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을 담은 행정명령과 그 후속 조치가 화제다.1) 백악관의 발표와 그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 우리의 뉴스를 연일 채우고 있다.2)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이다.3)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관세를 외교 정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사용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집권 후 관세는 실제 그의 대외경제·무역 정책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이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와 생산기지 이전 소식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4)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 상황은 한 세대 이상을 풍미했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기반으로 한 기존 국제통상법의 시대가 저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무역분쟁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또 법적으로 의지할 규범은 여전히 우리가 체결한 통상협정일 것이다.
우리가 체결한 여러 FTA는 체약당사국의 노동 규제와 관련한 의무를 정하는 장(章, chapter) 또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이하 ‘노동조항’).5) 「대한민국-미국 FTA」(‘한-미 FTA’) 제19장과 「대한민국-유럽연합 FTA」(‘한-EU FTA’) 제13장이 노동장 또는 노동조항의 대표적 예다. 그런데 「한-미 FTA」, 「한-EU FTA」는 물론, 우리가 가입을 검토 중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나 기타 2006-7년 이후 미국 또는 EU가 당사자가 되어 추진 또는 체결된 FTA의 노동조항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6) 첫째, 최종분쟁해결절차인 중재절차에 회부 가능하고(adjudicatable) 일반적 무역사안과 같이 위반 지속 시 제재수단으로서 상대방의 특혜관세 철회까지 허용할 수 있는(sanctionable, 미국 FTA 노동조항의 경우에만 해당) 주요 의무를 세 가지 두고 있다. ① 자국의 (일정한) 노동법을 실제적으로 또 실효적으로 집행할 의무(집행의무);7) ② 객관적인 국제문서에 규정된 노동기준(주로 국제노동기구의 문서)에 부합하도록 자국 노동법을 제정·유지할 의무(입법의무);8) ③ 일단 입법된 노동법의 보호수준을 완화 내지 저하시키지 않을 의무(역진방지의무)9)가 그것이다. 다만 이러한 의무의 위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해당 행위가 ‘당사국 간 무역 또는 투자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in a manner affecting trade or investment between the Parties) 이루어져야 한다.10) 이하에서는 이를 ‘무역영향성 요건’으로 줄여 칭하는데, 무역-노동 연계 제도로서 FTA 노동조항에서 이 요건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정당성,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이고, 따라서 위 법문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밝히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무역영향성 요건’의 법적 의미는 2017년 6월 그 최종보고서가 공표된 역사상 최초의 노동조항 위반 중재사건인 미국-과테말라에서 주요 쟁점으로 자세하게 검토되었기에 이론과 법해석론을 접목시켜 논의할 수 있는 좋은 논의 소재가 된다. 따라서 이 논문은 먼저 무역-노동 연계를 둘러싼 오랜 경제적·정치사회적·법(이론)적 논쟁을 간략히 복기하고 유형화하면서 법해석론의 기저에 전제된 규범적·사실적 논거를 점검한다(II). 이어서 미국-과테말라에서 개진된 당사국의 주장 및 중재패널의 판단 중 무역영향성 요건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소개한다(Ⅲ). II.와 Ⅲ.의 논의를 토대로 미국-과테말라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며 이 연구의 무역영향성 요건 해석론을 전개한다(Ⅳ). 끝으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본 논문의 핵심 주장이 현 시점 더욱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II. 무역-노동 연계의 이론적 쟁점: FTA 노동조항과 무역영향성 요건의 이론적 의의
일반적으로 무역자유화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촉매로 기능하는 동시에, 한 국가 내 분배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비판받기도 한다.11) 지구적 경제통합은 유연화·민영화와 함께 개별 국가 단위로 설계된 복지국가 체계를 위협하는 원인이며,12) (고용·노사관계로 좁혀 보자면)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인 노동조합·단체교섭 제도를 무력화시킨다고 지적되기도 한다.13) 이러한 배경에서 무역자유화를 법적으로 견인하는 통상협정 혹은 통상 관련 국내법 안에 노동과 사회적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무역-노동 연계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북미와 서유럽의 노동계 및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에 연계 제도 중 특히 법적 구속력이 있고 집행이 가능한 노동 관련 의무를 규정하는 ‘노동조항(labour provisions)’ 또는 ‘사회조항(social clause)’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의 쟁점은 복합적인데 논자의 이해관계 및 사실·가치·정책 판단, 즉 ① 국제무역·투자와 노동기준이 상호 어떤 관계를 갖는지(노동조항을 도입해야 할 사실적 이유, 즉 문제가 존재하는지); ② 노동조항이 추구해야 (그리고 침해하지 않아야) 하는 목표로서 (법)규범적 가치가 무엇인지; ③ 현재 노동기준/노동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은 원인이 무엇인지(노동기준/노동권의 경제적 기능에 대한 이해 부족, 노동 규제역량 부족, 정치적 의지 부족), ④ 이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무엇인지를 두고 크게 세 가지 견해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입장은 연계 찬성론이다. 이 견해는 지구적 차원의 경제통합이 각국의 노동기준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이해하며, 그 이론적 틀로 사회적 덤핑(social dumping)을 통한 불공정경쟁과 근로조건에 있어서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 및 노동인권 보장을 제시한다(연계 찬성론 A).14) 이 견해는 노동기준이 노동비용이라는 전제 위에 한 국가가 채택·유지해야 하는 ‘적정한’ 수준을 하회하는 근로조건을 용인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상품을 생산·수출하는 것은 일반 덤핑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한다(‘사회적 덤핑’). 