형거형(以刑去刑)이다.

하지만 군주가 아무리 강력한 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술(術)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군주의 관료 통제술을 제신술(制臣術) 혹은 치신술(治臣術)이라 하는데, 한비자는 신불해(申不害, B.C.440∼337)의 술(術)을 적극 수용한다. 술과 법의 관계에 대해 한비자는,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 앉은 채 이목이 가리게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워진다.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제왕이 갖춰야 할 도구이다”라고 보고 있다.6)

또한 한비자는 군주의 위세, 즉 권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도(愼到, B.C.350∼275)의 세(勢)를 수용하였다. 군주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본 비결은 도덕성이 아니라 존엄한 위세라는 것이다. 신도의 주장은 세를 강조하면서도 술과 법을 숭상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군주가 통치를 하려면 술과 법만으로는 부족하고 세를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신도의 세(勢)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군주가 가지는 권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한비자에 따르면, 군주는 법을 밖으로 드러내고, 술은 안으로 감추고 숨겨야 한다. 즉, 법은 문서로 엮어 관부에 비치해 두었다가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하고, 술은 오직 군주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여러 증거와 대조해가며 은밀히 신하들을 통제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야 한다. 군주는 법술세를 함께 사용하되 현실정치에서 공(公)과 사(私)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해야 하는데, 이를 공사지변(公私之辨)이라 한다. 한마디로 군주는 권세를 바탕으로 법과 술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고 통치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이처럼 한비자의 법술세에 의거한 법과 법치는 평화 시보다 특히 난세에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비자」가 ‘난세 리더십의 성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비자가 바라보는 법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2. 법은 인의변지(仁義辯智)와 예(禮)를 대체하는 것이며, 사(私)적인 것이 아니라 공(公)적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예치(禮治)에 대하여 법치(法治)를 주장하였다. “서언왕은 인의를 행했지만 서나라는 망했고, 자공은 언변과 지모가 있었지만 노나라는 영토가 깎이고 말았다”며 한비자는 “무릇 인의, 언변, 지모는 나라를 지탱해주는 수단이 못 된다”고 단언한다. 만일 서나라와 노나라가 각각 서언왕의 인의와 자공의 지모를 버리고, 만승의 대국인 초나라와 제나라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길렀다면 두 대국의 야욕도 이내 펼칠 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한비자의 생각이다.7)

따라서 법치가 바로서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주는 ‘법에 근거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도(君道)다. 또한 군주는 반드시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제를 분명히 해 사사로운 온정을 물리쳐야 한다. 이것이 군주의 공의(公義)다. 군도와 공의는 오로지 군주만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신하가 사적인 행보로 붕우들에게 믿음을 얻고, 상을 내려 권장하며, 벌을 주어 금지하는 등의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 이것은 신하들의 사사로운 사의(私義)이므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만일 신하들이 사사로운 의리를 행하면 나라는 곧 어지럽게 되고,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진다. 공과 사의 구분을 엄히 해야 하는 이유다.8)

한비자는 군주의 공사(公私) 구분과 법집행은 엄정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한비자」 「경문(經文) 2」 치강(治强)에서, “잘 다스려지고 강성해지는 것은 법이 제대로 행해지는 데서 비롯되고, 나라가 약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법을 사사로이 행한 데서 비롯된다”며 “군주가 이를 명확히 알면 상벌을 바르게 시행하고,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인애(仁愛)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작위와 봉록은 공에 따라 얻고, 형벌은 죄에 따라 받는다”는 신상필벌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것을 강조한다. 신하가 이를 분명히 알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공을 세우고, 군주에게 사사로운 충성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비자가 말한다.

“군주가 평소 무자비할 정도로 법의 집행에 철저하고, 신하가 평소 불충할 정도로 공을 세우는 데 철저하면 군주는 가히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9)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한 현실에서 한비자의 이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하지 않을 군주가 어디 있겠는가. 한비자는 군주들에게 법과 법치를 앞세워 신상필벌이라는 잣대로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론적·현실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3. 법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량형적 측정과 평가의 수단이다.

법은 상벌의 기준으로 군주에게 공적에 따라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절대권한을 부여한다. 군주는 이 권한을 이용하여 상벌을 보상과 제재(신상필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점에서 법은 상벌양정(賞罰量定)의 기준이다.

한비자가 바라보기에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고,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을 판단하는 잣대는 두 가지밖에 없다. 형벌을 무겁게 하고 포상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길이요, 정반대로 포상을 남발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길이다. 만일 이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고 시행하면 백성은 상을 받기 위해 목숨마저 바친다는 것이다.10)

이처럼 군주가 백성에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군주가 백성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형벌을 가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인은 백성을 다스리면서 백성의 근본이익을 고려하는 까닭에 백성의 욕망에 따르지 않고, 백성의 이익을 앞세울 뿐이라는 게 한비자의 주장이다.11)

일찍이 상앙은,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요, 형벌로써 더 많은 형벌이 생기도록 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以刑去刑 國治 以刑致刑 國亂)”12)라며 법치의 기본원칙으로 이형거형과 이형치형을 제안하였다. 이형거형이란 가벼운 죄에 대해서도 중형을 내림으로써 백성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여 쉽게 죄를 짓지 않을 것이므로 형벌을 쓰지 않으려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또한 이형치형이란 무거운 죄에 대해 가벼운 형벌을 내림으로써 백성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지 않아 쉽게 죄를 짓게 되므로 형벌을 써서 도리어 형벌을 내릴 일이 자꾸 생겨나게 해야 한다는 견해이다.13)

