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제기
예를 들어 사업자 A가 100원에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계열사 B가 찾아와 A가 해온 종전 거래에 비해 자신과 거래하면 30원의 편익을 추가로 얻게 되니 상품 가격을 70원으로 낮추어 달라고 한다. 만약 A가 계열사 B가 주장하는 편익이 0인 것을 알고서도 할인을 제공한다면 이는 30원 상당의 지원행위인가?
LS사건에서 법원은 기존에 여러 계열사들이 구매해오던 물량을 통합했다는 이유로 통합구매량을 기준으로 물량할인(volume discount)을 제공한 행위가 정상적인 거래조건의 변경이라고 보았다. 전기동 제조사가 4개 수요계열사에 직접 판매해오다 지원의도에 따라 설립된 “통합구매법인”을 거쳐 판매하게 되면서 물량할인을 제공하였는데 법원은 통합구매량을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하라고 판시한 것이다.1) 4개 계열사를 대신하여 거래상대방으로 끼어든 통합구매법인의 ‘구매물량통합’이 물량할인을 받기 위한 위장용 명분(sham)이 아니라 할인금액에 상당하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 정상거래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부당지원행위를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통해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2) 유리한 조건의 거래 여부는 정상가격이라는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적 도구를 사용하여 판단하게 되는데 법원은 유사거래를 찾아 실제거래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도출할 것을 요구해왔다. 실제거래에서 제공된 급부와 동일한 급부가 유사한 상황에서 독립된 자간에 제공된 실제 거래사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부당지원행위 사건의 정상가격 이슈는 주로 비교대상거래의 ‘유사성’이 쟁점이 되어 왔으나 LS사건은 문제된 실제거래의 내용부터 쟁점이 된다. 특히, 사업자가 가짜 기대편익을 명분으로 거래의 외형을 정상조건의 거래처럼 설계한다면 거래의 실질을 평가하는 것이 정상가격 산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부당지원행위의 정상가격 산정 기준에 관한 것이다. LS판결이 실제거래를 인식하고 유사거래와 비교한 방식이 형식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조명하고 종전의 판례와 부당지원행위 규제취지에 비추어 실질에 입각한 분석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래에서 먼저 정상가격의 의의와 산정방법론을 소개하고 LS사건의 쟁점을 설명한다. III에서 물량할인의 의미를 살펴본 뒤 주요 판례 분석을 통해 우리 법원이 이미 실질주의에 입각한 정상가격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는 점을 제시한다. IV.에서 실질주의기준을 LS사건에 적용하여 쟁점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V.에서 부당지원행위 규제의 사각지대 방지를 위해 형식보다 실질에 기반 한 정상가격 산정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Ⅱ. 정상가격 산정 방법과 LS사건의 쟁점
정상가격은 부당지원행위의 위법성을 증명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되는 도구이다. 정상가격은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는 가격으로서3) 문제된 실제거래의 급부와 반대급부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사용된다.4)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는 지원행위의 성립과 부당성이 요건이고 지원행위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로서 지원객체에게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할 때 성립한다. 대가성 지원행위의 경우 대가차이가 상당할 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가 되므로 정상가격은 대가성 지원행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는 핵심도구가 된다.5) 과다한 경제상 이익 제공 여부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데, 대가차이는 이러한 제반 사정 가운데 하나이다.6) 부당성은 지원객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저해, 경제력집중 야기 등 공정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을 때 인정되는데 지원행위로 인한 경제상 이익이 중요한 고려요소이다.7) 정상가격을 이용하여 도출되는 지원금액이 경제상 이익의 핵심이기 때문에 정상가격은 과다한 경제상 이익 제공 여부는 물론 부당성 판단 시에도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8)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과징금은 지원금액을 근거로 한다.
정상가격 산정방법은 부당지원행위 규제조항이 최초로 시행된 1997년 이후 많은 법집행을 통해 법리가 다듬어지고 적용례가 축적되어 오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당지원행위 조사가 대규모로 실시되면서 자금지원행위와 관련된 법집행 사례가 축적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상금리 산정 법리가 형성되었다. 이후 상품·용역거래와 관련된 법집행 사례들이 등장하면서 정상가격 산정방법이 보다 일반화된 형태의 법리로 확장되었다. 또한, 이정표가 되는 주요 사례들을 통해 법리가 구체화되고 특수한 상황에서 합리성을 갖춘 개별적인 정상가격 산정 법리도 제시되었다. 이와 같이 축적된 법리와 적용례가 심사지침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이하에서는 먼저 심사지침에서 제시된 정상가격 산정방법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뒤 정상가격의 핵심적 개념요소인 급부와 유사거래에 대해 설명한다.
