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 우리 민법은 계약관계에 있는 당사자, 예컨대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문제에 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규정하면서도 하자담보책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담보책임의 법적 성질은 무엇인지, 두 개의 책임체계는 어떠한 관계가 있고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에 관하여 종래부터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또한 사업자가 공급하는 물품이나 용역을 소비생활을 위하여 사용하는 소비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에 관하여는 근래 이른바 ‘악성소비자’ 내지 ‘블랙컨슈머’라고 칭하며 이미 많은 선행연구가 있어 왔다.1) 블랙컨슈머가 이러한 행태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권리의식만을 내세우는 악성소비자의 탐욕으로 인하여 거래관계에 필요한 윤리의식 내지 책임의식이 결여되었거나 부족한 측면일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발생되는 법적 분쟁 중에는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 사실은 물건에 하자가 없음에도 물품대금을 면탈하려는 매수인이 하자를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품을 공급하고 받지 못한 대금에 대하여 원고가 그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면, 피고는 물품에 하자가 있었다고 손해배상을 주장하며 상계항변을 하거나 심지어 반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문제된다. 생산활동을 위하여 사업자 공급의 물품을 매수하여 사용하는 기업이 소비자로서 물품을 제조(가공 또는 포장을 포함함)·수입·판매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사업자를 상대로 하자를 주장하는 경우에는 크게 두가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즉, 소비자가 그 물품을 얼마나 어떻게 투입·사용하는지 등에 관하여 배타적으로 결정하고 기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이를 공급자에게는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 및 그로 인하여 공급자로서는 소비자 주장대로 정말 하자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하자 원인 및 하자 수량 등에 있어서 이를 면밀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한편 이러한 경우에 그 물품(특히 종류물)을 투입하여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등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매수인이라면 그 물품을 원자재로 매입한 후 이미 장기간 사용하였다는 측면에서 ‘착오에 의한 취소’ 문제는 논의(쟁점화)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를 고찰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2. 종래 민법학에서는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에 관련하여 그 본질 및 매수인의 권리행사기간과 소멸시효의 관계, 매도인의 급부의무나 채무불이행책임과의 경합 문제, 하자로 인한 확대손해 등에 대한 많은 선행연구가 있어 왔다. 그런데 정작 물건의 ‘하자’ 존부 판단 문제에 있어서의 매도인의 권리 보호에는 소홀히 한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사회과학에 속하는 법학이 인접 학문, 예컨대 소비자학 내지 심리학 등과의 융합을 경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본 논문은 하자담보책임이 무과실책임2)으로 운용되는 점에 착안한 블랙컨슈머의 하자 주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매도인 입장에서의 고찰이 필요한 담보책임 일반론과 물건의 하자에 대한 담보책임을 본고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Ⅱ.,Ⅲ). 특히 물건의 하자를 어떤 기준에 의해서 판단할 것인지를 검토한 후, 계약부적합 개념과의 관계에 관하여 유럽소비재매매지침 및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를 간략하게살펴보며, 하자 판단의 기준 시기를 논하고(Ⅲ.1.), 우리 민법 제580조, 제581조, 상사매매의 특칙 관련 상법 제69조를 고찰하며(Ⅲ.2.,3.,4.), 물건에 하자가 없음에도 보상을 요구하는 등의 이른바 블랙컨슈머와 같이 부당한 소송을 통하여 불법적 이득을 꾀하는 소비자, 특히 기업에 대한 법적 대응방향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Ⅳ). 특히 억지나 부당한 소송 등으로 불법적 이득을 꾀하는 블랙컨슈머의 문제를 그 개념 및 등장 배경에 관하여 살펴본 후(Ⅳ.1.), 악성소비자의 주장에 대하여 매도인이 대응하기 위하여 실무상 하자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판례의 태도를 정리하여 본 후, 매도인의 소송상 대응방안을 다루고자 한다(Ⅳ.2.,3.).
Ⅱ. 담보책임 일반론
매매, 교환, 임대차, 도급과 같이 계약 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가 있는 재산상의 출연을 하는 유상계약에서는 계약성립 후 채권관계의 실현에 이르기까지 당사자 간의 재산상 변동(이득·손실)이 ‘공평’3)하게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하다. 전형적인 쌍무계약으로 재산권이전과 대금지급이 (특약이나 관습이 없으면)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민법상 매매규정은 다른 유상계약에 준용된다(우리 민법4) 제567조). 한편 쌍무계약은 계약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는 채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양 채무는 상호의존관계에 있고,5) 그 예로 매매, 교환, 임대차, 고용, 도급, 여행, 조합, 화해, 유상위임, 유상임치, 이자부소비대차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쌍무계약에서는 대가관계에 있는 쌍방의 채무는 동시에 이행됨이 공평하고 신의(信義)에 부합한다는 ‘공평의 원칙’에 입각한 동시이행의 항변권과 위험부담의 법리가 특히 문제된다.6)
2) 출연의 등가성이 중시·고려되는7) 매매를 비롯한 유상계약 기타 이와 동일시할 수 있는 법률관계에서 권리에 흠결이 있거나 또는 권리의 객체인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매도인 등이 부담하게 되는 책임을 담보책임이라고 한다.8) 매도인 등에게 책임을 지게 하여 매수인을 보호하는 제도이다.9) 매도인의 담보책임에는 ‘권리의 하자’에 대한 담보책임과 ‘물건의 하자’에 대한 담보책임이 있다. ‘담보책임의 본질’과 관련하여 학설이 나뉘며 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의 경합가능성이 논의되어 왔다. 한편 인터넷이 발달하고 비대면거래의 장점과 함께 종래 코로나19의 감염 우려 등으로 인하여 전자상거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왔고,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10)
제568조 제1항 규정과 같이 매매계약이 성립하면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재산권을 이전해야 하고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그 대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유상계약인 매매에서 재산권 이전과 대금 지급은 서로 대가관계에 있다(출연의 등가성). 그런데 매매에 의해 매수인이 취득하는 ‘권리’ 또는 ‘권리의 객체인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지는 책임을 담보책임이라고 한다. 매도인의 담보책임에는 ‘권리의 하자’에 대한 담보책임과 ‘물건의 하자’에 대한 담보책임이 있다. 물론 매도인의 담보책임 규정은 매매 이외의 유상계약에 준용된다(제567조). 또한 우리 민법은 경매에서의 담보책임(제578조11))과 채권 매도인의 담보책임(제579조12))을 규정하고 있고, 제580조는 매매의 목적물인 특정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매도인이 부담할 담보책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13) 하자의 존재를 요구하는 물건의 하자에 대한 담보책임에서는, 물건의 ‘하자’의 의미가 무엇이며, ‘하자 판단시기’는 언제인지가 문제된다. 우리 민법은 ‘매매의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라고 규정할 뿐 하자담보책임규정에서 하자의 개념과 하자 판단 기준에 대해서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않았다.14) 하자의 판단기준에 관하여 학설은 크게 3가지로 객관적 하자설, 주관적 하자설, 절충설로 구분된다. 종류물 매매에 대한 제581조에서는 제580조를 준용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아울러 손해가 있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동조 제2항에 의하여 계약의 해제 또는 손해배상의 청구를 하지 아니하고 그에 갈음하여 하자 없는 완전물의 급부를 청구할 수 있다.15) 한편 종류매매에서 완전물급부청구권은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기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보면서 완전물급부청구권의 제한에 관한 근거를 공평의 원칙에서 찾고 있는 판례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16)가 있다.