하지만 상벌양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형벌과 포상의 한계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한비자도 이 점을 인식하여 명확한 한계의 존재 유무는 나라의 흥망성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치고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자는 없다. 그럼에도 존속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망하는 나라도 있다. 망하는 나라는 바로 군주가 상벌을 행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군주가 형벌과 포상의 한계를 정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정하고 단일한 잣대를 쓰면 백성들이 법도를 존중하고, 크게 두려운 나머지 감히 금령을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법에 저촉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감히 과분한 포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 상태가 되면 굳이 상벌을 시행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14) 그러므로 군주는 벌주어 죽이는 형(刑)과 칭찬하여 상주는 덕(德)이라는 칼자루를 단단히 붙잡고 놓쳐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군주는 형과 덕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쥐고 휘둘러 신하와 백성이 자신의 권위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15)

4. 법은 분명하고 엄정해야 한다.

“엄격한 형벌은 법령을 철저히 수행케 하고, 백성들을 징계하는 게 목적이다.”16)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는 법은 백성이 행하기 쉽고 분명해야 하며, 또한 엄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에 관한 한비자의 법사상을 대표하는 유명한 말이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는 ‘법불아귀 숭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이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므로 법을 집행할 때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차별함이 없이 마치 자를 대어 먹줄을 긋듯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군주가 법술과 형벌을 엄하고 공정하게 시행하면 아무리 범 같은 신하일지라도 스스로 겁을 먹고 온순해질 수밖에 없다. 한비자는, 이처럼 법술과 형벌이 바르게 시행되면 범도 사람으로 변해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17)

현대법률용어로 법불아귀 숭불요곡은 ‘법 앞에 평등’으로 대표되는 평등주의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출신, 가족관계, 교육, 병역, 거주, 신념, 기타의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법 앞에 평등은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를 통해 실현된다. 법치주의 아래서 국가의 모든 권력은 법에 의해 제한되고, 법 앞에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 원칙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한비자도 이 점을 인식하고 군주도 법에 구속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비자의 법치사상을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이란 모든 사람(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군주 앞에서 복종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한비자는 만민을 군주의 지배권 아래 하나로 묶어두기 위하여 형벌권의 대상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18)

이처럼 한비자는 법을 엄히, 그리고 공정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기본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엄형주의(嚴刑主義)라 한다. 법이 “곧바로 5리 범위 내에서 엄히 시행될 수 있으면 왕자(王者)의 칭송을 들을 수 있고, 9리 범위 내에서 엄히 시행될 수 있으면 강자(强者)가 될 수 있다”는 말에는 한비자가 바라보는 엄형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만일 지척대며 엄형의 시행을 늦추는 나라는 영토가 깎이고 쇠약해진다.19)

한비자가 말하는 엄형은 자의적인 처벌과는 다르다. 한비자는 공과에 따른 상과 벌은 엄정하고 공정해야 한다며, 이를 엄형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신상필벌은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명한 군주는 공이 없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며, 죄가 없는 자에게는 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20)

약육강식이 횡행하던 난세에서 한비자의 제안만큼 군주의 마음을 끄는 부국강병책이 있었을까. 한비자는 군주에게 강력하게 주문한다. 엄형과 중벌은 백성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니 나라가 편안해지고 난폭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치를 시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는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는 듯 이 말로 방점을 찍는다.

“나는 이로써 인의나 은혜로운 사람 등은 치국에 부족하고, 엄형과 중벌만이 치국의 방략으로 쓸 수 있음을 밝힐 수 있다.”21)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야말로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는’ 냉혈한 법률가의 전형이요, 강고한 법과 법치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5. 법은 피치자에게 공개를 그 형식적 요건으로 한 제정법이다.

법 또는 법률이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다. 국가 및 공공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로 통상 이를 법령이라고 한다. 법령을 한마디로 개념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법령은 기본적으로 국가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권자 또는 법령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국가 또는 사회와 그 구성원에 대해 해당 법령의 준수를 강제하고, 스스로도 그러한 규범을 지킬 것을 전제로 일정한 목적 아래 구성한 성문(成文)의 규범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22)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법규는 간략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법령은 행정과 사법(司法)에 의한 법 적용의 기준이 되므로, 명확한 용어 등으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원칙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의 법치는 시대를 거슬러 상당히 앞선 법률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이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비자는 법규가 간략하고 명확해야 백성들의 다툼이 간소해지고 쉽게 해결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법률을 제정할 때 해당 사안을 상세히 규정해야 하고,23) 문서로 엮어 관부에 비치해 두었다가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24)

하지만 한비자가 보기에 군주에게 큰일은 ‘법(法)이 아니고 술(術)’이다. 법은 명확히 드러날수록 좋지만 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25) 겉으로 드러내고 보다 분명해야 하는 법과는 달리 술은 오직 군주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모든 증거와 대조해가며 은밀히 신하들을 통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26) 따라서 명군은 법을 포고할 때 나라 안에서 비천한 노복까지 모두 들어 모르는 자가 없게 한다. 이는 전당 안의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술을 구사할 때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술은 친애하는 측근이나 가까이서 섬기는 신하는 물론 방안의 사람조차 들을 수 없게 한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방안에서 말할 때는 방안의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하고, 전당 안에서 말할 때는 전당 안의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한다’고 말한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비자에게 관중의 이 말은 “법술을 터득한 사람의 말이 아닌” 까닭이다.27)