무역상 이득을 얻기 위해 노동기준을 과소 보호하는 것은 국제무역상 경쟁 규칙을 위반하는 불공정행위로서 절감한 비용만큼 상계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국제통상법 관점에서의 불공정 무역행위).15) 바닥으로의 경쟁 이론에 근거한 연계 찬성론은 국가들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파악한다. 무역·투자 자유화로 자본의 이동은 자유로워졌지만 노동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국가들은 다국적 기업 등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동조건·고용보호 수준을 완화시킬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16) 이러한 경쟁 속에서 국가는 최적화된 수준의 노동규제를 할 수 없어 후생 손실이 발생하고 사회규범적으로 근로자의 기본적 노동인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규제이론 및 노동법적 관점에서의 기본권/인권 침해). 이러한 시각에서 국제공조를 통해 공통된 게임의 규칙(보편적 노동조건과 처벌의 방식)을 정하고 위반하는 국가를 제재하여 이 집단행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17)
요컨대 연계 찬성론 A는 ① 무역/투자의 세계화는 노동기준의 향상과 전체적으로 음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설령 세계적 규모의 통계적 증거를 발견하긴 어려워도 사례증거(anecdotal evidence)는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규범적으로 ② (국제/통상 차원에서) 국제무역과 투자에 있어서의 공정경쟁과 (국내/노동 측면에서) 사회정의·노동인권 보호는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당한 목표로서 어느 한 국가의 부당한 노동기준 약화/노동권 침해가 체계적으로 또 심각하게 이루어질 때 다른 국가는 다양한 제재수단(무역제재 포함)을 동원해 비례원칙에 맞게 적용하여 국제적 위법상태를 해결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즉 보편적 경쟁(통상) 규칙 위반과 노동인권 침해는 더 이상 배타적인 주권행사 사항이 아님]. 이 입장은 개별 국가가 ③ 노동권/노동기준 보장에 소극적인 이유로 정치적 의지 부족을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책적 관점에서 ④ 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국제(최저)노동기준을 설정한 후 이를 위반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기 위해 공정한 중재제도 및 효과적 이행강제제도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계에 반대하는 진영은 먼저 낮은 수준의 노동조건이 해당 국가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주장과 무역자유화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기준 수준이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이 충분히 실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18) 규범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국가는 주권에 근거해 스스로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최저)노동조건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이는 다른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이해한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이 비숙련 노동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갖는 것은 경제발전 단계상 아래에 위치해 풍부한 비숙련 노동 인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활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한다.19) 결국 노동기준을 국제통상과 결부시키는 것은 선진국의 위장된 보호무역주의(disguised protectionism)라는 것이다.20) 또한, 연계 제도를 통해 시장에서 형성된 수준(생산성)을 상회하는 노동기준을 강제하거나 노동조항 위반을 이유로 무역제재(예 : 관세 인상)를 가할 경우, 결과적으로 해당 산업이 더욱 어려워져 근로자들의 고용기회를 잃게 하는 등, 득보다 해가 될 수 있는 점을 강조한다.21)
요컨대 연계 반대론은 ① 지구적 경제통합이 각 국가의 노동기준 개선과 유의미한 관계가 없거나 만약 있다면 오히려 양의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노동조항은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② 보편적 국제노동기준을 정립해서 모든 국가에 강제하는 것은 개별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각 국가 간 경제발전 정도와 정치·사회·문화적 차이를 고려할 때 서로 상이한 노동기준을 보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③~④ 연계 찬성론이 이해하는 방식의 국제통상 협정 내 노동조항이라는 제도는 불필요하며, 만약 진정으로 개도국 노동자의 인권 침해 문제가 우려된다면 순수한 지원 방식, 즉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정보공유, 정책협조, 물적·기술지원 등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 훨씬 더 유용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연계를 지지하지만 앞서 본 찬성론과는 다른 이유에서, 또 다른 목적·수단을 가진 노동조항의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연계 찬성론 B). 이 관점은 연계 찬성론과 반대론이 의도치 않게 공유하는 관점, 즉 노동기준 혹은 노동권을 곧 비용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22) ① 노동권 보장은 경제적 측면에서 비용 상승을 상쇄할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으며,23) 설령 단기적으로 비용 상승을 유발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인적 자본 수준을 강화하거나(아동노동·고용영역에서의 차별 금지) 정치·사회적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단결권) 국제투자상 불이익을 입지 않는다고 주장한다.24) ②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권 보장은 한 국가의 경제·사회·정치가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③ 통상협정 내 노동조항도 체약국의 노동기준에 대한 발상 전환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규제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면서, ④ 처벌이나 제재가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EU가 주도적으로 고안·체결하고 있는 FTA, 특히 그 안의 「무역과 지속가능한 발전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예: 「한-EU FTA」 제13장).
아래의 <표 1>은 노동조항을 설명하고 정당화 혹은 비판할 수 있는 이론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비교·분석한 것이다.