심사지침은 정상가격에 대해 “지원주체와 지원객체 간에 이루어진 경제적 급부와 동일한 경제적 급부가 시기, 종류, 규모, 기간, 신용상태 등이 유사한 상황에서 특수관계가 없는 독립된 자 간에 이루어졌을 경우 형성되었을 거래가격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9) 따라서, 정상가격은 경제적 급부, 유사한 상황 등 추상화된 용어를 개념요소로 채용하고 있고, 유사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독립적 거래라는 가설적 상황을 인위적으로 구성한 뒤 교환가치를 산정토록 하는 가상가격 산정 방식(constructive pricing)을 선택하고 있다.10) 특히, 문제된 실제거래의 가격과 정상가격이 동일한 급부를 대상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정상가격 산정방법은 일련의 ‘과정’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는 LS사건과의 비교를 위해 상품·용역거래를 대상으로 설명한다. 심사지침은 3단계 과정을 규정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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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거래와 동일한 상황에서 독립된 자 사이에 실제 거래한 사례가 있는 경우 그 거래가격을 정상가격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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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일한 실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먼저 해당 거래와 비교하기에 적합한 유사한 사례를 선정하고, 그 사례와 해당 지원행위 사이에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래조건 등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살펴, 그 차이가 있다면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정상가격을 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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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사한 사례도 찾을 수 없다면 부득이 통상의 거래 당사자가 거래 당시의 일반적인 경제 및 경영상황 등을 고려하여 보편적으로 선택하였으리라고 보이는 현실적인 가격을 규명함으로써 정상가격을 산정한다.
심사지침의 문언에서 자명한 것처럼, 정상가격 산정은 실제 사례에 근거한 거래비교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정상가격 산정방법을 특정하지 않고 단계별로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동일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실제 거래 사례, 해당거래와 비교하기에 적합한 유사거래 사례 등을 순차적으로 찾아보아야 하고, 유사거래 사례를 찾았다면 거래조건의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 실제거래에 가깝도록 조정해야 한다. 통상의 거래가격은 실제 비교사례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이 단계에서는 국세조세조정법, 상증세법 등에서 제시된 방법을 참고할 수 있다.
심사지침의 정상가격 산정방법 가운데 1)과 2)는 아래에서 후술하는 신세계SVN 판결이 반영된 것이다.12) 해당 판결은 정상가격 산정을 위해 공정위가 증명해야 할 내용을 명확히 제시하였지만 증명부담도 크게 높였다.13)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공정위로서는 정상가격 산정을 위해 시장의 거래실태에 대해 방대하고도 엄격한 조사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급부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령에 별도의 정의규정이 없다. 심사지침에서 지원행위와 정상가격을 정의하면서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동 지침이 지원행위에 대한 정의를 통해 급부를 언급한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14)
““지원행위”라 함은 지원주체가 지원객체에게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제공하는 경제적 급부의 정상가격이 그에 대한 대가로 지원객체로부터 받는 경제적 반대급부의 정상가격 보다 높거나(무상제공 또는 무상이전의 경우를 포함한다. 이하 이 지침에서 같다)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여 지원주체가 지원객체에게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말한다.”
한편, 현행 공정거래법은 제45조 제1항 제9호 가목에서 부당지원행위를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상에서 인용한 공정거래법과 심사지침의 규정을 통해 급부가 가지는 부당지원행위 규제 상 의미를 몇 가지 도출해 볼 수 있다.
첫째, 급부는 지원행위의 내용이다. 급부는 지원주체와 지원객체 간에 제공된 것으로서, 반대급부는 급부에 대한 대가로서 제공되는 급부이다.
둘째, 급부의 유형이 공정거래법에 예시되어 있다. 시행령에서 자금지원, 자산·상품 등 지원, 인력지원 등 지원행위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지만 법에서 예시된 급부의 유형이 동일하다.15) 법에서 나열하고 있는 급부의 유형 이외에 ‘등’으로 포섭될 수 있는 유형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셋째, 급부는 ‘거래’는 물론 ‘제공’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법률은 ‘제공’과 ‘거래’를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법령에서 각각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학계에서는 경제상 이익을 무상 이전하는 행위가 ‘제공’이고 반대급부가 전제되는 쌍무계약이 ‘거래’라는 의견16)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지원행위의 대가관계가 반드시 쌍무계약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예컨대, 메가박스 사건에서 교환광고행위가 명시적 계약이나 정산과정 없이 실행되었는데,17) 그럼에도 법원은 지원주체가 제공한 경제적 급부의 정상가격과 지원객체가 제공한 반대급부의 정상가격을 비교한 뒤 지원행위임을 인정하였다.18) 시행령도 “... 상당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제공 또는 거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어 ‘제공’과 ‘거래’ 모두 대가관계가 따를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심사지침은 대가차이에 무상제공 또는 무상이전이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급부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 행위이어야 하지만 대가관계가 쌍무계약과 같이 명시적이어야 한다거나 무상이전 여부를 기준으로 구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넷째, 급부는 정상가격의 산정 대상이다. 지원주체와 지원객체 간에 이루어진 급부와 반대급부의 정상가격을 비교함으로써 지원행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가격 산정을 위해서는 실제거래에서 이루어진 급부와 반대급부의 내용을 특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정상가격 산정대상이 되는 급부와 반대급부는 ‘경제적’ 급부이다. 즉, 급부의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것인데 대법원은 급부의 경제적 가치를 제공받은 자의 입장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19) 동 판결은 지원객체가 발행한 기업어음을 지원주체가 중개기관을 통해 고가 매입한 사건인데, 법원은 실제 거래가격이 지원객체에게 제공되는 자금의 할인율인 기업어음 발행할인율이 되어야지 중개기관의 수수료까지 포함한 지원주체의 매입할인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20) 나아가, 지원금액도 “지원주체가 지출한 금액이 아니라 지원객체가 받았거나 받은 것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경제상 이익만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21)
결국, 급부는 거래의 내용이기 때문에 정상가격 산정을 위해서는 실제거래에서 이루어진 급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제공받은 자의 입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여야 한다.