Ⅲ. 법술세에 의거한 법치의 이론적 근거

1. 순자의 성악설

한비자의 법술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므로 선(善)한 행위는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순자의 성악설을 따른다. 이 학설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싸움만이 일어나 파멸하기 때문에 예(禮)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순자의 성악설에 따라 한비자는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기우는 것으로 설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력(無力)한 것이므로 정치를 논할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례를 들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 아들을 낳으면 서로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여 버린다. 다 같이 부모의 품안에서 나왔는데 아들이면 축하하고, 딸이면 죽이는 것은 훗날의 편의를 생각하고 먼 장래의 이익을 헤아린 결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조차 이처럼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마음이 작용한다. 하물며 군신관계처럼 혈연의 애정도 없는 경우이겠는가?28)

위 사례는 인간의 본성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현대인의 인식과 인권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여 버리는 것은 반인륜적 패륜행위인 까닭이다. 이러한 설명은 시대를 떠나 법과 법치를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物慾)으로 악하게 된다는 성선설과 전적으로 대비되는 학설이다. 성선설의 근거로 맹자는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이 있다는 사단(四端)을 주장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이란,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이처럼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의 본성을 전적으로 상반되게 보고 있다. 전자는 법가의 패도정치, 후자는 유가의 왕도정치의 이론적 논거로 원용되었다. 한편 노자를 비롯한 도가는 무위사상을 바탕으로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주장하였다. 이는 성인의 덕이 지극히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는 도치(道治)로 이어졌다. 한비자는 법치를 행함에 일체의 사사로움이 없다는 무사법치(無私法治)를 주장하였으며, 이는 노자의 도치(道治)와 그 맥락이 닿아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도치를 최상의 통치라고 평가하였다.

2.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에 대한 비판

한비자는 인의에 바탕을 두고 인간사회를 파악하는 것은 공론(空論)에 불과하다며 유가의 덕치를 부정하고, 법치를 강하게 주장한다.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정치규범으로 할 수는 없다. 법이 아닌 인간은 우연적 요소이므로 위험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유가의 허례허식과 묵가의 지나친 검약을 신랄하게 비판한다.29)

한비자는 간사한 거짓을 일삼으며 사사로운 이익이나 챙기는 무익한 6개 부류의 선비가 있는데, 세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칭송한다고 한탄한다. 이들이 바로 유가와 묵가를 믿고 따르는 선비들이다. 이들과는 정반대로 열심히 농사짓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유익한 6개 부류의 백성이 있으나 세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폄하한다. 한비자는 옳고 그름이 뒤바뀌었다며 이를 ‘육반(六反)’이라 불렀다([별첨자료 1]).30)

법가는 기본적으로 농업생산을 장려하고 공상업을 억제하는 중농경상(重農輕商)을 국가산업정책의 근간으로 삼으며, 유가와 묵가 및 상공인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비자도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학자, 유세객, 협객, 정객 및 상공인과 같은 다섯 가지 부류는 나라의 기둥을 좀먹는 두충과 같은 존재라며 ‘다섯 마리 좀벌레’라는 뜻에서 ‘오두(五蠹)’라 부르고는 이들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별첨자료 2]). 이들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두충과 같은 자들을 제거하지 않고 경전(耕戰)에 뛰어난 경재지사(耿介之士)를 양성하지 않으면, 패망하는 나라와 복멸(覆滅)하는 조정이 나타날지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31)

육반의 유가와 묵가의 선비들과 다섯 마리 좀벌레 같은 부류가 끼치는 사회적 병폐와 해악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다. 한비자는 말한다.

“법으로 다스리는 길은 처음에는 고달프나 나중에는 크게 이롭고, 인의로 다스리는 길은 처음에는 이로우나 나중에는 크게 궁색해진다.”

만일 성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한비자는 법과 인의의 경중을 잘 헤아려 이로움이 큰 쪽을 택한다고 보고 있다. 성인은 법치 아래서 어려운 상황을 견디는 쪽을 택하는 까닭에 서로 깊이 동정하며 아낌없이 베푸는 인의의 길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자들은 ‘형벌을 가볍게 하라’고 입을 모아 비판한다. 유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한비자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끝내 패망으로 이끄는 술책”이라며 맹공을 퍼붓는다.32)

이렇게 유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한비자도 유가와 마찬가지로 “천하 사람들 모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과 어른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효제충순(孝悌忠順)의 도리33)는 천하의 변하지 않는 상도(常道)라고 본다. 상도를 버리고 현능한 자들을 숭상하면 나라는 이내 어지러워지고, 법도를 버리고 지혜로운 자들을 임용하면 군주는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34)

“법을 숭상할 뿐 현능을 숭상하지 않는다(尙法而不尙賢).”35) 이 말을 들어 한비자는 힘을 다해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충신의 도리라며 법치가 효제충순을 강조하는 유가의 입장과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Ⅳ. 법술세의 의거한 법치의 실천 주체

1. 군주

한비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능을 가진 패왕(霸王)이다. 한비자가 엄격한 법과 법치를 통해 군주가 절대 권력을 가질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도 엄벌주의를 바탕으로 군권을 강화함으로써 패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다.

