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작하며
공작물책임은 공작물의 점유자와 소유자가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의 하자로 인해 타인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지는 법리를 의미한다(민법 제758조 제1항 본문). 이때 1차적으로 공작물의 점유자가 배상책임을 지게 되지만,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면하고 2차적으로 소유자가 배상책임을 진다(민법 제758조 제1항 단서). 예컨대, 갈라진 돌 축대가 장마로 무너져 통행하던 사람이 다친 때에 점유자인 임차인이 1차로 책임을 지게 되지만, 임차인이 통행인의 접근을 막는 충분한 조치를 하고 있었다면 소유자인 집주인이 책임을 부담한다.1) 즉 1차 책임인 공작물점유자책임은 손해방지의무의 해태로 인한 과실책임(중간책임)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2차 책임인 공작물소유자책임은 주의의무해태(과실)와 관련이 없는 위험책임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2)
공작물책임에 있어서 하자와 그로 인한 손해 인정 여부는 실무에서 자주 다투어지는 쟁점이다. 대법원은 공작물책임의 요건 중 하나인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의 하자’나 공작물책임에서의 ‘손해’의 의미에 대해서는 비교적 입장이 명확하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공작물 설치보존의 하자를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위와 같은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그 공작물을 설치·보존하는 사람이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3) 그리고 공작물의 하자로 인해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가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라고 보지 않는다.4)
그런데 대법원은 최근 공작물책임의 손해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된 사안에서, 비록 공작물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라고 하더라도 해당 손해가 계약이 이행되지 못함에 따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러한 손해는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손해라고 보기 어려워 공작물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5) 이 판결은 공작물책임의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적지 않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기본적으로 공작물책임은 불법행위 중에서도 일반불법행위와는 달리 위험책임의 법리를 규범화한 특징을 가지며, 인정되는 손해의 범위에 관하여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특별히 제한을 가할 규정이나 사유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계약의 미이행으로 인한 손해와 공작물책임의 손해를 어떠한 기준으로 구분하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공작물책임의 손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작물책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배경 아래 이 글은 공작물책임에 관하여 실무에서 자주 문제 되는 두 가지 쟁점인 하자와 손해의 판단을 중심으로 판례의 태도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공작물책임의 손해 인정에 관한 최근 대법원의 판결은 실무에 큰 의미가 있으므로 상세히 검토한다. 구체적으로 우선 민법 제758조 공작물책임의 의의와 성질 및 다른 책임과의 관계 등을 개관함으로써 공작물책임이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 제도임을 확인한다(Ⅱ). 다음으로 공작물책임의 하자 판단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와 이에 대하여 살펴보고(Ⅲ), 공작물책임의 손해 판단에 관한 최근 대법원의 판시를 검토한 후(Ⅳ), 실무에서 공작물책임 규정을 어떻게 적용해야 바람직할지를 모색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Ⅴ).
