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

다수인의 과실 부작위가 경합한 경우의 형사법적 죄책:

김성룡 *
Sung Ryong Kim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경북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위원
*Prof. Dr. iur.,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Law School

© Copyright 2023,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Sep 29, 2023; Revised: Oct 23, 2023; Accepted: Oct 24, 2023

Published Online: Oct 31, 2023

국문초록

이 글은 대법원 2023.3.9. 선고 2022도16120 판결의 평석을 겸하여 이른바 다수인의 과실 부작위가 경합한 경우의 형사법적 죄책을 둘러싼 문제를 다루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과실, 부작위, 공동정범, 인과성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미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보증인적 지위의 발생근거, 과실 부작위범의 성립요건 등에 대한 판례의 입장에 대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이 글은 사실심 법원과 대법원의 법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석론의 과제들도 제언하고 있다.

항소심과 대법원의 사실확정과 증거판단이 정확하다고 가정하면, 본 사안에서 피고인들은 각자 단독범으로 부작위 과실범, 즉 실화죄를 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결에서 등장하는 법리와 논거들은 다분히 혼란스럽고 애매모호하다. 특히 유권해석 권한을 가지고 법리를 제시하는 대법원의 판시내용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개선되어야만 한다.

해석론에서도 기존의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관련 논의와 선행행위와 발생 결과 사이의 인과성 필요 여부에 대하여 조금 더 정확하고 논리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Abstract

This article dealt with issues surrounding criminal liability in cases where the so-called negligent omissions of multiple people collide. It is also a review of the ruling of Korean Supreme Court Decision 2022 Do 16120 sentenced on March 23st 2023. In this ruling, the korean Supreme Court clarifies its position with respect to negligence, omission, co-principal, and causality. There are already voices criticizing the position of precedents on the distinction between an act and an omission, the basis for the genesis of a guarantor status, and the requirements for establishing a negligent omission of duty of action. Against this background, this article points out problems with the legal principles or doctrines of the trial court and the Supreme Court and also suggests challenges in interpretation theory that could be topics that requires more detailed discussion.

Assuming that the appellate trial and the Supreme Court's findings of fact and evidentiary judgment are accurate, each of the defendants in this case is a sole offender and has committed negligence by omission, that is, the crime of misfire. Nevertheless, the legal principles and arguments, not only of the lower courts but also of the Supreme Court, that appear in the ruling are quite confusing and ambiguous. In particular, the Supreme Court's rulings, which present legal principles with the power of authoritative interpretation, must be improved to be clear and easy to understand.

In interpretive theory of criminal law, there is a need for more precise and logical discussions regarding the distinction between acts and omissions and whether causality is necessary between preceding acts and their results with respect to the position of guarantor and his duty for the prevention of harm.

Keywords: 과실; 부작위; 인과성; 공동정범; 보증인의무; 실화죄
Keywords: Negligence; Omission; Casualty; Co-principal; Guarantor obligations; accidential fire

Ⅰ. 개요

대법원 제2부는 2023년 3월 9일 선고한 2022도16120 판결에서 피고인들을 각자 단독범인 부작위 실화죄로 처벌하면서 “실화죄에 있어서 공동의 과실이 경합되어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적어도 과실이 화재의 발생에 대하여 하나의 조건이 된 이상은 그 공동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각자 실화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라는 1983년의 판결1)을 원용했다. 그런데 ‘공동의 과실이 경합’했다는 표현을 보면 대법원이 피고인들을 단독범 또는 동시범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비록 진정부작위범에 관한 판결이기는 하지만 기존 부작위범의 공동정범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이 “구성요건이 부작위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진정부작위범(…)인 …법 위반죄의 공동정범은 그 의무가 수인에게 공통으로 부여되어 있는데도 수인이 공모하여 전원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성립할 수 있다”2)라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위범의 공동정범으로 본 것은 아닌 것으로 추단할 수 있으나. 굳이 ‘공동의 과실이 경합’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달리 말해 단독범인 부작위범 성립을 근거지우기 위해 과실의 경합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아가 피고인들의 행태를 작위가 아닌 부작위로 판단한 부분의 판시와 관련해서도 ‘결과발생을 용인하고 방관한 채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것이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고 하는 이른바 ‘고의’의 부작위범의 성립요건에 대한 대법원의 기존 법리를 원용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실화죄로 처벌되었음에도 ‘과실’ 부작위에 부합하는 법리를 설시하지 않은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미 위 판결에 대한 비판적 평석이3) 나오고 있고, 다양한 입장에서 나름의 판례 읽기들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위 대법원 판결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기존의 판결의 법리와는 정합적인지, 위 판결에서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대법원의 오류나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지, 기존의 부작위범 관련 논의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태이거나 착안이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제시하여 관련 독자들의 보다 깊이 있고 다양한 토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하급심과 대법원에서 확정한 사실관계와 소송의 진행을 간략하게 요약하고(Ⅱ), 판결에 나타난 사실인정과 법리를 분석해 본 후(Ⅲ), 판례의 문제점과 오류를 요약하고, 해석론의 과제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Ⅳ).

Ⅱ. 사실관계와 법원들의 법리

1. 사실관계와 하급심의 판단
1) 작위와 부작위의 인과성

항소심인 대구지방법원 본원 합의부가 원용하고 있는 제1심 재판부가 확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4)

① 피고인들은 사건 당일 화재 직전인 2020. 3. 19. 17:22:02경과 17:22:25경 각각 손가락으로 담뱃불을 튕겼던 점, ② 당시 바람이 화재가 처음 발생하였던 분리수거장 방향으로 강하게 불고 있었던 점, ③ 피고인들과 분리수거장의 거리는 1미터에서 3미터 정도였던 점, ④ 분리수거장에는 종이류 등 불에 쉽게 탈 수 있는 물건들이 쌓여 있었던 점, ⑤ 피고인들이 담배를 피고 돌아온 후 약 3-4분 정도 지나 분리수거장 쪽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고, 그곳이 최초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점, ⑥ 그 수 분 내에 제3자가 방화를 할 가능성은 극히 낮고, 그 밖에 전기적·화학적 발화원인도 없었던 점

제1심은 이러한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피고인들의 각 행위와 이 사건 화재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으나, 피고인들은 상당인과성을 인정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므로 (각 피고인들이 자신의 행위가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임) 항소심은 원심의 사실인정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인과성 판단 부분을 보충하고 있다.

