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부천시는 지방세 체납자 14명의 미사용 자기앞수표 308장에 대한 이득상환청구권을 압류하여 2억 7000만원의 채권을 확보하고, 채권추심 의뢰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1) 이러한 세무당국의 조치는 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19다203286 판결(이하 ‘대상판결’로 인용함)에 터잡아 행해진 것이며, 최근 여러 지방단체로부터 새로운 체납징수기법으로 각광받기에 이르렀다.
대상판결에서는 지급제시기간을 도과한 자기앞수표에 대하여, “정당한 소지인에게 일종의 지명채권인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하고, 이때의 자기앞수표는 이득상환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이 아니라 그 소지인이 이득상환청구권을 취득 또는 양수하였음을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증권에 불과하다”고 판시하고, 따라서 “자기앞수표의 교부만으로 당연히 민법 제450조 제2항에서 정한 채무자 이외의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본건 원고인 대한민국(평택세무서장)은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은행 등에 대하여 체납자가 가진 이득상환청구권을 체납처분에 의하여 압류한다는 뜻을 통지하는 방식으로 압류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대상판결로 인하여, 오랫동안 거래현실에서 자기앞수표의 거래당사자들이 지급제시기간의 경과 전후를 고려하지 않고 수표를 양도·양수하던 관행뿐만 아니라, 자기앞수표는 소지인이 언제든지 은행에서 수표금액을 인출할 수 있는 안전한 금전적 재산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언처럼, 이제 자기앞수표는 소지인 자신이 전혀 알 수 없는 양도인의 채권자에 의하여 언제든지 압류당할지 모르는 예측불가능하고도 극히 위험한 자산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특히 본 대상판결이 법리전개의 기초로 삼고 있는 대법원 1976. 1. 13. 선고 70다2462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전합판결’로 인용함)은 종래의 입장을 과감히 벗어나, 전향적으로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의 양수인인 자기앞수표 소지인의 지위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표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대상판결은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 관련하여 양수인에게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구비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자기앞수표 소지인의 보호라는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였던 위의 전원합의체 판결의 고뇌에 찬 결단을 거스르는 자세를 취한 셈이 되어버렸다. 본 논문은 이러한 대상판결의 태도가 타당한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 사실관계 및 대법원 판결요지
가. 피고(국민은행)는 소외 1(이하 ‘甲’이라 함)의 의뢰로 2016. 2. 1. 액면금 1억 원인 자기앞수표 9장(이하 ‘제1수표’라고 함), 2016. 2. 3. 액면금 1,000만 원인 자기앞수표 10장(이하 ‘제2수표’라고 하고, 이를 제1수표와 합하여 ‘이 사건 각 수표’라고 함)을 발행하였다. 이후 甲은 이 사건 각 수표를 계속 소지한 상태였음에도 지급을 위한 제시를 하지 않다가 각 지급제시기간(제1수표: 2016. 2. 11.까지, 제2수표: 2016. 2. 15.까지)이 경과하였다.
나. 중부지방국세청은 甲이 거듭된 납부독촉에도 불구하고 국세 총 1,478,005,590원(= 종합부동산세 100,237,960원 + 양도소득세 1,377,767,620원, 2016. 5. 24. 기준)을 납부하지 않자, 그의 재산을 추적하여 2016. 5. 24.까지도 이 사건 각 수표의 지급제시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평택세무서장은 甲이 이 사건 각 수표를 정당하게 소지한 상태에서 각 지급제시기간이 경과함으로써 피고에 대한 이득상환청구권을 취득하였다고 판단한 후 구 국세징수법(2020. 12. 29. 법률 제17758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41조 제1항을 근거로 피고에게 2016. 5. 27. 제1수표에 관하여, 2016. 6. 2. 제2수표에 관하여 각 이득상환청구권을 압류한다는 뜻이 기재된 채권압류통지서(이하 ‘이 사건 각 압류 통지서’라고 함)를 송달하면서 이를 자신에게 이행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라. 피고는 평택세무서장의 요구에 응하지 않던 중 소외 2(乙)가 2016. 6. 20. 제2수표를, 2016. 6. 24. 제1수표 중 5장을, 소외 3(丙)이 2016. 6. 27. 제1수표 중 나머지 4장을 제시하면서 수표금 지급을 요구하자 지급요구한 당일 그들에게 각 액면금 상당액을 전액 지급하였다. 이에 원고(대한민국)는 피고를 상대로 추심금 지급소송을 제기하였다.
[1] 수표상의 권리가 절차의 흠결로 인하여 또는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소멸될 당시 수표의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그 수표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수표법 제63조에 따라 발행인 등에 대하여 그가 받은 이익의 한도에서 상환을 구할 수 있다. 이러한 이득상환청구권은 법률의 직접 규정에 의하여 수표의 효력 소멸 당시 정당한 소지인에게 부여된 지명채권에 속하고, 이러한 법리는 그 수표가 은행 등이 자신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한 자기앞수표(수표법 제6조 제3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자기앞수표의 정당한 소지인이 수표법상의 보전절차를 취하지 않고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여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됨으로써 수표법 제63조에 따라 취득하게 되는 이득상환청구권 역시 지명채권에 해당한다. 이때 지급제시기간이 경과한 자기앞수표는 이득상환청구권이 화체된 유가증권이 아니라 그 소지자가 이득상환청구권을 취득 또는 양수하였다는 점을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증권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자기앞수표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증거에 의하여 자신이 이득상환청구권자임을 증명하여 이득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2] 구 국세징수법에서 정한 체납처분절차에 따라 유가증권을 압류하기 위해서는 세무공무원이 이를 점유하여야 하지만(제38조), 채권을 압류할 때에는 세무서장이 그 뜻을 해당 채권의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하고(제41조 제1항), 그러한 통지를 한 때에 체납액을 한도로 하여 체납자인 채권자를 대위한다(제41조 제2항). 이러한 구 국세징수법 제41조에 의한 채권압류의 효력은 피압류채권의 채권자와 채무자에 대하여 그 채권에 관한 변제, 추심 등 일체의 처분행위를 금지하고 체납자를 대신하여 추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제3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관하여 체납자에게는 변제할 수 없고, 압류채권자에게만 이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무서장은 구 국세징수법 제41조 제1항에 따라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은행 등에 체납처분에 의하여 압류한다는 뜻을 통지하는 방식으로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고, 같은 법 제38조에 따라 세무공무원이 그 자기앞수표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압류해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다만 추심권을 행사하는 압류채권자로서는 체납자가 보유한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을 증명하여야 한다.