로마법에 기원을 두고 있는 담보책임의 본질17)에 관하여 독일에서는 특정물 하자로 인한 담보책임의 성질에 관하여 법정책임설과 채무불이행설이 대립하여 왔고, 그들 이론은 특정물 도그마의 인정 여부, 하자의 판단시기와 관련하여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18) 한편 담보책임을 매도인의 의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프랑스 민법은 숨은 하자가 있고 이로 인하여 용도부적합성 또는 효용감소가 야기된 경우에 매도인으로 하여금 하자담보책임을 지게 하며 매수인은 하자의 성질과 지역의 관습에 따라 단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하는데, 프랑스 민법은 권리행사기간과 기간의 기산점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고 프랑스 법원의 판례는 주로 하자발견시기를 기산점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19) 일본민법과 달리 우리 민법은 제577조, 제581조, 제582조를 새로 두었는데 특히 종류물매매에도 하자담보책임을 인정한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20) 우리 민법학계에서 학설은 크게 아래와 같이 나뉜다. 즉 (1) 법정책임설은 매매계약에서의 대가성을 유지하고 매수인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민법이 규정한 법정의 무과실책임이라고 본다. (2) 채무불이행책임설21)은 매도인은 하자 없는 권리나 물건을 이전할 의무가 있으므로 매도인의 담보책임을 채무불이행의 특칙으로 보고 민법에 규정되어 있는 매도인의 담보책임의 규정사항 이외에 대해서는 채무불이행책임의 일반원칙이 적용된다고 본다.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담보책임을 계약책임으로 보기에 이행이익의 배상을 인정하는 견해가 있다. (3) 그 외에 다른 견해는 권리의 하자에 기한 담보책임의 본질은 권리이전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불이행책임이고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의 하자담보책임의 본질은 불완전이행에 대한 책임이나 다만 연혁적 이유로 법정책임으로서 규율되어 있는 것이라고 본다.22)
학설은 주로 특정물 하자에서 법정책임설과 채무불이행책임설의 대립이 있다. 종류물매매에서는 완전한 물건을 이전할 의무가 있으므로 하자가 있으면 그에 대한 담보책임의 본질은 채무불이행책임이라고 보고, 권리의 하자에 대해서는 그 본질은 채무불이행책임이라고 본다. 생각건대 하자담보책임을 무과실책임이라고 볼만한 입법자의 의사는 명확하지 않고, 하자담보책임에서의 하자의 개념 및 매도인의 귀책사유가 필요한지 여부에 관하여는 학설 및 판례에 맡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23) 하자의 존부 판단(Ⅲ.1.1)참조) 국면에서 성실한 매도인이 보호될 수 있고, 매매계약의 유상성 및 귀책사유 있는 매도인에게는 매수인이 선택에 따라 채무불이행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담보책임은 매도인의 과실을 요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본다. 특히 담보책임의 본질론에 관한 법정책임설과 채무불이행책임설 모두 현행 규범체계상 완전한 규명이 어렵고 정치한 설명이 곤란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24) 실무상 하자가 있는 경우 담보책임 제도 운용에 있어 쌍방의 이익을 형량하여 타당한 결론을 도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1) 판례는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규정은 매매라는 유상·쌍무계약에 의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의 등가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민법의 지도이념인 공평의 원칙에 입각하여 마련된 것이라고 하며,25) 타인의 권리의 매매의 경우, 이행이익의 배상을 인정하고 있고,26) 매매의 목적이 된 권리의 일부가 타인에게 속한 경우, 선의의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담보책임을 물어 이로 인한 이행이익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27)고 한다.
(2) ① 담보책임 본질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관하여 통일적이지 못하다고 보는 견해28)와 대체로 채무불이행책임설을 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29)가 있다. ② 손해배상의 성격 및 범위에 관한 견해는 다양한데,30) 몇 가지의 견해를 들면 (ⅰ) 판례는 이행이익배상을 명함으로써31) 채무불이행설을 취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다만 확대손해의 배상은 담보책임에서 제외하고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물을 것을 요구한다32)고 보는 견해가 있고,33) (ⅱ) 대법원이 “매매목적물의 하자로 인하여 확대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매도인에게 그 확대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하여는 … 하자 없는 목적물을 인도하지 못한 의무위반 사실 외에 그러한 의무위반에 대하여 매도인에게 귀책사유가 인정될 수 있어야만 한다”고 하여,34) 무과실손해배상의 범위에 확대손해는 포함되지 아니함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판례35)는 폐기물이 매립된 토지의 지분을 매도한 경우(제580조 사안), 하자보수(제거)비용 상당의 손해배상은 무과실손해배상에 포함됨을 전제하는 취지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견해36)가 있다. (ⅲ) 나아가 민법 제580조의 담보책임도 채무불이행책임과의 경합이 인정된다고 한 위 판례(2002다51586 판결)를 비판하며 “… 담보책임에 관한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시켰다는 점에서 적정한 해석의 범위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하는 견해37)가 있다.