심사지침이 정상가격 산정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거래비교 방식은 비교대상거래들 사이의 유사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심사지침은 정상가격의 정의와 산정방법에서 상이한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정상가격을 정의할 때는 독립된 거래가 “시기, 종류, 규모, 기간, 신용상태 등이 유사한 상황”에서 이루어졌을 경우를 전제하는 반면, 정상가격을 산정할 때는 “해당 거래와 비교하기에 적합한 유사한 사례”를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22) 특히, 실제거래와 유사사례 간에 ‘거래조건 등’의 차이가 있다면 이를 조정하도록 있다.
심사지침의 규정 내용은 법적 기준으로서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상가격을 정의할 때 채용된 ‘유사한 상황‘이라는 문구가 정상가격의 산정 과정에서 “비교하기에 적합한 유사사례“로 환치되는데, 유사성의 판단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세계SVN 판결은 유사사례가 복수일 수 있고 이 경우 비교하기에 더 적합한 사례를 선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23)
한편, 심사지침은 ‘비교하게 적합한 유사사례’를 찾아낸 뒤, 해당 사례가 실제거래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래조건 등’에서 차이가 있다면 실제거래에 가까워지도록 차이를 조정하여 비교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유사상황’을 만들어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거래조건 등’ 가운데 거래조건에 대해서는 판례가 예시하고 있는데, 상품이나 용역의 품질, 내용, 규격, 거래수량, 거래횟수, 거래 시기 등이다.24) 따라서, 이러한 거래조건들을 유사거래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변수(parameter)로 활용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각 거래조건들 가운데 어떤 요소가 유사성 판단에 더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거래조건 이외의 사항(‘등’으로 표현된 부분)도 유사성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래조건 이외의 사항 가운데 법원이 유사성 판단에 고려한 대표적인 요소가 거래상대방(또는 거래당사자)이다. 2012년 현대·기아차의 냉연강판 고가 매입 건에서 대법원은 ‘거래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비교대상거래의 유사성 판단기준으로 고려하였다.25) 문제된 거래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지원주체)가 자동차용 냉연강판 물량의 대부분을 계열관계에 있는 하이스코(지원객체)로부터 매입하였는데 포스코, 동국제강 등 다른 공급사와의 거래를 비교대상거래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하이스코 냉연강판과 다른 공급사 냉연강판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상품의 품질, 규격, 거래수량 등 거래조건의 차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로지 하이스코와 다른 공급사의 특성에만 주목하였다.26) 하이스코는 원재료인 열연코일을 대부분 수입하였고 다른 공급사는 포스코로부터 조달하였는데, 당시 국제시세가 폭등하자 하이스코는 원재료 가격변동을 냉연강판 공급가격에 그대로 전가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공급사들은 국내 열연코일 공급가격 억제정책에 따라 냉연강판 가격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아 하이스코 거래와 다른 공급사 거래는 비교대상거래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27) 해당 판결은 정상가격의 전제가 되는 “유사상황”이 유사거래의 선정을 통해 구체화될 때 거래조건을 넘어 거래상대방이 처한 상황 –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 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자금지원행위의 정상금리를 산정할 때 지원객체의 신용상태를 고려해야 하는 것과 같다.
LS사건의 정상가격 이슈는 유사거래 선정과 거래조건 차이의 조정에 관한 것이다. 먼저 해당 사건의 관련 사실관계와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8)
기업집단 LS는 전기동 제조사(지원주체)와 실수요사를 모두 계열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전기동 제조사는 당초 그룹 내 4개 수요계열사 각각에 전기동을 직접 판매해오다 그룹 차원에서 통합구매법인(지원객체)이 설립되자 각 수요사별 공급물량의 합계물량을 통합구매법인에 몰아주고 “물량할인”을 이유로 대폭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였다. 통합구매법인은 전기동 제조사로부터 구매한 물량을 4개 계열사가 판매하면서 각사의 종전 구매가격보다 약간 낮은 가격을 책정하였다. 통합구매법인은 거래이행 과정에서 매개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고 전기동 제조사는 통합구매법인과 거래를 개시한 후에도 종전처럼 각 수요계열사를 대상으로 판매계획을 수립하고 거래조건도 직접 협상하였다. 통합구매법인에게는 일정한 마진이 보장되도록 그룹차원에서 거래구조를 설계해 주었다.29)
공정위는 정상가격을 산정하면서, 전기동 제조사가 같은 시기에 비계열사와 거래한 사례가 있었지만 거래물량이 현저히 적어 동일 또는 유사거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심사지침 상 3단계 방법인 통상의 거래가격을 추단하였다. 통상의 거래당사자라면 통합구매법인을 거치지 않고 계열수요사와 직접 거래하는 것이 보편적 선택일 것이므로 지원주체와 4개 계열사 간 직거래 물량(즉, 통합구매법인이 계열사 각각에 판매한 물량)을 정상거래물량으로 보았다. 정상가격은 비계열사 구매물량과 정상물량을 비교하여 정상물량과 유사한 비계열사 물량이 있으면 해당 거래가격을 정상가격으로 삼았다. 즉, 공정위가 실제사례가 없다고 본 사유와 통상의 거래가격을 산출한 사유가 모두 통합구매물량을 정상거래조건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가 실제 거래물량인 통합구매물량과 크게 차이나는 직거래물량을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하였다. 거래물량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거래조건임에도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기동 제조사가 비계열사와 거래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비교대상거래로 삼아 거래물량 차이를 조정하여 정상가격을 구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는데 법원의 논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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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경제적 급부는 전기동 제조사가 통합구매법인에게 제공한 국산전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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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구매물량이 실제거래 물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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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동 제조사가 비계열사에 판매한 사례가 유사거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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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거래 물량을 통합구매물량에 가깝도록 조정하여 정상가격을 구하여야 한다.