[3] 자기앞수표의 정당한 소지인이 수표법상의 보전절차를 취하지 않고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여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된 자기앞수표를 교부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을 양도함과 동시에 그에 수반하여 이득을 얻은 발행인인 은행 등에 대하여 소지인을 대신해서 그 양도에 관한 통지를 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이 지명채권에 해당하고 그 양도에 대하여는 민법 제450조에서 정한 대항요건을 갖출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자기앞수표의 교부로 이득상환청구권을 양도하고 양도통지 권능을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도 자기앞수표 교부 사실 자체만으로는 당연히 민법 제450조 제2항에서 정한 채무자 이외의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없고, 그러한 대항요건을 갖출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 역시 일반 지명채권과 마찬가지로 그 양도에 관하여 양도통지 또는 채무자의 승낙이 확정일자 있는 증서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채무자인 자기앞수표 발행 은행 등은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 그에 기한 채무의 변제라는 사정을 들어 양도인의 위 채권에 대한 압류채권자 등 양수인의 지위와 양립할 수 없는 법률상 지위를 취득한 사람에게 대항할 수 없다.
Ⅲ.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
수표는 발행인이 지급인에 대하여 일정한 금액을 수표소지인에게 지급해 달라고 위탁하는 유가증권이라는 점에서, 법률적으로는 환어음과 다르지 않다.3) 다만 환어음은 만기까지 신용을 이용할 수 있는, 환언하면 채무변제를 만기까지 연장할 수 있는 신용증권이다. 그러나 수표는 발행인이 은행(지급인)에 예치한 자금으로 발행인을 대신하여 수표소지인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지급위탁증권이다.4) 이는 양자가 가지는 경제적 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며, 수표는 현금대용물로서의 기능을 주로 수행한다.5)
한편 자기앞수표는 발행인 자신을 지급인으로 하는 수표이다(수표법 제6조 제3항).6) 이 점을 제외하면 수표법상 일반수표와 달리 볼 특별한 점은 없다. 그러나 현실 거래사회에서의 자기앞수표의 화폐유사적 기능은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자기앞수표는 발행은행이 발행의뢰인으로부터 그 수표의 액면금액에 해당하는 자금을 제공받는 등의 방법으로 지급자금을 확보하고 발행하게 된다.7) 따라서 자기앞수표의 소지인은 발행인의 예금부족으로 인한 지급거절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발행은행으로서도 수표자금을 종국적으로 자신에게 귀속시킬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발행의뢰인 등으로부터 도난이나 분실 등을 이유로 하는 사고계가 제출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시기간의 경과 후에 제시된 자기앞수표라고 하더라도 은행이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된다. 또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후에도 이득상환청구권이라는 지명채권이 전전유통하여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자기앞수표의 양수인도 지급가능성에 대한 의심 없이 수표의 수령으로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8) 그 결과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의 자기앞수표는 일반수표와는 유통성의 측면에서 비교할 바 없는 유리한 결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거래현실을 수용하여, 대법원 1976. 1. 13. 선고 70다2462 전원합의체 판결9)은 과거의 견해10)를 변경하여, 일반수표와는 달리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자기앞수표의 양도에 있어서 그 수표의 양수인에게 수표금액의 지급수령권한과 이득상환청구권 및 발행인에 대한 통지권능을 부여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전합판결은 현재까지도 변경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득상환청구권이란 어음 혹은 수표상의 권리가 보전절차의 흠결 혹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 경우, 소지인이 어음 혹은 수표상의 채무자에 대하여 그가 받은 이익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어 제79조; 수 제63조).11) 통설과 판례에 따르면, 어음상 혹은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하고,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요구한다. 첫째, 유효한 어음상 혹은 수표상의 권리가 존재할 것. 둘째, 어음 혹은 수표상의 권리가 절차의 흠결 혹은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할 것. 셋째, 어음 혹은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하고 동시에 민법상의 구제방법도 없을 것. 넷째, 상환의무자가 이득을 하였을 것 등이다.12)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 요건의 구비는 그리 쉽지 않다. 아래에서는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되기 위한 요건이 어음이나 일반수표에 비하여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해석론의 전개방향에 대한 기초로 삼기로 한다.
수표가 표창하는 권리는 무엇인가? 어음과는 달리, 수표에는 주채무자가 없다. 따라서 수표의 지급인(은행)은 수표소지인에게 지급을 할 수 있는 실질적 자격을 가지고 있으나,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수표소지인도 지급인이 자신의 청구를 수용하여 수표금액 상당의 지급을 하면 이를 수령할 실질적 자격을 가지는 것에 불과하고, 지급인에 대하여 지급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수표상의 권리라고 함은 원칙적으로 발행인과 배서인 및 이들을 위한 보증인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의미하며,13) 예외적으로 지급보증인에 대한 수표금지급청구권(수 제55조 제1항)14)을 포함한다.15) 즉 소지인은 지급제시기간 내에 적법한 지급청구를 하여 거절당하였음을 증명한 때에 한하여, 발행인·배서인 기타 수표채무자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따름이다(수 제39조, 제40조). 나아가 수표의 기한후배서는 지명채권양도의 효력만 있다(수 제24조 제1항).
