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오늘날 민사소송은 절차적 정의의 실현과 증거 중심주의 원칙을 구현하는 사법적 메커니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1) 소송 당사자는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다양한 유형의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이 중 문서 및 기록은 다투는 쟁점을 증명하기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기능한다. 특히 민사소송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양상과 정보의 전자화는 기록 관리와 보존의 문제를 실무적으로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2)
민사소송에서 사용되는 기록은 단순한 업무문서를 넘어서 법적 효력을 지니는 증거자료로 이용된다. 문서의 진본성(authenticity), 무결성(integrity), 접근성(accessibility)은 모두 기록의 보존 상태와 생성, 유지, 폐기 과정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3) 이러한 속성은 재판에서 해당 문서가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4)
기록관리(Record Management)는 단지 행정기능이나 문서보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절차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지탱하는 구조적 장치이자 법적 의무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5) 전자소송제도의 도입 및 확대, IT 기반의 전자문서유통시스템 도입 등은 소송절차와 기록관리 간의 통합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편의성 제고를 넘어서 사법절차의 합리성 확보라는 관점에서도 논의되어야 한다.
이에 본 논문은 민사소송 절차에서 기록의 기능과 법적 지위를 분석하고, 미국의 기록관리 기준 및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기록보존 정책의 실효성을 고찰하며, 궁극적으로 민사소송의 실질적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기록관리의 개념 및 법적 의의
기록관리(Records Management)는 조직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생성되거나 수집된 문서, 데이터, 파일 등 모든 형태의 정보를 구조화하여 체계적으로 분류, 보존, 평가 및 폐기하는 일련의 절차를 의미한다.6) 기록관리의 궁극적 목적은 조직의 행위에 대한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있으며, 법적 분쟁이나 소송에 대비한 사후검증 기능 또한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7)
기록은 중요한 정보 자산이자 법적 증거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특히 민사소송에 있어 기록은 당사자의 주장과 방어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수단이 되며, 그 진본성(authenticity), 무결성(integrity), 신뢰성(reliability), 이용가능성(usability)은 기록이 생성된 시점부터 보존·폐기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수명주기(life cycle) 관리에 의해 보장된다.8) 이러한 관리가 결여된 기록은 소송과정에서 증거능력을 상실하거나, 오히려 상대방의 주장을 강화하는 불리한 자료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환경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기록관리의 방식과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전통적인 종이문서 기반의 기록관리에서는 물리적 보존 상태와 관리자의 통제가 중요시되었지만, 전자기록의 경우 복제와 변경이 용이하다는 특성으로 인해 그 진본성과 위변조 가능성의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다. 이에 따라 국제표준인 ISO 15489-1:2016에서는 전자기록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원칙으로 진본성(authenticity), 무결성(integrity), 신뢰성(reliability), 이용가능성(usability)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기록관리의 전 과정에서 법적인 효력 확보를 위한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9)
우리나라의 관련 법제도 역시 이러한 국제기준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호는 ‘기록물’을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行政博物)"로 정의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에는 기록물의 생산·분류·정리·등록·이관·수집·평가·보존·폐기까지를 포함하는 체계적 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법 제3조 제3호). 