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헌법적 공직 윤리: 고전 공리주의와 공동선 개념을 중심으로

하재홍 *
Jaihong Ha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경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법학과, 교수.
*Kyonggi University, College of Law, Professor.

© Copyright 2023,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Sep 07, 2023; Revised: Oct 24, 2023; Accepted: Oct 24, 2023

Published Online: Oct 31, 2023

국문초록

우리 헌법은 공무원에 대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7조 제1항). 헌법은 대통령, 국회의원 등에 대해서도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문구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본 논문은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과 고전 공리주의를 통해 이 문구의 기원과 의미를 제시해보려는 시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통치의 목적에 대해 논하면서 공동선 개념을 제시했다. 공동선이란 시민이 삶의 완성을 위해 사회에 참여한 이상 준수해야 하는 사회생활의 원리이다. 중세 자연법 신학자 아퀴나스는 공동선 개념을 법의 목적이자 어떤 형태의 통치이든 그 정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발전시켰다.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은 질서 있고 자유로운 사적 선의 추구가 개인과 공동체의 번영을 만들어낸다고 이해하며, 특히 통치자에게는 공동선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정치적 책임을 부여한다. 17세기 이후에 컴버랜드 등 개신교 신학자를 포함한 잉글랜드 지식인들은 이 공동선 개념에 근거를 두고 성공회 공리주의를 만들어냈다. 벤담과 밀의 고전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동이 도덕적인가 판정하는 기준으로 공리의 원칙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이전의 공리주의적 사조에서 생겨났으며 공동선 개념을 탈신학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공동선 개념과 고전 공리주의는 시민의 윤리학이라는 점에서 공적 윤리이며, 공직자에게는 공직의 역할을 명확하게 제시한 점에서 헌법적 공적 윤리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공동선 개념과 여기서 발전한 고전 공리주의가 공직자에게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의 의미, 방법, 한계를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직자가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정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의 활동이 일부의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 방법은 오랜 불편을 해소함으로써 국민 생활의 공통된 편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또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을 공직자가 특정한 이념에 입각해 국민 생활의 전반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데, 롤즈가 공동선 개념을 경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사회의 발전과 변화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주도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고 공직자의 역할은 그런 변화를 위한 봉사에 그치기 때문이다.

Abstract

The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provides that all public officials shall be servants of the entire people and shall be responsible to the people [Article 7 (1)]. The Constitution also provides that the president and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should respect and work for the good and interests of the entire people. However, the meaning of this article remains unclear.

This article aims to provide preliminary explanations of the concept of the common good of natural law theory tradition and the principle of Utility of classical utilitarianism. In his Politics, discussing objects of governance, Aristotle introduced the concept of the common good. The Common Good is the principle for the citizens participating in the community for their completion, working as the guidelines for the people who live together. St. Aquinas, the great medieval theologist, developed this concept as the purpose of the law and the criteria of the institutional legitimacy of all politics. Since the 17th century, R. Cumberland and several theologians produced Anglican utilitarianism by developing the common good of natural law theory tradition. The common good theorists understand that people only living freely and in a well-ordered society enjoy prosperity. When J. Bentham and J.S. Mill set the principle of Utility as a criterion of the morality of individual acts, they made this of the concept of the common good by eliminating elements of theology. In this way, the common good and classical utilitarianism become a system of public ethics. This article asserts that the concept of the common good of natural law theory and classical utilitarianism can provide the full meaning, method, and limits of article 7(1).

Keywords: 헌법; 국민 전체의 봉사자; 공직윤리; 공동선; 고전 공리주의
Keywords: The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Public Officers as servants of the entire people; Public Ethics of the Public Office; the Common Good; Classical Utilitarianism

Ⅰ. 문제 제기

우리 헌법은 모든 공직자의 도덕적 의무로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헌법 제7조에 대한 해석론은 국민에 대한 책임의 성격, 직업공무원제도와 정치적 중립, 공무원에 대한 기본권제한의 한계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1) 특히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부분은 모든 공무원이 국민주권주의에 근거를 두고 공권력을 부여받았으니 권한의 행사에 있어 공복(公僕) 정신을 가지고 주권자의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2) 문제는 이런 해석이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공직의 존립 근거와 공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을 말하지만, 공직에 근거한 권한 행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고, 과정에 대해서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객관적인 해석 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공직자로서 헌법의 제반 원리에 유념하면서 권한을 행사해야 하겠지만, 국가의 존재 목적이나 정치 권력의 정당화에 관해 여러 정치철학이 경합하고 있으며, 여기에 의견일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 공직자로서는 자신이 최선으로 생각하는 정치철학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선출직 공무원이면 사정은 더 나빠질 수 있는데, 공약을 내 걸고 당선되었으면 이제부터 어떤 반발이 있어도 그 공약의 실천만이 국민 전체를 위한 절대 선으로 인정받는다고 여기는 공직자도 흔하기 때문이다. 키스(M.M Keys)는 ‘국민 전체의 이익’(공동선)이라는 개념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 우리가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과거 나치의 폭정이나 스탈린의 철권 통치 시절을 겪었던 이들은 개별적인 이익보다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식의 정치선전을 기억하고 있으며, 근래에 악명을 떨쳤던 탈레반(Taliban) 정권도 말로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고 내세우기 때문이다.3) 이런 점을 이해하면, 버뮬(A. Vermeule)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대해 접근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가 바로 국민 전체가 공유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선(善)임에도 권력자가 자기 입맛대로 제시하고 강제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라고 말한 이유를 알게 된다.4)

이렇게 보면, 헌법정신 중에 가장 쉽게 허울로 전락할 수 있고 따라서 취약한 부분이 바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역사적 경험이 보여준 위험을 인식하고 조용히 교과서 한편에 묻어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최근 공무원의 적극 행정 의무와 관련한 논의는 다시 이 문구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것은 공무원의 책임으로서 국민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실현할 의무를 규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5) 하지만 ‘공익’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나 해석이 보충되지 않으면 자칫 공무원이나 공익이 시민과 사익에 대해 우위에 있다는 관념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고 생각된다. 본 논문의 목적은 공직의 목적과 권한의 수행 방식에 있어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헌법 제7조 1항 전단의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라는 부분을 해명하는 것이다. 흔히 관료 또는 직업공무원으로 지칭하는 비선출직 민간 공직자의 업무수행과 공직자로서의 헌법적 윤리 문제에 대해서는 고찰할 주제들이 많이 있고, 특히 미국에는 존 로(John A. Rohr)와 같이 이 영역에 상당한 연구업적을 남긴 인물도 있지만6), 우리의 경우에는 미개척 영역이다. 본 논문은 공동선 개념과 고전 공리주의를 헌법적 공직윤리의 출발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벤담(J. Bentham)과 밀(J.S. Mill)의 고전 공리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입법을 비롯해 통치의 정당성을 근거짓는 역할을 해 온 공동선 개념을 탈신학적인 방향으로 계승한 공적 윤리체계이며, 공직자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공직을 수행할 때 유용한 실천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먼저 공직자의 공직 윤리가 공백으로 남아있는 현실을 진단하고, 헌법적 공직 윤리를 수립할 필요를 제안한다. 이어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공직 윤리의 역할을 해온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을 간단히 소개하고, 고전 공리주의에서 공리의 원칙(Principle of Utility), 공리주의와 공동선 개념의 관계, 공직 윤리로서 고전 공리주의와 공동선 개념의 전망에 대해 차례로 살펴본다.

Ⅱ. 공직 윤리와 공동선 개념

1. 공직 윤리의 부재와 헌법적 공직 윤리의 요청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공직자 윤리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 것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관(牧民官) 사상이었다. 다산은 조선 후기에 임명직 지방관의 공직윤리에 관해 주색(酒色) 및 나태함과 거리두기, 사적 이익의 유혹에 대한 경계 등 청렴과 수양, 절제를 강조했다고 하고, 이런 윤리의식이 현대의 선출직 공직자에게도 유효하다는 견해도 있다.7) 다산의 공직 윤리를 현대화하고 계승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서구에서 전통적으로 정치적 선이자 통치자와 시민의 덕목으로서 강조되어 온 공동선 개념을 중심으로 공직 윤리를 논의하기로 하고, 먼저 올바른 공직 윤리의 부재와 이로 인한 병리적 현상에 대해 간단히 진단해본다.

이제 법률가들이 넓게 사회에 진출하여 활약하는 시대를 맞아 국정운영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헌법정신을 드러낼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와 함께 공직 윤리의 부재로 인한 병리적 현상도 심각한 지경에 이른 듯하다. 입법이나 정책 결정에서 여러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은 그 사회가 정치적으로 건강하다는 징표이다. 하지만 입법과정에서 건전한 토론은 실종되고 정치 및 사회적 권력이 나뉘어 표나 세의 대결로 치닫는 일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정치적 의사결정이 긍정적인 결실을 이루는 일보다 부패나 정책 수립·집행 과정의 불법 등 법적인 책임추궁이 뒤따르는 현상을 일상으로 접할 수 있다면 과장일까. 입법 제안은 많아도 입법과정에 원칙이나 절도가 없다든지, 정쟁에 치우친 입법이 아니냐고 우려한다면 기우일까. 길거리에 구호만 가득 울리고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는 자세가 실종된 것은 그렇다 해도, 입법과정에서도 상대의 의견을 듣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강변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거나 다수의 수를 앞세우고 이념에 치우쳐서 입법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나 우려가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그 원인이나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루고 이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널리 인정받는 나라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틀을 갖추고도 정치가 제반 문제를 건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법률가로서 크고 작은 공직 수행에 있어서 헌법정신에 충실하려면 그런 일 자체의 시시비비를 떠나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이 부정행위에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적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또 근본적으로는 윤리학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8) 다만 근래에 입법과 정책의 결정 및 집행을 둘러싼 혼란상을 보면, 개인의 올바른 선택과 행동의 원리를 탐구하는 좁은 윤리학 외에 공직자의 공직 윤리에 관한 최소한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조악한 정치철학에 과격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것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건전한 공직 윤리에 따라 공직을 수행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지금은 헌법정신에 상응하는 공직 윤리의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적 공직 윤리는 헌법에 근거를 두고 공직 윤리를 해명할 뿐 아니라 헌법의 제반 원리와 부합하고 실제 공직 수행에 실천적인 방향과 지침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대의 여러 도덕 이론 및 정치철학의 발전도 고려해 내용이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적 공직 윤리의 정립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인데, 여기서는 서구에서 전통적인 공직 윤리관으로 사용된 공동선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기로 한다.