CCTV 영상에 의하면 피고인 1이 분리수거장 방향으로 손가락으로 담뱃불을 튕겨서 끄고 피고인 2는 창고동 방향으로 담뱃불을 튕겨서 끄는 모습이 확인되기는 하나, 당시 바람이 분리수거장 방향으로 강하게 불었기 때문에 피고인 2의 담뱃불도 분리수거장으로 날아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피고인들 모두 담배꽁초를 분리수거장 또는 그 부근에 버렸는데 당시 담배꽁초에 불씨가 남아 있었을 수도 있고 누구의 담배꽁초에서 발화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제출된 증거들만으로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인들 중 누구의 행위에 의한 것인지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각 피고인들에게 작위로 인한 실화죄의 인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에게 각각 실화죄 과실범5)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종이류가 근처에 적재되어 있는 곳에서 담뱃재를 털거나 꽁초를 함부로 버릴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들은 이 사건 화재 발생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한,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근로자는 근로계약에 따른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사용자에 대하여 노무제공 과정에서 사용자의 인적·물적 자원에 손해를 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가 있고, 사용자 소유의 건물 등을 안전하게 사용·관리하며 위 건물 등에 위험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가능한 범위에서 그 위험을 제거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 점, ② 타기 쉬운 종이상자 등이 쌓여 있는 분리수거장 근처에서 담배 꽁초 불씨를 튕기거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분리수거장 쪽으로 던지는 것을 보았거나 알 수 있었던 점, ③ 당시 건조한 날씨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상대방이 튕기거나 버린 위 담배꽁초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음은 충분히 예견이 가능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에게는 상호 간 그 불씨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과실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판결에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작위의무의 불이행, 즉 부작위의 책임은 피고인들 각각 독립적으로 물을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나아가 부진정 부작위범의 성립요건의 하나인 보증인적 지위의 근거를 선행행위(‘담뱃재를 털거나 꽁초를 함부로 버릴 경우’)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신의성실의 원칙(‘근로계약에 따른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에서 찾을 것인지를 고민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바람이 많이 불고 종이류가 근처에 적재 되어 있는 곳에서 담뱃재를 털거나 꽁초를 함부로 버린 행위도 의무위반적 선행행위로 보고, 이에 추가하여 근로계약상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는 의무위반도 부작위의 연결점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 작위와 부작위를 종합한 인과성 판단,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제1심에서 검사는 과실범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하였으나, 항소심에서 예비적 공소사실에서 공동정범을 제거하는 공소장 변경을 하였고, 재판부는 결국 피고인들 각각을 단독범으로 실화죄의 정범으로 보았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공동의 과실이 경합되어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 적어도 각 과실이 화재의 발생에 대하여 하나의 조건이 된 이상그 공동적 원인을 제공한 각자에 대하여 실화죄의 죄책을 물어야 함이 마땅하다(대법원 1983. 5. 10. 선고 82도2279 판결).6)살피건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누구의 행위로 인한 것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피고인들 중 한 명은 이 사건 화재 발생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한 과실이 있고, 적어도 다른 한 명은 위와 같이 충분히 예견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불씨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만연히 현장을 떠난 과실이 있으며, 이들 피고인들 각자의 과실이 경합하여 이 사건 화재를 일으켰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검사의 주장은 이유 있다.

항소심이 피고인들을 실화죄로 처벌한 논거는 적어도 둘 중 한 사람이 화재발생을 작위로 야기하였고, 적어도 나머지 한 사람은 그렇게 발생된 위험을 방지할 의무와 방지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과실(부주의)로 부작위하였다는 것이고, 이러한 입증의 정도로도 형사책임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적어도 1인은 작위의 실화죄, 나머지 1인 또는 피고인 2인 모두 부작위 실화죄의 죄책을 인정할 수 있도록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과실 작위와 과실 부작위가 경합하여 양자 모두 결과발생에 대해 인과적인 것으로 형사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위의 원인제공에 대한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작위로 야기한 결과발생의 위험을 방지하지 않은 부작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 결국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이러한 추론이 허용되는 것인지, ‘작위가 아니면 부작위’라는 선택적 형사책임이 어떤 논리에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작위의 조건과 부작위의 조건 사이에도 이른바 공동의 조건이라는 요청이 충족되는 것이라는 말인지도 의문이다. 세부적인 분석은 아래의 대법원의 법리까지 정리한 후에 서술하기로 한다.

2. 대법원의 법리

대법원은 원심인 항소심의 판단을 원용하면서 단지 인과성 관련 부분에 대해 첨언하고 있다. 우선 부작위범에 대한 대법원의 법리를 기재하고, 앞서 하급심이 원용한 1983년 실화죄 무죄선고된 판결을 다시 원용하고 있다.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는데도 결과발생을 용인하고 방관한 채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것이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면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대법원 2016. 4. 15. 선고 2015도15227 판결 등 참조).

실화죄에 있어서 공동의 과실이 경합되어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적어도 각 과실이 화재의 발생에 대하여 하나의 조건이 된 이상은 그 공동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각자 실화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대법원 1983. 5. 10. 선고 82도2279 판결 등 참조).

이어서 항소심판단의 취지를 원용하면서 작위와 부작위의무를 차례대로 나열하고 피고인 각자를 실화죄의 정범으로 판단하고 있다.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들이 분리수거장 방향으로 담배꽁초를 던져 버리는 한편, 피고인들 각자 본인 및 상대방이 버린 담배꽁초 불씨가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등 화재를 미리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채 만연히 현장을 떠난 과실이 인정되고 이러한 피고인들 각자의 과실이 경합하여 이 사건 화재를 일으켰다고 보아, 피고인들 각자의 실화죄 책임을 인정하면서 피고인들에 대한 예비적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대법원의 판시 내용을 항소심의 판시와 비교하면, 무엇보다 대법원은 피고인들 모두를 작위와 부작위로 인한 결과발생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인지, 선행행위로 인한 보증인지위(의무)와 계약상 신의성실원칙에 근거한 보증인지위(의무) 양자를 부작위범성립의 근거로 본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 보면 작위에 대해서는 특별히 인과성을 언급하지 않고, 단지 결과발생방지의 부작위라는 과실에 대해서는 양자 모두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도(!) 양자 모두에게 부작위 실화죄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보증인지위와 작위의무의 발생근거를 선행행위와 근로계약상의 방지의무 양자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률심으로서 이른바 그들의 법리를 만들어 내는 대법원의 판결문으로서 그 뜻하는 바를 명확하게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판시로 하급심이건 국민들에게 어떤 해석을 제공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끝으로 대법원은 원심이 화재발생의 원인이 누구의 ‘행위로 인한 것인지 명확지 않다’고 표현한 것이 마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으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보완하고 있다.

