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동안 북한과 관련하여 총 21개의 결의를 채택했다. 그 중 다섯 개의 결의는 한국전쟁 중에, 한 개는 남북한의 유엔 회원자격에 관한 것이다. 그 외는 모두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것으로 1993년 5월 11일 결의 825호(S/RES/825)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에 채택된 2018년 3월 21일 결의 2407호(S/RES/2407)까지 나머지 열여섯 개의 결의가 채택되었다([부록 1]).1)
특히 북한 핵실험과 관련하여 유엔 안보리는 1718호(2006년)를 시작으로 1874호(2009년), 2094호(2013)에 이어 2270호, 2321호, 2356호(이상 2016) 및 2375호(2017) 등을 채택하였다([부록 2]). 이 가운데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와 압박의 수위가 상당히 강도 높게 전개된 것은 북한의 제 4차 핵실험에 대하여 2016년 3월 2일자로 채택된 결의 2270호부터이다.
결의 2270호는 북한의 핵개발 및 로켓개발에 타격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군수용 우려 품목 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결의에서는 대북 원유 수출과 북한 노동자의 국외 송출을 차단하는 조치는 채택되지 않아 제재의 핵심은 빠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석탄・철・금・티타늄・희토류 등 북한 광물의 제3국 수출을 금지 시켰고, 로켓 원료 포함 항공유의 대북 수출도 금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또한 기존 제재에서 강화된 내용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최초로 북한행・발 모든 화물에 대한 의무적 검색(mandatory inspection)이 도입되었고, 금지품목 적재 의심 항공기 및 선박의 유엔 회원국 내 이착륙과 입항을 금지시켰다.
이 결의에 대해 유엔과 우리 정부는 대체로 유엔 안보리에 의해 채택된 기존의 결의에 비해 가장 강력한 제제라는 평가를 하였다. 실제 제재 조치 52개항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결정(decid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대북 제재 이행의 법적 의무가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와는 별도록 한국은 북한의 로켓(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있은 사흘 뒤인 2월 10일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하여 사실상 공단을 폐쇄키로 결정했다. 이에 대응하여 북한은 그 다음날인 2월 1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하였다. 이에 대해 3월 8일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대북제재안을 발표했다. 이 안은 개인 40명과 단체 30개에 대한 금융제재와 북한을 거친 선박의 남한 내 입항을 금지하는 해운제재가 그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북한은 결의 2270호 채택 이후 두 차례의 핵실험(제 5・6차 핵실험)을 강행하였고, 유엔 안보리도 이에 맞서 결의 2321호와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전자는 결의 2270호를 보완하여 대북 석탄수출 상한을 도입하였고, 후자는 대북 석유제품을 연 200만 배럴로 제한하는 등 유류공급의 약 30% 차단 및 북한의 외화 수입원인 섬유제품의 수출 전면 금지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결의가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북한과 군사적 대치상황에 놓여있는 직접 이해 당사국인 한국은 물론 미국,2) 일본,3) 중국4) 및 러시아5) 등 주요국들의 정치적 결단과 이행 참가가 필요하다. 이 국가들은 한반도 주변국들로써 남북한의 외교안보정세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와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연합(EU)의 북한에 대한 외교안보적 입장, 특히 EU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어떤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EU의 대북제한조치는 ‘국가제재’와 ‘개인제재’를 병과하고 있고, 또한 최근 ‘국가제재’에서 ‘개인제재’로 그 방식과 제재의 비중을 전환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EU는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상당하다. 이를테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가운데 프랑스와 영국의 2개국이 EU 회원국이고, 리스본조약 발효 이후 EU는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에 참가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유럽의회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결의를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북한 내 인권상황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측면을 고려해볼 때 제한조치를 중심으로 한 EU의 대북정책에 관한 법제도 연구는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질서를 유지・확립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는 아주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외 학계에서 대북제재조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개시된 계기는, 2006년 7월 5일과 10월 9일 북한이 각각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실시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같은 해 10월 14일 대북제재결의 1718호를 채택하였다. 