패왕이란 패도(霸道)와 왕도(王道)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패도가 인의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것이라면, 왕도는 인의를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로써 임금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특히 왕도는 유가에서 이상으로 삼고 있는 정치사상이다. 한비자는 유가만큼 왕도에 비중을 두고 있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패도를 통치와 지배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한비자에게 “패왕은 군주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이다.” 군주가 이처럼 큰 이익을 가슴에 품고 정사를 펼치면 관원은 능력을 다해 일하고, 상벌 또는 사사로움이 없고, 백성들 역시 목숨을 바쳐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죽을 각오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일하면 공을 세울 수 있고, 작록도 자연스럽게 오르게 된다. 작록이 오르면 부귀영달의 목표가 마침내 이뤄지는 셈이니 군주와 신하, 그리고 백성들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한다.36)

한비자의 법치가 종국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군주, 그중에서 패왕이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신상필벌과 엄벌주의는 모두 군권을 강화함으로써 패왕의 강력한 통치 지배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보면 한비자의 사상은 제왕학(帝王學)이라고 할 수 있고, 법과 법치는 제왕이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비자의 이런 생각은 군주가 가지는 네 가지 미덕(四美)에 잘 드러나 있다.

“만물 가운데 군주의 몸보다 더 귀한 게 없고, 군주의 자리보다 더 존엄한 게 없고, 군주의 권세보다 더 중한 게 없고, 군주의 세력보다 더 성한 게 없다.”37)

군주와 신하는 상하 수직적이고 절대 명령과 복종의 관계에 서있다. 그래서 명군은 신하를 길들일 때 하나같이 법으로 통제하고, 미리 대비해 바로잡아 나간다.38) 군주는 신하가 지은 죽을죄를 용서하거나, 형벌을 경감시키는 일이 없다. 만일 군주가 그리하면 군주의 권세가 삭감되고, 사직도 위태로워지고, 국가권력 또한 신하 쪽으로 기울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신의 녹봉이 아무리 클지라도 성시(城市)에서 세금을 거두지 못하게 하고,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나라의 군사를 사사롭게 가신처럼 부리지 못하게 하는 일도 군주의 몫이다.39)

그렇다면 군주에게 절대복종의 대가로 신하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부귀이다.

“부귀는 신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이다. 신하가 이처럼 큰 이익을 가슴에 품고 업무에 임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다가 죽음에 이를지라도 원망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매개하고 유지하는 유일무이한 수단은 이익이다. 부귀라는 상호간의 이익만 보장된다면, 군주는 신하들에게 인애를,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다. 이 조건만 충족되면, 한비자는 “가히 패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패왕 혹은 폭군에 의한 패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한비자의 폭군인용론(暴君認容論)은 맹자의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40)

2. 백성

한비자가 말하는 법은 일차적으로는 백성을 그 적용대상으로 보고, 그 법으로 다스리는 강력한 법치를 강조한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원래 형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단순히 죄인을 처벌하려는 게 아니다. 명군의 법률은 단지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는 준칙일 뿐이다. (…) ‘간악한 죄를 범한 한 사람을 중하게 처벌해 나라 안의 모든 악을 그치게 한다. 이것이 곧 형벌을 가하는 근본목적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41)

한비자의 이 말에는 법을 잘 지키고 법치에 순응하는 선량한 백성은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엄격한 법의 적용은 ‘간악한 죄를 범한’ 범죄자이고, 그로 인해 중벌을 받는 자는 도적과도 같다. 오히려 도적을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양민이다. 엄벌주의를 시행하는 목적은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고, 선량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런 이유로 한비자는 반문한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이 어찌 중형의 시행을 두려워하겠는가?”42)

하지만 강력한 법의 적용과 법치는 그 자체만으로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법과 법치는 신상필벌과 결합되어 시행될 때 비로소 두 배 세 배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43) 일의 성과에 따른 전체적인 이익을 헤아린다는 말은 곧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만일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고 반대로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벌이 아니라 상을 준다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무릇 상벌의 확립은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금하기 위한 것”44)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상을 후하고 확실하게 주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이롭게 여기도록 만들고, 벌은 엄중하게 집행해 백성들로 하여금 두렵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신상필벌을 시행할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되는 것이 법이다. 그러므로 법은 늘 견고하게 하여 백성들이 이를 숙지토록 만든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군주는 상을 내릴 때 멋대로 기준을 바꾸거나 형벌을 집행할 때 함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명예로써 그 상을 빛나게 하고, 커다란 비난으로 그 벌을 부끄럽게 하면 현·불초를 막론하고 모두 그 힘을 다하게 된다.45)

3. 신하(관리)

한비자가 말하는 법의 적용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백성이지만 이차적으로는 관리(官吏)이다. 이 점은 제나라 왕과 문자(文子)의 대화에 잘 드러나 있다. 제나라 왕이 문자에게 물었다.

“나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오?”

문자가 대답했다.

“무릇 상벌은 예리한 무기와 같습니다. 군주는 이를 굳게 장악해 남에게 내보이면 안 됩니다. 신하들의 행동은 사슴과 같이 오직 풀이 있는 곳으로만 나아갑니다.”46)

위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통치와 지배의 관점에서 법은, 군주·관리-백성, 군주-관리의 2중 구조를 띠고 있다. 이 구조는 법이 일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비자가 역설하는 군주의 통치술은 일반 백성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대신을 비롯한 군신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47)

한비자의 생각에 군주는 법으로 대신들을 통제하고 제어해야 한다. 그래야 대신들이 법을 어기지 않고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만일 군주가 법을 밝혀 대신들의 권세를 제압하지 못하면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길이 없다.48) 그러므로 군주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종국적으로 기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법을 밝히는 것’, 즉 법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법에 정통하고, 그 법을 집행하는 관료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무한 신뢰를 보인다.

