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2023. 6. 16. 민법개정위원회가 구성1)되어 2025. 2. 7.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라 한다)이 입법예고되었다.2) 종전 민법 개정은 주로 친족법과 상속법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번 개정(안)은 계약법 분야에서 주된 개정이 이루어졌음을 특징으로 가진다. 물론 이러한 계약법에서의 개정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법 개정을 위하여 정부는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민법개정위원회를 위촉하였고 2004년과 2013년에 개정(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개정이 제대로 완수되지 못하였고 관련 개정(안)은 폐기되었다.3) 그러던 사이,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2017년 민법의 계약법 부분을 대대적으로 개정하여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민법에 담을 수 있었다.4) 우리의 경우, 앞서 두 차례의 개정(안)이 제대로 개정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함에 따라, 1960. 1. 1.부터 시행되어온 「민법」은, 계약의 현실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영하지 못하여 법원의 해석이나 특별법의 제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현실을 반영하는 「민법」으로 거듭나기 위한 큰 발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개정이유는,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에서 공개한 “계약법 개정이유서”를 통하여 알 수 있으므로, 여기에 대해 재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현대의 계약상 흐름에 비추어 보아, 개정(안)의 의사표시 규율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근대민법으로부터 오늘날 이르기까지 민법에서 계속 추구하고 있는 것은, 권리의 주체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의 '추상적 인격자'에서 '구체적인 사람'으로 바라보고 이러한 구체적인 사람에게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여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5) 실제 「민법」을 보완하는 여러 특별법들, 예컨대 약관법이라든지, 전자상거래법이라든지, 방문판매법 등과 같은 경우는 계약의 양당사자가 실질적으로 불평등함을 전제로, 이를 계약에서 수평적 관계로 맞추기 위한 법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의 국민은 대부분 소비자이다. 자신들이 어떠한 영역에서 사업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여전히 소비자이다.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유는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서로가 가진 능력의 다름으로 인해 ‘교환’을 전제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자 함이다. 이는 오늘날 ‘매매’와 같은 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계약의 최종단계에 위치한 사람은 ‘소비자’로서 지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소비자는 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업자와 달리 해당 물건이나 서비스를 계속・반복적으로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어서, 사업자에 비해 정보나 교섭력 측면에서 열위에 설 수 밖에 없다. 또한 최종단계에 위치하다 보니 자신이 입은 피해를 다음 단계의 거래 당사자에게 이전할 수도 없다. 이에 우리의 소비자법제는 이러한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격차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여 실질적인 수평적 거래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법 - 특정 거래에 관한 특별법’의 체계로 되어 있는데 반해, 독일의 경우는 민법전 내에 소비자계약이 포함되어 있고, 일본은 ‘민법 - 소비자계약법 - 특정 거래에 관한 특별법’ 형태로 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소비자거래에서 특별법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 「민법」이 적용되어 소비자계약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여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 왜냐하면 현행 우리의 「민법」이 근대의 민법과 달리 구체적 인격자를 상정한다 하더라도, ‘민사관계에서의 일반법’이라는 지위로 인하여 소비자계약의 특수한 상황, 즉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의 격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시 개정(안)으로 돌아와서, 이번 개정(안) 중 의사표시 규율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개정 사항이 있는데, 이는 ①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개정(안) 제3조의2), ② 동기착오 및 상대방이 유발한 착오 규정 신설(개정(안) 제109조제1항) 및 ③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 규정 신설(개정(안) 제100조의2)이다. 이러한 개정(안)의 신설 규정을 본다면, 그간의 「민법」의 흐름, 즉 추상적 인격자에서 구체적 사람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이러한 관점 변화를 통한 실질적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본고는, 위와 같은 「민법」에서의 관점의 변화와 소비자계약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이번 개정(안)에서 신설한 의사능력과 관련한 내용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의사능력 규정은 앞으로 「민법」과 여러 소비자계약 관련 법률들의 위치지움에 영향을 줄 것이고, 나아가 구체적으로도 의사능력을 어떻게 규정짓는지에 따라 소비자의 권익향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편, 검토를 함에 있어서는, 2017년 있었던 일본 「민법」의 개정을 참고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2017년 일본 「민법」개정에서도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이 있었고, 그에 대한 논의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개정(안)을 마련할 당시에 이러한 일본의 논의를 참고하였으리라 예상되나, 다만 현재 입법자료들(민법 개정안 예비초안 연구, 민법개정 예비초안에 대한 검토의견서, 계약법 개정이유서 등)에는 관련 내용이 없으므로, 이에 대해 같이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본고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Ⅱ. 개정(안)에서의 의사능력 규정 신설