2. 자연법 전통과 공동선 개념

서구에는 정당한 통치의 시금석으로 공동선 개념을 사용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고 중세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근대 이후로는 마키아벨리와 루소에 의해 각각 공화정의 정치원리로서 재해석되었고, 현대에는 공리주의와 신자연법 전통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근대기까지 공동선 개념의 형성과 변천사에 대해 간략하게 개관한다.

1) 공동선 개념의 연원과 변천

공동선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모여 집단을 이룬 것으로 가정이나 마을, 도시(국가)가 있지만, 각기 목적하는 바가 상이하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국가를 이루는 이유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삶’(Well-being)을 위해서라고 했다. 특히 「정치학」(Politics) 제3권에서 국가의 정체를 왕정과 귀족정, 혼합정으로 구분하면서 각 정체가 다 ‘공통의 유익’(common advantage)을 추구하는 한 올바른 정체라 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된 정체도 마찬가지인데, ‘시민들 사이에 공통되고 공유하는 유익함’(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체는 정당한 정체이고, 치자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체는 ‘폭정’(despotism)이라 했다.9) 그리고 자유 시민의 공동체에서 통치자이자 피치자인 시민이 공동체 전체의 유익(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몫을 해야 한다는 원리를 자연법이론에서는 특히 ‘공동선의 원리’(common good principle)라 부른다.10)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도시(국가)에서 정치의 목적이자 각 시민의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제시한 것인데, 왕정이냐 귀족정이냐 아니면 혼합정이냐 하는 정체의 구별이나 우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체에서건 ‘공동의 이익’[이하 ‘공동선’(common good)이라 표현한다]을 추구하는 한에서만 정당한 정체라는 인식이 서구 사회의 오랜 전통이 되었다. 우리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제7조 1항),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 제2항),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제69조)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표현의 차이가 있어도 결국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직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인데11),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국가의 존재 목적이자 정당한 통치의 요건에 기원을 둔 것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의 목적을 공동선으로 제시했어도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무엇이며 시민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다른 시민과 공유하는 선을 실현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적 덕목 가운데 무엇보다 정의의 실천을 강조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12), 공동선의 원천으로 정의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는 것도 여기서 기원한다.

로마 공화정 시대에 공동선은 공화정의 정치원리로 수용되었다. 특히 키케로는 ‘인민의 것’(res populi. republic)’을 모든 시민이 관심 가지고 참여하는 일로 이해했는데, 공동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중심에 있었다.13) 우리 헌법이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것은 공화라는 정치의 목적과 정체를 일치시킨 것으로서, 모든 국민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공화와 공동선 원리에 민주주의를 결합한 것이다.14)

공동선 개념은 중세에 정교하게 발전했다. 여기에 기여한 인물로 솔즈베리의 존(John of Salisbury)과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를 들 수 있는데, 양자 모두 고전 공리주의와 유사한 견해를 주장한 공통점이 있다. 12세기 초반에 활약한 솔즈베리의 존은 서구에서 공직자용 정치이론서라 할 「공직자를 위한 지침서」(Policraticus, The Statesman's Book)를 처음으로 저술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이론과 키케로 등 로마 공화정을 이끌었던 이들의 정치적 경험, 라틴 교부와 성경의 가르침을 동원해 군주의 신민에 대한 책임 문제를 다루었는데, 특히 폭군살해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15) 존은 여기서 군주를 위해 궁에서 일하는 궁정 신료가 군주의 명에 순응하면서도 겪게 되는 관운(官運)의 부침이라든지 공직자로서 불가불 많은 적을 만들게 되니 공직에서 물러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든지 하는 궁정의 한심스러운 형편을 하소연하면서도 궁정 신료로서 공직 수행에서 유념해야 할 점들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특히 지상에 사는 사람에게 삶의 안전만큼 유익한 것은 없으며, 개별적인 사람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든 차별 없이 삶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 즉 ‘공공의 보편적 안녕’(public, universal welfare)이 모든 사람이 합당하게 누리고 가질 권리임을 강조했다.16) 또한 정당한 군주와 그렇지 않은 폭군은 구별된다고 하고, 군주가 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폭군이라 했다. 법의 정신은 정의와 형평으로 대표되므로 결국 군주는 법의 집행을 통해서 공동의 유익에 관한 문제를 관장하고 정의와 형평의 실현에 봉사하는 것이라 했다. 또 군주의 법 집행이나 정의의 실현이 절대자인 하나님이 이루는 것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상에서 정의와 형평의 정신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한에는 피를 보아도(법에 따라 죄인을 사형에 처해도) 살인자라 비난받지 않는다고 했다.17) 또한 존은 공직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자만심(pride)이라 했다. 자만은 공직자를 아부에 취약하게 만들고 타락시켜 공동선을 위해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악덕의 원천이다.18) 존은 개별 시민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것인지도 설명했다. 존은 철학자들이 정의의 원칙과 실천을 염두에 두고 여러 공화정의 사례를 살펴본 결과 정의로우면서 번영하는 공화정에 필수적인 요건은 각자가 자신에 합당한 일에 만족하고 헌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고, 시민은 각자가 모두 ‘공동체 전체에 유익한 일’(public utility)을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헌신해야 하며, 그런 후에 그 노력에 합당한 대가로 자연과 노동, 산업이 제공하는 결실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19)

아퀴나스는 「군주의 통치에 관해」(de Regno, On Princely Government)에서 공동선 개념을 설명했다. 자연이 동물들에게 무엇이 좋은지 가르쳐주는 것처럼, 사람도 자연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사람은 함께 어울리며 모여 사는 것이 좋은데, 사람의 모여 삶에는 반드시 통치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유익해서 도시를 이루고, 그래서 누군가는 통치하고 다른 사람은 통치받아야 한다면, 통치를 맡은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을 위해 통치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된다. 아퀴나스는 여기서 통치와 공동선의 관계를 ‘몸의 정치’(body politics)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사람의 몸을 온전케 하고 이끄는 것이 하나의 힘이고 그런 힘이 없다면 혼돈에 빠져 해체되어 버리듯이, 공동체에는 모든 사람에 공통된 유익을 목표로 삼는 힘이 있어야 한다. 또 사람의 목적은 공동선(bonum commune)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은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바른 이성이 명령하는 바이기 때문이다.20)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도 여러 기회에 공동선 개념을 설명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이론을 계승해 공동선을 법과 통치의 목적으로 보면서도, 신학적으로 더 발전시켜 인정법뿐 아니라 자연법을 포함한 모든 법의 목적이 공동선이라 했다.21) 특히 인정법은 합당한 실천이성이 만들어낸 산물로서 공동선에 유념하여 제정되어야 하며, 공동선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인정법은 시민의 양심을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퀴나스는 인정법의 제정뿐 아니라 해석과 집행에서 법의 목적인 공동선이 해쳐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22) 아퀴나스는 사형이나 신체(절단)형 등 형벌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형벌의 집행에서 특히 공동선에 유의해야 하는 점을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죄행위에 상응한 몫(응보적 정의론)에 형평(관용과 자비)을 가미하는 정도였다면, 아퀴나스는 형벌의 원리를 상호성에 두면서도 복수심에 눈이 멀어 형벌을 잔혹하게 집행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런 식의 집행은 공동선을 해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형벌의 집행을 통한 일반예방의 효과라든지,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제거함으로써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거나(사지를 절단하는 외과수술로 사람을 살리듯,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사형의 집행이 유익한 때도 있다), 범죄로 인한 피해의 보상은 물론 행위자에 대한 용서와 구원(회복)도 거론하고 있어23), 이후 벤담이 형벌의 기대효과를 내다보면서 합당한 형벌의 종류와 집행이나 운영에 대해 고민했던 것을 앞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24)

한편 고전 공리주의가 영국 사회의 산물이므로 이하에서는 공동선 개념이 잉글랜드에서 어떻게 계승되어왔는지 살펴본다. 잉글랜드의 법제는 유럽 대륙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발전해왔는데, 그 과정에서도 공동선 개념은 그대로 계승되었다. 14세기 잉글랜드 법률가인 포테스큐(J. Fortescue)는 잉글랜드 헌정의 차별성을 설명하면서 아퀴나스가 공동선을 설명한 방식을 차용했다. 아퀴나스는 공동선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신체 기관의 유기적 관계라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포테스큐도 잉글랜드에서는 군주와 신민이 머리와 몸통의 관계라는 ‘몸의 정치’ 이론을 전개했다. 군주가 왕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왕국이 군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잉글랜드의 헌정은 군주와 의회가 협력해 공동선을 목적으로 법을 제정하며, 법의 지배를 통해 신민이 자유를 누리는 결과 통치가 제공하는 다양한 공동선을 달콤한 과실로 누린다. 그는 잉글랜드의 헌정이 제공하는 자유와 거기서 생겨나는 삶의 풍요로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 했다.25)

