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상업용 음반, 영화 DVD, 캐릭터 상품 등 저작물이 내재된 상품의 국제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외국에서 적법하게 유통된 진정상품이 국내 독점수입권자에 의하여 수입되는 경우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하여 국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진정상품을 국내에 수입하여 파는 이른바 ‘진정상품 병행수입’1)의 시장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상품 병행수입과 관련하여 저작권자의 배포권이 문제가 되는데, 저작권자는 자신의 저작물을 어디에서, 어떻게 유통할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진정상품 병행수입은 저작권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외국에서 구매한 상품을 국내에 유통시키므로 저작권자의 배포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우리 저작권법은 제20조에서 배포권을 규정하면서도, 그 단서에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배포권이 미치지 않도록 권리소진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진정상품 병행수입의 경우 저작권의 국제소진 허용 문제로, 만약 진정상품 병행수입에 대하여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효과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진정상품을 병행수입한 판매자는 배포권 침해로 인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 저작권법은 배포권이 소진되는 지역적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해석상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배포권의 국제소진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바, 이하에서는 대상판결의 내용을 검토하고 그 의의를 논의하고자 한다.
Ⅱ. 대상판결의 개요
도라에몽 캐릭터 저작권자 A는 2015. 10. 2. B에게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중국 내 상품화권’을 2015. 1. 1.부터 2017. 12. 31.까지 부여하였다. B는 다시 2015. 6. 30. C에게 중국 대륙 지역 내(대만, 홍콩, 마카오 제외) 도라에몽 캐릭터를 이용한 ‘다이아몬드블록’ 제품 판매권을 2015. 7. 1.부터 2016. 6. 30.까지 위임하였다.
피고인은 2015년경 C로부터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 약 960개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다시 판매하였다. 피고인의 위 제품 수입과 양수는 모두 국내에서 이루어졌고, 피고인이 당시 C로부터 중국 내에서 위 제품을 제공받거나 양도받지는 않았다.
한편 D는 2014년경 저작권자 A로부터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국내 상품화사업권 등을 취득하여 국내에서 도라에몽 캐릭터 제품을 판매하여 오고 있었다.
본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이 중국 내 적법한 판매권을 가진 C로부터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국내에 수입하여 판매한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즉, C로부터 수입하여 판매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에 대한 배포권 소진 여부이다.
이 사건 도라에몽 캐릭터는 미술저작물로 창작성을 구비하였고, 이 사건 도라에몽 블록은 이 사건 도라에몽 캐릭터의 단순한 입체적 형상으로서 그 복제물이라 할 것인데, 병행수입하여 이 사건 도라에몽 캐릭터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정이 요건을 달리하는 저작권 침해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고인이 도라에몽의 미니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되거나 병행수입이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이 판매·배포한 미니블록 제품이 진정상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나,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로부터 당연히 ‘독점수입권자에 의해 당해 외국상품이 수입되는 경우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하여 진정상품을 국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수입하는 행위’인 병행수입의 경우까지 저작재산권자의 권리가 소진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볼 수는 없고, 저작권법에서는 달리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
설령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자는 피고인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하여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허락하지 않았고, 저작권자의 의사는 B나 C에게 중국 내 상품화권 내지 중국 대륙 지역 내(대만, 홍콩, 마카오 제외) 제품 판매권만을 허락하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에 저작권자는 D에게 국내 상품화권을 부여하였는바, 저작권자의 의사는 D에게 국내 상품화권 내지 제품 판매권을 허락하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바, B나 C가 D와 법적 또는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거나 그 밖의 사정에 의하여 동일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는 이상 저작권자가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를 허락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하여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한 행위는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구성한다.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었다면 저작재산권자는 그와 관련된 보상의 기회를 가졌던 것이고, 이미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은 그 이후에는 자유롭게 유통될 필요가 있으므로 해당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배포권은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된다. 저작권법은 제20조에서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저작재산권자의 배포권에 관한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으로 정하고 있다.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외국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되어 그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이전된 경우에는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해당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배포권 소진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외국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었던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효과가 인정될 수 있다.