개정(안) 제3조의2는 “의사능력이 없는 사람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의사능력 규정을 신설하였다. 해당 규정은, “우리 민법은 이렇게 의사능력에 대해 간접적인 규정만을 두고 있으므로, 총칙을 개정하는 기회에 의사능력에 대해 정면으로 규율하는 조문을 도입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하는 취지로 도입되었다.6)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서 의사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통설로 굳어져 있으나, 우리 「민법」은 제정 이래로 의사능력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의사능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 민법이 알지 못한다는 등의 여러 해석론이 나올 수 있으니7), 의사능력이 없는 의사표시는 무효라고 밝히는 방법으로 기존의 통설을 받아서 조문으로 적시하여 이러한 논쟁을 해소함과 동시에 기존에 간접적으로 의사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던 「민법」 제1063조와도 정합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 홈페이지8) 등에 논의 과정을 알 수 있는 회의록이 없어 개정(안)에서의 의사능력 규정 신설과 관련한 논의 내용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이에 법무부 민법개정회가 작성한 「계약법 개정이유서」에서 적시된 내용을 통하여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론되는 사항을 살펴보면 크게 다음 두 가지, 즉 하나는 의사능력 규정을 둘 것인지, 다른 하나는 의사능력 규정을 둔다면 어떠한 형식으로 둘 것인지로 보인다.
먼저 의사능력 규정을 둘 것인지의 논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민법」 제1063조제1항에서 의사능력이 회복된 때에만 유언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규정은 유효한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서는 의사능력이 있어야 함을 당연한 규범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 및 종래 통설과 판례 역시 의사능력을 법률행위의 유효 요건의 하나로 해석하고 있는 점9) 등을 들면서 “총칙을 개정하는 기회에 의사능력에 대하여 정면으로 규율하는 조문을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다”10)고 한다. 하지만 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그 논거가 부족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대해 민법개정위원회에 참여한 김형석 교수는 “그동안 민법의 해석・적용에서 통설・판례의 확립된 해석을 법률에 반영”하면, “실무에서 행해지고 있는 현실의 법과 법률의 문언 사이에 존재하던 간극은 상당부분 해소되며 법적 안정성이 제고된다”11)고함으로, 적절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의사능력 규정을 둔다면, 의사능력 규정을 어떻게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사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정하는 방법과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고 다만 의사능력이 없이 의사표시를 했을 경우의 효과만을 규정하는 방법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이번 개정(안)에서 처음 논의되었던 것은 아니고, 2013년에도 같은 논의가 있었다.12) 여하튼 개정(안)에서 논의는 의사능력을 판례의 해석례, 즉 “의사능력이란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내지는 지능”13)이라는 개념으로 의사능력 규정을 두는 쪽도 검토하였으나,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규정을 둔다하여도 지시하는 사태가 명확히 지시되기 어려운 점, 그래서 결국 법원이 개별 사안에서 표의자의 사적자치가 실현되는지 여부를 개별적으로 살펴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점, 또한 「민법」 제1063조에 대한 관계를 고려하여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단순히 의사능력을 결여한 자의 법률행위가 무효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도록 한 것이다.14)
한편, 이 점과 관련하여 특기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2013년도 의사능력 규정은 107조에 두도록 논의한 것15)으로 보이나(최종 2013년 최종 개정(안)에서는 의사능력 규정을 두지 않았다16)), 이번 개정(안)에서는 의사능력 규정을 제3조의2에 두는 것으로 하였다는 점이다.17) 다른 하나는 의사능력을 정의하고 있지 않으나, 의사능력을 자신의 법률행위의 결과를 변식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고 있는 점이다.18)
「민법」은 법학자 및 법률가들만 보는 법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이 함께 보는 법인바, 그간 통설・판례에서 취해왔던 해석론이 있다면, 이를 반영하여 법조문을 신설하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의사능력 규정이 현실의 법과 법률의 문언 사이에 존재하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부분에서만 그 존재의의를 찾는 것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의사능력은 의사무능력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의사무능력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경우에 그 유무를 판정하여야 되는데, 이때 표의자가 행위 당시에 의사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서 보호받는다는 것이 어려우니 의사능력을 객관적으로 획일화한 제도인 행위능력제도를 「민법」에서 