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민사소송법이 기본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는 처분권주의는 소송절차의 개시, 심판의 대상과 범위 그리고 소송절차의 종결을 당사자의 처분에 맡기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사적자치의 소송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원은 원고가 신청한 대상과 범위 안에서 심판을 하여야 하며 이를 벗어나 심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법원이 처분권주의를 위반하여 주문상에 원고가 신청하지 않은 소송물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원고가 신청한 범위를 초과해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원고든 피고든 패소한 자는 상소하여 원판결에 존재하는 처분권주의 위반의 위법을 다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이지만 원고가 전부승소한 경우이다. 이때에도 원고는 상소를 하여 처분권주의 위반을 지적하며 원고의 신청 범위 내에서 판결을 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상소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상소하는 자에게 상소의 이익이 있어야 한다. 상소는 잘못된 원재판에 의한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므로 상소를 하려는 자에게는 상소를 통해 그 권리구제를 받을 필요성, 즉 원재판에 의한 불이익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필요성이 있어야 하고, 이를 불복의 이익 또는 상소의 이익이라고 한다. 어느 경우에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오늘날 상소이익의 판단기준에 관한 통설적 견해는 예외를 인정하는 형식적 불복설이라고 일컬어진다.1) 그런데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은 신청과 주문의 관계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특히 승소자의 경우 판결에 의한 불이익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의 측면에서 위 통설적 견해에 의한 상소의 이익 여부 판단이 용이하지 않다. 이로부터 처분권주의 위반 판결의 경우 그 자체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거나 이러한 경우라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 상소의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견해의 대립이 발생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처분권주의 위반 판결에서 승소한 원고의 상소이익 인정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의 정립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처분권주의의 개념 및 처분권주의 위반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고, 상소의 이익 판단기준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겠다. 이를 토대로 처분권주의 위반과 상소의 이익에 관한 기존의 논의를 검토하며 필자 나름의 결론에 이르도록 하겠다. 논의의 편의와 본고의 결론에 따른 상소이익 판단 기준의 적용을 위하여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설례를 상정한다.
[설례1]
甲은 乙에 대하여 甲으로부터 586,412,830원 및 이에 대한 1987. 12. 4.부터 완제일까지 연 6%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받은 다음 A부동산에 관하여 경료된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것을 청구하며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1992. 10. 2. 乙은 甲으로부터 7억 원을 지급받은 다음 위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것을 명하면서 甲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 중 일부를 甲이 부담하도록 명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2)
[설례2]
丙은 X의 채권자이고 B부동산은 채무자 X의 소유이다. 丙은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B부동산에 관하여 X의 사해행위 후 변제에 의하여 근저당권설정등기가 말소되었음을 이유로 수익자인 丁을 상대로 사해행위의 일부 취소 및 가액반환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丙의 사해행위취소 청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원상회복으로 가액반환이 아니라 부동산 자체의 반환을 명하였다.3)
[설례3]
戊는 己 소유의 C부동산에 관하여 己와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후 庚은 법률상 원인 없이 C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戊는 己를 상대로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고, 庚을 상대로 己를 대위하여 소유권이전등기말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戊의 청구를 인용하면서 己에 대하여 양도담보약정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명하였고, 庚에 대해서도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명하면서 戊의 피보전권리를 양도담보약정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으로 판단하였다.4)
[설례4]
壬은 癸를 상대로 癸 소유의 D부동산에 관하여 壬에게 임차권이 있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임차권의 확인만을 구하였고 임료액에 대해서는 확인을 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壬의 청구를 인용하여 壬에게 임차권이 있다는 확인을 하면서 이와 함께 임료액이 월 100만 원이라고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5)
Ⅱ. 민사소송법상 처분권주의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절차의 개시, 심판의 대상 및 범위, 절차의 종료를 당사자의 처분에 맡기는 처분권주의에 관한 규정이다. 우리 법질서의 기본 원칙인 사적자치의 원칙이 소송법적으로 발현된 것이 처분권주의이다.6) 또 다른 사적자치 원칙의 소송법상 발현으로는 변론주의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사실과 증거의 수집 및 제출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말기고 당사자가 수집하여 변론에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는 원칙을 말한다.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는 소송절차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중시하고 상대방에게 공격·방어를 다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 등에서 유사한 기능을 한다.7) 그렇기에 실무상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이를 혼용하여 적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8) 처분권주의는 판단대상을 당사자에게 맡기는 문제이고 변론주의는 판단자료의 수집 및 제출을 당사자의 책임 또는 권능으로 하는 문제이므로, 양자는 원칙적으로 구별함이 타당하다.
민사소송은 당사자의 소제기에 의해 절차가 개시된다. 당사자에 의한 소제기가 없는데 법원이 직권으로 소송을 개시할 수는 없다. “소가 없으면 재판할 수 없다”, “불고불리의 원칙”으로 표현된다.
다만 당사자주의가 일부 후퇴한 절차들에서 예외가 인정된다. 소송비용의 재판(민사소송법 제98조), 가집행선고(동법 제213조), 판결의 경정(동법 제211조), 재판의 누락으로 인한 추가재판(동법 제212조), 재판상 이혼청구를 하면서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자·양육권자 지정의 청구를 하지 않은 경우9)에는 법원이 직권으로 재판할 수 있다.
한편 증권관련 집단소송, 소비자 단체소송, 개인정보 단체소송은 법원에 소제기에 대한 허가신청을 하여 법원이 허가한 때에 본격적으로 절차가 개시된다(증권관련집단소송법 제7조, 제13조, 소비자기본법 제73조, 제74조, 개인정보 보호법 제54조, 제55조).
