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임종기에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사망 직전까지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과 그 제도화는 미국과 같은 서구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연명의료에 관한 자기결정권, 치료거부권이라는 권리로 표현된다. 사망에 근접한 임종기에는 적극적인 치료행위보다는 높은 수준의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행해지는 것이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기준, 다시 말하면 삶의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사는 척도가 된다.1) 대만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권리를 법제화한 나라이면서, 정부와 사회의 합의에 따라 호스피스・완화의료가 꾸준히 발전하면서 아시아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죽음의 질을 보이고 있다.2) 대만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왕샤오민이라는 여성이 교통사고로 48년간 식물상태로 살게 되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안락사를 청원한 사건인 소위 ‘왕샤오민 사건’을 계기로 연명의료결정제도와 존엄사의 문제가 대만 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였고3), 2000년 6월에「안녕완화의료조례」4)(安寧緩和醫療條例, The Hospice and Palliative Act: HSPA)가 제정․공포되어 심폐소생술, 연명의료・보류 및 호스피스・완화의료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제가 도입되었다. 이 법은 친족 우선순위에 따라 환자 가족 중 1명만 동의해도 연명의료의 중단・보류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3차에 거쳐서 개정되었다.5) 최근에는 환자의 임종시 폭넓은 의료 선택지로서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내용6)의 법률인 환자 자주권리법 (病人自主權利法, Patient Self-determination Act: PSDA)이 201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하였고 2019년 1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대만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의료에 있어서 의료인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사실 안녕완화의료조례를 제정한 때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죽음에 관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제도가 시작되었는데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만으로서는7) 가족 자율성(family autonomy) 내지 가족중심의 결정문화에, 개인적 자율성(individual autonomy)과 자기결정권 문화가 유입되어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미리 표현해두는 의원서로 본인의 의사 결정과 가족・의료진 및 윤리위원회의 대리 결정이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8) 그래서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는 임종기 의료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 의료가부장주의 의식 때문에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승인을 하지는 않았지만9) 환자 자주권리법에 와서야 비로소 환자를 의료결정에 있어 미리 계획하고 결정하는 권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법제도가 완비된 것이다.10)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 심폐소생술과 연명의료의 중단・보류가 핵심이었다면, 환자 자주권리법에서는 환자 본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전돌봄계획이 핵심이다. 안녕완화의료조례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하여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심폐소생술과 같은 연명의료를 중단・보류할 수 있도록 의원서(Advance Directives)를 작성할 수 있게 했고, 말기환자가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이 의원서도 없더라도 환자 가족의 동의로 대리 결정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환자 자주권리법은 행위능력 있는 성인이면 누구나 의료진, 관련자들과의 상담・의사소통 과정을 의미하는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을 거쳐 사전의료결정(Advance Decision)을 할 수 있고, 사전의료결정이 실행될 수 있는 상태가 말기환자 뿐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 영구적 식물상태, 중증의 치매, 기타 치유 불가능한 환자에게까지 가능하며,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의 범위도 인공영양과 수분 공급까지 폭넓게 인정된다. 우리나라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 연명의료결정법, 이하 ‘법’이라고 칭함)로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부터 시행되어11) 이제 1주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환자가 사전에 본인의 임종기 의료결정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는 의미가 있으나 대만과 동일한 동양 문화권으로서 죽음에 관해 터놓고 소통하는 것을 꺼리는 관행이 존재하고 있어 이것이 극복해야할 요소로 작용한다.12)
이에 본고에서는 대만의 안녕완화의료조례와 환자 자주 권리법을 비교하여 분석하여 임종기 환자의 권리에 관한 법제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권 실현의 내용과 의미를 구명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제도에 주는 함의를 도출하고 우리 연명의료결정 법제가 나아갈 미래를 전망해 보기로 한다.
Ⅱ. 대만 「환자 자주 권리법」과 연명의료 결정 제도
환자 자주권리법의 체계는 1) 입법 목적과 용어의 정의, 그리고 환자의 설명 동의권 및 의사의 설명의무를 규정하는 총론적인 내용(제1조-제5조)을 시작으로, 2) 관련 법률들 간의 관계(제6조-제7조) 3) 사전의료결정의 요건과 실행에 관한 사항(제8조-제9조, 제12조-제17조), 그리고 4) 의료위임 대리인에 관한 사항(제10조-제11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하에서는 환자 자주권리법을 안녕완화의료조례와 비교, 분석하면서13), 두 법제의 변천사와 양립되는 관계,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의미 등을 살펴보도록 한다.