앞서 공동선의 원천으로 정의를 중요하게 본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라 했는데, 잉글랜드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법의 지배를 통해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의 헌정이 뿌리내린 결과, 정의 외에 자유도 공동선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이해하는 사고가 확립되었다. 그리하여 명예혁명 후에 로크는 시민이 생명과 자유, 재산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 정치 권력을 세운 것이며, 시민의 자발적인 동의에 따라 정치 권력이 입법권에 위임한 권한은 수없이 많아도 입법권이 제정하는 “법률은 전체 인민의 선 외에 다른 궁극적인 목적을 가질 수 없다”(Secondly, these laws also ought to be designed for no other end ultimately, but the good of the people)라고 했다. 또한 입법의 권력은 국가, 즉 ‘모든 시민에 공통된 행복을 위한 나라’(commonwealth)를 결성한 목적에 의해 제약되는 것인데, 그 목적은 시민이 근본적인 자유권을 보전하기 위함이므로 입법의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수탁받은 목적에 반해 행사될 때 그에 저항하고 우위에 설 수 있도록 궁극적인 최고의 권력이 시민에게 유보되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 했다.26) 로크가 명료하게 밝힌 국가의 존재 목적 및 목적에 의한 국가권력의 제한에 관한 인식, 특히 법의 지배를 통해서만 시민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고는 이후 미국 독립선언과 미합중국 헌법을 통해 신생국의 헌정 원칙으로 재차 확인되었다. 미합중국 헌법전문은 헌법제정의 이유를 “자유가 주는 유익한 과실을 우리 자신과 후손들에게 보장해주기 위해서”(secure the Blessings of Liberty to ourselves and our Posterity)라고 했다.27) 이것이 미합중국 헌법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공직자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제정된 이유이다.28)

2) 자연법 전통과 공동선 개념의 한계

이상에서 공동선 개념의 연원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동선 개념은 한 국가의 정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직접 규정하지 않는다. 정체가 어떠하든, 사람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는 쉽게 말해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자신에 합당한 역할을 찾아 살아감으로써 성취된다. 이것이 공동선의 원리인데, 그 국가가 이 원리를 기초로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정체의 정당성을 평가한다.

둘째, 한 국가의 헌정이 공동선을 보장하려고 하고 또 실제 성공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무엇이며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개 자연법이론은 공동선을 목적으로 하는 헌정은 평화와 정의, 번영을 표방하며 또 실제로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29) 정의란 사회 구성원이 각자 자신에 합당한 몫을 받도록 보장하는 것을 말하고, 대개는 엄정한 신상필벌로 구현된다. 정의가 확실하게 보장되면, 사회는 범죄가 없고 거래의 안전이 지켜지는 법적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은 정의와 평화 속에서 사회가 번영할 수 있으며,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진정한 목적[아리스토텔레스는 생존이 아니라 ‘잘 삶’(well-being)이 목적이라 했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사회가 어수선하고 범죄가 잦고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자주 들릴 때는 그 사회의 공동선에 위기가 생긴 것쯤은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은 사회 구성원들이 제각기 자신에 최선인 일을 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이 추구하는 개별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데, 자연법이론은 여기에 취약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를 강조하면서도 시민들 사이에 우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아퀴나스가 공동선을 말하면서도 참사랑(caritas)을 강조한 것은 정의만으로 조화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연법이론은 인간에 불변의 자연적 본성이나 존재의 목적이 있다고 하고, 실천이성이 이를 충분히 숙고해서 합당한 이성의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연적 본성이나 존재의 목적은 형이상학적·신학적인 성격을 갖는데, 현대의 신자연법 이론은 이런 요소를 버리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당한 실천이성이 무엇인가 하는 차원에서 공동선 문제에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현대인이 이런 방향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본성도 변하고 사회도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분명한 사실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지만, 끊임없이 법과 제도를 고쳐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헌정」(The English Constitution, 1867)을 저술했던 배젓(W. Bagehot)도 대영제국 헌정의 우수성을 최고로 강조하면서도 공동선을 위해서는 의회개혁 등 그의 시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30) 변하지 않은 법 아래서 영원한 즐거움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이상은 세속국가의 공동선 개념에는 존재할 수 없다. 고전 공리주의는 이를 인식하고 공동선 개념에 실천적으로 접근했다.

Ⅲ. 고전 공리주의와 공동선 개념

자연법 전통과 고전 공리주의는 서로 다른 지적 전통으로 무관하다고 여기기 쉽다.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특히 고전 공리주의 등장 이전에 유럽 사회에 유행했던 공리주의적 사고는 고전 공리주의가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일란성 쌍둥이임을 보여준다. 이하에서는 고전 공리주의 이전의 공리주의 사조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 고전 공리주의의 내용 및 공동선 개념과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고전 공리주의 이전의 신학적 공리주의와 공동선

‘공리주의’(Utilitarianism)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처음 등장했지만, 공리주의적 사고는 벤담이나 밀이 처음 제시한 것이 아니다. 벤담이 그가 활약하기 이전에 이미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던 신학적 공리주의에서 신학적 색채를 제거해 고전 공리주의를 창안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퀸튼(A. Quinton)은 벤담 이전의 공리주의적 사고를 신학적 공리주의(theological utilitarianism)라 불렀다. 대표적으로 게이(John Gay)는 「서론적 주장」(Preliminary Dissertation, 1731)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요소로 전제했다. 그는 하나님이 본성상 모든 피조물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므로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따라서 인간이 그들 사회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1) 하잇(C. Heydt)도 잉글랜드에서 1660년-1730년대 사이에 게이, 브라운(John Brown), 제닌스(Soame Jenyns), 로(Edmund Law), 터커(Abraham Tucker), 루서포스(Thomas Rutherforth), 페일리(William Paley) 등이 공리주의적 사고를 활발하게 전개했다고 하고, 이를 ‘영국 성공회 공리주의’(Anglican utilitarianism)라고 했다. 하잇에 의하면, 이들은 행복을 증진하고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선이라는 관념,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공동선(common good)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좌우된다는 생각을 요점으로 주장했는데, 전자는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로 소급할 수 있지만 후자는 개신교 자연법 이론가인 컴버랜드(Richard Cumberland)가 「자연의 법」(De legibus naturae, 1672)에서 처음 제시한 것이라 한다. 자연법을 비롯한 모든 법의 목적이 공동선이라는 것은 자연법 전통에서는 익숙한 주장이지만, 특히 컴버랜드는 이전의 자연법이론과 달리 공동선을 개인적 선의 총합이라고 이해하면서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는 그 결과가 공동선을 얼마나 증진하는가로 판정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하잇은 컴버랜드가 공동선과 관련해 행위의 옳고 그름을 추론할 수 있게끔 공적인 기준을 제공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중한 판단과 관련해 대개 법을 기준 삼아 법에 비추어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겠지만,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특별히 지혜 있는 사람이 지혜를 발휘할(형평을 고려해 법의 불완전함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컴버랜드는 이에 반대해서 신중한 판단을 위해서는 적절한 척도가 먼저 제시되어야 하고, 여기에 공동선 개념은 개념 자체의 본성으로서 ‘모든 사람을 고려해서 그 총합이 가장 최대인 유익을 제공하느냐 아니냐’(greatest Advantage of all)라는 척도를 제공한다고 했다.32)

잉글랜드에서 공리주의 사조의 기원이 신학적 공리주의자(theological utilitarian) 컴버랜드라는 것, 벤담은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공리주의 사조가 그 이전 세대는 물론 당대에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유 형태로 존재했다는 것, 벤담 자신은 흄(D. Hume)과 하틀리(David Hartley), 프리슬리(Joseph Priestley),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와 베까리아(Cesare Beccaria)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잘 알려진 바이고, 여기서 상론할 필요는 없다.33) 다만, 공리주의의 역사에서 벤담 이전의 공리주의 사조와 비교해 벤담이 어떤 점에서 혁신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지 규명할 필요는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공리주의적 사고와 차별되는 고전 공리주의의 혁신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2. 고전 공리주의와 공리의 원칙

공동선 개념의 전통에서 볼 때 공동선에 관한 논의에서 고전 공리주의는 본류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전 공리주의는 국가와 사회가 구성원 모두에 공통된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공동선 개념의 핵심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고전 공리주의의 대표로 벤담과 밀, 시즈윅(H. Sidgwick)이 있는데, 이하에서는 편의상 벤담과 밀의 견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34)

1) 벤담의 설명

고전 공리주의가 공동선 원리의 변형이자 과학적 발전이라는 것은 벤담의 설명에서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벤담은 사회나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 공동선이라는 점을 간단히 언급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공동선 개념(물론 벤담은 ‘공동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말했다. 비록 생전에 큰 결실을 얻지 못했지만, 벤담은 잉글랜드에서 사회 전반에 오래 지속된 불편과 불만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정치와 사회개혁, 법제개혁에 앞장섰다.35) 잉글랜드 헌정에 대해 보통법 법률가는 쿡(E. Coke) 이래로 ‘고래의 헌정’(ancient constitution)이라는 신화를 신봉하며 자유의 헌정을 지켜 온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는데, 벤담은 보통법 법률가들이야말로 잉글랜드 사회에 가장 부패한 범죄집단이라 비판했다. 벤담은 블랙스톤(W. Blackstone)의 「영국법 주석」(Commentaries on Laws of England)에 대해서도 ‘주권자(국왕과 의회)가 법을 제정할 의무가 있다’라는 말도 공리가 담기지 않으면 하나 마나 한 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36) 그는 헌법전을 비롯해 성문법전의 제정을 여러 국가 정부에 직접 제안하기도 했는데, 생래의, 천부의 자연권이니 하는 말은 모두 허구라 단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모든 국가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칙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선언했다.37) 정부가 취하는 모든 조처는 공리라는 원칙, 즉 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척도에 의해 측정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측정되어야 한다고 했다.38) 벤담은 모든 정부가 이 원칙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위험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 특히 불투명과 번잡함, 지연을 최대화하는 것에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았다.39) 자연법 전통이 오랫동안 공동선 개념을 소중하게 여겨왔어도 그것을 이론의 장식장에서 꺼내 무기로 만든 것은 벤담의 공적이다. 벤담의 공리주의가 입법은 과학이라 선언하는 등 공적 윤리로서의 혁신성을 가지며, 이 점에서 이전의 공리주의 사조와 구분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40), 벤담이 보여준 실천성 때문이다. 다만 벤담의 저술이 여러 편집본으로 전해와도 문장 특성 때문에 독해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고전 공리주의의 내용과 공동선의 관계에 대한 검토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1863)를 저술한 밀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밀의 설명

