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다문화주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기초법적 연구: 벤하비브의 숙의 민주적 모델을 중심으로*

정채연 **
Chea Yun JUNG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대우부교수, 법학박사, 뉴욕 주 변호사.
**Collegiate Associate Professor at Poha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POSTECH), Ph.D. in Law, Attorney at Law(New York State).

© Copyright 2023,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11, 2023; Revised: Oct 23, 2023; Accepted: Oct 24, 2023

Published Online: Oct 31, 2023

국문초록

문화적 다양성 및 혼종성이 점차 심화하고, 민족성, 종교, 인종, 언어 등 개별 특수한 정체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세계사회와 다문화사회에 대한 법철학적·법사회학적 고찰을 진지하게 요청하고 있다. 본 논문은 다문화주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의 문화 이론이 21세기 이래 펼쳐진 다문화주의 이론과 실천 간의 간극을 메우고 바람직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이론적 기초가 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녀의 다문화주의 구상에 대한 기초법적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벤하비브는 먼저 문화를 명확하게 경계 지어진 한정된 총체로 바라보는 기존 다문화주의자들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문화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인간의 다양성을 지향하면서도 집단 간 차별 등 부정의를 바로잡는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면서, 문화가 자신의 대화성, 내러티브성, 그리고 경쟁적 논쟁으로 인해 내적으로 갈라지게 되며, ‘우리’와 ‘그들’ 간의 경계를 계속해서 형성하고, 재구성하고, 재협상하게 된다는 변증적인 문화 이해를 제시한다. 또한 벤하비브는 유럽 및 북미와 같은 서구사회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문화 주장들을 분석하면서, 공식적인 제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비공식적 사회운동 등을 통해 최대한의 문화적 경쟁이 이루어지는 숙의 민주적 모델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헌법적·법적 보편주의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정치공동체에서 다문화적 갈등 및 충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먼저 다문화사회에 대한 벤하비브의 진단을 살펴보고, 그녀의 다문화주의 구상에 있어서 이론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비본질주의적 문화 개념과 정체성의 내러티브 모델을 검토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보편주의와 다원주의 및 문화적 다양성의 양립가능성을 설득적으로 논증하고자 하는 벤하비브의 숙의 민주적 모델을 분석한 후, 다문화사회에서 세계사회로 연장·확장되는 거시적 지평에서 그 의의를 평가하면서 논의를 맺는다.

Abstract

The increasing depth of cultural diversity and hybridity, coupled with heightened tensions and conflicts between individual identities based on nationality, religion, race, and language, necessitates a rigorous legal theoretical examination of multicultural societies. This paper seeks to perform a legal-philosophical study on Seyla Benhabib’s cultural theory of multiculturalism and identity politics under the premise that it not only remains relevant but also serves as a crucial theoretical foundation in bridging the gap between the theories and practices of multiculturalism that have unfolded since the 21st century, and in presenting desirable policy directions.

Benhabib begins by criticizing the prevailing perspective shared by many multicultural theorists, which perceives culture as a clearly delineated and bounded entity, asserting that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inherent nature of culture must be established. She presents a non-essentialist cultural concept and a narrative model of identity, offering a dialectical cultural understanding that continues to shape, reconstruct, and renegotiate boundaries between ‘us’ and ‘them.’ Additionally, Benhabib aims to devise a deliberative democratic model where the maximum level of cultural competition takes place in formal public discourse and through civil society movements and institutions, analyzing a series of cultural and political claims that emerge within Western societies such as Europe and North America. Through this, she intends to provide avenues for resolving multicultural conflicts and clashes within political communities while concurring with the liberal stance that constitutional and legal universalism must be maintained.

Keywords: 세일라 벤하비브; 다문화주의; 정체성 정치; 숙의 민주주의; 법다원주의
Keywords: Seyla Benhabib; Multiculturalism; Identity Politics; Deliberative Democracy; Legal Pluralism

Ⅰ. 들어가며: 다문화 시대에서 문화 이론의 법적 수용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와 다문화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 및 혼종성은 점차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사회통합을 지향하기보다는 특정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동질화 경향이 증대되고, 집단 정체성을 본질화하는 원리주의적 관점이 강화되며, 사회문화적 해체와 파편화, 그리고 분리주의(separatism)가 확산되는 양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듯 개별 특수한 정체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은 세계사회와 다문화사회에 대한 법철학적·법사회학적 고찰을 진지하게 요청하고 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특유한 집단적 정체성 및 문화적 관행을 유지하고자 하는 문화 주장(culture claims)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다.1) 테일러(Taylor)의 ‘인정의 정치’2), 킴리카(Kymlicka)의 다문화적 시민권3), 그리고 영(Young)의 ‘차이의 정치’4)는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정치적 담론에서 논하도록 한 대표적인 논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 역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지속해서 출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편주의적 원칙과 민족, 종교, 젠더, 언어를 비롯한 특수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현대사회를 진단한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집단적 정체성과 사회적 통합이 논의되는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민주적 헌정질서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정치학과의 명예교수이자 콜롬비아 로스쿨(Columbia Law School)의 연구 학자와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는 벤하비브는 미국의 저명한 법·사회·정치철학자로서 이주와 시민권, 그리고 젠더와 다문화주의를 주된 연구 영역으로 삼아 왔고, 저서 「문화의 주장(The Claims of Culture)」은 그녀의 다문화주의 구상을 집대성한 연구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벤하비브는 문화 간 갈등 및 충돌이 심화하는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했다. 그녀는 먼저 문화를 명확하게 경계 지어진 한정된 총체로 바라보는―많은 다문화주의 이론가가 공유하고 있는―기존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문화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하비브는 인간의 다양성을 지향하면서도 집단 간 차별 등 부정의를 바로잡는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면서, 문화가 자신의 대화성, 내러티브성, 그리고 경쟁적 논쟁으로 인해 내적으로 갈라지게 되며, ‘우리’와 ‘그들’ 간의 경계를 계속해서 형성하고, 재구성하고, 재협상하게 된다는 변증적인 문화 이해를 제시한다. 또한 그녀는 유럽 및 북미와 같은 서구사회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문화 주장들을 분석하면서, 공식적인 제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비공식적 사회운동 등을 통해 최대한의 문화적 경쟁이 이루어지는 숙의 민주적 모델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헌법적·법적 보편주의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정치공동체에서 다문화적 갈등 및 충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다문화주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벤하비브의 문화 이론이 21세기 이래 펼쳐진 다문화주의 이론과 실천 간의 간극을 메우고 바람직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이론적 기초가 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녀의 다문화주의 구상에 대한 기초법적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다문화사회에 대한 벤하비브의 진단을 살펴보고, 그녀의 다문화주의 구상에 있어서 이론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비본질주의적 문화 개념(II)과 정체성의 내러티브 모델(III)을 검토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보편주의와 다원주의 및 문화적 다양성의 양립가능성을 설득적으로 논증하고자 하는 벤하비브의 숙의 민주적 모델을 분석한 후(IV), 다문화사회에서 세계사회로 연장·확장되는 거시적 지평에서 그 의의를 평가하면서 논의를 맺는다(V).

