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초기 경쟁법은 시장실패 중에서 독점으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1) 독점과 관련하여 기본이 되는 규제정책의 쟁점은 착취남용(exploitative abuse)으로 전통적인 경제규제의 관점에서 가격남용(excessive pricing)이 이에 포함된다.2) 일찍이 아담 스미스는 자유경쟁으로 형성된 가격은 가장 낮은 반면에 독점에 의해 설정된 경우에는 가장 높은 가격이 된다고 설명하였다.3) 이러한 논의는 현재까지도 독점의 폐해와 관련하여 시장력(market power)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력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는 러너지수(Lerner Index)가 있다. 이는 관련 시장이 경쟁적인 상황에서는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증가하고, 반대로 독점적인 상황에서는 가격탄력성이 감소하는 것을 측정하는 방법이다.4) 러너지수는 독점상황에서의 가격상승을 판단하고 독점 사업자가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수익을 얻는지 살펴볼 수 있는 방법론으로,5) 독점적 지위와 그 폐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6) 러너지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한계비용(marginal cost: MC)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쟁당국과 법원은 대안으로 수요대체성을 측정하는 방법의 SSNIP(small but significant non-transitory increase in price)테스트를 통해 관련시장을 획정하여 해당 사업자의 시장력 또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확인하고 있다. SSNIP테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가상독점테스트(hypothetical monopolist test: HMT)도 기본적으로 가격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결국,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사업자의 시장력 유무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내용의 중심에는 독점사업자의 착취남용 또는 가격남용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격남용을 금지한 경쟁법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중요한 이유는 사업자가 설정한 가격이 과도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를 측정하고 이를 비교하는 기준이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경제분석을 이용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7) 따라서 일반적으로 특정 산업분야 규제당국에게 가격규제를 맡기는 방식으로 가격남용을 규제하고 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제외한 상당수 국가의 경쟁법은 착취행위나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적용하는 기준들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9)
우리나라의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또는 법)에서 착취남용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규정으로 규제하고 있다. 또한 일반불공정거래행위 및 특수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그리고 하도급법과 같은 공정거래법의 특별법을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일반불공정거래행위 중 차별적 취급(가격차별을 제외한 거래조건차별, 계열회사를 위한 차별, 집단적 차별) 및 거래상 지위남용(구입강제, 이익제공강요, 불이익제공 등)이 ‘착취·차별행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 특별법에서도 착취·차별행위 금지규정을 찾아볼 수 있다.10) 예를 들어,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에 의한 낮은 단가의 일방적 결정행위를 금지하고 있다.11) 낮은 단가에 대한 금지가 수요독점 사업자 또는 전통적 게이트키퍼(gatekeeper)에 의한 착취행위를 금지하는 한 예로 이해될 수 있다.12) 다만, 우리나라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제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추정하지 않고 규제할 수 있는 행태적 접근방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하게는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으로서의 착취나 차별남용규제로 볼 수는 없다.