밀에 의하면, 공리주의는 공리의 원칙(Principle of Utility), 즉 최대한의 행복 원리(the Great Happiness Principle)를 도덕률의 기초로 삼는 신조이다.41) 여기서 행복은 행위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을 한데 합친 총량을 말한다. 이것은 당장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 고통(손해)을 가져오더라도 넓게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행복을 더 증대시킨다면 그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이익을 크게 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이기적인 사람이 많으면 공리주의의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공리주의의 궁극적 목적을 추구하는 선택을 선호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행위의 결과를 넓은 사회적 관점에서 재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42) 밀은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서 젊은 소크라테스가 공리주의 이론을 주장했다고 하는데43), 소크라테스가 한 개인의 차원에서 단견과 진정한 앎을 대비해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면, 밀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기적인 선호를 단견이라 하고 개인의 행동이 넓게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 말하는 셈이다. 여기서 밀은 공리주의의 공적 특성을 강조하는데, 사회 전체의 진정한 행복을 저해하는 것이 바로 이기심과 교양의 부족이라 한다. 밀이 말하는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에 차별 없이 열려있는 도덕 신조이다. 밀은 당장 모든 사람이 공리주의를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공리주의가 가진 내적 한계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재의 이해 수준과 거기서 일반화된 (이기적) 행동규범의 한계 때문이라 본다. 밀은 장차 사회가 공리주의를 신조로 삼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필연적으로 이기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갇혀 살아간다고 볼 근거는 없다. 문명은 인간을 이기심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익히게 해왔으며, 문명의 발전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밀은 비록 수준이나 정도에 차이는 있어도,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적인 일에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공의 선(public good)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44) 밀은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임하는 사적인 일, 그리고 공공의 선 둘이라 보고 있다. 밀은 공리주의가 사적인 일에 더욱 진정한 애정을 갖도록 촉진하는 도덕 신조라고 하지 않는다. 밀은 흥미로운 일도 많고 즐거움을 누릴 일도 많지만 동시에 바로잡고 고쳐가야 할 일도 많은 이 세상에, 상당한 정도의 도덕적·지적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면 누구든 남 부러워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누구든 악법이 없는 세상에 살지 않으며, 또 타인의 의지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삶의 자원을 제대로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극심한 빈곤이나 질병, 사람들의 냉대나 인정받지 못함, 애정을 쏟을 만한 일에 헌신할 기회를 젊어서부터 잃는 등 삶의 해악에 직면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밀은 공리주의가 이런 해악을 제거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고, 공리주의의 궁극적 목적이 이루어지려면 시민의 의지와 과학적 지식,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45)

밀은 공리주의 강령과 실천지침도 소개하는데,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을 네가 다른 사람에게 해 주어라’나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황금률이 공리주의 신조의 이념적 완성을 구성한다. 구체적 실천에서는 모든 개인의 행복 또는 이익을 사회 전체의 것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법과 사회적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첫째이다. 다음으로 교육과 여론인데, 이 둘은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교육과 여론의 힘을 사용해 모든 사람의 마음 내면에 자신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선이 불가분의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 사회적 선에 반하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확고하게 인식시켜 공동의 보편적 행위수칙을 익히게 해야 한다. 또한 사회 전체의 선을 증진하고자 하는 직접적 충동이 모든 사람의 행동에 습관을 이루는 동기가 되도록 해서 거기서 생겨나는 감정이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대부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46)

공리주의의 공적 성격은 공직자에게는 몰라도 사적 개인에게는 행위윤리로 채택하기에 과잉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밀 자신이 답변했는데, 밀은 행위의 동기와 행위의 규칙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개인에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라는 것은 행위의 규칙이지 모든 행위의 동기로서 그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열에 아홉의 행위가 다른 동기에서 비롯되었어도 의무의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런 행위는 옳은 행동이라는 것이다.47) 밀은 사적인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임하는 것과 공공의 이익 증진을 직접 목적으로 일하는 것 사이의 균형이나 비중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대부분의 선한 행동은 전자에서 생겨나고 이것이 모여 사회적 행복이 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대개는 사적인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임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행복의 증진에 참여하는 셈인데, 후자와 관련해서는 자선사업가처럼 자신의 힘을 사회 전반의 유익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일이라 한다. 따라서 공리주의가 공공의 선에 대해 유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애정을 가지고 사적인 일을 할 때 사회에 일반적인 해악을 초래하는 것이면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지키라는 정도이며, 따라서 시민의 공적 윤리로서는 어느 윤리학 체계에서든 요구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48)

밀은 공리주의를 추구하게 만드는 제재의 수단과 작동방식을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실용적인 면이 있다. 밀은 공리주의를 수용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기본적 동인은 이타심과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라 하고, 이런 감정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면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윤리학 체계의 제재를 다 동원할 수 있다고 한다. 외적인 제재 수단으로는 신이나 종교도 무방하고 내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양심이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라 한다(따라서 한국의 공직자라면 공리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헌법정신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어 밀은 사회적 감정(공리주의를 위한 감정)을 말한다. 밀에 의하면, 다른 사람과 일체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인간 본성에 강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데, 문명의 발전에 따라 비례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이 사회적 감정은 사회가 평등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므로 각자의 이해관계가 평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당연한 전제로 삼는다. 또 개인적인 관심사를 추구하면서도 타인과 협력해서 집단적인 일을 이루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거기서 협력을 통해 타인의 이익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감정도 가지게 되며, 더 나아가 타인의 좋은 일이나 행복에 대해서도 감정적 일체감을 느끼고 또 그런 느낌이 강력해지게 된다고 한다.49)

이상과 같이 밀이 공리주의를 해명했어도 깊이 논의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부와 공직자의 역할이다. 밀의 공리주의는 시민에게는 사회적 차원의 선에 대해 유념하면서 더 나은 선을 위해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공적 윤리이고, 특히 공직자에게는 시민적 삶에 자유와 정의를 보장함으로써 시민들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공직의 사명이라고 말하는 점에서 공적 윤리이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공리주의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공직자는 더더욱 사회 전반에서 행복의 증진과 고통의 저감을 목표로 하는 공리주의 정신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밀은 정부나 공직자 대신 개개인이 성숙한 시민으로서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궁극적인 제재를 발휘하기를 기대하는데, 자신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에 완전히 무관심한 것은 도덕적 백치이기 때문이라 한다.50) 따라서 우리와 같이 공동체적 일체감이 강한 사회에서 공직자가 공리주의적 감정으로 공직에 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51)

3. 공동선 원리와 공리의 원칙

이상에서 고전 공리주의자들의 견해를 보았는데, 공리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평가하자면 벤담은 이전의 공리주의적 사조로부터 차별화했고, 밀은 비판과 비난으로부터 공리주의를 방어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법이론의 공동선 개념과 고전 공리주의는 벤담의 차별화 시도 때문에 차이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밀의 시대에만 해도 자연법 전통 또는 공동선 이론과 공리주의는 서로 다른 이론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밀과 동시대의 개신교 자연법 이론가로서 공동선 개념을 강조한 이들 중에는 정치인 테넛(C. Tennant, 1796–1873)과 같이 공리주의를 바로 신의 의지이자 공동선 원리의 다른 표현이라 보고 동일시하는 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테넷이 보기에 벤담의 공리주의는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하는 차이점 외에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원리나 공리의 원칙이나 다를 바 없고, 신의 의지나 명령을 제거한 점에서 잘못이었다.52) 현대 자연법 이론가들 사이에는 공리주의에 대한 통일된 이해는 없다. 혹자는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은 공리주의와 무관하다고 하고, 혹자는 유사한 점이 있으나 차이가 있다고 한다. 대체로 차이가 크거나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데, 이런 경향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벤담이 자연법이론의 핵심인 자연적 본성이나 자연법, 자연권 개념을 허구라 비판한 점에서 이해할만하다. 예를 들어 공동선 헌정주의를 제창한 버뮬(A. Vermeule)은 공동선 원리는 공리주의와 전혀 다르다고 한다. 개인선을 모으면 사회적 선의 총합을 측정할 수 있지만, 개인선을 모은다고 공동선이 되는 것은 아니고 공동선은 개인선의 총합과 구분된다는 것이다.53) 그러나 자연법 이론가 중에도 공동선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견해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공동선은 개인선의 실현을 통해 구현되는 선(개별선의 온전한 성취 속에 공동선이 있다)이라거나 개별선을 위한 도구적 선이라고 보는 견해도 유력하니 결정적인 비판으로 보기 어렵다.54) 머피(M.C. Murphy)는 아퀴나스가 형벌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공리주의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형벌의 정당화에 있어 자연법적 전통의 유사-공리주의적 논변을 거부한다.55) 현대의 자유주의 이론은 대개 공동선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공리주의적 입장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56) 따라서 공동체주의의 입장에서 공리주의는 일반선을 위해 정의를 희생시키는 도덕 이론이고 개인의 온전성과 인격의 불가침성을 침해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57) 그러나 공리주의가 정의의 원칙이나 개인의 도덕적 권리를 부정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58)