피고인이 C로부터 직접 수입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은 중국 내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되어 피고인에게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이전되었으므로, 위 제품은 외국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가 아니라 국내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저작권자의 배포권 소진 여부에 관하여는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를 적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C는 B로부터 중국 내에서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이용허락을 받았다.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는 저작물 이용허락계약에 따라 정해지므로, C가 이용허락계약에서 정한 판매지역을 넘어서 피고인에게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판매한 행위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C의 행위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C가 피고인에게 판매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에 대한 저작권자의 대한민국에서의 배포권은 소진되지 아니하였다.
Ⅲ. 권리소진의 원칙
저작물이 내재된 유체물이 적법하게 거래에 제공된 경우 최초 거래 제공 당시에 배포권이 행사되어 소진된 것으로 보고, 이후에 일어나는 해당 유체물의 유통에 대하여는 다시 배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권리소진의 원칙(최초판매의 원칙)’이라고 한다.6) 저작권을 비롯한 특허권, 상표권 등 대부분의 지식재산권에 대하여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7) 특허법이나 상표법의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학설과 판례에 의하여 권리소진의 인정 여부를 결정하고 있으나, 저작권법은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어 그 해석에 의한다.8)
저작권법 제20조 본문은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저작자에게 배포권을 부여하면서도, 그 단서에서는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배포권을 제한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규정하는 것이 저작권에 있어서 권리소진의 원칙에 해당한다.
배포권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의 양도 또는 대여가 있을 때마다 행사되는 것으로 거래에 제공될 때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저작물의 배포권자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의 소유권자 간에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나아가 배포권이 본래 저작권법에 따른 목적을 넘어서 남용되는 경우 공정한 경쟁과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의 자유로운 유통을 방해할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저작권자와 저작물이 내재된 유체물의 소유자 간의 이익 균형을 도모하고 저작권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보장하는 한편,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운 저작물 거래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처음 판매되거나 양도 그 밖에 소유권이 이전된 후에는 소진된다고 하여 배포권을 제한하는 권리소진의 원칙이 확립되었다.9)
권리소진의 원칙에 관한 이론적 근거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10) 대표적으로 독일에서 주장된 소유권이론, 보상설, 거래보장설이 있다. 소유권이론은 민법상 소유권 이전에서 권리소진 원칙의 근거를 찾는다. 만약 저작물에 대한 모든 배포행위에 대하여 저작자의 배포권이 소진되지 않고 미치게 된다면,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의 구매자 소유권과 저작자 배포권의 효력 간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배포권이 소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1)
보상설은 권리소진 원칙의 근거를 배포권의 본질로부터 찾고 있다. 배포권의 목적은 저작자가 그의 저작물의 경제적 이용에 대하여 적절히 참여하여 저작자에게 그 창작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데 있다고 본다. 만약 저작자가 그 기회를 한 번 이용하였다면 배포권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며, 따라서 배포권은 소진된다는 것이다.12)
거래보장설은 저작권과의 관련성을 별개로 하고, 저작물의 자유로운 거래에 따른 필요성을 권리소진 원칙의 근거로 제시한다. 저작권자가 동의하여 거래에 제공된 물건은 자유로운 상품의 유통 또는 소비자의 이익이라는 공공의 이익이 방해받지 않도록 계속하여 배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계속하여 배포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권리소진의 원칙이고, 저작물에 내재되어 있는 저작권의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라고 한다.13)
미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정당보상(Just Rewards)이라는 경제이론과 동산의 양도제한 금지라는 보통법상 논거에 권리소진 원칙의 기초를 두고 있다. 전자는 저작권자가 저작물을 포함하고 있는 복제물의 최초 처분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처분에 대해서도 상당한 대가를 미래에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저작권자는 저작물을 포함하고 있는 유체물의 최초 처분에서만 정당한 대가를 획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자로부터 저작물이 내재된 복제물을 매수한 사람은 이러한 최초 처분에서 저작권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한 것으로 의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 처분에서 저작권료를 모두 회수한 저작권자는 그 이후의 저작물이 내재된 복제물의 배포에 대하여 규제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매수인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이 내재된 복제물을 처분할 권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14)