생각건대 물건(종류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매수인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의 경합을 인정할 필요가 있고, 담보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는 매수인을 보호하려는 담보책임의 입법취지 및 관련 규범체계와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함이 타당할 것이다.38) 원시적 하자가 문제되는 특정물에 대한 담보책임은 무과실책임으로 운용되고 있고, 매매에 관한 규정이 다른 유상계약에도 준용되는데(제567조) 하자담보책임의 적용으로 확대손해를 배상케 하면 자칫 민법의 근간인 과실책임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39) 매매계약의 등가성 및 쌍방의 이익에 대한 균형 있는 해석을 위하여 무과실의 매도인이 지는 하자담보책임에 의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이른바 신뢰이익에 제한하고, 등가성을 초과하는 확대손해는 매도인의 귀책사유 및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손해를 전제로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물어야 함이 타당하다고 본다.40) 또한 우리 민법은 매수인의 단기간 내 권리행사를 요구하여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매매계약에서의 거래의 동적 안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장기간이 지나면 원시적 하자의 존부에 대한 증거보존이 어렵고, 매수인이 담보책임을 악용할 위험도 있으며, 물건의 하자를 보수하거나 전매할 기회를 보장하여 귀책사유 없는 매도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취지도 있다고 하겠다.41)
Ⅲ. 물건의 하자 및 이에 대한 담보책임
물건의 하자는 예컨대, A가 B에게 건물을 매도하였는데, 그 건물의 지붕에서 비가 새거나 건물에 균열이 있는 경우나 ‘A의 중고자동차를 B가 구입하였는데, 엔진부분이 고장이 나 있었던 경우’42), A의 B에 대한 담보책임이 문제된다. 아래에서는 하자의 개념43)과 하자 판단의 기준 시기를 살펴보고, 계약부적합 개념과의 관계에 관하여 유럽소비재매매지침과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를 간략히 보며, 우리 민법 제580조, 제581조, 상사매매의 특칙 관련 상법 제69조를 살펴본다.44)
(1) 하자를 어떤 (판단)기준에 의해서 판단할 것인지에 관하여 학설은 대립한다.45) 크게 3가지로 객관적 하자설, 주관적 하자설, 절충설로 구분된다. 객관적 하자설46)은 물건의 품질, 성능 등을 기준으로 하여 객관적으로 그 물건에 기대되는 통상의 성질이 결여되어 있으면 하자가 있다고 보고, 주관적 하자설47)은 계약 당사자의 목적(이른바 계약부적합)이나 합의내용을 중시하여 당사자들이 전제로 한 성질을 갖지 않아 매수인이 불이익을 입은 경우 하자가 있다고 보며, 절충설48)은 하자 여부를 일차적으로는 당사자의 합의에 기초하여 판단하되, 계약당사자가 계약체결당시 물건의 용도나 전제되는 성질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객관적 하자개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요컨대 계약당사자가 예정·요구하거나 보증하여 전제한 기준이 있으면 이에 따라 판단하되 그것이 없더라도 통상적인 품질·성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설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하겠고,49)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절충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판례는 “매매의 목적물이 거래통념상 기대되는 객관적 성질·성능을 결여하거나, 당사자가 예정 또는 보증한 성질을 결여한 경우에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 하자로 인한 담보책임을 부담한다”고 하였다.50)
(2) 영미법에서는 하자 있는 목적물의 인도에 관하여 계약위반 일반의 문제로 취급한다.51) 근래의 국제적인 입법 추세과 같이 ‘물건의 하자’에 갈음하여 ‘물건의 계약적합성’으로 대치할 것인지의 여부도 문제로 될 수 있다.52) 가령 계약부적합 개념과의 관계에 관하여 유럽소비재매매지침(Directive 1999/44/EC) 에 있어서 물건의 하자 유무에 관한 판단기준이 되는 개념은 ‘계약적합성’이다. 판매업자는 소비자에게 매매계약 내용에 적합한 물품을 인도할 의무가 있고(위 지침 제2조 제1항), 소비자에게 물품이 인도된 때에 존재하는 적합성 결여(lack of conformity)에 대한 책임을 진다.53) 소비자가 계약체결시에 적합성 결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를 비롯하여 일정한 경우에는 계약부적합성이 부인된다(위 지침 제2조 제3항).54)
한편 우리나라가 2004. 2. 17. 가입한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는 국제거래의 준거법으로서 우선 적용될 수도 있는데,55) CISG에서는 매도인의 인도한 물품이 계약의 본지에 적합한지 여부는 계약 내용에 따라서 판단하도록 한다.56) 특히 당사자 간에 물적 적합성에 대하여 합의하지 않은 경우에,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통일법으로 제정 및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CISG 제35조 제2항이 보충적 기준으로 적용되며, 이에 의하면 매도인이 인도한 물품은 (a)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목적에 적합할 것, (b) 특정한 목적에 적합할 것, (c) 견본으로 제시된 물품의 품질을 보유하고 있을 것, (d) 그 물품을 보존하고 보호하는데 적절한 방법으로 용기에 담기거나 또는 포장되어야 한다고 한다.57) 또한 국제거래의 특성상 이행과정에서 물품이 멸실되거나 손상되어 물품의 적합성이 상실될 수도 있는데, CISG 제36조 제1항은 위험이전시를 적합성 판단의 기준으로 한다. 물품이 계약에 부적합하면 CISG 제46조 제2항에 의해 대체물 인도를 청구할 수 있다.58) 한편 계약 본지에 따라서 물품을 인도하지 않은 매도인은 자신의 비용으로 추완하여야 하는데(제37조·제48조), 매도인의 추완권은 대금감액에 우선한다(제50조).59) 그 외에도 CISG는 계약 부적합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요건으로 매수인의 물품 검사·통지의무를 부과하는데,60) 매수인은 수령한 때 지체 없이 검사해야 하고(제38조), 물품의 부적합함을 발견하였거나 발견할 수 있었던 때로부터 상당 기간(교부일로부터 2년) 내에 통지하여야 한다(제39조 제2항). 이는 6월을 규정한 우리 상법보다는 원만한 규정으로 평가된다.61) 계약위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통일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CISG(제45조 제1항)는 매도인의 귀책사유가 필요한 채무불이행책임과 그렇지 않은 담보책임으로 구분하고 있는 우리 민법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62) 이에 관하여는 지면관계상 다음의 연구로 미루고자 한다.
개정된 독일민법은 2002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별개의 책임으로 인식되었던 하자담보책임은 일반급부장애법과 체계적으로 동화되었고, 매수인의 추완청구권이 우선적인 구제수단이 되었다.63) 국제적 흐름은 채무불이행책임으로 일원화되고 있다. 대금감액청구권과 하자보수청구권을 도입하였던 2004년 민법개정안의 미흡한 점 및 우리 민법에 대한 2013년 개정시안을 살펴보고,64) 이제는 국제무역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입법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인데, 이에 관하여는 지면관계상 다음의 연구로 미루고자 한다.