다만 원심 판단 중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인들 중 누구의 행위에 의한 것인지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취지의 부분은 결과발생의 원인행위가 판명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피고인들 중 누구의 담배꽁초로 인하여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였는지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선해할 수 있고, 이는 피고인들의 근무내용, 화재 발생 시간과 장소 및 경위, 법익침해 방지를 위한 행위의 용이성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들이 각자 본인 및 상대방의 담뱃불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어 상호 간에 담배꽁초 불씨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완전히 제거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한 채 분리수거장 부근에서 담배꽁초 불씨를 튕기고 담배꽁초를 던져 버린 후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고 이러한 피고인들의 각 주의의무 위반과 이 사건 화재의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부가적 판단이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인행위가 불명이어서 피고인들은 실화죄의 미수로 불가벌에 해당하거나 적어도 피고인들 중 일방은 실화죄가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의 피고인들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위 대법원의 설시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나타나듯이 대상 사안에서는 부작위의 책임이 문제될 뿐 작위의 실화죄는 가벌성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실이 경합하였다는 표현은 결국 부작위한 과실이 피고인들에게 공통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자면 대법원은 부작위의 실화죄로 피고인들의 형사법적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부작위범의 성립요건이 충족되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대법원에서 부진정부작위범의 실화죄의 성립요건과 관련하여 보증인지위의 발생근거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은 원심의 입장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Ⅲ. 분석

1. 확정된 사실관계에 따른 피고인의 죄책

우선 항소심에서 확정된 사실을 기준으로 피고인들의 죄책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작위 과실범(단독범과 공동정범)의 성립여부

항소심의 사실관계 확정에 따르면, 화재발생의 직접적 원인, 즉 자연과학적으로 화재의 인과적 원인을 제공한 행위가 누구의 행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즉 작위와 관련해서는 피고인들 각자의 행위 중 어느 것이 그 화재라는 결과발생의 원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다툼이 없어 보인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결국 작위범으로서의 처벌은 미수범의 처벌이 가능한 경우, 즉 고의범인 경우에만 생각해 볼 수 있고, 피고인들 누구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로 화재의 가능성이 있는 분리수거장 방향으로 담배꽁초나 불씨를 날렸다고 볼 증거가 없는 한 방화(미수)죄의 처벌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과실범으로서의 처벌가능성에 문의할 수 있는 방법은 형법 제30조를 통해서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성립여부를 심사하는 것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행위공동설을 취하고 있는 대법원의 입장을 전제한 것이다. 이러한 심사순서는 개인행위책임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공동정범 규정이 가지는 의미, 즉 인과성의 흠결을 보충하는 기능을 잘 보여준다. 제30조의 공동정범 규정의 도움으로 피고인들 중 누군가의 행위가 결과발생을 야기한 것이 확인될 수 있다면 인과성 심사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정된 사실관계에 따를 때, 피고인들은 서로 담배를 같이 피우고, 같이 불꽃을 튀기자고 명시적·묵시적으로 합의한 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결과발생을 야기한 원인행위를 공동으로 한 바 없어, 판례의 법리에 따를 때,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기초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부주의한 행위, 즉 작위에 의한 화재라는 결과발생에 대한 과실범의 성립은 인정될 수 없다.

2) 부작위범의 성립여부

신체의 거동, 에너지 투입, 인과관계, 작위우선설 또는 법적 비난의 중점설 등 어느 기준을 취하더라도7) 피고인들에게 화재 발생에 대한 현실세계의 자연과학적·물리적 원인을 묻는 작위의 실화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화재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위반의 부작위범의 성립 가능성은 없는지 심사할 필요가 있다.8) 결과를 야기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결과를 방지할 의무위반은 없는지 심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고의의 부진정 부작위범의 성립여부

부작위범의 성립여부는 법익침해의 위험이 발생한 시점, 즉 사안에서 화재발생의 위험이 발생한 시점에서 그 위험이 결과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여야 할 의무를 진 자가 그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주어진 가능한 행위, 즉 작위의무를 부작위하였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즉, 부진정부작위범으로서 실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보증인적 지위가 인정되어야 하고, 그 위험이 자신에 의한 것인지(선행행위로 인한 보증인지위), 타인에 의한 것인지를 불문하고 작위의무이행에 앞선 위험발생, 달리 말해 위험발생을 방지할 작위의무가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구성요건적 상황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나아가 결과발생 방지가 가능해야 하고, 요구되는 행위의 부작위가 작위로 인한 결과발생과 동가치성을 보여주어야 하고, 고의의 부작위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필요하다. 위 사안에서 피고인들을 고의의 부작위범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담뱃불을 튕긴 행위로 인해 분리수거장에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현실화된 시점에 이러한 구성요건적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하는 의사를 가져야 한다. 확정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설령 인식 가능하였다고 하더라도 용인의사를 추단할 수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고의의 부진정부작위범으로 방화죄를 인정하기에는 사실적 기초가 결여되어 있고, 각급 법원에서는 고의 책임을 묻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인식있는 과실, 인식없는 과실의 부작위범 성립여부

부작위에 의한 실화죄, 즉 부작위 과실범의 형태는 인식 있는 과실과 인식 없는 과실의 두 유형이 있을 수 있다. 확정된 사실관계 서술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보증인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공장의 시설이 화재로 인한 소훼(燒燬9))의 위험에 처했는지, 이를 막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법관의 판단에 이를 인식할 가능성이 있었고, 회피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결국 문제되는 것은 인식 없는 과실로 인한 부작위범의 성립 여부일 것이다.10)