“법에 정통한 인재는 반드시 굳건하고 강직하다. 굳건하고 강직하지 않으면 간사한 자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49)

“법을 밝히는 자는 강하고, 법을 소홀히 하는 자는 약하다.”50)

따라서 한비자에게 가장 고명한 치국 방법은 오로지 법술에 기대고, 공허한 학문을 배운 자들의 지혜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51) 이 말에서 보듯이 한비자는‘공허한 학문’을 한 유가와 묵가의 부류에 대해서는 조금의 기대도 없다. 그에게 ‘치술에 정통한 인재와 법에 정통한 인재’는 믿을 수 있지만 중인(重人)은 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다. 중인이란 군주의 명에 따라 일을 추진하지 않고, 법에 근거해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신하를 일컫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인은 명을 무시하며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법을 어기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나라 재정을 빼돌려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하면서 군주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조종하는 부류이다.52)

중인의 간계를 꿰뚫어 보려면 군주는 ‘치술과 법에 정통한 인재’를 중용해야 한다. 군주의 신임을 얻어 치술에 정통한 인재가 중용되면, 중인들의 음모가 이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또한 법에 정통한 인재는 강직하므로 군주의 신임을 얻어 그들이 중용되면, 중인들의 간사한 행동은 이내 바로잡힐 것이다. 마찬가지로 치술과 법에 정통한 인재가 중용되면 지위가 높고 권세 있는 자들도 법을 어길 경우 가차 없이 제거될 것이다. 치술과 법에 정통한 인재는 중요한 요직에 있는 실권자와 양립할 수 없는 원수 관계이다.53)

따라서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수직적·종속적이므로 신하는 군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순응해야 한다. 절대군권(絶對君權)을 가진 전제군주를 상정하고 있는 한비자에게 군신공치(君臣共治)와 귀민경군(貴民輕君)을 지향한 공자와 맹자의 군주상은 설 자리가 없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한비자의 법치사상을 활용한 사례를 보더라도 당시 군주들에게 그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V. 법술세의 의거한 법치의 실천방법

1. 권형(權衡)

권형은 저울추(權)와 저울대(衡)라는 뜻으로 저울을 이르는 말이다. 저울로 사물의 경중을 재는 척도나 기준으로 삼으니 권형은 곧 공정과 형평을 일컫는다.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도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므로 저울로 무게를 재고 칼로 엄정하게 단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정의의 여신상이 표상하는 바와 같이 한비자가 말하는 권형이란 법치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법률은 저울과 같아야 한다며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거울을 맑은 상태로 유지해야 미추를 비교할 수 있고, 저울은 흔들림 없이 정확한 상태를 유지해야 경중을 잴 수 있다. 거울을 흔들면 투명해질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바르게 잴 수 없다. 이는 법률을 말한 것이다.”54)

정치란 마치 목수가 나무를 자를 때 먹줄을 좇는 것과 같이 “엄격히 법률기준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목수는 나무를 자를 때 임의로 먹줄을 밖으로 옮기지도 않고, 멋대로 먹줄을 안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도 목수가 먹줄을 치는 것 이상으로 엄하게 단속하지도 않고, 그 이하로 가볍게 다루지도 않아야 한다.55) 이미 정해진 법리를 지켜 천지자연의 도를 따르면, 사람의 화복은 도리와 법도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56) 따라서 한비자에게 법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법치를 제대로 시행하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울에 달아 형평을 알고, 그림쇠를 이용해 원을 아는 것”이다.57)

2. 형명(刑名)

권형(저울)이 범죄의 유무를 재고 판단하는 척도나 기준이라면, 형명은 그에 상응하는 상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형(刑/形)은 사물의 실상을, 명(名)은 사물의 이름(명칭)이다. 즉, 형명은 사물의 겉과 속, 명목과 실제, 명분과 실리이다. 그에 따라 상벌과 공죄(功罪)를 따져(刑名) 상벌을 내린다(參同). 이를 형명참동(刑名參同)이라 한다. 이처럼 형명에 따라 그 명칭과 실상이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이론을 명실론(名實論)이라 한다. 한비자의 법치는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기술을 뜻하는 형명법술(刑名法術)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형명참동은 신상필벌이라는 엄형주의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58) 그러니 군주는 법과 원칙을 세웠으면 그 방침을 바꾸지 않고, 실제의 성과인 형(形)이 명목인 명(名)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피고,59) 명목과 성과의 형명(形名) 두 가지를 대조하면서 끝까지 초지를 관철해야 한다.60) 군주가 신하들 간의 간사한 행위를 미연에 막는 것도,61) 천지자연의 규율을 좇아 치평(治平)의 대권을 잃지 않고 성명(聖明)한 군주가 될 수 있는 것도 모두 형명참동에 의해 신상필벌을 행하는 데 있다.62) 이처럼 형명참동을 제대로 행하면 군주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신하의 모든 실정을 파악하고, 통치를 할 수 있다. 형명참동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군주는 “현명하지 않으면서도 현자의 스승이 되고, 지혜롭지 못하면서도 지자(知者)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신하는 직무에 힘쓰고, 군주는 공업을 이루니 이를 일러 ‘명군의 상도(常道)’라 한다.63)