벤담이나 밀이 공리주의를 설명할 때 ‘공동선’(common goo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고전 공리주의나 공동선 개념이 완전히 관심사나 차원을 달리하는 별개 이론이라 할 수는 없다. 밀은 「공리주의」에서 누구든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애정을 가지고 임할 사적인 일에 헌신하는 것은 물론, ‘공공의 선’(public good)에도 진정한 관심을 가질 것이라 말한다.59)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라는 것은 모든 윤리학에서 다 요구하는 바이며 공리주의도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 말하기도 하고60), 또 정의가 불편 부당성(impartiality)을 요구할 때는, 가령 후보자 중에서 적격인 공직자를 임명할 때 오직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이 무엇인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처럼, 합당하게 고려해야 할 바만 고려하고 그 외의 것에 영향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61) 밀은 법률의 준수 의무와 관련해서 법의 목적이 공동선에 있다는 견해를 소개하는데, 여기서도 공동선이라는 용어 대신 ‘모두에 공통되고 모두가 공유하는 이익’(common interes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62) 또 사회적 공감 능력이 함양되어 자연적 감정을 도덕에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일반적인 선’(general good)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데, 가령 어떤 행위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이상 자신에게 해악이 없다 해도 분노할 것이고, 반대로 어떤 행위가 자신에게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사회가 고통의 저감에 대해 공동의 이익(common interest)을 가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자신에 가해지는 고통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고 한다.63) 이처럼 공리주의를 설명할 때 공동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부분에 공동선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것은 공동선 개념에 대한 무지나 우연한 불일치가 아니라 의도적 회피로 볼 필요가 있다. 고전 공리주의가 개신교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어도64) 공동선이라는 단어를 회피하는 이유는 신학적 공리주의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고전 공리주의가 내세우는 공리의 원칙은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과 방법론이나 실천적인 면에서 차이를 가질 뿐 실질적인 목표는 같다. 양자 모두 국민 전체의 이익이 국가의 존재 목적이라고 보는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먼저 방법론적인 차이를 보면, 벤담이나 밀이 신학적 공리주의에서 탈피한 점에서 무신론적 경향인 것은 앞서 보았는데, 현대인이 보기에 이런 차이는 결정적이지는 않다. 눈여겨볼 부분은 자연법적 사고와 공리주의적 사고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나 하는 점이다. 레잉(J. Laing)은 자연법적 사고는 결과만 중시하는 공리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한다.65) 크로우(J. Crowe)도 자연법적 사고에 따른 인간의 기본적 선을 생명과 건강, 즐거움과 우정, 유희와 미적 체험, 이해와 의미, 그리고 합당성 등 9가지로 소개하고, 이 중에 도덕적 행위가 어떤 목적이든 목적에 대해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실천적 합당성과 관련해 공리주의를 비판했다. 행위의 합당성이라는 선과 관련해 볼 때 공리주의는 행위자를 목적의 선택이라는 도덕적 문제에서 분리해 오직 수단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도록 만들며, 그런 점에서 도덕 이론으로는 근본적 결함을 가진다는 것이다.66) 그러나 우리가 도덕 이론이 다루는 미시적 문제와 거시적 문제가 구분된다고 이해하면, 크로우는 행위자의 미시적인 도덕적 선택에 관해 자연법적 사고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다. 공리주의 이론이 미시적인 차원에서든 거시적인 차원에서든 행위의 합당한 목적에 대한 고려나 선택의 문제를 완전히 배제한다고 할 수는 없다. 도덕 이론의 요건으로서 행위의 합당성이 요구된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공리의 원칙이 바로 그 합당성이라는 선을 충족하게 할 목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물론 자연법적 사고와 공리주의는 무엇이 선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또 무엇이 선인지 구체적인 목록을 만들 때 차이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적인 사회생활을 놓고 시민들의 불편과 불만이 쏟아지는 지점을 떠나 인간적 선에 관해 사변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고수하지 않는다면 공리의 원칙이 포착하는 행복이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과 크게 차이 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67)

전통적으로 서구의 공동선 개념은 자연법 전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해왔다. 공리주의와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을 비교해 보면, 타인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개인에 있어 사회 속에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고 행동인지를 고민하는 점이 같다. 개인이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분리된 채 고립된 자신만의 행복을 키워가도록 유도하는 도덕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실의 사회에 행복을 저해하고 고통을 가하는 여건들이 있다고 인정하며, 그런 불편과 불쾌를 제거함으로써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지향이 같다. 다만 여기서 방법적인 차이가 발견되는데, 불변의 자연적 본성이라든지, 객관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느냐 아니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원리는 불변의 자연적 본성이나 정의로운 객관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본다. 사람과 공동체는 공동선을 향해 목적 지워진 것이며, 공동선의 원리에서 벗어난 행위가 불의와 불행을 초래한다고 하고, 따라서 자연적 본성과 질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즉 공동선의 회복을 위해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는 불변의 자연적 본성이나 자연권, 객관적 질서와 같은 말은 전부 허구이며, 그런 개념을 정치적 논의에 도입하는 것은 오류라 비판한다. 벤담은 애당초 ‘공동체’(community)라는 단어가 도덕 용어로 자주 사용되어도 허구라는 것 외에 아무 의미도 없으며, 공동체의 선이라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인 각 개인의 선을 합한 것 이상이 아니라고 한다.68) 대신 공리주의는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을 찾고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이것이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가 세속화된(신이 없는) 공동선 이론이라 말하는 이유이다.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이 단지 정의만 강조하지 않고 우정이나 참사랑을 강조하듯 고전 공리주의도 공리의 원칙이 감정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한다. 밀은 공리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양상에서 수준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전적으로 사적인 일에 애정을 가지고 전념하면서 그것으로 공리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이도 있겠지만, 진정한 공리주의자라면 타인의 행복과 고통에 예민하며 타인과 사회에서 공리를 실현하는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공적 윤리로서 시민에게도 열린 윤리이지만, 공직자에게 더 적합한 것은 공직의 존재 이유가 공리와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행정학 이론에서도 적극 행정의 근거로 밀이 말한 공리의 정서를 강조하는데69), 공리주의가 현대의 공직 윤리로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4. 적용과 한계

이상에서 공동선 개념과 고전 공리주의를 비교해 보았는데, 이러한 논의에서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라는 헌법 문구를 해석할 때 어떤 실천적인 지침을 얻을 수 있는지 간추리기로 한다. 우리는 도덕 이론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개인적 삶의 원리라고 여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고전 공리주의는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와 쉽게 결합하며 개인적 차원에서 행복의 최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물론 고전 공리주의는 타인에 해악을 일으키지 않는 한 개인의 문제는 개인에게 최대한 자유를 부여하고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고전 공리주의는 행복의 최대화에 있어 개인에 최대한의 자유가 부여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으며, 이 점에서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하지만 고전 공리주의의 더 큰 관심사는 ‘함께 모여 삶’의 방식과 원리가 어떠해야 하는가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공리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고전 공리주의는 강한 공적 윤리의 성격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벤담은 자신이 발견한 효용의 원칙을 공동선에 대한 종래의 이해를 대체하는 새로운 발견으로 여겼으며, 공동선을 구체적으로 계산해내는 방법으로 수학적 방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70) 과거에 공동선의 추구가 오로지 통치자만이 감당할 몫이었다면, 고전 공리주의는 과학이 발달하고 필요한 지식이 축적된 오늘날, 이제는 모든 개인이,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면 더 유의해야 하는 행동 원리가 국민 전체, 나아가 인류 전체라는 단위에서 행복의 총량을 늘이는 것이라 말한다.

벤담과 밀은 정부 정책의 수립이나 입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말했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공리를 추구한다는 생각으로 공리주의적 정책을 펴도, 관련되는 정보가 정책의 집행대상이 되는 일반 국민에 차단된 채 내각에서만 공유되고 만다면 이런 밀실 공리주의(government house utilitarianism)는 전혀 공리주의적 정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보의 투명하고 완전한 공개가 없으면 공리주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직자가 공리주의나 공동선이라는 공직 윤리로 공직에 임한다는 것은 권력자나 그 주변의 집단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정치이념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은 자명해진다. 이것 역시 공동선 원리나 공리주의나 공통된 결론이다. 특히 공화주의 정체에서는 국민에 관계된 모든 일에는 국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좋든 싫든 분명한 자기 생각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깨인’ 시민이 넘쳐나는 시대에 과감한 정치적 지도력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의견이 나눠지는 정치 세계에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이나 추진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많은 제안이 생겨나는 것도 그 때문인데, 혹자는 공론장과 숙의민주주의를 제안하기도 하고 혹자는 전문가집단이나 각종 위원회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여기에 고전 공리주의가 기여한 것은, 첫째 정치의 목표 또는 공직자의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한 것이고, 둘째 추상적 원리나 개념이 아니라 과학(현실 문제에 대한 관찰과 경험)과 여론에서 근거를 찾으라고 한 것이다.71)

공동선 개념이나 공리주의에도 유념해야 할 한계는 있다. 공직과 공무의 과도한 팽창을 경계한 밀이 정부개입을 적게 하고 자유방임, 즉 가능한 한 시민의 자발적 해결을 강조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72), 이런 태도가 시대에 맞지 않다고 여기기 쉽다. 밀의 논지를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는 대신 롤즈(J. Rawls)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관한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롤즈는 공동선 개념 혹은 공리주의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자연법 전통의 공동선 개념은 개인선의 자유로운 추구를 보장하되 개인선의 누적과 구분되고 그것만으로 성취되지 않는 별도의 선이 존재하며 그것이 더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시민이 각자 추구하는 개별선 외에 그 개별선을 능가하는 독립된 공동선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는 상당한 위험이 생겨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무와 공직이 중요하다고 해서 꼭 많은 돈을 들여 공공기관 건물을 사치스럽게 지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 간혹 한심한 주객전도 현상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칫 공동선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폐단이 생기는지 보여준다.73) 하지만 정말 큰 위험은 앞서 나치나 스탈린식 정치가 보여준 것처럼, 특정한 이념이 ‘국민 전체의 이익’의 내용을 채우고 시민의 개별선을 완전히 압도하는 경우이다. 롤즈가 공동선 개념에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된다. 롤즈는 (자신이 전개한) 정의의 두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와 (공리주의자나 공동선주의자가 말하는) 동등한 공리의 사회를 비교했는데, 특정한 선이 옳다거나(예를 들어 ‘행복은 선이므로 누구든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 행복을 더 크게 하면 그것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무엇이 선인지는 전적으로 시민 각자가 자신의 개인적 선호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롤즈가 볼 때 개인적 선에 우선하는 공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중첩적 합의에 포함될 수 없는 포괄적 교의에 불과하며, 정치적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정의로운 사회에 수용될 수 없다.74) 공직 윤리로서 공동선 개념이나 공리주의를 취할 때 유념할 점은 개인이나 사회가 추구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 정의할 때 공직에는 결정적 주도권이 없고75), 시민들이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선(생명과 안전, 자유 등)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직의 사명이라는 점이다. 우리 헌법이 공무원은 국민 전체를 위해 ‘권한을 행사한다’라고 하지 않고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라고 표현한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Ⅳ. 결론