특히 유럽연합(EU)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착취·차별행위금지의 경우 소비자후생을 고려한 규제인 반면,13)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보다는 거래 상대방 또는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 관계에서의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규제중심으로 법리가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에서 기술한 일반불공정거래행위금지 및 공정거래 특별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착취행위와 차별행위에 대한 규제정책이 폭넓게 법률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전통적인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경쟁법과 경쟁정책에서의 착취남용금지가 소비자후생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거래상지위남용 등으로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업자에 대한 보호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최근 디지털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많은 독점폐해의 문제가 정책의제로 논의되고 있다.14) 예를 들어 인앱결제에서의 높은 수수료와 관련하여 국내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 플랫폼 또는 디지털 경제에서의 가격남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이다.15)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분석·이용할 수 있는 감시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가 발전하면서,16) 플랫폼 이용자(또는 소비자)의 프라이버시17) 혹은 개인정보보호의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소비자가 온라인 플랫폼의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정보 또는 데이터를 사업자에게 제공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거대 온라인 플랫폼에 의한 데이터 결합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인지에 대해서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18) 유럽에서는 독점가격의 내용과 유사하게, 대량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통제하는 행위를 시장력의 원천으로 이해하기도 한다.19) 다시 말해 최근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가격남용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착취남용의 범위가 프라이버시침해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20) 이러한 착취남용의 내용은 프라이버시와 관련하여 소비자선택 또는 서비스 품질의 저하와 소비자의 동의 없는 개인정보의 획득을 포함한다.21)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개념의 착취남용은 가격남용을 의미하며 경쟁법위반을 판단하기 위해 경제분석이 필요한 반면, 프라이버시침해의 경우 경제분석보다는 행위자체로 위법성 판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준당연위법(quasi-per se illegality) 또는 행태주의(formalistic approach)의 집행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아시아국가의 경쟁법은 불공정거래행위금지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22)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조항을 적용하는 것보다 불공정거래행위규정으로 이를 금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착취남용으로의 프라이버시 내용을 논의하고 규제의 범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현대 경쟁법의 발전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디지털 경제 관련 남용행위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지고 또한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독행위(unilateral conduct) 또는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의 유형화 기준과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디지털 분야에서 상당수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사건이 등장하고 있으며,23)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이 제출되고 입법이 고려되는 상황에서 디지털 경제에서의 남용행위 유형화와 기준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현재 유형구분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데, 경쟁에 미치는 효과에 따라 세부적으로 배제남용, 방해남용, 차별남용, 착취남용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24)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착취남용과 배제남용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세 가지의 전통적인 남용행위 유형인 착취남용, 배제남용, 차별남용25)으로 분류한다. 그 중에서 착취남용의 개념을 이해하고 관련 범위를 획정하는 것이 현대 경쟁법의 발전과 관련하여 중요하다.26)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디지털 경제와 관련하여 현대 경쟁법에서의 착취남용의 기준을 비교법적 방법으로 논의하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주제와 목적을 논의하기 위해 제Ⅱ장에서는 경쟁법의 착취남용에 대한 일반적인 배경과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제Ⅲ장에서 디지털 경제에서의 착취와 규제의 내용을 비교법적 분석을 통해 논의하도록 한다. 제Ⅳ장에서는 디지털 경제와 관련하여 경쟁법의 향후 발전방향과 제언을 하고, 마지막으로 제Ⅴ장은 논문의 내용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도록 한다.
Ⅱ. 경쟁법에서의 착취남용의 근거
경쟁법의 일반 목적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경쟁법과 경쟁정책의 도입배경을 포함하여, 국가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와 문제점, 특정 정책 및 규제환경, 경쟁문화 등이 상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쟁법과 경쟁정책은 독점에 의해 발생하는 후생적인 측면에서의 부정적 효과(adverse welfare effect)를 규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27)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이 다양한 경쟁제한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 등을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기업활동조장, 소비자보호 및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 제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경쟁법의 목적으로 볼 수 있는데, ‘공정성(fairness)’의 개념은 국내외 경쟁법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논의되는 개념 또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28) 공정성의 가치는 단일행위 혹은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관련 규제에서 그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경쟁법에서의 공정성 개념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29) 공정성의 표현을 포함하는 실체규정이 있는 경쟁법의 경우에는 폭넓게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혹은 독점화를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판례법을 통해서 그 범위가 조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거래위원회법(Federal Trade Commission Act) 제5조에 불공정한 거래의 방법(unfair method of competition)을 금지하고 있는데, 조문에 ‘불공정’이라는 표현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위 조항의 판례법 발전은 불공정성의 증명기준을 엄격하게 하여, 실질적으로는 배제남용만 금지하는 내용으로 발전하였다.30) 유럽연합의 경우,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금지조항인 기능조약(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TFEU) 제102조 제a호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직간접적으로 불공정한(unfair) 구매 또는 판매가격을 부과하거나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부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31) 다시 말해 유럽연합 기능조약 제102조에서 불공정 또는 부당한 가격을 설정하는 단독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학적·역사적 관점에서의 공정성을 기반으로 유럽연합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된다.32)
위에서 설명한 두 경쟁법 체제에서 불공정성에 대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체규정 적용의 실질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연방거래위원회법 제5조가 독점화금지조항인 셔먼법(Sherman Act) 제2조의 판례를 기준으로 발전했으므로 가격남용에 대해서 관련 규정을 적용한 사례가 없다. 반면 유럽연합의 경우 기능조약 제102조를 적용한 사례가 존재하며 이러한 적용의 차이는 법의 목적에서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 특히 단일시장에서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유럽연합의 경우,33) 소비자후생을 포함하여 다양한 법의 목적을 포함한다. 이러한 내용은 유럽연합의 균형있는 발전 정책(cohesion policy)34)과 조화를 이루며 착취남용의 규제를 가능하게 한다.