Ⅱ.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기초로서 문화 이해의 정립

1. 본질주의적 문화 이해의 극복
1) 본질주의적이고 총체론적인 문화 관념 비판

벤하비브는 다문화사회를 구상하는 데 있어 먼저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대사회의 다문화 담론이 문화를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문화, 내러티브, 그리고 정체성 개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충실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곧, 다문화주의 이론 및 사조에 대한 비판은 문화의 속성에 대한 몰이해와 본질주의적5)이고 총체론적6)인 문화 관념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정적인 문화 관념은 문화와 정체성의 의미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며,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된 집단 정체성에 대한 섣부른 물화(物化; reification)는 기존의 집단적 차이를 결빙시키는(freezing) 위험을 초래하고 만다. 나아가 다문화 현상 및 문화적 관행에 대한 다층적 이해와 사회문화 및 역사를 통해 밝혀진 실증적 분석을 담아내지도 못한다. 벤하비브는 이렇듯 본질주의적인 문화 이해에 정초하고 있는 이론적 태도를 미성숙한 규범주의(premature normativism)라고 지칭한다.7)

2) 문화의 순수성에 기초한 문화 주장의 한계

본질주의적 문화 이해와 더불어 벤하비브가 기존의 문화 주장에 있어 가장 비판하는 대상은 문화의 순수성(purity)에 기초해 문화가 전적으로 별개의 완전체(discrete wholes)를 의미하는 것으로 경솔하게 바라보는 관점이다.8) 문화의 순수성이라는 관념은 모든 문화가 다른 문화와의 대화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도록 한다. 문화적 본질주의는 문화적 혼종성이라는 관념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원리주의(fundamentalism)와 날카롭게 구별되지 않으며, 우리 안의 이질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역시 방해한다. 특히 문화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문화 운동은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낭만화 혹은 신비화함으로써 이에 대한 합리적인 논쟁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한다.9) 즉, 문화의 낭만화 전략은 문화 주장이 마치 도덕적·정치적 담론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이미지화한다.

나아가 벤하비브는 개별 문화의 순수성 혹은 특수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문화 운동이 민주주의 이론과 과연 화해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민주주의 이론에 기초할 때도 인정 투쟁 및 정체성 차이를 지지할 수 있고, 기존의 다문화주의 역시 민주적 제도의 의의와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다만 다문화주의자와 달리 민주주의 이론가는 기존에 수립된 사회 안으로 새로운 집단의 정치적 편입이 이루어질 경우, 지배문화와 소수문화의 양방향에서 문화적 유산의 혼종화(hybridization)가 이루어진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벤하비브는 평가한다. 예컨대 이민집단 내에 모국(home country)으로부터 유래한 사회적·문화적 속성과 현지국(host country)의 사법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 규범 및 관행이 혼종할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집단의 문화를 순수하고 정제된(purified) 총체로 바라보게 되면 다수문화와 소수문화 모두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점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근대적 개인들은 그들의 문화적 전통을 지속할지 혹은 전복시킬지 선택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집단의 구성원들 역시 지배문화와 소수문화 간에 이루어지는 경계의 교차(crossing), 흐림(blurring), 그리고 교환(shifting) 절차를 통해 다수문화 안으로 옮아가 통합할 수도 있다. 물론 다수문화와 소수문화 간의 역전의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곧, 민주주의 이론가와 다문화주의 이론가의 차이는 민주적 포함과 사회정치적 정의, 그리고 문화적 유동성을 수용하는지 여부의 차이라 할 수 있다.10)

3) 문화의 보존이라는 당위성의 거부

이러한 맥락에서 벤하비브는 문화 보존주의와의 분명한 거리두기를 주장하면서, 문화주의자(culturalist) 운동이 보존주의자(conservationist)의 추동으로부터 벗어날 때만 자신의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11) 문화의 보존이라는 관념에는 특정 문화가 그 완전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생존해야 한다는 당위적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12) 자유민주적 국가체제에서 소수자 집단의 문화가 그저 ‘보존(preserve)’되기를 바라며 문화주의자들의 요구를 옹호하는 것과 민주적 포함을 ‘확장(expand)’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13) 벤하비브는 전자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면서 후자의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의 보전이라는 당위적인 명제를 거부하고자 하는 벤하비브의 입장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대화윤리와 숙의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고자 하는 하버마스(Habermas)의 상호문화적 관점과 많은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소수자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이론적 대립을 고찰하면서, 문화적 생존(survival) 혹은 보존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관점을 단호하게 거부하고자 한다.14) 하버마스에게 있어서 종(種)의 보존이라는 관념은 생태학적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문화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15)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주류문화이든 소수문화이든 문화의 우열을 논할 수 없음은 물론, 특정한 문화적 전통과 집단 정체성의 형성 및 유지를 위해 특별한 보호 내지 특권적 조치를 요구하는 적극적 권리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16)

진정한 다문화주의 이론 및 정책은 문화적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을 옹호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상호공존이 가능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지만, 이에 반해 문화 보존주의자들은 이질적인 문화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자기변화의 가능성을 통해 문화의 생명성이 유지된다는 점을 망각시킨다.17)

2. 비본질주의적 문화 이해의 정립
1) 문화의 속성으로서 논쟁성

이렇듯 본질주의적 문화 이해에 정초한 문화적 보존주의 혹은 보호주의는 문화의 생동성을 질식시키고 문화로서의 가치, 곧 문화성(culturality) 그 자체를 훼손하고 만다. 이에 벤하비브는 모호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화 개념의 정의(定義)를 제시하기보다는 문화의 속성을 바탕으로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문화 이해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벤하비브는 문화가 ‘경쟁적 관행들(contested practices)’을 통해 구성된다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의미의 논쟁적 창출(contested creations of meanings)’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자 절차에 주목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문화는 의미, 재현, 구조, 속성의 복잡다단한 관행들이며, 이는 서로 상충하는 다수의 내러티브(narratives)에 의해 내적으로 갈라져 있다. 다시 말해 외부로부터 분리된 완결적인 문화 그 자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문화에는 내적인 구분과 분화, 그리고 타자와의 내적 대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18)

이렇듯 문화의 대화성과 내러티브성, 그리고 이들 간의 경쟁적 논쟁에 주목하는 것은 문화의 소통, 변화, 침투의 가능성을 바라보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문화는 다른 문화들과의 복잡한 대화 및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 간의 경쟁과 논쟁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는 문화의 본래적 속성을 고려할 때, 문화의 경계는 유동적이고(fluid), 다공성을 띠는(porous) 것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다문화사회와 세계화 시대는 문화와 정체성의 경계를 좀 더 유동적이고 다공적인 것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고 있고, 이것은 이미 현실로 다가와 있으며,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라는 관념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복잡하고 다원적인 민주사회에서 문화적 정체성은 이러한 유동성 및 유체성(fluidity)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특수성에 대한 공적 인정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때에만 비로소 문화의 다원주의적 공존을 위한 새로운 양식이 재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19)

이렇듯 문화를 근본적으로 경쟁적이고 내적으로 갈라진 내러티브로 이해하는 관점은 문화 주장과 대화윤리가 서로 양립 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론적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문화의 본래적인 논쟁성(contestability)과 내적 복잡성을 받아들일 때, 문화적 전통의 배타성(exclusivity)을 비판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민주적 대화를 확장하는 문화 운동과 인정 투쟁만이 지지될 수 있는 것이다.20)

2) 문화의 다층적 구별지음

이렇듯 벤하비브는 모든 문화에 내재하는 혼종성(hybridity)과 다성성(polyvocality)을 강조하면서, 문화가 총체적이기보다는 다층적이고 탈중심적이며, 균열이 존재하는 행동 및 의미의 체계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했다.21) 이러한 관점에서 벤하비브는 도덕적 담론과 문화적 담론의 구별 필요성을 제시한다. 왈쩌(Walzer)22)와 같이 도덕적·문화적 담론 간의 구별을 분명히 하지 않는 강한 맥락주의(strong contextualism)에 머무른다면 본질주의적이고 총체론적인 문화 이해와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그녀는 통문화적(cross-cultural)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다층적인 구별지음(differentiations)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23)

이러한 맥락에서 벤하비브는 문화가 도덕적인 것(the moral), 윤리적인 것(the ethical), 그리고 평가적인 것(the evaluative)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말한다.24) ‘도덕적인 것’이란 우리가 보편적 인간으로 간주되는 한 모두에게 옳거나 정의로운 것과 관련되고, ‘윤리적인 것’이란 특유한 역사 및 전통을 갖는 특정 집단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에게 적합한 것과 관련되며, 마지막으로 ‘평가적인 것’이란 우리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가치 있고 추구할 가치가 있으며 인간의 행복에 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한다.

