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상 각종 수당(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임금, 해고예고수당, 연차휴가수당)의 산정 기준이 되고, 평균임금의 최저기준이 된다. 2025. 10. 23. 시행 예정인 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체불임금 총액이 3개월 이상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은 통상임금을 출산전후휴가급여 또는 유·사산휴가급여의 산정기준으로, 고용보험법은 구직급여의 산정기초가 되는 임금일액의 최저기준으로 삼고 있다.
과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1) 이전, 통상임금의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임금의 기준임금으로서 기능에 주목하여, 통상임금은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받게 될 “현재의 시점에서 확정할 수 있는 임금”이라 할 것이며, 사전확정할 수 없는 임금은 통상임금 산정 시 산입되기 어려워 통상임금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었다.2) 이러한 견해에서는 어떤 임금 항목이 사전에 확정되어 있어 기준임금으로서 통상임금을 산정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런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산정가능성을 넘어 업적, 성과 기타 조건과 관계없이 지급될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질 즉, 지급액(지불액)까지 고정되고 확정적일 것을 요구하였다.
통상임금은 근로의 가치를 ‘미리 산정’함으로써 각종 수당의 지급액이 적절하게 결정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사후적으로 산정되는 평균임금의 최저기준으로 고정적인 통상임금을 활용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하는 기능도 하므로, 고정성 요건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3)
그러나 ‘가산수당 등 다른 임금의 기준임금’으로서 가상적 임금인 통상임금은 산정가능성이 문제될 뿐, 임금지급청구권이 발생하여 수령가능한 임금항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평균임금의 최저기준’으로서 통상임금의 기능은, 실제 근무를 수행하고 받는 임금의 평균값이 소정근로의 가치에 대한 평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므로 반드시 지불액(수령액) 자체가 확정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불액의 확정을 전제로 한 고정성 요건은 오히려 사용자의 임의적인 조건 부가를 통해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수 있는 임금항목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고, 소정근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가져왔다.
2024년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대한 2개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았다.4) 통상임금은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에서 통상임금은 단순히 수당산정의 도구로만 머무르고 있지 않다.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 아래의 임금을 받지 않도록 최저기준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으며, 소정근로시간의 법정 한도가 단축되는 경우에도 임금보전의 최저 수준으로 명시되어 있기도 했다(근로기준법[법률 제6974호, 2003. 9. 15. 일부개정] 부칙 제4조 제1항). 소정근로의 가치 개념으로서 통상임금은 향후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준수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통상임금은 어떤 일에 대한 공정하고 적정한 대가로서의 임금 가치와 평등심사의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본 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중심으로 통상임금의 개념과 의의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원은 가산임금 산정 시 기준임금이 되는 통상임금의 기능에 주목하여, 그 명칭과 관계없이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것으로서 사전에 확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또 대법원은 1995년 전원합의체 판결5)로 임금이분설을 폐기하였으므로, 통상임금인지 여부는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그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하면 될 뿐 형식적 기준(임금명칭, 임금지급주기의 장단 등)에 따를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제시하면서, 고정성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그 업적, 성과 기타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질”이라고 하였다.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과 개념적 징표의 의미를 밝힌 의의가 있으나, 고정성이 문제 되는 임금 유형까지 정합성 있게 규율할 수 있는 통상임금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통상임금은 법령 부합성, 소정근로가치 반영성, 사전적 산정가능성, 강행성, 정책 부합성이라는, 통상임금의 본질과 기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정성 개념은 법령상 근거가 없고, 통상임금 개념의 강행성에 반하며,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며, 사전적 산정 가능성도 약화시키고, 연장근로 등 억제라는 정책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본질은 실제 근무일수나 수령한 임금과 상관없이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한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기준임금이라는 데 있고, 정기성과 일률성은 이러한 소정근로 대가성의 개념적 징표라고 판시하였다. 즉, 임금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지 여부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대가와는 개념상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소정근로일수 이내로 정해진 근무일수 조건의 경우에도, 그러한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일정한 업무성과를 달성하거나 그 평가 결과가 일정 기준에 이르러야 지급되는 순수한 의미의 성과급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으나, 근무실적과 상관없이 일정한 최소한도액을 지급하기로 정한 경우에는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고정성 개념은 법령 부합성, 강행성, 소정근로 가치 반영성 등과 같은 요청을 충족하지 못하여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가 될 수 없고, 통상임금이 도구 개념인 점을 고려하면 사전적 산정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통상임금의 본질은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기준임금”이고, “실 근로와 무관하게 소정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하므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근무일수 조건이 붙어 있더라도,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다면 충족할 조건, 즉 소정근로일수 이내로 정해진 근무일수 조건은 그 조건이 붙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반면 소정근로일수 초과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소정근로를 제공한다고 하여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소정근로를 넘어 추가 근로의 대가이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보았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의 본질과 기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통상임금 개념을 정립하려 한 점에 의의가 있다. 