유럽연합 경쟁법의 가치로서의 공정성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특별한 의무(special responsibility)’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판례법이 발전하게 된다.35) 무엇보다 독일에서 1930년대부터 시작된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헌법36)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보장과 경쟁의 과정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정부의 지나친 사적거래의 개입이나 독점사업자의 과도한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37) 질서자유주의는 사회주의와 결합하여 공정한 경제 또는 경쟁을 보장하는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유럽연합 판례법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그 내용은 미국 독점금지법의 판례법과 차이가 있다.38) 예를 들어, 시장지배적 지위추정을 위한 시장점유율의 중요성 강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특별한 의무부과, 특정 사업활동에 대한 행태적 접근방법, 그리고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39) 착취남용에 대한 규제가 질서자유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40) 이러한 배경은 지속적으로 유럽연합 경쟁법의 적용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는데, 특히 착취남용 및 차별남용을 폭넓게 포함한다.41) 무엇보다 질서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넓은 개념의 경제적 자유(wider notion of economic freedom)’는 현대 소비자후생의 기준에도 영향을 주었다.42)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제2조 제7호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정의하고 있는데, 관련시장에서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을 포함하여 거래조건 등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진 사업자를 말한다.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개념에는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가격 등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시장력을 가진 사업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는 전형적인 가격이론(price theory)과 같은 경제적 이론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상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정의는 외국 경쟁법의 접근 방법과 유사한데, 유럽연합 경쟁법 판례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정의하고 있다.43) 따라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의 기본은 가격남용을 포함한 착취남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시장지배적 지위추정 및 정의와 관련하여 남용의 유형화에 기본이 된다.
공정거래법 제3조의2는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을 금지하고 있다. 법 제3조의2 제1항은 상품의 가격 및 용역의 대가 관련 부당한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제1호), 상품판매 또는 용역제공을 부당하게 조절하는 행위(제2호),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조절하는 행위(제3호), 신규 경쟁사의 시장진입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제4호), 부당한 경쟁사업자 배제 또는 소비자 이익을 현저히 저해하는 행위(제5호)를 금지하고 있다. 법 제3조의2에서의 남용행위 유형은 그 분류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44) 이는 유럽연합 기능조약 제102조와 유사한 예시조항(non-exhaustive list)의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의 기본적인 유형은 착취남용과 배제남용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착취남용을 직간접적으로 거래상대방이나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남용행위로 이해하고 있으며, 배제남용은 실질적 또는 잠재적 경쟁자를 배제하는 남용행위로 정의하고 있다.45)
국내에서는 착취남용에 거래상대방의 이익저해를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 규제하는 차별남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용행위의 유형구분에 따라 경쟁제한성 또는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행위별로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착취남용과 배제남용의 관계가 배타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배제남용을 통해 시장력을 형성·유지·강화하여 결론적으로 착취남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두 가지 형태의 남용행위는 서로 연결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46) 실제 여러 형태의 남용이 서로 연결될 수 있으나, 개별적인 행위 하나를 중심으로 법위반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정거래법 제3조의2 제1항에서의 부당한 가격결정(제1호), 부당한 출고조절(제2호), 그리고 부당한 소비자이익의 저해(제5호 후단)를 착취남용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47) 이러한 유형 중 소비자이익저해의 내용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데, 위 조항의 전체적인 내용은 소비자후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까지 소비자후생의 일반적인 범위에는 낮은 가격, 좋은 품질, 폭넓은 선택, 혁신을 포함한다.48) 최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착취남용의 범위를 고려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의 소비자후생에 프라이버시까지 포함하는 논의가 있는데,49) 이와 관련해서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한다.