이러한 내용은 자기앞수표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본건 대상판결에서의 사실관계를 미루어 보건대, 해당 자기앞수표에서는 수표상의 권리인 상환청구권이 존재하였음을 별다른 다툼없이 인정할 수 있다.
수표소지인이 지급청구를 하지 않고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때 혹은 시효완성으로 수표상의 권리는 소멸한다.16) 그러나 수표상의 권리의 소멸만 인정하고 이를 방치하면, 지급인이 수표금액 상당의 경제적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형평의 원리상, 수표법은 소지인을 위한 특별한 구제방법으로 이득상환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발행 및 지급되는 수표는 지급제시기간이 10일이다(수 제29조 제1항).17) 어음과는 달리, 이 기간은 당사자가 임의로 연장하거나 감축할 수 없다.18)
수표법에서는 수표소지인이 지급제시 없이 그 기간을 경과한 경우, 수표발행인은 지급인에게 지급위탁의 취소를 할 수 있고(수 제32조 제1항), 수표소지인은 전자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상실한다(수 제39조)고 규정한다.19) 그러나 이 기간의 경과 후라도 지급위탁의 취소가 없는 때에는 발행인의 계산으로 지급할 수 있으며(수 제32조 제2항), 지급인이 임의로 지급하면 소지인은 이를 수령할 지급수령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규정은 절대적·최종적 책임자가 없는 수표의 특성과 거래현실을 고려하여, 수표소지인의 불리한 입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표법이 특히 배려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자기앞수표에서의 지급제시기간의 의미도 어음이나 일반수표와 동일하게 해석하여야만 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는 이유는 추후 살펴볼 본건 대상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다 합리적인 해석론을 제시하기 위하여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반론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첫째, 자기앞수표의 법적 근거는 “수표는 발행인 자신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할 수 있다”라는 규정(수 제6조 제3항)이 유일하다.20) 그 결과 일반수표와 달리, 발행인과 지급인간의 자금관계라는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자기앞수표는 발행의뢰인이 수표발행인인 은행에 대하여 현금을 제공하거나 발행의뢰인의 예금계좌에서 일정 금액을 차감하여 발행된다. 통설과 판례는 이러한 자기앞수표 발행의 법적 성질을 매매 또는 이에 준하는 관계로 보고 있다.21) 그 결과 수표 발행 이후 발행의뢰인은 예치된 지급자금에 대하여 수표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권리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이미 발행된 자기앞수표에 대하여 일반수표와 같이 지급제시기간에 대한 법적 규제를 엄격하게 준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둘째, 위의 법적 성질에 비추어,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더라도 발행인과 지급인이 동일인인 자기앞수표의 특성상 지급위탁의 취소를 인정하기 어렵다.22) 따라서 혹시라도 자기앞수표의 발행에 있어서 발행의뢰인이 자금제공자로서 지급인과의 사이에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계약상의 문제이지 수표법상의 문제는 아니다.23)
셋째, 지급제시기간의 기산은 수표면상에 기재된 발행일자를 기준으로 한다(수 제29조 제4항). 따라서 수표법상 선일자수표도 유효하다. 수표행위는 문언성과 추상성을 가지므로, 문언의 실질적인 내용과 형식이 다르더라도 형식에 따라 그 효력을 인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일자수표는 지급제시기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24) 이러한 점은 자기앞수표를 포함한 수표의 지급제시기간이 절대적 준수사항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넷째, 자기앞수표와 일반수표의 현실적인 유통형태가 전혀 다르다. 자기앞수표는 지급자금의 부족으로 인한 부도의 우려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일반수표의 경우, 지급의 가능성 여부는 발행인 혹은 양도인의 신용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에도 자기앞수표처럼 양도된다는 관행을 인정할 수도 없다.25)
그러므로 지급제시기간의 경과라는 요건은 자기앞수표에 있어서는 큰 의미는 없으며, 거래안전 혹은 양수인의 보호를 위하여 탄력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인정된다고 본다.
구제수단의 부존재 여부는 수표소지인이 수표관계와 원인관계 중 어느 관계에 대하여 구제수단이 없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는 종래부터 ①이득상환청구를 하려는 상대방에 대한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한 것으로 족하다는 최광의설, ②청구의 상대방뿐만 아니라 모든 수표채무자에 대하여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하여야 한다는 광의설(다수설),26) ③수표소지인이 수표법상의 구제수단은 물론 민법상의 구제수단까지 없어야 한다는 협의설 등의 학설 대립이 있었다.27) 그러나 판례는 종래부터 일관하여 모든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되었을뿐만 아니라 민법상의 구제수단까지 소멸하는 경우에만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28) 이에 찬성하는 학자도 있다.29)
협의설 혹은 판례에 따르면, 어음이나 일반수표는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할 여지가 극히 희박하게 된다. 이는 어음과 일반수표는 대부분 ‘지급을 위해서’ 교부되고, 원인관계상의 채권이 존재하는 한 이득상환청구권은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어음 혹은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한 후 원인채권까지 소멸하더라도 그 결과는 동일하다.30) 그러나 자기앞수표의 발행을 매매 또는 이와 유사한 관계라고 보는 통설과 판례의 입장31)에서는 당연히 ‘지급에 갈음하여’ 수표가 교부되므로, 구제수단의 부존재가 용이하게 추정된다.32) 따라서 자기앞수표의 경우 위의 학설대립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앞수표가 경우에는 수표상이든 원인관계이든 다른 구제수단이 존재한다고 하기 어려우므로, 어음 혹은 일반수표와 비교하여 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을 용이하게 인정할 수 있다.