이상과 같이 헌법 제7조 1항 전단의 규정을 헌법적 공직 윤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근거를 마련해 보았다. 정쟁이 치열하고 사회가 나눠진 듯 보여도, 공직자가 합당한 공적 윤리로 무장하고 있다면 국가는 하나로 존속될 수 있다. 공직자가 헌법적 공직 윤리로 무장하는 것은 헌법과 국가를 보장하는 근원이다. 헌법적 공직윤리를 찾고 내용을 채우는 연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필요가 있다. 본론을 요약하면, 공무원이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라는 것은 곧 모든 공직은 공동선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고, 고전 공리주의의 언어로 표현하면 시민들이 불만스럽게 여기는 오래된 불편함이 무엇인지 찾아 고통을 줄이는 것이 본연의 업무라는 의미이다. 공리주의는 시민에게도 열린 공적 윤리이지만, 공직자에게는 시민의 자유, 정의와 평등을 보장하고, 공직을 투명하게 수행해야 하며, 여론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공동선 개념이나 공리주의에도 유의할 점은 있다. 특히 롤즈가 공동선 개념이나 공리주의를 경계한 이유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추가적인 연구와 탐색이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이상과 같은 이유로 고전 공리주의는 공동선 개념을 탈신학적으로 발전시킨 공적 윤리로서 현대의 공직자에게 최선의 헌법적 공직 윤리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Notes

1) 성낙인, 「헌법학」(제23판), 법문사, 2023, 649-651쪽. 국민주권주의로부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지위가 도출되고, 또 여기서부터 직업공무원제도가 요청된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지위는 선출직이나 임명직, 국가직이나 지방직 구분 없이 모든 공직자에 적용되는 것이고, 신분보장과 정치적 중립을 핵심으로 하는 직업공무원제도는 이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정종섭, 「헌법학원론」(제10판), 박영사, 2015, 975쪽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지위로부터 정치적 중립과 영리행위 금지 등 공무원에 대한 광범위한 기본권제한의 이유를 찾고, 다만 이를 공무원이 국민으로서 가지는 기본권을 형해화 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지위와 책임을 규정한 것인데, 공무원이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이익만을 대표하여서는 아니 되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또 공무원의 헌법상 책무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공무원법이 법령준수의무와 성실의무, 직무상 명령 복종의무, 직장이탈금지, 친절공정의무, 청렴의무, 품위유지의무, 영리업무금지 및 겸직금지 등의 여러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위반에 대해 징계 등 법적 책임을 추궁한다고 한다. 한편 공무원은 공직자인 동시에 국민의 한 사람이기도 하므로, 공무원은 공인으로서의 지위와 사인으로서의 지위,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와 기본권을 향유하는 기본권 주체로서의 지위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진다고 하고, 공무원이라고 하여 기본권이 무시되거나 경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공무원의 신분과 지위의 특수성상 공무원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에 비해 보다 넓고 강한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고 한다. 헌법재판소 2016. 2. 25. 2013헌바435 결정.

2) 헌법재판소는 국민주권주의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양대 지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헌법이념상 공무원은 과거와 같이 집권자에의 충성관계나 관료적인 공리(公吏)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수임자로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을 본래의 사명으로 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1993. 9.27 92헌바21 결정. 다만 헌법 제7조 1항이 공무원에게 공무원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공직을 수행할 기본권을 부여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부정적으로 본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 것은 직업공무원제도가 국민주권 원리에 바탕을 둔 민주적이고 법치주의적인 공직 제도임을 천명하는 것이며, 동 조항으로부터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을 도출할 수는 있을지언정 동 조항이 공무원인 청구인에게 어떠한 기본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2007. 6. 5. 2007헌마590 결정.

3) Mary M. Keys, Aquinas, Aristotle, and the Promise of the Common Good,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12-14.

4) Adrian Vermeule, Common Good Constitutionalism, Polity, 2022, p.14. 여기서 전 정권에서 시작되어 현 정권에 이어지고 있는 탈원전이나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논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권이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다는 정권은 없다. 어느 쪽이 선이냐 악이냐 하는 것은 여기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고, 다만 선출직 공무원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앞세워 그것을 국민 전체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태도만은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5) 김연식, “적극행정 실현의 헌법적 의미와 과제”, 「공법학연구」 제22권 제3호, 한국비교공법학회, 2021, 72-74쪽. 대륙법계 국가로서 법치행정이라는 기본 원칙상 적극 행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변화상을 고려하면 적극 행정은 필요하고 보호받게 해야 하지만, 자칫 권력남용으로 흐를 위험을 어떻게 차단하는가가 관건이다. 공직자의 공익실현 의무와 성실의무에 관한 해석과 판례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지만, 이런 방식의 권력 통제가 주로 직업공무원에 국한되고 선출직에 미치지 않는다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내세워 권력을 남용할 위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6) John A. Rohr, Public Service, Ethics, and Constitutional Practice, The University Press of Kansas, 1998 등. 로는 헌법 제정자의 공직에 대한 관점을 복원해서 공직자의 헌법적 윤리 지침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개와 평가에 대해서는 Peri E. Arnold, “John Rohr, the Administrative State, and the Study of Administrative Constitutionalism”, Administration & Society, Vol.46, Iss.2 (2014).

7) 주인석, “임명직 지방관과 선출직 단체장의 윤리의식과 정치적 권위: 다산(茶山)의 공직윤리를 중심으로”, 「민족사상」 제16권 제2호, 한국민족사상학회, 2022, 117-121쪽.

8) 구승회, “공직윤리- 정치적 의사결정과 그 윤리적 정당화”, 「철학연구」 제51호, 철학연구회, 2000.

9)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제2판), 천병희 역, 숲, 2013, 149-152쪽; Aristotle, Politics, H. Rackham, Harvard University Press, 1932, pp.205-207.

10) Mark C. Murphy, Natural Law in Jurisprudence and Polit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86. 자연법 전통에서는 법이 공동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므로 공동선 원리는 가장 먼저 시민이 법의 권위에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11) 참고로 공무원이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라는 문구는 1963년 헌법개정으로 처음 도입되었으며(제6조), 그 이전에는 제헌헌법 이후로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12) Max Hamburger, Morals and Law : The Growth of Aristotle’s Legal Theory, Yale University Press, 1951, pp.177-178.

13) 조승래, “공화국과 공화주의”, 「역사학보」 제198집, 역사학회, 2008, 228쪽. 공화국이란 “공동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법체계에 동의한 다수 인민의 결속체”를 말하고, 공화주의는 비지배의 자유, 법치, 시민적 덕성을 구성요소로 하며 이러한 공화적 가치의 구현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코자 하는 이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견해로 최경호, “헌법상 공화개념의 현대적 해석에 관한 소고”, 「법학논집」 제26권 제3호,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연구소, 2022, 135쪽.

14) 김동훈, 「한국 헌법과 공화주의」, 경인문화사, 2011, 9쪽은 공화주의란 불화가 없는 이상향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을 인정하되 시민적 덕성을 가지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더 나은 합의점에 도달하자는 주장이라 한다. 한상수, “공화주의의 개념”, 「경희법학」 제56권 제3호, 경희법학연구소, 2021은 정치적 존재로서의 국민이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여 자치를 실행해야 하는 정치공동체로서의 국가가 법치를 통해 공동선에 봉사하고 국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리로 공화주의를 정의한다. 장용근, “민주주의의 기능에 관한 헌법적 고찰”, 「세계헌법연구」 제13권 제2호, 세계헌법학회 한국학회, 2007, 273쪽은 민주공화국을 공동선이라는 정치이념을 향해 민주주의라는 국민의 자기지배라는 정치과정을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장용근, “공화주의의 헌법적 재검토”, 「세계헌법연구」 제16권 제1호,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 2010, 305-306쪽, 324쪽은 민주주의는 구체적 대상 즉 인민에 대해 언급하지만 공화제는 일반적 이익 즉 공공선을 의미한다고 구분하고, 민주공화제라는 정체의 개념상 공익(공동선)을 위한 한도 내에서 민주주의를 하여야 하지 공익(공동선)에 반하는 것을 하는 민주주의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헌법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구한 말 이후 일정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공화주의를 채택하고 공동선 개념을 도입한 과정에 관해서는 강진연, “제국과 식민, 그리고 공화주의의 변용-공동선의 에토스와 국가 형태-”, 「사회이론」 제60호, 한국사회이론학회, 2021. 전통적 동양사상인 공화 개념도 있는데, 이는 당파와 당쟁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화평·공영·공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토착적 사유이고, 서구의 공화 개념은 개화기에 일본인들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해방 이후에도 주로 정체에 국한되어 이해되고 공동선 개념은 결여되어 유신체제조차 공화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점은 정상호, “한국에서 공화(共和) 개념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 「현대정치연구」 제6권 제2호,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2013, 11-12쪽, 18-20쪽.