환자자주권리법은 환자의 자율성 즉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선종(善終, Good death) 할 권리를 보장하며, 의사와 환자의 조화로운 관계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안녕완화의료조례가 치료불가능한 말기환자의 의향을 존중하고 권익을 보장한다는 목적을 두고 있어 말기환자의 의료 중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환자 자주 권리법은 의료진과 환자의 소통과 관계 증진을 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고 좋은 삶의 마무리를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환자 자주 권리법의 입법목적에서 말하는 선종은 편안한 죽음, 안락한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는 점에서 안락사(‘good,well=좋은’이라는 의미의 ‘eu’와 ‘death=죽음’이라는 뜻의 ‘thanatos’의 합성어)라고 불릴 수 있겠으나, 안락사는 적극적・소극적, 자발적・비자발적, 직접적・간접적 안락사 등 다양한 죽음의 양태를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14) 이 법률에서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명시할 수 없다. 이 법의 내용 상 해석으로는 의료진과 가족 등 관계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사전돌봄계획을 통해 환자 본인의 의지와 권리를 존중하는 삶의 마무리를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천주교에서도 선종이라는 단어를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는 유지에 따라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의료를 거부하면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선례를 남겼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존엄사로 지칭되지 않기를 주장하여 그의 사망의 방식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겸손하게 순응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15)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 추구하는 환자의 선종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전돌봄계획을 수립하여 사전의료결정을 하고 특정 임상 조건이 되었을 때 무리한 연명의료나 인공영양과 수분공급을 거부하고, 완화의료 돌봄을 받으면서 삶의 마지막까지 삶의 질을 최선으로 유지하여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 분 | 안녕완화의료조례(HPCA) | 환자 자주권리법(PS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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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목적 | 치료불가능한 말기환자의 의향을 존중하고 권익을 보장함 |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보장하며, 의사와 환자의 조화로운 관계를 증진함 |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기계적 생명유지 장치, 혈액 제제, 특정질환을 위한 전문 의료, 중증 감염에 투여하는 항생제 등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 처치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제3조 제1호) 그리고 인공영양과 수액공급이란 몸에 넣는 도관 또는 침습성 처치로 음식이나 물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제3조 제2항)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는 심폐소생술과 연명의료를 각각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심폐소생술은 임종, 빈사 또는 생명의 징후가 없는 환자에 대해 기관 내 삽입, 체외 심장마사지, 구급약물 주사, 심장 전기충격, 심장 인공격동 인공호흡기 등 표준 구급절차 또는 기타 구급치료를 시행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제3조 제3호) 연명의료는 말기환자와 생명 징후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지만, 치유효과는 없고 빈사과정을 연장할 수 있는 의료라고 정의하고 있다.(제3조 제4호) 또한 이 심폐소생술 또는 연명의료 시행에 대한 선택을 ‘연명의료 선택’이라는 명칭으로 추가하고 있다. 안녕완화의료조례가 심폐소생술의 중단보류에 주안점을 두고 규정한 반면,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는 연명의료에 심폐소생술을 포함하여 임종기 회복불가능한 환자의 생명만 연장하는 의료를 연명의료로 폭넓게 정의하면서, 윤리적으로 쟁점이 되는 인공 영양과 수액공급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16) 그리고 인공영양과 수액공급은 사전의료결정의 범위에 포함되므로 중단, 보류할 수 있다.(제8조)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는 규정되지 않았던 개념으로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 預立醫療照護諮商)이 환자 자주권리법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한다. 환자와 의료서비스 제공자, 가족 및 친척, 기타 관련된 사람들이 논의하는 과정으로서, 그 내용은 환자가 특정 임상 조건이 되었을 때나 의식이 혼미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시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환자에게 제공해야 할 돌봄의 방식이나 환자가 수용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연명의료나 인공영양과 수액공급에 대한 것이다.(제3조 제6호) 사전돌봄계획은 의료기관이 제공하고(제9조), 임종기 환자의 권리 보장의 전제가 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이 중요한 요소이다. 사전돌봄계획을 통해 환자 본인의 사전의료결정 내용을 작성해두는 것이 권장되는데 이것이 환자의 자기결정의 내용이다.17) 사전돌봄계획을 수립하는데 특정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통상 중증 질병이나 사고로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이거나 머지않은 장래에 사망이 예상되는 경우에 사전돌봄계획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절차가 될 것이나 특정한 시기를 정해 놓고 있지 하고 있으므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의료진과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사전의료결정은 특정 임상 조건이 되면 실행할 수 있는 연명의료나 인공영양과 수분공급, 기타 의료 돌봄, 편안한 사망 등에 관하여 환자의 소망을 미리 서면으로 작성하고 서명하는 것을 말한다.(제3조) 이에 비견되는 절차로서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 상에는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이 있다.