채무자의 이득이란 채무자가 수표상의 권리의 소멸로 인하여 수표상의 채무를 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관계에서 채무자가 현실로 받은 이익을 가리킨다.33) 따라서 일반수표가 ‘지급을 위하여’ 교부된 경우에는 원인채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을 인정하기 어렵다. 판례가 요구하는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하고 구제수단의 부존재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34) 또한 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원인채권이 먼저 시효소멸하고 그 후에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하더라도, 법리상 채무자는 그로 인하여 이득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되지 않는다.35)
자기앞수표의 경우, 실무상 은행이 발행의뢰인으로부터 수표금액과 동액의 현금을 받거나 의뢰인의 예금에서 수표상당 금액을 인출하여 은행의 별단예금계정에 입금하고 이를 지급자금으로 하여 수표를 발행한다. 이후 지급제시기간의 전후를 불문하고 사고신고가 있는 경우에는 일단 수표를 부도처리하고, 소송 등을 통하여 정당한 권리자가 확정되면 그에게 지급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 자금관계가 적법히 해제되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 이상, 지급 완료 전에는 은행이 위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득이 존재한다고 추정한다.36)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에 있어서 이 요건 역시 어음이나 일반수표보다는 훨씬 용이함을 알 수 있다.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시기는 수표상의 권리의 소멸시기와 일치하며, 이에 관하여는 정지조건설과 해제조건설이 대립하고 있다.37) ①정지조건설은 수표상의 권리는 지급제시기간의 경과로 당연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 경과 후에 수표소지인의 지급제시에 대하여 지급거절이 있거나 수표발행인이 지급위탁을 취소한 때에 소멸되고, 이때에 비로소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한다38)고 본다. 그러나 ②해제조건설은 수표상의 권리는 지급제시기간이 경과한 때에 확정적으로 소멸하고, 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요건을 충족하는 한 이와 동시에 동 권리가 발생한다고 본다. 지급인인 은행이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에도 지급위탁의 취소가 있을 때까지 유효한 지급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권한이지 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설이 통설과 판례39)의 입장이다.
정지조건설에 따르면, 은행의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라도 지급거절이 있기 전까지는 당해 수표는 배서 혹은 교부에 의하여 유효하게 양도될 수 있다. 은행의 지급거절이 있으면, 소지인은 비로소 이득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40) 그러나 지급인의 임의지급 가능성 때문에 수표상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논리는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된다.41) 해제조건설에 따르면, 지급제시기간의 경과 시점에 바로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한다. 따라서 그 후에 수표를 취득한 자는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절차에 따른 양수가 있어야 이득상환청구권의 취득과 행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급제시기간의 경과 후에 수표를 취득한 소지인이 언제부터 이득상환청구권자가 되는가에 대하여 위의 발생시기와 관련되어 학설상 다툼이 있다. 정지조건설에 따르면, 은행로부터 지급거절을 당한 때의 소지인이 이득상환청구권자가 되고, 이 설을 따르는 학자도 있다.42) 해제조건설에 따르면, 지급제시기간이 경과한 때의 소지인이 이득상환청구권의 최초 취득자가 된다. 그 자로부터 정당하게 수표를 교부받은 자는 이미 발생된 이득상환청구권을 양수하게 되며, 다만 양도방식이 문제될 뿐이다. 대법원 판례도 그러하다.43)
자기앞수표의 경우, 수표법상의 명문규정과 더불어, 지급제시기간의 경과 여부를 묻지 않고 양도되는 실제의 활용상황을 전제로 하면 해제조건설이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44) 따라서 동설에 따르면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절차의 준수 여부가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된다. 이에 관하여는 후술한다.
Ⅳ.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 압류
이득상환청구권의 법적 성질은 동 청구권의 행사방법, 양도방법, 입증책임의 소재, 선의취득의 인정 여부, 소멸시효기간, 인적 항변의 절단 여부 등에 대한 결론을 달리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종래부터 학설은 특수한 지명채권설과 변형물설(혹은 잔존물설)이 대립하고 있었고,45) 지명채권설이 절대적인 다수설의 위치에 있다.46) 판례는 처음부터 지명채권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47) 따라서 지명채권설에 따르면,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를 위해서는 민법상의 지명채권의 양도방법에 따라야 하고, 채무자에 대한 통지 또는 승낙이 있어야 채무자 및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으며, 증권의 교부는 요하지 않는다고 보게 된다.48) 그러나 변형물설에 따르면, 동 권리의 양도는 어음 혹은 수표의 교부에 의하고, 지명채권 양도의 대항요건은 필요없다고 보게 된다.49)
그러나 자기앞수표의 거래현실을 보면,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여 양도되는 경우라도 상환의무자(은행)에게 통지 혹은 승낙을 받지 않고 양도·양수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 결과 지명채권설에 의한 법리를 수정없이 적용하면, 수표소지인은 대항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급청구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은행은 그 수표금액만큼의 이득을 취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①자기앞수표의 발행의 법적 성질이 매매 또는 이와 유사한 관계라는 점, ②발행인과 지급인이 동일인이라는 점, ③이러한 점에 기인하여 지급위탁의 취소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④실제 거래에서도 발행의뢰인과 은행과의 자금관계가 단절되고, 발행의뢰인측의 사정50)에 의한 각종 법률관계에 따른 법률상의 문제점이 차단됨으로써 고도의 유통성과 신뢰성을 부여받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지명채권설의 일반 법리를 자기앞수표의 양도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무리가 있고, 그 개선책을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 결과 나타난 판례가 70다2462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이하에서 위의 전합판결의 취지를 살펴보면서, 본건 대상판결의 태도가 논리적으로 그리고 거래현실에 비추어 타당한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사건개요를 보면, S대 부속병원은 1969. 