Ⅲ. 디지털 경제에서의 착취와 규제의 내용: 비교법적 분석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실무적인 측면에서 경쟁법 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규제의 핵심은 배제남용에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착취남용금지 관련 법리보다는 배제남용과 관련된 판례와 이론이 발전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과도한 가격이 시장에서의 경쟁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남용 혹은 착취남용을 규제하지 않고 있다.50) 무엇보다 가격남용을 금지하게 되는 경우, 시장지배적 지위자체를 규제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으므로 많은 나라에서 이와 관련된 경쟁법 적용에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기능조약 제102조 제a호에서 불공정한 가격, 즉 가격남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유럽학자들은 가격남용이야말로 독점 사업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착취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한 남용으로 ‘독점의 악(evils of monopoly)’으로 표현하기도 한다.51) 그러나 유럽연합 경쟁법에서 착취남용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당국이 높은 가격에 대해서 실질적인 우려를 표명하거나 규제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유럽법원(Court of Justice)의 법무판사(Advocate General)였던 Wahl은 AKKA/LAA사건52)에서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에서는 가격남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없으며, 시장진입장벽이 없는 상황에서는 높은 가격이 시장진입을 유인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시장진입장벽이 있는 경우에만 가격남용이 규제될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설명하였다.53)
유럽연합에서의 가격남용규제는 공정성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불공정한 가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기준이 중요하다. 이 개념이 최초에 거론된 것은 General Motors사건이었으나,54) 실제 중요하게 논의된 사건은 United Brands였다.55) United Brands사건에서 Chiquita는 독일, 덴마크, 베네룩스 지역의 사업자에게 다른 회원국 사업자보다 높은 가격으로 바나나를 공급하였다. 이러한 가격이 관련 상품의 가치에 비해 ‘과도한지(excessive)’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유럽법원은 경쟁당국인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법위반과 관련하여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불공정 가격(가격남용) 관련 경쟁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가격남용이 특정 상황에 따라 남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기능조약 제102조의 위반이 될 수 있는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법원은 판매가격과 생산비용을 비교하여 수익(profit margin)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을 법위반 판단기준으로 제시하였으며,56) 해당 사건에서 유럽집행위원회가 사업자의 비용구조를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57)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2017년의 AKKA/LAA사건에서도 인용되었다.58)
가격남용과 관련하여 유럽연합 판례법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법원이 제시한 비용 중심의 심사기준은 사업자가 가격설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익을 얻게 될 경우에 위반인지에 대한 기준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법원의 위법성 판단기준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럽법원은 두 단계 심사기준(two-stage test)을 제시하였는데, (1) 우선 해당 설정 가격이 과도한지(가격과 비용의 비교), 그리고 (2) 그 가격이 그 자체로 부당하거나 경쟁상품과 비교하여 해당 가격이 부당(unfair)한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두 번째 요건에서 해당 가격이 그 자체로 부당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측정이 필요하고, 이때 높은 가격을 통해 독점사업자가 얻게 되는 수익이 경쟁제한성 판단기준이 된다.59) 따라서 상당한 정도의 이익 자체만으로는 착취남용으로 볼 수 없으며, 부당한 가격에 대한 내용을 따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60)
우리나라에서는 가격남용 관련 사건으로 비씨카드 대법원 판결이 있지만, 공동의 시장지배력과 관련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증명하지 못해 가격남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별도의 독립된 사업자들이 각기 자기의 책임과 계산하에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의 사업자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61)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사건은 아니지만, 대우조선 하도급법 사건에서 대법원은 단가(가격) 관련 유의미한 판결을 하였다. 낮은 단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위탁 목적물 등과 같거나 유사한 내용에 대해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낮은 수준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의 수준은 ‘종전 거래의 내용, 비교의 대상이 되는 다른 거래(비교 대상 거래)에서 형성된 대가 수준의 정도와 편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하도급법의 목적에 비추어 증명의 정도를 너무 엄격하게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62)