공정위와 법원의 판단 차이는 통합구매물량을 기준으로 제공된 가격할인(이하 ‘이 사건 물량할인’)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정위는 통합구매물량이 정상거래물량이 아니기 때문에 직거래물량을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해야 한다고 본 반면, 법원은 통합구매물량이 실제 거래물량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할인된 가격을 정상가격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고안된 분석 틀(analytical framework)을 이용하여 평가해 볼 수 있다. 먼저, 통합구매법인의 ‘구매물량통합’을 경제적 급부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법원의 논리가 ‘구매물량통합’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30) 다음으로, 유사거래 선정과 거래조건 차이 조정 시 거래상대방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지 살펴보는 것이다. 법원이 거래물량을 중요하게 고려하였지만 판례는 거래상대방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LS판결에 대해 두 가지 쟁점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쟁점①은 전기동 제조사가 통합구매법인으로부터 제공받은 반대급부에 관한 것이다. 전기동 제조사가 통합구매법인에 전기동을 제공하고 ‘구매물량통합’과 할인된 가격을 제공받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쟁점②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실제거래의 상대방인 통합구매법인과 유사거래의 상대방인 실수요사는 처한 상황이 다르고 전기동 제조사에게 제공하는 기대편익도 다를 수 있어 이러한 차이가 전기동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제기한 두 가지 쟁점은 정상가격 법리의 적용 기준에 관한 것이다. 거래의 외형대로 법리를 적용할지 거래경위와 경제적 실질을 고려할지에 관한 선택의 문제로 이어진다. 필자는 우리 법원이 이미 여러 사건에서 후자의 선택을 해왔고 부당지원행위의 규제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후자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실질에 따라 정상가격 법리를 적용한 판례들을 살펴본 뒤 쟁점을 논의한다.
Ⅲ. 부당지원행위 규제와 실질주의 기준
법원은 부당지원행위 사건에서 급부가 문제되는 경우 거래경위와 경제적 실질을 기준으로 급부의 내용을 판단하는 법리를 발전시켜왔다. 또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유사거래를 선정하고 비교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정상가격을 단순히 지원주체와 객체 간 거래의 외형이나 계약상 거래조건에 기초하여 형식적으로 산정하기보다 거래의 실질과 시장의 현실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요 판례를 통해 법원의 태도를 살펴본다. 판례는 정상가격 산정과 관련된 사실관계와 판시사항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서울고등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1) 기업집단 효성은 지원객체인 갤럭시아 일렉트로닉스(이하 “GE”)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그룹차원에서 자금지원 방안을 기획하였다. GE가 250억 원 규모의 무보증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금융회사가 설립한 SPC가 이를 인수하기로 하고 재무상태가 우량한 계열회사가 지원주체가 되어 SPC와 TRS계약을 체결해주는 구조였다. TRS계약은 정산기일에 청산가치가 공정가치 보다 크면 지원주체가 SPC에 차액을 지급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SPC로부터 차액을 지급받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그룹차원에서 의뢰한 회계법인 보고서에 따르면 계약시점의 TRS계약의 가치가 0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법원은 이 사건의 전체 거래구조를 지원주체가 SPC와의 TRS계약 체결을 통해 GE의 전환사채 발행을 간접 지원한 것으로 파악하였다.32) 특히, TRS계약이 외형상 지원주체와 SPC간 쌍무계약의 형식을 띄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SPC에게 무상 지급보증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하였다.33) 즉, 이 사건 거래의 급부를 TRS계약이 설계된 외형대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실질에 따라 판단한 것이다. 법원이 TRS계약의 경제적 가치를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TRS계약은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으로서 금융자산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자산거래의 외형을 띄고 있으나 법원은 거래경위와 경제적 실질을 고려하여 지급보증, 즉 자금지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TRS계약이 쌍무계약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양쪽 당사자(지원주체와 SPC)에게 각각 제공하기로 한 급부의 가치를 거래경위, 객관적 분석 결과 등에 근거하여 실질적으로 평가한 뒤 SPC에게만 – 사실상 지원객체에게 -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로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행위를 무상보증이라고 본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유지하였다.36)
서울고등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7) 하이트진로는 맥주 제조사인데 당초 비계열사로부터 공캔을 직접 구매해오다 그룹 차원에서 구매대행사를 설립하자 구매대행사를 거쳐 공캔을 구매하는 형태로 거래 방식을 변경하였다. 하이트진로는 구매대행사의 공캔 매입가격에 일정한 마진(공캔 1개당 2원)을 더하여 구매대행사에게 지급해 주었는데 거래상대방 변경 후에도 여전히 공캔 제조업체와 직접 거래조건을 협상하는 등 거래방식이 변경되지 않았다. 구매대행사도 형식적인 매개체로서 거래이행 과정에서 운송, 검수, 재고관리 등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다. 하이트진로는 해당기간 동안 구매대행사 이외의 회사로부터 공캔을 구매한 사례가 없고 구매대행사도 하이트진로 이외의 회사에게 공캔을 판매한 사례가 없다. 다른 맥주 제조사가 다른 공캔 제조업체로부터 공캔을 구매한 사례가 있으나 규격 등 상품 사양이 달라 하이트진로가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동일·유사한 거래사례가 없다고 보고 하이트진로와 공캔 제조업체간 직거래(즉, 구매대행사가 공캔 제조업체로부터 구매하는 거래)를 비교대상거래로 인정하였다.38) 직거래는 해당시기의 실제 거래사례가 아니라 통상의 거래당사자라면 당시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선택하였을 가상의 거래 방식이다.