후자는 저작권법은 저작권이 내재된 복제물과 저작물을 구분함으로써 유체물의 양도금지에 대하여 반감을 갖는 보통법상의 전통을 따른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이 저작권자의 배타적인 배포권을 인정하더라도, 유체물인 복제물은 동산의 특성이 있으므로 복제물이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은 후 일단 유통경로를 통해서 유출되었다면 동산의 양도가능성을 가지는 유통된 복제물에 대한 계속적인 통제는 지식재산권의 문제가 아니라 저작물이 내재된 복제물의 처분에 대한 통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일단 저작물이 내재된 복제물이 거래되면 저작권자가 보유하는 독점권은 동산의 유통에 대한 제한이기 때문에 그러한 통제권을 저작권자에게 종합적으로 줄 수 없다는 것이다.15)
권리소진의 원칙에 관한 이론적 근거들을 살펴본바, 단일적인 이론이 타당하기보다 각각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종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일과 미국에서 대표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권리소진의 원칙에 관한 이론들 또한 유사한 관점에서 권리소진의 원칙을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권리소진의 원칙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최초 거래에 제공되었다면 저작권자는 그와 관련된 보상의 기회를 가졌던 것이고, 이미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은 그 이후에는 유체물 소유자의 거래보장과 소비자의 이익 보호를 위하여 자유롭게 유통될 필요가 있으므로 해당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배포권은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저작권법상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첫째,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어야 하고, 둘째,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셋째,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어야 한다.
‘원본’은 저작자가 최초로 작성한 저작물을 말하며, ‘복제’는 인쇄·사진촬영·복사·녹음·녹화 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16)을 의미한다.
‘배포’란 저작물 등의 원본 또는 그 복제물을 공중에게 대가를 받거나 받지 아니하고 양도 또는 대여하는 것을 말한다.17) 배포의 개념은 유형물을 전제로 한 공중에 대한 제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배포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내재된 유체물의 공중에 대한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권리소진의 원칙은 유형물에 대하여만 적용된다. 권리소진의 원칙은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과 해당 저작물이 내재된 유형물에 대한 소유권 간의 충돌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18) 따라서 공연, 방송, 전송 등 무형적인 형태로 거래에 제공되는 경우는 배포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고, 권리소진의 원칙 또한 적용되지 않는다.
저작재산권자 스스로 저작물을 거래에 제공하거나 저작재산권자로부터 거래의 제공에 대하여 허락을 받은 적법한 거래이어야 한다.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이루어진 거래의 제공은 배포권이 소진되지 않는다. 저작재산권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할 수 있고, 그 이용을 허락받은 자는 허락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19) 따라서 저작재산권자로부터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저작물을 복제 또는 사용할 수 없고,20)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받은 사람도 허락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을 이용·양도할 수 있을 뿐이다.21)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거래에 제공되는 형태를 ‘판매 등’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판매 이외의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특히, 저작권법상 ‘배포’는 양도뿐만 아니라 대여까지 포함하고 있어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대여와 같은 형태로 거래에 제공되는 경우 권리소진의 원칙 적용 여부가 문제 된다. 그러나 대여의 경우에도 권리소진의 원칙을 적용하게 된다면 대여권을 규정한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22) 따라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규정한 ‘판매 등’이라는 개념은 판매, 교환, 증여, 상속 등의 방법으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처분행위만을 의미하며, 처분권이 최종적으로 이전되지 않는 대여는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23)
권리소진의 원칙이 적용되면 배포권이 소진되고 이후 계속하여 발생하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의 배포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도 적법하게 된다. 다만, 여기서 문제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저작권법상 배포권이 소진되는 지역적 적용 범위에 대하여 명문의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어 배포권이 소진되는 경우 그 효력이 미치는 지역적 적용 범위를 두고 해석상 견해의 대립이 있다.