15) 폭군살해론의 의도나 맥락에 대해서는 Kate L. Forhan, “Salisburian Stakes: The Uses of ‘Tyranny’ in John of Salisbury’s Policraticus”,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Vol.11, No.3 (1990).

16) John of Salisbury, Policraticus, Cary J. Nederman (ed & tr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p.13-14.

17) Ibid., pp.30-31.

18) Ibid., pp.17-25. 존은 과거 로마 공화국 때는 아첨을 듣고 즐기는 통치자를 폭군으로 보고 죽여도 된다고 했던 전통이 있었다고 말한다.

19) Ibid., pp.10-11. 존은 이어서 고대로부터 저명한 철학자들이 정의로운 통치의 필수적인 요건으로 지체 높은 시민이 사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태를 금했다고 하고, 여기에 사냥, 도박, 음악연주, 연극적 유희를 들었다고 한다. 다만 존 자신은 이런 활동을 절대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는데, 절제된 적절한 방식으로 잠깐의 휴식을 위한 정도로는 허용된다고 했다.

20) St. Thomas Aquinas, On Politics and Ethics, Paul E. Sigmund (trans & ed), Norton, 1988, pp.14-15; William McCormick, SJ., The Christian Structure of Politics: On the De Regno of Thomas Aquinas,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2022, pp.30-31.

21) Thomas Aquinas, Commentary on Aristotle’s Politics, Richard J. Regan (trans), Hackett Publishing, 2007, pp.204-206.

22) S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æ(Vo.28): Law and Political Theory, Thomas Gilby O.P. (tr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9-13, pp.129-133.

23) Charles P. Nemeth, Aquinas on Crime, St. Augustine’s Press, 2008, pp.136-149.

24) 아퀴나스의 공동선 개념은 현대에도 신자연법론자들이 깊이 다루고 있는데, 현대의 논점은 주로 공동선의 성격, 즉 시민이 각자 추구하는 개별선과 관련해 도구적 선인지, 개별선의 단순한 누적이자 총합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선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논쟁의 소개는 Jonathan Crowe, Natural Law and the Nature of Law,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 pp.88-90.

25) Sir John Fortescue, On the Laws and Governance of England, Shelly Lockwood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pp.51-54.

26) John Locke, The Two Treatises of Civil Government, Thomas Hollis (ed), A. Millar et al., 1764, p.323, pp.328-329(§142, §149); 존 로크, 「통치론: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그 목적에 관한 시론」, 강정인·문지영 역, 까치, 1996, 137쪽, 143-144쪽.

27) 미국 독립선언에서는 누구든 생래의 자연권을 가진다고 했는데, 헌법전문에서 ‘우리와 후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면서 인종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건국 아버지들의 단견과 위선의 예라는 것은 Alexander Tsesis, Constitutional Ethos: Liberal Equity for the Common Goo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p.71.

28) 미합중국 헌법제정에 휘그파(The Whigs)의 사고가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은 정치를 간단히 말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보았다. 그들이 볼 때 사회는 내버려 두면 누구든 야망과 욕망을 좇아 살아가게 되므로 그런 흐름에 대한 장벽으로서 정부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신성한 제도이다. 정부가 없으면 힘있는 사람이 권리와 정의, 재산을 모두 차지할 것이고, 힘없는 사람은 모두 막다른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힘있는 사람이 정부 관직을 차지하면, 그는 그 권한을 시민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서약도 하고 또 시민들은 오직 그런 조건이 지켜지는 한에서만 복종할 의무가 있지만, 휘그파가 보기에 불행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그런 당위와 거리가 멀었다. 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통치자들은 시민들의 복리를 위한 권한을 남용했고, 시민들은 통치자의 권력에 굴복하도록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휘그파는 동등한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가능한 한 최대로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라 믿었다. 일인이든, 소수이든, 다수 국민의 이익에 반하여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는 모두 폭정이며, 그런 정부는 시민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Gordon S. Wood, The Creation of the American Republic, 1776-1787,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98, pp.20-23. 미합중국의 건립에 여러 정치사상과 흐름이 혼입되어 있는데, 자연법적 전통도 그 하나로 인정된다. 볼프(C. Wolf)는 자연법 전통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미친 영향은 ‘제한 정부’(limited government)를 위한 강한 헌신에 있으며, 그 영향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Christian Wolfe, “Thomistic Natural Law and the American Natural Law Tradition”, John Goyette, Mark S. Latkovic & Richard S. Myers (eds), St. Thomas Aquinas & the Natural Law Tradition: Contemporary Perspectives,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2004, p.198. 반면 벤담은 미합중국 헌법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를 비판했는데, 그 하나가 헌법에 의한 제한 정부이다. 벤담은 주권이라는 개념상, 정부의 권한에는 제한이 없으며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언어의 오용이라 했다. 오스틴(J. Austin) 역시 무제한적인 자유정부론을 지지했다. Joseph Hamburger, “Utilitarianism an d the Constitution”, Allan Bloom (ed), Confronting the Constitution, the AEI Press, 1990, p.236. 헌법에 의한 제한정부론이나 그 근거를 자연권에 둔 것에 대한 벤담의 비판은 Philip Schofield, Utility & Democracy: The Political Thought of Jeremy Bentham,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57.

29) Vermeule, supra note 4, p.15.

30) Walter Bagehot, The English Constitution, Miles Taylor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p.198. 그는 유럽 대륙의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잉글랜드의 헌정의 고유한 특징은 군주와 의회가 함께 주권을 행사하며 시민들이 겪는 모든 불편과 불만이 의회를 통해서 제기되고 처리된다는 점에 있으며, 이와 같은 헌정이 확립된 결과 일부 대담한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과격한 방식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민주주의란 ‘기요틴’을 의미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인간다운 삶과 그것을 길러낸 모든 것을 말살했다. 그러나 지금 잉글랜드에서 민주주의란 곧 돈의 지배를 의미하며, 그것도 신흥 자본계급만의 맹목적인 지배를 의미한다. 그는 이것이 당장 잉글랜드의 헌정을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의회로 대표되는 헌정 정신을 크게 버려놓을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배젓의 잉글랜드 헌정에 대한 평가 및 의회개혁론에 대해서는 이태숙, “W. 배저트의 영국 헌정론: 빅토리아기의 보수주의?”, 역사학보 제174집, 역사학회, 2002, 236-243쪽.

31) Anthony Quinton, Utilitarian Ethics, Gerald Duckworth, 1989, pp.23-26.

32) Colin Heydt, “Utilitarianism before Bentham”, Ben Eggleston & Dale E. Miller (eds), The Cambridge Companion to Utilitarian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pp.18-19. 컴버랜드는 여기서 규칙이 판단보다 우선한다는 그로티우스(H. Grotius)의 관점을 채택했다고 한다. 한편 컴버랜드는 홉스에 반대해서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했는데, 홉스가 인간본성에 대해 사변적으로 접근한 것에 비해 해부학적, 생리학적 증거로 뒷받침한 것이 특색이다. Wolfgang Pross, “Naturalism, Anthropology, and the Culture”, Mark Goldie & Robert Wolker, The Cambridge History of Eighteenth-Century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233. 컴버랜드에 대한 다른 평가는 강준호, “공리주의적 전통과 벤담의 독창성”, 「범한철학」 제81집, 범한철학회, 2016, 90-96쪽.

33) Wesley C. Mitchell, “Bentham's Felicific Calculus”,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33, No.2 (1918), p.162. Frederick Rosen, Classical Utilitarianism from Hume to Mill, Routledge, 2003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흄, 스미스(Adam Smith), 엘베시우스, 페일리의 영향을 검토했다.

34) 시즈윅은 고전 공리주의를 도덕 이론으로 체계화했고, 특히 윤리적 논변을 다루는 방법에서 학문적인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밀이 「공리주의」에서 공리주의를 정당화하는 여러 주장을 논증으로 재구성해 분석했다. 가령 밀은 개인이 사적인 선을 추구하는 것과 사회 전체적인 공리를 추구하는 것을 구분하고, 개인이 전자든 후자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으며 다만 사회적 공감이 발전한 사람이면 후자를 선호할 것이고 했다. 밀의 설명에는 후자가 의무인지,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 모호한 면이 있었는데, 시즈윅은 공리를 선호하는 것이 의무라고 명확하게 정의함으로써 공적 윤리로서 공리주의의 성격을 확정했다.

35) 개혁가로서 벤담의 시대진단과 논설 활동에 대해서는 이태숙, “「급진주의는 위험하지 않다」-제러미 벤담의 급진주의자 면모-”, 「영국연구」 제26호, 영국사학회, 2011.

36) Jeremy Bentham, A Fragment on Government, Ross Harrison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pp.3-4, pp.106-114.

37) 이상영, “공리주의자의 헌법전 연구”, 「법학연구」 제19권 제3호, 인하대학교 법학연구소, 2016, 227쪽.

38) 이종은,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책세상, 2019, 649쪽. 다만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만약 공동선을 그렇게 해석한 것이라면 공동선 개념을 축소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종은 교수는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공리주의자들조차도 보편적 공동선을 추구할 수 없는 경우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서라도 공동선에 접근하려 노력했다”라고 한다. 위 책, 650쪽. 하지만 공리주의가 보편적 공동선을 추구하되 현실적인 한계가 있으면 차선으로 공리를 주장하는 견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39) Bentham, supra note 36, pp.58-59(하단 주).

40) 강준호, 앞의 논문(주 32), 108쪽은 하트(H.L.A. Hart)의 평가를 소개한다. 이에 의하면, 벤담은 공리의 극대화를 강조하고 공리의 원칙을 전반적 개혁운동을 위한 비판적 원칙으로 행사했다. 반면 흄은 공리에 주목하지만, 그것의 극대화에는 주목하지 않으며 비판적 기준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흄은 공리를 주로 인간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기존 관습과 규칙이 어떻게 생겨나 유지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할 뿐이었다고 한다.