절차의 개시뿐만 아니라 심리의 대상과 범위도 당사자가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 적극적으로는 당사자가 신청한 범위 내에서만 판결을 해야 하고, 소극적으로는 당사자가 신청한 범위 외의 사항에 관해서는 판결을 할 수 없다.10) 상소심에서 원심판결을 불복의 한도 안에서만 바꿀 수 있다는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민사소송법 제415조, 제425조)과 재심에서 본안의 변론과 재판을 재심청구이유의 범위 안에서 하여야 한다는 규정(동법 제459조 제1항)은 처분권주의에 따른 것이다.11) 심판의 대상과 범위가 원고가 신청한 사항과 질적으로 동일해야 하고, 신청한 사항의 양적 상한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12)
법원의 심판범위가 되는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은 곧 원고가 판단을 구한 ‘소송물’을 의미한다. 법원은 원고가 심판을 구한 소송물과 별개의 소송물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는 곧 소송물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판례가 취하는 구소송물이론(실체법설)에 의하면 실체법상의 권리마다 별개의 소송물로 보므로 청구취지가 동일하더라도 원고가 청구원인에서 주장하지 않은 실체법상의 권리에 기하여 판단하는 것은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반면 신소송물이론(소송법설)에 의하면 원고 주장의 실체법상 권리는 공격방법이나 법률적 관점이고 소송물의 요소가 아니므로 법원은 원고 주장과는 다른 실체법상 권리에 기하여 판단하더라도 처분권주의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본고는 처분권주의 위반의 판단기준 등의 논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의 승소자에게 상소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가 주된 논점이므로, 소송물이론에 관한 상론은 피하고 판례가 취하고 있는 구소송물이론을 전제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구체적으로 불법점유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는데 법원이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명하는 것,13) 매매를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하였는데 양도담보약정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명하는 것,14) 원고가 주장한 이혼사유와 다른 이혼사유를 근거로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것15), 건물에서의 퇴거청구에 대해 건물의 인도를 명하는 것16) 등은 원고의 청구와 별개의 소송물에 대하여 판단한 것으로 처분권주의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또한 확인의 소의 경우 소송물의 동일은 청구취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므로,17) 원칙적으로 청구취지와 다른 내용으로 확인을 하는 것은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예컨대 A건물에 대한 소유권확인을 구하였는데 다른 건물인 B건물에 대한 소유권확인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채무부존재확인청구와 같이 수량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경우에는 청구취지의 일부를 인정하는 판결을 할 수 있다.
같은 사실관계에 기한 것이라도 확인의 소, 이행의 소, 형성의 소는 각각 다른 소송물이므로 원고가 구한 판결의 종류와 다른 종류의 판결을 하는 것은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또한 법원은 당사자가 구하는 권리구제의 순서에도 구속되므로, 예비적 병합이나 예비적 공동소송은 그 청구의 순서에 따라야 한다.18)
심판의 범위가 당사자에게 일임되어 있다는 것은 원고가 명시한 양적 한도 내에서 심판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법원은 원고가 명시한 상한을 넘어서 원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수 없다. 원고가 100만 원의 대여금청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의 심리결과 원고에게 200만 원의 대여금채권이 인정된다고 하여 200만 원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할 수 없다. 100만 원을 인용하는 판결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원고가 200만 원의 지급과 상환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였는데 100만 원의 지급과 상환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명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19)
원고가 신청한 지연이자율 21.6%을 초과하여 지연이자율 30%를 인정한 것,20) 원고가 A불법행위에 대해 300만 원 그리고 B 불법행위에 대해 3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는데 A 불법행위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면서 400만 원의 지급을 명한 것,21) 원리금을 합산한 전체청구금액의 범위 내이지만 원금청구액을 넘어서 원금의 지급을 명하는 것22), 부진정연대관계로 청구하였는데 중첩관계가 아닌 개별적 지급책임을 인정한 것23) 등은 원고가 명시한 심판의 양적 상한을 넘어서 판단한 것으로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반면 법원의 심리결과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의 일부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한 취지의 일부인용 판결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원고의 의사나 소송제도의 합리적 운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량적인 일분인용은 처분권주의에 반하지 않는다. 예컨대 원고가 1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는데 법원의 심리 결과 원고에게 50만 원의 손해만 인정된다고 판단한 경우 50만 원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할 수 있다. 확인의 소에서도 수량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경우에는 일부인용 판결을 할 수 있다. 예컨대 단독상속을 이유로 부동산 전부에 대한 소유권확인을 구하였는데 일부지분만 상속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일부인용 판결을 하여야 한다.24) 마찬가지로 수량적으로 나눌 수 있는 채무부존재확인의 소에서도 일부인용 판결을 할 수 있다.25) 다만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한 취지가 책임의 존부 확인만을 구하는 취지임을 명백히 하였다면 책임의 존부 등은 수량적으로 나눌 수 없으므로 원고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전부기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26)
한편 원고의 신청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조건부나 질적인 일부인용도 가능하다. 무조건의 이행청구에 대한 피고의 동시이행항변 또는 유치권의 항변이 이유 있는 경우에는 청구기각이 아니라 상환이행판결을 하여야 한다. 이는 원고의 청구 중에는 대금지급과 상환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받겠다는 취지 또한 포함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므로, 원고의 청구가 반대급부 의무가 없다는 취지임을 분명히 한 경우에는 일부인용인 상환이행판결이 아니라 청구를 기각하여야 할 것이다.27) 반면 원고의 건물철거청구에 대해 피고가 적법하게 건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경우에는 원고의 청구 중에 대금지급과 동시에 건물의 인도를 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원고가 청구취지를 변경하지 않는 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판례는 분쟁의 1회적 해결을 위해 법원은 원고에게 청구취지를 변경하도록 석명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28)