하자가 존재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시기에 관하여 학설은 나뉜다. 담보책임의 성질에 관한 법정책임설은 특정물매매의 경우 ‘계약체결시’, 종류물매매의 경우 ‘특정시’를 기준으로 하고, 담보책임의 성질에 관한 채무불이행책임설(위험이전시설)은 ‘계약성립 이후에도 목적물에 관한 위험의 이전 시기(동산 인도시, 부동산 등기이전시) 이전에 하자가 존재하면 충분하다’고 한다.65) 판례는 건축을 목적으로 매수한 토지에 대하여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어 건축이 불가능한 경우 위와 같은 법률적 제한 내지 장애 역시 매매목적물의 하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나, 다만 위와 같은 하자의 존부는 매매계약 성립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66) 생각건대 하자담보책임은 무과실책임으로 운용되고 있으므로 이를 위험이전시까지는 확장하지 않는 것이 적절할 것이고, 매매계약체결 후 특정물인도채무자(매도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하여야 하는 제374조에 비추어 보관의무 불이행은 채무불이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점에 비추어,67) 하자 여부는 계약체결시를 기준으로 판단함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1)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민법 제580조의 요건으로 (1) 매매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할 것, (2) 매매 목적물에 하자가 있을 것, (3) 매수인은 선의·무과실일 것이 필요하다. 판례는 매수인이 과실로 매매목적물의 하자를 알지 못한 사례에서 “공원지로서의 대지를 매수하는 자는 부동산 등기부의 열람 뿐만 아니라, 동 대지가 도시계획상 도로에 저촉하는지의 여부 정도는 미리 조사하여 보는 것이 상례라 할 것인 바, 원고가 … 30평의 대지 중 10평이나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간과하였다면, 원고에게는 … 과실이 있다”고 하였다.68) 매도인은 담보책임을 면하려면 매수인의 악의 또는 과실을 주장·증명해야 한다.
매매의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제575조제1항의 규정이 준용된다(제580조 제1항 본문). 하자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선의·무과실의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경우에(하자가 중대한 것이 아닌 경우)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는 신뢰이익배상설, 이행이익배상설 등 다양한 견해로 나뉜다.70)
(1) 제580조, 581조에 의한 권리는 ‘매수인이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6월 내에 행사하여야 한다는 민법 제582조 규정에 관하여, 판례는 ‘하자와 손해발생간의 인과관계를 알았을 때’라야 ‘하자가 존재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볼 것이라고 하고, 목적물의 하자로 인한 손해발생의 결과를 안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매수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출소기간으로 해석하면 매수인에게 가혹하다는 점에서 기간 내에 재판상 또는 재판외에서 권리를 행사하면 되는 것으로 볼 것이며, 담보책임 내용인 해제권과 같은 형성권에는 소멸시효의 중단과 같은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71) 이는 담보책임에 관한 법률관계의 조속한 안정을 도모하려는 제척기간으로 볼 것이다.
(2) 하자담보에 기한 매수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및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판례는 “민법 제582조의 제척기간 규정으로 인하여 소멸시효 규정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즉 부동산 매수인이 매도인을 상대로 하자담보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매수인의 하자담보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부동산을 인도받은 날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는데 그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이미 소멸되었다고 한다.72)
생각건대 담보책임의 제척기간과 소멸시효의 제도 취지가 다르고, 만약 물건을 인도받아 자신의 지배영역에 둔 매수인이 충분히 하자 여부를 검사할 수 있었는데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면, 법률관계의 조속한 확정을 도모하는 제척기간에 비추어 매도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특히 시효기간이 10년인 채무불이행책임에 비하여 무과실책임인 하자담보책임이 하자발견시까지 계속 존속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고, 소멸시효완성의 항변이 권리남용으로 인정되면 매수인이 보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멸시효와의 경합을 인정함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73)
1) 종류물매매와 매도인의 담보책임에 관한 민법 제581조의 요건: 매매의 목적물을 종류로 지정한 경우에, 그 후 특정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고, 매수인은 하자에 관하여 선의·무과실이어야 한다.
(1) 해제권, 손해배상청구권: 제580조가 준용된다. 따라서 특정물매매에 있어서의 설명과 같이 선의·무과실의 매수인은 해제권과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다.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하자가 중대한 것이 아닌 경우,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
(2) 완전물급부청구권: 매수인은 계약의 해제 또는 손해배상의 청구를 하지 않고, 그 대신 하자 없는 물건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판례는, 종류물매매에서 하자담보의무의 이행이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 매수인의 완전물급부청구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한다.74) 즉 “…매매목적물의 하자가 경미하여 수선 등의 방법으로도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는 반면 매도인에게 하자 없는 물건의 급부의무를 지우면 다른 구제방법에 비하여 지나치게 큰 불이익이 매도인에게 발생되는 경우와 같이 하자담보의무의 이행이 오히려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에는, 완전물급부청구권의 행사를 제한함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매수인이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6월 내에 행사하여야 한다(제582조). 판례는 “표고버섯 종균에 하자가 존재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기 위하여는 종균을 접종한 표고목에서 종균이 정상적으로 발아하지 아니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종균이 정상적으로 발아하지 아니한 원인이 바로 종균에 존재하는 하자로 인한 것임을 알았을 때라야 비로소 종균에 하자가 존재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볼 것”이라고 하였다.75)
(1) 민법상 매수인에게 하자검사 및 통지의무는 인정되지 않고, 상인 간의 매매에서 매수인에게 하자검사 및 통지의무가 인정된다.76) 상법 제69조 제1항의 매수인의 목적물의 검사와 하자통지의무에 관한 규정의 취지는 상인간의 매매 계약의 효력을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폐단 등이 있어 매수인에게 신속한 검사와 통지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상거래를 신속하게 결말짓도록 한 것이다.77)
(2) 상법 제69조는 “… 하자 또는 수량의 부족을 발견한 경우에는 즉시 매도인78)에게 그 통지를 발송하지 아니하면 이로 인한 계약해제, 대금감액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 매매의 목적물에 즉시 발견할 수 없는 하자79)가 있는 경우에 매수인이 6월내에 이를 발견한 때에도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례는 “… 하자담보책임의 전제요건, 즉 매수인이 목적물을 수령한 때에 지체 없이 그 목적물을 검사하여 즉시 매도인에게 그 하자를 통지한 사실, 만약 매매의 목적물에 즉시 발견할 수 없는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6월 내에 이를 발견하여 즉시 통지한 사실 등에 관한 입증책임은 매수인에게 있다”고 하였다.80)