6. 16. 입원환자인 A로부터 피고 K은행 충무로지점이 1969. 5. 27.자로 발행한 액면 10만원의 자기앞수표를 치료비로 교부받았다. 동병원 출납공무원은 1969. 6. 18.에 한국은행 교환을 경유하여 피고 K은행 충무로지점에 제시하였으나, 사고계(또는 지급위탁의 취소)가 접수된 분실수표라는 이유로 지급이 거절되었다. 원고는 피고은행을 상대로 수표금지급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전합판결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다. 즉 은행 또는 기타 금융기관 발행의 자기앞수표는 제시기간 내는 물론 제시기간 후에도 발행은행에서 또는 그 외의 금용기관에서 쉽게 지급받을 수 있다는 거래상의 확신에 의해서 현금과 같이 널리 유통되고 있고, 또한 수표의 양도는 거래의 일반적인 인식으로서는 수표에 표시된 액면상당의 금원을 발행은행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권리가 수표상의 권리이던 또는 그렇지 않고 (어느 의미에서는) 동 권리의 변형물이라고 할 수 있는 동 권리의 소멸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상환청구권이던 간에 구별없이 또 이를 구별하려고도 않고 양도·양수한다는 거래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수표소지인이 수표법상의 보전절차를 취함이 없이 제시기간 도과 후에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된 수표를 양도하는 행위는 수표금액의 지급수령권한과 아울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표상의 권리의 소멸로 인해서 소지인에게 발생한 이득상환청구권까지도 이를 양도하는 동시에, 그에 수반해서 이득을 한 발행인인 은행에 대하여 소지인을 대신해서 그 양도에 관한 통지를 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고, 위 양도받은 수표를 양수인이 다시 제3자에게 양도하는 행위는 이와 같이 양도받은 수표금액의 지급수령권 한 및 이득상환청구권을 위 소지인으로부터 수권된 이득을 한 채무자인 발행은행에 대한 통지의 권능이 수반된 상태로 이전하는 행위라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수표의 정당한 소지인은 발행은행에 대하여 그가 받은 이익의 한도에서 이득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또 채무자인 발행은행도 동 수표의 소지인에게 변제함으로써 유효하게 동 채무를 면하게 된다.52)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자기앞수표의 양도에 관하여, 전합판결의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이득상환청구권의 발생시기에 대하여 해제조건설을 취하여, 수표상의 권리소멸과 동시에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한다. ②자기앞수표의 교부에는 수표금수령권한의 양도를 수반한다고 본다. 이는 수표법 제32조 제2항에 의하여 취득하는 권한이므로,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는 구별되는 당연한 권한이다. ③양도인을 대신하여 수표양수인에게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에 대한 통지권능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수표양수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채무자인 은행에 대하여 언제 누구로부터 이득상환청구권을 양수하였다는 취지를 통지하고 지급청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53)
이러한 판시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통설·판례에 따르면, 자기앞수표의 발행행위를 매매 혹은 이와 유사한 관계로 본다. 통상 은행이 수표자금을 별단예금으로 예치하고 그 대가로 발행의뢰인에게 자기앞수표를 발행·교부하면, 그 이후로는 발행의뢰인은 은행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즉 발행의뢰인으로서의 양도인이 해당 수표관계에서 축출됨에 따라,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 수표를 양도할 때에도 별다른 지명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구비하지 않고 수표의 교부만으로 거래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전합판결은 이러한 관행을 수용하기 위하여, 양수인에게 채무자인 은행에 대한 통지를 실행하여 대항요건을 구비할 권능을 부여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급인인 은행에 예치된 금액에 대해서는 자기앞수표의 양수인만이 수령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54) 그러므로 전합판결은 자기앞수표의 발행의 법적 성질과 거래 관행을 고려하여, 자기앞수표에 한정하여 특별한 양도방식을 인정하였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득상환청구권은 일반적인 지명채권과는 성질상 다소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즉 ①채권자가 미리 특정되어 있는 일반적인 지명채권과는 달리,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에서는 채무자가 수표를 제시받기 전에 권리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채권양도의 사실을 모르고 양도인에게 변제할 위험이 있는 일반적인 지명채권과는 달리, 수표가 제시되는 이득상환청구권의 경우에는 이중변제의 위험이 거의 없다. 이득상환의무자인 은행이 수표나 제권판결을 소지하지 않은 자에게 임의로 지급한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②은행이 악의나 과실없이 수표의 소지인에게 지급한 경우, 소지인이 무권리자라고 하더라도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민법 제470조)로 보호받을 수 있다.55) 그러므로 수표의 교부만으로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 함께 양수인에게 양도통지라는 대항요건을 대신 행사할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명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특히 판시 내용 중에는 ‘그렇지 않고 (어느 의미에서는) 동 권리의 변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득상환청구권’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전합판결이 이득상환청구권의 법적 성질을 잔존물설(변형물설)을 취한 것은 아닌가라는 추론도 가질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56) 물론 전합판결의 전체적 취지를 살펴보면, 당해 이득상환청구권이 지명채권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득상환청구권이 수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본다. 그러나 전합판결이 자기앞수표에 한정하여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를 수표의 교부만으로 가능하다는 실질적 결과를 이룩해 놓았다는 점57)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 취지를 수용한다면, 지급제시기간의 경과 후 자기앞수표의 양도로 인하여 이득상환청구권과 양도통지권능이 양수인에게 귀속되고, 동 권리를 다른 제3자에게 이중양도를 할 수 없다. 