Ⅱ. 민법 제758조 공작물책임 개관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은 공작물6)의 설치·보존이나 수목의 재식·보존의 하자에 의해 손해가 발생한 때에는 공작물이나 수목의 점유자와 소유자에게 특수한 책임을 과한 규정이다. 공작물점유자의 경우 손해방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한 때에는 면책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중간책임의 성격을 갖지만, 공작물소유자의 책임은 무과실책임으로 규정되어 있다.7)
책임주체의 고의·과실에 의한 가해행위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작물책임은 과실을 귀책근거로 하는 일반불법행위로부터 독립된 위험책임의 체계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8) 일부 견해는 공작물점유자와 소유자는 자기의 지배영역 아래 위험발생원을 두고 있고 그 위험발생원인 공작물로부터 현실적인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주의의무인 거래안전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이러한 거래안전의무를 다하지 못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것으로 보아 공작물책임의 근거를 거래안전의무에서 찾기도 한다.9)
공작물책임의 연혁과 관련하여, 단체주의적인 게르만법과 개인주의적인 로마법의 책임이론을 타협하여 성립된 것으로 본다.10) 게르만법은 생명이 없는 물건으로부터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그 점유자에게 무과실책임을 인정하였고, 로마법은 비록 위험한 공작물로부터 생긴 손해에 대해 일반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는 규정은 없었으나11) 건물이 붕괴된 경우에 그 소유자에게 과실책임을 기초로 하면서도 그보다 무거운 책임을 인정하였다.12)
또한 공작물책임 제도는 다수의 국가가 이전부터 도입하고 있는 법리이다. 독일 민법은 건물 기타의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의 하자로부터 생긴 손해에 대하여 점유자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주의를 다한 때에는 면책된다고 규정한다(독일 민법 제836조 내지 838조).13) 스위스 채무법은 건물 기타의 공작물의 소유자에게 그 붕괴가 설치·보존의 하자로부터 생긴 것이 아님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그 붕괴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무과실책임을 인정한다(스위스 채무법 58조). 이탈리아는 건물 기타의 공작물의 소유자에게 그 붕괴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인정하지만, 그 붕괴가 설치·보존의 하자로부터 생긴 것을 증명하면 소유자를 면책한다(이탈리아 민법 제2053조). 외국 입법례가 있다. 여러 국가가 공작물책임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은 공작물책임이 일반 불법행위책임과는 다른 독자적 지위를 갖는 제도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과 민법 제750조의 일반불법행위책임은 요건이 다르므로 피해자가 공작물책임을 묻는다고 하여 민법 제750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가 제약되지는 않는다. 즉 공작물의 하자로 인한 피해자는 민법 제758조에 따른 공작물점유자와 소유자에게 배상책임을 구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공작물의 시공자에게 민법 제750조에 의한 일반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할 수 있다.14) 만약 공작물이 사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하여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 하자로 타인에게 입힌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 등이 민법 제758조가 아닌 국가배상법에 따라 배상책임을 지고(국가배상법 제5조), 이 경우 면책이 허용되지 않는 무과실책임으로 규정되어 있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작물 자체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인해 발생한 화재에 대해서는 민법 제758조에 따른 공작물책임을 진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은 실화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경우 연소로 인한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한하여 적용된다. 특히 현행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은 손해배상액의 경감에 관한 특례 규정15)만을 두었을 뿐 손해배상의무의 성립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16) 즉 공작물의 설치·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그 공작물에 화재가 발생하고, 그 화재로 연소가 된 경우 그 하자와 연소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때에는 그 공작물의 점유자 또는 소유자가 민법 제758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이 경우 실화가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 연소된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에 대하여는 배상의무자가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의 경감을 받을 수 있다.17)18)
한편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제조업자 등의 책임을 규정한 제조물책임법은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과 몇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명확하다. 즉 양자는 모두 특수불법행위라는 점, 과실책임주의의 수정이라는 점 등이 유사하다.19) 하지만 제조물책임의 주체는 제조업자임에 반하여 공작물책임은 공작물의 점유자와 소유자이다. 또한 현행 제조물책임법상 제조물의 개념에 부동산은 포함되지 않지만(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1호), 공작물책임의 공작물에는 부동산이 포함된다. 이에 더하여 공작물책임의 공작물소유자는 면책이 허용되지 않지만, 제조물책임의 제조업자는 면책사유에 해당하면 면책될 수 있다(제조물책임법 제4조).