2) 매수인은 객관적 주의로써 검사해야 하며, 통지의 방법에는 서면, 전화 등 제한이 없고, 통지의 내용은 구체적인 하자의 종류와 범위이다(하자의 성질 및 종류, 범위, 수량의 부족분 등을 포함하여야 함). 만약 매수인이 위의 검사 및 통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매도인에 대하여 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다(간접의무 위반의 효과). 즉 계약해제권, 대금감액청구권,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81)
3) 민법상 매도인의 담보책임에 대한 특칙인 상법 제69조 제1항은,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상법 제69조 제1항은 민법상 매도인의 담보책임에 대한 특칙으로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이른바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청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82) 이러한 판례를 비판하면서 상법 제69조가 민법 제581조 제2항상의 완전물급부청구권을 배제하는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이를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라면서 하자와 관련된 채무불이행책임도 차단함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는 상법 제69조 소정의 6개월의 제척기간은 지나치게 단기이므로 충분한 기간으로의 연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83) 그러나 하자담보책임만을 인정하고 채무불이행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하면 단기의 제척기간이 도과된 매수인에게 불리하고,84) 제도의 취지가 다르거나 규범의 요건과 효과, 증명책임 등에서 다를 수 있는 경우에는 청구권자의 선택적 행사를 인정함이 권리 보호 측면에서 타당하고,85) 이러한 판례의 태도를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1) 현행 민법의 하자담보책임은 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2004년 민법개정안은 매수인의 구제수단으로 대금감액청구권과 하자보수청구권을 추가하였고,86) 이후 3기(2011년) 민법개정위원회의 개정시안은 추완청구권과 대금감액청구권을 두었으며 일반채무불이행책임과의 통합적 규율을 꾀하였다. 다만 3기 개정안은 매도인의 하자 없는 급부의무를 규정하지 않았으며,87) 하자의 개념에 대한 명문 규정을 두지 않았다.88)
2) 생각건대 우리 민법은 채무불이행책임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제390조) 담보책임을 별도의 규정으로 두었는데 그 본질론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담보책임의 효과로 규정된 권리 외에 현재 시점에서 새로운 청구권을 추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히 인도된 물품(대체물)을 소비·사용하면서도 컴플레인(Complain)을 제기하는 매수인과 계속적 거래를 유지하려는 매도인은 하자를 논하기에 앞서 당사자간 자율적으로 대금감액이나 보완 내지 추완 문제를 협의·조율하는 점에서 이를 명문화할 필요가 부족하고, 당사자 간 별도의 합의가 없는 경우에 담보책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될 것인데 해제나 손해배상을 논하기에 앞서 하자의 존부 판단이 문제될 것이다. 다만 국제거래에서의 통일적 규율을 경시할 수는 없겠으므로, 이 부분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깊은 연구는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3) 한편 쌍방 당사자가 계약관계의 유지를 원하는 경우와 계약관계의 해소를 원하는 경우에는 그 보호수단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에는 매수인의 구제수단으로 해제나 손해배상청구보다는 대금감액이나 추완청구가 문제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해제나 손해배상청구가 문제될 것인데 하자의 존부, 그 판단 기준에 관하여 치열한 다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매수인의 보호를 중심으로 채무불이행책임과 담보책임의 경합을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특히 계속적 거래관계에 있는 종래의 매도인보다 더 저렴하게 물건을 공급하겠다는 경쟁사업자가 매도인의 고객인 매수인을 유인한다거나, 고가에 팔 수 있는 신제품의 개발을 꾀하면서 기존의 생산라인을 교체한다거나, 노후된 자신의 기계설비에서 부득이 발생한 불량제품에 관하여 매수인은 이를 숨기면서 ‘하자가 없음’에도 이를 하자라고 주장할 유인이 있다. 따라서 종래 학계에서 많이 연구된 하자담보책임보다는 하자가 있지 않은 사안에서의 매도인을 보호할 방안을 논하고자 한다(Ⅳ). 매도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하자담보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하자가 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고, 하자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이를 악용하는 매수인도 있겠다. 따라서 블랙컨슈머의 주장에 대한 매수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소송상 대응방안을 살펴보기에 앞서 담보책임 일반론(Ⅱ),89) 물건의 하자와 이에 대한 담보책임, 권리행사기간, 상사매매의 특칙 등을 살펴보았다(Ⅲ).
Ⅳ. 물건의 하자 존부 및 블랙컨슈머의 주장에 대한 소송 대응방안
인간의 사회생활은 이익충돌이 불가피하여 타인에 대한 가해가능성을 내포한다.90) 그런데 그러한 행위가 법질서에 위반되고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으면 위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 근래 블랙컨슈머에 관한 기사가 종종 등장한다. 가령 음식에서 머리카락과 같은 이물질이 나왔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다.91) 그런데 물품을 매수한 기업도 물품 공급자를 상대로 대금 면탈을 위해 종종 물품 교환 요구 등으로 부당한 횡포를 부리고 하자를 주장하며 이런 유사한 유형의 억지 주장을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당사자의 탐욕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민사소송법이 사실의 주장과 증거의 제출에 관한 변론주의를 전제로 하고92) 다툼이 없는 사실에 대하여는 판결의 기초가 되는 구속력이 있다는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민사소송에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법률상의 주장과 재판을 통한 권리구제의 이념과의 상치 문제로 판례가 소송사기의 성립(적용)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93) 따라서 악의적인 소비자나 기업을 만나면 매도인으로서는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기 위하여 상당한 기간 법적 분쟁에 대응할 수 밖에 없다. 때때로 그들은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조정의 장(場)으로 유인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헌법이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도록 하고 있고(제123조 제3항), 이를 통한 기업의 기술 혁신 및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성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법상황에서는 물품을 매수하는 소비자나 기업이 물품 공급자를 상대로 종종 물품 교환 요구 등으로 부당한 횡포를 부리거나 하자가 있다는 억지 주장을 통해 대금을 면탈하려고 하고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정도가 시장지배력이 있는 사업자라면 사안에 따라서는 공정거래법 제3조의 2에 규정된 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에 해당될 여지가 있겠고,94) 한편 불공정거래행위95)에 관련하여서는 물품공급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사업자가 표시나 광고 이외의 방법으로 물품공급자의 물건이 자기 회사 것보다 현저히 불량한 것이라고 경쟁회사의 고객(매수인)을 오인시켜 고객을 자신과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이 있거나96) 또는 그와 결탁하여 물건에 하자가 없음에도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블랙컨슈머’처럼 반품(환불)을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거나 부당한 소송을 통하여 불법적 이득을 꾀하는 회사가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법상황에서는 정당한 권리자인 매도인의 대금채권 회수에 오랜 시일이 걸려 기업의 발전에 저해가 되고 있는 실정이고, 장기간의 비효율적이고 의미 없는 소모적인 분쟁으로 인하여 한정된 사법자원의 효율적인 운용이 침해될 우려 또한 있다.