이 결의를 통하여, 유엔은 제재대상을 대량파괴무기와 관련 물자로 확대하고, 북한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함과 동시에 유엔의 모든 회원국에게 금수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그 후에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미사일발사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지하핵실험 및 로켓(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 1718호, 1874호, 2094호 및 2270호를 연이어 채택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 국내외 학계와 연구자들은 주로 유엔헌장 제41조에 의거한 집단적 제재조치의 국제법적 지위와 성격6) 내지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이 취한 대북제재조치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7) 하지만 이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EU의 대북제재조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연구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해외보다는 국내학계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 이후 EU에 의해 채택된 대북제한조치를 중심으로 리스본조약 이후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공동외교안보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CFSP 차원에서 이뤄지는 대북제한조치를 채택함에 있어 EU가 행사하는 권한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한반도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공동외교안보정책에 대한 EU 권한의 법적 구조
EU가 대북제재조치를 처음 채택한 것은 2006년 11월 20일 이사회 공동입장 2006/795/CFSP8)를 통해서이다. 이 입장은 유엔 안보리가 2006년 7월 15일에 채택한 북한이 행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발사에 대한 제재결의 1695호 및 2006년 10월 14일에 채택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제재결의 1718호의 규정을 도입하는 형태로 채택한 것이다. 그 후 이 공동입장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EU 차원에서 단일하게 적용하기 위하여 EU 이사회와 유럽위원회에 의해 규칙, 결정 및 이행규칙 등의 입법행위로 여러 차례 개정되어 적용되고 있다.9)
EU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북한에 대해 금융, 무역제재, 자산 동결 및 여행제한 등 광범위한 제재조치를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1월 21일 유럽의회는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고, 대북제재를 지지하는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2일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가 채택되자 EU 외교안보고위대표 페데리카 모게라니는 이 결의안 채택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EU도 대북 제재 결의를 즉각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틀 후인 3월 4일 EU 이사회는 성명을 통하여 북한 제재 대상 리스트에 개인 16명과 단체 12개를 추가했다고 발표했다.10) 그 이후 EU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재대상을 추가하였다.11)
결의 2270호 이후 EU의 대북제제조치에서 주목할 점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국내적’ 이행의 차원에서 동결의에 담긴 모든 제재는 물론, EU의 독자적인 별도의 제한조치(restrictive measures; mesures négatives)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12)
기존에 채택된 EU의 대북제재조치는 통상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EU 차원에서 이행하는 전자의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이는 주로 북한이라는 ‘국가’를 대상으로 채택되는 방식(국가제재방식)이다. 이와 관련한 주요 내용으로는, 북한의 핵무기 대량살상무기(WMD),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무기금수와 관련 제품 및 기술을 통제하는 방안 등이다. 이에 따라 EU는 제재조치의 대상이 되는 무기와 상품 및 기술의 대북수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안보리 결의 2270호 이후 취해진 조치는 전자와 함께 EU 차원의 독자적인 제한조치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로켓발사 등과 관련 있는 개인을 대상으로 채택되는 방식(개인제재방식; smart sanctions; targeted sanctions)이다. 이에 따라 향후 EU는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자금, 무역 및 수송에 대해서도 제재함으로써 2013년 4월 22일에 채택된 조치를 확대・강화하였다.