또한 같은 법 제19조는 일정기준 이상의 기록물에 대하여 영구보존 또는 이중보존의 의무(법 제21조)를 명시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행정기록이 일정 기간 이후에도 법적·행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전자문서의 경우,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4조에서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효력이 부인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전자문서도 종이문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디지털 환경에서의 기록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자기록의 위·변조 가능성과 진본성 등 증명의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디지털 서명, 메타데이터 관리, 감사이력(audit trail)10)의 확보 등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11) 특히 소송상 분쟁이 발생한 이후 제출되는 전자기록에 대하여는 생성 시점의 정당성과 변경 이력의 무결성이 함께 입증되어야 하는 바, 이러한 요건은 단순히 문서 자체의 존재 유무를 떠나 기록관리 시스템의 운영 역량과 정책적인 기반을 토대로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록관리의 법적 의의는 단순한 행정 효율성의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소송에서 서증(書證)이라는 증거조사절차에 의하여 (전자)문서를 열람하고 거기에 기재된 의미와 내용을 증거자료로 삼는다.12) 이렇듯 기록은 민사소송절차에서 사실관계를 구성하는 기초자료로 기능하며, 법적 책임의 분배와 증명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만약 기록이 없다면 권리의 존재를 주장할 근거도, 그 이행을 증명할 방법도 없게 된다. 즉 기록은 법적 관계를 확인하고 보장하는 ‘증거의 틀’이자, 소송의 핵심 요소이다. 따라서 기록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통합 관리체계의 도입은 민사소송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실현하는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13)
Ⅲ. 민사소송절차에서 기록이 갖는 의의
본 장에서는 민사소송에서 당사자 간 제출되는 ‘증거자료’ 외에도, 소송절차 중 법원이 생성하거나 당사자가 형식적으로 작성·제출하는 문서들을 ‘소송기록’으로 정의하고, 그 절차적 기능 및 사건관리적 효용성 측면에서 별도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민사소송은 당사자 간의 권리·의무 관계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로서 법원이 증거를 기초로 사실을 확정하고 법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기록은 단순한 참고자료를 넘어 소송행위의 기초가 되며, 증명책임 분배와 쟁점 정리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14)
민사소송법은 여러 조항에서 문서를 제출하는 방식의 증거 제출과 진정 성립의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예컨대, 법 제355조는 문서를 증거로 제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으며, 법 제356조 내지 제358조에서는 문서가 진정한 것임을 증명하여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사자는 자신이 보유한 문서의 생성 경위 및 목적, 작성자, 관련성 여부, 보존상태 등을 통해 그 진정성과 신뢰성을 증명해야 한다.15)
소송은 일반적으로 원고의 소제기로 개시되며, 이후 피고의 답변서 제출, 변론준비, 본안심리 및 증거조사, 판결 선고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인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각 단계는 쟁점의 명확화, 증거의 제출, 법적 판단이라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기록은 각 단계마다 핵심적인 자료로 작용한다. 특히 민사소송에서 증명책임은 주장하는 자에게 있으므로 기록의 존재 유무는 권리의 실현 여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증거조사 단계에서 제출된 문서들은 본안심리의 방향을 결정짓는 기준점이 된다.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에서 전자문서에 대한 증거조사를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규칙 제9조는 소송절차상의 문서제출을 전자문서의 형태로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록의 분류 및 표준화 여부, 시간정보(Time stamp)16), 전자서명 유무 등은 문서의 신뢰성 확보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한다.
특히 영미의 증거개시절차(Discovery)는 민사소송에서 기록의 기능이 가장 적극적으로 발현되는 단계이다. 상대방이 보유한 정보를 요구하고 교환하며, 이때 제출된 기록은 사건의 쟁점과 직접 연결되므로, 그 관리수준이 소송전략의 핵심 요소가 된다.17) 미국의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약칭, FRCP) Rules 26~37은 전자기록(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ESI)의 식별·보존·제출에 대한 기준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으며, Rule 37(e)는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의 보존실패, 즉 고의적 삭제에 대해 불리한 추정을 허용하고 제재(sanctions)를 명시하고 있다.18) 이는 기록의 보존상태 여부가 실질적으로 소송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소송의 확대는 기록의 관리양식을 점점 전자기록 중심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기존의 종이문서 기반 시스템에서는 물리적인 원본의 존재가 진본성 확보의 근거였으나, 전자기록의 경우 해당 파일의 생성정보, 수정 이력, 접근권한 기록 등 부가적 정보(메타데이터)가 필수적으로 제출되어야 한다.19) 이는 단순히 제출된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넘어 문서가 소송상 정당한 증거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판단 요소로 기능한다.