(1)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는 자칫 흑인 소비자로 오해되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97) 이에 본고에서는 ‘악성 소비자’라는 용어를 같이 사용하고자 한다. 구매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보상금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악성소비자’ 내지 ‘블랙컨슈머’라고 개념 정의할 수 있겠는데,98) 그들은 기업을 기만할 의도를 가지고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이를 반복적으로 악용하는 소비자라고 할 것이다.99) 그 특성으로 억지성·기만성·상습성·과도성이 있고,100) 선의의 피해자처럼 가장하는 그들은 소비자의 권리를 악용하고 저급한 윤리의식으로101) 피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나 피해의 정도에 관하여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앞, 뒤가 맞지 않아 모순되고 객관적으로도 부당한 주장으로 판명될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비윤리적행위’(consumer unethical behavior)102)의 배경에는 그 소비자의 심리에 자리잡고 있는 탐욕이 있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그들은 억지 주장을 통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기도 한다.103)
(2) 블랙컨슈머의 등장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검토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하자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사고는 매수인이 배타적으로 결정하는 영역에서 발생됨이 보통이므로 매도인 입장에서 이를 대응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요구되며, 둘째, 매도인이 공급한 물품의 가격에 비하여 매수인이 주장하는 보상액 내지 손해액이 지나치게 크고, 셋째, 애초 불만을 제기했던 개인이나 기업의 대표자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서는 억지 주장의 남발과 매도인이 예기치 않은 부당한 소송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소송에서 대응하면 매도인으로서는 타격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성격과 성향은 전생애에 걸쳐 개인의 행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것인데,104) 블랙컨슈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선행변수와 그 행동의도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선행연구105)는 여행소비자의 개인성격특성 중 소비자소외감과 ‘공격성’ 요인만이 블랙컨슈머 행동의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106) 공격성은 타인에게 신체적·심리적으로 해를 입히는 신체적·언어적 및 그 밖의 행위들로서 타인을 해치는 것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동들뿐만 아니라 어떤 비사회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07)
한편 블랙컨슈머는 비윤리적인 문제제기를 상황윤리로 합리화하고, 자신이 요구한 수준 이상의 보상이 제공되지 않으면 애초 불만 제기 상황에서의 분노, 화 등의 부정적 감정보다 더욱 극단적인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상습성, 억지성, 기만성, 그리고 과도성이 높은 소비자일수록 보복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108) 또한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 교수의 이른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서는 상황에 따라 악이 발생되고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을 도출하였고, 악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며, (개인의 악을 넘어서는) 집단의 악을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109) 상대방인 기업의 대표자 성향에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에 대한 대응에서는 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1) 물품을 공급하고 받지 못한 대금에 대하여 원고가 그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면, 피고는 물품에 하자가 있다고 손해배상을 주장하며 상계항변을 하거나 반소를 청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증명책임은 민사소송의 척추이다”라는 법언이 있다.110) 민사소송에서 어떤 요건사실의 존부가 불명인 경우 그 요건사실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법률효과의 발생이 인정되지 않아 일방 당사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 또는 위험을 증명책임이라고 한다.111) 그런데 의료소송, 고도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공해소송 등 현대형 소송에서는 중요한 증거가 상대방인 의사나 기업의 수중에 있는 경우가 많다. 블랙컨슈머가 주장하는 법적 상황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피고가 원고(매도인)의 물품을 공급받아 이를 투입·사용한 경우에 피고의 생산환경에서 만든 완제품에 불량 등의 하자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기업에게 법리상 증명책임이 있음에도, ‘증거의 구조적 편재 현상’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는 물품을 공급한 기업(매도인)이 훨씬 더 많은 주장을 하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증거의 신빙성 내지 증거가치 판단 국면에서 블랙컨슈머의 허위 주장들은 대부분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것으로 정리되겠지만, 판결 선고(확정)까지는 물품공급자 입장에서는 편안할 수는 없겠다.
특히 물건의 하자 유무, 건축물 공사의 하자 감정 등 구체적인 사실판단에는 감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감정은 전문가의 판단을 소송상 보고시켜 법관의 판단능력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112)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감정인의 감정결과를 존중하게 되고, 감정방법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 현저한 잘못이 있지 않은 경우에 그 배척은 쉽지 않다고 하겠다.113) 이처럼 매매 목적물에 하자가 존재하는지의 증명에 관련하여 감정인의 감정결과가 중요하므로, 감정인은 전문가로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하고 감정사항에 대하여 전문지식과 경험을 적용하여 객관적·합리적이고 정확한 감정결과를 법원에 제공하여야 한다.114) 해당 분야의 경험칙에 맞는 감정결과만이 정당한 권리자를 보호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당한 감정결과에 대하여는 재감정을 통해서라도 적극 다투어야 할 것이다.115) 아래에서는 실무에서 하자의 존부에 관한 증명책임이 어떻게 적용되고 문제되는지 살펴보겠다.
(2) 그런데 만약 악성소비자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배타적인 생산환경’에서 매도인의 물품을 투입하여 제조한 완제품의 표면에 불량자국 등 하자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고 물품대금보다 더 많은 금액의 손해배상이나 보상을 요구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에 법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국면에서 결국 지급받아야 할 대금을 대폭 감액하여 주거나 심지어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배타적 생산환경을 가진 사업자가 자신이 제조한 완제품의 표면 불량의 발생원인이 그의 귀책사유 내지 책임영역에서 발생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면 소송에서는 종종 증명방해까지 꾀할 수도 있겠고,116) 그 과정에서 취하는 악덕 기업의 부당한 행위로 인하여 결국 선량한 물품 매도인이 큰 피해를 입을 우려도 있겠다. 따라서 이러한 법상황에서는 무과실책임으로 운용되어 온 하자담보책임을 악용하거나 잘못된 윤리의식을 가진 매수인의 보호보다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매도인의 보호가 무엇보다 절실한 실정이라고 하겠다.
