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평가받던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에서는 ‘직권남용죄’로 약칭한다)가 이른바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및 적폐청산을 계기로 부활에 성공했다. 국정농단사건 이전 10년 동안은 직권남용으로 입건된 사건이 년평균 350건 정도였고, 기소인원은 년평균 12명이었는데, 2017년에는 771건이 입건되고 25명이 기소되었다.1) 직권남용죄의 이 부활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분출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묵인되어 온 직권남용의 관행을 청산하여 공직사회에 건전한 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결국 민주주의가 보다 성숙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2) 정권교체기에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직무수행을 위축시켜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3)
이러한 기대와 우려는 법해석에서도 그대로 표출되어 왔다. 심지어 직권남용죄의 ‘직권과 남용 및 의무’개념 등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반한다고 보기도 한다.4) 하지만 학계의 다수 의견은 직권남용죄가 명확성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남용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직권과 남용 등의 개념을 상당히 엄격하게 해석하여 왔다.5) 그리고 실무 역시도 이 다수설과 마찬가지로 ‘권한 없으면 남용 없다’는 논리에 따라,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상당히 제한하여 왔다,6) 사법농단 사건의 하나로 분류되는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의 재판개입사건에서 1, 2, 3심이 모두 무죄를 선고한 것은7) 기존의 이러한 실무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특히 이 재판개입사건의 느린 진행 및 그에 대한 무죄선고는 다수 학자들을 자극하였다. 이들은 그 재판개입을 반헌법적·반법률적 행위로서 마땅히 처벌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판결문의 맹점을 찾는데 집중하였다. 앞선 대법원 판례들의 취지를 면밀히 분석하기도 하고, 또 유명 학자들의 ‘법’발견방법론을 재탐색하면서,8) 재판개입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각 법원의 판결이 실은 ‘제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대법원의 표현들에서 사법농단사건의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 맥락을 찾아내고, 직권남용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직권남용이라는 말은 월권적 행위나 지위남용도 포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그 예이다.9)
현재 국회에는 직권남용죄의 확대적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형법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10) ‘직권을 남용하여’라는 현행 규정을 ‘직권을 남용·월권하거나 지위를 이용하여’로 개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최근에 정부와 여당에서는 2026년 상반기 중에 감사원의 정책감사를 폐지함과 더불어 직권남용죄가 더 이상 남용되지 않도록 그 개정을 서두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11) 직권남용죄가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아울러 그동안 누적된 공직사회의 피로도를 일소하고 복지부동의 자세를 반전시켜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이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직권남용죄의 확대적용을 위한 개정안을 발의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축소적용을 위한 법개정을 추진하는 등 직권남용죄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확대적용론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이고 또 그에 따를 경우 직권남용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본 후, 직권남용죄의 적정한 처벌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지를 한번 모색해 보고자 한다. 다만, 직권남용죄는 하나의 정치풍향계로 작동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언급은 자칫 개인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이 점을 경계하면서 가능한 한 형법적 시각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Ⅱ. 직권남용의 의미와 그 남용가능성
우선, 직권의 ‘남용’은 당연히 직권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종래의 통설은 “당해 공무원의 직권과 무관한 사항이나 직권을 사칭한 경우 또는 자기의 직권과 관계없는 권한을 모용한 경우에는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았다.12) 이미 언급한 것처럼 대법원도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13) 이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슬로건은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통제장치로 작동해 온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 직권을 ‘일반적 직무권한’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리 분명하지가 아니하다.
형법에서는 특히 공무집행방해죄와 관련하여 공무원의 직무권한을 ‘추상적 직무권한’과 ‘구체적 직무권한’으로 구분하여 왔다.14) 가령, 조직으로서의 경찰은 치안유지와 교통단속 및 범죄수사 등의 추상적 직무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 조직에 속한 개별 경찰관은 직급과 직위 및 사무분장에 따라 그보다 훨씬 제한된 ‘구체적 직무권한’을 갖는다.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논리에 따를 경우, 이 구체적 직무권한을 전제로 하면 직권남용죄의 성립범위가 좁아지고, 추상적 직무권한을 전제로 하면 그 반대가 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반적 직무권한’이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밝힌 바는 없다.