이 사건 거래를 급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평가해 볼 수 있다. 하이트진로가 종전에는 제조업체로부터 공캔을 직접 제공받아오다 구매대행사로 구매처를 변경하였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공캔에 더해 구매대행서비스라는 급부도 추가 제공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구매대행사가 구매대행서비스와 공캔을 급부로 제공하고 하이트진로는 공캔 매입가격에 마진을 더해 반대급부로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구매대행사가 제공한 구매대행서비스는 거래경위 면에서 통행세 수취 명분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실제로 수행한 역할이 없어 경제적 가치도 0인 가짜 급부이다. 더구나 시장상황을 보더라도 직거래가 통상적인 거래관행이어서 구매대행사가 계열관계에 있지 않았다면 직거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였다. 따라서 하이트진로가 구매대행사에 지급한 대가 중 마진 부분은 가짜 급부에 대한 것으로서 무상 자금 제공과 사실상 동일하다. 이와 같은 결론은 이 사건 정상가격을 직거래 가격으로 보는 것과 결과적으로 동일하다.
문제된 거래는 전형적인 통행세거래 행위로 소위 ‘통행세조항’이 공정거래법에 도입되기 이전에 발생하였지만 법원은 일반적인 부당지원행위 규제조항을 적용하여 위법성을 인정하였다.39) 즉, 법에서 통행세거래 행위가 부당지원행위의 유형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규제조항의 법리를 적용하여 부당지원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역시 하이트진로가 공캔을 직접 구매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실질적 역할이 없는 매개체를 거쳐 매수하면서 매수가격에 더해 마진을 제공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유지하였다.40)
서울고등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41) 이 사건에서 지원주체는 영화상영업체(메가박스)이고 지원객체는 계열관계에 있는 방송채널사업자(온미디어)이다. 메가박스는 온미디어를 위한 광고영화를 자사 영화관을 통해 상영해주었고 온미디어는 메가박스를 위한 영상홍보물을 제작하여 자사 방송채널에서 방영해주었다. 이와 같은 교환광고 행위는 지원주체가 제공한 용역(광고영화 상영)과 지원객체가 제공한 용역(영상홍보물 방영) 각각이 급부인데 지원주체가 제공한 급부의 정상가격이 쟁점이 되었다.
당시 영화상영업계는 광고영화를 직접 수주하지 않고 전속 광고대행사를 통해 수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메가박스는 이 사건에서 온미디어로부터 광고영화를 직접 수주하였으나 다른 광고주의 광고영화는 대행사를 통해 수주하였고 온미디어의 광고영화도 온미디어가 계열 분리된 후에는 대행사를 통해 수주하였다. 다른 영화상영업체들도 각각 전속 광고대행사를 통해 광고영화를 수주하였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메가박스가 온미이어에 제공한 용역의 정상가격이 온미디어가 광고대행사에 지급하였을 광고료라고 보았다.42) 메가박스가 온미디로부터 광고영화를 직접 수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직거래 광고료가 아니라 대행사에게 지급할 광고료를 정상가격으로 본 것이다. 대행사를 통해 광고영화를 수주하는 것이 통상적인 거래관행이고 지원금액은 지원객체가 “받았거나 받은 것과 동일시할 할 수 있는 경제상 이익”이기 때문에 온미디어가 광고대행사에게 지급해야 할 광고료를 정상가격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정상가격 산정방식은 하이트진로 사건과 대조가 된다. 하이트진로 사건이 구매대행사를 통한 거래임에도 직거래를 비교대상거래로 선정한 반면, 메가박스 사건에서는 직거래임에도 불구하고 광고대행사를 통한 간접 거래를 비교대상거래로 선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반되는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비교대상거래를 선정한 기준이 경제적 실질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거래의 외형상 온디미어가 메가박스로부터 급부를 직접 제공받았기 때문에 광고대행사에게 지급할 대가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메가박스와 특수관계에 있지 않았다면 간접구매가 현실적으로 유일한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즉, 온미디어가 받은 급부의 경제적 가치를 거래의 외형에 따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현실과 경제적 실질에 따라 판단한 것이다.