자유무역·투자와 노동조건/노동기준 간 경험적·사실적·경제적 관계에 대해 각 진영은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하다. [연계 찬성론 A]는 양자가 부정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연계 반대론]은 무의미하거나 양의 관계에 있다고 믿는 입장도 있고 설령 부정적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무역·투자로 인해 개별 국가 또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증대되는 전체 효율을 고려할 때 희생시킬 수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비용에 불과하며 그것의 완화·개선은 각 국가가 국내 제도를 통해 조정해야 할 국내문제로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 그리고 [연계 찬성론 B]는 특히 장기적으로 볼 때 양자는 상호보완적이며 필수적인 관계이기에 제로섬의 관점 자체를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당연하게도 [연계 반대론]의 입장에서는 FTA 노동조항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해롭고 부당한 제도이다. 따라서 무역영향성 요건의 의미와 내용을 더 따져볼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연계 찬성론의 관점을 채택해야 FTA 노동조항의 경제적·규범적·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연계 찬성론 A의 입장인지 B의 입장인지에 따라서 무역영향성 요건의 지위와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한편 자유무역·투자와 노동조건/노동기준 간 경험적·사실적·경제적 관계에 대해서는 관련 경험적 연구 문헌이 다수 발표되었으나 문헌별로 방법론과 결론이 통일되지 않아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충분히 설득할만한 근거로 활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무역과 노동 간 관계, 즉 양자의 연계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양적 근거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국제)정치적 합의이다. 그리고 그것이 FTA와 같은 조약에 기술되었을 때 그러한 합의(의사)는 구체적 협정문 해석의 법적 근거가 된다(사실적 관계의 규범적 의제). 즉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 노동조항을 적용할 때 무역영향성 요건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당 노동조항이 어떠한 이론적 전제, 즉 사실적-정치적-법적 관점을 따르고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관되고 논리적·정합적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Ⅲ. 미국-과테말라 사건 분석
2017년 6월 26일 자유무역협정 내 노동조항 관련 분쟁에 대한 첫 중재판정 보고서가 공개되었다.25) 중재 사건은 중미자유무역협정(Dominican Republic- Central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CAFTA-DR) 제16.2.1(a)조에 대한 미국과 과테말라 간 분쟁이었다. 이 분쟁은 2008년 4월 23일 미국의 노동조합 총연합단체인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 (AFL-CIO)과 6개 과테말라 노동조합이 미국 노동부의 Office of Trade and Labor Affairs (OTLA)에 과테말라의 CAFTA-DR 노동조항 위반을 주장하고 진정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과테말라 정부가 노동조합․단체교섭 및 “수용할 수 있는 근로조건(acceptable conditions of work)”26)과 관련된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에 실패했다는 게 진정의 요지였다.27)
2008년 6월 사건은 접수됐고, 2009년 1월 OTLA는 공개보고서를 발간해 과테말라의 의무이행 실패를 지적한 후, 6개월의 유예기간을 주어 과테말라 정부의 자발적 개선을 촉구했다. 일부 문제가 개선되었으나 근본적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미국은 과테말라와 공식 ‘노동협의’를 시작했다. 협의가 실패로 끝나면서,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011년 8월 과테말라를 상대로 중재패널 소집을 요청했다. 그러나 제소 직후 중재절차 진행을 중지하고 다시 교섭하여 2013년 4월 노동집행계획이 시작되었으나 양측이 모두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2014년 9월 중재절차가 재개되어 최종 판정에 이르게 되었다. 사건 결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쟁점은 CAFTA-DR 제16.2.1(a)의 법문 중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in a manner affecting trade)”의 해석이었다.
이 사건의 대상 조항인 중미자유무역협정(The Dominican Republic-Central America FTA: CAFTA-DR) 제16.2.1(a)조는 협정당사국이 자국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의무를 부과한다. 이 조항은 CAFTA-DR의 노동장인 제16장에서 유일하게 중재절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규정이다.28) 정확한 법문은 다음과 같다.
제16.2조 : 노동법의 집행
1. (a) 어떠한 당사국도, 이 협정의 발효일 이후, 당사국 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일련의 작위 또는 부작위의 지속적 또는 반복적 과정을 통하여, 자국의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못하여서는 아니 된다.
미국은 과테말라가 ① 조합활동으로 인해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원직복직·손해배상, 보복처분에 대한 벌금 납부 등에 관한 법원명령 집행 실패(189건 사례 제시), ② 근로감독 및 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 실패(197건), ③ 법정 기한 내 노동조합 신고 접수 및 알선절차 개시 실패(16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위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29) ①과 ② 청구에 대해 패널은, 미국이 과테말라가 총 8개 사업장(4개의 해상운송 회사, 3개의 의류제조회사, 1개의 고무농장)의 74명 근로자와 관련된 법원 명령을 집행하는 데 실패한 사실은 증명했으나, 그것이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부작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미국 패소 결정을 내렸다.30) 근로감독 등이 문제 된 ②의 경우 제출된 증거가 과테말라가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못’한 사실을 증명하는지, 즉 사실확인과 증거․절차법적 쟁점이 주로 다투어졌다. 그에 비해 ①은 확인된 집행실패 사실을 전제로 해당 실패가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또 일회성이 아닌 연속적인 작위/부작위에 의한 실패(‘a course of action or inaction’)였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이 글은 이 두 가지 핵심 논점 중 무역 영향성 요건만을 분석하는데, 이에 대한 분쟁당사자 및 패널의 판단은 다시 두 세부 쟁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노동법 집행 실패가 언제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지(쟁점ⓐ) 이고, 다른 하나는 ⓐ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즉 제출해야 하는 증거의 내용․종류와 입증의 정도에 관한 문제(쟁점ⓑ)이다.