더불어 기록은 단지 증거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소송절차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 등은 모두 소송절차의 핵심 요소이며, 이들 기록은 사건번호, 접수일시, 관련 증거자료와의 연결정보 등이 정리된 상태로 보관된다. 기록의 표준화된 분류체계는 다수의 사건이 병존하는 현대 민사소송에서 사건관리를 효율화하고, 오류를 줄이며, 사법처리의 신뢰성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일본의 경우에도 세계적인 기록관리 표준을 따르고 있으며, 민사소송법에 있어서 문서제출의무는 국제표준으로 공통적인 사항이고 이는 정보공개와 설명책임을 의미한다.20) 따라서 소송 리스크의 회피 차원에서 문서의 작성, 문서의 보존, 문서의 폐기·소거에 이르기까지 문서(기록)의 라이프 사이클 관리의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보존스케줄관리와 비밀문서관리의 구조를 충실하게 하는 데에 있다.21) 이는 기록이 단지 법정에서의 증거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소송절차 내에서 사실심리의 기초이자, 투명성 확보의 매개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기록은 단지 소송을 위한 증거가 아니라, 그 자체가 소송절차를 구성하는 실체로 기능하며, 당사자의 주장과 법원의 판단을 구체화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따라서 기록의 구성·분류·보존이 증거의 신뢰성과 진본성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며,22) 이는 곧 기록관리 정책이 민사소송절차를 운영하는 전략과 직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Ⅳ. 기록의 증거능력과 진본성 확보
민사소송절차에서 ‘증거자료’로서 제출되는 기록, 즉 기록이 민사소송에서 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해당 문서가 법적으로 요건을 충족하고 진본성(authenticity)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진본성’이란 문서가 특정 시점에 특정 주체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이후 무단으로 변경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23) 우리 민사소송법 제356조는 “사문서는 그것이 진정한 것임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 조항은 문서의 증거력 인정에 있어 ‘진정 성립’ 여부를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때 ‘진정성립’은 당해 문서가 당사자 또는 관계인에 의해 실제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 기재내용에 허위나 위조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4)
따라서 민사소송에서 기록이 실질적인 증거로 활용되려면 문서의 작성주체, 작성일시, 보존방식, 수정 이력 등 전반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요구된다. 그래서 민사소송법상 기록이 증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해당 문서가 정당한 작성권자에 의하여 진정하게 성립되고(형식적 증거력), 그 내용이 증명의 대상이 되는 사실에 어느 정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실질적 증거력).25) 그리고 민사소송법 제355조 제1항은 “법원에 문서를 제출하거나 보낼 때에는 원본, 정본 또는 인증이 있는 등본으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록의 진본성이 단지 기술적인 형식의 문제가 아닌, 전체적인 문서관리체계와 소송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종이문서의 경우 작성자의 서명이나 날인이 진본성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지만, 디지털 기록(전자문서)의 경우 디지털 환경에서는 물리적 원본 개념이 모호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메타데이터, 전자서명, 해시값, 기록보존 시스템의 감사이력(audit trail) 등이 진본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26) 이러한 기준은 국제기록관리표준 ISO 15489-1:2016 (Information and documentation — Records management)에서 핵심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27)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4조 제1항에서 “전자문서는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효력이 부인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전자문서도 종이문서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며, 동법 제4조의2는 전자문서가 서면으로 동일한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열람가능성”, “재현가능성”, “보존성”이 갖춰져야 하고, 또 동법 제5조에서는 작성자, 작성일시, 그 내용과 형태의 동일성 등 전자문서의 진본성을 요구하고 있다.28) 이는 문서의 형식이 전자적이라고 하여 그 효력이 부정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진본성의 확보가 필수조건임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법률상 진본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적인 조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해당 기록은 서면이나 보관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법원은 기록의 신뢰성과 생성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예컨대, 전자문서의 경우 서버의 로그파일, 전자서명 여부, 시간정보, 접근권한변경 이력 등이 제출되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문서의 진정성을 판단한다. 또한 증거로 제출된 문서에 대하여 상대방이 문서의 진정 성립을 부인하는 경우, 문서작성자를 증인으로 신청하거나 원본 대조를 요구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218조 및 제219조). 특히 최근에는 블록체인기술 기반의 문서검증 시스템이나,29) 문서저장 서버의 무결성 점검 시스템 등이 신뢰성 확보를 위한 보완 수단으로 도입되고 있다.