먼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특정 국가의 영토 내에서만 권리소진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국내소진’의 입장이 있다. 이에 의하면,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외에서 적법하게 판매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병행수입 등을 통하여 국내에 수입하여 공중에게 다시 판매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하고자 하는 경우 배포권이 소진되지 않으므로, 새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판매에 제공된 경우에만 배포권이 소진되며, 이는 속지주의 원칙에 근거한 것으로 저작재산권자에게 이른바 ‘수입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된다.24)
이에 반하여,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어느 나라에서든지 한 번 거래에 제공되면 전 세계적으로 권리소진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국제소진’의 입장이 있다. 즉,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어느 나라에서든지 적법하게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는 경우 배포권은 소진되고, 이후 그것을 국내에 수입하여 다시 거래에 제공하는 경우 또한 배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리소진의 원칙의 지역적 적용 범위를 국내로 제한할 것인지 또는 국제적으로 소진되는 것으로 할 것인지는 저작권 시장의 국제화 현상에 발맞춰 저작권자에게 국가별로 시장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여 창작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저작물이 내재된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여 저작물의 원활한 이용을 도모할 것인지 문제이다. 저작권 시장의 국제화에 따라 저작물이 내재된 상품들이 국경을 넘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국제 거래의 안전과 상품의 원활한 유통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점과 저작권법 제124조에 규정된 침해로 보는 행위에 진정상품의 병행수입이 없다는 점, 저작권법상 저작자에게 수입권을 인정한다는 명문의 규정도 없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국제소진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25) 아울러 특허법과 상표법에도 권리소진 원칙의 지역적 적용 범위에 관한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판례상 일정한 요건 하에 국제소진을 인정하고 있는바, 지식재산권 간 통일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도 국제소진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제소진 판단 시 판단기준에 의하여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안의 구체적인 사실관계 등을 고려하여 권리소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Bern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Literary and Artistic Works)”은 영상저작물에 대하여만 배포권을 규정하고 있으며,26) 권리소진에 관하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저작권 조약(WIPO Copyright Treaty)”은 제6조 제1항에서 모든 저작물에 대하여 배포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6조 제2항에서 배포권의 소진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권리소진의 적용 요건에 대하여는 회원국의 국내법에 위임하고 있다.27)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TRIPs 협정)”은 내국민대우(제3조)와 최혜국대우(제4조)를 기본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6조에서 “이 협정에 따른 분쟁해결의 목적을 위하여 제3조와 제4조의 규정을 조건으로,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지적재산권의 소진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사용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권리소진의 원칙을 회원국의 국내법에 맡기고 있다.28)
유럽연합은 유럽경제지역(European Economic Area, 이하 ‘EEA’라 한다) 내에서의 권리소진은 인정하고 있으나, EEA 이외의 지역에서는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분야를 가리지 않고 권리소진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즉, 유럽연합은 ‘EEA 지역소진(EEA Regional Exhaustion)’을 적용하고 있다.29)