완화의료는 환자의 신체적・심리적・영적 고통을 완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완화 또는 지지성 의료 돌봄을 말하며 완화의료의 목적이자 목표는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제3조 제7호) 앞서 안녕완화의료조례(安寧緩和醫療條例)도 완화의료를 동일하게 정의하고 있다.(안녕완화의료조례 제3조 제1호) 말기환자의 대상 질환에 제한이 없으므로, 말기환자는 질환에 상관없이 누구나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다.(안녕완화의료조례 제3조)
사전의료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특정 임상조건으로 환자 자주 권리법은 1)말기환자, 2)비가역적 혼수 상태, 3)지속적 식물상태, 4)매우 중한 치매, 그리고 5)고통이 극심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해 적절한 해결 방법이 없는 경우로서 중앙주관기관이 지정한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할 때(제14조)를 규정하고 있다. 안녕완화의료조례는 심각한 부상이나 질병에 걸려, 의사의 진단을 통해 치유 불가로 판단되고 의학상 증거가 있으며 단기 내에 병세가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는 것이 불가피한 사람을 말기환자라고 정의(안녕완화의료조례 제3조 제2호)하면서, 말기환자에 대해서만 연명의료의 중단, 보류나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시행하도록 했다. 이와는 달리,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는 말기환자로 표현하기 어려우나 치료 불가능한 상태의 환자들인 치매, 혼수상태, 식물상태까지 포섭함으로써 자기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시기와 대상자가 보다 넓게 인정되는 것이다.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 정의한 말기환자에 식물상태 환자나 혼수 상태 환자가 포함될 것인지 불분명했던 문제를18)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19)
구 분 | 안녕완화의료조례 (HPCA) | 환자 자주권리법 (PS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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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환자 | 말기 환자 | 말기 환자 비가역적인 혼수 상태 영구적인 식물 상태 극 중증의 치매 기타 환자의 질병상태나 고통이 참을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정도로서 중앙주관기관이 공고한 경우 |
안녕완화의료(제8조20))에 이어 환자 자주 권리법에도 설명에 의한 동의권(Informed Consent)21)을 명시하고 있는데, 전자의 규정은 의사 중심의 설명 고지라고 하면, 후자는 환자 중심의 설명 동의권으로 규정한 것이다. 환자 자주 권리법은 환자의 설명 동의권과 의사의 설명 의무를 별개의 조항을 구성하여 규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의 알 권리를 바탕으로 의사의 설명의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조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관하여 진단, 의료적 선택지22)와 그에 따른 가능한 효과나 합병증 등의 예후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을 듣고 알 권리와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적 선택지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제4조 1문) 그리고 환자의 진료 시에 세부 원칙으로서, 환자가 진료를 받을 때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스스로 판단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환자의 진단, 치료 방침, 처치, 투약, 예후, 발생 가능한 유해반응 등 관련된 사항을 환자 본인에게 알려야 하고, 환자의 명시적인 반대가 없으면 환자의 관계인들에게 고지할 수 있다.(제5조) 관계인은 환자의 법정대리인, 배우자, 친척, 의료위임대리인 또는 환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수술이나 검사를 받을 때의 설명의무와 동의권으로서, 환자가 수술 또는 중앙주관기관이 정한 검사나 치료를 받기 전에 의료기관이나 의사는 환자나 관계인의 동의를 거쳐서 서명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다만 응급 환자의 경우는 설명의무와 동의권 실행의 예외가 된다.(제6조)
환자 자주 권리법 상 온전한 행위능력이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서면으로 사전의료 결정(Advance Decision)을 할 수 있는데, 사전의료 결정을 하기 위해서 사전 요건으로 의료기관에서 사전돌봄 계획(Advance Care Planning)을 제공 받아야 한다.(제9조 제1항) 사전돌봄계획에는 환자 본인, 2촌 이내의 가족 중 최소한 1인, 대리인이 참여하여야 한다. 환자 본인이 승낙한 경우에는 다른 가족들도 참여할 수 있고, 2촌 이내의 가족이 모두 사망하였거나 실종되었을 경우처럼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제9조 제2항) 그리고 공증인이 공증을 하거나 2명의 현장 증인이 있고 의료기관이 사전의료결정에 날인을 하면 유효한 사전의료 결정이 된다. 그 서명은 국민건강보험 카드에 등록된다. 의료위임 대리인이나 주관 의료팀의 구성원은 이 환자의 사전의료 결정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제9조 제4항) 사전의료 결정을 한 환자가 말기환자 등 위에서 상술한 대상 환자의 상태라는 의사 2인의 진단과 호스피스 팀 2인의 자문이 있을 경우에 인공 영양 및 수분 공급을 포함하여 연명의료의 일부나 전부를 중단・철회・미실행할 수 있게 된다.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 연명의료로서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던 인공 영양과 수분 공급에 대해 환자 자주권리법에서는 사전의료결정 범위에 포함하여 환자의 자기결정의 효력을 실질화 하였다.23)