먼저 피고인들이 보증인적 지위라는 범죄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련하여 형법 제18조에서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자 또는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를 보증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론이 가능하지만 우선 선행행위로 인한 보증인지위의 발생여부를 보면, 확정된 사실관계에서 밝히고 있듯이, 담배꽁초 불씨를 튕기고 담배꽁초를 던져 버린 행위에 과실(의무위반11)의 선행행위)은 인정되지만 결과발생에 대한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면서도, 이 선행행위를 결과방지의무의 발생 근거로는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그 행위들이 화재라는 결과발생에 원인이 되었는지를 알 수 없음에도 이를 결과발생방지의무의 발생근거인 선행행위라고 하는 것이 논리적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듯하다. 인과적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 위험한 선행행위로 족하다는 것이 보증인지위의 발생근거인 선행행위(Ingerenz)의 의미인지는 깊이 있게 논구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이러한 의문을 피해가는 방법은 선행행위조차도 각 피고인들에게 상 피고인의 선행행위까지 포함하여 이로 인한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로 확장하는 방법일 것이나, 아무런 공동 표지가 없는 자의 선행행위로 인한 위험야기를 방지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개인행위책임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더하여 근로계약상의 신의성실원칙에 기인하는 부수의무로서 화재발생을 방지할 의무를 추가함으로써 결국 보증인지위와 작위의무의 발생근거를 선행행위와 계약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보증인지위의 발생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위반이자 가벌성의 범위를 부당하게 확장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주장들도12) 있으나 민사계약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한 권리의무의 이행은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무라는 점에서 사회상규나 조리와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인 지나치다는 지적은13) 경청할 만하다. 무엇보다 위 판례 사안과 같이 사용자와 근로자라는 관계에서 사용자의 건물이 소훼의 위험·불태워질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면, 더구나 피고인들의 의무위반적 선행행위가 전제된다면, 근로자가 화재를 막기 위해 가능하고 요구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조리상으로도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의무일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위 사안에서 신의칙과 사회상규 및 조리를 작위의무의 근거로 주장하더라도, 현행 부작위범 규정과 그 해석론에서 보증인지위와 의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하는 문제를 논외로 하면, 보증인 지위의 발생에 대해서는 판례의 입장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오류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투어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피고인들이 부작위범의 구성요건적 상황을 과연, 규범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인식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달리 말해 문제는 피고인들에 주어진 작위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성요건적 상황에 대한 인식 또는 인식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이다. 즉, 이 사안에서 가벌성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판단대상은 피고인들이 건물이 불탈 위험에 처한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것인지, 그리고 화재 발생 전에 피고인들에게 주어진 작위의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위 사안에서 피고인들이 화재발생의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몇 년 동안 동일 장소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담배를 피웠고, 담뱃불을 튕기고 꽁초를 버려 왔지만 사소한 화재도 한번 발생한 적이 없어서 화재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자!)라면 정황증거로 이를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상 판결의 유죄 판단을 비판하려면 법원들의 이러한 주관적 인식가능성의 평가에 방향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피고인들 각각의 작위의무의 내용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항소심과 대법원 모두 피고인 각각 자신의 행위로 인해 발생할 위험에 대한 예방 외에 ‘상호간 그 불씨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과실’을 언급하고 있다. 즉, 타인이 튕긴 불꽃도 모두 제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부작위범이 성립할 수 있는 구성요건적 상황을 인식하였다면 결과의 발생방지의무를 지고 있는 보증인이라면 결과방지를 위해 가능하고 요구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결국 유무죄 판단을 갈라 놓은 핵심근거는 피고인들이 담뱃불을 튕기고 꽁초를 버림으로써 건물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본 법원의 사실 평가인 것이다.

2. 요약

피고인들의 부작위 실화죄를 긍정한 위 판결은 결국 피고인들이 바람이 부는 날, 담배를 피우고 불꽃을 손가락으로 튕겨 끄고, 담배꽁초를 던지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는 것은 설령 그들이 화재발생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항변하더라도 충분히 그 위험을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어서 인식 없는 과실의 부작위범 성립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법원의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판단에는 이러한 사실판단의 당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 외에 기존의 대법원 판결들에서 보여준 보증인적 지위의 발생근거, 과실의 공동정범의 요건들에 관한 선례들과의 모순은 보이지 않는다.

아래에서는 지금까지의 분석에 대한 가능한 반론들을 검토해 보면서 해석론과 실무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과 개선이 필요한 의론(議論)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Ⅳ. 문제점과 향후 논의 과제

1. 판시의 구체성과 표현의 정확성

항소심은 물론이고 대법원의 판결문도 당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판결을 들여다보는 해석론자들의 기준에서 볼 때, 논거의 수준이나 결론의 당부, 그 수용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어떤 도그마를 말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를 의논하고 있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14)

과실의 부작위범을 논구하면서 고의의 부작위범의 법리를 설시한다거나, 작위관점에서 피고인들 중의 누구의 행위(담배불꽃을 튕기고 꽁초를 던진 행위)가 원인인지 판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결과를 방지하지 않은 부작위 관점에서는 인과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부가적 판단’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단순히 말해 “작위범의 인과성은 입증되지 않지만, 각자 부작위의 의무위반으로 인한 결과발생 사이의 인과성은 인정된다.”라는 간단한 표현으로는 부족한지 궁금하다.

2. 의사소통을 돕는 정착된 법 개념의 사용

피고인들이 화재발생에 대해 어떤 지적·의적 태도를 가졌는지에 대해 항소심도 대법원도 거의 언급이 없다. 실화죄를 언급하고 있으니 고의의 방화죄는 아니라고 본 듯하지만, 인식있는 과실인지 아니면 인식없는 과실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단지 항소심이 ‘충분히 예견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현장을 떠난 과실이 있으며’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식없는 과실로 판단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해석론에서 정착된 법 개념을 활용하는 것은 장황설을 줄이게 하고,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과실의 경합’의 의미

필자가 읽기에, 항소심은 각 피고인들에 대해 과실 작위의 실화죄 아니면 과실 부작위의 실화죄 중 하나라고 판단하면서, 피고인들 각자의 과실이 경합하였다고 한다. 대법원은 피고인들 모두에게 동일한 과실의 작위와 과실의 부작위를 인정하면서 피고인들의 과실이 경합한다고 하고 있다. 무슨 의미이며 왜 이러한 표현이 등장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1) 항소심

항소심은 피고인 중 1인은 작위로 화재를 직접적으로 발생시켰고(‘화재발생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한 과실’), 나머지 1인은 화재의 발생을 막지 않았다는 부작위의 책임(‘불씨를 완전히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만연히 현장을 떠난 과실’)이 있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과실 작위와 과실 부작위가 경합하였다는 것이다. 일견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형사법의 근본원칙과 충돌하는 상당히 중요한 오류가 보인다.