2009년 12월 1일 리스본조약이 발효하면서 기존의 유럽연합조약(Treaty on the European Union: TEU)과 유럽공동체설립조약(Treaty establishing the European Community: TEC)에 의해 다소 산만하게 적용되던 제3국 및 개인에 대한 제한조치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다. EU가 대북 제재조치를 채택하는 리스본조약상의 근거는,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TFEU) 제75조 및 제215조이다. 전자는 테러리즘에 대한 제재조치에 관한 것인데, 2012년 7월 19일 유럽사법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 ECJ)가 내린 European Parliament v. Council 판결13)에서 이 조치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린 뒤부터는 동조는 더 이상 적용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리스본조약 상 북한이라는 국가와 관련 개인・법인그룹 및 비국가행위자를 대상으로 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는 보다 직접적인 근거는 TFEU 제5편 제215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스본조약이 대북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적지 않다. 국제법적 관점에서 보면, EU에 의한 대북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국내적 이행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EU법의 측면에서 이 조치는 EU의 대외적 행동 및 CFSP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또 그 범위 내에서 TFEU 제215조를 법적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리스본조약상 CFSP를 중심으로 한 대외적 행동을 수행하는 EU의 권한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EU 차원에서 채택되는 제3국 및 개인에 대한 제재조치는 크게 두 가지체제, 즉 유엔의 결의를 이행하는 체제와 EU의 독자적 체제로 나뉜다.
전자는 유엔헌장상 규정된 회원국의 의무이행의 차원에서 채택된다. EU는 유엔 안보리와 안보리 제재위원회의 결정을 도입하는 형태로 EU 이사회의 공동입장과 결정을 채택한다. 이 입장과 결정에 따라 도입된 조치의 EU 수준에서의 단일한 적용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 규칙과 유럽위원회 규칙이 채택된다. 대북제한조치를 그 실례로 들면, 2006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응하여, EU 이사회는, 2006년 11월 20일자로 “북한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한 제한조치에 관한 이사회 공동입장 2006/795/CFSP”14)를, 그리고 2007년 3월 27일자로 “북한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한 제한조치에 관한 이사회 규칙(EC) 329/2007”15)을 채택하였다. 마찬가지로, 2013년 2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이에 대응하여 기존의 이사회 규칙 329/2007를 개정하는 규칙 296/2013을 채택하였다.
이에 반해 후자의 경우는 다소 모호하고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또한 조치의 법적 근거의 대한 해석과 적용은 물론 그 조치를 채택할 EU의 권한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었다. 더욱이 리스본조약 이전에는 가령 EU에 의한 독자적 제재조치가 채택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유엔의 제재결의를 ‘국내적으로’ 이행하는 형식을 띠고 있으므로 개인의 인권보호를 둘러싸고 국내법인 EU법과 국제법인 유엔법의 충돌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예: the Kadi cases16)).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리스본조약은 기존의 TEU와 TEC를 개정하면서 EU 차원에서 채택되는 제한조치의 법적 근거의 명확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몇 가지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리스본조약은 제3국을 대상으로 한 제재(국가제재)와 개인 및 비국가행위자(individuals and non-state actors)를 대상으로 한 제재(개인제재)17)의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TFEU 제215조 1항을, 후자에 대해서는, TFEU 제75조 및 215조 2항을 그 법적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리스본조약 이전에 제기되고 있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다.