인정하고 있다.19) 그렇다면, 행위능력제도가 있으면서 굳이 의사능력 규정이 필요한지에 대해 조금 더 논의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고, 나아가 이러한 의사능력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의사무능력자에게 기존과 달리 어떠한 부분이 더 나아지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아울러, 의사능력 규정의 존재형식과 관련하여,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다만 의사능력 없이 의사표시를 한 경우 그 효과만 규정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도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개정(안)의 논의를 살펴 유추하여 보면, ‘의사능력’을 ‘법률행위 결과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상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3년 개정에서 논의되었던 것에서 명확히 드러나는데, 2013년 개정에서 의사능력 규정과 관련하여 제시되었던 두 개의 안 중 제1안은 “법률행위의 의미를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하여진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고 하여, 의사능력을 “법률행위의 의미를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고 있다.20) 그리고 2013년 개정에서는 의사능력 규정을 제107조에 두는 것으로 논의하였는데, 이는 총칙편의 법률행위장에 두는 것이므로 역시나 의사능력을 법률행위의 결과를 인식하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아울러 이번 개정(안)에서는 의사능력과 같은 경우 ‘확립된 해석을 배경으로 하는 개정’ 중 하나라고 하고 있고21) 그러면서 들고 있는 판례의 내용에서 의사능력 정의를 보면,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내지 지능”22)이라 하고 있는바, 이것에 비추어 보면, 이번 개정(안)에서도 법률행위의 의미를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의사능력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총칙편의 법률행위장이 아닌 제3조의2에 두는 것으로 하여 총칙편 人장의 能力절에 두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能力절에서 규정하고 있는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은 그 성격이 ‘자격’에 가까운, 즉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규정한 것임에 반면, 지금 개정(안)에서 논의하고 있는 의사능력은 ‘법률행위’를 중심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에서는 2013년도 개정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법률행위장에 두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의사능력을 법률행위를 중심에 두고 개념규정을 하는 것이 맞는지와 관련한 의문도 든다.
Ⅲ. 의사능력 개념에 관한 논의 – 2017년 일본 「민법」 개정을 참고하여
한정된 정보로 평가를 내리기는 조심스럽기는 하나, 앞서 살펴본 이번 개정(안)을 본다면, 의사능력이 무엇이고 의사능력 조문을 신설한 의의는 무엇인지, 나아가서는 의사능력을 행위의 결과에 대한 인식능력으로 보고 있는 현재의 통설과 판례 아래에서 의사능력 규정을 신설할 때에 人장에 두는 것이 맞는지 등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은 궁극적으로 의사능력이 무엇인지의 논의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능력을 권리능력이나 행위능력과 같이 사람을 중심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법률행위를 중심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민법」에서 조문의 위치는 물론 그 신설 의의 역시 바뀔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소비자계약의 관점에서 개정(안)에서의 의사능력 규정 신설을 톺아보는 것이므로, 의사능력 규정 신설과 관련하여 위와 같은 논의를 조금 더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편, 서두에 적시한 바와 같이, 우리가 계수한 일본 「민법」은 2017년 개정을 하면서, 우리와 같이 총칙편 人장에 의사능력 규정을 신설하였다(조문도 제3조의2이다). 아울러 일본 역시 의사능력 규정을 신설하는데 있어 우리와 같이,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정의내리지 않고 다만 법률행위를 한 당사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에 그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하는 규정만 두고 있다. 이러한 규정의 신설은, 일본 법무성에 설치된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法制審議会)23)에서 ‘민법(채권관계)부회[民法(債権関係)部会]’를 발족24)하여 2009년 11월부터 민법 개정 관련 논의를 한 결과이다.25)
그렇다면, 우리와 유사한 규정을 신설한 일본의 논의 결과를 참고하여, 앞서 제시한 의문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의 의사능력 신설과 관련한 논의를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의사능력 규정 신설의 취지를 보면, “고령화 등이 진행되는 사회상황 아래, 의사능력의 유무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현실에도 적지 않은 점에 비추어” 새로운 규정을 둘 필요성이 있다고 하여 논의를 시작한다.26) 이후 일본 「민법」개정안이 어느 정도 성숙된 상태에서의 밝힌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 취지는 다음과 같이 조금 더 상세하다. 즉, “고령화 사회의 진행에 따라, 판단 능력이 감퇴한 고령자를 둘러싼 재산 거래상의 문제가 증가 중이고, 이에 따라 의사능력에 관한 분쟁도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이다. 이에 대해서는 성년후견제도 등에 의해 일정한 대응을 도모할 수 있지만, 판단능력이 저하된 고령자 모두에게 이러한 제도의 이용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 때문에, 판단능력이 저하된 고령자를 둘러싼 재산거래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규율로서 의사 능력에 관한 규율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명문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27)고 한다.