반면, 안녕완화의료조례에 의거하여 심폐소생술이나 연명의료를 중단・보류하려면 의원서(Advance directives)를 작성해야 하는데, 대만인으로서 만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본인의 의사로 의원서를 작성할 수 있어, 2인 이상의 증인이 함께 서명을 하면 효력을 가지게 된다.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과 의료위임 대리인의 서명을 필요로 한다. 의원서는 통상 3가지의 선택 사항을 두고 있다. 완화의료를 시행할 것인지,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것인지,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는데 동의하는지를 선택하도록 한다.24) 의원서를 작성하는데에 사전돌봄계획과 같은 소통 절차나 내용은 요구되지 않고, 의원서가 없더라도 가족이 대리 결정할 수 있으며 –즉 가족이 동의서를 작성하여 의원서와 동일한 효과를 가지게 할 수 있고- 가족이 없는 사람도 윤리위원회를 경유하여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의학적 권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환자 자주권리법과 크게 다른 점이다.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는 연명의료 중단・보류의 절차 조항 위반 시에 벌금, 징역, 자격상실 등의 벌칙을 정하고 있는데 반해, 환자 자주권리법에서는 이 법에서 정한 사전의료결정의 이행의 경우에 의료인의 민사적・행정적・형사적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안녕완화의료조례는 환자를 대신해서 가족이나 의료인이 작위적으로 치료 중단을 하는 방식이므로 의료인의 위반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벌칙을 부여하는 것이고, 환자 자주권리법은 환자의 자발적인 자기결정을 의료인이 따르도록 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 의료인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인데 행위와 형벌 간 균형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구 분 | 안녕완화의료조례 (HPCA) | 환자 자주 권리법 (PS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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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가능한 임종기 의료의 종류 | 심폐소생술(CPR)이나 연명의료의 중단 ・보류 | 연명의료 중단・보류, 인공영양과 수분공급, 기타 의료 돌봄, 편한 사망 등에 관하여 환자가 원하는 바를 사전의료결정 |
임종기 의료 이행 절차 | - 의원서의 작성 (제4조) ⇨ 의사 2인의 말기 상태라는 진단 (제7조) ⇨ 1) 의원서가 있으면 이행 가능함. 2) 의원서가 없는 경우 가족- 배우자, 성인자녀, 부모, 형제자매 등-이 대신 결정하고(동의서 작성), 가족이 없는 경우는 윤리위원회를25) 거쳐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의학적 권고를 내림 : 미성년자의 경우 의원서에 법정대리인의 동의 필요, 또는 의식이 혼미한 경우 등 의원서에 정확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 법정대리인이 대리 결정 (제7조) |
의료기관이 사전돌봄계획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사전의료결정에 날인(제9조) ⇨ 사전의료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대상 환자라는 전문 의료인 2의 진단과 호스피스 팀의 최소 2인의 자문 확인 (제14조 제2항) ⇨ 환자가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사전의료 결정을 이행하기 전에 확인(제15조) |
의원서/사전돌봄계획서의 유효 요건 | 의원인26)의 서명날인 의원인의 성명, 거주지, 신분증번호, 완화의료 또는 연명의료를 선택한다는 의향과 내용, 작성 시기 기재 2명 이상의 현장 증인 날인 * 증인이 될 수 없는 자: 안녕완화의료를 실시하거나 연명의료 중단보류를 실행하는 의료기관 소속 관계자 (제4조) |
의료기관의 사전돌봄계획 제공과, 의원인의 서명날인 - 공증인이 공증을 하거나, 행위능력 자 2명 이상이 현장에서 증인이 됨 * 증인이 될 수 없는 자: 의료위임 대리인, 주관 의료팀의 구성원, 의원인으로부터 유증을 받은 자나 의원인의 사망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 등 (제9조 제4항, 제10조 제2항) 사전의료결정 내용을 국민건강보험 카드에 등록 27) |
의료인의 면책과 기타 의무사항(완화의료 의무) | 의사가 위 임종기 연명의료 중단보류 절차(제7조)를 위반할 경우 대만화 6만 위안 이상 30만 위안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자격 상실(제10조) - 의사가 병력을 상세히 기재 하고 환자의 의원서 또는 동의서를 병력과 함께 보관해야 함(제9조) |
연명의료 중단・보류 내지 영양 및 수액 공급의 중단・보류에 대해 의료인의 형사적・행정적・민사적 책임 면제(제14조 5항) 연명의료 중단・보류 또는 영양 및 수액 공급의 중단・보류시 완화의료와 기타 적절한 처치를 제공해야함(제16조) 환자의 병력을 상세히 기록하고, 동의서, 사전의료 결정서 등 서류를 환자의 의무기록과 함께 보존해야 할 의무 (제17조) |
환자가 의식이 혼미해지거나 본인의 의사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을 때 환자의 의사를 대신해줄 수 있는 대리인을 의료위임 대리인이라고 하는데, 20세 이상의 온전한 행위능력자는 언제든지 서면으로 의료위임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안녕완화의료조례나 환자 자주권리법 모두에 의료위임 대리인을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대리인의 자격요건, 대리인 자격 배제요건, 당연 해임 사유 등을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 더 상세히 규율하고 있다.