국가제재에 적용되는 TFEU 제215조 1항은 기존의 TEC 제301조를 대체한 것으로 CFSP의 일부로 적용된다. 이에 대해 TFEU 제215조 1항은, “유럽연합조약 제5편 제2장에 따라 채택되는 결정이 일국 또는 복수의 제3국에 대한 경제・재정 관계의 일부 또는 완전한 중지 또는 제한을 정하고 있을 때”라고 규정함으로써 EU 이사회가 제한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CFSP에 관한 ‘유럽연합조약 제5편 제2장에 따라’ 결정이 채택되어 있어야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제재에 대해서는 TFEU 제75조(구TEC 제60조) 및 제215조 2항이 그 법적 근거로 원용된다. 하지만 이 두 조항은 그 적용 대상이 다르다. 즉, 전자는 ‘테러리즘과 그와 관련 있는 활동의 예방 및 대처’를 위한 것이고, 후자는 CFSP에 따라 채택된 결정이 있는 경우, 이사회가 TFEU 제215조 1항에 언급된 절차에 따라 자연인 또는 법인그룹 또는 비정부단체에 대한 제한조치를 채택할 때 적용된다. TFEU 제75조 및 제215조 2항의 문언상으로는 제한조치의 적용대상이 분명한 듯 보이나 그 해석과 적용에 있어 양자의 관계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대북제재조치와 관련하여 이사회가 제정한 규칙을 살펴보면, 그 법적 근거로 삼고 있는 기본조약의 조항은 다소 상이하다. 다시 말하여, 기존에 이사회가 제정한 규칙의 경우, 2007년 3월 27일자 이사회 규칙 329/2007은 TEC 제60조 및 301조, 2010년 6월 29일자 이사회 규칙 567/2010은 TFEU 제215조 1항, 그리고 2013년 7월 22일자 이사회 규칙 696/2013은 TFEU 제215조에 의거하여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한 제한조치”를 채택하는 법적 근거로 삼고 있다. 이사회는 대북제한조치를 원칙적으로 ‘북한’이라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국가제재’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회 규칙 696/2013은, TFEU 제215조를 대북제한조치의 법적 근거로 명시함으로서 ‘국가’뿐 아니라 개인, 법인 및 비국가행위자를 포함한 ‘개인제재’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EU의 대북제재가 ‘국가제재에서 개인제재’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리스본조약은 EU의 대외안보전략의 일환으로 채택하는 제재조치를 담당하는 기구 혹은 기관의 역할과 그 절차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다.
TFEU 제215조 1항에 의하면, 이사회가 취하는 대북제한조치는 “연합 외교안보고위대표 및 위원회의 공동제안에 의거하여” 채택되고, 또 당해 조치를 취하기 위한 의사결정으로 가중다수결방식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채택된 제한조치는 유럽의회에 즉시 통지되어야 한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북제한조치는 통상 두 단계절차를 거쳐 채택된다. 1단계는 CFSP 차원에서 전원일치로 제한조치에 관한 결정의 채택이고, 2단계는 EU 외교안보고위대표 및 유럽위원회의 공동제안에 의거하여 이사회가 가중다수결로 그 결정을 이행하는 입법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입법행위는 이사회에 의해 유럽의회로 통보된다. 하지만 아래에서 살펴보는 “European Parliament v. Council”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제한조치를 채택하고 실시하는 과정에서 기관 간 권한 행사의 범위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Ⅲ. 공동외교안보정책에 대한 EU 권한의 범위와 한계
리스본조약은 EU 차원의 제한조치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여 동조약 이전(Pre-Lisbon)에 제기되던 많은 문제점을 수정・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한조치를 채택하고 이행하는 EU의 권한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특히 아래의 쟁점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제한조치’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TFEU 제4편이다. 이 편(Title)은 ‘제한조치’(Restrictive Measure)라는 제목 아래 단일조문인 제215조를 두고 있다. 동조에 의하면, “유럽연합조약 제5편 제2장에 따라”, 즉 CFSP에 따라 채택되는 결정에 의거하여 이사회가 적절한 조치로서 개인제재와 국가제재를 채택한다. 그런데 동조에 의거하여 EU가 제한조치를 채택할 권한의 행사는 TEU 제21조 2항과 제23조 및 제24조를 해석・적용함에 있어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TEU 제5편은 “연합의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규정 및 공동외교안보정책에 관한 특별규정”에 대해 규정하면서 제1장 “연합의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규정” 제21조~제22조를, 제2장 “공동외교안보정책에 관한 특별규정” 제1절 “공통규정” 제23조~제41조, 제2절 “공동안보방위정책에 관한 규정 제42조~제46조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EU의 대외적 행동에 관한 제21조 2항과 CFSP에 관한 제23조 제24조는 제한조치를 채택할 EU의 권한과 관련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다.