이렇듯 문화의 다층적 구별지음을 분석의 기본 전제로 삼음으로써, 문화적 전통과 세계관을 총체로서(as a whole) 접근하지 않을 수 있다. 곧, 문화의 다층적 구별지음을 전제로 할 때, 도덕적, 윤리적 또는 평가적 관행의 일부 측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생활세계 전체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살아 있는 아내를 죽은 남편의 시신과 함께 화장하는 인도의 사티(Sati) 의식을 비판하면서도, 인도식의 다원주의, 전통, 미학적 감각을 칭송할 수 있는 것이다.25)

다양한 수준으로 구별되는 문화의 다층성에 대한 인식은 모더니티의 보편적 조건 아래에서 문화적 생활세계 및 세계관이 가져야 할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때로 몇몇 문화적 전통은 이러한 문화의 구별지음을 사회의 발달 과정에서 성숙시키지 못하였을 수 있다. 예컨대 어떠한 종교 혹은 문화 공동체에 속해 있는지와 무관하게 보편주의적 도덕의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여성 및 아동의 권리를 여전히 윤리적 생활세계의 국면으로만 바라보는 전통문화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26)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와 다문화사회에서 이러한 문화적 전통 역시 문화의 다층성에 대한 인식을 내면화하여 정치적·법적 지평에서 다른 문화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나가도록 강제되는 상황을 빈번하게 직면하고 있다.

Ⅲ. 문화적 정체성의 변증적 과정

1. 정체성의 내러티브 모델과 변화가능성

비본질주의적 문화 이해에 바탕을 둘 때, 문화 주장과 정체성 정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고정된 경계 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정체성의 변화가능성(variability)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벤하비브는 정체성의 내러티브 모델을 제안하면서, 정체성이 특정한 시간에 동일한 형태로 고정된 것(sameness in time)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지속해서 생성하는 역량이라고 말한다.27) 이렇듯 그녀는 정체성의 관행으로서 내러티브를 바라보면서, 정체성의 관행들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에 주목한다.

결국 벤하비브가 제시하는 정체성의 내러티브 모델은 자아의 정체성이 통일성(unity)이나 동일성(sameness)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를 생성해 내는 내러티브 역량은 자기 삶을 온전한 자신의 것(own-as)이자 새로운 발견 및 창조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28)

2. ‘이전하는 정체성’으로서 ‘우리(we)’
1) ‘우리, 인민’의 정체성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벤하비브는 자신이 제시하는 ‘복잡한 문화적 대화(complex cultural dialogues)’의 모델을 통해, 문화적 전통의 상호침투성(interpenetration)과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자기와 타자의 상호의존성을 설명하고자 한다.29) 그녀에게 있어서 ‘우리 인민(we, the people)’의 ‘우리(we)’는 확실한 형태를 가질 수 없는 무정형(amorphous)의 것이다.30) 다양한 수준의 공동체는 일정한 경계를 설정하면서 우리로서의 자기 자신을 정의 내리고 규정짓게 되지만, 우리의 경계는 침투가능한 다공성을 갖기에 우리와 그들의 구분 지음은 고정되거나 정적이거나 사전에 확정된 것이 아니다.31) 공동체의 다공적인 문턱, 한계, 경계와 같은 장소에서 우리와 그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재조정하며, 한계를 설정하고 흐트러뜨리기도 하며, 선을 긋고 이를 다시 유연하고 가변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련의 절차적 과정이 지속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문화 주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복잡한 대화 속에서 자기와 타자, 우리와 그들의 위치 지움과 재배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 공동체의 경계는 타자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소통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만큼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질성에 노출되지 않은 순수한 집단적 정체성이란 그야말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에 불과한 것이 된다. 문화 간의 상호작용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상상의 경계(imagined boundaries)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재창출하며, 재협상하도록 한다.32)

2) 에스노스와 데모스의 경계

복잡한 문화적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 및 절차에서 특정한 인종, 민족, 언어, 지역 등으로 한정되고 문화적으로 경계 지어진 우리와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결속감을 느끼는 연대의 공동체는 민족적으로 규정되거나 수립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와 그들 간의 경계가 특정 문화에 속한 구성원과 다른 문화권 구성원을 구분 짓는 경계와 일치할 필요는 없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이주의 시대에서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에만 근거하는 구성원 자격(membership)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대화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은 대화의 논제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며, 따라서 대화의 공동체인 데모스(demos)는 문화적 내지 윤리적 경계, 즉 에스노스(ethnos)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화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데모스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형성하고 정의하게 되며, 이러한 일련의 절차를 가리켜 벤하비브는 ‘헌법적 자기-창조(constitutional self-creation)’라 지칭한 바 있다.33)

따라서 집단의 구성원 자격은 개인이 자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self-identification) 폭넓은 형태를 허용해야 한다.34) 집단성(collectivity)의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이 문화적 대화의 과정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해 민주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resignification)으로써 그들 스스로 정체성을 재구성하게 되면, 영토적 경계와 민족적 반경이 새로이 그려질 수 있게 된다. 이는 민주적 평등과 문화적 다양성을 통합하는 일련의 변증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35) 다시 말해, 우리는 오직 “이전하는 정체성(shifting identity)”을 가질 뿐, 고정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집단적 정체성은 지속적인 변증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36)

3. 문화적 권리와 정체성의 변증적 절차

벤하비브는 문화적 권리 주장을 통한 정체성의 변증적 절차, 곧 “권리와 정체성의 변증”37)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 사회의 히잡 사건(l’affaire du foulard)을 재구성하면서, 집단적 정체성의 재의미화와 이로 인한 법적·정치적·문화적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히잡 사건은 1989년 프랑스 크레이(Creil) 지역의 공립학교에서 히잡을 착용한 세 명의 무슬림 여학생들에게 퇴학 결정이 내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프랑스 공화주의의 근간이 되는 고유의 세속주의 원칙, 곧 라이시떼(laicité)38)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그리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의로 확산하였다.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인 국사원(Conseil d’État)은 학생의 종교적 의복 착용이 프랑스 헌법상 라이시떼 원칙과 양립 가능하며, 프랑스 공민에게 부여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의 행사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종교적 상징이 지나치게 가시적이거나 선동적이어서는 안 되고, 개종을 권유할 목적으로 착용하거나 공공질서를 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39) 이렇듯 재량 판단의 여지를 남겨둔 모호한 결정으로 인해 히잡을 포함한 종교적 상징의 착용 여부는 사안별로 이루어지는 학교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었고,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가치와 공민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촉발되었다.