앞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임을 밝히면서도 가산수당 등 법정수당의 산정도구로서의 개념에 지나치게 함몰된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법령에 없는 고정성 개념이 통상임금의 개념 징표로 제시되었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의 개념이 법령과 정책 모두에 부합해야 하며, 소정근로의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개념이어야 함을 명확히 하였다.6) 근로기준법의 여러 조항에서 통상임금이 기준임금으로 역할하고 있으므로,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기준임금”이 그 본질이며,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정기성’과 ‘일률성’은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적 징표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법체계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Ⅲ. 임금의 결정과 통상임금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이면서 그 가치를 반영해야 하므로, 우선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로마법 계수로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해방된 이후, 법이 그리는 인간형은 ‘이익에 의해 지배되는 개인’, 상인이며, 근로자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거래 주체로 여겨진다.7) 근로계약은 노동력을 거래하는 계약이다.8) 노동력의 가격, 즉 임금액은 그 교환가치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노동의 공급과 수요만으로 시장의 임금이 완전히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9) 노동은 마트에서 우유를 구매하듯이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므로10) 노동시장에는 공급과 수요의 변화로 임금이 조정되는 것을 제한하는 요소들이 있다.11) 근로자의 입장에서 노동력은 다른 상품들과 달리 그것을 거래하는 근로자에게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자리의 변경은 이주비용과 숙련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한편,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구인자 탐색비용과 훈련 등 초기투자를 수반하며 해고나 임금삭감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12)
임금 결정 과정에는 공정한 보상에 대한 규범도 개입한다.13) 그것은 기업 수준에서 결정되기도 하고, 단체협약 등 노사 간 교섭을 통해서, 혹은 법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다양한 임금 항목과 지급조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노동법은 노동력을 거래하는 계약인 근로계약을 규율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을 정한다는 점에서, 노동력의 공정하고 인간적인 거래를 규율하는 법14)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상 각종 수당의 산정 기준 금액으로서 통상임금을 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의 정의를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 정하고 있으며,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원은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이라 판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본다면, 근로자의 임금이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어 거래될 때, 비로소 임금과 근로시간은 공정한 거래의 조건이자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으로서 기능한다 할 것이다. 통상임금이 온전한 소정근로의 가치를 담아내야 하며 이를 강행성 있는 법규범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헌법 제32조 제1항의 적정임금15) 보장에 따른 요청이자, 헌법 제32조 제3항의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 보장에 따른 요청이기도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근로제공의 대가인 임금은 두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면 얼마를 주겠다고 할 때 그 금액도 임금이라 부르고, 실제로 그 업무를 수행한 후에 지불받는 금품도 임금이라 부른다. 전자는 통상임금의 개념에 가깝고, 후자는 평균임금의 개념에 가깝다.
통상임금은 왜 실제 수행한 후에 받는 임금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대가(소정근로대가성), ‘사전산정’ 가능성, 임금의 지급 시기와 지급 대상이 ‘미리 일정하게 정해졌을’ 것(정기성과 일률성)이 요구되는 것일까.
통상임금성을 판단함에 있어 왜 반드시 사전적 평가여야 하는지, 임금유연화와 성과급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적 평가로 제한하는 것은 반쪽짜리 가치 평가이며, ‘소정’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해석하여 근로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므로, 근로기준법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16) 통상임금은 시간당 근로의 대가로서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한” 임금 모두가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견해이다.17)
노동력과 노동은 구분해서 써야 하는 개념으로,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노동이다.18) 댐에 저장되어 있는 물이 노동력이라면, 수문이 열려 흘러나오는 물이 노동이다.19) 노동이 수행된 후 혹은 그 과정에서의 평가, 즉 사후적 평가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를 통상임금 개념으로 삼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홀 서빙 알바 18시~22시, 요일 협의, 시급 1만 원”이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일하게 된 직원은 사용자가 바라는 서빙 직원의 모습으로 일을 해야만 시급 1만 원을 받을 수 있는가. 때로 접시를 깬다든가, 손님의 옷에 음식물을 떨어뜨린다든가, 주문을 잘못 받는다든가 하면 시급 1만 원을 받지 못하는가. 혹은 반대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출근하지 못해 혼자서 1인 2역을 감당하고, 근무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일하며, 친절한 서비스로 손님들까지 늘어나고 있다면 서빙 직원의 시급은 1만 원이 아니라 동료의 몫까지 해낸 2만 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의 시급은 노사 간 합의나 별도의 정함이 없는 이상 1만 원이다.