피고인들 중 1인이 작위의 원인을 야기한 것으로 증명·확정하려고 하니 확실하 지 않으므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원칙’에 따라, 다른 피고인이 작위의 원인을 제공하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누구도 인과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형사법의 원칙을 적용한 결론이라고 할 것인데, 항소심은 어찌 되었건 간에 둘 중 한 피고인은 작위의 (직접적) 인과적 원인이 되었다고 확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론은 형법의 근본원칙에 반하는 오류이다. 위 사안에서 과연 피고인들의 행위 외에 제3의 원인이 화재를 발생하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게 배제되었는지, 즉 합리적 의심 없이 배제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지만, 이를 넘어서 공동정범이 아닌 이상 적어도 둘 중 한 사람은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하였다는 판단은 허용될 수 없는 ‘혐의형법’(嫌疑刑法)이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in dubio contra reo)’ 추론하는 전형적인 법의 근본원칙에 대한 위반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 중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한 사람은 작위로 화재가 나게 한 것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직접적·작위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고 해도 화재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 피고인 모두 직접적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작위의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결론은 사안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형사법원의 판시라고 하기에는 형법의 근본원칙의 실천적 의미를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2) 대법원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수정하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항소심과 다를 바 없이 ‘공동의 과실이 경합’하여 ‘화재가 발생’ 하였다고 하면서, ‘각 과실이 화재발생에 대하여 하나의 조건이 된 이상, 그 공동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각자 실화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각자 독립적인 과실로, 즉 요구된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담배꽁초를 던지고, 자신이 던진 그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던진 담배꽁초의 불씨까지도 확인하고 제거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의 과실이 경합한다고 표현한 듯하다. 달리 말해 부작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통상 공동의 과실이라고 하면 공동으로 주의의무를 지고 있는 경우, 함께 주의해야 하는 경우를 표현한다고 보면, 이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각자 자신의 과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지 이 사안 어디에도 공동의 과실을 근거 지울 사실상 착안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부작위범의 공동정범이 아닌 이상 개별 보증인의 과실과 그로 인한 결과발생이 문제될 것인데 왜 과실의 경합이 등장해야 하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피고인들 각자가 자신의 작위만으로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하면 그것으로 해당 피고인의 형사법적 죄책 인정에 충분한 것이지, 동시에 다른 피고인의 과실이 병존하였는지 여부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이다.15)

그런데 대법원은 과실 작위가 경합한 실화죄 판결(1983.5.10. 선고 82도2279 판결)을 원용하면서 그 공동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의 실화죄 책임을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부작위 과실을 다루는 위 사건의 사실관계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판시 대상 사안은 공동으로 작위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각자 결과발생을 방지하지 않은 과실이 경합하는 것이고, 여기서의 경합은 단지 동시범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에만 사안과 부합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독립행위의 경합’에서와 같은 표현이라면 말이다.

4.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및 상호관계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은 형사법의 영원한 난제의 하나처럼 취급되고 있다.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부작위와 과실의 구별 문제가 동일 차원의 문제로 치환되어 명확한 구별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통상 형법에서 금지한 범죄적 결과(침해·구체적 위험)가 발생한 경우 누구나 그 자연과학적 변화를 야기한 원인(편의상 ‘작위의 원인’이라고 한다)을 찾아 나간다. 이른바 ‘제거공식’을 통해 결과발생에 가장 근접한 인간의 행위를 제거하면 결과가 탈락하는 관계에 있다면 그 행위와 결과 사이에는 인과적 조건관계가 인정되는 것이다. 위 대상 사안에서는 그러한 작위의 인과성이 있는 행위를 확정하지 못했다(‘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달리 말해 피고인들 모두 결과발생에 인과적 원인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행위들을 하나로 묶어 결과와의 인과성을 심사할 수 있는 사정, 즉 공동정범인지 여부가 관심거리가 된다. 묵시적·명시적으로 합의한 바 없다고 보면 공동정범의 가능성은 고의와 과실을 불문하고 배제된다. 이제 작위에서 남은 가능성은 미수범처벌 여부이다. 피고인들에게 고의를 인정할 근거가 없어서 미수처벌도 불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단계적 심사를 거쳐 작위범의 처벌 가능성은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이제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 있는 자가 사고발생 현장에서 결과를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는지, 달리 말해 부진정 부작위범의 성립가능성은 없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결론에서는 부작위 과실범을 인정하고 있다.

작위는 부작위와 대비된다. 고의는 과실과 개념의 짝을 이룬다. 부작위와 과실이 혼재되는 경우는 부작위 과실범, 위 사안과 같은 결과방지의무위반(부작위)과 주의의무위반(과실)이 동시에 인정되는 경우이다. 달리 말해 필자의 생각에는 ‘부작위와 과실 중 어느 것인가’, ‘작위인가 아니면 부작위인가’ 하는 혼란은 개념적으로 불가능한 질문이다. 결과발생방지라는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부작위이고, 그러한 작위의무불이행이 고의가 아니라 부주의, 즉 주의의무위반에 기인한 것이라면 과실부작위범인 것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무위반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양자의 구별이 어려운 사안이 아닌 것이다.