이때 벤하비브는 히잡 착용을 결정한 무슬림 여학생들이 정치공론에서 주장했던 목소리에 주목하면서, 이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종교적 상징, 그리고 정치적 권리의 의미가 재배치되는 변증의 절차에 주목한다. 먼저 히잡 착용을 둘러싼 공적 논쟁에 참여한 무슬림 여학생들의 자기이해의 과정에서도 중층적인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40) 히잡 사건을 통해 무슬림 여학생들은 한편으로는 프랑스 시민으로서 종교의 자유를 행사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 여성이라는 자기표현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히잡 착용을 주장하는 학생들이 프랑스 공화국에서 자신의 사적 정체성(private identity)을 구성하는 문화적·종교적 차이를 공론에서 주장하는 과정에는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전통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화주의적 가치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

또한 당시 무슬림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히잡을 벗기로 학교 측과 부모 측의 합의가 사전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히잡을 착용한 채 등교하였다. 프랑스 공화국의 공민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공적 영역인 공립학교에서 라이시떼와 양립 가능한 종교적 상징의 착용 기준을 설정하는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히잡을 착용하기로 결정한 무슬림 여학생들의 의식적 행동은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의 표현과 저항의 의지를 표명하는 정치적 제스처를 모두 함축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무슬림 여학생들의 공식적인 문화 주장은 한편으로는 무슬림 여성에 대한 억압의 잔재로 일방적으로 이미지화되었던 히잡이 ‘기존의 권위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41) 다른 한편으로는 히잡이라는 종교적 상징이자 문화적 차이가 정치적 담론에서 논해지게 됨에 따라,42) 라이시떼 원칙은 물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명확한 구분을 전제로 공민의 권리 및 의무를 규율하는 프랑스 공화국의 기본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을 요청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계기는 프랑스 사회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 타자를 관용하는 방식과 공화주의적 원칙 및 가치에 대해 새로이 성찰하도록 하였다. 이렇듯 문화 주장과 정체성 정치가 이루어지는 대화 절차를 통해, 우리와 그들, 다수문화와 소수문화를 넘나들며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정체성의 변증을 경험하게 된다.

Ⅳ. 숙의 민주적 모델을 통한 보편주의와 다원주의의 양립

1. 보편주의와 문화적 다양성의 양립가능성
1) 정치적 담론으로서 문화 주장

이렇듯 공동의 집단 정체성(corporate group identities)을 형성하고 재생산하는 정치적 과정에 주목하면서,43) 벤하비브는 다문화사회에서의 문화 주장과 정체성 정치를 정치공론의 영역으로 옮겨 놓고자 한다. 앞서 살폈던 문화의 다층적 구별지음은 정치공론에서 문화 주장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토론과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보편주의적인 규범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하겠다. 이는 문화적 차이가 정치적 담론을 통해 논의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보편적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의 양립가능성을 옹호하기 위한 이론적 기틀이라고 할 수 있다.

벤하비브는 정의 담론과 같은 보편주의가 형이상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말하면서, 인간 이성의 규범적 내용에 대한 강한 헌신에 기초하고 있는 도덕적·법적 보편주의의 전제 위에서 문화적 다양성 및 상이성을 수용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제시한다. 이렇게 볼 때, 그녀에게 있어서 보편적 원칙과 특수성은 충돌하는 관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자기표현의 권리는 보편적으로 인정된 시민적 권리에 기초해야 하며, 정치공론에서 문화 주장이 펼쳐지는 다문화적 민주사회(multicultural democratic societies)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도덕으로서의 규범이 필요한 것이다.

2) “보편주의는 자민족중심적인가?”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벤하비브는 보편주의와 상대주의의 논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먼저 정립하고자 한다. 그녀는 규범적 보편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의 화해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을 의식하면서, “보편주의는 자민족중심적인가?(Is universalism ethnocentric?)”라는 질문을 던진다. 모더니티에 내재하는 서구중심성에 대한 의구심을 함축하고 있는 이 질문은 서구적인 삶의 방식 및 가치체계가 다른 문명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전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벤하비브는 보편주의가 자민족중심성, 특히 서구중심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관점은 서구 그 자체, 정체성의 동질성(homogeneity), 그리고 정체성 발달 과정의 균일성(uniformity)에 대한 그릇된 일반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녀는 서구와 그 밖의 다름, 곧 “우리”와 “그들”(“Nous” et les “Autres”; We and the Others)이라는 이분법적 도식화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문화 및 문명을 넘나드는 복잡한 대화 과정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44)

이렇듯 보편주의를 자민족중심주의의 한 형태로 규정짓는 입장을 벤하비브는 ‘기본틀 상대주의(relativism of frameworks)’라고 지칭한다. 이를 지지하는 상대주의자들은 도덕, 윤리, 법 등 모든 영역에서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본적인 체계의 틀을 구성하는―토대에서부터 이미 상대적이며(framework relative), 따라서 기본틀에 대한 선호 체계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정립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에 반해 벤하비브는 문화에 대한 평가, 비교, 개별화를 가능케 하는, 기본틀을 초월하는(framework-transcending) 보편주의적 기준의 정립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45) 이는 그녀가 보편주의와 문화적 다양성의 양립가능성 및 화해가능성을 거부하고 통문화적 대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른바 ‘절대적 상대주의’와 분명한 거리두기를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절대적 상대주의의 비교불가능성

벤하비브는 비교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양립불가능성(incompatibility), 그리고 번역불가능성(untranslatability)과 같은 관념46)에 기초하는 다문화 이론 및 정책은 결코 옹호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절대적 상대주의의 비교불가능성 관념이 갖는 비일관성 및 자기모순에 대해 비판한다.47)

문화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좁히거나 도저히 그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unbridgeable) 절대적 이질성(heterogeneity)에 터 잡은 상대주의는 비교불가능성의 관념에 정초하고 있다.48) 그러나 우리가 행위 및 의미의 복잡한 체계로서 어떠한 사고패턴, 언어, 문화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체계의 개념, 말, 의식, 그리고 상징이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 가능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문화가―비교불가능할 정도로―근본적으로 다르다면(radically divergent), 신화, 의식, 상징을 포함한 복잡한 인간 활동을 이해할 수도 그 의미를 인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 상대주의가 기초하는 비교불가능성이라는 급진적인 관념에는 논리적인 흠결이 있을 수밖에 없다.49)

벤하비브는 상대주의에 대한 최근의 논쟁이 문화와 사회를 내부적으로 이음매 없이 정합적이고 순도 높은 총체로 바라보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전제가 여전히 현대의 다문화 이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50) 절대적 상대주의의 비교불가능성 관념을 거부하는 벤하비브의 관점은 문화를 밀폐되고 봉인된, 내적으로 자기완결적인 총체로 바라보는 환원론에 대한 그녀의 비판과 동일한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3. 보편주의의 옹호와 상호문화적 대화 절차
1) 문화의 상호의존성과 직면의 생성적 가능성

문화적 차이의 절대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에 서 있는 상대주의는 이론적으로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실천성 역시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벤하비브는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문화들이 상호작용하는 역사와 경험은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렇듯 그녀가 비교불가능성 및 번역불가능성에 정초한 절대적 상대주의를 거부하는 근거는 다분히 경험적이고 실증적이다. 오늘날의 세계사회와 다문화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와 무수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통문화적 대화는 실재하고, 불가피하며, 나아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사회적 현실이 된 다양한 문화 간의 대화 및 공존을 바라보지 못한 채, 비교불가능성의 관념에 터 잡은 문화상대주의 및 다문화주의 이론들은 세계적 지평의 문명 간 대화와 맞닥뜨림의 복잡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51)