쟁점ⓐ에 대하여 미국은 ‘경쟁의 조건을 변경한 경우’에 노동법 집행 실패가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이해한다. 미국은 이러한 해석의 근거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31)과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32)에 대한 WTO의 관련 판정례를 제시했다. 미국이 인용한 WTO 판정례는 GATT 제3조 제4항의 “그 국내 판매, 판매를 위한 제공, 구매, 운송, 유통 또는 사용에 영향을 주는(affecting) 모든 법률, 규정, 요건”33)의 의미를 수입상품과 국산상품 간 경쟁조건에 해롭게 영향을 주는, 즉 수입상품을 경쟁상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할 수도 있는 모든 조치로 본다.34) WTO 분쟁해결기구가 “affecting” 개념을 이렇게 넓게 풀이하는 것은 GATS 제1조 제1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미국은 지적했다.35) 미국은 WTO 판정례의 GATT와 GATS 조항 해석과 CAFTA-DR의 목적 중 하나인 “자유무역지역 내 공정경쟁 조건의 증진”36) 사이의 유사점을 강조하면서, 이 공정경쟁 조건의 마련이 CAFTA-DR 노동조항의 목적이며 이것의 달성을 위해 무역 영향성 요건도 GATT와 GATS의 affecting처럼 넓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에 관한 미국의 주장을 반박하며 과테말라는 무역 영향성 요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제소국이 노동법 집행 실패라고 주장하는 작위/부작위가 무역에 일정한 효과(trade effect)를 미쳤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AFTA-DR 제16.2.1(a)조의 무역 영향성 요건은 경쟁조건에 관한 것도, 영향을 줄 가능성에 관한 것도 아닌, 실제 발생한 구체적 무역효과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37) 과테말라는 미국이 GATT와 GATS의 affecting 개념에 관한 WTO 판정례를 인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두 협정의 해당 조항은 각각 국내상품/서비스와 동종의 수입상품/서비스 간의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러한 동종 상품/서비스 비교를 요구하지 않는 CAFTA-DR 제16.2.1(a)조는 WTO 판정례처럼 무역 영향성 요건을 해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38) 나아가 과테말라는 동 요건이 “일련의 작위 또는 부작위의 지속적 또는 반복적 과정을 통하여” 요건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만큼 상호 유기적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러한 법문의 구조는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피소국의 의도 혹은 목적이라는 점을 뒷받침해 주므로, 제소국은 동 조항의 객관적 요건에 더해 피소국의 노동법 집행 실패가 실제 발생한 무역상 이득을 얻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는 주관적 사실까지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9)
쟁점ⓑ에 대하여 미국은 두 가지 사실이 입증되면 무역 영향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보았다. 첫째는 협정당사국 간 무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피소국의 효과적 노동법 집행 실패에 근거해 경쟁의 조건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이다. 주의할 것은 이 경쟁조건의 변화가 가시적인 무역효과(예: 가격 변화, 무역량, 시장점유율 등)로 연결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40) 미국은 주어진 현실적·제도적 조건을 고려할 때 제소국에게 실제 발생한 무역상 효과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제도적으로 미국은 당해 사건과 관련된 과테말라 회사 내부의 회계장부나 매출 등의 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으며, 설령 상품의 가격 감소 등의 사실을 포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건의 노동법 집행 실패로 인한 것인지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41)
이에 대해 과테말라는 무역상 효과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미국이 꼭 과테말라 회사의 내부 정보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다른 방식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과테말라는 미국 세관에 보고된 수입액(import value)을 활용할 수도 있고, 관련 과테말라 회사의 상품 가격이 다른 회사의 상품 혹은 전체 상품의 평균 수입 가격보다 낮다는 사실 등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과테말라 회사에 직접 정보 제공을 요청하거나 혹은 이 과테말라 회사로부터 상품을 구입한 미국 회사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어 무역상 효과의 증명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42)
패널은 먼저 해석의 기준으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43) 제31조 제1항을 인용하며, CAFTA-DR 제16.2.1(a)조의 목적(object and purpose)을 고려하고 동 규정의 문맥(context)에 부여되는 법문의 통상적(ordinary) 의미에 따라 영향성 요건을 해석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그리고 분쟁당사국이 다투고 있는 핵심쟁점을,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 실패로 인해 발생한 결과 중 어떤 종류의 결과가 무역에 영향을 준 것으로 봐야 하는지로 이해했다. 패널이 보기에 미국은 경쟁조건이 변했을 때 무역에 영향을 준 것이고, 과테말라는 관련 상품/서비스의 가격이나 무역량의 변화가 확인될 때 비로소 무역 영향성 요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패널은 법문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의 통상적 의미를 고려할 때, 노동법 집행 실패 사실과 협정당사국 간 무역의 존재 사실의 입증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미국의 분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만약 CAFTA-DR 체약국이 미국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노동조항을 초안할 때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노동 부속협정인 북미노동협력협정(North American Agreement on Labor Cooperation: NAALC)처럼 “trade-related(무역관련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44) 따라서 affecting이라는 용어를 채택한 이상, 두 용어 간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무역에 대한 영향은 증명되어야 한다고 보았다.45) 또 맥락 혹은 체계(context)를 고려할 때, CAFTA-DR 제16.2.1(a)조의 affecting 요건은 협정당사국의 노동법 집행 실패 행위의 위법성을 결정하는 핵심적 기준으로, GATT와 GATS에서처럼 그 적용범위를 폭넓게 설정하기 위한 affecting과는 기능을 달리한다고 판단했다.46) 즉 미국의 주장과 달리 CAFTA-DR 제16.2.1(a)조에서는 무역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법집행 실패가 아닌 실제로 영향을 준 법집행 실패를 찾아 특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47)
법문의 문리적·체계적 의미 파악에 이어 패널은 CAFTA-DR 제16.2.1(a)조의 목적을 분석했다. 패널은 제16.2.1(a)처럼 구체적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과 기관·제도에 관한 제16장의 다른 조항은 모두, 노동장 첫 조항인 제16.1조의 체약국이 모두 공유하는 목표(Statement of Shared Commitment)를 법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48) 그리고 이 공통목표는 CAFTA-DR 서문(Preamble)에 적시된 결의(resolve), 즉 “회원국 각자의 노동 관련 국제적 의무에 기반해 추가로”,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실현한다”와 궤를 같이한다고 이해했다.49) 이어 패널은 협정의 구체적 목표를 열거한 CAFTA-DR 제1장을 확인한 후 제1.2.1(c)조의 “자유무역지역 내 공정경쟁 조건의 증진”이 제16.2.1(a)조의 목적에 가장 부합한다는 결론을 (다소 빠르게) 도출한 후, 무역에 영향을 주지 않은 노동법 집행 실패 문제는 (그 해결이 바람직한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동 조항의 적용범위 밖에 있다고 판시했다.50) 즉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 보장의 중요성과 이와 관련된 협정당사국의 국제적 의무를 재확인한 CAFTA- DR 규정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제16.2.1(a)조의 해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목적은 사실상 공정경쟁 조건의 증진으로 국한시켰다.