“정보사회에서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의 특정 측면의 조정에 관한 2001년 5월 22일의 유럽의회 및 이사회 지침 2001/29/EC”30) 제4조 제1항은 “회원국들은 저작물의 원본이나 사본과 관련하여, 판매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공중에 대한 모든 유형의 배포를 허락하거나 금지할 배타적 권리를 저작자에게 부여한다.”라고 규정하여 배포권을 규정하고 있다. 제4조 제2항은 “저작물의 원본 또는 사본이 권리자 또는 그의 동의하에 공동체 내에서 최초 판매되거나 그 밖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대상물과 관련하여 배포권은 공동체 내에서 소진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권리소진을 규정하고 있다.31)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권리소진의 원칙을 저작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해석에 의하고 있다. 일본 저작권법 제26조의2 제1항은 “저작자는 그 저작물(영화저작물을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그 원본 또는 복제물(영화저작물에 복제된 저작물의 경우에는 해당 영화저작물의 복제물을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양도에 의하여 공중에게 제공할 권리를 독점한다.”라고 규정하여 우리나라 배포권에 대응하는 양도권을 규정하고 있는 한편,32)33) 제26조의2 제2항은 양도권을 제한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중 제26조의2 제2항 제1호는 “제1항에 따른 권리가 있는 자 또는 그 허락을 받은 자가 공중에게 양도한 저작물의 원본 또는 복제물”이라고 규정하여 국내소진을, 제26조의2 제2항 제5호는 “국외에서 제1항에 따른 권리에 상당하는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고 양도된 저작물의 원본 또는 복제물 또는 같은 항에 따른 권리에 상당하는 권리가 있는 자나 그 승낙을 받은 자가 양도한 저작물의 원본 또는 복제물”이라고 규정하여 국제소진을 명시하고 있다.34)
미국 저작권법 제106조 (3)호는 “저작권자는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의 복제물이나 음반을 판매하거나 그 밖의 소유권 양도, 대여, 리스, 또는 대출에 의하여 공중에게 배포하는 행위를 하거나 이를 허락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여 배포권을 규정하고 있다.35) 이에 대하여 제109조 (a)항은 “제106조 (3)호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법상 합법적으로 제작된 특정 복제물이나 음반의 소유자 또는 그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자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그 복제물이나 음반을 판매하거나 기타 처분할 수 있다.”라고 하여 배포권의 제한으로서 권리소진을 규정하고 있다.36)
다만, 미국 저작권법 제109조 (a)항은 권리소진을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국제소진에 대해서는 별도의 내용이 없어 이를 해석하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었으나, 2013년 연방대법원은 제109조 (a)항에 국제소진도 포함된다고 판결하였다.37) 즉, 연방대법원은 미국 저작권법 제109조 (a)항에서 ‘이 법상 합법적으로 제작된’이란 문구는 문제 되는 복제물 등의 제작 장소가 미국일 것을 요구하는 지리적 제한 요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제작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미국 저작권법에 비추어 합법적인 제작이었는지를 따지는 취지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에 따라 종전 연방대법원이 소극적으로 지지하였던 입장,38) 즉,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제작된 복제물에 국한하여 권리소진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폐기하였다.39) 따라서 외국에서 제작되어 판매된 후 미국으로 수입된 경우에도 배포권이 소진된다고 하여 국제소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였다.
국제조약은 배포권, 권리소진의 원칙 및 그 지역적 적용 범위에 대하여 통일되게 규정되어 있지 않고, 회원국의 국내법에 위임하도록 규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에 각 국가는 자국의 상황에 맞게 규율하고 있는데, 국내소진은 국제적으로 확립되어 있으나, 국제소진은 각 국가의 입법 또는 정책에 따라 인정 여부가 다르다. 유럽연합은 지역소진만을 인정하고 있고, 일본은 저작권법에 국내소진과 국제소진을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국제소진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도 제20조 단서에서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권리소진 원칙의 지역적 적용 범위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대상판결은 진정상품의 병행수입에 대하여 저작권의 국제소진 인정 가능성을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입법으로써 권리소진 원칙의 지역적 적용 범위를 규정하지 않는 한 대상판결은 향후 국제소진 판단기준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하에서는 그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고자 한다.