반대론자의 주장처럼,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의 자기앞수표의 양도에 따른 수표소지인의 보호라는 주제를 수표법적 해결이 아닌 거래당사자의 법률행위의 해석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비판도 일리는 있다.58)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하여 자기앞수표의 현금대체성을 실현해 나가는 거래관행도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인정받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위의 전합판결은 또 하나의 의미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대상판결이 제시하는 결론을 적용하기 어려운 사정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표상 권리의 소멸로 인하여 이득상환청구권을 취득할 수 있는 사람은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할 당시의 정당한 소지인인 양도인과 양수인이다.59)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란 제시기간의 경과 당시의 수표소지인이 정당한 소지인이라고 볼 수 없어서,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 함께 양도통지권능의 부여를 인정할 수 없는 사유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에 소지인이 양도통지와 함께 지급청구를 하였으나 지급인이 거절한 경우를 의미하고, 이때 비로소 이득상환청구권의 정당한 소지 여부가 문제된다.60) 지급인의 지급거절사유는 지급제시기간 경과 자체를 이유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자기앞수표에서는 거의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로 발행의뢰인 등으로부터 도난·분실 등의 사고계가 제출되었음을 이유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61)
그렇다면 압류채권자라는 제3자가 존재하는 경우, 이 제3자의 압류통지가 이른바 ‘특별한 사정’에 해당될 수 있는가? 이를 긍정한다면, 양도인은 제3자의 권리주장에 대비하여 대항요건을 구비하여 양도하였어야 한다. 따라서 지급인이 대항요건을 구비하지 않은 수표소지인의 지급청구를 거절하지 않고 지급하였다면, 정당한 이득상환청구권자가 아닌 자에게 지급한 것이 되어 이중변제의 위험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전합판결의 취지는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이득상환청구권자와 압류채권자의 관계로는 세가지를 예상할 수 있다. 즉 ①발행의뢰인이 자기앞수표를 점유한 상태에서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경우, ②지급제시기간 내에 수표의 양도가 있었고, 양수인이 점유한 상태에서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경우, ③지급제시기간의 경과 후 수표를 양도한 경우 등이다. ①의 경우는 대항요건의 문제와 무관하다. ②와 ③의 경우, 일반수표라면 대항요건의 구비 여부가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전합판결이 양수인에게 양도통지권능을 부여한 취지는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여 자기앞수표의 교부를 받은 양수인이 이득상환청구권의 유일한 권리자임을 인정하려는 의미이다. 자기앞수표의 교부로 인하여 당사자간의 채무의 본지에 따른 이행이 제공되었으므로, 기존채무는 소멸하기 때문이다.62)
따라서 논리적으로 본건의 이득상환청구권은 양도인의 채권자에 의한 압류가 허용될 채권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 자기앞수표가 양도된 사례인 경우, ‘특별한 사정’의 범위에는 압류채권자의 압류통지와 같은 것은 포함시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양도인과 압류채권자의 관계는 그들만의 독립된 관계인 것이고, 자기앞수표의 양도과정에서의 양수인과 연결될 사정은 아니라고 해석하여야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전합판결이 종래의 입장을 과감하게 버리게 된 배경에는 자기앞수표 발행의 법적 성질이 매매로 파악되는 점, 이러한 수표가 양도된 이상 양도인은 더 이상 수표관계에 개입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위의 전합판결 이후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판례들이 등장하였다. 즉 ①78다568 판결은 “이득상환청구권이 있는 수표소지인이라 함은 그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할 당시의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그 수표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자를 뜻하므로, 수표(자기앞수표)가 분실된 것임을 알고 있는 악의의 취득자로부터 지급제시기간이 경과한 후에 이를 취득한 제3자에게는 이득상환청구권이 없다”고 하고,63) ②81다167 판결은 “은행 또는 금융기관이 발행한 자기앞수표 소지인이 수표법상의 보전절차를 취함이 없이 제시기간을 도과하여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된 수표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수표상의 권리의 소멸로 인하여 소지인에게 발생한 이득상환청구권을 양도함과 동시에 그에 수반하여 이득을 한 발행인인 은행에 대하여 소지인을 대신하여 그 양도에 관한 통지를 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정당한 수표소지인이 수표를 양도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64) 한편 ③81다220 판결은 “제시기간의 도과로 인하여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된 이건 자기앞수표를 원고에게 원 판시와 같은 경위로 양도하였으므로, 이는 수표금액의 지급수령권한과 아울러 위 수표상의 권리의 소멸로 인하여 위 소지인에게 발생한 이득상환청구권까지 양도하는 동시에 피고은행에 대하여 위 소지인에 갈음하여 양도에 관한 통지를 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피고나 보조참가인이 이건 자기앞수표에 관하여 이와 다른 내용의 양도가 있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에 관한 주장·입증이 없는 이 사건에 있어서는 원고가 이건 수표를 피고은행에 지급제시함으로써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통지가 행하여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65) 나아가 ④83다40 판결은 “정당한 수표소지인이 수표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표상의 권리가 소멸할 당시의 정당한 소지인이 누구인지를 가려볼 자료가 없는 수표를 제시기간 경과 후에 양수한 자는 지명채권양도의 방법에 따른 절차를 밟음이 없는 한 이득상환청구권을 양도받았음을 발행인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하였다.66)
위의 후속판결들의 핵심쟁점은 앞의 전합판결의 판시내용을 전제로 하면서, 지급청구를 한 소지인이 정당한 소지인인가에 대한 입증 여부에 있다. 자기앞수표의 경우, 소지인의 입장에서는 절차의 흠결이나 시효의 완성 그리고 지급인이 수표액면 상당의 이득을 하였음은 자기앞수표 그 자체만으로 쉽게 입증된다. 반대로 채무자인 발행은행은 이득상환청구권의 주장자가 정당한 권리자가 아니라는 반대사실을 입증하여야 한다.67) 나아가 수표의 소지를 상실한 자가 실질적인 권리자임을 주장하는 경우, 스스로 수표 상실 후의 수표의 유통과정을 제시하여 다른 선의취득자가 없음을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입증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급제시기간 경과 당시 정당한 소지인에 의하여 수표가 양도되었음이 입증된다면, 전합판결의 법리는 그대로 적용되어도 무방하다.