기록의 증거능력은 단지 소송절차 중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록이 법적으로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생성 초기부터 분류, 보존, 폐기까지의 전 과정이 관리·통제되고 있어야 하며, 이는 조직 내부의 기록관리 정책(Records Management Policy)을 통해 구현된다. 기록물에 대한 접근권한 제어, 변경이력 자동기록, 감사로그 보존 등은 사전적·예방적 차원의 진본성 확보 장치라 할 수 있다.30)
소송과 관련된 기록은 특히 그 중요성이 크다. 분쟁의 발생이 예견되는 시점부터는 모든 관련 기록에 대한 폐기를 중단하고, 자동 또는 수동적인 보존조치를 발동해야 하며, 이른바 '증거보존조치(legal hold)'31) 체계가 요구된다.32) 미국의 FRCP Rule 37(e)는 이와 관련하여 명확한 제재규정을 두고 있으며, 당사자가 고의적으로 기록을 삭제하거나 변경한 경우, 법원은 불리한 추정 또는 소송비용 부담 등의 다양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33) 이러한 제도는 기록이 소송절차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기록관리의 실패가 곧 소송상 패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기록의 증거능력은 법률적 요건의 충족뿐 아니라, 기록시스템의 설계 및 기록관리 정책에 따른 보존환경의 통제 여부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보장된다. 이는 기록관리의 기술적·제도적 완결성이 곧 법적 효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Ⅴ. 민사소송에서 기록보존 제도의 현황과 한계
기록보존은 민사소송 대응의 핵심이며, 사전 준비와 사후 입증가능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기록은 분쟁의 발생 이전부터 수년간 생성·보존되는 정보를 포함하며, 해당 기록이 정확히 존재하고 온전히 보관되어 있어야만 법적 증거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록보존 제도는 공공부문 중심으로 정비되어 있으며,34) 사법부와 민간 영역에서의 실질적 연계 및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현행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기록물의 생산, 분류, 평가, 활용 및 보존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기관 및 민간 기업은 이 법의 직접 적용대상이 아니며, 그에 따라 민사소송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문서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기준은 사실상 각각의 내부규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규범의 이원화는 기록물 관리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특히 2010년도부터 전자소송 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관련 기록은 대부분 전자문서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관리 정책은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규칙」 제23조에 간략히 규정되어 있을 뿐,35) 대법원 예규에서도 기록물의 보존포맷 표준, 변환이력 기록, 해시값 관리 등 기술적 기준이나 메타데이터 보존체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미비하다.36)
실제 기록관리 및 보존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로서, 2000년 8월, 미국의 반도체 설계업체인 램버스(Rambus)는 자사의 특허기술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기업인 하이닉스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하이닉스는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상 증거개시절차(Discovery)를 활용하여, 램버스가 특허를 출원하던 시기에 작성되거나 송수신된 이메일, 보고서 등 일체의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램버스 측은 이와 같은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일부를 누락할 경우 소송에서 불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해당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하이닉스는 Discovery를 통해 제공받은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던 중, 특정 기간 동안 생성된 문서들이 누락되었음을 확인하고, 램버스가 소송에서 불리할 수 있는 증거를 고의로 은닉하거나 파기하였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 결과, 2011년 5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램버스가 소송에 불리한 증거를 삭제하고 폐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보아, 해당 사건을 파기 환송하였고, 최종적으로 하이닉스가 승소하는 판결이 내려졌다.37)
이러한 판결 결과가 사회적으로 알려지자, 그때부터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증거개시절차(Discovery)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6년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의 개정을 통해 전자정보를 포함한, 이른바 전자적 증거개시절차(e-Discovery)가 도입되면서 관련 제도에 대한 주목도 또한 높아지게 되었다.38)
그러나 이러한 제도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국내 기업들은 실제 국제 분쟁에 직면하였을 때 관련 전자증거자료의 확보 및 보존 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민사소송이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e-Discovery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부재하여 현지 재판과정에서 불이익을 입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고되고 있다.39)
이와 같이 민간기업의 경우,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등은 기록보존을 위한 표준화된 시스템이나 내부지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분쟁발생 시 필요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진본성 입증이 곤란하여 법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인프라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기록의 법적 가치와 증거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다.
결국 우리나라의 기록보존 제도는 공공영역에서의 제도적 법률은 존재하나, 민사소송 실무와의 연계성, 민간의 참여 기반, 기술표준의 구체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기록을 단지 행정의 부산물이 아닌, 법적 행위의 구성요소로 이해하는 시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재의 기록보존 제도는 법적 효력의 불확실성과 소송 대응의 취약성이라는 문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향후에는 사법기관과 기록기관 간의 협업 체계를 기반으로 통일된 기술표준, 장기보존 시스템, 실무 교육체계 등을 병행하여 정비할 필요가 있다.