이처럼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 제도는 채무자의 귀책사유를 요구하는 채무불이행책임이나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요구하는 일반불법행위책임과 달리 공작물점유자의 방호조치의무위반 또는 공작물소유자가 무과실책임을 지는 독자적인 제도이다. 또한 공작물책임은 연혁적으로 게르만법과 로마법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여러 국가에서 도입되었으며, 제조물책임이나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상의 책임과도 일부 중첩되는 부분이 있으나 책임의 근거와 요건이 다른 만큼 엄연히 구별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공작물책임이 고유영역을 지닌 불법행위책임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Ⅲ. 공작물책임의 하자 판단
공작물책임이 성립하려면 손해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해야 한다. 여기서 민법 제758조 제1항이 규정한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는 공작물이 용도에 따라서 통상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안전성을 구비 했는지를 판단할 때는 그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당해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해서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20) 공작물의 설치 당시부터 존재했던 하자가 설치의 하자21)이고, 설치 후에 발생한 하자가 관리(보존)의 하자22)이나 민법 제758조가 하자의 내용에 따라 효과가 다르지 않으므로 양자의 구별실익은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23)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한 사고는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상의 하자가 손해 발생의 유일한 원인이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가 사고의 공동원인 중 하나가 되는 이상 사고로 인한 손해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본다.24)
하자의 존재를 증명할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지만, 대법원은 증명의 정도에 관해서 피해자에게 다소 유리하게 판단한다. 예컨대, 고속도로상으로 차단블록이 밀려 나와 화물차 운전자가 블록 한 개를 충격하여 중앙분리대를 넘어 하행선을 따라 운행 중이던 차량과 충돌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고속도로의 보존상 하자가 존재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피해자 측에 있지만 일단 그 하자의 존재가 인정된다면 고속도로의 점유관리자는 당해 하자가 불가항력으로 인한 것이거나 손해방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해태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증명해야 비로소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25) 또한 편도 2차선 도로의 1차선에 교통사고 원인이 될만한 크기의 돌이 방치되어 있었고 도로의 점유관리자가 이를 관리할 가능성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도로의 관리·보존상의 하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26) 즉 법원은 해당 사고가 만약 하자가 없었더라도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점을 공작물의 점유자나 소유자가 증명하지 못하면 그 손해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에 의하여 발생한 것으로 판단한다.27)
대법원은 편도 2차선 고속도로의 갓길과 2차선에 걸쳐 고여 있는 빗물에 차량이 미끄러져 사고가 난 경우에 고속도로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를 인정했고,28) 폭설로 차량 운전자 등이 고속도로에서 장시간 고립된 사고의 경우에 고속도로의 관리자가 고립구간의 교통정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교통제한 및 운행정지 등 필요한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속도로의 관리상 하자를 인정하였다.29) 또한 집중호우로 제방도로가 유실되면서 보행자가 사고를 당한 경우 지방도로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를 인정했고,30) 도시가스의 공급시설 내지 사용시설 등과 같은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공작물의 경우에는 그 시설이 관계 법령에 따른 시설기준 등에 부적합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31)
반면에 행인이 여관방을 들여다보기 위해 보호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보호벽이 무너진 사안에서 대법원은 통상의 용법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공작물책임을 부정하였고,32)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5층 건물의 옥상에 무단으로 올라가서 기합을 받다가 굴러떨어진 사고에서 건물 점유자의 책임을 부정하였다.33) 또한 공작물의 설치 후에 제3자의 행위로 인해 본래에 갖추어야 할 안전성에 결함이 발생 된 경우에는 공작물에 그와 같은 결함이 있다는 것만으로 성급하게 공작물의 보존상의 하자를 인정해서는 안 되고 그 공작물의 구조, 장소적 환경과 이용상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그와 같은 결함을 제거하여 원상으로 복구할 수 있는데도 이를 방치한 것인지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심리하여 하자의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접 토지에서의 건축공사로 인해 그 공사 현장과 경계를 이루는 담장에 발생한 균열 등에 대해 공사현장을 점유하며 공사를 시행하고 있는 자에게 여러 차례 보수를 요구한 경우, 공작물인 담장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아, 담장이 무너지면서 사람이 사망한 사안에서, 담장 소유자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인한 책임을 부정하였다.34)
대법원은 설치·보존상의 하자를 ‘공작물이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고 있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정의하고, 그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방호조치의무를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위 안전성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한다.35) 전항에서 살펴본 판례들도 위 기준에 따라 하자의 유무를 판단한 결과이다. 판례가 각 사안에서 하자 판단의 기준인 방호조치의무 준수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고려한 사항들, 예컨대 통상적인 용법 외의 사고이거나 설치 후에 제3자의 행위가 개입되어 사고가 발생한 경우이거나, 법적 기준을 충족하였음에도 그 이후에 외부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사고가 발생한 경우 등36)은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기 위해 법원이 숙고한 결과이다.