근로자는 실제 수행하는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가 처분가능한 상태20)에 두는 것을 대상으로 하여 사용자와 계약한다. 근로기준법에서 실제 노동이 수행되지 않는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이라고 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21) 근로계약의 이행은 사용자의 처분에 맡겨진 근로자의 시간과 신체에 대해서 사용자가 지배권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22) 대법원 또한 작업시간의 도중에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 등이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근로자에게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23) 따라서 실제 수행하는 ‘노동’이 아닌 ‘노동력’이 소정근로개념에 부합하고 통상임금 또한 노동력에 대한 가치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로서 법령상 정의에 부합해야 하고, 당사자가 법령상 통상임금 개념과 다르게 임의로 변경할 수 없어야 한다.24) 실제 수행한 노동의 가치 평가를 통상임금 개념으로 삼는 경우, 사용자의 일방적 또는 주관적 평가에 의해 통상임금이 불안정해질 수 있고, 임의적 변경 가능성이 높아진다.25) 근로자와 사용자를 대등한 관계로 설정하기 위해 노동력을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의제한 것이 근로계약이지만, 실제 노동의 수행은 근로자의 인격 및 신체와 분리할 수 없다.26) 노동과정의 평가를 통해 소정근로의 시간당 단가를 구하는 것은 노동 수행에 대한 사용자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 근로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
성과급제가 확산되고 있으므로 사후적 평가가 포함된 임금 또한 통상임금 산정 시 산입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터의 결과물이 순전히 개인의 활동이라기보다 분업과 협업의 산물이며 개인의 기여 정도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며, 생산의 본질 자체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한 외부요소의 영향을 받기도 하며, 사용자는 대개 복합적 결과에 초점을 두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27) 어떤 근로자의 시간당 일의 가치, 즉 통상임금을 산정함에 있어 사후적 평가를 포함하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근로계약을 사용자에게 노동력의 처분 권한을 부여하는 계약이자, 근로 제공과 임금의 등가적 교환계약으로 보는 입장을 노동력대가설28)이라 하며, 이는 임금일체설에 속한다.29) 이에 반해 임금이분설은 근로계약은 신분계약이면서 교환계약이기도 하여 임금을 근로자 지위나 신분에 대한 대가와 구체적 근로에 대한 대가로 이분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대법원은 과거 임금이분설의 입장에 있기도 하였으나, 삼척군 의료보험조합사건30) 이후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를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보수’를 의미하므로, 근로 제공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근로자라는 지위에 기하여 발생하는 이른바 생활보장적 임금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대법원이 새로운 임금이분설31)의 입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32) 만약, 대상판결이 통상임금 개념을 가상적 도구 개념으로서의 임금이라 보는 데 한정하지 않고,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 근거하여 발생한 임금으로서 바로 실제 지급청구권이 발생하는 임금이라고 보았다면 타당한 지적일 수도 있다. 임금이분설은 근로계약 체결 시 발생한 임금채권 일부가 종업원 지위를 취득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33) 그러나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실제 지급청구권이 발생하는 임금개념과 실 근로와 무관한 가상적 임금으로서 통상임금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 기업에 편입되어 신분이나 지위를 취득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임금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어떤 노동력에 대한 온당한 가치 평가가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통상임금 개념에 있어 중심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노동력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먼저, 소정근로의 가치는 그 일의 가치와 속성에 대한 평가를 담아내야 할 것이며, 그 기준은 사회적 수준에서 합의될 필요가 있다.34) 노동력 또한 다른 상품들처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며, 그 가치는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임금결정은 어떤 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며, 누군가 혹은 어떤 직무를 사회·경제적으로 더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개별 근로자의 성취를 더 강조하고, 통상임금은 개별 근로자의노동가치를 평가한 것만을 산입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생산결과에 대한 기여도에 따른 조건을 임금에 부가하는 것은, 실제 그런 기여도를 산정할 수 있는가35)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재직 중이거나 일정 근무일수 이상의 근로자에게 높은 임금을 줌으로써 근로자의 이직을 방지하고 사기를 진작하며 동기를 유발하기 위함일 수 있다.36) 그러나, 그러한 조건 부가로 소정근로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에 부가된 조건은 소정근로의 가치가 달라서가 아니라, 이직방지·동기유발 등 경영상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 혹은 생산결과나 일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피하기 위해 부가된 조건이나 설정된 임금항목일 수도 있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지급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자율의 영역이라 하더라도37) 후견의 영역인 통상임금은 조건 부가와 상관없이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일률성’의 의미 또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정 범위의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이 일률성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하는 잣대인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은 통상임금이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작업 내용이나 기술, 경력 등과 같이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와 관련된 조건”이라 판시한 바 있다. 