한편 작위와 부작위범의 죄수문제는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치명적인 자상을 가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빠트린 아버지 또는 남편이 즉각적으로 응급차를 호출하는 등의 조치로 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에서는 작위와 부작위 살인죄가 모두 성립한다. 단 죄수론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듯이 부작위의 살인죄는 뒤로 물러나고 작위의 살인죄가 법조경합으로 성립한다.16) 달리 표현하자면, 작위의 원인 투입행위가 최초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결과발생방지의무가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작위로 인한 결과발생의 형사책임 속에는 후행의 부작위에 대한 평가가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른바 ‘보라매 병원’사건으로 불리는 사안에서처럼 생명의 위험에 처한 환자에 대해 치료를 시작한 후 사망의 위험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중단한 의사(인공호흡장치의 제거 또는 스위치의 조작)의 행위를 작위로 볼 것인지, 부작위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작위와 부작위가 모두 인정되고 죄수론의 문제로 판단할 것인지도 논쟁거리이다. 치료를 받던 환자가 의사의 치료중단(인공호흡장치 제거 또는 스위치를 끄는 행위)으로 사망했다고 하면, 자연적인 사망 이전에 사람의 생존기간을 단축시키는 모든 행위는 살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작위의 살인죄의 객관적 요건은 충족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사는 치료를 개시하는 순간부터 생명의 위험에 처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로 한 보증인적 지위·의무를 취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보아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전제할 때) 자신의 작위의무를 완전히 이행하지 않은 보증인인 것이다. 달리 말해 가능한 의무의 일부만 이행한 상태에서 중도 포기한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부작위한 것이다. 이 점에서 부작위의 살인죄도 당연히 성립하는 것이다. 필자의 판단에는 위의 예시와 달리 이 사안에서는 부작위가 작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죽음의 원인은 병원에 실려 오게 된 최초의 사망위험이 실현된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작위(스위치 작동, 인공호흡기 제거 등)는 부작위(생명을 구할 의무)에 포섭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위 살인죄의 법조경합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17)

요약하면, 작위 또는 부작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안의 구성에 따라 당연히 양자 모두 성립할 수 있는 것이고, 사안의 구조에 따라 작위의 법조경합이 되기도 하고, 부작위가 전면으로 등장하는 법조경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5. 작위의무의 발생근거

작위의무는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이고,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오래된 입장이다.18) 현행 형법 제18조가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기의 행위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구하고 있으니, 신의성실, 사회상규 또는 조리에 그 근거를 찾는 대법원의 해석이 법률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예를 들면 독일과 비교할 경우 지나치게 성립범위가 넓은 점, 법정형의 감경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는 점 등에서 그 축소해석이 요구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독일의 경우 ‘법적’인 결과방지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종래의 구별방법에 따를 때 법률, 계약, 선행의 위험한 행위, 밀접한 생활공동체에 근거한 보증인 지위도 인정해왔듯이, 우리의 사회상규나 조리는 밀접한 생활공동체에 근거한 보증인 지위와 같이 제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동성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인 사이에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를 법률, 계약, 선행행위에 묻기 어렵다면 밀접한 생활공동체에 근거한, 달리 말해 사회의 인식변화로 이제 동성의 사실혼 관계인들 사이에도 마치 법적 배우자와 같은 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19) 이를 사회상규나 조리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계약 또는 신의성실원칙과 관련해서 대법원은 부작위 사기죄에서 작위(고지)의무나 보증인 지위 등의 해석에 있어서 법률, 계약과 신의성실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지 않고 있고, 신의성실의 원칙도 특별히 제한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20) 달리 말해 “법령, 계약, 관습, 조리 등에 의하여 인정되는 것으로 문제가 되는 구체적인 사례에 즉응하여 거래실정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21)라거나 ‘널리 재산상 거래관계에 있어서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무’22)라고 하여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에서 그러한 신의칙을 근거로 작위와 동일한 처벌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부작위 사기죄에서 법률상 고지의무를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고지할 의무가 발생한다.”라고 하여 계약체결 전 단계에서도 신의칙을 근거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른바 잔전사기에서는 잔금정산과정에서도23) 신의성실을 작위의무의 근거로 들고 있다는 것은 작위에 대한 예외인 부작위를 지나치게 확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노출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상 판결에서는 오히려 근로계약에 따른 신의칙상 부수의무라고 하여 신의칙이 계약에서 도출되는 의무임을 명확히 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신의칙을 제한된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해 전형적으로 계약에 따른 권리와 의무의 이행을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는 민법 제2조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명확해 보인다.24) 이 점에서는 기존의 선례들에서 신의칙을 활용한 것과 같은 취지로 비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Ⅴ. 결어

비록 전심재판부의 판결이고, 원심의 판단을 대부분 원용한 판결이기는 하지만 법률심으로서 법률해석을 통해 이른바 유권해석의 법리를 형성하는 대법원의 판결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판결이다. 무엇보다 고의와 과실의 구별, 고의의 부작위와 과실의 부작위의 구별, 작위와 부작위의 인과성에 대한 판시는 그 내용이 혼란스럽고, 맥락을 알기 어렵고, 애매모호하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원칙’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추론이 어떤 이유로 형사책임의 근거로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항소심까지의 사실인정에 오류가 없고, 피고인들에게 화재 발생 상황의 인식이 가능했었다는 것에 대한 법원의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면, 위 사안은 이른바 다수인의 부작위 과실이 우연히 경합한 경우, 달리 말해 과실 부작위범의 동시범과 같은 구조로 보인다. 다수의 보증인들 각자가 독립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한 작위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안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피고인들 중의 1인이 “내가 아니어도 상 피고인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면서 자신의 형사책임을 부인하려 할 때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 것인지가 해석론의 쟁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법원이 과실의 ‘경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러한 논쟁을 연상시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항변하는 피고인에게는 “상 피고인이 무엇을 하건 하지 않건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면 되고, 당신이 당신의 의무를 이행하였다면 결과는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부작위범으로서 처벌될 수 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족할 것이다. 상 피고인도 그 자신의 부작위로 인해 처벌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미성년 자식이 익사하는 현장에서 서로 아무런 의사 연락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 사망에 이르게 하였고, 사건 당시 각자 스스로 충분히 자식을 익사의 위험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부와 모는 각각 부작위 살인죄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25)