하지만 공작물의 하자 판단에 있어서 방호조치의무가 반드시 개입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설치·보존상의 하자를 판단할 때 당해 공작물이 통상 요구되는 수준의 안전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는 타당하지만, 그 안전성 판단을 공작물점유자가 방호조치의무를 이행하였는지에 의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37) 이 견해는 공작물책임이 종래부터 연혁적으로 물건책임이거나 위험물에 내포된 손해의 책임이라고 인식되었는데 방호조치의무는 행위책임을 전제로 한 개념이어서 공작물책임에 대한 인식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방호조치의무를 점유자의 항변사유로 파악한다면 이를 요건사실인 하자 존재 부분에서 언급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38)
생각건대 민법 제758조 공작물책임은 과실책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법 제750조의 일반불법행위책임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다. 공작물책임은 행위자의 고의·과실이 아닌 공작물의 하자 있는 상태에 바탕을 둔 (점유자에게 책임을 묻는 관점에서는) 중간책임 또는 (공작물소유자에게 책임을 묻는 관점에서는) 위험책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공작물의 하자를 판단할 때 설치·관리자의 방호조치를 끌어들이지 않는 것은 공작물책임과 과실책임의 영역인 불법행위책임 간의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또한 하자를 물건이 통상적으로 갖추어야 할 안전한 상태의 결여로만 보아 원고(피해자)가 이를 주장·증명하면 일단 청구원인 단계에서는 일단 하자가 성립하게 되고, 그 공작물에 대한 방호조치의무를 해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공작물점유자에게 넘어가므로 피해자 보호에 유리한 구조가 확립된다.39)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민법 제758조 하자 판단 시 방호조치의무를 배제하자는 견해는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이 견해에 전적으로 찬동하기는 어렵다. 우선 공작물의 하자는 단순히 해당 공작물의 물리적 결함에만 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법원이 정의하는 설치·보존상의 하자의 핵심개념인 ‘통상 갖추고 있어야 할 안전성’은 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통념과 기술의 수준, 용도와 이용방식 등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는 규범적인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이때의 안전성은 공작물의 객관적으로 완전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민법 제758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설치/보존상의 하자’라는 문구 자체가 공작물을 설치하고 보존하는 사람의 행위(노력)을 전제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더하여 위험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공작물소유자의 경우에 한하는 것일 뿐 공작물점유자의 경우에는 중간책임으로 해석되므로 방호조치의무라는 주의의무 개념을 하자 판단에서 아예 배제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개별 사안에서 공작물의 하자 판단 시에 방호조치의무를 다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방호조치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최근 핸드 룰(Hand Rule 또는 Hand Formula)40)을 명시적으로 처음 언급하였다. 즉 어린이가 수영장에 빠져 중상해를 입은 사고에 대하여 수영장 관리자가 공작물책임을 지는지가 문제가 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하자를 판단할 때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 정도, 위험이 현실화하여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침해되는 법익의 중대성과 피해의 정도,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에 드는 비용 또는 위험방지조치를 함으로써 희생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이러한 법리는 법경제학에서 비용·편익 분석이자 균형적인 접근법이며 미리 세세한 기준을 정해 제시하기 어려우면 ‘Hand Rule’을 참고해서 사고의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를 취하는 데 드는 비용(B)과 사고 발생 확률(P) 및 사고 발생 시 피해의 정도(L)를 따져서 ‘B < P·L’인 때에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해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공작물의 점유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방식도 고려 가능하다고 판시하였다.41)
핸드 룰은 공작물의 하자가 쟁점이 되는 사안에서 과실 유무에 관한 판단을 경제학적 개념으로 공식화한 것으로서,42) 점유자가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는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유용한 수단이 된다. 기존 대법원이 제시한 사회통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작물 하자가 문제 되는 모든 사안을 핸드 룰만으로 풀기는 어렵다.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의 중요한 가치를 고려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와 같은 가치를 언제나 경제적으로 비교하거나 환산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법 감정에 맞지 않을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43) 대법원 역시 핸드 룰을 ‘참고’할 수 있다고만 판시하였을 뿐, 이를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개별 사안에서 공작물 점유자의 방호조치의무 위반을 판단할 때, 핸드 룰과 같은 법경제학 관점에서 과실 유무를 검토하되 이에 구속될 것이 아니라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방호조치의 정도를 확정하기 위한 유력한 참고사항 정도로 삼으면 족하다고 판단된다.