위와 같은 규정의 직접적인 신설 취지 외에, 민법(채권관계)부회의 개정논의 자료에서 언급된 일본 「민법」 개정의 필요성 전반에 대해 보면, 소비자 상담에서도 민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28)고 하면서, 오늘날에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다양하여 ‘사람’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곤란하므로 민법이 사법의 일반법으로서 사회를 지지하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 ‘사람’의 개념을 분절화하여 소비자와 사업자에 관한 규정을 민법에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29)
이를 종합하면, 의사능력 규정 신설을 통하여 개별 구체적인 법률행위의 내용에 따라 당사자의 판단능력을 고려하여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함으로, 추상적인 사람의 관념에서 점차 벗어나 구체적인 개인으로 그 관념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취지를 바탕으로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 논의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한다. 일본에서 논의된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 논의는 크게 3가지 안이 있었다.30) 제1안은, 의사능력이란, 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의 의미를 변식할 능력으로 보고, 이를 정의하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이었다. 제2안은, 의사능력이란, 사리를 변식할 능력31)으로 보고, 이를 정의하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이었다. 제3안은, 의사능력의 정의규정을 두지 않고, 이것을 결여한 상황에서 행한 법률행위의 효력에 대해서 규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결국 의사능력을, ① ‘법률행위의 의미를 변식하는 능력’이라는 관점과 ② ‘사리를 변식할 능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제3안도 존재하나, 제3안의 경우 제1안과 제2안을 검토한 후 두 안 모두 적절하지 않은 경우 소극적으로 규정하는 대안적인 그리고 결과론적인 방식이므로, 일단 지금의 논의에서는 잠시 논외로 한다.
여하튼 위 ①의 인식과 ②의 인식의 차이는 단순히 문언상의 문제를 넘어서, 의사능력의 본질적인 이해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다.32) 즉, 위 ①의 관점은 의사능력의 유무를 각각의 법률행위마다로 판단하여야 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유효하게 법률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법률행위를 스스로 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필요한데, 어떤 법률행위를 스스로 했다고 평가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의 정도는 다양한 법률행위마다 검토되어야 하고, 사람의 행위 일반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객관적, 절대적인 능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종래의 판례에서도 의사능력의 기준은 행위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그 근거로 한다.33)
반면 위 ②의 관점은 의사능력의 유무를 일반적・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여러 법률행위마다 그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는 종래 이해되어 온 의사능력 개념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리를 변식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에서의 의사능력에 더하여 법률행위를 하려면 ‘법률행위를 하는 것의 의미를 변식하는 능력’도 필요한데, 이것은 정보제공의무나 상황의 남용 등 다른 개념의 문제로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34)을 근거로 든다. 부연하면, 개별 구체적인 법률행위마다 표의자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의사표시를 했는지 여부는 의사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적합성의 원칙 등에 의해 처리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만약 소비자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에 금융상품을 구매한 경우 의사능력과 적합성원칙 등이 중복해서 적용될 문제가 생기게 된다. 또한 위 ②의 관점과 같이 본다면, 예를 들면 일상생활을 위한 식료품의 구입인지 부동산에 대한 저당권의 설정인지에 따라서 의사능력에 구별을 두는 것은 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낮은 능력을 기준으로 하여 일률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낮은 능력을 넘는 능력을 가지는 경우에 의사능력은 있는 것이고, 나아가 식료품 구입을 이해하는 능력은 있으나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으면, 이 경우 폭리행위 등의 법률행위 내용의 부당성을 규율하는 준칙이나 행위능력제도로 해결하면 된다고 한다.35)
의사능력의 정의규정을 두는 여부와 더불어, 의사능력의 기준이 되는 능력의 정도가 무엇인지도 논의가 되었다.36) 즉, 의사능력이라는 것을 법률행위를 변식하는 능력으로 보든 아니면 사리를 변식하는 능력으로 보든 간에 어떠한 수준을 상정해 놓고 그러한 수준을 넘어가면 법률행위가 무효로 되지 않는 자격을 주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그 수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 ① 획일적인 최소한도(minium)의 능력, ② 행위의 성격에 따라 다르나 약간 낮은 정도 및 ③ 조금 높은 경제합리적인 판단능력 등의 의견이 제시되었다.37) 위의 견해에 대하여 다수는, 위 ①의 경우는 의사능력의 문제가 아닌 의사표시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위 ②는 의사능력에서의 기준으로 보아야 하며, 위 ③은 적합성 원칙 등에서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지 의사능력에서 문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38)