대상판결의 내용을 요약하면,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자기앞수표는 그 기간의 경과 당시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하고, 이는 지명채권이며, 이때의 수표는 증거증권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기앞수표의 교부 사실 자체만으로는 민법 제450조가 정한 채무자 이외의 3자에게 대항하기 위한 대항요건을 구비하였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수표를 교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득상환청구권은 여전히 양도인에게 귀속되어 있고, 그 결과 채무자인 발행은행은 양도인의 위 채권에 대한 압류채권자 등 양수인의 지위와 양립할 수 없는 법률상 지위를 취득한 사람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68)
그러므로 대상판결의 핵심쟁점은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자기앞수표의 양수인과 압류채권자 중 누구에게 이득상환청구권이 귀속되는가를 확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득상환청구권에 대한 압류채권자의 압류통지를 받은 은행에 대하여 지급청구를 한 양수인이 민법 제450조 제2항에 따라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구비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만일 이를 긍정한다면 압류채권자인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오히려 압류채권자의 주장이 이유 없고, 추심소송 제기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항요건의 구비 필요성 여부에 대한 논점이 명확하게 해결되고 나면, 본건에서와 같이 압류의 방식에 수표의 점유가 필요한가의 여부는 별다른 논란없이 해결되는 부차적인 논점이 된다.
첫째, 대상판결은 전합판결의 판시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이득상환청구권이 ‘지명채권’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에 대항요건의 구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합판결은 자기앞수표의 거래현실을 반영하여, 이득상환청구권의 법적 성질을 지명채권으로 인정하면서도, 동 권리의 양도에는 양도인의 대항요건 구비를 요구하지 않고, 이를 대신하여 양수인에게 ‘양도통지권능’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양수인의 채무자인 은행에 대한 양도통지가 행사되기 전이지만, 그 권능의 보유상태에서도 양수인을 유일한 정당한 채권자로 간주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전합판결은 존재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69) 따라서 본건 대상판결도 ‘지명채권’이 아니라 바로 이 ‘양도통지권능’에 초점을 맞추어 사안을 검토하였어야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이 부분이 법리적으로 타당한가에 대하여는 전합판결 당시에도 찬반론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음은 이미 기술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법리를 뛰어넘어 자기앞수표의 거래현실과 양수인의 보호를 위한 고육책으로 채택된 것이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즉 법적 정합성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행위의 해석 문제임을 고려하였어야 한다.
둘째, 민법 제450조가 규정하는 대항요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양수인이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을 주장하는 전제로서의 채무자에 대한 대항요건이고, 다른 하나는 채권자의 지위를 다투는 자 사이의 우열을 결정하는 의미를 가지는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이다.70) ‘제3자에 대항한다’는 것은 동일한 채권을 이중으로 양수하거나 채권양도와 압류명령이 경합하는 경우에 이들 사이에서 우열을 결정하는 표준이라는 의미이다.71)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자기앞수표라고 하여도,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는 수표증권의 교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득상환청구권이 지명채권이라고 하더라도 이중양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자기앞수표에서의 이득상환청구권과의 양도와 압류명령의 경합은 가능한가? 위의 경합을 인정하려면, 제3자(압류채권자)가 이득상환청구권에 대한 양립할 수 없는 지위를 취득한 자 또는 동 권리에 대한 법률상의 이익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72)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지급제시기간 경과하여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할 당시의 발행의뢰인 혹은 양도인은 이미 해당 수표관계에서는 국외자이다. 통설과 판례는 자기앞수표의 발행은 매매라고 보고 있으므로, 수표발행 이후 지급제시기간 내의 발행의뢰인 혹은 양도인은 법리적으로 수표의 거래관계에서 제외된다. 그 후 지급제시기간의 경과로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한 이상, 그들에게 이득상환청구권과 관련한 어떤 법률적 지위를 인정하기 곤란하다. 그러므로 적어도 발행의뢰인이 해당 자기앞수표를 발행받아서 양도하지 않고 점유하고 있다가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였다면, 이 경우는 양수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므로 대항요건과 상관없이 세무당국의 압류채권자의 지위를 인정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여 수표를 양도하였다면, 세무당국이 양도인(체납자)에게 가지는 국세채권과 양수인이 가지는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은 경합을 인정할 수 없는 전혀 별개의 채권이라고 본다. 특히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는 자기앞수표의 교부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행이며, 자기앞수표는 소지인출급식으로 발행되므로 발행일자만 기재될 뿐 배서일자 등도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양도인 혹은 양수인에게 확정일자 있는 증서에 의한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의 구비를 요구하는 대상판결의 판시내용은 수용하기 어렵다.
셋째, 대상판결에 따르면,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한 수표를 양수인에게 교부하면, 그 수표는 일종의 증거증권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는 양수인인 현재의 수표소지인이 그 수표로 인하여 발생한 이득상환청구권이 귀속되어야 할 정당한 소지인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서류이다. 만일 도난·분실·피사취 등의 사유로 사고계가 제출되어 은행이 지급거절을 한다면, 양수인으로서는 수표의 제시를 통하여 요건사실을 입증하면 족하고, 양수인이 정당한 소지인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자가 그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73)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인은 이미 은행으로부터 매수한 수표를 양도하고 해당 수표관계로부터 벗어나 버린 국외자라고 할 수 있다.74) 그렇다면 지급인(은행)이 자기앞수표를 발행할 당시, 발행의뢰인과 은행 사이에 혹시 장래에 발생할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 관련하여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으로서의 묵시적 승낙이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해석해도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와 관련한 채무자인 은행이나 양도인인 발행의뢰인에게 전혀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에서 양도인 혹은 양수인75)이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를 하면서 대항요건을 구비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양도인에게 여전히 이득상환청구권이 귀속한 상태이고, 그 결과 채무자인 은행은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법리적 논리의 구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전합판결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된다.