패널은 이러한 목적 분석 및 노동법과 경제(무역) 간 관계에 대한 일반적 이해에 근거해, 무역 영향성 요건을 매우 좁게 보는 과테말라의 분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테말라는 노동법 집행 실패로 발생한 결과 중 무역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가격 인하 혹은 상품/서비스의 수출입 양의 증감과 같이 구체적이고 실제로 발생한 무역상 현상을 꼽았다. 패널은 노동법 준수가 대체로 사용자의 (최소 행정적) 비용 증가, 잠재적 법적 책임의 증가 등을 초래하는 만큼, 정부의 노동법 집행 실패는 그에 비례해 사용자/기업 측의 비용 절감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인정했다.51)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법을 준수하는 다른 사용자이기 때문에, 시장 경쟁에서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해 모두가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일종의 노동조건에 있어서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52) 그러나 패널은 기업의 노동법 위반 혹은 정부의 법집행 실패가 반드시 가격이나 무역량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53) 왜냐하면 사용자는 줄어든 노동비용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가격을 유지할 수 있으며(따라서 무역량·시장 점유율 등의 변화도 발생하지 않음), 만약 모든 사용자가 노동법을 위반하고 정부도 법집행을 하지 않는 바닥으로의 경쟁이 발생할 경우 근로자의 노동조건만 악화된 채 시장에서의 변화는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54) 따라서 패널은 과테말라의 무역 영향성 해석이 “in a manner affecting the price or volume of traded goods”와 다름없다고 보았다.55)
이상의 분석을 기반으로 패널은 무역 영향성 요건에 대해 일종의 절충적 해석을 끌어냈다. 무역 영향성 요건은 해당 사용자가 무역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법 집행의 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며(trade-related로 이해한 미국의 주장 기각), 노동법 집행 실패가 해당 사용자의 무역 경쟁력에 실제로 이점(competitive advantage)을 주어 경쟁조건을 변경시켰다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가격/무역량 변동 등의 입증을 주장한 과테말라의 주장 기각).56) 즉 무역 영향성 요건 충족을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를 증명해야 한다. 첫째, 해당 사용자가 CAFTA-DR의 한 당사국 시장에 상품/서비스를 수출하거나, 국내 시장에서 다른 당사국으로부터 수입된 상품/서비스와 경쟁관계에 있을 것; 둘째, 노동법 집행 실패로 인한 효과(비용절감)가 존재할 것; 셋째, 그 효과가 상당하여, 해당 사용자에게 일정한 경쟁우위를 제공할 것이 그것이다.57)
추가적으로 패널은 경쟁우위와 관련해 그 요건과 증명방법도 설시했다. 첫째, 경쟁우위는 그 정도가 너무 작거나, 단기간 지속되거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어서는 안된다.58) 둘째, 경쟁우위 존재 증명을 위해 사용자만 접근 가능한 정보는 증거로 불필요하다.59) 셋째, 비용 혹은 다른 (노동법 실패로 발생한) 효과에 대한 증거를 제출해야 하지만 그것이 아주 높은 정확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60)
패널은 무역 영향성 요건에 대한 이상의 해석을 과테말라의 해상운송․의류산업 내 기업의 사례에 적용했다. 전자는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과테말라 기업에 선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후자 기업은 의복을 제조해 미국시장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이 사용자들은 조합활동/단체교섭 요구를 이유로 노동조합의 간부 및 회원인 근로자를 해고한 후, 원직복직·손해배상, 벌금납부 등에 관한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패널은 이 사례에서 영향성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앞서 살핀 법리를 Quetzal Port 항구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상운송 기업의 경우에 맞춰 다음과 같이 구체화하였다:
-
과테말라 기업은 Quetzal Port 항구를 통해 수출상품을 운송하였는지;
-
사안의 노동법 집행실패로 영향을 받은 운송회사가 위 수출품을 운송했는지;
-
해당 노동법 집행실패로 인해 운송회사의 비용이 절감되었는지;
-
운송회사의 절감된 비용이 충분한 정도로 수출업자의 경쟁우위로 연결되었는지
패널은 미국이 제출한 증거에 의해 1-3 사실은 추론되나 4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 무역 영향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61)
이어 패널은 의류산업 기업의 사례에서도 무역 영향성의 부재라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Avandia 기업의 경우 무역 영향성 요건 충족을 위해서 노동법 집행 실패로 인해 발생한 경쟁우위를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했다. Avandia 사례에서는 노동조합 조직과 단체교섭을 추진한 노동조합의 임원 전원을 해고하고, 관련 법원명령이 발부되고 나서 9개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이행을 거부하는 등 심각하게 노동권을 침해하여 냉각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했다고 보았다.62)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구체적인 경쟁 우위에 대한 증명 없이도 전체적 상황에 근거해 그 존재를 추단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Avandia의 사례 하나만으로는 과테말라가 “일련의 작위 또는 부작위의 지속적 또는 반복적 과정을 통”해 노동법 집행에 실패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아, 무역 영향성 요건이 인정된 이 유일한 사례는 과테말라의 위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아가 패널은 Avandia 같은 사례는 예외적이며, 사실의 문제(matter of fact)로서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의했다.63) 이러한 이유로 패널은 Avandia와 Fribo 사례를 구별했다. Fribo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 15명을 해고하였고, 법원은 Fribo에 해고된 근로자의 원직복직을 명령했다. 다만 해고근로자 중 노동조합 간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고, 15명 중 8명은 미지급임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패널은 이 증거만으로는 Avandia의 경우처럼 전체적 상황에서 곧바로 경쟁우위를 추론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64)
결국 패널은 미국이 제시한 어떤 사례도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 실패, 무역 영향성, 연속성 있는 작위/부작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요건 모두를 만족하지 못해 과테말라는 CAFTA-DR 제16.2.1(a)조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최종 결론 지었다.65)
패널은 무역 영향성 요건에 대해 일종의 절충적 해석을 끌어냈다. 무역영향성 요건은 해당 사용자가 무역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법 집행의 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며(trade-related로 이해한 미국의 주장 기각), 노동법 집행 실패가 해당 사용자의 무역 경쟁력에 실제로 이점(competitive advantage)을 주어 경쟁조건을 변경시켰다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가격/무역량 변동 등의 결과 입증을 주장한 과테말라의 주장 기각).66)
패널에 따르면 무역 영향성 요건 충족을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를 증명해야 한다. 첫째, 해당 사용자가 CAFTA-DR의 한 당사국 시장에 상품/서비스를 수출하거나, 국내 시장에서 다른 당사국으로부터 수입된 상품/서비스와 경쟁관계에 있을 것; 둘째, 노동법 집행 실패로 인한 효과(비용절감)가 존재할 것; 셋째, 그 효과가 상당하여, 해당 사용자에게 일정한 경쟁우위를 제공할 것이 그것이다.67)
추가적으로 패널은 경쟁우위와 관련해 그 요건과 증명방법도 설시했다. 첫째, 경쟁우위는 그 정도가 너무 작거나, 단기간 지속되거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68) 둘째, 경쟁우위 존재 증명을 위해 사용자만 접근 가능한 정보는 증거로 불필요하다.69) 셋째, 비용 혹은 다른 (노동법 집행 실패로 발생한) 효과에 대한 증거를 제출해야 하지만 그것이 아주 높은 정확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70)
패널의 영향성 판단 요소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 [그림 1]과 같다.