Ⅳ. 대상판결의 검토
대상판결 피고인은 도라에몽 블록 제품은 진정상품을 병행수입하여 판매한 것으로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외국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었던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효과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하여 진정상품 병행수입의 경우에도 권리소진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진정상품 병행수입의 경우 권리소진 여부는, ①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어야 하고, ② 외국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었다가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이어야 하며, ③ 외국에서의 최초 거래가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져야 한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 대하여 살펴본다. 먼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진정상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상판결은 피고인이 중국 내 적법한 판매권을 가진 C로부터 국내에 수입하여 판매한 경우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에서 국제소진이 되기 위한 기준을 ‘외국에서 거래에 제공되었던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로만 제한하고 있으므로, 국제소진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외국에서 거래된 저작물을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이어야 한다. 대상판결 피고인은 C로부터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 약 960개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이를 다시 판매하였는데, 피고인의 위 제품 수입과 양수는 국내에서 이루어졌고, 피고인이 당시 C로부터 중국 내에서 위 제품을 제공받거나 양도받지는 않았다. 이에 대법원은 피고인이 C로부터 직접 수입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이 중국 내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에 수입되어 피고인에게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이전되었으므로, 위 제품은 외국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가 아니라 국내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를 적용하여 권리소진 여부를 판단하였다. 즉, 대법원은 중국 내에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되어 국내에서 최초 판매가 이루어진 도라에몽 블록 제품이 진정상품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최초 판매 지역을 국내로 보고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따라 판단하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따라 권리소진이 되기 위해서는, ①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어야 하고, ②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③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 권리소진의 판단대상이 된 도라에몽 블록 제품은 ①과 ③의 요건은 충족하였으나, C가 저작재산권자의 허락범위를 넘어서 피고인에게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판매한 행위라는 점에서 ②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다.
대상판결은 외국에서 거래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되어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저작물이 내재된 상품을 수출한 외국의 권리자가 국내에서 판매 등 거래에 제공할 권한이 있는지가 권리소진 여부를 판단하는 쟁점이 된다. 즉, 도라에몽 블록 제품의 수입과 양수가 모두 국내에서 이루어진 후 판매가 되었기 때문에 최초 판매가 이루어진 곳을 국내로 보고, 국내에서의 거래가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진 것인지가 문제가 된 사안이다. C는 B로부터 중국 내에서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이용허락을 받았다. 이에 대법원은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는 저작물 이용허락계약에 따라 정해지므로, C가 이용허락계약에서 정한 판매지역을 넘어서 피고인에게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판매한 행위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C가 피고인에게 판매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에 대한 저작권자의 대한민국에서의 배포권은 소진되지 않았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타당하다.
본 사안 1심은 이 사건 도라에몽 캐릭터의 복제물로서 병행수입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이 도라에몽 캐릭터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정이 요건을 달리하는 저작권 침해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할 뿐 진정상품의 병행수입과 저작권의 권리소진 판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2심은 이 사건 피고인이 판매·배포한 도라에몽 미니블록 제품이 진정상품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보이나,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로부터 병행수입의 경우까지 저작재산권자의 권리가 소진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볼 수는 없고, 저작권법에서는 달리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고 하여 저작권의 국제소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진정상품 병행수입의 경우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하여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한 행위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대법원이 이 사건 피고인의 진정상품 병행수입이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권리소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점에서 결론이 같다. 다만, 2심은 저작권의 국제소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를 적용한다는 가정에 따른 결론이었고, 대상판결은 저작권의 국제소진은 인정할 수 있으나, 외국에서 최초 판매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최초 판매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대법원이 제시한 국제소진의 판단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점, 그래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따라 판단한 데 따른 결론이었다.
저작물 또는 그 복제물의 국제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법은 제20조 단서가 적용되는 지역적 범위를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특허권, 상표권과 달리 진정상품 병행수입의 경우 저작권의 권리소진에 대한 판례도 없었던바, 대상판결은 저작권의 국제소진이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명시하고, 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대상판결은 최초로 저작권의 국제소진 인정 가능성과 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고 하여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입법이 아닌 해석에 의한 판결을 통하여 저작권의 국제소진 인정 여부를 다루고 있는 만큼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로서 특별한 사정이 무엇인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저작권의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로 고려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들을 검토한다.