벤하비브는 오늘날의 세계적 상황이 ‘상호의존성의 공동체(community of interdependence)’를 만들었고, 도덕적 동시대인(moral contemporaries)인 우리는 상호의존적인 연결망 안에 얽혀 있다고 말한다. 서로 상이한 문화 간의 상호의존성은 낯선 존재들과의 부딪힘과 맞닥뜨림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낯선 것과의 직면(confrontation)은 모종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자연스레 요청하게 되고, 어떠한 직면은 폭력적인 충돌까지 수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실패는 적대, 무관심, 공격, 폭력과 같은 갈등적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상호 간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는 유익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폭력적 직면까지도 포함하는 통문화적 대화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유의미한 생성적 가능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52)

벤하비브는 이를 문화적 지평 간의 ‘지평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라고 일컫는다. 생성적 가능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실 가장 성공적인 해석적 대화는 상호적인 도전, 질문, 그리고 배움의 과정을 촉발하는 ‘불편한’ 혹은 ‘거북한(uncomfortable)’ 것이라고 할 수 있다.53) 이렇듯 문화적 상호의존성을 고려할 때, 특정 문화의 개별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문화 주장은―갈등 및 논쟁과 이해 및 상호 배움(mutual learning)을 동반하는―서로 다른 문화 간의 ‘위험한(risky)’ 대화를 통해서만 실행가능한 것이 된다.54)

2) 통문화적 대화와 보편주의의 요청

문화들 사이에서, 문화 안에서, 그리고 개인들 간에 실제 이루어지는 일련의 도덕적 협상과 경험들은―인식론적인 차원을 넘어서는―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벤하비브에게 있어서 문화는 문화적 담론에서만이 아닌, 이와 구별되는 도덕적 담론에서 논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도덕적 담론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대화의 동등한 참여자가 되는 ‘모두(all)’와 관련된 것이다. 모두에게 관련되는 공통의 쟁점에 대해 모두가 참여자인 대화적 절차를 통해 합의에 이르게 된다면 도덕적 공동체(moral community)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상호의존성의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이며, 특히 전 지구적 차원의 상호교환 및 상호작용이 펼쳐지는 시대상황적 맥락에서 모두란 모든 휴머니티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55)

결국 다양한 문화, 언어, 민족이 직면하는 상황을 지속해서 창출하는 현대의 세계적 상황은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통문화적 대화를 개시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명령을 가능케 한다.56) 또한 이때의 대화란―정치적 선전 혹은 전략적 협상 등과 구별될 수 있도록―일정한 규범적 원칙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이러한 규범적 전제의 최소한은―이러한 대화에 뒤따르는 행동 및 결정에 의해 실제로 혹은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이해당사자인―대화 상대방들 간의 평등한 참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화 절차의 모든 참여자는 주제를 제안하고, 질문과 비판을 제기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벤하비브에게 있어서 도덕적 대화 공동체의 경계는 개방적인 것(open-ended)이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대화 원칙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배제한다면 참여자는 이에 대해서도 이의제기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57) 이렇듯 그녀가 대화윤리를 자기 이론의 토대로 삼는 이유는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보편주의적 가치를 수호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틀이라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담론 공동체는 누군가의 행동과 웰빙, 이익 또는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언제나 어디서나 생겨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58)

결론적으로 문화 간에 펼쳐지는 통문화적 대화는 의사소통의 가능조건과 주로 관련되는 보편주의적 원칙 및 규범들을 분명히 요청하고 있다.59) 벤하비브는 이러한 규범들을 ‘보편적 존중(universal respect)’과 ‘평등주의적 상호성(egalitarian reciprocity)’으로 간명하게 정리한다. 대화 상대방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합의에 도달하는 절차의 공정성을 뜻하는 평등주의적 상호성은 이성적 합의에 도달하는 도덕적·정치적·사회적 관행을 위해 필요한 구성 요소, 곧 약한 의미의 선험적인 조건이다. 그녀는 이러한 ‘약한 선험주의(weak transcendentalism)’를 ‘역사적으로 계몽된 보편주의(historically enlightened universalism)’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문화 간의 대화에 있어서 평등과 같은 일반화된 도덕적 태도가 보편적인 조건으로서 상호 간에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역사적 관찰을 통해 증명된 도덕적 경험(moral experiences)이라는 것이다.60)

이렇듯 벤하비브는 다원주의적 관점을 아우를 수 있도록 역사적으로 계몽된 보편주의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되도록 하는 다문화주의 이론 및 정책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61) 이를 통해 그녀는 절대적 상대주의가 전제로 삼는 비교불가능한 기본틀에 가두어진 정적이고 고정된 공동체가 아니라, 이를 초월하는 보편적 기준을 바탕으로 문화적 차이 및 다양성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적 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 대화윤리에 기초한 보편주의는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음은 물론, 문화의 속성에 더 적합한 다원주의적 절차를 마련해준다.62)

4. 숙의 민주적 모델과 보편주의적 기본 원칙

벤하비브는 문화 정치(cultural politics)와 규범적 보편주의 중 어느 하나를 희생시키는 이론적 관점을 배척하면서, 보편주의적 규범 원칙과 다원주의적 문화 이론이 양립 가능함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위해, 정치적 공론에서 문화적 경쟁이 펼쳐지도록 하는 숙의 민주적 모델(deliberative democratic model)을 제안한다. 숙의 민주적 모델은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원칙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규범 질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말하는 숙의 민주적 모델에서 보편주의와 문화적 다양성 및 특수성은 결코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문화적 자기-의미부여가 최대한 실현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63) 벤하비브는 「자아의 위치 지움(Situating the Self)」에서도 도덕적·정치적 보편주의가 제대로 해석된다면 차이의 인정, 존중, 그리고 민주적 협상이 화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다.64) 당시 젠더 차이에 민감하고 수용적인 보편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면, 이후 제안한 다문화 모델은 공유된 삶의 양식 및 문화적 관행에서 유래한 차이에 집중하여 기존의 관점을 일관되게 펼쳐 나간 것이라고 하겠다.65)

나아가 벤하비브는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편적 정의와 문화적 전통의 충돌 문제에 대해 논한다. 보편적 인권과 문화적 정체성 간의 딜레마적 상황은 보편주의와 상대주의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숙의 민주적 모델의 문제해결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집단적 문화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에 대한 권리가 개인적 자유권과 충돌하는 다양한 사례들은 문화적 충돌과 그 역설적 상황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66) 벤하비브는 특히 여성 및 아동의 권리에 집중하여 이러한 문화적 충돌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67) 그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소수민족이나 이민집단의 구성원인 여성과 아동의 권리 침해 문제가 제기될 때, 개인적 권리보다 문화적 전통이라는 정체성의 보존을 우선으로 변호하고자 하는 문화 주장의 도덕적·정치적 선택을 비판하면서, 개인의 보편적 인권이 집단적 문화 정체성에 대해 갖는 보편도덕적 우위를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문화적 권리 주장이 집단 내 구성원의 개인적 자유보다 우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보편주의적 원칙을 다문화사회 구상의 기본적인 전제로 수립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따라 문화 공동체가 집단적 자율성을 주장할 때도 집단 내 구성원인 개인의 자율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소수집단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한 제도적 마련이 이루어질 때도 이러한 전제 위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68)