안녕완화의료조례는 임종기 환자 의료에 관한 일반법적 지위를 가진다. 그래서 말기환자, 혼수 상태, 지속적 식물상태, 중증의 치매 등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상 환자가 아닌 경우 또는 환자가 사전돌봄계획이나 사전의료결정을 하지 않는 등 환자 자주 권리법이 적용될 수 없는 경우에는 안녕완화의료조례가 적용될 수 있다.(제7조) 즉 안녕완화의료조례가 환자의 의사 뿐 아니라 환자의 가족의 대리 결정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가 명확한 사전 의사표시를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도 환자의 임종기의 돌봄에 관한 일반법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연명의료 중단보류가 가능해진다. 또한 가족이 없는 사람이면서 의원서 작성이나 의료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았고 사전의료결정도 하지 않은 경우에도 안녕완화의료조례가 적용되어 윤리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 의료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Ⅲ. 한국의 연명의료결정제도에 주는 시사점
우리 연명의료결정법에서의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술로만 제한된다.(법 제2조 4호) 중단・보류할 수 있는 연명의료의 종류를 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과는 다르게, 환자 자주 권리법은 연명의료와 인공영양과 수분 공급을 포함하여 기타 좋은 죽음을 위한 의료적 돌봄을 환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로 남겨두고 있다. 연명의료의 종류를 법률로 제한하지 않는 유연한 연명의료의 정의 개념과 인공영양과 수액공급까지 환자가 사전의료결정을 할 수 있는 범위에 포함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무의미하게 사망의 과정만 연장할 수 있는 새로운 연명의료의 종류는 더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법률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연명의료결정법 상에는 말기환자와 구분해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정의하고(법 제2조 2호, 3호)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고 하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서만 연명의료 중단・보류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있다.(법 제2조 5호) 사실 사망이 극도로 임박한 환자라면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한 연명의료 중단・보류의 절차가 필요 없이,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망의 과정을 지나가도록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기본권 정신과 법의 취지에 부합하고 정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28) 반면, 환자 자주 권리법은 말기환자 뿐 아니라 영구적 지속적 식물상태, 극심한 치매 환자도 사전의료결정을 통해 인공 영양과 수분 공급을 포함하여 불필요한 연명의료나 적극적 치료를 거부하고 좋은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29) 이러한 환자의 경우 본인의 명확한 의사에 의한 실행은 자기결정권의 실현이지만, 타인에 의도에 의한 실행이라면, 그것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에 의한 안락사로 여겨질 수 있어 윤리적 논쟁의 위험이 있다. 만약 대만의 환자 자주 권리법의 경우처럼 임종기 의료 중단이 가능한 환자의 범위와 중단 가능한 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논의를 하게 된다면, 가족의 대리결정으로 의료 중단을 가능하게 허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 될 수 있다. 법 규정상으로 말기환자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는 것만이 구분기준이 되어 얼마나 시간적으로 사망에 근접해야 임종기인지 모호하고 불명확한데, 임상적으로도 말기와 임종과정의 상태를 구분하여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이거나 환자의 사망 시간을 예측한다는 것이 사실상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임종기 판단이 온전히 의사에게 맡겨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환자의 구분을 없애고,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 가능 시기를 말기환자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30)
가족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 안녕완화의료조례에 의하여 윤리위원회를 통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고, 가족이 아닌 타인도 사전에 의료위임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반면, 우리 연면의료결정법에 의해서는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지 않았다면 가족이 없는 사람의 경우 사실상 연명의료중단을 이행할 수 있는 통로가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1인 가족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고령 사회가 심화되고 있으며,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 의식이 더 강해지면서도 가족 간 이해관계 상충 문제의 해결이 필요한 상황도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족중심의 결정문화와 같은 전통적인 가족의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31),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나 대리인 지정 문제의 입법의 미비도 개선되어야 한다.32)