Ⅳ. 사견: ‘노동조항의 이중구조’에 근거한 무역영향성 요건의 해석론71)
이 논문은 FTA 노동조항을, 동일한 문제현상(예: 노동법의 실효적 집행의무 실패)일 수 있으나, 국제통상(경제)과 노동(사회) 관점에서 볼 때 개념적으로 구별되는 ‘위법한 상태’, 즉 한편으로는 ‘국제통상에 있어서의 불공정경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국가 노동자의 ‘노동인권 침해’를 해소·완화하기 위한 두 제도를 모두 담고 있는 ‘법적 그림’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전제 위에 본 논문은 협정당사국이 타방 당사국의 어떤 노동조항 위반 여부를 다툴 때는 제소국이 두 제도 중 어느 것을 택하는지에 따라 그 제도에 부합하는 목적(purpose)과 맥락(context)이 선별 소환되어 해당 노동조항 문언 해석에 반영되어야 하고, 또 그에 상응하는 법률효과(구제수단)만이 발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 발효 중인 주요 FTA 노동조항의 문언과 체계상 그러한 해석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의 ‘노동조항 이중구조’에 근거한 무역영향성 해석론은, 관찰자의 선이해에 따라 토끼가 보일 수도 있고 오리가 보일 수도 있는 아래의 [그림 2]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 연구의 해석론을 단계별로 살펴본다.
조약의 목적을 확정하는 작업은 조약해석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31조 제1항이 그 일반적 요청을 선언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CAFTA-DR 자체도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72) 게다가 목적론적 해석(teleological or purposive interpretation)은 법학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해석방법이기도 하다. 목적은 체계/맥락과 함께 법의 흠결이 있거나 어려운 사안(hard cases)이거나 문언 자체로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할 때 특히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73) 나아가 조약의 목적은 조약의 문언과 그 문언을 통해 구축하고자 하는 제도의 배경 이론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74) 즉 노동조항의 배경이 되는 이론적 근거(rationale)는 그 노동조항의 문언을 기술하고,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데 필요하고 나아가 그 개선을 위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조약해석 관점에서 보더라도 목적과 이론적 근거를 살피는 것은 해당 노동조항 문언을 실질적으로 더욱 타당하고 정합성 있게 해석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미국-과테말라 패널의 CAFTA-DR 제16.2.1(a)조 및 기타 여러 CAFTA-DR 규정의 해석 중 비판받을만한 대다수는 CAFTA-DR 제1.2.1(c)조의 “자유무역지역 내 공정경쟁 조건의 증진”만을 사건 조항의 목적으로 삼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언적 해석’에 근거해 “affecting trade”의 의미를 “trade-related”로 새기는 미국의 주장을 기각했다는 패널의 판단도 뒤이어 나오는 GATT와 GATS의 광의의 “affecting” 해석론을 배척하는 이유와 함께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패널은 GATT와 GATS의 “affecting”의 기능과 CAFTA-DR 제16.2.1(a)조의 무역영향성 요건의 기능이 다르다는 목적론적·체계적 해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패널의 잘못은 목적론적·체계적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지역 내 공정경쟁 조건의 증진”을 해당 조항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은 것, 그리고 순수하게 문언적 해석에 근거해 판단을 내렸다고 착각하거나 은폐한 것이다.
현대 조약은 단일한 목적만을 갖는 경우가 드물며 광범위한 사안을 규율하는 FTA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그리고 때로 상충할 수도 있는 다종의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항은 그러한 유형의 극단에 속하는 예로 단일한 조문 하나가 여러 개의 목적을 지향한다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렇게 볼 경우 목적을 어느 것으로 확정하는지에 따라 단일 조문의 복수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즉 국제통상에서의 공정한 경쟁조건 마련을 목적으로 정할 경우 그러한 시장에서의 경쟁조건에 객관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의 노동법 집행 실패 혹은 기타 입법의무나 역진방지의무 위반만이 FTA 노동조항이 염두에 두는 위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무역영향성 요건은 그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조항 의무 위반 행위를 걸러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반면, 노동자의 권리 침해의 해소·완화를 노동조항의 목적으로 여길 경우 자유무역·투자라는 환경이 기업의 노동법 위반의 주관적 동기로 작용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련되기만 했다면 그것으로 무역영향성 요건은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예컨대 CPTPP 제19.4조와 같은 규정이 있을 시 더욱 견고하게 지지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이를 본다.