대신에 대법원은 “어떠한 직무가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에 관한 법령상의 근거가 필요하지만, 명문이 없는 경우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해당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15) 이에 대하여, ‘종합적, 실질적 관찰’은 필연적으로 관찰자 별로 직무권한의 범위를 둘러싼 이견을 만들어낼 것이고, 이는 직권남용죄의 성립여부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따라서 직무권한은 ‘법령이 없어도’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령의 해석’에 기초하여 그 권한의 범위를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16)
하지만 대법원은 ‘법령이 없어도’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명문이 없어도’라고 하였다. 명문이 없더라도 법령상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대법원은 그 법적 근거의 유무와 관련하여 ‘종합적, 실질적 관찰’을 요구하는데, 이 흔들리는 판단은 구성요건의 보장적 기능을 해칠 수가 있다.17) 하지만 이러한 흔들림은 실은 ‘법령의 해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법과 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바로 그 ‘법령해석’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무원의 직무 내지 직무권한을 남김없이 명문으로 기록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법과 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하는 등의 방법, 즉 법령해석을 통해 그 권한의 범위가 정해지는 측면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대법원은 직무권한과 관련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법률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그것은 (당해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할 수 있다”고 한다.18) 이에 대하여 “미리 확정되어 있어야 할 직무권한의 범위를 남용되었을 경우를 가정해서 거꾸로 추론”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19) 실제로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논리를 직권남용죄를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다시 ‘남용되는 것은 직권’이라고 하는 것은 순환논증이다. 만일, 직권의 범위가 남용여부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슬로건을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직권을 남용하여’라는 문언에 비추어 볼 때, 직권남용죄는 직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이는 남용을 심사하기 전에 확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다만. 그 직권을 ‘일반적 직무권한’으로 표현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무분장표에 의해 일정 범위로 제한된 구체적 직무권한이 아니라, 사전에 그 경계를 명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추상적 직무권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일반적 직무권한은 ‘당해 공무원이 담당할 수 있는 통상적 업무의 전체’를 말하고, 그 전체의 범위는 법·제도에 대한 종합적, 실질적 관찰 등과 같은 법령의 해석을 통해 확정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직권의 ‘남용’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20)가 그 남용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공무원이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도 직권남용이 된다고 한다.21) 그리고 남용에 해당하는가의 판단기준은 “구체적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그 목적, 그것이 행하여진 상황에서 볼 때의 필요성·상당성 여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의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한다.22)
대법원의 이 표현 중에서, 특히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와 ‘직권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는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고 하면서도 실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 즉 월권행위도 남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23) 이를 이유로, 일반적 직무권한을 구체적 직무권한으로 특정한 후, 추상적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를 월권행위라고 하고, 추상적 직무권한조차 벗어났지만 그 직권행사와 관련성이 있는 경우, 즉 직권행사의 외관을 갖춘 경우를 준월권행위로 지칭하면서, 이 월권과 준월권행위도 남용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24)
이 입장은 일반적 직무권한이라는 개념이 매우 불확정적인 표지라는 전제에서, 직무권한의 범위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그 일반적 직무권한을 구체적 직무권한으로 이해하고 있다.25) 하지만 이는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대법원의 입장을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설계이고, 오히려 일반적 직무권한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추상적 직무권한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 말하는 월권행위는 직무권한‘범위 내’의 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반적·추상적 직무권한을 벗어난 준월권행위를 직권남용으로 보자는 주장은 명백히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는 논리에 반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남용이라는 개념이 갖는 의미의 진폭은 대단히 넓다. 우선 직권 ‘범위 내’에서의 재량권의 일탈남용은 물론이고, 그 직권의 오용까지 남용으로 볼 수 있다. 가령,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행위 및 제125조의 폭행·협박행위는 직권을 오용한 예이고, 형법은 이를 독립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체포·감금이나 폭행·협박 외에, 위계·위력이라는 범죄적 수단과 결부된 직권행사도 남용에 해당한다. 가령, 협박에 이르지 않는 위력을 행사한다거나 혹은 (구체적) 직무권한을 가장하는 경우, 직권행사를 가장하는 경우 및 직권의 존재 자체를 가장하는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남용개념이 갖는 의미의 진폭은 대단히 넓지만, 이 모든 남용행위를 형사처벌의 대상인 당벌적 행위로 볼 수는 없다. 특히, 권한 ‘범위 내’의 ‘재량권 일탈남용’은 아예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26) 왜냐하면 그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해서는 당해 행정행위의 무효나 취소 혹은 국가배상이나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조치와 같은 행정제재를 예정해 두고 있는데, 이에 덧붙여 최후수단으로 남아 있어야 할 형사처벌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정행위에 대한 형사법의 과도한 개입은 공직사회를 위축시키는 등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하여야 한다.