원고의 물품대금 청구에 대하여 피고는 매수한 물품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매매계약 ‘해제’ 및 미사용 물품에 대한 매매대금 반환을 주장하며 매매대금 반환채권과 원고의 물품 공급에 따른 손해배상채권으로 원고의 대금채권과 ‘상계’한다고 주장하며,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서는 ‘반소’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1) 구체적으로 예상되는 피고 주장의 예를 들면, ① 원고로부터 매수한 물품을 다른 원자재들과 섞어 만든 혼합물을 넣어 완제품을 만들었는데, 생산된 완제품의 표면에 불량자국이 있었다.117) 원고의 물품에 하자가 있으므로,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미사용 물품에 대한 매매대금의 반환을 구한다. ② 원고의 하자 있는 물품 공급에 따른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으로 원고의 물품대금채권과 상계한다. ③ 남은 손해에 관하여 원고는 배상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는 반소를 제기한다. 또한 이러한 유형에서는 피고가 자신이 보관하고 있다는 물품에 대하여 법원에 감정을 신청하여 부당한 의도를 관철하고자 할 것이다.118) 만약 피고의 의도에 부합하는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감정결과가 제출되었다면, 이후 피고는 반소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2) 또한 예상 가능한 피고의 주장 유형으로는, 피고의 반품 요구에 원고가 일정한 분량(예: 1,800kg)의 물품을 회수해 갔으므로 미지급 물품대금에서 위 물품 시가 상당액을 공제하여야 한다거나, 피고는 원고가 공급한 물품의 하자로 인하여 완제품에 불량이 생기는 등의 하자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입은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물품대금채권을 대등액에서 상계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3) 매수인은 해당 물건이 특정의 주문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의 주문에 따라 자기 소유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물건을 공급하기로 하거나 또는 상대방이 지정한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물건을 공급하기로 하고 상대방이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는 주장이 전개될 수 있다. 특히 이른바 제작물공급계약과 그에 적용할 법률규정이 문제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적용할 법률규정에 관하여 판례는 “계약에 의하여 제작 공급하여야 할 물건이 대체물인 경우에는 매매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만, 물건이 특정의 주문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부대체물인 경우에는 당해 물건의 공급과 함께 그 제작이 계약의 주목적이 되어 도급의 성질을 띠게 된다”고 한다.119) 즉 물건이 ‘특정의 주문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부대체물120)’인 경우에는 당해 물건의 공급과 함께 그 제작이 계약의 주목적이 되어 ‘도급’의 성질121)을 강하게 띠고 있고(도급에 관한 민법 제668, 670조를 적용한다), 이 경우에는 매매에 관한 규정이 당연히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상법 제69조 제1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① 판례는 “매매계약 당시 매수인 스스로 매도인이 제공하는 카탈로그 등에 의하여 자신이 매수하여 가공·완성할 제품의 제원과 사용 목적, 사용 방법을 검토·고려하여 성능과 용량이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제품 중 특정 종류를 선택하였다면, 매수인으로서는 매도인에게 매매 목적물에 관한 성능과 용량의 차이로 인한 결함을 들어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였다.122) 원심은 산업용 승강기 제작에 사용되는 브레이크를 공급한 원고(반소피고)가 피고의 (하자)보수요구에 응하지 않고 제대로 이행(수리)하지 않아 피고가 수리를 위해 지출한 금액 상당을 배상할 의무가 있고 나머지 물품에 대해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으로 그 대금 상당액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대법원은 브레이크의 제동력 자체에 구체적인 결함이 발견되지 않고, 원심이 인정한 하자 내용도 납품한 브레이크 제품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위 브레이크를 부착한 산업용 승강기의 고소작업이나 빈번한 사용 또는 무거운 하중 등 특수한 사용방법 또는 작업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요컨대 원고의 물품이 계약상 ‘예정’된 성능을 결여한 것이 아니라면, 피고 측 사용현장에서의 결함은 피고 측 승강기에 적절한 브레이크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였거나 이를 부착한 승강기의 사용방법 또는 작업 환경이 잘못된 것이며, 후자의 경우 피고는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② 또한 대법원은 매도인이 공급한 기계가 통상의 품질이나 성능을 갖춘 경우, 그 기계에 하자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제품이 사용될 작업환경이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에 필요한 품질이나 성능을 갖춘 제품의 공급을 ‘요구’한 데 대하여 매도인이 이를 갖춘 제품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보증’하였을 것을 요한다.123) 매도인이 제시하는 기계의 카탈로그와 검사성적서에 기재된 품질과 성능을 매수인은 신뢰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매도인이 카탈로그와 검사성적서를 제시하는 경우에는, 매매물품(기계)를 사용하여 장시간(사안에서는 10분 이상) 계속 작업하면 허용되는 가공오차(허용치)를 벗어난다거나 장시간의 특정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도인은 작업시간에 관계없이 측정치(가공오차)가 기재된 카탈로그대로 기계의 성능을 보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매수인이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즉 제품이 사용될 작업환경이나 상황에 관하여 과연 어느 정도 매도인에게 ‘설명’하였는지가 실무에서 문제될 수 있다.
③ 판례는 위와 같이 매도인이 공급한 부품이 통상의 품질이나 성능을 갖추고 있는 경우, 나아가 내한성이라는 특수한 품질이나 성능을 갖추고 있지 못하여 하자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완제품이 사용될 환경을 ‘설명’하면서 그 환경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내한성 있는 부품의 공급을 ‘요구’한 데 대하여, 매도인이 부품이 그러한 품질과 성능을 갖춘 제품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보증’하고 공급하였음을 요하면서, “특히 매매목적물의 하자로 인하여 확대손해 내지 2차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매도인에게 그 확대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하여는 채무의 내용으로 된 하자 없는 목적물을 인도하지 못한 의무위반사실 외에 그러한 의무위반에 대하여 매도인에게 귀책사유가 인정될 수 있어야만 한다”고 하였다.124) (ⅰ) 원심은 난로, 버너 등의 제조업자인 원고에게 난로의 버너에 사용되는 부품을 공급하는 피고가 판매한 커플링의 하자로 냉해사고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는데, (ⅱ) 대법원은 ㉠ 커플링의 용도를 떠나서는 하자의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고, 피고는 재질별로 등급과 가격 및 용도에 차이가 있는 커플링을 판매하였으며, 1994년도에 약 18,000개 정도의 'D/K 커플링'을 제작·판매하였으나 내한성이 문제된 경우로는 이 사건 난로에 사용된 2개(합계 2,000원)125)뿐이었고 농작물 냉해 피해가 발생한 날의 기온이 유난히 낮았던 사실 등과 함께 위 농작물 피해가 발생할 때까지 원고가 제작하여 판매한 농업용 난로가 상당 기간 동안 아무 이상 없이 잘 가동되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날에 비로소 가동이 중단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D/K 커플링' 2개가 플라스틱을 주된 재료로 하여 제작한 커플링의 샤프트가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이나 성능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한 후, ㉡ 여러 해 동안 완제품을 생산한 매수인이 부품의 재질에 따라 그 등급과 가격 및 용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품의 품질과 성능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한 채 거래관행에 따라 품명과 수량만을 구두로 발주하고 부품을 공급받아 사용하였고, 또한 그 부품에 대하여 매도인이 어떠한 품질과 성능을 보증하였다고 할 수 없는 경우, 부품의 하자가 손해발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 원심126)을 파기하였다. (ⅲ) 요컨대 'D/K 커플링'을 매수한 업체들 중 유독 원고의 농업용 난로만 문제되었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날에 가동이 중단되었다면, 매도인이 달리 그러한 환경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내한성 있는 제품이라는 점을 ‘보증’한 적이 없는 사안에서는 제품의 하자를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겠다.127)