요약하자면 피고인은 상호 독립적으로 결과발생방지의 의무를 진 자로서 구성요건적 위험이 발생한 상황에서 결과발생방지가 가능했음에도 그 작위의무를 부주의하게, 인식 없는 과실로 인해,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부작위 실화죄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결과방지행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는 그러한 위험과 결과방지의무, 구체적으로 가능한 작위행위 등을 부주의하게 인식하지 못한 (인식 없는) 과실에 기인한 것이다. 화재발생의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인식 없는 과실과 자신에게 주어진 화재를 방지할 의무, 작위의무를 불이행한 점에 대한 설시로서 각자의 과실부작위의 실화죄의 성립을 근거지움으로써 충분했던 사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의의 부작위범의 법리를 설시하고, 작위의 과실범의 과실의 경합이라는 선례를 인용하고, 과실작위가 아니면 과실부작위가 인정된다는 혐의형법의 논리를 내세운 하급심과 이를 원용한 대법원 모두 형사법적 관점에서 아쉬움이 많은 판결들을 남겼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석론의 논의에서도 위법한 선행행위가 부진정부작위범의 보증의무의 발생근거로 문제되는 사안에서 그 선행행위는 해당 결과발생에 대한 인과성 관점에서 어떤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나아가 존재 영역의 작위범 문제와 규범·평가의 영역에서의 부작위범의 문제는 당연히 하나의 사건에서 공존·경합될 수 있다.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이 어려운 것인지, 과실과 부작위를 혼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아직도 ‘법적 비난의 중점설’이 가져다 놓은 불필요한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실과 고의는 인과성과 무관한 차원에 놓여 있고, 작위와 부작위는 직접적으로 인과관계와 연결된 개념이다. 주의의무위반(과실)과 작위의무위반(부작위)은 그 판단의 차원이 다르다는 점, 과실 부작위는 과실과 부작위, 달리 말해 주의의무위반과 작위의무위반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안을 두고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이 어렵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선입견을 잠시 걷어 내고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에 대해 다시 한번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Notes

1) 대법원 1983.5.10. 선고 82도2279 판결. 원심인 제주지방법원 1982.8.13. 선고 81노245 판결을 확보할 수 없어서 대법원의 판시내용만을 참고하면 “열전구에 종이류로 된 전등갓을 설치하였고 또한 이를 그대로 방치하였다가 뒤늦게 제거한 사실이 정당하게 시인되니 이건 화재가 위 전등갓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불티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면 피고인들은 각자 업무상 실화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라고 하는데, 이 사안에서 피고인들은 함께 등을 설치하고 제거하는 등 결국 화재를 발생하게 한 그 원인 행위를 공동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대법원의 입장에 따를 때, 작위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위 담뱃불로 인한 사건과는 동일한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공동의 과실이 경합했다는 등의 표현은 이 사건과 부합하지 않는 판시이다.

2) 대법원 2022. 1. 13. 선고 2021도11110 판결;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8도89 판결, 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8도9476 판결, 대법원 2021. 5. 7. 선고 2018도12973 판결. 부진정부작위범의 공동정범의 성립요건에 대해서는 이른바 ‘세월호 사건’ 판결에서 판시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다수의견은 1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를 선장과 부작위의 공동정범으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선장과 마찬가지로 선내 대기 중인 승객 등의 사망 결과나 그에 이르는 사태의 핵심적 경과를 계획적으로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하는 등 사태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과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에 공모 가담하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제반 사정을 그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지배’와 ‘공모’를 요건으로 제시한 바 있으나, 구체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단지 동 판결의 반대의견도 공동정범의 인정근거를 다수의견과 다름없이 ‘지배’와 ‘공모’ 가담을 들고 있다는 점(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에서 사실상 대법원이 부진정부작위범의 공동정범 요건이 작위범의 요건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런데 반대의견이 선장, 1등 항해사, 그리고 2등 항해사의 부작위 살인죄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논거로 진정부작위범의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은 다수의 부작위범에게 공통된 의무가 부여되어 있고 그 의무를 공통으로 이행할 수 있을 때에 성립’)에서 대법원은 진정부작위범과 부진정부작위범의 성립요건을 동일하게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고 법원의 판결들로 어떤 법리들을 제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많이 혼란스럽다.

3) 이 판례는 2023년 8월 28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개최된 대법원 형사법연구회와 한국형사판례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에서 김혜경 계명대 교수의 발표(“작위행위와 작위의무의 구별과 과실범의 주의의무 -대법원 2023.3.9. 선고 2022도16120 판결-”)와 함현지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토론(“지정토론문”)을 통해 이미 다루어진 것이다. 아래에서 필요한 경우 ‘발표문’과 ‘토론문’으로 인용한다.

4) 제1심 판결원문을 확보하지 못해 항소심 법원의 판결에서 드러나는 사실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5) 실화죄는 이미 과실범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실화죄 과실범’이라는 표현도 정확하지 못하다.

6) 이 판결의 논리대로라면 이른바 전형적인 조건설의 관점에서 모든 조건은 등가치라고 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7) 세부 내용은 김혜경, 발표문, 6쪽 이하 참조; 김성돈, 형법상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성균관법학 제14권 제1호(2002), 75쪽 이하; 김성룡, 조건설·미수론 및 죄수론 관점에서 본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보라매 병원 사건, 경북대학교 법학논고 제19권(2003), 122쪽 이하; 김성룡, 치료행위중단에 있어서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형사판례연구 제13권(2005), 1쪽 이하; 한상훈, 치료중단과 작위, 부작위의 구별-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도995판결(보라매병원사건)-, 연세대학교 법학연구 제15권 제1호(2005/6), 249쪽 이하; 한정환, 작위와 부작위, 진정·부진정부작위범의 구별, 비교형사법연구 제7권 제1호(2005), 75쪽 이하; 이석배, 형법상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작위·부작위 구별과 형사책임의 귀속, 형사법연구 제25호(2006), 3쪽 이하; 이세화, 작위와 부작위의 단계적 고찰, 형사법연구 제19권 제2호(2007), 23쪽 이하 등 참조. 이 글에서는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기준 등이 쟁점이 아니므로 최근 문헌에 대한 소개나 분석을 하지 않는다. 다음 기회에 다른 곳에서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및 인과성에 대한 최근 형법이론적 논의의 발전상황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8) 형법에서 금지한 침해결과나 위험결과가 발생한 경우 그 원인을 찾아가는 첫 번째 사고절차(수사절차)는 그러한 결과를 야기한 물리적·자연과학적 원인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른바 자연주의적 관점에서의 인과적 원인이 밝혀진 경우, 그러한 원인이 결과발생을 야기할 수 없도록 그 인과적 진행을 차단할 수 있었는지는 심사하게 되고, 달리 말해 보증인의 부작위가 없었는지를 심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절차는 작위와 부작위의 관계가 어떠한가와 무관한 사고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 2020년 12월 8일 개정으로 소훼는 모두 ‘불태우다’, ‘불태워지다’는 단어로 바뀌었다.