41) John Stuart Mill, On Liberty, Utilitarianism and Other Essays, M. Philp & F. Rosen (eds),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121. 행복이란 쾌락이 있거나 고통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저급한 물질적 만족이 아니라 인간의 존귀함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행복에는 양적인 차이는 물론 질적인 차이도 있으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표현처럼 인간의 품성이 나아질수록 더 나은 수준의 행복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추구한다. 위 책, pp.121-124.

42) Ibid., pp.125-126. 여기에는 상당한 희생정신이 담겨있다. 의무 없이 책임을 떠안는 것을 희생이라 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영웅이라 부른다. 공리주의는 의무도 없고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니다. 대신 공직자의 공직 윤리로 한결같이 멸사봉공을 강조하기에 희생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의무 없이 희생을 감수하는 시민을 영웅이라 부르고 그런 시민을 이타심과 공리의 원칙에 충실하다고 말한다면 공직자야말로 그런 자세가 요구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다.

43) 무엇이 즐거움을 주고 좋은 것인지는 당장의 앎을 가지고 판정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약이 쓰다는 것은 당장의 앎이지만, 결국 몸에 좋은 효능을 보여주는 점에서 그것이 좋은 약이라는 진정한 앎이 얻어지는 것이다.

44) Mill, supra note 41, pp.127-128.

45) Mill, supra note 41, pp.128-129. 밀의 공리주의 증명에 대해서는 무어(G.E. Moore) 등이 존재로부터 당위의 도출이라고 비판해왔다. 행복이 좋다는 것과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구분해야 하는데, 전자로부터 후자를 연역하려는 밀의 논변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Alasdair MacIntyre, A Short History of Ethics, Routledge, 1967, pp.230-231.

46) Mill, supra note 41, pp.130-131.

47) Mill, supra note 41, p.131.

48) Mill, supra note 41, pp.132-133.

49) Mill, supra note 41, pp.141-142, pp.144-146.

50) Mill, supra note 41, pp.146-147.

51) 앞서 공동선 개념이 정체를 결정하지 않고 평가할 뿐이라 했는데, 벤담이나 밀의 경우에는 사회개혁을 위해 선거권의 확대를 통한 의회개혁을 주장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를 선호했다고 할 수 있다. 공리의 원칙상, 정치과정에 시민이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하게 하는 것은 정책 결정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된다. 그러나 공리의 원칙을 실제 적용할 때 숙의민주주의나 득표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나 모두 민주주의의 범주에 속한다. 정체의 정당성과 공리의 원칙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견해로 Christopher Woodard, Taking Utilitarianism Seriously,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pp.180-184. 이런 결론은 현대 자유주의 정의론과 차이가 있지만 양립불가인 것은 아니라는 견해로 George Duke, “Common Good”, George Duke & Robert P. George (eds), Natural Law Jurisprude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pp.384-393.

52) Charles Tennant, Utilitarianism: Explained and Exemplified in Moral and Political Government, Longman, Green, Longman, Roberts, & Green, 1864, pp.66-68. 밀은 공리주의가 무신론적 교리라는 비난에 대해 공리주의야말로 가장 종교적인 교리라고 맞섰는데, 테넛은 배에 선장이 없으면 배를 이끄는 선장이 없는 배이듯이 (섭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없으면 하나님 없는 교리라 반박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행복을 계획하시며 사람이 그런 계획을 위해 일하는 것에 즐거워하신다고 보는 것이 진정한 공리주의라 했다.

53) Vermeule, supra note 4, p.14.

54) Crowe, supra note 24. pp.88-90. 머피(M.C. Murphy)는 개별선이 현실화되는 것에 공동선이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고, 피니스(J. Finnis)는 공동선이란 독립된 선이 아니라 개인선의 총합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John Finnis, 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Seco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pp.154-156.

55) Murphy, supra note 10, pp.136-139. 공리주의가 죄 없는 사람의 처벌을 용인한다든지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한다든지 하는 비판이 있는데, 이런 비판은 옳지 않다. 이에 대한 반론은 Rosen, supra note 33, pp.209-231.

56) Keys, supra note 3, pp.12-14.

57) 마이클 샌델, 「정의의 한계」, 이양수 역, 멜론, 2014, 95쪽.

58) David Lyons, “Human Rights and General Welfare”, D. Lyons (ed), Mill’s Utilitarianism: Critical Essays, Rowman & Littlefield, 1997, pp.29-41. 이와 관련해서는 밀의 반론을 떠올릴 필요가 있는데, 공리주의는 정의의 원칙을 포괄하는 이론이며 따라서 공리를 편의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9) Mill, supra note 41, p.128.

60) Mill, supra note 41, p.133.

61) Mill, supra note 41, p.159.

62) Mill, supra note 41, p.157.

63) Mill, supra note 41, p.165. 코비드-19를 예로 들면, 감염병 예방이라는 일반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직면하게 되는 정부조치와 그 때문에 부담해야 할 불이익이 커도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일반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고 불이익에 대해 수긍하고 감수하는 사람, 반대로 그런 조치에 불응하는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직접 받는 불이익이 없다 해도 사회적 안전을 우려하여 분노하는 사람은 공리주의가 강조하는 사회적 공감 능력이 발달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64) Heydt, supra note 32, pp.18-19.

65) Jacuqeline Laing, “Natural Law Reasoning in Applied Ethics”, George Duke & Robert P. George (eds), The Cambridge Companion to Natural Law Jurisprude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pp.229-233.

66) Crowe, supra note 24, p.56.

67) 공리주의적 도덕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정의감과 같은 도덕적 직관에 따르는 것 혹은 공동선 개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자주 제기되는 논점인데, 여기서는 상론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Christopher Fehige & Robert H. Frank, “Feeling Our Way to the Common Good: Utilitarianism and the Moral Sentiments”, The Monist, Vol.93 No.1 (2010).

68) Jeremy Bentham,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J.H. Burns & H.L.A. Hart (eds), with New Introduction by F. Rosen,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p.12. 이런 태도는 종교적 신념에서 무신론과 관련이 있다. 웨스트(H.R. West)에 의하면, 밀은 자라면서 종교교육을 받은 바 없고, 무신론자로 성인이 되었다. 밀은 만약 창조자가 있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가정하면, 신은 자비롭지 못하다고 했다. 자연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고 말한다면, 자연은 잔혹하다. Henry R. West, An Introduction to Mill’s Utilitarian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22.

69) 김연식, 앞의 논문(주 5), 95-96쪽.

70) A. Walton, “Hegel, Utilitarianism, and the Common Good”, Ethics, Vol.93 Iss.4 (1983); Piero Tarantino, “An Alternative View of the European Idea of the Common Good: Bentham’s Mathematical Model of Utility”, Utility and Science, Vol.18 (2020).

71) 실천적으로 많은 공적 업무 중에 형집행업무를 예로 들면, 여기에만 해도 다루어야 할 업무가 종류도 많고 성격도 달라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천차만별이다. 죄지으면 벌 받는다는 것은 그저 관용적 표현이고,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교정업무를 다룰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든 안다. 여기에 형의 집행은 엄정해야 하겠지만 불필요하게 가혹해서도 안 된다는 것, 정의를 실행하더라도 재소자나 교정담당자는 물론, 일반에게 오랫동안 불필요하게 불편함을 초래하는 일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공리주의적 공직 윤리가 공직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다 이해한 것이다.

72)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사회철학에 대한 응용을 포함하여」(제4권), 박동천 역, 나남, 2010, 367쪽 이하.

73) 우리 사회에는 공화주의에서 개인선과 공동선 관계에 대한 혼돈이 존재한다. 2015 교육과정 중 「윤리와 사상」부분의 ‘개인선과 공동선의 조화’ 내용의 서술에서 ‘공화주의는 개인선보다는 공동선을 우선한다’는 서술과 ‘자유주의는 개인선을, 공화주의는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서술이 수정되어야 함을 지적한 견해로 박성근, “신로마 공화주의에서 공동선 개념의 의미- 「윤리와 사상」 ‘개인선과 공동선의 조화’ 학습 내용과 관련하여”, 「도덕교육연구」 제33권 제1호, 한국도덕교육학회, 2021.

74) John Rawls, “Social Unity and Primary Goods”, Amartya Sen & Bernard Williams, Utilitarianism and Beyo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178-185;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Expanded Edi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p.201; Richard Kraut, “Aristotle and Rawls on the Common Good”, Deslauriers & Destrée supra note 9, p.370. 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다. 이종은, 앞의 책(주 38), 766-769쪽은 롤즈가 전통적인 공동선 개념에 반대할지는 몰라도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통해 공동선을 이루는 다른 방식을 말했다고 한다. 롤즈의 자유주의와 공동선의 조화(공동선 지향 자유주의)를 주장한 견해로 오병선, “한국법체계와 자유주의”,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한국법철학회, 2010, 32-33쪽.

75) 이충한, “불완전한 공동선과 자유주의의 변형”, 「철학연구」 제159집, 대한철학회, 2021, 247쪽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논의하면서 섹스로봇 사례를 들어 국가가 개인의 좋은 삶에 대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반완전주의의 중립성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법률은 성기구 전반에 관하여 일반적인 법적 규율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하고, 이는 성적인 내용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일반적인 음란물과는 달리 성기구는 사용자의 성적 욕구 충족에 은밀하게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하고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견해로 인천지방법원 2020. 6. 12. 선고 2020구합51192 판결. 한편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사익에 대한 공익의 우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위 조문을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공동체의 공동선을 함양하는 데 유익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수영,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의 헌법 고찰”, 「세계헌법연구」 제16권 제2호, 세계헌법학회 한국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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