이렇듯 일본 민법 개정을 위한 논의에서 의사능력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결국 하나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일본 법제심의회 민법(채권관계) 부회는 “이론적으로는 의사능력의 판단에 있어서 정신상의 장애라는 생물학적 요소와 합리적으로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는 심리학적 요소 양쪽을 고려할 것인지 아니면 심리학적 요소만을 고려할 것인지의 문제라든지, 판단・변식의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는 데 필요한 제어능력을 고려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해 견해가 분분하여 의사능력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계속 해석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39)고 하였다. 즉, 일본 법제심의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각 담당부회에서 만장일치 원칙을 취해오고 있는바40), 그렇다면 결국 의사능력과 관련한 정의라든지 그 요구 수준은 정하지 않고 해석에 맡겨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민법에서 의사능력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이러한 규율을 알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점 및 고령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판단능력이 감퇴한 고령자를 둘러싼 재산거래상의 문제들이 발생・증가하고 하고 있어 의사능력에 관한 분쟁도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점 등 때문에 의사능력 규정을 둘 필요는 있으므로,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수준에 이르러야 의사능력이 있는지와 관련하여서는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채, 다만,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 의사표시의 효력만을 규정하는 방향으로 초안이 작성되고 논의는 종결되었다.41)
일본에서의 논의의 결론은 다소 허무하다. 의사능력이 무엇이고 어떠한 형식으로 규정을 둘 것인지를 논하였으나, 결국은 정확하게 규율하지 않은채 다만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의사표시는 무효라는 소극적 규정만을 두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그 논의 과정을 본다면,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그러한 의사능력이 우리 법제에서 필요한지 나아가 이러한 의사능력제도가 소비자계약에서는 어떠한 함의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준다. 일본에서의 논의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바로 ‘의사능력’이라는 개념이 각 학자들마다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의사능력 규정 신설의 취지와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교과서에서 의사능력과 관련된 내용을 서술하면서 ‘통설’이라고 쓰고 있는데42), 사실 의사능력을 이해하는 각자가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43) 그렇지만 의사능력의 적용 과정과 필요성에서는, 구체적・개별적인 상황에서 적용되기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일본에서의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 취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소비자에게 적용시켜 본다. 「민법」에서의 ‘자연인’은 언제든 ‘소비자’가 될 수 있다. ‘소비자’라는 개념은, 행위능력과 같은 자격지표가 아니라, 상황지표이다.44) 즉 언제든 해당 거래에 있어서 최종단계에 있어 해당 거래의 불이익을 다음 거래 단계의 상대방에게 넘길 수 없다면, 이는 소비자라 할 수 있다.45) 이러한 소비자는 업으로 계속적・반복적으로 거래를 하는 사업자에 비해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업자들의 광고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구매를 하는 경향이 있음은 달리 증명이 필요 없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정적 합리성 혹은 상황적 취약성을 가진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판단능력이 저하된 고령자를 둘러 싼 재산거래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의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은 추상적 인격자에서 구체적 사람으로의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는 결국 소비자계약을 「민법」이라는 일반법에서도 어느 정도 포섭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2017년 일본 「민법」 개정에서 의사능력 규정 신설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우리에게 화두로 던진 것들은, 의사능력 규정 신설의 필요성, 의사능력의 개념 및 의사능력 제도를 인정할 경우 그 수준 등이다. 이는 의사능력의 근본적인 존재의의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고, 기왕에 우리의 「민법」을 개정하는 이때에, 이러한 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덧붙여, 「민법」에서의 ‘자연인’은 언제든 ‘소비자’로 될 수 있는바, 소비자로서의 우리에게 의사능력 규정이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도 위의 화두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도록 한다.