대법원의 판결은 유럽연합의 United Brands에서의 두 단계 심사기준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우선, (1) 단가 혹은 대금(가격) 관련 남용은 가격설정 자체로 부당한 경우에, (2)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종전 거래가격 등과 비교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유사점이 존재한다.63) 위의 심사내용에는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그 적용의 목적에서는 차이점이 있다. 유럽연합의 규제내용은 결국 최종소비자의 후생을 증진시키는 것에 초점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거래상 지위의 측면에서 약자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64) 또한 비용과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사건에서는 높은 고정비용이 있는 산업에서의 가격·비용산출 고려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65)
유럽연합은 디지털 경제에서 경쟁법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각종 보고서를 포함하여 새로운 사전규제 법안들이 등장하고 논의되고 있다.66) 디지털 경제와 관련하여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새로운 경쟁법의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개인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이하 GDPR)67)의 규제내용과 중복될 수 있다.68) 다만 현재의 유럽연합 판례법에 의하면 개인정보 관련 민감한 문제는 경쟁법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69) 시장경쟁의 증진이 프라이버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법의 적용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70) 또한 개인정보보호법과 경쟁법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법의 적용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최근 프라이버시 또는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하여 경쟁법의 적용이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경쟁당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CMA)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 ICO)와 협력하여, 최근 구글의 프라이버시 샌드박스 관련 위법성 판단 및 동의의결을 논의하고 있다.72)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소비자착취 문제와 관련하여 데이터보호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 기능조약 제102조의 위반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가격남용과 불공정한 거래조건부과의 요소 및 기준을 결합한 경쟁침해이론(theory of harm)73)에 근거를 두고 있다.74) 무엇보다 경쟁침해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비자후생의 저해라고 할 수 있다.75)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의 프라이버시보호와 새로운 경쟁침해이론의 배경에는 독일 페이스북 사건이 있다.76) 이 사건에서 독일 경쟁당국인 연방카르텔청(Bundeskartellamt)은 페이스북이 GDPR에서 규제하는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77) 연방카르텔청은 페이스북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 사용, 그리고 결합하는 행위가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이라고 결정하고 부당한 약관에 의해 데이터가 결합되는 것을 금지하였다.78) 이러한 판단의 내용에는 소비자착취를 기준으로 하는 경쟁침해이론이 있다. 불공정한 조건을 부과하는 남용은 사용자에게 데이터결합에 대해서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결국 과도한 양의 개인정보를 양도하도록 유도 또는 조작했다는 점에 있었다. 경쟁당국은 사용자의 적절한 동의부재에 초점을 맞추어 페이스북의 GDPR위반이 사용자에 불이익을 주었다고 강조하였다.79)
독일 페이스북 사건은 프라이버시와 경쟁법의 관계와 관련하여 많은 논의를 가져왔다.80) 이 사건은 유럽연합 경쟁법의 적용이 아닌 개별 회원국 경쟁법을 적용한 사건이지만,81) 현재 유럽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GDPR의 위반을 기능조약 제102조의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 논의되고 있다.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 논의되는 경쟁침해이론이 기능조약 제102조 적용과 관련하여 인용될 수 있는지 현재로는 의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플랫폼이 효과적인 간접네트워크효과를 위해 무료서비스(zero-price or free service)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관련하여 디지털 경제에서의 가격남용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82) 이 사건은 뒤셀도르프법원이 선결적 판결(preliminary ruling)을 신청하여 2021년 7월 현재 유럽법원에 계류중이며,83) 유럽법원의 판결에 따라 GDPR 위반이 경쟁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착취남용규제에는 여러 가지 실무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가격남용에 대한 전통적인 반대의견은 (1) 높은 가격이 시장진입 또는 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으며, (2) 지나친 가격남용 규제는 혁신 관련 투자를 유인하는데 부정적일 수 있고, (3) 어느 정도의 가격이 남용으로 볼 수 있는지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84) 이러한 문제는 프라이버시침해의 착취남용과 관련하여 유사하게 논의될 수 있다. 