Ⅳ. 공작물책임의 손해 판단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대법원은 공작물의 하자로 인하여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가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라고 보지 않는다.44) 그런데 대법원은 발생한 손해가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손해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손해인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판례법리를 문언 그대로 이해하자면 공작물의 결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손해라면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된 손해’라고 볼 여지가 클 것이나, 손해 발생이 공작물의 하자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외부의 원인에 의한 것이었다거나 공작물의 하자가 주된 원인이 아닌 경우 등은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된 손해’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대법원은 위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손해인지가 문제 된 사안에서,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하며 계약이 이행되지 못함에 따른 손해는 공작물책임상의 손해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시를 하였다.45) 이 사건에서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상세한 논거를 들어 피고의 공작물책임을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번에도 구체적인 설명 없이 원고가 입은 손해는 계약의 미이행에 따른 손해일 뿐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상 손해가 아니라는 취지로 간략히 설시하고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따라서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내세운 논거를 살펴보고 공작물책임상 손해를 부정한 판단이 타당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고 A주식회사는 공업용 전자급 가스 생산 판매 및 분배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고, 피고 B주식회사는 신재생에너지(태양광, 태양열, 풍력, 지열, 바이오매스, 연료전지 등) 발전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다. 원고와 피고는 원고 소유의 대전공장, 여천공장, 울산공장에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를 설치한 후 이를 활용하여 전기요금을 절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의 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한 전기요금 절감 서비스 공급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울산공장과 관련하여 원고가 절감된 전기요금 중 20%를 취득하고 나머지 80%는 피고에게 전기요금 절감 서비스 이용료로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서비스 이용료 산정 약정을 맺었다.
피고는 이 사건 계약에 따라 3개 공장에 ESS 설비를 설치하였고(그 중 울산공장에 설치된 ESS 설비를 ‘이 사건 ESS 설비’라 한다),47) 울산공장은 2018. 6. 10.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울산공장의 이 사건 ESS 설비에서 2019. 1. 21. 화재가 발생하여 이 사건 설비가 전소하였다(이하 ‘이 사건 화재’라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 이 사건 ESS 설비 내부 배터리 셀에서 발화원인이 된 흔적을 식별하였고, 울산남부경찰서는 이 사건 화재와 관련하여 범죄혐의점이 없다는 이유로 내사종결 처리하였다. 원고는 2019. 4. 16. 피고에게 이행불능을 이유로 이 사건 계약 중 울산공장에 대한 계약을 해지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였고, 피고는 원고에게 울산공장에 대한 이 사건 계약의 일부해지에 동의하였으나 이 사건 화재에 대한 피고의 귀책사유가 없으므로 손해배상 요구는 거부하였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주위적으로 이행불능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으로 공작물의 하자를 원인으로 한 민법 제758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피고는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는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여 이 사건 화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고,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는 이 사건 ESS 설비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방호조치를 다하였고 원고가 청구하는 손해는 이 사건 계약을 통한 이행이익이므로 이 사건 ESS 설비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인해 발생한 손해가 아니라고 항변하였다.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이 사건 ESS 설비가 전소되었고, 설비를 재설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피고의 이 사건 계약상의 의무는 이행불능이 되었다. 피고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이 사건 계약이 해지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부분은 배터리 내부이고 배터리를 공급한 회사는 C 주식회사여서 피고가 사전에 배터리의 하자 여부를 확인하여 설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점, 배터리 내부에 하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피고의 귀책사유로 보기 어려운 점, 피고가 수시로 원격 혹은 직접 방문하여 이 사건 ESS 설비 점검을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나 울산남부경찰서의 내사에서도 피고의 과실이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의 선관주의의무를 위반을 인정할 수 없어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다.