일단 ‘부적절하다’는 문언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위 문장 자체가 일정한 법적 의무를 창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동 문장의 역할이 무엇일지가 쟁점이 된다. 이 연구는 이 문장이 동 조항은 물론 CPTPP 노동조항 제도 전체의 목적과 문맥/맥락을 설정한다고 해석한다. 즉 II.에서 살펴보았던 자유무역·투자와 노동조건 간의 경제적·경험적 관계에 대해서 정치적·법적으로 양자가 음의 상관관계/상호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전제되는 사실로서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유무역·투자와 노동조건 간의 양방향(two-way link)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각국이 유지해야 하는 적정한 수준에 미달하는 노동기준(labour standards)은 관련 사용자에게 경쟁상 이점을 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조건을 왜곡함으로써 국제통상·투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측면이다. 이는 무역과 투자라는 ‘경제의 렌즈’로 볼 때 보이는 모습이다. 동일한 그림을 이번에는 노동과 인권의 ‘사회적 렌즈’로 들여다 보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최장근로시간을 넘겨 일하게 하며 노동조합·단체교섭을 거부하는 사용자, 특히 그러한 법위반이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해외투자를 유치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계속 노동법을 위반하는 사용자와, 그러한 사용자의 행위를 묵인하는 정부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노동법 위반(및 집행 등의 실패)과 자유무역·투자 간의 관계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인과관계가 아니며 심지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관계조차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고자 (혹은 높일 수 있다고 잘못 믿고) 노동법을 위반하는 사용자가 존재하고 그것을 방기하는 혹은 노동법의 보호수준을 저하시키려는 정부가 존재하는 한 그러한 관계는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이 연구는 CPTPP 제19.4조의 제1문이 자유무역·투자상 이득을 얻을 목적 혹은 그러한 동기로 노동기준을 저하시키는 행위에 대해서 규범적으로(normatively)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는 바로 이어 등장하는 제2문이 창출하는 구체적 법적 의무의 원리적 근거가 된다(principle로서 제1문, rule로서 제2문).
따라서 어느 당사국도 당사국 간 무역 또는 투자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다음 각호에서 정하는 자국의 법령의 적용을 면제하거나 그 수준을 완화시킬 수 없다:
-
(a) 제19.3.1조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령. 단 그러한 면제 또는 완화가 동 조항의 권리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만 그러하다.
-
(b) 제19.3.1조 또는 제19.3.2조의 노동권/노동조건을 보장하는 법령. 단 특별 그러한 면제 또는 완화가 당사국의 영토 내에 있는 자유무역지역과 같은 특별 무역/관세 구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그러하다.
CPTPP 제19.4조의 이러한 문언과 규율구조는 GATT 제3조와 상당히 유사하다. GATT 제3조 제1항은 회원국의 국내 과세와 규제가 국내 생산을 보호하기 위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should not)는 점을 인정한다(recognize)고 정한다. 이어지는 제2항 내지 제10항은 금지되는 행위유형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자세히 규율한다. 다시 말해 제1항은 보호무역주의 철폐를 제3조 전체의 공통목적으로 설정하고, 특히 제2항과 4항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각 조세와 규제의 영역에서 필요한 행위를 특정하는 구조를 취한다. WTO 상소기구는 GATT 제3조 제1항은 제2, 4, 5항의 맥락을 형성함으로써 동 항의 해석에 지침이 되는 일반원리를 설정한다고 보았으며,75) 제3조의 나머지 항은 제1항 원리가 구체화된 형태라고 보았다.76) 한편 GATT 제3조는 제1항이 설정한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개념, 즉 ① ‘영향을 주는 조치’(measures affecting), ② “동종 상품”(like product), ③ ‘불리한 대우’(less favourable treatment)와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 기능 측면에서 볼 때 ①은 ‘문지기’(gatekeeper)의 역할을 한다. 즉 일종의 예비·선결작업으로 애초에 동 조문의 적용범위 내에 들어올 수 없는 행위를 배제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에 비해 ②와 ③은 보다 실체적이고 핵심적 작업으로서 위법한 행위(wrongful act)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FTA 노동조항의 주요 의무와 비교해보면 노동조항 조문에서의 ① “노동법”(labour laws), ② 무역영향성 요건, ③ 각 노동조항 의무의 위반행위(노동법 집행실패, 노동법 입법실패, 노동법 보호수준 약화)에 상응함을 알 수 있다.
GATT 제3조의 궁극적 목적은, 차별금지를 도구로 삼아 보호무역주의라는 동기에서 이루어진 국내 조치의 금지와 회원국의 과세와 규제에 있어서의 주권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동종 상품”과 ‘불리한 대우’라는 개념의 범위와 구체적 판단기준은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 늘거나 줄 수도 있고 강화되거나 완화될 수도 있다.77) WTO 상소기구가 Japan-Alcoholic Beverages II에서 “동종 상품” 개념을 악기인 아코디언에 비유하며 동 개념은 각 WTO 협정 및 개별 규정에 따라, 그리고 해당 사건의 맥락과 환경에 따라 그 구체적 개념의 외연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78) 이러한 관점을 노동조항의 맥락에 응용할 경우 (“동종 상품” 개념과 기능적으로 비견되는) 무역영향성 요건의 개념, 역할, 기준 역시 동 요건이 위치한 협정과 조문 및 개별 사건의 맥락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노동조항의 무역영향성 요건은 해석자의 선택, 즉 경제적 목적(국제통상법) 또는 사회적 목적(노동법)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두 가지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먼저 해석자, 즉 제소국(complainant)이 사회적 목적을 택해서 해당 노동조항을 해석할 경우 무역영향성 요건의 주된 기능은 “노동법” 요건과 함께 예비적·선결적 작업으로서 무역 또는 투자와 무관한 노동조항 의무 위반 행위를 솎아내는 것이 된다. 이때 무역영향성 요건은 GATT나 GATS의 “affecting”과 매우 유사한 역할을 한다. 앞서 검토했듯 자유무역·투자와 노동조건 간 관계는 양방향 관계라는 점이 법적으로 승인·의제되었으므로 이 둘 사이의 연계는 추상적으로 항상 존재하기에(추정) 제소국이 해당 상품/서비스를 생산/제공하는 사용자/기업이 당사국 간 무역 또는 투자에 참여 또는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만 하면 해당 무역영향성의 존재는 바로 확정된다. 