우선 프라이버시침해는 경쟁사의 시장진입을 유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데이터 수집과 프로세스를 규제하는 경우,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또한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착취남용에 해당하는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반론은 역동적 효율성과 착취남용으로 인한 소비자후생저해와 관련해 비교형량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소비자후생에 프라이버시를 포함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위법성 판단기준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Ⅳ. 디지털 경제 관련 경쟁법의 발전과 제언
전통적으로 착취남용의 내용은 가격남용을 중심으로 경쟁법 이론이 발전하였는데, 시장력 남용의 전형적인 결과로 가격남용을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85) 착취남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데, 우선 착취남용 규제에 대한 반대의견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신규진입을 유도하는 가격이나 혁신 관련 기술개발에 투자한 것을 회복하기 위한 가격의 경우 경쟁법 적용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쟁당국이 위 행위를 규제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가격남용에 대한 시정조치가 어려우며, 지나치게 가격남용을 금지하는 경우 경쟁당국이나 법원이 가격규제 및 통제기관으로 이해될 수 있다.86) 이와 더불어 위법성 판단기준이 존재하지 않거나 설정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독점가격 또는 가격남용의 부당성 혹은 경쟁제한성을 판단하기 위해 정당한 가격기준이 있어야 하며 비용 또는 원가분석이 필요한데, 이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취남용규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내용이 착취남용이며 이는 ‘공정경쟁’의 문제와도 연결된다.88) 예를 들어, 최근 유럽연합에서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시장법안(Digital Markets Act: DMA)의 실체규정에 독일 페이스북 사건을 반영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89) 법안 제5조 제a호는 핵심 플랫폼 서비스제공으로 획득한 개인정보가 다른 서비스 또는 제3자 서비스로 획득한 정보와 결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의 접근방법은 독점을 의심할만한 플랫폼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선택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불공정한 내용의 동의를 요구(take-it-or-leave-it offer)하는 행위와 소비자의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는 행위가 착취남용이라는 의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90)
경쟁법에서의 공정성을 포함하는 규정은 일반적으로 착취남용규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질서자유주의 기반의 공정성은 효과적인 경쟁이 존재하는 경우에 독점자가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정한다.91) 이러한 내용은 폭넓은 소비자후생의 범위를 가능하게 한다.92)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 독일경쟁당국은 사용자 데이터의 결합 등과 관련된 약관이 부적절한 계약 또는 거래조건과 관련된 착취남용으로 판단하였다.93) 페이스북 사건이 프라이버시와 관련하여 현대 경쟁법에서 중요한 이유는 사용자의 개인정보에 대한 과도한 접근(excessive access)이 소비자후생을 저해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플랫폼의 무료서비스 사용의 대가 또는 ‘반대급부’로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는 부분이 경쟁법의 이슈가 된다.94) ‘반대급부’의 관점에서 볼 때 플랫폼 이용에는 넓은 의미의 거래가 발생하며, 이러한 관점에서는 플랫폼 서비스와 데이터가 무료가 될 수 없다.95) 그러므로 과도한 개인정보 접근은 착취남용이 될 수 있다.96) 또한 프라이버시 자체가 디지털 경제에서 경쟁의 중요한 척도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 소비자가 멀티호밍을 통해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면, 프라이버시를 고려하는 소비자는 자유롭게 프라이버시 보호를 보장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멀티호밍과 프라이버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97) 다만,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플랫폼 서비스의 품질은 소비자의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경쟁제한성을 판단하는 것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존재한다.98)