Ⅳ. 소비자계약의 관점에서 의사능력 규정의 평가
먼저, 의사능력의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의사능력과 관련한 우리의 통설은, 일본의 논의에 대입하여 본다면, ‘법률행위의 의미를 변식할 능력’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통설에 대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통설을 비판하는 견해 중 하나는, 통설의 입장을 ‘자격설’이라 명명하면서, 우리 법에서 의사능력은 행위능력과 별개로 자격제로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개개의 행위 시에 판단되어야 하고, 나아가 정상적 의식 및 판단력 없이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는 의사표시 성부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표의자의 자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46) 또 다른 견해는 우리 민법은 의사능력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으나 아직 금치산선고를 받지 않은 가운데 이루어진 의사표시의 효력을 규율하는 법률규정이 흠결된 현행 민법의 입법적 한계에 유래하는 개념이라고 한다.47) 그러면서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법률행위는 무효로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능력의 부존재라는 실질이 아니라 법률효과에서 접근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무능력자의 의사는 실재하지 않고 설령 표시되었더라도 법적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한다.48)
논리적으로 살펴보면, 통설을 비판하는 비판설의 입장이 타당하다. 통설에서 의사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법률행위의 관점에서 보면 내심적 효과의사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통설에서의 ‘의사’는 법률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효과인데, 이러한 의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의사표시가 없다고 하여야 하고, 의사표시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 법률행위도 무효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통설에 대한 비판설과 같이 ‘권리능력 – 행위능력 제도’만 있으면 되고, 굳이 의사능력이라는 제도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능력이 있다고 통설과 판례는 인정하고 있는데, 이 인정 이유는 이론적으로는 각종제도마다 그 종류의 법률행위를 스스로 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자격요건으로서의 위치지움 때문이다. 즉, 법률효과를 주는 이유는 ‘자치’이기에, 스스로 법률효과를 인식하면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본다면 두 가지의 문제점이 생긴다. 하나는, 의사표시가 없는 것, 즉 무의식에 따른 행위와 의사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의 구별이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에 따른 행위와 의사능력이 없는 사항을 구별한다면, 그 기준점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통설은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능력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서술한 통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의사능력 제도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으나 아직 금치산선고를 받지 않은 가운데 이루어진 의사표시의 효력을 규율하는 법률규정이 흠결된 현행 민법의 입법적 한계에 유래하는 개념”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적어도 이 한도 내에서 제한능력자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로 실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현행 「민법」에서 정책적 판단 아래 일정한 기준 이하로 판단능력이 저하된 자를 판결의 선고 등을 거쳐 보호하는 것이 행위능력 제도라면, 그것을 조직화되지 않은 형태로 개별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의사능력 제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행위능력 제도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자와 의사능력 제도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자의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49) 덧붙여, 통설에서 의사능력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보고 있는 책임능력의 경우에는, ‘그 행위의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없는 자’ 또는 ‘심신상실’을 책임무능력자로 보고 있는바, 그렇다면 이와 반대되는 경우가 책임능력자이고 이를 의사능력에 비추어 본다면 ‘그 행위의 효과를 변식할 지능이 있는 자’ 또는 ‘심신상실이 아닌 자’가 된다. 이는 결국 의사능력이라는 제도는 행위능력 제도와의 보완이라는 기능 속에서 제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정작 법정절차를 밟아 성년후견개시의 심판을 받은 사람의 의사표시는 취소로 비로소 무효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의사무능력자의 의사표시는 즉시 무효가 되어야 하는 기이한 불협화음을 피할 수 없다”50)고 비판할 수 있다. 물론 타당한 비판이다. 하지만 「민법」이라는 실체법은 소송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재판의 규준으로 적용되는 것51)인바, 따라서 권리의 변동을 논리적으로만 규정할 수 없고 실질적인 분쟁의 해결과 관련한 부분도 규정을 하여야 한다. 제한능력자의 법률행위는 의사무능력자의 법률행위는 무효인 것과 비교하여 취소에 해당하므로, 일견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제 분쟁이 생겨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중 증명책임의 문제로 본다면, 이는 권리발생 장애규정의 요건사실(권리장애사실)로 권리주장자의 상대방, 즉 제한능력자나 의사무능력자에게 증명책임이 있게 된다.52) 이때 제한능력자는 자신이 제한능력자임을 증명하기가 매우 쉽다. 자신이 미성년자이거나 법원의 선고를 통하여 제한능력자가 되었음을 증명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무능력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법률행위를 할 당시에 해당 법률행위의 결과를 변식할 능력이 없었다든지 아니면 사리를 변식할 능력이 없었음을 본증으로 증명하여야 하므로 제한능력자들에 비해 증명의 난이도는 높다. 이러한 부분에서 본다면 분명 의사능력 제도에 비해 행위능력 제도가 일정한 기준 이하로 판단능력이 저하된 자를 더 잘 보호해 줄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무의식 행위와 의사능력 제도의 구별을 통하여 의사능력 제도의 필요성 역시 주장할 수 있다. 무의식 행위와 의사무능력 모두 이를 주장하는 자가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무의식 행위는 자신이 한 표시는 내심적 효과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하여야 함에 비해 의사무능력은 법률행위를 할 당시에 해당 법률행위의 결과를 변식할 능력이 없었다든지 아니면 사리를 변식할 능력이 없었음을 증명하면 되므로, 무의식 행위에 비해 증명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점에서도 의사능력 제도의 의의는 분명히 있다고 할 것이다53).