신세계SVN판결에서 대법원은 정상가격 산정을 위해 유사거래를 선정하고 거래조건의 차이를 조정할 때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43) 특히, 거래상대방(또는 거래당사자)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사건은 대형할인점을 운영하는 이마트가 자사 매장에 입점하여 D&D라는 브랜드로 베이커리 매장을 운영하는 계열사(신세계SVN)와 특정매입거래를 한 사안이다. 판매수수료율이 문제 되었는데 유사거래 선정과 정상가격 산정에 관하여 대법원은 고등법원과 판단을 달리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마트가 매장 내에서 도너츠, 만두 등 즉석음식매장을 운영한 업체와 거래한 사례(이하 ‘도너츠·만두 매장 사례’)가 유사거래로 적정하다고 보고 정상 판매수수료율을 추산하였다.44) D&D 매장과 고정인력 배치, 판매되는 상품의 특성, 즉석제조 판매방식, 특정매입거래 등 거래형태가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다른 대형할인점 내에 이 사건 D&D 매장과 비교할 만한 베이커리 매장 사례가 없다고 보았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다른 대형할인매장에 계열 베이커리업체가 입점한 사례가 있지만 독립된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배제하였다. 서울민자역사에 입점한 파리바게뜨, 뉴코어아울렛 강남점, 산본점, 농협하나로마트 모현점에 입점한 뚜레주르 등의 사례(이하 ‘다른 대형할인점 사례’)도 있었지만 거래당사자의 시장점유율, 인지도, 매출액 등이 유사한 상황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정상가격 산정이 잘못되었다고 보았는데 근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45) 원심이 유사거래로 본 도너츠·만두 매장 사례는 “입점업체의 취급품목, 매장크기, 종업원 수, 투자비, 매출액, 인지도, 고객유인효과 등”에서 이 사건 거래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대형할인점 사례보다 더 적합한 비교대상거래가 아니라고 보았다. 다른 대형할인점 사례는 비록 이 사건 거래와 차이가 있지만 차이를 조정하지 않고 비교대상거래에서 배제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하였다. 나아가, 만두·도너츠 매장 거래사례가 비교에 적합한 유사거래가 아니지만 이를 비교대상거래로 삼고자 한다면 베이커리 매장 거래사례와의 차이를 조정하였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거래는 대형할인점과 입점업체 간 특정매입거래이다. 판매수수료율은 통상적으로 유통업체가 상품을 판매한 후 판매대금의 일정비율을 공제하고 납품업체에게 지급하는 데 구체적인 수수료율은 당사자 간 협상과 계약에 따라 결정된다. 거래상대방이 매출에 기여하는 정도가 판매수수료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만두·도너츠 매장 거래는 베이커리 매장 거래와 거래에 수반되는 기대편익이 다를 수밖에 없다.46) 대법원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기준으로 비교대상거래의 유사성, 즉 보다 적합한 유사거래를 선정하여야 하고 이 사건처럼 거래상대방이 가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거래상대방까지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이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형식보다 실질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위에서 소개한 최근의 판례가 등장하기 전부터 나타난 것이다. 법률에 자금·자산·인력 거래만 부당지원행위 유형으로 규정되어 있던 시기에도 상품·용역거래를 통해 금융상 이익제공 효과가 나타날 경우 자금지원행위로 인정하였다.47) 문제된 행위를 법률에 규정된 형식에 따라 판단하기보다 실제 지원의 효과를 야기하는 것이면 지원행위로 포섭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48) 이러한 태도는 거래의 외형보다 효과, 즉 문제된 거래가 초래하는 경제적 효과에 따라 규제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서 부당지원행위 규제취지를 고려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49)
거래의 외형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법원의 태도는 간접지원 형태의 부당지원행위를 인정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효성판결에서와 같이 지원주체와 객체 간 직접적인 거래 없이 제3자 매개를 통해 객체에게 경제적 이익이 귀속되는 경우에도 지원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50) 실제로 법원은 이러한 태도를 오래전부터 유지해왔다.51) 이와 같이 거래의 외형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태도는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부당지원행위 규제를 회피하는 행태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52)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법원은 정상가격 산정과 관련하여 실질을 중시하는 태도를 취한 바 있다. 문제된 실제거래의 급부를 거래의 외형보다 경제적 가치 또는 효과를 기준으로 파악하고, 유사거래를 선정하고 거래조건의 차이를 조정할 때도 계약서상 거래조건에 국한하지 않고 거래상대방이 처한 상황, 상대방과의 거래에 수반되는 기대편익 등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였다. 다만, 정상가격 분석을 실질에 기준을 두더라도 객관적 근거에 기초하였는데 실제거래가 이루어진 전후 경위, 객관적으로 확인 및 비교 가능한 지표, 시장의 실제 상황 등이 활용되었다. 정상가격 산정 과정에서 단계별로 실질주의 기준을 적용한 모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실제거래를 특정하는 단계에서 거래경위와 경제적 효과를 기준으로 해당 거래에서 이루어진 급부와 반대급부의 내용을 확정한다.(이하 ‘1단계’)
둘째, 유사거래를 탐색하고 선정하는 단계에서 급부와 반대급부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거래조건 등’)를 포괄적으로 고려한다.(이하 ‘2단계’)
셋째,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단계에서 실제거래와 유사거래 간에 존재하는 거래조건 등의 차이를 실제거래에 가깝도록 조정한다.(이하 ‘3단계’)