민법 제758조 제1항을 원인으로 한 원고의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살펴본다. 공작물책임의 법리와 이 사건에서 인정되는 구체적 사정49)을 종합하면 이 사건 ESS 설비에는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존재하고, 그로 인하여 이 사건 화재가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판단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ESS 설비의 점유자50) 또는 소유자로서 책임을 부담한다. 손해배상의 범위와 관련하여, 피고는 이 사건 계약에 따라 계약기간의 종기까지 이 사건 ESS 설비를 가동하여 원고로 하여금 절감된 전기요금 상당의 이익을 누리게 할 의무가 있는데, 이 사건 ESS 설비 설치상의 하자로 인하여 이러한 피고의 이 사건 계약상의 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민법 제758조 제1항에 따라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51)
항소심은 이 사건 계약 중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울산공장에 대한 계약 부분이 해지되었다는 점, 피고에게 이 사건 계약상 피고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은 점, 피고에게 민법 제758조 제1항의 공작물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1심 판결과 같다. 다만 항소심은 손해배상의 범위와 산정 기간 등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손해의 성격에 관하여 1심 재판부는 이행불능에 따른 전 기간 이행이익으로 본 반면에, 항소심 재판부는 서비스 재개에 필요한 합리적 기간 내 손해로 보았다. 또한 손해의 산정 기간에 관하여, 1심 재판부는 상업운전 개시일부터 계약 종료 시까지로 보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서비스 재개 소요시간(화재 발생일로부터 1년)으로 제한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공작물책임의 목적을 공작물을 관리하거나 소유한 사람이 그 위험에 비례하는 주의를 다하도록 하고, 위험이 현실화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하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는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었는지, 그리고 그 공작물을 설치 보존하는 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로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52)
특히 공작물의 하자로 인해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가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 사건에서도 설비의 하자가 화재의 원인인 점은 인정하면서도 계약에 따른 전기요금 절감 서비스를 받지 못해 생긴 손해는 단지 ‘계약이 이행되지 못한 결과’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대법원은 해당 손해가 공작물 자체의 위험이 실제 피해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민법 제758조 제1항이 규정한 손해의 개념을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손해로 한정하고,53) 이 사건의 손해는 계약의 미이행으로 인한 것이므로 공작물책임의 손해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이는 계약 미이행에 따른 손해 즉 계약상의 이행이익 상실은 곧 공작물책임상 손해가 아니라는 것인데 이러한 판단을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우선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계약상의 이행이익 상실로 보아야 할지에 따라 공작물책임 적용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공작물책임을 규정한 민법 제758조의 적용 여지가 대폭 줄어들게 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꾀하려는 동 조항의 독자적 입법취지가 퇴색된다. 특히 계약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작물책임의 성립을 부정하면, 피해자가 계약을 체결한 경우 오히려 더 불리해질 수 있다. 공잘물책임은 무과실책임인데 반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은 피해자가 계약상대방의 과실이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직접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공작물책임은 공작물의 관리·소유자가 해당 공작물의 위험방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현실화한 위험으로부터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데 제도의 취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때 공작물책임에서 발생하는 손해는 결국 해당 공작물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액 즉, 계약상 이익의 상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단지 피해자와 공작물의 점유자·소유자 간에 계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작물책임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실제 사례에서 공작물책임이 자주 문제 될 수 있는 영역(설비의 운영 등)에서 민법 제758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피해자가 불법행위법상의 보호 범위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게 되면 종국적으로 계약상의 책임과 별개로 불법행위책임인 공작물책임 조항을 둔 의미가 없게 되고 동조가 형해화될 것이다.