(2) 생각건대 위와 같은 판례에 비추어 정당한 권리자(매도인) 입장에서는 아래와 같이 대응할 수 있다. 첫째, 매수인이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생산환경이나 제품이 사용될 작업환경 내지 상황에 관하여는 기업비밀 등을 이유로 매도인에게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있겠고(위 ③사안 참조), 둘째, 성능과 용량 또는 재질과 가격이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제품 중 특정 종류의 제품을 매수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경우에는 통상의 품질이나 성능을 갖춘 해당 제품을 공급한 매도인에게 책임을 지우기 어렵고(위 ①, ③사안), 셋째, 매수인이 제품이 사용될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 관하여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고 특수한 품질이나 성능을요구하지도 않아 매도인이 이를 보증한 적도 없다면, 특수한 품질 등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하여 하자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므로, 매수인의 특수한 사용방법이나 작업 환경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법률요건과 법률효과를 정한 민법에서의 논리적·체계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 및 숙지는 해당 사건의 소송에 필요한 역량, 특히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추론의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고, 이러한 민사법 이론에 대한 실무 지식 및 경험은 승소 판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피고의 허위 주장 및 부당한 의도를 꺾기 위하여는 다툼이 된 주요 부분에 있어서 원고의 주장 내용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특히 해당 물품이 정상적으로 계약에서 예정되거나 요구된 특정한 역할을 다하였고, 그 물품은 통상적 품질이나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승소판결에 필요한 판단 근거를 마땅히 보완하여야 한다. 소송과정에서 필요한 사실관계뿐만 아니라 물건의 하자 및 감정인의 감정결과에 관련한 수많은 대법원 판례 및 법리의 검토는 물론이고, 과학법칙이 기재된 문헌을 찾아 제출하거나 피고가 주장하는 상황은 피고가 선택한 생산조건이나 작업환경에서 발생된 것임을 변론하는 노력으로 소송수행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128) 만약 소송 중 터무니 없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피고의 주장을 접한다면, 매우 이례적인 사정에 비추어 거짓임을 의심하고 변론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위 2.의 1) 내지 3)과 같은 피고의 부당한 주장 유형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가령 원고가 피고에게 공급한 물품의 역할 내지 사용 용도에 비추어 원고가 피고에게 공급한 물품에 하자가 있다거나 그러한 하자로 인하여 완제품에 불량 등의 하자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위 2.의 2)와 같은 피고의 부당한 주장 유형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원고는 원고가 인정한 물량(예: 1,000kg)을 초과하여 물품(예: 1,800kg)을 회수해 가지 않았다는 점에 관하여 물품의 회수, 교부, 공급 등의 과정을 세금계산서 등의 여러 증거를 통해 종합하여 재구성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여 준비서면 등을 작성하여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에 비추어 물품 매도인으로서 대금을 받아야 하는 원고로서는 피고의 억지 주장 및 증거신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피고의 배타적 생산환경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는 취지의 구석명신청서를 제출하거나 필요한 부분에 관하여 다른 회사(제3자)에 대한 사실조회촉탁 등의 증거신청을 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며, 감정인 A의 부당한 감정서를 탄핵하기 위하여 법원에 이른바 재감정도 신청할 필요가 있다(피고 또한 적극적으로 보완 감정을 신청하여 재감정이 진행되기도 한다). 만약 재감정 후 다른 감정인 B의 감정서가 제출되었다면, 그 내용을 수긍할 만한지를 검토하여 변론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피고가 채택된 감정사항 일부의 실시에 관하여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원고로서는 이 부분도 포함하여 변론하여야 한다.
소송당사자에게 외형상 불리한 감정결과가 도착되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후라면,129)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선고받기 위하여는 법리 분석 이외에도 쟁점이 비슷한 여러 사건들의 검토 후 필요한 증거신청 및 증인에 대한 주신문 또는 효율적인 반대신문 등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은 변론한 내용들(사실적·법률적 주장)의 상당 부분이 해당 사건의 판결에 반영될 수 있다. 이는 분쟁에 대응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소송당사자 및 변호사가 노력 및 연구한 내용 중 가치 있는 부분이 ‘판결화’되며, 변론주의 측면에서 사실과 증거의 수집 및 제출을 하여야 하는 당사자나 그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법률지식과 경험 및 역량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게 되면, 블랙컨슈머가 주장하는 물품 하자 주장은 배척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판결이 선고될 것이다(피고의 상계항변은 배척되며 반소청구는 기각될 것이다).
선례적 가치가 있거나 다른 재판에 참고가 될만한 전문적인 사건 등 중요사건은, 쟁점 내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판결에 설시하는 점130)에 비추어 부당한 소송이나 블랙컨슈머에 대응하여 승소한 사건의 판결은 “판단과정”을 상세히 설시할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소송당사자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려운 부분에 관하여는 여러 방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피고가 모든 생산조건 및 생산공정, 생산설비 등을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피고 주장의 허위성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고, 둘째, 피고가 허위 시료까지 제출하며 감정절차에 참여할 수도 있는데 신빙성이 부족하거나 결여된 일방적인 내용의 감정서가 제출되는 상황이라면 이를 대응하여 다투거나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131)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정의로운 판결로 악덕 기업이나 블랙컨슈머의 억지 주장은 배척될 것으로 보인다.
Ⅴ. 결 어
1. 본고에서는 하자담보책임 일반론과 함께 물건 하자의 개념 및 판단 기준의 문제와 함께 실무상 하자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2. 우리 민법은 계약관계에 있는 당사자, 예컨대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문제에 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규정하면서도 하자담보책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종래 우리 학계에서의 하자담보책임 연구는 매수인의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추어 이론 및 체계를 보완하여 왔다. 그런데 정작 하자가 존재하는지의 판단 문제에 있어서 매도인의 권리 보호에는 소홀히 한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물건 하자의 개념과 함께 실무상 하자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하자의 판단기준을 살펴보고 계약부적합 개념과의 관계에 관하여 유럽소비재매매지침을 본 후,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를 소개하였으며, 민법 제580조, 제581조, 상사매매의 특칙 관련 상법 제69조를 고찰하였다. 특히 물건에 하자가 없음에도 억지 주장으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등 이른바 ‘악성소비자’ 내지 ‘블랙컨슈머’와 같이 부당한 소송을 통하여 불법적 이득을 꾀하는 소비자는 생산품의 품질 향상과는 무관하여 중소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악덕 소비자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하자를 주장하고 부당한 횡포를 부리는 기업에 대한 사업자의 법적 대응방향에 관하여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므로 이를 논하였다.
3. 사업자가 제공한 상품에 이물질이 있다거나 물품에 하자가 있다는 등의 억지 주장으로 과도한 보상 요구를 하는 소비자나 기업의 윤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인데, 이에 관하여는 지면관계상 향후의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