TEU 제21조는 EU의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규정이다. 이 가운데 TEU 제21조 2항은, “연합은 아래의 목적을 위하여 공동의 정책 및 행동을 정하고, 이를 실시하며, 국제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협력을 위하여 노력한다”고 정하고 있다. 유럽이사회는 TEU 제21조에 언급된 원칙 및 목표에 의거하여 EU의 전략적 이익 및 목표를 정한다.18) 또한 CFSP에 관한 국제무대에서의 연합의 행동은 TEU 제21조를 중심으로 한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원칙’에 기초하고, CFSP에 규정된 목표를 추구하며, 또한 그에 관한 일반규정을 따라야 한다.19) TEU 제21조와 제22조 및 제23조를 보면, CFSP는 EU의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원칙과 규정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해석은 TEU 제24조의 내용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TEU 제24조 1항 1단은, “공동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의 연합의 권한은 외교정책의 모든 분야에 미치고, 공동방위에 이를 수 있는 공동방위정책의 점진적 구상을 포함하는 연합의 안전보장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도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조 동항 2단 1문은, “공동외교안보정책에는 특별 규정 및 절차가 적용된다”고 하면서, 회원국으로 하여금 강한 결속력20)은 물론 성실과 상호연대의 정신21)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위 규정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TEU 제21조~제23조에서는 EU가 CFSP를 수립함에 있어서는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도, 제24조 1항에서는 반대로 CFSP 분야의 EU 권한은 외교정책의 모든 분야에 미친다고 정하고 있다. CFSP든, 아니면 외교정책이든 EU의 대외적 행동의 범위에 속한다. 그럼에도 리스본조약은 TEU 제24조 1항에서 CFSP 분야에서 행하는 EU의 권한이 외교정책의 ‘모든 분야’에 미친다고 함으로써 CFSP가 대외적 행동을 포함한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은 문언상 상반된 규정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현실적으로 위 규정들의 해석과 적용 시 충돌이 일어나면 그 적용 순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TEU의 규정 체계면에서 살펴보면, “연합의 대외적 행동에 관한 일반규정”인 제21조와 “공동외교안보정책에 관한 특별규정”인 제24조의 관계가 문제된다. 이 중에서 특히 TEU 제24조의 “공동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의 연합의 권한은 외교정책의 모든 분야에 미치고”라는 문언에서 ‘모든 분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표현은 TEU 제24조에서만 사용되고 있고, TFEU에서는 특별히 명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 적용순위와 관련하여 문제가 제기되면, EU 이사회는 소위 ‘무게중심테스트’(centre of gravity test)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테스트를 통하여, TEU 제21조 2항에서 설정하고 있는 목적을 비교 형량하여 대외적 행동으로서 외교정책의 모든 분야와 CFSP가 EU의 이익에 미치는 중요도 등을 고려하여 그 적용 순위를 정하리라 판단된다.
EU가 유엔안보리 결의 2270호를 수용하여 이사회 규칙을 제정하고, 2270호 내지는 이사회 규칙에 명시된 개인(자연인, 법인 혹은 비국가행위자)에 대한 자산동결 혹은 금융거래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 그 대상이 되는 개인의 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이미 Kadi 사건에서 다뤄진 바 있는데, ECJ의 결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알카에다・탈레반에 관계되어 있는 개인이 유엔 결의의 제재대상목록에 등록되어 있다면, 그에 대한 자산동결조치 등은 ‘모든 국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개인이 가지는 재산권의 정당성을 침해할 수 없고, 또한 당해 개인을 제재목록에 등록하는 절차도 적법하지 못하였다.22)
물론 이 사건은 테러리즘에 관한 것이지만 대북제재를 포함한 다른 조치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 2270호와 관련하여, EU 이사회는 북한 제재 대상 목록(리스트)에 자연인 16명과 법인그룹 12개 등 총 28명의 개인을 추가했다. Kadi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EU 이사회 규칙의 제재 목록에 등록된 개인은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에 관련 규칙의 취소를 구하여 제소할 수도 있다. 만일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개발과 로켓(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의한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행한 개인의 자산동결조치의 비례성 심사와 함께 개인의 재산권 제한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EU 이사회에 의해 취해진 대북제재조치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의 국내적 이행이라는 성격뿐 아니라 TFEU 제215조에 따라 CFSP 범위에서 채택된 것이다. 문제는, 원칙적으로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CFSP에 대한 규정에 관해서는 관할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TEU 제24조 1항 2단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본 조약 제40조의 준수에 대한 감독 및 유럽연합의 운영에 관한 조약 제275조 후단에 따른 특정 결정의 합법성에 대한 감시를 제외한 공동외교안보정책에 대한 규정에 관해서는 관할권이 없다.”