그렇다면, 이러한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이 소비자계약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는가? 이를 논하기 앞서 「민법」의 진정한 목적이 ‘거래의 안전’인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 보호’인지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간 「민법」에서는 ‘사람’을 추상적 인격자로서 합리적 경제인으로 상정하였다. 그 결과 합리적 경제인이 한 약속은 ‘지켜져야만’ 하고, 따라서 합리적 경제인이 약속한 그 효과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거래의 안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민법」은 우리의 「헌법」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특히 「민법」에서의 대원칙인 사적자치의 원칙은 「헌법」에서 보호하는 행복추구권 속에 함축된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다.54) 따라서 「민법」에서 진정한 목적은 사람들의 신뢰관계를 보호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존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소비자를 보도록 한다. 소비자는 앞서 서술한 대로55), 어떤 속성을 가진 자격이 아니라, 상황지표에 불과하다. 즉, 「민법」의 적용을 받는 자연인이라면, 누구든지 특정상황에서는 ‘소비자’가 될 수 있다. 소비자가 되기 위한 중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End-user인데, 바로 이 End-user이기 때문에 우리가 「민법」에서 고려하는 거래에 비해서 ‘거래의 안전’을 배려하여야 사정이 매우 줄어든다 할 수 있다.56) 아울러 소비자는 합리적 경제인이 아닌 한정합리성을 가진 존재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일본 「소비자계약법(消費者契約法)」 제1조 목적조항이다. 여기서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 정보의 양과 질, 나아가 협상력 격차가 있고 이로 인해 소비자가 오인하여 계약하거나 곤혹스러운 경우에 억지로 계약한 경우,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시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이,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격차이고 이로 인하여 소비자는 오인하여 계약하거나 곤혹스러운 경우에 억지로 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합리적 경제인이라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합리적 경제인이 아니라 한정합리성을 가진 존재일 뿐이고, 나아가 업으로 반복・계속적 거래를 사업자에 비해 당연히 정보의 양과 질 및 교섭력에서 차이가 나기에, 위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의 「민법」에 대한 특별법 형식으로 제정된 소비자 관련 법률은 바로 사람은 합리적 경제인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개정(안)에서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과 관련하여 소비자계약에서 가지는 함의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그간 권리능력 – 행위능력으로 이어지는 2원화된 체재를 통하여 거래의 안전을 조금 더 우위에 두었다면, 이제는 권리능력 – 행위능력 사이에 ‘의사능력’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거래자의 개별 구체적 사정을 살펴보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앞서 본 바대로57), 2017년 일본 「민법」 개정 관련 논의에서도 드러나는데, ‘사람’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파악하지 말고 이를 분절화하여 소비자와 사업자에 관한 규정을 민법전에 두어야 한다는 지적과 고령화 시대에 모든 고령자에게 제한능력제도를 사용할 수 없으니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의사능력의 개념을 ‘법률행위의 의미를 변식하는 능력’으로 보든지 아니면 ‘사리를 변식할 능력’보든지에 상관없이 위 두 경우 모두 고려했던 상황은 바로 ‘획일성’이 아닌 ‘개별성’이었다. 즉, 제한능력제도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논하여진 것이고, 제한능력제도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자를 선정할 때에는 결국 법률행위를 보든 그 의사표시를 했던 사람을 보든 여튼 그 행위자나 행위의 개별성・구체성을 따져본다는 것이다. 이는 거래의 안전을 위해 획일적・형식적으로 규정을 정하려고 하였던 「민법」의 태도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소비자 중 의사무능력자들을 거래에서 배제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해당 거래에 참가하는 것을 전제로, 해당 거래를 규제하는 규율 자체의 변혁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58) 즉, 각각의 거래마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판단능력이 저하한 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을 부과할 수 있는 민사법적 제도를 마련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인간의 존엄이 중요하다고 하여 거래의 안전을 버릴 수는 없는데, 이는 상대방의 신뢰를 지켜 주는 것 역시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상대방에게도 의사무능력자로 인하여 법률행위가 무효로 되는 것을 막을 예방책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제도로써 고려할 수 있는 것이 계약을 할 당시에 상대방이 의사무능력자인지, 그리고 법률행위의 결과를 인식하고 그러한 효과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예방적 제도를 두는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판단능력이 저하된 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은 개별 소비자의 한정합리성을 고려하여 사적자치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에서의 큰 움직임이 바로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이고, 여기에서 소비자계약에서의 함의를 찾을 수 있다.