하지만 벤하비브에게 있어서 민주적 포함과 문화의 보존 및 지속은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녀는 문화 주장에 대한 단 한 가지 관점을 택해야 한다면 문화적 특유성(distinctiveness)의 보존보다는 민주적 포함과 평등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도 벤하비브는 이러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적 평등과 숙의적 관행은 문화적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법제도의 설계와 전적으로 양립 가능하다고 역설한다.69) 예컨대 여성의 자유권과 소속 집단의 문화적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 집단의 자결권이 더 광범위한 정치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한 권리로서 이해되는 것이라면, 해당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동의하는―예컨대 평등주의적 젠더 관념과 같은―규범을 수용하도록 삶의 방식을 협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70)

나아가 벤하비브는 자신이 제시하는 숙의 민주적 모델을 통해 다양한 수준의 정치체(polity)에서 헌법적·법적 보편주의(constitutional and legal universalism)71)를 옹호하면서도, 일정한 유형의 제도적 권력 분배(power-sharing)가 가능하다고 말한다.72) 이를 위해 그녀는 이른바 숙의 민주주의의 이중 경로 모델(double-track model)을 제안한다. 이중 경로란 시민사회의 공식적 입법, 정치, 사법 제도의 임무뿐만 아니라 비공식적 시민단체, 공익집단, 사회운동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73) 곧, 이중 경로는 공식적인 공론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사회운동 및 제도 안팎에서 문화적 경쟁(cultural contestation)을 극대화하도록 한다는 데 방점이 있다.74)

이렇듯 벤하비브는 보편주의적 규범과―이러한 규범의 변증적 해석이 이루어지는―민주적 절차의 상호관련성을 강조하면서, 대화적 보편주의(dialogical universalism)와 다원주의가 양립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75) 이때의 보편주의적 원칙이란 통문화적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기초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벤하비브는 이를 구체화하는 규범 원칙(normative principles)을 제안한다. 이러한 규범 원칙은 보편주의적으로 관철되어야 할 문화적 대화의 기초적인 조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제시하고 있는 규범 원칙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된다: i) 평등주의적 호혜성(egalitarian reciprocity); ii) 자발적인 자기-의미부여(voluntary self-ascription), iii) 퇴장 및 결사의 자유(freedom of exit and association).76)

먼저 평등주의적 호혜성이란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그 지위에 근거해 다수자 집단의 구성원보다 낮은 수준의 시민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권리를 부여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소수문화 집단의 구성원 역시 다른 집단의 구성원과 동등한 수준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발적인 자기-의미부여란 개인은―해당 집단에 출생했다는 사실만으로―특정한 문화적·종교적·언어적 집단에 자동으로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개인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문화적 존재(self-defining cultural beings)’로서 승인되어야 하고, 누구도 특정한 문화 및 종교의 구성원이 될 것으로 당연히 기대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가는 집단이 개인의 삶의 양식을 정의내리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개인의 희생을 수반하는 방식으로 특정 집단에 구성원 자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단순히 부여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국가가 특정한 문화적·종교적 집단에 일정 범위의 지역을 설정하여 자치적인 관할권을 인정할 경우에도, 해당 집단의 구성원이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을 때, 그가 출신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승인 절차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퇴장의 자유는 소속 집단을 퇴장할 수 있는 개인적 자유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형태의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벤하비브에게 있어서 국가와 같은 정치공동체이든 문화적 집단 공동체이든 권리행사의 자율적 인격으로서 개인에게는 해당 공동체를 떠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보편적 인간의 자유권에 터 잡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법적 권리를 넘어서는 도덕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벤하비브는 물론 개인이 이러한 퇴장을 선택함으로써, 예컨대 소수문화 집단의 구성원 자격을 전제로 누릴 수 있었던 공동의 토지권이나 일정한 복지혜택 등 공식적 특권과 배척(ostracism) 및 사회적 배제와 같은 비공식적 특권의 상실을 수반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다만 공식적 특권의 상실과 관련해서는 국가가 평등원칙의 관점에서 그 퇴장 비용에 대한 별도의 보호 조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결론적으로 집단 공동체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개인을 그가 귀속된 공동체에 가두어서는(imprison) 안 된다. 그렇기에 벤하비브는 퇴장의 자유와 더불어, 공동체의 구성원은 다른 집단과 통문화적이고 상호문화적인 정치 연합체를 수립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결사의 자유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77)

5. 하버마스의 부족분과 절차주의의 한계

벤하비브의 다문화주의는 대화윤리에 바탕을 둔 ‘복잡한 문화적 대화의 모델(the model of complex cultural dialogues)’78)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하버마스의 이론과 상당 부분 호환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벤하비브와 하버마스 모두 자신들의 다문화주의를 구상하는 데 있어서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는 숙의 민주주의와 보편적 대화윤리에 내재한 비판점 역시 기본적으로 공유한다고 하겠다.

숙의 민주적 모델에 대한 주된 비판은 대화 절차를 통해 다양한 문화의 자유롭고 평등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관점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점으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이 논의되는 통문화적 대화가 문화적으로 단일한 정치체가 제공하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상이한 문화 간의 변증적 과정보다는 기존에 이미 주류문화의 지위를 획득한 문화적 전통 및 정체성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수문화의 지배권이 더욱 강화되고 소수문화가 다수문화에 의해 지배-종속의 관계에 놓이게 되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통문화적 대화 상황에 존재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의 비대칭성(asymmetries)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지적 역시 주목해 볼 만하다.79)

이렇듯 절차주의의 이론적·실천적 한계와 관련된 지적은 하버마스의 다문화주의 구상80)에 대해서도 이루어진 바 있다. 하버마스는 다양한 윤리적 가치관점이 정치적 공론에서 소통·교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다문화사회의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한 윤리적 가치가 논해지는 ‘절차’가 다수문화의 ‘실질’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면 그것은 ‘위장된’ 중립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81) 벤하비브는 이러한 비판점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가 법인류학적 다원주의(legal anthropological pluralism), 문화 이론 등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면서, 하버마스보다는 포스트모던적 관점을 폭넓게 수용하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수는 있겠다.82) 특히 벤하비브가 다문화 이론의 기초로서 비본질주의적 문화 이해의 재정립을 중요한 과제로 다루고 있고, 문화적 정체성의 다공성 있는 경계를 중심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문화적 해석을 통한 변증가능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의미 있는 차이점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83)

V. 맺음말: 다문화사회에서 세계사회로의 확장

벤하비브는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문화 주장 및 정체성 정치가 등장함에 따라 보편주의와 문화적 특수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또한 현대사회의 다문화주의를 구상하기 위해 기존의 다문화 이론 및 정책이 터 잡은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재정립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문화는 다양한 문화 간의 상호작용과 경쟁적 관행들을 통해 형성되며, 이에 따라 내적으로 완결적인 문화란 존재할 수 없다. 문화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경험하는 내러티브 역량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나아가 세계화와 다문화 현상은 다양한 문화 간의 상호의존성 및 상호침투성을 증대시키며, 이러한 통문화적 대화는 문화 간의 복잡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가능조건으로서 일련의 보편적 규범을 요청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벤하비브는 보편주의와 문화적 다양성이 양립 가능함을 역설하면서 그 이론적 기초로서 다문화주의의 숙의 민주적 모델을 제안한다. 평등주의적 호혜성, 자발적인 자기-의미부여, 그리고 퇴장 및 결사의 자유와 같은 보편주의적 기본 원칙은 본질주의적 문화 이해 및 절대적 상대주의와 분명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통문화적 대화를 통해 상호적 도전과 배움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벤하비브의 다문화주의 구상은 국가의 경계에 한정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세계주의와 세계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로 연장된다.84) 모더니티의 관점에서 인간으로서 개인과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권리는 중첩되어 있지만, 영토적으로 한정된 근대적 국민국가에서 보편주의적 도덕 원칙을 바탕으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딜레마적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85) 이렇듯 보편주의적 원칙과 특수한 가치판단 및 이해관계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는 다문화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 지평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고 할 수 있다.86)