사해행위취소에 따른 원상회복청구의 경우 원상회복의 방법으로 원물반환을 구하는 경우와 가액배상을 구하는 경우의 소송물이 서로 동일한지 여부에 대해서 견해의 대립이 있다.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의 소송물이 다르다는 견해에 의하면29) 원물반환청구의 주장에 가액배상청구의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물반환으로 소유권의 회복만 구한 경우 가액배상을 명할 수 없다. 반면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을 같은 소송물로 보는 견해에 의하면,30) 원물반환청구 주장에는 가액배상청구의 주장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원상회복으로 소유권의 회복만 구해도 가액배상을 명할 수 있다.31) 예컨대 채무자 소유인 부동산에 관한 사해행위 후 근저당권설정등기가 말소된 경우, 당초 일반 채권자들의 공동담보로 제공된 부분인 그 부동산의 가액에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액을 공제한 잔액의 한도 내 부분은 부동산 소유권 자체 즉 그 부동산 전체 가액의 일부에 해당하므로, 소유권회복을 구하는 청구에 대해 가액배상을 명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이행청구를 하였으나 이행기의 미도래나 이행조건의 미성취일 때에는 미리 청구할 필요가 있고 원고의 의사에 반하지 않으면 장래의 이행판결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원고가 피담보채무의 소멸을 이유로 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한 경우 심리 결과 원고에게 아직 채무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면 원고 청구를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의 청구 중에는 잔존 피담보채무가 있다면 그 변제를 조건으로 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 남은 채무의 선이행을 조건으로 청구를 인용해야 할 것이다.32) 원고가 피담보채무 변제의 선이행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경우라면 원고의 청구를 일부인용하는 취지의 장래이행의 판결이 아니라 청구기각 판결을 하여야 할 것이다.
개시된 소송절차를 종국판결에 의하지 않고 종결시킬 것인지 여부도 당사자의 의사에 의한다. 당사자는 소의 취하, 청구의 포기·인낙, 소송상 화해 등을 통하여 소송을 종결시킬 수 있다. 다만 당사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권리관계를 소송물로 하는 일부 가사소송과 행정소송은 처분권주의가 제한된다. 가사소송 중 당사자의 임의처분이 허용되는 재판상 이혼이나 재판상 파양의 경우에는 청구의 포기 및 화해가 허용된다고 본다.33) 회사를 피고로 하는 회사관계소송에서 청구인용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제3자에게 미치는 경우에는 청구의 인낙이나 화해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나 청구의 포기는 할 수 있다.34) 소비자단체소송, 개인정보단체소송에서 청구기각의 확정판결은 대세효가 있으므로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청구의 포기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35)
처분권주의의 위반은 판결 내용에 관한 것이고 소송절차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이의권의 포기·상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은 당연무효는 아니고 항소 또는 상고로 취소를 구할 수 있으나, 판결이 확정된 후에는 재심의 소로 다툴 수 없다.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경우라도 피고가 항소한 경우에 원고가 부대항소를 하여 제1심에서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신청을 하면 그 흠이 치유된다.36)
甲은 乙에 대하여 甲으로부터 586,412,830원 및 이에 대한 1987. 12. 4.부터 완제일까지 연 6%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받은 다음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것을 청구하였는데, 법원은 乙에게 甲으로부터 7억 원을 지급받은 다음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할 것을 명하였다. 판결선고일까지만 두고 보더라도 7억 원은 원고가 자인한 금액인 586,412,830원 및 이에 대한 1987. 12. 4.부터 그 판결선고일인 1992. 10. 2.까지 연 6%의 비율에 의한 금원(756,360,087원 = 586,412,830원 + 586,412,830 X 1763/365 X 0.06)보다 적은 금액임이 계산상 명백하다. 결국 법원은 원고가 자인하고 있는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원고의 선이행의무를 인정한 것인데, 이는 원고 신청의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것으로 처분권주의에 반하는 판결이라 할 것이다.
사해행위취소에 따른 원상회복청구에서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의 소송물 동일 여부에 관한 견해의 차이에 따라 살펴본다.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의 소송물이 다르다는 견해에 의하면 丙이 丁을 상대로 가액배상을 구하였는데 법원이 원물반환을 명하는 것은 원고의 신청과 다른 소송물에 대해서 심판한 경우이므로 신청과 주문의 질적 동일성이 없어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한편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을 같은 소송물로 보게 되면, 사해행위 후 근저당권설정등기가 말소되었다는 이유로 가액배상을 명하는 경우, 가액배상은 원물반환의 양적·질적 일부가 된다. 따라서 원물반환을 청구하였는데 가액배상을 명하는 것은 일부 인용으로서 처분권주의에 반하지 않지만, 가액배상을 청구하였는데 원물반환을 명하는 것은 신청의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것으로 처분권주의에 반한다.37) 어느 견해에 의하든 처분권주의에 반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戊의 己를 상대로 한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에 대하여 법원이 양도담보약정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명한 것은, 원고가 신청하지 않은 소송물에 대해서 법원이 심판한 것이다. 신청과 주문의 질적 동일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로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반면 戊가 庚을 상대로 己를 대위하여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를 구하는 소의 소송물은 己의 庚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권이다. 戊의 청구를 인용하면서 단지 피보전권리를 戊의 주장과 다르게 인정한 것은 소송물의 동일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처분권주의에 반하는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확인의 소에서의 소송물은 청구취지에 표시된 권리관계나 법률관계의 주장으로 보므로,38) 壬이 癸를 상대로 제기한 확인의 소의 소송물은 D부동산에 관한 壬의 임차권이다. 그런데 법원은 주문에서 壬의 임차권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임료액이 월 100만 원이라고 확인하는 판결을 하였다. 임료액이 월 100만 원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것은 원고 신청의 소송물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원고 신청의 소송물인 ‘壬의 임차권 존부 확인’과 주문상 소송물인 ‘임료액 월 100만 원의 확인’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주문상에 원고 신청 소송물에 대한 판단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밖에 신청에는 전혀 없는 소송물에 대한 판단 또한 들어 있는 이상 신청과 주문 사이에는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처분권주의에 반하는 위법이 있다.39)
Ⅲ. 상소의 이익 판단기준
상소는 법관의 오판에 의한 재판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당사자를 구제함과 동시에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통일적인 법령해석의 적용을 위한 제도이다.40) 상소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상소인에게 상소의 이익이 있어야 한다. 상소의 목적이 원재판에 의한 불이익으로부터의 구제에 있으므로 원재판에 의해 불이익을 받은 당사자만 상소를 제기할 수 있게 하여 무익한 상소의 방지를 도모하는 것이다. 권리보호이익의 한 형태인 상소의 이익은 본안판결을 하는 전제요건이 된다.41) 상소의 이익에 관한 법률상 규정은 없지만 학설과 판례는 이를 소송요건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으며 상소의 이익이 없으면 그 상소는 부적법하여 각하된다.