한비자의 형명은 공자의 정명(正名)과 그 맥락이 닿아있다. 정명은 삼강과 오륜은 사람이 늘 지켜야 하는 도리를 일컫는 것으로, 공자가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와 같은 뜻이다. 「논어」 안연편에서 제(齊)나라 군주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라 대답한다. 이 말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개별 인간에게는 각자에 어울리는 사명과 역할이 있으므로 그에 충실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의 정명과 한비자의 형명은 기본적으로 주나라 종법의 남성 중심의 적장자 승계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가족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군주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서열로 구조화되어 통치될 수밖에 없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재편되고, 각자 제구실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는 현실에서 개인 간 관계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Ⅵ. 결론: 한비자의 법과 법치에 대한 평가

법치주의는 근대 입헌국가의 정치원리로써 개인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회에서 만든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나라나 권력자가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지울 수 없다는 사상을 말한다. 법치주의는 공포되고 명확하게 규정된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제한·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법치주의는 몇 가지 원칙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 법은 명확하고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원칙, 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 법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제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는 원칙 등이다. 만일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고,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권력을 견제·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이지만 현실에서 법치주의를 제대로 운용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제도가 아니다. 또한 법치주의를 내세워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도 하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자와 개인 서로가 자신의 권력 혹은 권리를 지키는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치주의의 원형은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법가의 법치주의는 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생각하여 덕치주의를 배격하고 법률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이다. 법가를 대표하는 한비자는 상앙·신불해·신도가 주장한 법술세(法術勢)에 의거하여 국가통치의 기본 이론으로 법치주의를 주장하였다.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통해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강력한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한비자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며, 법은 국가의 최고 권력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은 오늘날 민주국가의 법치주의가 말하는 의미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군주를 위한 것이며, 법은 군주의 통치와 지배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군주는 법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권세에 의지하여 백성을 통제한다. ‘법 앞에 평등’은 군주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위계적 서열 중심의 신분제를 넘어설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은 신분제의 범위 안에서 가능한 것이므로 결국 백성들은 ‘법 앞에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한비자는 법을 위반하는 자에 대한 처벌은 엄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형벌로써 형벌을 없앤다”는 상앙의 이형거형을 법치주의의 근본으로 삼아 공과에 따라 신상필벌을 적용하였다. 한비자는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엄격한 처벌을 통해 재범을 방지함으로써 결국 형벌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형벌을 엄격하게 집행하면 일시적으로는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범죄의 예방효과가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으며, 반대로 형벌이 너무 엄격하면 오히려 범죄를 조장하여 새로운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셋째,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실시함으로써 국가의 통치를 위해 효율적인 관료제를 정비하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제신술로 7술6미(7術6微 [별첨자료 3])와 세 가지 치신술(3治 [별첨자료 4])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술책을 쓰기 위하여 군주는 신하들 앞에서 감정의 호오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해야 한다. 인재의 등용에 대해서도 한비자는 유가와 묵가의 선비들을 다섯 마리 좀벌레를 뜻하는 오두라 부르며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신상필벌이다. 이 권한은 오로지 군주만이 사용할 수 있다. 군주는 이 권한을 이용하여 신상필벌을 신하의 통제 수단으로 활용한다.