이처럼 권한 ‘범위 내’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직권남용죄의 ‘남용’개념에서 제외한다면, 이제 권한 ‘범위 내’냐 혹은 ‘범위 외’냐는 점에 과도하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 직권남용죄의 ‘남용’에 대한 논의는 그것보다 실은 공무원의 직권행사가 범죄적 수단, 즉 체포·감금, 폭행·협박 혹은 위계·위력과 결부되어 있느냐의 여부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범죄적 수단이 곧 형법개입의 단초인 것이다. 물론, 위계의 방법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직권 혹은 직권행사를 가장하는 경우 및 직권의 존재 자체를 가장하는 경우 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직무권한의 범위문제와 전적으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직권을 가장하는 경우와 직권의 존재 자체를 가장하는 경우는 구별되어야 한다. 직권을 가장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당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서 구체적 지무권한을 가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반해 직권의 존재 자체를 가장하는 경우는 위에서 언급된 준월권행위의 경우이다. 즉, 직권행사의 외관을 갖춘 경우를 말한다. 이는 동일한 사안을 가해자 쪽에서 혹은 피해자 쪽에서 서로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공무원 아닌 자가 공무원의 자격을 사칭하는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는 직권남용죄의 ‘남용’개념에서 제외되어야 한다.27)
정리하자면, 대법원이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라고 할 때의 직권은 일반적·추상적 직무권한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라는 표현은 ‘구체적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이나’의 의미이고,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라는 표현은 ‘직무집행의 기회에’ 혹은 ‘구체적 직무권한을 가장하여’라는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또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는 ‘구체적 직무권한을 벗어난 경우’를 말하며, 마찬가지로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라는 표현도 구체적 직무권한을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직권의 존재 자체를 가장하는 경우와는 달리, 공무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는 것은 직권남용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영향력의 행사’라는 말이 위력이라는 범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공무원이 그 직무권한의 행사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는 사람을 상대로 ‘직무권한을 넘어서는 위법·부당한 행위’28)를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은 자신에게 속하는 직무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는 것 못지않게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29)
하지만 대법원은 바로 이어서 “그러나 별도의 입법이 없는 이상 현행법의 해석만으로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30) 물론, 이 단호한 선긋기와는 별개로 대법원은 재정경제원장관이 시중은행장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돈회사에 대출을 해 주도록 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31) 하지만 재정경제원장관이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당연직 의장으로서 시중은행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중은행이 개별기업에 대출해 주도록 지시할 권한이 그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아마 시중은행의 경영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것이다.32)
대법원의 이러한 흔들리는 입장을 간파하고, 지위를 이용한 사실상의 영향력 행사도 직권남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되고 있다. 그 이유는 ①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 그것이 직권행사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위이용의 경우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고,33) 또 ② 자신의 직권을 남용하는 경우를 ‘2등급 직권남용’이라고 한다면, 지위를 이용하여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1등급 직권남용’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34) 그리고 ③ 준월권행위를 남용으로 보려는 입장 역시 ‘권한 없으면 남용 없다’는 대법원의 방어막을 와해시켜 궁극적으로 지위이용을 남용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35)
이 중에서 특히 세 번째 입장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법이해와 법발견 방법론’에 할애한다. 형법상의 ‘남용개념은 사물논리적으로 선재하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규범과 사실의 시선의 상호왕래’ 속에서 ‘사회의 변화상을 포착’할 수 있도록 가소성 있게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6) 아울러 대법원 역시 형법 258조의2 특수폭행죄의 ‘위험한 물건’과 관련하여, 자동차를 그 위험한 물건에 포함시키기도 하고37) 또 배제시키기도 하는데,38) 이는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 ‘위험한 물건’이라는 개념을 매우 가소성있게 아주 잘 다루고 있는 예라고 소개하기도 한다.39)