그리고 불법행위책임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 공작물책임의 손해를 따지는데, 주로 채무불이행책임과 연계되는 계약의 존재 여부를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할 논리필연적인 이유도 찾기 어렵다. 대법원은 판결이유에서 이 사건에서 발생한 손해가 계약상 이행이익의 상실인지 여부를 민법 제758조 제1항의 손해에 해당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은 이유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의 입장을 굳이 선해하자면, 하급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원고나 피고의 귀책사유 없이54) 불능이 되어버린 계약관계에서 공작물책임 법리를 통해 원고가 계약상 이행이익 전부를 배상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아 ‘계약상 이행되지 못함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기준을 공작물책임 성부에 끌어들여 공작물책임의 성립을 부정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계약관계가 해소되는 것과 불법행위책임의 일종인 공작물책임이 성립되는지는 엄연히 서로 다른 평면의 논의이다. 계약 당사자의 귀책으로 인해 계약이 해소되었는지와 무관하게, 공작물책임의 요건이 갖추어지는 한 방호조치의무를 게을리한 공작물점유자는 공작물책임을 져야 하고, 나아가 공작물소유자는 아무런 귀책이 없더라도 공작물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이 ‘계약의 미이행에 따른 손해’가 ‘공작물의 하자와 관련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손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위험의 현실화’라는 문언을 합리적 근거 없이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데에 따른 결과이다. 특히 ESS 설비는 화재 위험성이 있는 고위험 시설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화재에 따른 설비 가동 중단이나 이로 인한 경제적 이익의 상실은 하자와 결합된 위험이 현실화된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사건에서 하급심은 물론 대법원도 이 사건 ESS 설비에 설치·보존상의 하자가 존재한다는 점과 그 하자가 이 사건 화재 발생의 원인이라는 점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하자와 관련된 위험이 현실화는 곧 이 사건 ESS 설비에 발생한 화재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손해는 화재가 발생한 설비의 파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ESS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함으로 인해 원고가 부담하게 된 추가적인 전기요금 등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사회통념에 부합한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손해는 결국 계약 미이행에 따른 손해와 다름없다. 대법원이 어떠한 논거를 가지고 계약의 미이행에 따른 손해를 공작물 하자의 위험이 현실화된 손해에서 배제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언의 문리적 해석에 비추어 볼 때 대법원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더하여 민법 제758조 제1항은 위험책임의 성격을 갖는다. 즉 1차 책임자인 공작물점유자가 방호조치의무를 해태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증명하면 공작물소유자에게 책임이 이전되는데, 공작물소유자는 자신에게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피해자가 공작물의 하자와 그로 인한 손해 발생을 주장·증명한 이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피해자로서는 공작물소유자의 귀책사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므로 공작물책임은 피해자 보호에 유리한 제도이고, 이는 채무자 혹은 가해자의 과실을 주장·증명해야 하는 계약책임은 물론 일반 불법행위책임과 구별되는 공작물책임 제도의 중요한 취지이다. 대법원이 계약 미이행에 따른 손해라는 형식적인 분류를 통해 공작물책임의 적용을 부정하는 것은 공작물책임 제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대법원이 만약 손해배상 범위의 무제한적인 확장을 우려하여 계약 미이행으로 인한 손해는 공작물책임의 손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취지라면, 이는 1심과 원심 판결문에서 상세히 설시하는 바처럼 손해배상 범위를 한정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화재로 인해 피고의 계약상 의무이행이 불능이 되었으므로 잔여기간 전체에 대한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보아 손해배상의 산정 기간을 상업운전 개시일부터 계약 종료 시까지 총 15년으로 보았다. 반면에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ESS 서비스는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타 사업자를 통해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는 기간으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아 손해배상 산정 기간을 이 사건 화재발생일로부터 서비스 재개에 소요되는 기간인 1년으로 한정하였다. 