결론적으로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엄형주의 혹은 엄벌주의에 의거한 법률만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주된 관심은 국가보다는 군주 1인에 대한 권력의 집중에 있었다. 오늘날 그의 법치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한비자의 법치주의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적 견해와는 달리 현대적 의미에서 그의 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자를 위시한 유가가 주나라의 종법을 중심으로 한 복고주의적 경향이 강한 반면, 법가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규범을 틀을 찾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한비자가 법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라고 보고 있다.64) 후자의 관점에서 한비자의 법치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현대법을 적용하여 재해석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위의 전자의 입장에서 한비자의 법치주의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법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이다. 이를 바탕으로 엄형주의를 실시함으로써 백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 종국적으로는 패도의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사상가들은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면 범죄가 사라진다고 본다. 사형제를 유지한다고 범죄가 사라지지 않듯이 무조건 엄한 형벌로 범죄를 다스리기 보다는 형벌에 대한 처벌은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한비자의 법과 법치사상은 현대 인권법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비자의 법치사상은 범죄예방과 인권의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비자의 법과 법치사상은 현대법의 관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별첨자료 1. 육반(六反)
6개 부류의 선비 6개 부류의 백성
고사(高士) 죽음을 두려워하고 위난을 피하려는 자들은 전쟁터에서 적에게 항복하거나 도망치는 자 세인들은 ‘삶을 귀하게 여기는 자’로 칭송 맹민(盲民)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 나라와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결의를 위해 죽음을 택한 자들 세인들은 ‘계책이 없는 무모한 자’로 폄하
학사(學士) 선왕의 도를 들먹이며 자신의 학설을 세우며, 법을 어기는 자 세인들은 ‘학문을 연마하는 자’로 칭송 누민(陋民) 식견이 적고 명령에 잘 따르는 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세인들은 ‘덜 깨인 무지렁이’로 폄하
현사(賢士)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놀면서 잘 먹고 살며, 다른 사람의 먹을 것을 빼앗는 자 세인들은 ‘재능이 뛰어난 자’로 칭송 과민(寡民) 힘써 경작해 먹고 살며 재부를 창출해 내는 자 세인들은 ‘능력이 부족한 자’로 폄하
모사(謀士) 왜곡된 이론으로 큰 지식을 드러내며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 세인들은 ‘말 잘 하고 재치 있는 자’로 칭송 우민(愚民) 선량하며 온후하고 순박하며 성실한 자 세인들은 ‘우직하고 유치한 자’로 폄하
투사(鬪士)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면서 사람을 치거나 죽이는 흉포한 모험을 하는 자 세인들은 ‘강직하고 용맹한 자’로 칭송 겁민(怯民) 명령을 존중하고 맡은 일에 신중하며 군주를 존중할 줄 아는 자 세인들은 ‘담이 작고 겁이 많은 자’로 폄하
의사(義士) 도적을 살려주고 간특한 자를 숨겨주어 사형에 처해야 할 자 세인들은 ‘의거를 보호하며 변호하는 자’로 칭송 참민(讒民) 도적을 꺾고 간사한 행동을 막으며 군주의 법령을 지키는 자 세인들은 ‘군주에게 아첨하고 남을 헐뜯는 자’로 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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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자료 2. 오두(오두-다섯 마리 좀벌레) 같은 부류
학자 선왕의 도를 칭송하며 입만 열면 인의를 떠벌이고, 용모나 복장을 융성하게 하고는 입으로 변설을 꾸며대고, 당대의 법을 의심케 만들어 군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부류
유세객 거짓을 늘어놓고, 외국의 힘을 빌려 사적인 욕심을 채우며, 나라의 이익 따위는 돌보지 않는 부류
협객 무리를 모아 절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중앙 관청에서 금지하는 법령을 예사로 범하는 부류
정객 권문에 줄을 대고는 뇌물을 바치며, 요로에 있는 관원을 이용하여 전쟁터로 나가 목숨 바쳐 애쓰는 일을 면하는 부류
상공인 조악한 기물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값이 쌀 때 물건을 쌓아 두었다가 값이 오를 때 팔아 폭리를 취함으로써 사실상 농부에게 돌아갈 이익을 탈취하는 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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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자료 3. 한비자의 7술6미(7術6微) 제신술
7술(術) 참관(參觀) 많은 증거를 모아 두루 대조함
필벌(必罰) 반드시 형벌을 내려 위엄을 밝힘
상예(賞譽) 공을 세우면 반드시 포상해 능력을 다하게 함
일청(一聽) 신하들의 말을 일일이 듣고 실적을 추궁함
궤사(詭使) 군주가 명을 내렸을 때 의심하는 신하를 꾸짖음
협지(俠知) 알면서 모른 척하며 질문함
도언(倒言) 말을 일부러 뒤집어 반대로 해 보임
6미(微) 권차(權借) 군주의 권력이 신하의 손안에 있음
이이(利異) 군주와 신하의 이해가 달라 신하들이 외국의 힘을 빌림
사류(似類) 신하가 유사한 부류에 의탁해 속임
유반(有反) 이해가 상반됨
참의(參疑) 신하들의 세력이 서로 비슷해 권력다툼을 벌임
폐치(廢置) 적국이 대신의 폐출과 등용에 간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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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자료 4. 한비자의 치신술(3治)
절간(絶姦) 권세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자가 있으면 제거함
독단(獨斷) 신하들에게 호오(好惡)를 드러내지 않고 일을 처리함
인통(忍痛)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법술을 시행할 때 고통(힘든 상황)을 잘 참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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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그의 이름도 원래는 공자와 맹자 등과 같이 한자(韓子)라 불러야 하나 당나라 한유(韓愈)를 ‘한자(韓子)’라 불렀으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한비가 쓴 책이름을 따라 ‘한비자(韓非子)’로 부르고 있다.

1) 그리고 법가는 도덕보다도 법을 중하게 여겨 형벌을 엄하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라고 주장하였다. 관자(管子), 상앙(商鞅), 신불해(申不害), 신도(愼到), 한비자 등이 법가의 대표적 학자라고 할 수 있다.

2) 한비자의 법치사상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인성론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므로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의에 기반한 도덕윤리로는 불가하고, 오직 통일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적용해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법률의 제정권은 군주만이 가지고 있고, 신하와 백성은 통제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신하와 백성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는 한비자의 법치를 이용하여 혼란한 중국을 통일했지만 반대로 강고한 법체계로 인해 너무 쉽게 멸망해버린 주된 요인이기도 했다. 김효성, “중국의 법가(法家)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韓非)의 저서인 ‘한비자(韓非子)에 나타난 법철학 사상에 관한 연구”, 사법행정, 2019.5, 43쪽.

3) 이동희, “韓非子의 法思想”, 「동양학」 제43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08.2, 3쪽.

4) 한비자 난삼 38:16.

5) 한비자 유도 6:1.

6) 한비자 정법 43:2.

7) 한비자 오두 49:4.

8) 한비자 칙사 19:6.

9) 한비자 외저설 우하 35:2.

10) 한비자 칙령 53:4.

11) 한비자 심도 54:1.

12) 상군서 거강 4:8.