물론, 활자로 고정된 법문에 현실사례의 구체성과 특이성이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과 사례간의 시선의 상호왕래’를 통해 법문의 개념을 다소 유연하게, 가소성 있게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죄형법정주의가 지배하는 형법에서는 그 유연한 해석도 실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범위 내에 머물러야 한다. 형법이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라고 하고 있는데, 휴대할 수도 없는 자동차를 ‘이용한 경우’까지 특수폭행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40) 실무의 이러한 법적용은 해석을 빙자하여 입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이는 칭찬이 아닌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라는 법문을 임의적으로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여’로 해석할 수 없듯이, ‘직권을 남용하여’라는 법문을 ‘지위를 이용하여’로 무작정 확대해석할 수는 없다. 독일 형법 제240조는 직권남용과 지위이용을 강요죄의 가중사유로 다루고 있는데,41) 이러한 입법례를 놓고 보더라도 직권남용에 무작정 지위이용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설령, 직권남용이 2등급 남용이고 지위이용이 1등급 남용이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그 전제와 판단자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바뀔 수 있는 만큼,42) 꼭 필요하다면 입법을 촉구하는 선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입법적 해결방안 역시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독일의 경우는 그 지위이용이 폭행·협박과 결부되어 있어서 직권남용과 지위이용을 엄밀히 구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직권남용은 폭행·협박 외에 위계·위력과 결부될 수도 있기에, 직권남용과 지위이용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즉, 직권의 위계·위력적 행사에 ‘속아서 혹은 심리적으로 제압되어’ 권리행사를 방해당한 경우와 사실상의 영향력 행사를 의미하는 ‘지위이용에 협력한 경우’는 사안의 성격 자체가 판이하다. 전자는 범죄의 피해자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실상 공범에 가깝다. 이 후자는 직권행사가 문제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다른 어떤 이익을 위해 그 지위이용에 협력한 것이어서, 이 협력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
물론, 구체적인 사례에서 직권의 존재 자체를 알았는지를 확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확정의 문제이다. 적어도 직권행사가 아니라 지위이용임을 알고 그것에 협력한 사람까지 형법이 보호할 필요는 없다. ‘지위이용이 1등급, 직권남용은 2등급 남용’이라는 주장은 공직자의 권한행사를 과도하게 악마화하여 그 협력자조차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 그것이 직권행사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위이용의 경우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주장도 실은 사실인정의 어려움을 이유로 불법에 협력한 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사실상의 영향력을 매개로 형성된 불법의 커넥션에 형법이 개입하여 어느 일방을 비난하고 다른 일방을 두둔하지 말아야 한다면, 지위이용을 입법화하는 것에는 극히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Ⅲ. 직권남용죄의 개정시에 고려해 보아야 할 사항
직권남용죄가 남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직권과 남용’ 개념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완화 내지 확대해석하는 것에 기인한다. 들불처럼 번져간 적폐청산의 강한 요구에 실무가 상당히 흔들렸고, 여기에 가세한 일부 학자들이 ‘권한 없으면 남용 없다’는 마지막 방어막마저 허물고자 월권행사나 지위이용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남용’ 개념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그 남용의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이와 더불어 한 때 공직사회에서 권장되던 적극행정 및 그 면책제도43)는 구호에 그치고, 급기야 정부에서는 직권남용죄를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직권남용죄의 남용은 법조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 기인하는 만큼, 이러한 해석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직권남용죄의 축소적용을 지향한다면, 가장 먼저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 직권남용죄를 목적범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에 개최된 국회공청회에서는 이 방안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즉, “공무원이 자기 또는 제3자로 하여금 불법한 이익을 얻게 하거나 타인에게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직권이나 지위를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다.44) 스위스 형법 제312조의 직권남용죄도 목적범의 형식을 띄고 있다.45)
대법원 역시 직권의 ‘남용’ 여부와 관련하여 행위자의 목적을 고려하라고 한다. 즉, “구체적인 직무행위의 목적, 그 행위가 당시의 상황에서 필요성이나 상당성이 있는 것이었는지 여부, 직권 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46) 이러한 입장에서 대법원은 피고인(검사)이 수사목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개인적 목적을 위해 교도관리에게 수용자를 호송하게 한 것은 직권남용이 된다고 보았다.47) 대법원의 이 입장과 괘를 같이하여, 추구하는 목적과 투입된 수단 사이의 상호관계성을 토대로 직권의 남용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주장되고 있다.48)
그러나 현행법 하에서 행위자의 주관적 목적을 고려하라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인용이라는 행위자의 고의 외에 별개의 (초과)주관적 목적을 요구하는 것은 직권남용죄를 과도한 심정형법에 빠뜨릴 수 있다는 통렬한 지적에 유의하여야 한다.49) 물론, 위 피의자 호송사례에서 대법원이 초점을 맞춘 것은 행위자의 주관적 목적(가령, 데이트)이 아니라, 그것이 직권행사의 객관화된 목적(즉, 수사)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구성요건단계에서 어떠한 목적을 고려하여야 한다면, 차라리 그 범죄를 아예 목적범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이 목적범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직권남용죄가 너무 축소’적용될 것을 우려하기도 하지만,50)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직권남용죄를 목적범으로 전환하더라도 대법원이 그 목적에 대해서는 미필적 인식으로도 족하다고 보기 때문에51) 직권남용죄를 실효성 있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52) 하지만 목적범에서의 목적은 고의보다 훨씬 의지적 요소가 강한 개념이기 때문에, 미필적 인식을 넘어 확정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53) 이처럼 확정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볼 경우에는 검사의 입증책임이 가중되어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제한할 여지가 생긴다.