넷째, 대상판결에 따르면,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 자기앞수표의 양도에 있어서도 양도인에 의한 대항요건의 구비가 필요하다. 그 결과 양도의 회수만큼 복수의 대항요건을 구비할 것이 요구된다. 이는 거래관행과는 전혀 다르게, 양수인에게 자기앞수표의 수령 당시 양도인의 채권자를 항상 고려하여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하여, 자기앞수표의 거래안전을 매우 위협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아가 수표의 교부만으로 이루어지는 자기앞수표에 관한 실제의 유통과정을 판결이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향후 거래당사자들이 자기앞수표의 이용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고, 종국에는 국내 결제시장 자체를 교란시킬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 전합판결 이후 이 판결을 변경하는 다른 전원합의체 판결이 등장한 바 없다. 또한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에 관련된 법리의 해결을 위한 수표법의 개정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까지도 위 전합판결의 취지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건 대상판결이 전합판결의 판시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판결의 자세는 아니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세무당국이 구 국세징수법에 따른 체납처분을 위하여 압류를 하고자 하는 경우, 두가지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즉 우선적으로, 세무당국이 이득상환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는 정당한 채권자인가 하는 점이 선결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세무당국이 정당한 채권자로 확정되었다는 전제에서, 세무당국의 압류방식은 제3채무자에 대한 통지 혹은 유가증권의 점유 중 어느 것이 합법적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전자의 선결조건이 부정된다면, 후자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세무당국이 이득상환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는 정당한 채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급제시기간을 경과하여 양도된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이 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에게 그대로 귀속되어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양도인이 이득상환청구권의 귀속자라면 수표의 양도일자 및 대항요건의 구비와 무관하게, 국세기본법 제35조에 따라 국세는 일반 채권에 우선하여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전합판결의 논지를 수용한다면, 수표의 양수인이 양도통지권능을 가진 이득상환청구권자이다. 그 결과 양수인은 대항요건을 구비한 유일한 채권자의 지위에 서게 되어, 세무당국의 압류와 무관하게 지급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건 대상판결은 해당 양수인이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세무당국은 체납자를 대위하여 제3채무자인 은행에 대하여 정당한 채권자인 자신에게 수표금액 상당을 지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76)
그러나 앞에서 면밀하게 검토한 바와 같이, 전합판결이 변경된 바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 취지에 따라 이득상환청구권은 양수인에게 귀속된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건 대상판결은 전합판결 이전의 지명채권양도에 대한 일반론으로 회기하여 버렸다. 따라서 본고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대상판결의 태도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세무당국은 해당 이득상환청구권에 대한 이해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동 채권을 압류할 수 있는 정당한 채권자라고 하기 어렵다.
이 쟁점의 해결은 세무당국이 이득상환청구권에 대한 정당한 압류채권자임을 전제로 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본고의 입장에서는 세무당국은 정당한 압류채권자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이 쟁점을 다툴 필요가 없다. 다만 본건 대상판결이 세무당국의 체납처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간단히 그 내용을 언급해 두기로 한다.
현행 국세징수법(법률 제20615호; 2024. 12. 31. 개정, 2025. 1. 1. 시행; 대상판결에서의 인용조문과 다름) 제48조 제1항은 “동산 또는 유가증권의 압류는 세무공무원이 점유함으로써 하고, 압류의 효력은 세무공무원이 점유한 때에 발생한다”고 하고, 제51조에서는 “①관할 세무서장은 채권을 압류하려는 경우 그 뜻을 제3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②관할 세무서장은 제1항에 따라 채권을 압류한 경우 그 사실을 체납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의 판시내용에 따라 이득상환청구권을 압류하려는 경우, 학설에 따라 적용 조문이 달라질 수 있다. 통설·판례인 지명채권설을 취하는 경우, 동법 제51조 제1항에 따라 세무당국은 제3채무자인 발행은행에 통지함으로써 압류할 수 있고, 동조 제2항에 따라 체납자에게 통지함으로써 세무당국은 이에 대한 추심권능을 취득하게 된다.77) 잔존물설(혹은 변형물설)을 취하지 않는 이상, 원초적으로 지급제시기간이 경과한 자기앞수표가 이득상환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V. 나가는 글
법의 근본이념은 정의의 실현에 있으며, 이를 통하여 선의인 자를 보호하고자 한다. 만일 해당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법 혹은 규정이 없다면, 판결을 통한 해석론으로 그 취지를 실현하고자 하며,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판결에는 입법선도적 기능이 있다고 회자되는 것이다. 자기앞수표가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에도 전전유통되는 것은 원래 수표법이 예정하고 있는 것이며(수 제32조 참조), 현실에서는 거래당사자들도 선의로 이 거래관계에 참여하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좌수표 등 일반수표와 달리, 자기앞수표는 수표금액 상당이 발행은행에 별단예금으로 예치된 상태에서 매매의 성격을 가지고 발행된다. 또한 할인이나 융통어음과 같은 신용기능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지급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이 자기앞수표가 어음교환업무에 있어서 거래정지처분의 대상에서 제외78)되는 동시에 부정수표단속법의 적용대상도 되지 않는 공신력79)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록 수표법상의 법리와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수표와는 다른 차원에서 자기앞수표의 거래관계를 법률관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전합판결이 자기앞수표의 거래관행을 깊이 성찰하여,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의 자기앞수표의 양도 그 자체에 양수인에게 이득상환청구권과 양도통지권능을 부여한 것은 대법원판결이 입법선도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방증에 다름아니다. 또한 그러한 해석으로 위험을 입을 이해관계자도 보이지 않으므로, 양도행위의 의사를 분석하여 법률적으로 구성하는 일은 오히려 대법원의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본다.80)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그 취지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향후 이와 같은 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급제시기간 경과 후 자기앞수표의 이득상환청구권의 양도에 관하여 수표법상의 관련규정을 개정·보완 한다든가,81) 법의 개정 이전이라도 실무상 자기앞수표의 정당한 소지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의 구비를 생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