상소의 이익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의 대립은 주로 전부승소한 당사자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지 인정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관하여 차이가 발생한다. 어느 견해에 의하든 패소한 부분에 대해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은 결론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승소한 부분에 대해서 상소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상소의 이익 판단기준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상소의 이익 판단기준에 관한 견해는 대체로 형식적 불복설, 실질적 불복설(실체적 불복설), 절충설, 신실질적 불복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42)
형식적 불복설은, 당사자의 신청과 이에 대한 재판의 주문을 형식적으로 비교하여 주문이 신청에 비해 불이익한 부분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상소의 이익을 판단하는 견해이다. 재판의 주문이 신청에 비해 양적 또는 질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상소의 이익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신청과 주문을 형식적으로 비교하였을 때 부족한 부분이 없을 경우, 즉 승소판결에 대해서는 상소가 허용될 수 없고, 판결이유에 대해서 불만이 있더라도 주문상 승소하였다면 상소의 이익이 없다고 본다.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다.43)
실질적 불복설(실체적 불복설)은, 원재판에 대한 불복의 의미도 실체법적 관점으로 이해하여, 원재판에 비해 상소심에서 실체법적으로 더 유리한 판결을 구할 수 있으면 원재판에 불복할 이익 즉 상소의 이익이 긍정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당사자는 속심의 성격을 갖는 항소심에서 새로운 공격방어방법을 제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청의 확장도 할 수 있고, 항소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항소의 적부나 이유의 적부도 판단되므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항소인이 원재판에 비해 유리한 판결을 구할 수 있다면 상소의 이익이 있다고 본다. 원재판에서 전부승소한 당사자라도 상소심에서 실체법적으로 더 유리한 판결을 구할 수 있다면 상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항소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원재판에 비해 실체법상 유리한 판결을 구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하므로, 상소를 허용하는 범위가 너무 넓고 상소의 이익 판단 기준도 불명확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44) 이 견해는 항소심이 속심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으나 오히려 항소심이 복심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이러한 점에서 위 견해는 불복불요설이라 불리기도 한다.45)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견해의 지지자는 찾기 어렵다.
절충설은, 원고에 대해서는 형식적 불복설에 따라서, 피고에 대해서는 실질적 불복설에 따라서 상소의 이익 여부를 판단하는 견해이다. 피고의 경우 아무런 신청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반드시 청구기각 또는 소각하 신청을 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피고의 청구기각 신청은 재판 대상이 되는 본안 신청이 아니고 소송상 신청일 뿐이므로 주문과의 비교를 통한 불이익 판단이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당사자평등주의에 반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46) 이에 의하면 전부승소한 원고가 청구의 확장을 하기 위해서는 피고의 항소를 기다려 부대항소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전부승소한 피고가 반소를 제기하려면 곧바로 항소하면 된다. 위 견해는 피고의 신청이 주문과의 비교를 통한 불이익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나, 청구기각의 신청은 원고의 본안청구를 배척하는 취지의 본안판결을 구하는 신청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그러한 신청과 주문의 비교로 상소의 이익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47) 피고가 소각하나 청구기각 등의 명시적인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에는 청구기각의 신청을 한 것으로 보아 상소의 이익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48) 현재 위 견해의 지지자는 찾기 어렵다.
신실질적 불복설은, 원판결이 확정되는 경우 기판력 등 판결의 효력에 의하여 불이익이 발생하면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당사자가 원판결의 확정으로 인해 별소에 의한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면 그 원판결에 대해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원고가 묵시적 일부청구를 하여 전부승소한 경우 그 판결의 효력으로 인하여 잔부청구를 위한 별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므로 청구의 확장을 위하여 항소를 할 이익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형식적 불복설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창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가진다.49) 예컨대 예비적 상계항변으로 승소한 피고의 경우 소구채권의 존부 및 범위를 상소심에서 다툴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불복설에 의하면 패소한 부분이 없어 상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 판결의 효력에 의한 실질적 불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실질적 불복설 내에서도 판결의 효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립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고50), 판결의 효력을 기판력, 집행력 그 밖의 부수적 효력까지 포함한다고 보면 상소의 이익 지나치게 넓어지는 문제가 있다.51) 또한 오히려 형식적 불복설에 의해서는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는데 신실질적 불복설에 의해서는 이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예컨대 피고가 청구기각의 신청을 하였는데 소각하 판결이 있는 경우, 별소 제기에 의한 구제를 받을 수 없는 불이익이 있는 경우에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는 신실질적 불복설의 입장에서는 피고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의 설명이 어렵다.