먼저,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로서, ‘제한적 허락’을 고려할 수 있다. 외국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최초 거래가 이루어졌다가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저작재산권자와 외국 이용권자 간 이용허락계약 체결 시 배포 지역에서 국내를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특약이 존재하는 경우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저작재산권자는 외국 이용권자에게 해당 제품에 국내로의 진정상품 병행수입을 금지하는 문구를 표시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배포 지역의 한정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용허락계약상 지역적 제한이 명시된 경우 제3자의 진정상품 병행수입에 대해서 국제소진의 적용이 제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40)
또한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로서, 외국에서의 최초 판매만으로 저작재산권자가 실질적인 보상을 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예외적인 상황도 고려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 저작재산권자는 그와 관련된 보상의 기회를 이미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미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은 자유로운 유통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과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며, 이후의 유통을 제한하는 것은 저작권 보호의 본질적 목적과도 괴리된다.
그러나 국제소진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저작재산권자의 정당한 이익이 과도하게 침해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작물이 내재된 상품이 외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된 후 해당 상품이 국내로 역수입되어 고가로 재판매될 경우, 저작재산권자는 국내에서의 정당한 수익을 상실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국제소진의 적용이 저작재산권자의 이익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예외적으로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은 1999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국제소진을 명문화하여 원칙적으로 인정한 후 중국 등지에서 저가의 음반 CD 등이 일본 국내로 환류되어 들어오는 일이 많아지면서 권리자의 이익이 현저히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04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환류방지규정’(일본 저작권법 제113조 제10항)41)을 도입하여 ‘국외배포목적 상업용 음반’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간주하고 있다.42) 이는 저작권의 국제소진을 인정하되, 저작권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특수한 상황에 대응한 입법적 조치라 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저작권의 국제소진이 인정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향후 저작권의 국제소진과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대상판결이 제시한 판단기준을 바탕으로 국제소진의 인정 여부를 판단한다면, 저작재산권자의 정당한 이익과 자유로운 유통을 통한 공공의 이익 간의 균형을 보다 효과적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작권의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로서 ‘특별한 사정’의 범위와 요건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의 정립이 향후 과제로 남아 있으며, 이에 대한 법리적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국제소진의 법리가 보다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개별 사안마다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여 저작권의 국제소진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일본과 같이 입법을 통해 저작권의 국제소진을 명확히 인정하는 방식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아울러 국제소진의 적용으로 인해 저작재산권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일본 저작권법의 환류방지규정과 유사한 예외 규정을 입법적으로 함께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Ⅴ. 결론
저작물이 내재된 상품의 국제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진정상품 병행수입 시장도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한편, 저작권 침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대상판결도 중국에서 수입·판매한 도라에몽 미니블록 제품에 대한 배포권 침해 여부가 문제 된 사안으로, 저작권의 국제소진 인정 여부를 다룬 판결이다.
우리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는 권리소진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그 지역적 적용 범위에 대하여 명시하고 있지 않아 해석상 견해를 다르게 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국내소진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경우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외국에서 적법하게 거래된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소진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국내로 수입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의 동의가 새롭게 필요하고, 이는 저작권자에게 수입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된다. 반면,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국제소진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외국에서 적법하게 거래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소진된다. 따라서 이를 국내로 수입하여 판매하는 경우 저작권자는 이를 금지할 수 없으므로 저작권자의 동의를 새롭게 받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상판결은 저작권의 국제소진의 인정 가능성을 최초로 명시하고, 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향후 저작권의 국제소진 관련 분쟁 해결 시 대상판결의 판단기준을 바탕으로 저작권자의 정당한 이익과 자유로운 유통을 통한 공공의 이익 간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상판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전제를 두면서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향후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제한적 허락이나 저작권자가 실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 등이 국제소진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사유로 고려될 수 있다.
나아가 개별 사안마다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여 저작권의 국제소진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일본과 같이 입법을 통해 저작권의 국제소진을 명확히 인정하고, 저작권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일본 저작권법의 환류방지규정과 유사한 예외 규정을 마련하는 방식이 법적 안정성 및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