다양한 문화 주장을 민주적 법치국가 내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숙의 민주적 모델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문화적 대화에 참여하는 보편적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참여자로서의 주체로 승인하는 것은 데모스 및 시민권의 문제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벤하비브는 현대 다문화주의 운동 및 현상은 단일한 시민권 및 주권에서 ‘유동적 시민권(flexible citizenship)’ 및 ‘흩어진 주권(dispersed sovereignty)’으로 나아가는, 더 거시적인 차원의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바라보면서, 문화 주장 및 정체성 정치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세계사회에서의 민주적 시민권에 대한 논의로 연결 짓는다.87) 특히 그녀는 현대 유럽사회에서 목격되는 시민권 제도의 변화 양상에 주목하면서, 유럽연합이라는 탈국가적 공동체로의 통합이 진행됨과 동시에 새로운 경계 설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다양한 문화 주장들이 혼종하는 현상을 바라본다. 이렇듯 다문화사회의 문화적 집단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그들을 구획 짓는 경계선은 탈국가적·국가적·지역적 지평에서 다층적으로 그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벤하비브는 서로 완전히 겹치지 않는 도덕적 공동체, 시민적 공동체, 윤리적 공동체로 구별하여 논하고자 하며, 이는 그녀의 세계주의 구상에서도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 준다. 근대적 주체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도덕적 존재, 시민, 그리고 윤리적 공동체의 구성원과 같은 다양한 지평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렇듯 근대적 개인이 속한 복수의 중층적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은 벤하비브의 세계주의 구상에서도 핵심적인 쟁점이라 할 수 있다.88)

근대적 국민국가의 다문화현상과 사회통합, 그리고 세계시민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시민적 주권의 변증을 아우르는 벤하비브의 논의는 탈근대 시대에서 모더니티의 해체적 재구성이라는 중요한 법철학적 과제에 있어 중요한 성찰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Notes

*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20S1A5A2A03040329)

1) S. A. Gallegos-Ordorica, “Two Models of Deliberative Democratic Multiculturalism: Benhabib and Villoro,” Journal of Mexican Philosophy, Vol. 2, Iss. 1, 2023, p. 72.

2) C. Taylor, “Politics of Recognition,” Multiculturalism and the ‘Politics of Recognition’ (C. Taylor & A. Gutman(ed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3) W. Kymlicka, Multicultural Citizenship: A Liberal Theory of Minority Rights,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4) I. Young,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5) 문화적 본질주의를 이론적으로 비판한 다문화주의자들로 벤하비브와 더불어 프레이저(Fraser), 코완(Cowan), 아피아(Appiah), 셰플러(Scheffler)를 들 수 있다. 이들의 논의에 대해, W. Kymlicka, “The Essentialist Critique of Multiculturalism: Theories, Policies, Ethos,” Robert Schuman Centre for Advanced Studies Research Paper No. RSCAS 2014/59, 2014, pp. 6-7.

6) 다문화주의의 도그마(dogmas)로서 문화적 총체론(cultural holism)에 대해 비판하는, S. Benhabib, “The Liberal Imagination and the Four Dogmas of Multiculturalism,” The Yale Journal of Criticism, Vol. 12, No. 2, 1999, pp. 410-413.

7)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Equality and Diversity in the Global Era,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pp. viii-ix.

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ix.

9) 예컨대 벤하비브는 문화적 자결권 주장의 낭만성(romance)을 비판하면서, 캐나다, 영국 등 몇몇 국가에서 이루어져 온 분리 독립주의에 대해 비평한 바 있다. 물론 그녀는 분리 독립주의가 자신의 숙의 민주주의 및 대화 담론 모델의 관점에서 문제 될 여지가 없다고 단언한다. 곧,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의 자결권에 기초해 새로운 정치적 독립체의 수립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몇몇 다문화주의자나 자유민족주의자들이 새로이 창설되는 민족국가의 도덕적·정치적 대가를 지나치게 낭만화하면서 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분리주의자(secessionist) 운동은 헤게모니적 문화를 가진 소수자 집단을 중심으로 하여 주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문화 운동이 공동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의 상호적 뒤섞임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다문화적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모순적이라고 그녀는 말한다(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50).

10)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

11) 벤하비브는 테일러와 킴리카가 토대로 삼고 있는 문화적 보호주의자의 전제를 비판하면서, 민족, 종교, 언어, 성적 지향 등에 기초한 소수자 집단의 주장들이 정체성의 인정을 위한 문화 주장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경제적 권리를 주장하는 재분배의 문제와 깊숙이 연결된다는 프레이저의 입장에 동의함을 밝힌 바 있다(S. Benhabib, “From Redistribution to Recognition?: The Paradigm Change of Contemporary Politics,” The Claims of Culture, pp. 49ff).

12) 예컨대 킴리카는 집단 공동체에 대한 단순한 관용은 부족하며, 소수자 집단이 단지 생존하기 위한 것을 넘어 지배적 다수와 함께 동등한 기반에서 번성하기 위해서는 집단-차별적 권리(group-differentiated rights)가 요청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W. Kymlicka, Multicultural Citizenship).

13)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ix-x.

14)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변증을 통한 하버마스의 다문화사회 구상에 대해, 정채연, “헌정애국주의와 관용의 한계”, 「법과사회」 제45호, 법과사회이론학회, 2013, 289-292면.

15) J. Habermas, “Struggles for Recognition in Constitutional States,” European Journal of Philosophy, Vol. 1, No. 2, 1993, p. 142.

16) 이러한 맥락에서 하버마스와 벤하비브의 심의민주주의가 테일러의 ‘인정의 정치’에 대해 가장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쟁점은 집단적 정체성의 형성에 도덕적 자율성을 종속시킨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현범, “폭력과 정체성: 다문화주의를 중심으로”, 「생명연구」 제21집,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2011, 231면).

17) J. Habermas, op. cit., p. 142.

1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ix.

19)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84.

20)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ix.

21)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25.

22) M. Walzer, Spheres of Justice: A Defense of Pluralism and Equality, Basic Books, 1983; “Liberalism and the Art of Separation,” Political Theory, Vol. 12, No. 3, 1984, pp. 315-330.

23)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40.

24)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40.

2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41.

26)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40.

27) S. Benhabib, “Sexual Difference and Collective Identities: The New Global Constellation,” Signs: Journal of Women in Culture and Society, Vol. 24, No. 2, 1999, p. 353.

28) A. Weir, “Global Feminism and Transformative Identity Politics,” Hypatia, Vol. 23, No. 4, 2008, p. 118.

29)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41.

30)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80.