마지막으로 소비자후생의 해석 또는 범위의 확장은 공익 또는 공공의 가치와 연결되며,99) 무엇보다 프라이버시의 문제는 개인의 기본권과도 관련이 있다. 경쟁법이 원칙적으로 기본권에 대한 보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유럽의 질서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자유, 기회의 균등, 공정성과 민주주의가 경쟁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00) 다시 말해, 사적 경제력(private economic power)의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기본권과 그 가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101) 또한 소비자의 착취와 관련하여 시장진입장벽이 상당히 높거나 그 외의 특정 상황에서 상당한 시장력이 존재하는 경우, 공익의 관점에서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102)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디지털 경제에서의 소비자후생 범위에 프라이버시를 포함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 또는 소비자의 방대한 데이터 수집은 시장지배적 지위추정에 한 요소로서 포함되어야 한다. 그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가 무료 서비스 이용의 대가로 가명화된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데이터가 시장지배적 지위추정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절대적인 요건이 될 수 없는데, 데이터는 배타적인 재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획정에 따라 시장지배적 지위를 추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할 수밖에 없으며, 플랫폼의 데이터 수집은 이용자수에 따라 사업자의 시장력을 추정하는 한 요소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에서는 가격남용과 같은 착취남용규제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가격남용이 배제남용의 결과로 발생하는 문제를 고려하는 누적남용(cumulative abuse), 시장통합과 관련하여 병행수출입을 제한하는 이슈, 합법적 독점(자연독점) 등이 착취남용과 관련하여 심사하는 요소이다.103) 이때 주목할 만한 내용은 누적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착취남용 그 자체는 규제대상이 될 수는 없고, 배제 등의 경쟁제한적 효과가 발생할 경우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금지가 가능하다.104) 따라서 프라이버시가 소비자후생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프라이버시침해 자체만으로 경쟁법 상 규제하는 착취남용으로 금지할 수 없고, 다른 경쟁제한적 효과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를 금지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적절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 경제에서의 데이터 수집 및 프로세싱은 역동적 혁신에 필요한 투자를 유인하기 때문에 사전적 관점에서 비교형량을 고려해야만 한다.105)
경쟁법에서의 소비자후생을 고려하면, 프라이버시침해는 소비자착취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과 경쟁법과의 중복 및 충돌을 고려하면, 공정거래법 제3조의2 제1항 제5호에서의 소비자이익의 저해금지에 근거하여 규제해야 한다.106) 따라서 공정거래법 상 불공정거래행위금지의 방법으로 프라이버시침해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107) 또한 기존의 가격남용의 경우를 고려해보면, 프라이버시침해에 대한 경쟁법의 적용은 다양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라이버시침해가 소비자후생의 저해로 고려되고 착취남용법리를 중심으로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의 유형으로 인정될 경우, 당해 사건에서 단독으로 위 행위를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사업자의 행위가 배제남용 또는 다른 사업자를 배제하는 효과가 있는 경우에만 법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프라이버시침해에 대한 착취남용 위법성 판단기준의 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추정을 근거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남용행위만 금지하고,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아닌 경우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 게이트키퍼 또는 초대형 플랫폼(super platform)108)의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따라서 법 제23조의 불공정거래행위금지규정을 프라이버시침해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시장지배적 지위와 프라이버시침해에 대한 인과관계의 증명이 필요하다.109) 둘째, 착취남용으로의 프라이버시침해는 그 자체만으로 규제할 수 없고, 당해 행위가 배제남용의 결과로 발생하게 된 경우로서 누적남용이 된 경우에 규제가 가능하다.110) 셋째, 경쟁적인 상황에서의 일반적 데이터 수집과 프로세스 등의 과정이 아니라 독점적인 환경에서 소비자가 다른 대체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프라이버시침해가 있는 경우에 경쟁법의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도 경쟁당국은 경쟁적 상황에서가 아닌 멀티호밍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적절한 동의 없는 데이터결합문제를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경쟁적인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독점적 시장 환경에서 발생하는 경우, 이를 경쟁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착취남용 중 가격남용에 대한 시정명령은 실무적인 측면에서 어렵다. 적절한 가격을 설정하도록 시정명령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111) 이는 경쟁당국이 가격규제기관으로 변질되는 상황을 초래한다.112) 또한 높은 가격은 역동적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체적인 사회적 후생이 보장될 수 있다.113) 반면,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해서 시정명령의 내용은 훨씬 간단하다.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와 같이 사용자의 데이터결합금지와 같은 행태적 시정명령의 방법으로 프라이버시침해 관련 착취남용을 규제할 수 있다.