형식적 불복설이 상소의 이익을 판단하는데 있어 간결하고도 명료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청과 주문을 형식적으로 비교하여 신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을 불이익으로 보아 상소의 이익을 용이하게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형식적 불복설을 엄격하게 적용하게 되면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경우가 있다.
우선 피고의 예비적 상계항변이 받아들여져 전부승소한 경우이다. 형식적 불복설에 의하면 피고의 신청과 주문을 형식적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피고에게 불이익한 부분이 없으므로 피고의 상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고로서는 상소심에서 소구채권의 부존재를 다투어볼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계의 항변에 대한 판단은 비록 판결 이유 중의 판단이라도 기판력이 발생하므로 피고의 자동채권이 상계에 제공한 범위에서 소멸하였다는 판단에 대해 기판력이 생기게 된다. 이 경우 피고는 상계에 제공한 자동채권에 관하여 그 이행을 구하는 별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피고는 형식적으로 전부승소하였으나 그 판결이 확정되면 피고의 자동채권이 소멸하고 이를 구제받을 수 없는 불이익을 입게 된다. 따라서 전부승소한 피고로서는 항소를 하여 소구채권의 부존재를 다툴 실익, 즉 원판결에 불복할 이익이 있으므로 상소의 이익이 인정될 필요가 있다.52)
또한 묵시적 일부청구의 경우 전부승소한 원고도 신청과 주문을 형식적으로만 비교하면 불이익한 부분이 없어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묵시적 일부청구의 소송물은 잔부를 포함한 전부가 되며 따라서 일부청구에 관한 판결의 기판력은 잔부에도 미처 별소로 잔부청구를 하는 것은 기판력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상소를 통한 청구취지의 확장으로 잔부청구를 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원고로서는 그 판결의 확정으로 잔부를 청구할 수 없게 되는 불이익을 입게 된다. 전부승소한 원고에게도 그러한 불이익으로부터의 구제를 위하여 상소의 이익이 인정될 필요가 있다.53)
그밖에 신청은 없고 주문만 있어 신청과 주문의 비교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출석하지 않은 증인에 대판 과태료 부과(민사소송법 제311조)와 증언거부에 대한 재판(동법 제317조)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경우에도 항고 등 불복이 가능하므로 신청과 주문의 비교가 어렵다고 하여 상소의 이익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원재판에 의해 불이익이 발생했고 상소심의 재판으로 그러한 불이익을 제거할 수 있으면 상소의 이익이 있다고 볼 것이다.
이상과 같이 형식적 불복설에 의해서는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라도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외적으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는 판단기준은 원재판이 확정되는 경우 그 효력으로 인하여 별소의 제기를 통한 권리구제가 불가능한 경우와 같이 원재판의 확정에 의해 실질적인 불이익을 입게 되는 경우로 볼 것이다. 다만 기판력에 의해 별소 제기가 불가능한 경우로 국한할 것은 아니고 원재판이 확정됨으로 인하여 당사자가 불이익한 지위에 있게 되는 등54) 실질적인 불이익을 입게 되고 상소심의 재판을 통해 그러한 불이익을 제거할 수 있다면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Ⅳ. 처분권주의 위반 판결에서 승소한 원고의 상소이익
상소의 이익 판단 기준에 관한 형식적 불복설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신청에 비해 주문이 부족한 경우에 상소의 이익이 인정된다. 그런데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의 경우 그 주문상의 판단이 신청의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신청과 주문의 비교를 통한 상소이익 판단이 가능한 것인지 문제 된다. 특히 원고가 승소를 하였으나 그 승소한 내용이 신청한 내용과 다르거나 신청한 범위를 벗어났다면 비록 승소한 원고라 하더라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문제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형식적 불복설의 예외로 보아 전부승소한 원고에게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인지, 인정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관하여 학설상 논의가 있어 왔다.
대체로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라면 그 자체로 승소자인 원고에게는 상소의 이익이 있다는 견해와 처분권주의 위반 중에서 신청과 주문의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승소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 그리고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더라도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이 있는 경우에 한해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처분권주의 위반 중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상소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는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결국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그 주문에 의해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이 발생하여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자는 견해이므로,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더라도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 있는 경우에 한해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와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아래에서는 대립되는 견해를 두 가지, 즉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으면 승소자에게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와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권주의 위반의 경우 승소자에게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로 분류하여 검토하겠다.