일률성의 개념을 어떤 ‘고정적’ 작업·환경·자격으로 보거나38) 통상임금을 ‘통상적’ 근로에 대한 가치 평가의 기준금액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39)
일률성을 판단할 때의 기준인 ‘일정 범위의 모든 근로자’,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는 소정근로가 수행될 환경, 분업과 협업 과정에서의 주어지는 직무나 근로자의 역할·지위 등의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가령, 라이더에게 비나 눈이 오면 임금 100원을 더 주는 폭염수당이나 호우수당을 가정해보자.40) 날씨라는 우연한 상황, 특수한 사정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므로 이 수당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수행하는 일에 대한 평가로서 포함하는 것이 맞을까. 통상임금은 근로자의 시간당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 평가이다. 특수한 상황과 공간에서의 근무에 대해서 지급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통상적인 업무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업장 내 누군가는 해야 하거나 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발생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업무도 소정근로 범위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이 일시적·간헐적 환경이나 업무라고 하더라도 소정근로의 범위에 예정되어 있는 이상 일률성 요건에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41)
통상임금은 ‘개별’ 근로자의 임금산정을 위한 도구이므로, 일률성의 의미는 ‘하나의 비율’, ‘비례적’ 의미라고 보는 견해42)가 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 개인의 노동가치이므로 집단적 노동가치로 변환시키는 일률성 요건을 삭제해야 한다는 견해43)도 있다. 통상임금이 개별 근로자의 임금을 산정하는 도구인 것은 맞으나, 이를 이유로 통상임금이 ‘개별’ 근로자의 소정근로나 총 근로만을 대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우리는 노동의 표면적 결과물, 즉 임금이나 이윤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을 개인적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노동은 사회와 집단 속에서 수행되며, 노동과정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들의 총합으로, 노동력에 대한 가치 평가 또한 사회와 집단 속에서 이루어진다. 통상임금의 개념에 ‘일률성’이 개념 징표로 포함되어 있는 것은 노동의 사회적 속성과 가치를 떠나서 노동력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삼척군 의료보험조합사건에서 대법원은 근로자의 지위에 의해 받는 생활보장적 임금을 부정하였으나 “임금의 지급 실태를 보더라도 임금은 기본적으로 근로자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계비”44)를 기초로 형성된다는 점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45)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 평가는 실제 수행되는 노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노동력에 대한 평가이며, 여기에는 생계비 등 재생산 비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계속적 계약46)의 일종인 근로계약의 특성상, 노동력에 있어서는 오늘의 노동력 상태가 내일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비용, 근로계약 시 온전히 제공될 거라 본 소정근로가 내일도, 그 다음날도 온전히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비용, 즉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근로계약은 노동력의 제공, 즉 소정근로를 거래 대상으로 의제하고 있지만, 노동관계는 추상적 관념의 작용이 아니라 정신을 포함한 신체의 작용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47)
재생산 비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생계비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실비를 정산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식대, 거주 비용, 교통비 또한 노동력 재생산 비용으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는 일률성 요건을 해석 적용하면서 부양가족수에 따라 차등지급되는 (진성)가족수당은 일률성이 부정되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48) 통상임금이 소정근로, 즉 노동력에 대한 가치평가이며, 여기에는 재생산비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부양가족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유만으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통상임금이 평균임금화되고 있다는 지적, 근로의 대가성과 소정근로의 대가성이 외형적 차이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49) 그러나, 근로의 대가성은 실제 노동이 수행된 후 지급되는 임금으로서 사후적 개념이며, 소정근로 대가성은 노동이 수행되기 전 노동력에 대한 가치 평가로서 사전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실제 노동이 수행된 후의 사후적 결과값이나 평가값이라 할 수 있는 무사고수당이나 순수한 성과급은 임금에는 해당하나 통상임금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근로대가성과 소정근로대가성의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무노동 무임금 신화,50) 임금의 후불 지급 관행 등으로 인해 마치 노동력의 사용, 즉 노동에 대한 대가만이 임금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실제 노동이 수행된 후 지급되는 임금을 평균임금 개념으로, 노동이 수행되기 전 노동력에 대한 가치 평가를 통상임금으로 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재직 조건부 사건에서 대법원은 통상임금을 실제 임금과 구별하고, 사용자와 근로자는 자유롭게 임금 구조 및 체계, 개별 임금 항목의 유형 및 내용, 임금 총액 등을 정할 수 있고, 자유롭게 임금에 관한 조건도 붙일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임금에 재직자 조건을 붙이거나 일정 근무일수를 조건으로 붙이는 것은 실제 노동이 수행된 후 지급과 관련된 조건이다. 