13) 상앙(임동석 역주), 「상군서」, 동서문화사, 2015, 147-148쪽

14) 한비자 제분 55:2. 군주가 형벌로 나라를 다스리고, 포상으로 병사를 고취하며, 두터운 녹봉과 후대로 치술(治術)을 구사여 얻는 구체적 효과에 대해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순찰하며 도시 안의 위법행위를 적발해내면 탈법적인 간사한 매매행위가 사라진다. 사치품이 늘어나면 말업(末業)인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본업인 농업에 종사하는 농임이 게을러져 농토가 황폐해진다. 그러면 나라는 반드시 영토가 깎이고 쇠약해진다. 군주는 양식이 풍족한 백성에게 남아도는 식량을 헌납해 관작을 얻도록 해야 한다. 자신들의 노력을 관작을 얻게 되면, 농민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된다. 3촌에 불과한 짧은 대롱일지라도 밑이 없으면 아무리 물을 부어도 차지 않는다. 군주가 백성에게 관작을 수여하여 녹봉으로 이롭게 하면서 공적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밑 빠진 관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한비자 칙령 53:2.

15) 김효성, 앞의 논문, 54쪽.

16) 한비자 유도 6:5.

17) 한비자 양각 8:7.

18) 심재우, “韓非子의 法思想”, 「법학논집」 제32권,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1996, 249쪽.

19) 한비자 칙령 53:1.

20) 한비자 난일 36:8.

21) 한비자 간접시신 14:7.

23) 한비자 팔설 47:8.

24) 한비자 난삼 38:16.

25) 한비자 난삼 38:16.

26) 한비자 난삼 38:16.

27) 한비자 난삼 38:16.

28) 한비자 육반 46:1.

29) 한비자 현학 50:2. “묵가는 장례를 지낼 때 사자에게 겨울에는 겨울옷, 여름에는 여름옷 수의를 입힌다. 또 오동나무로 만든 두께 3촌의 관을 쓰고 상복은 3달만 입는다. 세상의 군주들은 이런 검소한 박장(薄葬)을 칭송하며 이들을 예우한다. 유가는 이와 달리 가산을 탕진하며 성대한 후장(厚葬)을 치른다.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탓에 몸이 수척해져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한다. 세상의 군주들은 효성이 지극하다며 이들을 예우한다. 무릇 묵가의 검소한 행보가 옳다면 유가의 사치를 반대해야 하고, 유가의 효성이 옳다면 묵가의 박정(薄情)을 반대해야 한다. 효성과 박정, 사치와 검소의 상반된 얘기가 모두 유가와 묵가의 주장 속에 있다. 그런데도 군주는 이들을 모두 예우하고 있다.”

30) 한비자 육반 46:1.

31) 한비자 오두 49:18.

32) 한비자 육반 46:4.

33) 한비자 충효 51:1.

34) 한비자 충효 51:2.

35) 한비자 충효 51:2.

36) 한비자 육반 46:2.

37) 한비자 애신 4:1.

38) 한비자 육반 46:2.

39) 한비자 애신 4:2.

40) 신동준, 앞의 책, 33-34쪽.

41) 한비자 육반 46:2.

42) 한비자 육반 46:2.

43) 한비자 팔설 47:5. “법은 일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이고, 일은 공적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법은 제정할 때 어려움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일의 성과가 크면 전체적인 이익을 헤아려 법을 제정하게 된다. 사실 어떤 일이든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폐해도 뒤따르지만 성과가 크면 전체적인 이익을 헤아려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아무런 폐해가 뒤따르지 않는 공적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44) 한비자 육반 46:4.

45) 한비자 오두 49:7.

46) 한비자 내저설 상 30:37.

47) 한비자 비내 17:3. “상고시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과 「춘추」의 기록을 살펴보면, 법을 어기고 군주를 배반하여 중대한 죄를 범하는 일은 일찍이 높은 직위와 강력한 권세를 지닌 대신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법령의 적용범위나 형벌의 심판에 의해 처벌을 받은 대상은 늘 세도가 없고 가난한 자들이었다. 백성들이 절망하고 울분을 호소할 길이 없게 되는 이유다.”

48) 한비자 남면 18:1.

49) 한비자 고분 11:1.

50) 한비자 칙사 19:5.

51) 한비자 제분 55:4.

52) 한비자 고분 11:1.

53) 한비자 고분 11:1.

54) 한비자 칙사 19:5.

55) 한비자 대체 29:1.

56) 한비자 대체 29:1. “그래서 선왕은 도를 만물의 원칙, 법을 근본으로 삼았다. 근본을 잘 다스리면 명성이 높아지고, 근본을 어지럽히면 명성이 사라진다. 지혜와 능력이 사물을 밝게 통찰할 정도에 이를 경우 도에 합당하면 시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시행하지 않는다. 지혜와 능력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으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다. 도와 법에 의존하면 모든 게 완전하지만 지혜와 능력만으로 다스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57) 한비자 칙사 19:5.

58) 한비자 주도 5:3. “따라서 실로 공이 있으면 설령 소원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고, 실로 잘못이 있으면 비록 가깝고 총애하는 자일지라도 반드시 벌을 내려야 한다. 소원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상을 주고, 가깝고 총애하는 자일지라도 벌을 내리면 소원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일지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고, 가깝고 총애하는 자일지라도 교만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59) 한비자 이병 7:2.

60) 한비자 양각 8:1.

61) 한비자 이병 7:2.

62) 한비자 양각 8:4.

63) 한비자 주도 5:1.

64) 진희권, “韓非子의 法治의 재해석”, 「법철학연구」 제9권 제2호, 한국법철학회, 2006, 289-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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