판결에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는 승소 여부를 불문하고 그 자체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 중에는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는 형식적 불복설의 적용이 불가하다는 점을 근거로 드는 입장이 있다.55) 형식적 불복설에 따라 신청과 주문의 비교로 상소의 이익 여부를 따지는 것은 바로 처분권주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형식적 불복설에는 처분권주의라는 원칙 아래에서 당사자가 설정한 심판대상에 대해 부족이 없는 판단을 얻은 이상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그 이상의 심리를 구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고 본다. 형식적 불복설이 처분권주의가 관철되어 있음을 전제로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상소이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형식적 불복설을 기준으로 상소의 이익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범위에 대해서는 그 부분이 인용되는 것이 당사자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그러한 판단을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이 바로 처분권주의라고 본다. 따라서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판단을 받은 것을 곧 상소의 이익의 근거가 되는 불이익(불복)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신청과 주문이 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경우에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세무상의 문제나 관련된 다른 사건에의 영향 등 양적 상한을 초과한 판결도 당사자에게 불이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처분권주의 위반은 민사소송의 근간에 관한 중대한 위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승소자인 당사자에게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56) 상소의 이익을 요하는 것은 결국 상소인에게 구제의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인데, 민사소송의 근간에 관한 중대한 위법이 있는 경우에는 상소인의 구제에 우선하는 특별한 사정, 즉 공익상의 요청이 있는 경우이므로 구체적인 상소인의 구제 필요성을 따지기에 앞서 그러한 중대한 위법을 시정하기 위하여 패소자의 상소를 기다릴 것 없이 승소자에게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57)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가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에 대하여 전부승소자의 상소이익을 인정한 데 이어,58) 직접심리주의를 위반한 판결에 대해서도 전부승소자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한 것은59) 민사소송의 근간에 관한 중대한 위법이 있는 경우에는 형식적 불복설의 예외로서 신청과 주문의 비교를 요하지 않는 불복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60)
그밖에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에서 전부승소한 원고라 하더라도 이러한 판결을 통해 얻는 이익은, 설령 단지 신청에 비해 양적 상한을 초과한 이익이더라도 원고의 의사에 의한 이익이 아니므로 그러한 이익을 현실로 취득할지 여부에 대해서 원고에게 판단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61) 즉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은 원고의 신청 범위를 초과하는 이익을 원고가 스스로 취득할지 여부를 확인하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이익한 것인데, 여기에서 원고의 상소이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신청범위를 초과하는 이익에 대한 원고의 의사를 확인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므로 원고에게 상소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62) 결국 원고가 신청한 범위를 초과하는 사항에 대한 판결을 받을 것인지에 관하여 원고에게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점을 처분권주의 위반 판결에 의한 불이익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는 형식적 불복설로부터 벗어나 전부승소한 자라 하더라도 그러한 위법을 이유로 상소권을 인정하는 특례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63)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경우 중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승소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지만, 원고 신청의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경우에는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양적 상한을 초과하는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 예컨대 원고가 1억 원의 지급을 구하였는데 법원이 1억 5천만 원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한 경우, 주문상 원고의 신청 범위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원고의 신청보다 초과된 부분에 대해서는 원고가 원하지 않는 경우 그 부분의 이행을 받지 않거나 강제집행을 하지 않으면 될 뿐 원고에게 불이익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64) 반면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불이익 여부를 따질 것 없이 그 자체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질적 동일성이 없는 경우에는 신청과 주문의 비교가 불가능하여 형식적 불복설의 예외로서 승소자에게도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65)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 승소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나 주문이 원고의 신청보다 유리한 경우에는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66) 결국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권주의 위반에 대해서만 승소한 원고의 상소이익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 견해는 판결이 원고가 주장하지 않은 소송물에 관해서 심판하였을 뿐 원고가 주장한 소송물에 대해서는 심판을 하지 않은 경우를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경우’로 보아 원고가 주장하지 않은 소송물에 대한 판결의 효력을 받는 것은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한 것이므로 상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보면서(이는 곧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이다),67) 주문이 원고의 신청보다 유리한 경우에는 그 판결이 원고에게 이익이 되므로 원고로서는 상소의 이익이 없다고 본다(이는 원고의 신청보다 양적 상한을 초과한 판결에 대한 것으로 이해된다).68)
한편, 신청과 주문 사이에 소송물이 다른 경우에는 재판의 누락에 해당함을 전제로 이러한 경우에 재판의 누락으로 해결하지 않고 처분권주의 위반을 이유로 승소자의 상소를 허용하여 동일 소송 내에서 처분권주의 위반의 판결에 대한 시정 기회를 주는 것이 소송경제에 부합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69) 이러한 견해는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서로 다른 경우 마치 원고의 주위적·예비적 청구에 대해 법원이 예비적 청구만 심판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면서 이 경우 주위적 청구로 볼 수 있는 원고의 신청에 대해서는 재판의 누락이 있는 것이므로 추가판결을 받거나 별소를 제기할 수 있어 상소의 이익이 없다고도 볼 수 있으나 소송경제의 입장에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서로 다른 경우에 예외적으로 승소자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권주의 위반 판결의 경우에 승소자에게 상소의 이익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선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승소자에게도 상소의 이익이 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 중 처분권주의 위반은 민사소송의 근간에 관한 중대한 위법이라는 이유로 전부승소자에 의한 상소가 허용된다는 견해에 관하여, 이는 민사소송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재판의 실현을 위하여 전부승소자라 하더라도 상소를 허용하여 중대한 위법의 시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익적 목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사소송에 관한 여러 원칙 중 무엇을 민사소송의 근간에 관한 중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반드시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소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상소제도의 취지나 목적, 존재이유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상소는 법관의 오판에 대한 