Ⅵ. 미국의 사례를 통한 시사점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기록관리 시스템을 법제화하고 전자기록을 중심으로 한 통합정보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민사소송절차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Federal Records Act」(44 U.S.C. Chapter 31 - RECORDS MANAGEMENT BY FEDERAL AGENCIES)를 중심으로 연방정부의 모든 문서의 생산과 보존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법률은 문서가 향후 법적 분쟁에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기록의 생성 및 관리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40)41)
또한 연방기록관(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이하 ‘NARA’)은 이러한 법률의 실효적인 집행기관으로서 연방기관의 기록관리 정책수립과 전자기록의 보존 및 이관기준을 제정하고 있으며, 2008년도부터는 Electronic Records Archives (ERA) 프로그램 시스템을 이용하여 전자기록에 대한 요구사항을 명확히 하고 있다.42) 대표적으로 NARA는 이메일 관리를 위한 General Records Schedule (GRS) 6.1. Capstone Approach43)를 통해 고위 공직자의 이메일 전체를 자동보존 대상으로 규정하고, 민사소송이나 사법절차에서 이를 요청할 경우 즉시 접근 가능한 시스템이 되도록 권장하고 있다.44)
미국의 민사소송절차는 이러한 기록관리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운영된다. 특히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연방 민사소송규칙)는 사전절차(Discovery)를 소송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중 제26조(f) 및 제34조는 전자기록(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ESI)에 대한 당사자의 정보공개와 제출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45) 이에 따라 각 기관이나 기업은 잠재적 소송에 대비하여 ‘litigation hold’를 포함한 사전(事前)적인 기록보존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는 일반 행정문서의 관리와는 구분되는 특수한 기록관리 정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46)
이와 같은 사전조치의 법적인 필요성은 미국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의 판례인 Zubulake v. UBS Warburg LLC 사건에서 명확히 확인된 바 있으며, 이 판결은 소송을 예견할 수 있는 시점부터 관련 전자기록을 적극적으로 보존하지 않은 경우 당사자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을 확립하였다.47) 이러한 판례는 전자기록의 보존의무를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실질적인 법적 의무로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다.
결국 미국의 기록관리 시스템은 단순히 행정의 효율성을 위한 수단을 넘어 민사소송에서의 사실인정과 증거능력 확보를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기술적 연계구조는 기록관리와 소송절차가 상호의존적이며, 이를 통합적으로 설계할 때 정보 거버넌스와 사법정의가 동시에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Ⅶ. 개선방안
민사소송에서의 기록관리 및 보존 문제는 단지 기술적·운영상의 개선을 넘어서 제도적 통합과 법적 정합성의 확보가 핵심 과제이다. 특히 전자소송 환경 및 국제화된 민사절차의 확대 속에서 기록의 체계적인 보존과 진본성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국내 제도의 구조적 한계로는 사법정보시스템과 기록정보시스템의 단절, 소송기록과 일반기록간 이원화, 그리고 소송절차에서 기록관리 및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재 등에서 비롯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제도적인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자)기록이 민사소송에서 유효한 증거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록이 생성된 시점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이 검증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조직 내 ‘기록보존 정책’이 사전에 수립되어야 한다. 특히 소송이 예상되는 경우, 자동 삭제나 정기적인 폐기가 중단되는 ‘증거자료보존 조치(litigation hold)’ 체계가 필수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민사소송규칙(FRCP) 제37조(e)에 따라 의도적으로 전자기록을 삭제한 당사자에게 불리한 추정을 허용하고, 보존의무 위반에 따른 제재도 명문화되어 있다.48)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입법적 조치가 요구된다. 첫째, 소송 리스크가 식별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보존명령이 발동되는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시점은 통상적으로 법무담당 부서, 준법감시인 또는 외부 법률자문 상담을 통해 특정 사건과 관련된 법적 절차개시 가능성을 인지한 때로 정의할 수 있다. 둘째, 보존의 대상은 전자기록(ESI)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서로서, 이메일, 내부 보고서, 회의록, 로그파일, 서버기록, 클라우드 저장정보 등 폭넓게 설정되어야 한다. 셋째, 내부적으로는 다음의 실질적인 절차가 수반되어야 한다: I) 보존 대상 문서의 목록화, ⅱ) 담당자 지정 및 관련자에 대한 통지(legal hold notice), ⅲ) 자동 삭제기능 중단 및 접근권한 제한, ⅳ) 보존이행 여부에 대한 감사 및 기록(log) 유지. 넷째, 위반시 제재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는 요구된 정보가 누락, 훼손, 은폐 등으로 판명될 경우 법원에서의 불리한 추정(adverse inference)에 의한 손해배상명령, 소송비용의 전가, 제재명령(sanction)의 가능성까지 염두해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과의 충돌 가능성을 고려하여 보존조치의 범위와 기간을 제한하고, 필요한 경우 데이터 마스킹49) 또는 접근통제 등의 보완조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법체계 내에서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조치들이 수반될 때, 증거자료보존정책(litigation hold policy)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실질적인 소송대응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민사소송의 (전자)기록은 법원내 전산시스템에 저장되며, 기록기관의 기록관리시스템(Record Management System, ‘RMS’)과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소송 관련 기록의 이관·보존·폐기 과정에서 메타데이터 손실, 파일변형, 접근기록 단절 등이 발생하며, 사후 재사용 또는 증거 제출시 불일치 문제가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과 기록관리기관 간 시스템의 기술적 연계와 법적 협력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문서식별번호 통합체계'를 도입하고, 전자소송기록과 기록관리시스템 간의 메타데이터를 연계할 수 있는 표준화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설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문서형식의 표준화(XML 기반의 통일형식), 기록생성 및 열람이력의 상호공유 시스템, 공동접근통제 모델 등 기술적 조치를 포함하는 연계 플랫폼이 요구된다.