지급과 관련된 조건이 부가되었다 하더라도,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평가로 노동 수행 전에 이미 성립한 임금인 통상임금성 판단에 영향을 미칠 바가 없고, 해당 임금항목은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
Ⅳ. 마치며 ; 근로기준법에서 통상임금의 의의
임금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이며, 통상임금은 실제 수행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에 대한 가치 평가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수행할 일에 대한 가치평가 뿐만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 비용과 관련된 임금 항목 또한 통상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임금에 대한 개념과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평가인 통상임금의 개념에 부합한다고 본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다툼이 첨예화된 것은 임금개념과 통상임금 산입범위, 가산수당 산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산정되어야 하는 평균임금 때문이다. 이로 인해 통상임금의 여러 기능 중 가산수당의 기준임금으로서, 사전적 산정도구로서의 기능이 주목되었다.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많은 근로자의 임금을 계산할 때 통상임금은 가산수당의 기준임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산수당은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장시간 근로를 유인하는 요인이기도 했다.51) 낮은 통상임금은, 사용자에게는 인력을 충원하는 것보다 연장근로 등을 활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더 손쉽도록 했고, 근로자에게도 가산수당을 받아서 생활을 유지·향상시키고자 하는 유인이 되었다. 소정근로에 대한 온당하지 않은 가치평가는 근로기준법이 지향했던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과 정반대의 모습을 낳았다.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하는 식에서 분자는 일률성과 정기성의 요건이 붙어 있기는 하나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므로 계약이 그 틀을 정하고, 분모는 약정유급시간이 더해지기는 하나 소정근로시간수 등 시행령이 그 틀을 정한다. 소정근로시간 개념은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으므로 분모는 법이 정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월급제 근로자의 임금항목 중에는 소정근로시간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고 월 정액 혹은 연 정액 또는 정률로 정해진 임금항목도 많다.
소정근로시간의 법정 한도를 고려하지 않고 노사 간에 계약으로 정해져 있던 월 급여를 법정 한도 내의 소정근로시간 등으로 나누고, 이를 가산수당의 기준임금, 즉 노동력의 시간당 단가로서 사용하는 것이 시간급 통상임금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1일 소정근로시간의 한도와 1주 소정근로시간의 한도를 정하고 있다. 이처럼 소정근로시간의 한도를 법으로 정한 것은 근로자에게 휴식시간을 정해주는 것이면서 시간주권을 회복시키는 것이기도 하다.52) 휴식은 근로자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이자 근로자가 인격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53) 근로시간 규제는 소정근로시간의 법정 한도 그 자체를 정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효과를 낼 수 없다.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의 법정 한도 내에서 일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근로자는 실제로 소정근로시간의 법정 한도를 준수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노동력이 정당하고 적정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의 산정도구로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시간의 법정 한도와 결부되어, 헌법이 요구했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과 적정임금 보장을 실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이 평균임금의 최저기준으로서 통상임금을 정하고 있는 취지 또한 여기에 맞닿아 있다.
통상임금이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 평가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같은 일을 함에도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성별이나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업의 규모와 소속된 기업이 어디냐에 따라 각각 통상임금이 달라지는 것이 타당한가. 임금을 결정함에 있어 산업별 혹은 직종별, 직무별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별로 결정되고 있는 것은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가치 평가가 아니라 사용자의 지불 능력 및 의사, 편견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다.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개념으로서 통상임금은 이러한 질문으로 나아가는 도구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