리스본조약은 기존의 EC・JHA・CFSP의 소위 ‘세 기둥(삼주)체제(Three Pillars System)’를 폐지하고, 기구(혹은 기관)의 개선을 통한 EU의 대외행동의 일관성과 결속력을 향상시키고자 의도하고 있다.23) 이를 위해 EU는 국제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협력을 위하여 노력하고, 대외적 행동의 개별 분야 간 및 대외적 행동과 기타 정책 분야 간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24) 그 중심에 EU외교안보정책고위대표와 유럽대외행동국이 있다.25)
대외적 행동의 하나로서 CFSP에 대해서도 EU의 권한은 행사된다. 이에 대해 TEU 제24조 1항 1단은, “공동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의 연합의 권한은 외교정책의 모든 분야에 미치고, 공동방위에 이를 수 있는 공동방위정책의 점진적 구상을 포함하는 연합의 안전보장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도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연이어 TEU 제24조 1항 2단은, “공동외교안보정책에는 특별 규정 및 절차가 적용된다”고 하면서, 일반적 의사결정제도인 가중다수결이 아니라 유럽이사회 및 이사회에서의 전원일치제를 적용하고, 또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CFSP에 대한 사법관할권의 행사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CFSP에 대한 EU의 권한 행사의 문제는 ‘TFEU에 의거한 CFSP'(the TFEU-based CFSP)에 이르면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TEU 제40조 1단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공동외교안보정책의 실시는 유럽연합의 운영에 관한 조약 제3조 내지 제6조에 언급된 연합의 권한의 행사를 위하여 제조약이 정하는 절차의 적용 및 제기관의 권한의 범위에는 저촉되지 않는다.”
TFEU 제3조 내지 제6조는 ‘권한배분의 원칙’(Principle of conferral)에 따른 EU의 권한에 관한 일반규정이다. 이에 따르면, EU는 정책 분야별로 배타적 혹은 배분적 권한 등을 행사하여 리스본조약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한다. 그런데 TEU 제24조 및 제40조를 해석・적용하는데 있어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EU가 대외적 행동의 일환으로서 제한조치를 채택하는 경우, ‘CFSP 분야(혹은 조항)’와 ‘CFSP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혹은 조항)’(CFSP and non-CFSP provisions)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TEU에 의거한 CFSP’와 ‘TFEU에 의거한 CFSP' 양자의 우선적용순위를 정할 수 있는 지, 아니면 양자는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지 등의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TEU 제1조 3단은, “연합은 본 조약 및 유럽연합의 운영에 관한 조약에 기초하여 설립된다. 제조약은 법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연합은 유럽공동체를 대체하고, 계승한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TEU 제1조 3단에 따라 제24조와 제40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2012년 7월 19일자 “European Parliament v. Council” 판결26)에서 다뤄진 바 있다.