실제거래와 유사거래를 실질에 따라 식별하려는 기준은 부당지원행위 규제 취지 상 필요하다. 부당지원행위 규제는 경제적 이익 제공행위를 통해 공정거래가 저해되는 폐해를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실에서는 거래의 외형을 이용하여 규제를 우회하는 행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상가격이 부당지원행위의 위법성 판단을 넘어 과징금 부과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거래의 외형과 실질 간에 명백한 괴리가 있다면 객관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범위 내에서 실질을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Ⅳ. 실질주의 기준과 LS사건에의 적용
LS사건은 통합구매법인에 물량할인을 제공한 사안이다. 법원은 비계열사 거래를 유사거래로 보고 거래물량을 통합구매물량에 가깝도록 조정하여 정상가격을 구하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동 판결에 대해 ‘구매물량통합’을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급부로 볼 수 있는지 여부(쟁점①)와 거래상대방을 가격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하는지 여부(쟁점②) 등 두 개의 관점으로 분석해 본다. 아래에서 먼저 물량할인의 의미를 살펴보고 쟁점을 분석한다.
가격할인(discount)은 현실의 시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사업자의 사업 활동이다. 판매량을 늘리거나 경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53) 가격할인이 경쟁수단이 될 경우 “급부경쟁 또는 능률경쟁(competition on the merit)의 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다.54)
물량할인(volume discount)은 가격할인의 한 종류로서 대량구매 시 할인을 제공하는 가격정책이다. 구매물량이 증가할수록 단가가 크게 할인되는 형태가 많다. 사업자가 물량할인을 제공하는 동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Dolan은 사업자가 다음과 같은 경우 물량할인정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58)
물량할인은 사업자에게 비용절감과 같은 효율성을 발생시켜 할인의 재원을 창출하기 때문에 경쟁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59) 다만, 물량할인의 외형을 갖추고 있더라도 배제효과를 가지는 조건이 부가되어 있는 경우 경쟁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60)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인텔과 퀄컴의 조건부 리베이트행위가 대표적이다.
서울고등법원은 LS사건의 실제거래 가격을 전기동 공급사의 가격정책에 따른 물량할인으로 보았다. 4개 계열사 각각의 구매물량에 견주어 ‘통합구매물량이 더 크기 때문에’ 할인을 더 크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구매물량통합’이 전기동 공급사에게 위 1.에서 살펴본 ‘판매자의 통상적인 물량할인 동기’를 충족시킨다는 전제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거래물량이 전기동 가격결정에 상당히 중요한 고려요소라고 보면서 이 사건 지원주체가 적용한 물량할인과 다른 전기동 제조업체들이 적용하는 물량할인을 동일한 성격의 것으로 보았다.61)
이와 같이 본다면 ‘구매물량통합’이 전기동 제조사에게 편익을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통합구매법인이 과연 경제적 급부를 제공한 것인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전기동 제조사가 전기동을 급부로 제공하고 ‘구매물량통합’과 할인된 가액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구매물량통합’은 반대급부에 해당할 것이다. 통합구매물량에 따른 할인금액은 ‘구매물량통합’이라는 반대급부의 대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구매물량통합’을 반대급부로 볼 경우 경제적 가치가 0이다. 급부의 경제적 가치는 제공받는 자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므로 ‘구매물량통합’의 경제적 가치는 전기동 제조사의 입장에서 평가해 보아야 한다. 통합구매법인의 설립경위, 통상의 거래관행, 거래이후 관행 등에 비추어 볼 때 ‘구매물량통합’은 가격할인을 받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역할이 없다.62) 특히, 통합구매물량은 종전 계열사 구매물량을 단순 합계한 것이기 때문이 전기동 제조사 입장에서 구매물량 증가에 따른 규모의 경제 달성이나 거래의 안정성 확보 등 비용차원의 효익도 없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전기동 제조사가 통합구매법인과 거래한 이후 거래물량 증가, 재고비용 또는 운송비용 감소 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63) 경쟁상 이점이 있었다고 볼 여지도 없다. 법원은 전기동 제조사가 사실상 독점기업으로서 가격협상력을 보유하고 있어 물량할인을 제공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64) 전기동 제조사가 제공받은 ‘구매물량통합’이라는 반대급부의 실상은 경제적 가치가 0인 가짜 급부(sham)이며 이를 근거로 제공된 할인금액은 사실상 무상 자금 제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구매물량통합’을 반대급부로 보는 것은 법리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현행 정상가격 법리는 지원주체와 객체 간에 이루어지는 급부의 유형을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구매물량통합’이 법률이 특정하는 급부의 유형에 포섭된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65) 설령 전기동 제조사가 통합구매법인의 ‘구매물량통합’으로부터 어떤 편익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기동 제조사에게 제공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구매물량통합’은 4개 수요계열사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인 것처럼 거래구조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거래물량이 전기동 가격 결정에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전기동 제조사와 비계열사 간 거래사례를 유사거래로 삼아 거래물량의 차이를 조정하여 정상가격을 산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거래물량이 통상적으로 가격 결정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 지원주체인 전기동 제조사가 시행한 물량할인정책과 다른 전기동 공급업체들이 시행한 물량할인정책이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사건 지원주체는 통합구매법인을 대상으로 물량할인정책을 적용하였고 다른 전기동 공급업체들은 전기동 실수요사를 대상으로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신세계SVN 판결이 명확히 했듯이 유사거래는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거래상대방이 대표적인 요소인데 이 사건에서 특히 그러하다. 