이처럼 직권남용죄를 목적으로 전환하면, 그 성립여지가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공청회에 제시된 안이 보여주는 것처럼,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발생을 요구하면서도 또 목적까지 추가하는 것은 중복으로 보일 여지가 없지 않다. 그렇다고 스위스 형법처럼 ‘일정한 목적을 위한 직권의 남용’ 자체를 처벌하는 방식이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결과범의 틀을 벗어나 온전한 위험범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히려 처벌의 위험을 확실히 확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국회공청회의 안은 결과범과 목적범을 결합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직권남용죄에 대한 지나친 확장해석이 낳은 임시방편으로 보이는 만큼, 직권남용죄의 목적범 전환은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직권남용죄를 목적범으로 전환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그 축소적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위의 주체, 즉 가해자의 범위를 확연히 줄일 필요가 있다. 종래의 다수설은 해석을 통해 직권남용죄의 주체를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직무를 행하는 자”로 국한시켜 왔다.54) 가령, 경찰, 검찰,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직을 수행하는 공무원(식품위생단속원, 마약감시원, 세관원, 철도공안원, 환경 및 해양감시원, 산림보호공무원, 근로감독관, 교도소장, 소년원장 등), 강제집행이나 세금의 강제징수를 담당하는 공무원, 출입국관리공무원 및 영업정지나 취소와 같은 권력적 작용을 수행하는 공무원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반적 직무권한은 반드시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것임을 요하지 아니하며, 그것이 남용될 경우 직권행사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법률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된다”고 한다.55) 대법원의 이 입장은 직권남용죄를 확대적용하려는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이후 학계에서도 ‘강제력을 요하지 않는다’는 입장표명이 이어졌고,56) 이제는 이 입장이 다수설로 보이기도 한다. 종래의 다수설에 따를 경우, 법률상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없는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 문체부장관, 사법행정 담당 법관 등은 애초에 직권남용죄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57)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앞서서, 우선 직권남용죄와 강요죄의 성격 및 그 구조의 유사성에 주목하여야 한다. 강요죄는 폭행·협박으로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를 초래하는 범죄이고, 직권남용죄는 그 폭행·협박 대신에 직권남용을 요구하는 범죄이다. 두 범죄 모두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를 요구하는 결과범이다. 동시에 강요죄는 피해자의 의사결정 내지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여야 하는 침해범이다. 따라서 폭행·협박과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중간에 의사결정의 자유침해, 즉 피해자의 공포심 내지 의사억압을 필요로 하고, 이것이 부정될 때에는 기껏해야 미수범으로 처벌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직권남용죄는 무엇보다 국가적 법익을 위태롭게 만드는 범죄로 분류되고 또 편제되어 있어서, 직권남용죄의 보호정도를 위험범으로 보고, ‘직권남용죄는 침해범인 강요죄와는 별개의 독립범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58) 이와 더불어 직권남용죄는 마치 직권남용만 있으면 된다는 인상을 풍기고, 급기야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는 구성요건적 결과가 아니라, 객관적 처벌조건으로 볼 여지까지 언급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한다.59) 그러나 대법원이 강조하듯이, 직권남용죄를 강학상 위태범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결과범임을 잊어서는 안된다.60) 실은 국가적 법익(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 내지 직무의 적정성)에 대한 위태화와 더불어 개인적 법익(의사결정 및 의사활동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후자에 중점을 두어 직권남용죄를 오히려 침해범으로 분류하더라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61)