EU 이사회는 2002년 5월 27일 TEC 제60조, 제301조 및 제308조에 의거하여 규칙 881/200227)를 제정하여 오사마 빈 라덴, 알카에다 네트워크 및 탈레반과 관련 있는 특정 개인과 법인그룹에 대해 제한조치를 부과했다. 2009년 4월 22일, 유럽위원회는 ECJ의 Kadi 판결에 따라 동일한 법적 기초에 의거하여 이 규칙을 수정하는 제안을 했다.28) 그 후 2009년 12월 1일자로 리스본조약이 발효했으므로 TFEU 제215조 2항에 의거하여 유럽위원회는 유럽의회의 역할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유럽의회 법무위원회(Committee on Legal Affairs of the European Parliament)는 즉시 항변하고, 제안된 규칙은 테러리즘을 예방하고 그에 대응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또 테러리즘과 관련 있는 비국가행위자의 활동에 관한 것이므로 그 법적 근거는 TFEU 제215조 2항이 아니라 제75조라고 주장했다.29) 2009년 12월 22일 EU 이사회는 유럽위원회 및 유럽의회가 제안한 법적 기초에 의거하여 규칙 1286/200930)를 제정했으나 ECJ에 동규칙의 취소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소송에서 쟁점이 된 것은, 규칙 881/2005(이후 규칙 1286/2009)의 법적 근거가 TFEU 제75조 혹은 제215조 2항인가 여부였다. 유럽의회는 이 규칙이 테러리즘에 대항할 목적으로 테러자금의 동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 법적 근거는 TFEU 제75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EU 이사회는 이 규칙이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제테러리즘에 대항하고, 그 자금을 동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는 사법내무협력(Justice and Home Affairs: JHA) 혹은 자유안전사법지대(Area of freedom, security and justice: AFSJ)가 아니라 CFSP의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TFEU 제215조 2항을 그 법적 근거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양 기관의 주장에 대해 ECJ는 유럽의회의 주장을 물리치고 TFEU 제215조 2항은 테러리즘에 대한 제한조치의 채택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EU 이사회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정을 하였다.
하지만 이 판결에서 보듯이 제3국 혹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제한조치의 법적 근거가 오로지 유럽‘역내’시장에서의 JHA 혹은 AFSJ와 관련한 사항(특히, 테러리즘)인가, 아니면 CFSP에 관련된 사항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에 따라 전자에 관련된 경우에는 TFEU 제75조를, CFSP를 포함한 EU의 대외적 행동에 관련된 경우에는 TFEU 제215조를 적용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CFSP'와 ’non-CFSP'의 문제는 사안에 따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또한 그에 따라 TFEU 제75조와 제215조의 어느 조항을 법적 근거로 하여 제한조치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도 일종의 ‘회색지대’(grey areas)로 남아있다.
Ⅳ. 결론
리스본조약 이후 EU의 대북정책은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EU는 대북인권결의뿐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이미 수차례에 걸쳐 강력한 제한조치를 채택하여 적용하고 있다. EU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리스본조약이 발효하면서 EU는 CFSP와 더불어 공동안보방위정책을 확대하는 등 대외적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법제도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리스본조약이 발효함에 따라 EU는 기존의 삼주체제를 폐지하였다. 그 대신 EU는 CFSP를 확대・강화하고, TFEU 제215조를 통해 국가제재뿐 아니라 개인제재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CFSP는 여전히 회원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 제3국 및 개인에 대한 제재조치를 채택함에 있어 EU의 권한은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다. 리스본조약 이후 국가 및 개인에 대해 적용되고 있는 제한조치의 법적 쟁점과 그 적용상의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EU는 유엔안보리 결의 2270호가 채택되자마자 대북제재조치를 채택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EU의 대북수출은 1264만 3021유로, 대북수입은 509만 373유로를 기록해 양국 간 무역규모는 1773만 3394유로에 그쳤다. 이 수치는 EU의 대북 무역규모가 전년(2016년) 대비 26.7%가 감소한 것이며, 첫 대북제재가 시행된 2006년 2억 8천만 유로의 1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31) 이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EU의 대북제재조치는 북한경제를 압박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EU가 대북제재조치를 어떻게 채택하고 적용하는가의 문제는 학문적 측면뿐 아니라 우리 정부의 대외정치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북제재조치와 관련한 EU의 권한에 대한 연구는 갈등과 대결 구도의 한반도 정세를 완화하고, 평화통일질서를 수립함에 있어 실무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EU의 역할을 재평가하여 우리 정부의 북한 관련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