당사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므로, 원재판에 의한 불이익으로부터 권리구제를 받을 필요성이 있는 자에 한해서 상소가 허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권리구제의 필요성이 곧 상소의 이익을 의미하고, 소의 제기에 있어서 권리보호이익이 필요하듯 상소를 함에 있어서 상소의 이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민사소송의 기본원칙에 관한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의 권리구제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도 상소를 허용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구제의 필요성은 원재판으로부터의 불이익이 있음을 전제로 하므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기본원칙에 관한 중대한 위법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고, 그러한 위법이 있는 판결로 인해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재판에 의한 불이익이 있는지 여부는, 예외를 인정하는 형식적 불복설에 의할 경우, 원칙적으로 주문이 신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예외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더라도 기판력 등 판결의 효력으로 인해 당사자가 입게 되는 실질적인 불이익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의 경우 신청과 주문의 관계성이 붕괴되어 그러한 판결의 주문으로는 신청과의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단지 양적 상한을 초과하는 판결의 경우에는 원고의 신청에 부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신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없다면 일응 불이익하지 않다고 볼 수 있고, 그 초과되는 부분이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한지 여부를 따져 그 판결이 원고에게 불이익한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질적 동일성이 없는 처분권주의 위반의 경우에는 신청과 주문의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은 타당하나, 이 경우에도 원고가 신청하지도 않은 소송물에 대한 판결의 효력에 구속된다는 점에서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느 경우나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한지 여부를 따질 수 있으므로, 신청과 주문의 비교를 상정할 수 없어 처분권주의 위반 그 자체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찬동하기 어렵다.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은 원고의 신청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판결을 받을 것인지에 관하여 원고에게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불이익이 있어 처분권주의 위반 그 자체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판결에 의한 불이익은 그 판결로 인해 당사자가 불이익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의사의 확인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판결이 원고에게 아무런 불이익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불이익한 판결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법원이 심리를 진행함에 있어 변론주의를 위반하여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판결이유로 판단을 하였다고 하더라도(예컨대 피고가 변제를 이유로 원고 청구의 기각을 구하였으나 법원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경우) 주문상 전부승소한 자는 판결의 기판력 등 효력으로부터 불이익한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주문에 의해 어떤 불이익을 입게 되었는지 따지지 않고 원고 의사의 확인이 없었던 점 그 자체를 상소이익의 근거가 되는 불이익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찬동하기 어렵다.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위법만을 이유로 승소자인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기존의 상소이익 판단 기준에 따라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이 발생했는지를 따져 상소의 이익 인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70)
우선 신청과 주문 사이에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를 살펴본다. 여기서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다시 주문에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고 그와 무관한 소송물에 대해서만 판단한 경우와 주문에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에 대한 판단도 있지만 그 외에 원고가 신청하지 않은 소송물에 대한 판단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주문 중에 신청한 소송물과 질적으로 다른 소송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문과 신청이 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문 중의 판단에는 기판력이 발생하므로 결국 원고는 신청하지도 않은 소송물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구속되는 것이다. 원고가 신청하지도 않은 사항에 대해 판결의 확정에 따른 효력에 구속되는 것은 그 자체로 불이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중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과 전혀 다른 소송물에 대해서 심판한 경우를 보면,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원고에게 불이익하다. 이 경우 원고의 신청에 대해 심판하지 않은 것은 재판의 누락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71) 재판의 누락은 법원이 청구의 전부에 대해서 재판할 의사였지만 본의 아니게 청구의 일부를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72) 이러한 재판의 누락은 그 누락된 부분에 대해 추가판결이 가능한 경우, 즉 재판한 부분과 누락된 부분이 일부판결이 가능한 관계에 있을 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처분권주의를 위반하여 전혀 다른 소송물에 대해 심판하는 경우는 대체로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같은 목적에 관해서 경합하는 청구권 관계에 있거나,73) 논리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로 두 소송물이 마치 선택적 또는 예비적 병합과 같은 관계에 있는 때이다. 선택적 또는 예비적 병합의 관계에 있는 소송물은 내용상 모순의 방지를 위하여 일부판결이 허용되지 않으므로,74) 재판의 누락이 있을 수 없고 누락된 판단에 대하여 상소로써 구제받아야 한다. 나아가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단순병합의 관계에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주문상의 소송물은 애당초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부분이고 이에 대한 판결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일부판결이 가능한 경우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주문상의 소송물에 대해서는 일부판결이 있고 신청상 소송물에 대해서는 재판의 누락이 있는 경우로 볼 수 없다. 이러한 판결은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것으로 신청상의 소송물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원고에게 불이익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은 원고가 신청하지도 않은 소송물에 대해 판결의 효력에 구속된다는 점에서 또한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에 대해서는 판단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이익하므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된다. 신청과 주문의 형식적 비교로는 불이익 여부의 판단이 어렵지만, 예외적으로 판결의 효력 등으로 원고가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입는 경우로서 상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주문이 신청에 비해 양적으로 초과하는 처분권주의 위반의 경우는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은 동일하나 주문이 신청에 의한 양적 상한의 범위를 넘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원고가 설정한 심판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것이지만 동일한 소송물 간에 양적 범위만 차이가 있는 것이므로 신청과 주문의 형식적 비교가 불가능한 경우는 아니라고 보인다. 형식적으로 비교해 보면 원고의 신청은 주문상에 모두 인용되고 부족한 부분이 없으므로 일응 원고에게 불이익한 부분은 없다. 그 외에 원고가 신청한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부분이 포함되었다고 하여 기판력 등 판결의 효력이 원고에게 불이익하게 작용할 부분은 없어 보인다. 그 초과된 부분 또한 신청과 동일한 소송물이라는 점에서 원고가 뜻하지 않은 법률관계, 권리관계에 관하여 기판력이 발생하는 경우라고 볼 수 없다. 