이처럼 직권남용죄가 결과범이자 침해범적 속성을 갖는다는 점을 직시한다면, 직권남용죄도 강요죄처럼 피해자의 억사억압을 필요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62) 이 피해자의 의사억압은 강요죄와 직권남용죄의 기술되지 아니한 구성요건요소인 것이다. 즉, 강요죄는 폭행·폭행협박으로, 그리고 직권남용죄는 직권남용으로 피해자의 의사가 억압되고, 이 의사억압으로 인해 권리행사방해 등의 결과가 발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전혀 의사가 억압되지 않았음에도 가해자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강요죄의 경우에는 미수범이 성립할 수 있지만, 미수범처벌 규정이 없는 직권남용죄의 경우에는 무죄라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피해자의 의사억압이 강요죄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요소로 본다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직권 내지 직무는 피해자의 의사억압을 초래할 수 있는 권력적 작용, 즉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직무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리고 직권남용의 핵심요소는 직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는 등의 위력의 행사인데, 행사할 직무에 아무런 구속력이나 강제력이 없다면, 사실상 그 위력의 행사 자체도 불가하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대국민 행정서비스 제공, 단순 내부관리 및 기술적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직무는 그러한 위력행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권남용은 위력 이외에 위계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직권행사를 가장하는 경우이다. 이 위계는 통상 상대방의 착오나 부지를 이용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직권행사를 가장하는 ‘위계’는 피해자의 의사를 혼란케 하여 그의 잘못된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직권을 행사하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권리행사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사를 혼란케 하는 것’ 역시 위력적 요소의 하나이다.63) 이러한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강제력 있는 직무이다. 따라서 강제력이 없는 직무의 경우에는 공무원이 그것을 행사를 가장하더라도 일반 국민이 권리행사를 포기하는 등의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형사처벌의 늘 강조되듯이 최후의 보충적 수단이다. 따라서 직권남용죄도 그 남용이 현실적으로 국민들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권력적 작용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직권남용죄가 모든 공무원들의 직무를 규율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결국 직무수행의 위축을 가져오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직권남용죄의 축소적용을 위해 개정을 하는 경우에는 제123조의 주체인 ‘공무원’ 앞에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이라는 표현을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사실, 이는 해석으로도 가능하지만, 작금에는 그 해석이 제동장치를 잃어버렸기에 아예 입법적으로 그 주체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를 범할 수 있는 행위주체 외에, 행위객체(피해자)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형법 제123조는 행위객체를 ‘사람’이라고 하고 있지만, 직권남용죄의 입법취지는 무엇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국가권력(공무원)’으로부터 그보다 ‘열위에 있는 일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64) 따라서 국가기관 일부로서의 지위를 갖는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그 직무수행과 관련하여서는 직권남용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65) 이는 직권남용죄의 주체를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 제한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한 강제력을 갖는 권력적 작용으로부터 위축되는 것은 사실상 일반 국민들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급자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 역시 직권남용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이는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한다.66)