환자 자주 권리법의 사전돌봄계획과 비견되는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 상 제도는 연명의료계획서라고 할 수 있다. 사전돌봄계획의 작성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것에 비해33) 연명의료계획서는 작성할 수 있는 환자의 범위를 말기환자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만 한정하고 있는데(법 제10조, 시행규칙 제3조)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는 만성질환자였는데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말기에서 임종기로 증상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환자의 경우에는 의료현장에서 말기환자로 진단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실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중하거나 의식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불가능하거나, 이렇게 대화 불가능 상태의 환자에게 의료진이 설명하면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일이 되고, 굳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임종 환자에게서 연명의료를 하지 않는 것은 환자의 존엄성에 부합하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할 수도 없다.34) 연명의료결정법이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한다는 입법 목적과 취지가 무색하게 되지 않으려면.35) 환자 본인이 의료진과의 면밀한 상담을 통해 임종기에 대해 진정한 자기결정으로 숙고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시기를 말기환자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사전돌봄계획은 환자 뿐 아니라 가족과 관계자들도 참여하는 공동의 소통 과정이고, 사전의료결정 시에 담당의사 뿐 아니라 호스티스 팀이 자문을 하도록 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환자 돌봄이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우리 연명의료계획서는 담당의사가 정보 제공과 상담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설명사항일 뿐이다. 우리 법제에서도 사전돌봄계획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절차의 내용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36)
설명의무와 설명 동의권의 내용에 관해서 살펴보자면, 대만의 사전돌봄계획은 의료진과 환자 및 가족 등 관계자들의 소통 과정이고, 환자의 설명 동의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전제로 의료진의 설명과 상담이 뒷받침되어야하기 때문에 설명의무가 의료진에게 부과된다. 우리 연명의료결정제도에서도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가지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경우에 등록기관의 상담사가 설명의무를 지는 것으로 규정(법 제12조) 되어 있는데 환자를 진료했던 의료 전문가도 아니고 환자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며 책임 있는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설명의무를 가진다는 것이 설명 동의권의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의 의학적 상황에 대응해서 특정 의료적 행위에 동의하는 서식인 연명의료계획서와는 다르게, 본인의 질병 여부에 무관하게 임종기를 대비한 자발적인 사전 의사표시이고 진료나 치료를 전제로 하지도 않으므로 설명 의무를 요구할 필요도 없는 서류이다.37) 또한 대만의 의원서나 사전의료결정에서는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공증인의 공증이나 2명의 증인을 요구하면서 의료위임 대리인, 주관 의료팀의 구성원, 의원인으로부터 유증을 받은 자나 의원인의 사망으로 이익을 얻게 될 자 등의 이해 상충 관계가 있는 사람을 증인에서 배제하는 자격요건을 두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나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경우에는 증인을 요구하지 않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서식 상으로 보면 등록기관의 상담사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또한 공적 기관도 아니고 개별 기관의 자발적인 신청에 의해 지정된 등록기관들을 통해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등록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접근성이 높지 않다는 문제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의 여지가 있으므로38), 임종기 자기결정권이라는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 보호로서 충분하다고 보기에 미흡한 면이 있다.39)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진실성 입증 요건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법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와 접근성 제고에 관한 개선이 필요하다.40)