원고가 초과된 부분에 대한 수령이나 상대방의 이행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확정판결에 따른 집행을 당초 소를 제기한 범위 내에서만 신청하면 된다.75) 나아가 확정판결을 변경하는 내용의 새로운 약정을 체결하여 그 확정판결에 따른 채권·채무관계를 소멸시키는 것도 가능할뿐더러,76) 원고가 그 초과되는 부분에 대한 판결금 채권을 단독행위로서 면제(민법 제506조)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원고가 자신이 신청한 범위를 초과해서 얻게 된 권리(판결금 채권)를 포기하는 것도 가능하다.77)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양적 상한을 초과한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는 신청과 주문을 비교해 보았을 때 원고에게 불이익한 부분이 없을뿐더러, 그 초과된 부분에 대한 판단이 있다고 하여 원칙적으로 그러한 판단의 확정이 원고에게 불이익하게 작용될 부분은 없으므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신청과 주문 사이에 소송물이 동일할 것을 전제로 하므로, 언뜻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소송물이 다른 경우, 예컨대 명시적 일부청구에 대해서 법원이 잔부청구까지 포함하여 신청상 금액보다 큰 금액을 인용하는 경우 등에는 신청에는 없는 소송물에 대해 심판한 것이므로 이는 신청과 주문의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로 보아 상소의 이익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원고가 자인하고 있는 선이행의무보다 더 적은 범위의 선이행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신청에서 설정한 심판의 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이는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것으로, 신청과 주문을 형식적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신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없다. 비록 주문에서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고 하고 소송비용에 관하여 원고에게 일부를 부담할 것을 명하였다고 하여 달라지지 않는다. 신청을 초과하여 심판한 부분이 있지만 이러한 판단이 있다고 하여 실체법상 권리관계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므로 원고가 자인하는 채권채무 관계가 소멸한다고 볼 수도 없고, 그밖에 초과된 부분(원고가 자인한 선이행의무 있는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을 인정한 부분)에 대한 판결의 효력이 원고에게 불이익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이라 하더라도 승소한 원고에게는 상소의 이익이 없다고 할 것이다.78)
원상회복청구에서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의 소송물이 다르다고 보는 견해에 의하면 가액배상청구에 대해 원물반환을 명하는 것은 신청과 주문 간 소송물의 질적 동일성이 없어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이 경우 원고가 신청한 가액배상에 대해서는 판단을 받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판결이 확정되는 경우 원고는 신청하지도 않은 원물반환에 관한 법원의 판단에 구속되는 불이익을 입게 된다. 따라서 원고에게는 이러한 불이익으로부터의 구제를 위하여 상소의 이익이 인정될 것이다.
원물반환과 가액배상의 소송물이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에 의해도, 가액배상 신청에 대해 원물반환을 명하는 것은 신청의 양적 상한을 초과한 것으로 처분권주의에 반한다. 다만 가액배상을 원물반환의 질적·양적 일부로 보는 이상 형식적으로 주문이 신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없고, 사해행위취소에 따른 채무자 책임재산의 환원이 모든 채권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는 점에서도 신청에 비해 양적 상한을 초과하여 채무자 책임재산의 환원을 명하는 것이 원고에게 불이익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79)
원고가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를 하였는데 법원이 양도담보약정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명하는 것은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권주의 위반이다. 이 경우 원고는 신청한 소송물에 대한 판단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판결이 확정되는 경우 신청하지도 않은 소송물에 대하여 기판력 등으로 구속되는 불이익을 입는다. 따라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될 것이다.
한편 원고가 제기한 채권자대위소송에서 법원이 이를 인용하며 피보전권리에 대하여 원고 주장과 다른 권리를 인정하는 경우,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은 동일하고 부족한 부분이나 초과된 부분도 없으므로, 처분권주의에도 반하지 않고 상소의 이익도 없다고 할 것이다. 판결이유 중의 판단에는 기판력이 발생하지 않는 등 원고에게 불이익한 영향이 없으므로, 승소한 원고가 판결이유 중 판단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상소가 허용될 수 없다.80)
원고가 신청하지도 않은 소송물에 대해 법원이 주문상 판단하는 것은 처분권주의에 반하고, 신청과 주문이 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원고는 신청하지도 않은 소송물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구속되는 불이익을 입는다. 사안에서 법원의 임료액에 관한 판단이 확정되는 경우 원고는 그 임료액에 대해 불만이 있더라도 다시 소송상 다툴 수 없게 된다. 원고가 신청한 소송물인 임차권의 확인에 대해서도 판단이 있었지만, 신청한 적이 없는 임료액에 대해서도 확인을 하는 판결은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불이익한 판결이므로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81)
Ⅵ. 결 론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판결은 주문에 신청상의 소송물과는 다른 소송물에 대한 판단이 들어 있거나 신청한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판단이 들어 있다. 이 경우 승소한 원고는 처분권주의 위반을 이유로 상소를 할 수 있는지 문제 된다. 상소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상소의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판결 주문상 원고가 승소하였다는 점에서 원고에게 원판결에 의한 불이익을 전제로 하는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는지 문제되는 것이다. 상소이익의 판단기준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 왔는데 형식적 불복설에 의하는 것이 가장 간이하고 명확하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불이익한 부분이 없으나 판결의 확정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불이익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의 경우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동일하지 않거나 신청에는 없는 부분이 주문에 포함되어 있어, 승소한 원고에게 형식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불이익한 부분이 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 처분권주의 위반이라는 중대한 위법이 있다는 점으로부터 그 자체로 승소자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처분권주의 위반이 있는 경우라도 상소의 이익 여부는 불이익한 재판으로부터의 권리구제라는 상소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해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형식적 불복설의 예외로서 처분권주의 위반 판결이 승소자인 원고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할 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처분권주의 위반의 유형별로 살펴보면, 신청과 주문의 질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즉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다르거나 주문상에 신청에는 없는 소송물에 대한 판단이 들어 있는 경우에는 비록 원고가 승소하였더라도 원고가 신청한 적도 없는 소송물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구속된다는 점에서 불이익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주문이 원고의 신청에 비해 양적 상한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주문이 신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없고 신청과 주문의 소송물이 동일하여 원고에게 불이익한 면이 보이지 않는다. 신청에 비해 초과된 부분은 원고가 원하지 않는 경우 집행 등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므로 원고에게 실질적 불이익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원고에게 상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실무상 처분권주의 위반이 문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이상과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판결에 대한 승소자인 원고의 상소이익을 판단함에 있어 보다 명확하고 예측가능한 기준이 정립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