10) 다수인의 과실의 부작위범에서 발생하는 해석론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김성룡, 다수인의 공동의 의사결정에서의 형법해석학적 문제점 - 과실범에 있어서 부작위의 공동정범 - , 비교형사법연구 제4권 제1호(2002), 135쪽 이하 참조.

11) BGHSt 23, 327; 25, 218 (220); BGH NStZ 1998, 93; NJW 1998, 1573; 1999, 71; Schönke/ Schröder/Stree Rn. 35; BeckOK StGB/Heuchemer, 58. Ed. 1.8.2023, StGB § 13 Rn. 94

12) 예를 들어 김혜경, 발표문, 25쪽 이하

13) 예를 들어 함현지, 토론문, 5쪽 이하

14) 판사정원의 문제 등으로 하급심의 경우 순환보직으로 민사와 형사를 모두 담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의 재판부는 법리를 만들어 내는 법원이라는 점에서 형사법과 민사법 등 전문법분야의 대법관제도를 별도로 운영하는 개선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민사법리가 자구 하나 바꾸지 않는 채 형사법의 법리로 옮겨오는 것이 법질서의 통일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형사법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15) 물론 만약 한 피고인이 내가 그 결과를 방지하지 않아도 상 피고인이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결과발생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경우, 즉 자신의 부작위가 결과발생에 인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해 적절히 대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곳에서 다루어졌다. 예를 들어 김성룡, 다수인의 공동의 의사결정에서의 형법해석학적 문제점 -과실범에 있어서 부작위범-, 비교형사법연구 제4권 제1호(2002), 135쪽 이하; 김성룡,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 형사판례연구 제17집(2009), 25쪽 이하 참조

16) 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도995 판결; 함현지, 토론문, 1-2쪽 참조(법조경합의 보충관계를 환기하고 있음).

17) 상세는 김성룡, 치료행위중단에 있어서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형사판례연구 [13](2005), 138쪽 이하 참조. 특히 이 사안에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작위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최초에 병원에 실려 오게 한 행위, 벽에 부딪힌 행위, 피해자 스스로 실수로 넘어진 행위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18)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 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도9354 판결; 대법원 2020.6.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3.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판결; 대법원 2008.2.28. 선고 2007도9354 판결; 대법원 2006.4.28. 선고 2003도4128 판결(조리); 대법원 1998.4.14. 선고 98도231 판결; 대법원 1996.9.6. 선고 95도2552 판결 등 참조

19) 독일 기능설의 관점에서는 보호보증인의 한 유형으로 인수사례, 즉 인수(Übernahme)로 인한 보증인 지위·의무의 발생사례로 사실혼의 밀접한 생활공동체를 언급하기도 한다(이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Freund, MK § 13 Rn. 175 참고)

20) 김혜경, 앞의 발표문 15쪽 이하 참조

21) 대법원 2020.6.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22) 대법원 2000.1.28. 선고 99도2884 판결

23) 이에 대한 상세는 김성룡, 사기죄에 관한 대법원판례의 소극적 기망행위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 형사판례연구 [14](2006), 146쪽 이하 참조

24) 근로계약의 민사법적 해석·효력으로 항소심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작위의무가 발생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외로 한다.

25) 이에 대해서는 김성룡, 다수인의 공동의 의사결정에서의 형법해석학적 문제점 -과실범에 있어서 부작위의 공동정범-, 비교형사법 제4권 제1호(2002), 144쪽 이하; 김성룡,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 형사판례연구 [17](2009), 44쪽 이하 참조

[참고문헌]

1.

대법원 1983.5.10. 선고 82도2279 판결

2.

대법원 1996.9.6. 선고 95도255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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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8.4.14. 선고 98도231 판결

4.

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도995 판결

5.

대법원 2006.4.28. 선고 2003도4128 판결

6.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8도89 판결

7.

대법원 2008.2.28. 선고 2007도935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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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8도9476 판결

9.

대법원 2011.3.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판결

10.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11.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12.

대법원 2020.6.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13.

대법원 2021. 5. 7. 선고 2018도12973 판결

14.

대법원 2022. 1. 13. 선고 2021도11110 판결

15.

김성돈, 형법상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성균관법학 제14권 제1호(2002), 75쪽 이하

16.

김성룡, 다수인의 공동의 의사결정에서의 형법해석학적 문제점 - 과실범에 있어서 부작위의 공동정범 -, 비교형사법연구 제4권 제1호(2002), 135쪽 이하

17.

김성룡,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 형사판례연구 [17](2009), 25쪽 이하

18.

김성룡, 조건설·미수론 및 죄수론 관점에서 본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보라매 병원 사건, 경북대학교 법학논고 제19권(2003), 122쪽 이하

19.

김성룡, 치료행위중단에 있어서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형사판례연구 [13] (2005), 138쪽 이하

20.

김혜경, 작위행위와 작위의무의 구별과 과실범의 주의의무 -대법원 2023.3.9. 선고 2022도16120 판결-, 대법원 형사법연구회·한국형사판례연구회 공동학술대회(2023.8.28.) 자료집

21.

이석배, 형법상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작위·부작위 구별과 형사책임의 귀속, 형사법연구 제25호(2006), 3쪽 이하

22.

이세화, 작위와 부작위의 단계적 고찰, 형사법연구 제19권 제2호(2007), 23쪽 이하

23.

한상훈, 치료중단과 작위, 부작위의 구별-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도995판결(보라매병원사건)-, 연세대학교 법학연구 제15권 제1호(2005/6), 249쪽 이하

24.

한정환, 작위와 부작위, 진정·부진정부작위범의 구별, 비교형사법연구 제7권 제1호(2005), 75쪽 이하

25.

함현지, ‘작위행위와 작위의무의 구별과 과실범의 주의의무’ 지정토론문, 대법원 형사법연구회·한국형사판례연구회 공동학술대회(2023.8.28.) 자료집

26.

von Heintschel-Heinegg, Bernd(Hrsg.), BeckOK StGB 58. Edition Stand: 10. 08. 2023

27.

Erb, Volker/Schäfer, Jürgen(Hrsg.), Münchener Kommentar zum StGB, Bd. 1, 4. Aufl.,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