이를 전제로 대법원은 가령, 기관장인 인사권자와 그를 보좌하는 인사담당 과장이 소속 공무원들에 대한 근무평정을 담당하는 평정자와 실무 담당자에게 평정순위를 변경하여 서열명부를 새로 작성하게 한 행위는 평정자나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것으로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67) 그리고 대법원은 상급 경찰관이 부하 경찰관들의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사건을 다른 경찰서로 이첩하게 한 경우도 ‘부하 경찰관들의 수사권 행사를 방해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 경우, 수사를 중단하거나 이첩할 의무가 없음에도 이를 하게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권리행사방해만 성립한다고 한다.68)
그러나 평정순위를 변경하여 서명명부를 새로 작성한 행위는 공문서변조에 해당하고, 이를 인사위원회에 제출하여 그릇된 심의·의결을 이끌어낸 행위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 평정자와 실무 담당자는 이 두 범죄의 정범이거나 공범이다. 그럼에도 ‘평정순위를 변경하여 서열명부를 새로 작성한’ 동일한 행위를 두고, 직권남용죄의 관점에서는 그 평정자와 실무 담당자를 피해자로 다룬다는 것은 형법체계의 모순 내지 형사처벌의 방향성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무엇보다 직권남용죄에 대한 해석이 너무 느슨하여, 그것이 적용되지 말아야 할 곳에 적용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부하 경찰관들의 수사권이라는 것은 실은 권리가 아니라 권한이다. 수사의 효과가 그 부하 경찰관들이 아니라 소속 수사관서의 장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하 경찰관들은 소속관서의 장이 행사하는 수사권한의 보조기관이지 그 권한행사의 상대방이 아니다. 따라서 그 부하 경찰관들은 직권남용의 피해자가 될 수 없고,69) 그 사건의 피의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권리는 ‘법령상 보호되어야 할 이익’이면 족하다고 보면서 그 권리에 권한을 포함시키는데, 이러한 완화해석이 바로 형법체계의 모순 내지 형사처벌의 방향성 상실을 초래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상관의 위법한 지시에 복종한 의무가 없고, 또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소명 후 그 이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현행 법령이 보장해 주고 있다.70) 따라서 최후의 보충적 수단인 형사처벌이 이 공직사회의 갈등에 쉽게 관여할 일이 아니다. 형법의 개입은 자칫 공직사회에 혼선을 초래할 수도 있다. 상관의 지시가 위법·부당한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그 지시불이행은 자칫 징계 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형법이 상관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이행한 부하 공무원을 직권남용의 피해자로 다루고 심지어 면책까지 시켜 준다면, 그 부하 공무원은 차라리 위법·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여 피해자의 지위에 서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상관의 지시보다 먼저 법을 준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상관의 위법한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은 직권남용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위법한 직무수행의 정범 내지 공범으로 보아야 한다.71) 물론, 이 경우에도 징계 등의 행정제재가 앞서야 하고, 형사처벌은 최후의 보충적 수단으로 뒤에 머물러야 하지만, 적어도 그 가해자의 일원으로 보아야 할 부하 공무원을 직권남용의 피해자로 둔갑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직권남용의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공무원 이외의 일반 국민이고, 위 인사권남용 사례에서의 피해자도 평정자와 실무 담당자가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승진에서 누락된 공무원으로 보아야 한다.