이처럼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뒤에 손해배상액의 산정 단계에서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만으로 과도한 배상을 방지할 수 있음에도, 공작물책임의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처럼 공작물책임을 부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급심과 대법원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공작물인 이 사건 ESS 설비에 설치·보존상의 하자가 존재하고 공작물점유자인 피고55)가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실도 인정되며, 위 하자가 원인이 되어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였으므로 공작물책임이 성립하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이 공작물책임 성립을 부정하는 논거인 ‘계약이 이행되지 못함에 따른 손해’라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공작물책임이 성립한다는 전제 아래 이 사건에서 검토되어야 할 쟁점은 손해배상의 범위이다. 원고가 청구한 전기요금 절감액은 이 사건 ESS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였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직접적인 이익이었고, 이 사건 화재로 인해 위 이익이 상실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민법 제758조 제1항의 손해의 범위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바와 같이 15년의 손해배상기간을 인정한 것은 과다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1심 재판부는 ESS 설비 설치 등이 대체가능한지 명확히 판단하지 않았으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위 작업이 대체가능하다면 설비를 대체하여 다시 전기요금 절감을 위한 설비 가동 시까지 소요되는 기간으로 손해를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Ⅳ. 맺으며
민법 제758조가 규정한 공작물책임 제도는 공작물의 설치·보존의 하자에 의하여 손해가 생긴 때에 공작물의 점유자 및 소유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도모한다. 특히 공작물소유자의 책임은 무과실책임으로 이해되는 점에서 불법행위법 내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은 공작물책임에 관하여 실무에서 자주 문제 되는 하자와 손해의 판단을 중심으로 판례의 태도를 정리하고 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실무에서 공작물책임을 어떻게 적용하여야 바람직할지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먼저 공작물책임의 의의와 성격을 살펴보았고 다수의 외국도 공작물책임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 및 다른 책임제도와의 차이점을 검토하여 공작물책임 제도가 불법행위법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공작물책임의 하자 판단과 관련하여,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본다는 점 및 그 안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방호조치의무 준수 여부라고 보는 대법원의 태도를 확인하였다. 방호조치의무를 하자 판단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검토하였으나, 공작물책임의 하자를 해당 공작물의 물리적 결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민법 제758조 제1항 문언에도 맞지 않고 사회통념상 요구수준이 규범적 개념에 가까우므로 객관적인 물리적 결함만으로 하자 판단기준을 제한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때 사회통념이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예측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는데 최근의 판례가 언급한 핸드 룰이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점도 살펴보았다.
공작물책임의 손해 판단과 관련하여, 판례는 하자와 관련된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손해만이 공작물책임의 손해에 해당하고, 특히 최근 판결은 공작물에 하자가 있고 그 하자가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발생한 손해가 계약이 이행되지 못함에 따른 것이라면 공작물책임상의 손해가 아니라고 보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계약상의 이행이익 상실로 보아야 할지에 따라 공작물책임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민법 제758조의 적용영역을 대폭 줄이고, 공작물책임 제도의 입법취지를 퇴색하게 만들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 만약 대법원의 의도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면 공작물책임의 성립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공작물책임의 성립은 인정하되 구체적인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그 범위를 제한하면 충분할 것이다.
결국 공작물책임 제도는 계약책임은 물론 일반 불법행위책임과도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의 책임제도이고, 피해자의 청구가 공작물책임의 요건을 구비한 이상 원칙적으로 공작물책임의 성립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대법원의 판단은 공작물책임의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할 위험이 있으므로, 향후 공작물책임의 성립과 손해배상 범위의 구별을 명확히 하여 개별 사안에서 손해의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는 방향으로 공작물책임 법리를 전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