문제된 실제거래의 상대방이 통합구매법인이므로 유사거래의 상대방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구매자로 선정하여야 한다. 통합구매법인은 ‘실수요 계열사간 구매물량통합’이라는 기능을 근거로 할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해당 기능은 거래가격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그런데 비계열사 가운데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거래상대방, 즉 구매자는 없다. 거래상대방까지 고려한다면 비계열사 거래가 유사거래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66)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계열사 거래사례를 기준으로 거래물량 차이를 조정하려면 비계열사가 통합구매법인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거래상대방과 관련된 요소도 조정하여야 한다. 이는 신세계SVN 판결에서 법원이 비록 만두·도너츠 매장 거래사례가 비교하기에 적합한 유사거래 사례가 아니지만 비교대상거래로 삼고자 한다면 베이커리 매장 거래와의 차이점을 조정하여야 한다는 판시한 취지와 동일하다. 즉, 비계열사가 실수요사가 아니라 통합구매법인과 마찬가지로 기존 계열사들의 물량을 단순 합산하여 이 사건 통합구매물량 규모의 물량 수준으로 거래하도록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비계열사의 거래가격은 자신의 당초 거래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매물량통합이 전기동 제조사에게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열관계에 있지도 않는 회사가 통합구매물량을 제시한 들 전기동 제조사가 더 큰 할인을 제공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신세계SVN판결에서 만두·도너츠 매장거래가 베이커리 매장거래의 비교대상거래로 적합하지 않다고 본 것은 거래에 수반되는 기대편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LS사건에서도 실수요사인 비계열사와의 거래에 수반되는 기대편익이 통합구매법인과의 거래에 수반하는 기대편익과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구매물량의 증가 또느 안정적 확보를 통해 전기동 제조사에게 규모의 경제를 창출해 주겠지만 후자는 구매물량의 증가가 없는 기존 물량의 단순통합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사건 지원주체는 독점적 사업자이고 시장의 현실은 직거래가 통상적 거래관행이다.67)
실질주의 기준을 적용하면 LS사건에서는 유사거래를 찾을 수 없거나 종전 거래가격이 정상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통합구매법인의 ‘구매물량통합’을 반대급부로 보든, 통합구매법인과을 거래상대방으로 하는 거래에 수반되는 기대편익으로 보든 경제적 가치가 0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법원의 판단과 상충되는 지점이다. 법원은 ‘구매물량통합’이 1:N 거래를 1:1:N 거래로 구조를 변경하였고 통합구매법인으로 인해 전기동 제조사가 직면하게 되는 거래조건이 변경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통합구매법인에게 제공한 물량할인은 실상 통합물량을 빌미로 계열사에 할인을 제공하는 우회적 수단, 즉 비정상적 거래조건에 불과하다. ‘구매물량통합’이라는 명분과 ‘통합구매물량’이라는 외형 그대로 실제거래를 인정하게 되면 이를 정상거래조건으로 보게 되고 계열사 지원을 위해 손해를 보도록 설정된 가격조차 정상가격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초래된다.68) 물량할인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함으로써 획득되는 비용 절감을 재원 삼아 제공되는 것이지만 이 사건 ‘구매물량통합’은 그러한 재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Ⅴ. 결어
부당지원행위는 과징금과 형벌의 부과 근거가 되므로 투명하고도 엄격한 법집행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거래의 외형을 우선하게 되면 규제의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 부당지원행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우회적인 수법이 동원되고 있어 사각지대가 우려된다.
부당지원행위 규제는 1997년 시행된 이후 수차례 보완을 거듭해왔다. 자금·자산거래를 대상으로 시작된 규제에 상품·용역 거래가 추가되고 일감몰아주기와 통행세 거래가 포함되었다. 부당성 증명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특수관계인 부당이익 제공행위 금지조항도 도입되었다. 규제를 피해 새로운 유형의 지원행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입법적 대응에는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한계도 있다.
우리 법원은 그간 부당지원행위 규제 법리를 발전시켜 오면서 규제취지를 고려하여 경제적 실질을 살펴보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상가격 산정은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특히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를 잘못 산정하여 처분이 취소되는 사례가 많다.69) 정상가격은 증명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가상가격을 구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커서70) 법적 기준의 명확성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다.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형식보다 실질을 우선하면서도 명확성이 높은 법적 기준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