Ⅴ. 나오며 - 향후 진행되어야 할 방향
그렇다고 해서, 이번 개정(안)이 소비자계약의 관점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소비자계약의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할 사안은 크게 두 가지로, ① 의사능력의 개념 및 그 수준을 명확히 하고, ② 소비자계약에 관한 법률의 정비가 필요하다.
먼저 의사능력 개념 및 수준의 명확화 관련이다. 우리의 개정(안)과 일본의 개정 모두 의사능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의내리지 않은 채, 의사능력이 없는 사람의 법률행위의 효력에 대해서만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능력제도의 존재의의는 행위능력제도를 보완하는 것인 점과 행위능력과 같은 자격제도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증명을 용이하게 하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사능력의 개념을 법률행위 결과를 변식할 능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리를 변식할 능력으로 볼 것인지 살펴야 하는데, 아래의 사유들을 고려하면, 사리를 변식할 능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작은 차이기는 하나 증명책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사리를 변식할 능력으로 보는 것이 의사무능력자를 보호하는데 유리하다. 예컨대 심신상실자의 경우, 법률행위 결과를 변식할 능력으로 의사능력을 정의하여 의사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려면 심신상실과 이로 인해 법률행위의 결과를 변식하지 못함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비해, 사리를 변식할 능력으로 의사능력을 정의하면, 심신상실만 증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판례는 의사능력을 법률행위의 결과를 변식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고 있으나, 그 판단에 있어서 법률행위 당사자의 지능을 살피고 그것이 중요한 판단에 이유가 되므로59), 굳이 사리를 변식할 능력이 없고 나아가 법률행위의 결과를 변식할 능력이 없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로, 책임능력과의 관계이다. 책임인식지능이 없는 자와 심신상실자를 책임무능력자로 보고 있는데(민법 제753조 및 제754조), 이와 같은 자는 사리를 변식할 능력이 없는 자이므로, 책임능력과 의사능력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면, 의사능력 역시 사리를 변식할 능력이 없는 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60) 세 번째로, 개정(안)은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보고 있는바, 그렇다면 의사능력이 있다고 하는 수준은 낮게 잡을 수밖에 없다. ‘무효’는 처음부터 법률행위가 없었다는 것이고 나아가 그 무효는 누구나 다 주장할 수 있는 것이므로, 취소와 비교하였을 경우에 법 질서 전체의 입장에서 당연히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무효라고 보고 있는바, 그렇다면 의사능력의 기준은 당연히 높은 수준으로 잡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는 ‘사리를 변식할 수 없는 능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소비자계약과 관련한 법률의 정비가 필요하다. 의사능력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법률분쟁이 발생할 경우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본인이고,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자가 피해를 입어 소송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아울러 의사능력제도는 매우 낮은 수준에 있는 자, 즉 심신상실자 등 제한능력제도의 보완으로 사용되는데 그치고 그 보다 수준은 높으나 일시적 혹은 상황적 취약성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특히 일본 「민법」 개정과 관련한 논의에서 나왔던 “조금 높은 경제합리적인 판단능력”61)과 같은 경우, 즉, 소비자는 한정합리성을 가진 존재이고 거래 상대방인 사업자와의 관계에서 평등하지 못한 상황으로 인한 취약성으로 경제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 어떻게 보호를 해야하는지 문제가 된다. 기왕 ‘人’의 분절화를 통하여 의사능력 규정의 신설이 되었다면, 거래 상황별 그리고 거래 단계별 소비자들이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을 유형화 및 규범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법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하겠다. 특히 우리는 아직 ‘민법 – 거래의 특별법’과 같은 2원화된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바, 중간 단계, 즉 소비자계약에 관한 일반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계약에 관한 일반법이라는 역할을 「민법」이 담당할지 혹은 일본과 같이 소위 「소비자계약법」과 같은 특별법 형태로 구성해야 하는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나, 그럼에도 사람의 분절화를 통한 상황적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