이는 노동조항의 사회적 기능을 위해 설정된 무역영향성의 기준은 충분히 충족하는 것인데, 이는 해당 사용자가 무역/투자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으로부터 그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하방압력의 존재를 쉽게 추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해석자, 즉 제소자가 경제적 목적을 택해서 해당 노동조항을 해석할 경우 무역영향성 요건은 훨씬 더 실체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노동조항의 의무 위반(노동법 집행 실패 등)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당한 정도로 당사국 간 무역/투자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으로 인해 공정한 경쟁조건이 왜곡되었을 때 한해 비로소 노동조항이 시정하고자 하는 (국제통상법적) 위법상태가 초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목적에 따라 노동조항을 해석할 때 무역영향성 요건은 불법의 본질을 구성하며 GATT/GATS에서 “동종 상품”의 해석론처럼 위반 판단에 있어 핵심이 된다. 구체적 판단기준도 앞의 사회적 목적에 따른 경우에 비해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국-과테말라 패널이 제시한 3요소 심사기준: ‘첫째, 해당 사용자가 한 당사국 시장에 상품/서비스를 수출하거나, 국내 시장에서 다른 당사국으로부터 수입된 상품/서비스와 경쟁관계에 있을 것; 둘째, 노동법 집행 실패로 인한 효과(비용절감)가 존재할 것; 셋째, 그 효과가 상당하여, 해당 사용자에게 일정한 경쟁우위를 제공할 것’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요소를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세 번째 요소의 실현 여부는 (당사국 정부가 아닌) 해당 사용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아서, 피소국이 노동법의 보호수준을 완화해서, 제정해야 하는 노동법을 입법하지 않아서 절감한 비용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을 낮춰서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고, 가격을 유지하되(그래서 시장점유율의 확대를 포기하되) 이윤 폭을 늘려 재투자를 하거나 회사의 현금보유량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절감된 비용을 활용하는 방식은 수없이 많으며 그 중에는 사용자의 경쟁우위를 제공하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FTA 노동조항은 기본적으로 당사국의 행위를 규율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사국 내 사인에 불과한 사용자의 구체적 선택에 따른 행위를 평가하고 난 후에 노동조항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항 위반은 정부의 노동법 실효적 집행 실패, 입법의무 이행 실패, 역진방지의무 이행 실패라는 정부의 행위가 이루어진 시점에 성립하는 것이지 그것을 전제로 사용자의 행위까지 기다려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패널의 3요소 중 세 번째는 제외하는 것이 옳다. 또한 위반한 노동법이 비용 관련성이 있는 노동기준에 관한 것이라는 입증만 있으면 충분하며 절감된 비용의 구체적 액수까지 양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다.
아래 [그림 3]은 노동조항과 GATT 제3조의 규율구조와 사용되는 주요 개념의 역할을 비교한 것이다.
미국의 정착기 FTA는 노동조항을 둘러싼 분쟁의 최종해결절차는 중재이고 피소국/패소국이 중재패널의 최종보고서상 권고를 지속적으로 불이행할 경우 이에 대한 이행강제수단으로서 협정상 혜택 적용을 정지, 즉 특혜관세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한-미 FTA」 제22.13조와 CPTPP 제28.20조는 철회 가능한 특혜관세의 수준에 대해서는 ‘동등한 효과를 갖는 혜택의 적용을 정지’라는 일반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때 ‘혜택’이란 협정상 승소국에게 보장되나 패소국의 해당 위반에 위해 무효화되거나 침해된 혜택을 말하고, ‘동등한 효과(equivalent effect)’는 해당 혜택에 상응하며 금전적으로 산정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79) 그리고 WTO 분쟁해결기구의 선례를 참고하면 이 ‘동등한 효과를 갖는 혜택’을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무역량(trade flow)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80) 다시 말해 패소국이 노동조항상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승소국이 패소국과의 무역 또는 투자관계에 있어서 발생한 손실(losses), 예컨대 승소국의 패소국으로의 수출감소/투자증가 또는 패소국의 승소국으로의 수출증가/투자감소 액수가 철회할 수 있는 특혜관세 액수의 1차적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목적을 택해 해석한 노동조항 위반의 법률효과이고 사회적 목적에 따라 해석한 노동조항 위반의 경우는 다른 방식으로 ‘동등한 효과를 갖는 혜택’이 산정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제소국의 선택으로 노동중심적 해석 및 요건충족을 증명한 것이고 상대적으로 완화된 무역영향성 요건을 입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 목적을 감안했을 때 (무역량 변화가 아닌) 침해된 노동권의 피해를 정량적으로 파악하여 철회할 특혜관세를 산정하는 것이 해석론에 부응하는 법률효과/구제수단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산정한 노동조항 위반의 ‘동등한 효과를 갖는 혜택’ 수준이 사회적 관점에서 계산한 ‘동등한 효과를 갖는 혜택’ 수준을 훨씬 상회할 것이며 이것이 입증의 난도 차이를 정당화할 실제적 근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4]은 이상의 해석론을 [그림 1]에 추가해 이미지화 한 것이다.
Ⅴ. 나오며
지금까지 이 논문은 CAFTA-DR 노동조항 관련 미국과 과테말라 간 분쟁에 대한 패널의 결정과 법리를 비엔나 조약법 협약에 따른 조약해석 규칙에 입각해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의 노동조항 구성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했다. 이 논문은 무역-노동 연계의 정당성 기초가 되는 이론적 근거를 살펴본 후, 그중 일부를 법적으로 승인했다고 볼 수 있는 자유무역협정의 노동조항을 탐색하여 조약의 목적으로 규정·해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선결적 논증 위에서 본 논문은 적어도 일부의 현행 노동조항(예: CPTPP)은 이중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핵심 주장을 펼쳤다. 이 논문에서 논증하고자 한 노동조항의 이중구조란 의무를 부과하는 노동조항의 각 규정이 두 가지 다른 목표를 추구하며 각 목표에 따라 요구되는 의무위반의 요건 및 효과가 구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목적은 노동권을 인권으로 보호하는 것이고(사회적 목표), 두 번째 목적은 무역/투자에서 공정한 경쟁 조건을 확보하고 노동조건의 바닥으로의 경쟁을 방지하는 것이다(경제적 목표). 이러한 관점은 무역에서 공정경쟁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동조항의 경제적 목표를 존중하고 추구하면서도, 노동조항이 추구하는 또 다른 규범적 가치인 사회적 목표를 동등하게, 또 실질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법해석론적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점점 국제통상을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인식하고 보호무역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는 현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