V. 결론
데이터는 현대 디지털 경제에서의 역동적 효율성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나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은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부정적인 효과도 발생시킬 수 있다. 최근 데이터 활용과 관련하여 프라이버시보호의 문제를 개인정보보호법뿐만 아니라 경쟁법의 적용가능성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정보보호와 소비자보호 관련 법률을 포함하여 경쟁법도 소비자후생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므로,114)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경쟁법의 적용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관련된 법리의 발전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며, 프라이버시가 소비자후생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론과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대 디지털 경제와 시장에서 프라이버시를 소비자후생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유럽을 중심으로 상당히 논의되고 있으며, 프라이버시침해가 착취남용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견이 독일 페이스북 사건과 관련하여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현대 경쟁법은 진화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디지털 경제 관련 남용행위의 유형화와 범위, 그리고 위법성 판단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특별한 의무를 강조하는 유럽연합에서도 최근 판례법의 발전을 살펴보면, 경쟁의 장점(competition on the merit), 즉 경쟁을 통한 가격, 선택, 품질 및 혁신과 같은 소비자후생증진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관련 경쟁제한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이해되고 있다.115) 프라이버시가 소비자후생의 한 요소로 포함이 되는 경우에도 경쟁의 장점이 위법성 심사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따라서 디지털 경제에서의 착취남용을 판단하는 기준은 경쟁의 장점 또는 경쟁의 과정을 중심으로 프라이버시침해를 종합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프라이버시 관련 경쟁법과 다른 법률과의 중복 및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에 대해서만 경쟁법의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 독점적 지위가 없는 일반 사업자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규율되어야 한다. 또한 유럽연합 판례법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기존 착취남용의 법리에서는 가격남용의 경우 경제분석을 요하기 때문에, 배제남용과 결합한 착취남용, 즉 누적남용법리의 방법으로 위법성 판단기준이 발전하고 있다. 경쟁법에서의 공정한 가격은 완전경쟁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의미하는데, 데이터의 경우 데이터거래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도 실질적으로 그 가치를 환산하는 것은 어렵다. 프라이버시의 경우에 현재 경제분석을 통한 위법성 판단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금지조항을 적용하게 되면 행태주의적 접근 또는 준당연위법의 방법으로 규제하게 되며 결국 1종오류(Type I error)를 발생시킬 수 있다. 실제 가격남용과 관련하여 1종오류의 부정적 효과가 2종오류의 효과보다 더 문제가 될 수 있다.116) 특히, 싱글호밍이 아닌 멀티호밍의 상황에서는 지나친 규제로 인한 1종오류의 결과가 훨씬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117)
인공지능의 개발과 발전을 위해서 빅데이터가 필요하며, 사업자들은 이를 위해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는 무료서비스를 원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요구들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통해 역동적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밖에 없다.118) 결론적으로 가격남용의 법리와 유사하게 프라이버시에 대한 착취남용금지의 내용도 비교형량의 심사내용으로 규제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119)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선택이 프라이버시 침해 관련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판단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처럼 상당수의 사용자가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프라이버시침해가 발생했다면 이를 디지털 착취남용의 근거로 위법성 판단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동등하게 효율적인 경쟁자(equally efficient competitor)가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착취가 발생하는 경우 프라이버시침해는 경쟁법의 규제대상이 되어야 한다.120) 따라서 프라이버시보호와 관련된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금지는 특별법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존 가격 관련 착취남용에 대한 경쟁법의 적용은 경쟁당국의 재량권으로 집행되고 있다.121) 프라이버시 관련 착취남용의 경우도 실제 집행에서는 경쟁당국의 재량을 중심으로 기존 가격남용금지 집행과 유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가 소비자후생에 포함되고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금지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디지털 경제에서 현대 경쟁법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