환자가 본인의 치료나 죽음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히는 데 익숙하지 않고, 본인의 임종기 치료에 대해 가족과 함께 결정하는 문화를 가지는 대만이나 우리나라는41)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과는 무관하게 환자 가족의 대리 결정이 가족 자율성으로서 윤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42) 대만은 안녕완화의료조례에 따라 말기환자의 심폐소생술과 같은 제한된 연명의료 결정에 한정하여 가족의 대리 결정이 가능하게 하고, 식물상태, 혼수상태, 치매를 포함하여 넓게 대상 환자를 다루는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는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만을 허용할 뿐, 가족의 대리 결정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규율되는 사망에 인접한 임종 환자의 경우 가족의 대리결정에 의한 연명의료중단・보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해서만이 아니라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도 부합할 수 있어 윤리적으로도 타당하다. 다만 연명의료의 종류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법 제2조) 추가될 가능성이 있고43) 현재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허용되는 범위를 재논의 할 수도 있으므로, 이와 함께 가족의 대리 결정 절차도 다시 제고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환자 자주 권리법에서는 인공 영양과 수분 공급의 중단・보류 시에 완화의료나 기타 적절한 수단을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환자가 마지막까지 최선의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규범적인 장치를 마련하였다. 반면 우리 연명의료결정제도에서는 인공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보류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선택지로 남겨두고 있어 연명의료의 중단・보류와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상호 보완 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44) 또한 우리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말기환자와 임종환자, 가족 등에게 통증과 증상의 완화 등을 포함한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영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제2조 6호)라고 규정함으로써, 임종기에 전인적으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인적인 돌봄이라고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의미와 취지를 규범적으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45) 환자의 삶의 마지막 권리를 보장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중요성과 의미가 규범적으로도 올바르게 개선될 필요가 있다.
Ⅳ. 결론
대만의 환자 자주 권리법은 기존의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 보다 비가역적 혼수상태, 식물 상태, 극 중증의 치매와 같이 대상 환자의 범위를 명시하고 인공영양과 수분 공급과 같은 임종기의 의료의 선택지를 확대함으로써 안녕완화의료조례에서 명확하지 않았던 영역을 입법적으로 보완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 맞는 제도의 모습을 갖추었다. 환자와 의료진, 가족 등 관계인들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여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인 사전돌봄계획 상담을 도입하고 환자를 배제한 가족들만의 대리 결정 통로를 두지 않음으로써 환자의 임종기의 자기결정을 강화하고 실질화하였다. 환자 본인이 사전돌봄계획에 참여하지 않다가 말기환자의 상태에서 임종기를 맞는 상황이 오더라도 안녕완화의료조례가 일반법으로 적용되어 인공영양과 수분공급을 제외하고는 심폐소생술과 연명의료의 선택은 가족의 대리나 병원윤리위원회를 경유하여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2010년 5월 31일자로 제정된 암관리법에서 처음으로 말기암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시행하는 법제가 마련된 이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어 2018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실행되고 있다. 좋은 죽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임종기 환자의 최선의 삶의 질과 환자의 자기결정이라는 두 가지 입법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명의료결정 법제는 대만의 안녕완화조례와 유사한 면이 많지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입법 미비나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으로서 보호하기에 불충분하며 개선 사항이 많다. 장차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화 하는 법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만의 환자 자주권리법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대만의 두 법률이 우리나라의 법제에도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의 대서사시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보건의료 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일 것이다. 삶의 질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만큼 죽음의 질도 향상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제가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