법적으로는 사법부와 행정부 간의 정보거버넌스 협약체결을 통해 이관기준, 보존연한, 폐기조건 등에 대한 통일된 정책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기술표준은 국가기록원 주관 하에 정기적으로 갱신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기록의 생성에서부터 보존, 폐기까지 전주기를 아우르는 공공정보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으며, 민사소송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동시에 제고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연방민사소송규칙(FRCP)에 따르면, 증거개시절차(Discovery)는 소송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 인력, 비용이 소요되는 절차로 평가되며, 실제로 미국 내 대부분의 민사사건이 이 과정을 통해 해결될 만큼 핵심적인 소송절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e-Discovery는 종이문서와 달리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ESI’)에 대해 적용되며, 그 식별, 보존, 수집, 분석, 제출 등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e-Discovery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정보의 범위가 방대하고, 비정형 데이터(이메일, SNS, 로그기록 등)가 다수 포함된다. 둘째, 데이터의 위치가 다양한 저장매체 및 클라우드 환경에 분산되어 있어 수집에 기술적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증거채택시 메타데이터의 보존 여부, 진본성 확보를 위한 해시값 및 감사이력(audit trail) 등이 필수로 요구된다. 넷째, 기술보조검토(Technology Assisted Review, ‘TAR’), 키워드 검색, 기계학습 기반의 분류기법이 활용되며, 이는 기존의 수작업 중심의 증거검토 방식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은 국제 민사소송에 대비하여 e-Discovery의 각 단계별 절차에 대해 사전적으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Legal Hold 조치의 발동, 보존대상 데이터의 선별과 목록화, 수집 및 복제시 진본성 보존을 위한 조치, 분석 및 분류기준 설정, 법원 제출을 위한 포맷 및 진술서 작성 등의 절차가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기업 내부지침에는 e-Discovery 대상 정보를 명확히 구분하고, 각 정보유형에 따른 보존방식, 접근제어, 제출권한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 IT, 바이오헬스 등의 소송 리스크가 높은 산업군에서는 전담 법무 및 기록관리 팀의 상시 운영이 요구되며, 사내 시스템과 외부 법률전문가 간의 협업을 통해 기술적·법적 정합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준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e-Discovery는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전략적인 증거확보의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 소송과의 직접적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은 방대한 양의 전자정보를 일상적으로 보관·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비용적·물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해외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적 법률분쟁에서 생존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내 문서 및 정보보존관리 정책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이에 따라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ESI’)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법적 분쟁 발생에 대비하여 증거자료보존(Litigation Hold) 조치에 관한 사전적 교육과 내부지침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의도하지 않은 자료의 삭제나 보존 실패로 인하여 불필요한 증거인멸 혐의를 받거나 소송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제 민사소송에서 e-Discovery에 대한 불확실성과 부담을 해소하고, 국내 기업이 국제소송 환경 속에서도 실질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기록관리 교육은 주로 공공기관의 일반 행정문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소송 대응을 전제로 한 특화된 기록관리 교육은 거의 부재한 실정이다. 특히 민사소송에서 활용되는 기록은 단지 행정적 참고자료가 아닌 법적 증거로서 기능하는 점에서, 그 작성, 보존, 제출 방식 모두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이에 대한 실무교육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민사소송 중심의 독창적인 교육 및 지침체계의 정비가 요구된다. 첫째, (전자)기록의 진본성 판단기준, 메타데이터 분석, 감사이력(audit trail) 작성방법 등 기술 기반의 증거력 평가모듈을 포함한 실습중심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의 e-Discovery 및 litigation hold 제도를 반영하여 관련 절차의 모의훈련과 대응 시나리오 기반의 워크숍을 실시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법원·국가기록원·대한변협 간의 협업을 통해 기록관리 지침의 통합화를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된 표준지침서 및 실무매뉴얼을 제작하여 법조 실무자와 기록관리자에게 보급해야 한다. 넷째,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인증제도 또는 역량검정시험을 도입하여 교육성과를 제도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록의 진본성 및 증거능력 확보를 위한 블록체인 기반의 기록검증 기술, AI 기반 자동분류 및 검색시스템, 클라우드 기록보존 기술 등 최신 기술을 반영한 교육내용도 병행되어야 하며, 이는 차츰 전자소송 기반의 민사절차에서 필수적인 전문역량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기록관리 지침과 교육체계의 확장은 단순한 행정적 교육을 넘어 소송실무에 직접 적용이 가능한 전략적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며, 민사소송의 증거관리 역량을 제고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Ⅷ. 결론