이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형법을 개정할 때에는 형법 제123조의 ‘사람’을 아예 ‘일반 사인’으로 바꾸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권리에는 당연히 공무원의 권한이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의무 없는 일’도 자칫 ‘의무지어지지 아니한 모든 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72) 이에 따르면 직권남용죄가 결과범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온전한 위험범으로 변모될 여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는 ‘하게 한 일이 의무에 위반되는 때’로 해석하여, 사실상 권리침해의 이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한해석이 불가하다면, 차라리 모호한 ‘의무’개념을 삭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Ⅳ. 결 어
직권남용죄의 직권과 남용 및 권리와 의무라는 개념의 모호성 내지 탄력성으로 인해, 직권남용죄가 마치 공무원의 직무범죄와 관련하여 하나의 일반조항처럼 작동하고 있다.73) 일찍이 검사출신의 한 老교수는 배임죄가 재산범죄의 ‘하수종말처리장’처럼 작용할 여지를 지적한 바 있는데,74) 공무원의 직무범죄와 관련하여 직권남용죄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자면, 최근에 배임죄의 폐지와 직권남용죄의 개정이 함께 논의되고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그 이면의 정치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두 범죄의 축소적용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축소적용을 위해, 특히 직권남용죄의 경우에는 행위주체를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 그리고 그 행위객체를 일반 사인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는 ‘하게 한 일이 의무가 아닌 때’로 확장해석될 수도 있기에, 이를 ‘하게 한 일이 의무에 위반된 때’로 제한해석하거나 혹은 이것이 불가한 경우에는 차라리 그 ‘의무’개념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면, 형법 제123조는 “강제력을 수반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일반 사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이라는 형식을 띄게 될 것이다.
물론, 형법 제123조의 개정과 더불어 그 보완입법도 함께 고려해 보아야 한다. 가령, 대법원이 직권남용죄로 다른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그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차라리 독일형법 제353조의 ‘급부금부당축소죄’와 유사한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이 재판에 개입한 사법농단사건에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이 재판개입을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독일형법 제339조의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 재판개입을 법왜곡죄의 공범으로 다룰 여지를 열어놓자는 것이다.
이러한 직권남용죄의 개정필요성과 그 보완입법의 여지에 비추어 보면,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재판개입 사건 등을 현행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확장해석들이 얼마나 무리한 시도인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실무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이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학자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앞장선다면, 이는 매우 민망한 모습이 될 수 있다. 특히, 형사처벌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prima ratio)이나 유일한 수단(ultima ratio)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일 뿐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는 학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차제에 형법학계에서는 문언해석의 한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배가하여야 한다. 단적인 예로 침해범의 형식으로 규정된 명예훼손죄를 위험범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법이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그 해결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는데 그쳐야 한다. 그럼에도 입법적 문제들을 해석으로 해결에 오던 관행들이 쌓여, 이제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조차 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직권남용죄의 개념들을 임의적으로 확장하는 해석의 남용 역시 그 망각에 터잡은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그 켜켜이 쌓인 잘못된 관행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특히 해석과 입법의 경계를 보다 분명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