31) S. Benhabib, “‘Nous’ et ‘les Autres’: The Politics of Complex Cultural Dialogue in a Global Civilization,” Multicultural Questions(C. Joppke & S. Lukes(eds.)), Oxford, 1999.

32)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33.

33) S. Benhabib, The Rights of Others: Aliens, Residents, and Citize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 177.

34)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48.

3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84.

36)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33.

37) J.-A. Cilliers, The Refugee as Citizen: The Possibility of Political Membership in a Cosmopolitan World, Stellenbosch University, 2014, p. 104.

38) 프랑스의 독특한 세속주의로서 라이시떼에 대해 자세히는, 정채연, “유럽사회에서 다문화정책의 현황과 관용의 한계: 프랑스의 라이시떼와 독일의 민주적 헌정주의를 중심으로”, 「법학논총」 제36권 제1호, 단국대학교 법학연구소, 2012, 333-336면.

39) Conseil d’État, Nov. 27, 1989, 346 Nov. 893.

40) S. Benhabib, Another Cosmopolitan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 67.

41) S. Benhabib, The Rights of Others, p. 209.

42) S. Benhabib, The Rights of Others, pp. 189-191.

43)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48.

44) S. Benhabib, “‘Nous’ et ‘les Autres’,” pp. 44-63.

4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28.

46) 료타르(Lyotard)의 언어철학에서도 발견되듯이, 언어체계들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서 비교불가능성, 양립불가능성, 그리고 번역불가능성은 핵심적인 개념이 되어 왔다(J.-F. Lyotard,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4; The Differend: Phrases in Disput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8).

47)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i.

4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29.

49)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30.

50)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25.

51)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47-48.

52) 이는 데리다(Derrida)가 말하는 무조건적 환대(unconditional hospitality)와 아포리아(aporia)의 생성적 가능성이라는 맥락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예컨대 주인국의 주류문화와 (이민집단과 같은) 이방인의 소수문화 간의 관계와 같이 이질적 문화를 직면하는 상황에서, 데리다의 ‘환대의 윤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조건적 환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무조건적 환대라는 정치적 실천을 지속해서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포리아라는 난관의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주류문화와 소수문화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지위는 전복될 수 있으며, 서로의 문화와 정체성이 변화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데리다의 무조건적 환대와 아포리아의 생성적 가능성에 대해, J. Derrida, Of Hospitalit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 정채연, “데리다의 세계주의 구상과 무조건적 환대의 생성적 가능성”, 「법철학연구」 제18권 제2호, 한국법철학회, 2015, 7-42면.

53)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34-35.

54)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iv.

5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36.

56) 다문화주의의 토대에서 상호문화적 대화(intercultural dialogue)의 필요성을 논하는, 현남숙/김영진, “다문화 사회에서 상호문화적 대화의 가능성”, 「시대와 철학」 제26권 제3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5, 151-177면.

57)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36-37.

5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47.

59) 벤하비브는 보편주의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관점으로 구분한 바 있다: i) 인간의 본성 및 본질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믿음; ii) 인간 이성의 규범적 내용과 타당성 및 정당화 요청; iii) 모든 인간이 도덕적 존중을 받을 자격 있는 동등한 존재임을 천명하는 도덕 원칙; iv) 모든 인간이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법체계의 보편적 규범 및 원칙(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26-27).

60)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37-39.

61)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36.

62) 이는 보편주의나 상대주의에 내재해 있는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버리고 ‘다투어질 수 있는’ 보편성과 상대성 개념을 승인하는 것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다투어질 수 있는 보편성 개념에 대해 자세히는, 이상돈, 「인권법」, 세창출판사, 2005, 58-60면.

63)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

64) S. Benhabib, Situating the Self: Gender, Community, and Postmodernism in Contemporary Ethics, Routledge, 1992.

6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i.

66)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

67) 소수문화 집단 구성원인 여성의 자율적 선택과 가부장적 문화의 갈등 및 충돌을 이론적으로 중재하려는 시도로서 벤하비브의 심의민주적 다문화주의를 고찰하는, 현남숙, “다문화주의와 여성주의의 갈등에 관한 심의민주주의적 접근: S. 벤하비브의 심의민주주의 다문화 정치학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제20권 제3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9, 439-471면.

6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149-150. 이러한 맥락에서 벤하비브는 문화적·윤리적·종교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하는 비례대표제와 일정한 형태의 다문화적 관할권(multicultural jurisdiction)은 개인적·공적 자율성의 원칙을 존중한다는 전제에서 숙의 민주주의와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한다(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ii).

69)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

70)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85.

71) 여기에서 말하는 헌법적·법적 보편주의란 하버마스의 용어로 말하면 헌정애국주의(constitutional patriotism), 이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한다면 민주적 헌정질서에 대한 헌신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J. Habermas, “Constitutional Democracy,” Political Theory, Vol. 29, No. 6, 2001; 정채연, “헌정애국주의와 관용의 한계”, 284면 이하.

72)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ix.

73)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ii.

74)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벤하비브의 이중 경로 모델이 다문화적 환경에서의 민주적 숙의를―입법부, 법원, 정당 등―정치적·사회적 제도(institutions)에 의해 주되게 조정되는 절차로 이해하도록 한다는 이론적 한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S. A. Gallegos-Ordorica, op. cit., p. 73.

7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11.

76)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148-149.

77)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49.

7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29.

79) 이에 대해 M. H. Lima, “Who Judges? Democracy and the Dilemmas of Multiculturalism: Commentary to The Claims of Culture: Equality and Diversity in the Global Era, by Seyla Benhabib,” Philosophy & Social Criticism, Vol. 31, No. 7, 2005, pp. 727-737.

80) J. Habermas, “Multiculturalism and the Liberal State,” Stanford Law Review, Vol. 47, No. 5, 1995, pp. 849-853.

81) 정채연, “헌정애국주의와 관용의 한계”, 298면 이하.

82)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하버마스의 다문화주의 구상에 있어 핵심적인 관용 개념이 통문명적인 보편성 및 중립성을 가질 수 없음을 비판하면서, 데리다의 환대 개념과 같은 포스트모던적 관점을 결합하여 하버마스가 제시하는 보편적 대화 절차가 좀 더 다양한 문명의 차이를 포용할 수 있도록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L. Thomassen, “Habermas and His Others,” Polity, Vol. 37, No. 4, 2005, pp. 556-557 참고.

83) 벤하비브의 심의민주주의가 인권과 주권, 그리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변증적 과정을 지향하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킴리카와 같이 자유주의에 기반한 다문화주의 시민권보다 다양한 주체들의 권리 주장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병곤/김민수, “이주민 시민권으로서의 다문화주의 시민권의 한계와 대안: 벤하비브의 시민권 정치를 중심으로”, 「평화연구」 제23권 제1호,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2015, 295-328면.

84) 벤하비브의 세계주의 구상과 세계연방주의적 시민권에 대해 자세히는, 정채연, “벤하비브(S. Benhabib)의 세계주의에서 이주의 도덕성과 민주적 정당성의 역설”, 「법철학연구」 제22권 제3호, 한국법철학회, 2019, 65-102면.

85)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p. 175-176.

86) 이에 대해 S. Benhabib, “Crises of the Republic: Transformations of State Sovereignty and the Prospects of Democratic Citizenship,” Justice, Governance, Cosmopolitanism,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Reconfigurations in a Transnational World(K. A. Appiah et al.),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2007, pp. 45-78.

87)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xiii.

88) S. Benhabib, The Claims of Culture,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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