전술한 바와 같이 기록은 단순한 행정적인 생산물이나 참고자료에 그치지 않고 민사소송의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권리 보호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이용된다. 소송절차는 법원의 심리를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이를 증거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일련의 구조를 가지며, 이때 기록은 모든 행위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특히 전자소송 환경이 정착되면서 기록의 물리적 보존보다는 형식의 정합성, 진본성, 무결성, 신뢰성, 이용 가능성 등에 대한 법적인 요구사항이 강조되고 있으며,50) 이는 전자기록관리 체계의 법제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본 논문은 민사소송에서 기록관리 및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제도적 기반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먼저 기록관리의 개념과 법적 의의를 통해 기록이 단순한 정보 보관의 기능을 넘어서 사법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실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함을 살펴보았다. 이어 민사소송절차 속에서 기록은 각 단계별, 즉 소장제출, 증거조사(또는 증거개시), 본안심리, 판결 선고 등에서 실질적인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미의 증거개시절차(Discovery) 하에서 기록의 진본성 확보와 증거능력 유지 여부는 소송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자기록은 그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진본성 판단의 어려움, 기술적인 위·변조의 가능성, 보존 형식의 다양성 등으로 인하여 법적 효력을 확보하는 데에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동규칙 등은 전자기록(전자문서)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법 체계는 여전히 기술적인 기준과 실무적용 간에 간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사소송에서 기록관리 체계를 재정비하고, 실질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제화가 요청된다.
본 논문은 미국의 모범 사례를 분석하여 미국이 기록과 소송을 통합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특히 미국의 ‘litigation hold’는 기록(증거자료)의 법적 효력을 사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실천적인 제도이며, 기술적·조직적 정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51)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록보존은 행정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민사소송법과의 유기적 연계는 미비한 실정이다. 기록의 폐기 기준, 보존형식, 전자문서의 법적 인증 등에서 실무 혼란이 발생하고 있고, 특히 민간기업과 중소기업은 보존정책 자체가 부재한 경우가 다수이다.52)
결론적으로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적·제도적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첫째, 소송대비를 위한 '증거자료보존 정책(litigation hold policy)'의 제도화를 통해 사전 대응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업, 공공기관 등 모든 기록 보유주체에게 법적 보존의무를 분명히 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법원과 기록관리 기관간의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건기록의 생성-제출-보존-이관이 일관된 흐름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셋째, 국내 기업은 소송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필요한 증거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해 소송의 주도권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미국의 증거개시절차(Discovery)에 대한 사전적이고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첫 번째 개선방안인 증거자료보존 정책의 제도화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넷째, 민사소송 중심의 기록관리 교육과 지침을 확대하여 법조 실무자 및 기록관리 전문가 간의 협업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록관리와 민사소송의 결합은 단지 증거관리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사법제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실현하는 핵심이 된다. 기록이 소송의 흐름을 재구성하고, 각 당사자의 주장과 증명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가 되며, 소송 후에도 사실 확인의 근거로 기능하는 점에서 기록관리의 체계화는 법치주의의 또 다른 실현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사소송법과 기록물관리법의 연계를 강화하고 전자적인 환경에 부합하는 통합형 법제도를 구축하는 작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