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있고, 이로 인하여 생명·신체의 침해가 발생한 경우 환자는 의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만약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환자에게 발생한 생명·신체침해와 의사의 진료행위 사이에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면, 환자는 의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 치유가능성이 불분명한 사안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없다고 하더라도 즉, 적절한 진료행위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치유가능성이 매우 낮아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정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있고 환자에게 생명·신체침해라는 결과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치유가능성이 매우 낮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에게 어떠한 책임도 추궁할 수 없다는 것은 일반국민의 법감정에도 맞지 않고 환자의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타당하지 않다.1)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 생명·신체침해가 아닌 다른 보호법익의 침해(예를 들어, 치료기회의 상실 등)를 근거로 환자에게 손해배상을 인정해 줄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이것이 치료기회상실의 문제이다.
일본에서는 과거부터 치료기회상실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어져왔으며, 현재는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어느 정도 이론이 정립된 상태이다. 우리 대법원도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후술하듯이 일본과 비교하여 볼 때, 아직 논리전개가 미흡한 측면이 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근거가 혼재하고 있기도 한다. 이하에서는 치료기회상실과 관련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정리하고(Ⅱ), 이를 통해 우리 민법에의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Ⅲ).
Ⅱ. 치료기회상실과 관련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정리
의료사고에 있어서 인과관계 판단에 관한 종래의 판례와 통설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일본에서도 이른바 치료기회상실에 대한 손해배상 인정은 현저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의사가 말기암을 오진하여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안에서, 말기암의 경우 기대되는 의료행위의 치료효과가 본질적으로 높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례에서 의사의 오진과 환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부정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과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치유가능성이 낮았다는 사정만으로 어떠한 손해배상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은, 일반적 정의감에 비추어 용인되기 어렵다. 이에 일본에서는 이러한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하여 판례와 학설을 통하여 다양한 이론적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일본은 주로 입증책임의 완화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치료기회상실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위법한 의료행위와 환자의 생명·신체 침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여전히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경우 일본의 법리는 생명·신체 자체와는 구별되는 독자적 보호법익을 인정함으로써, 환자의 이익을 일정 범위에서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로 하급심 판례들을 통하여 기대권침해론, 연명이익침해론, 치료기회상실론, 현저히 불성실한 의료행위론 등이 전개되었고, 2000년대2)에 이르러서는 최고재판소에 의해 의사의 진료과실과 생명·신체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정된다고 하더라도 의사의 진료과실로 인해 환자의 연명할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침해되었다면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이후 일본 최고재판소는 연명할 상당한 가능성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만 인정하였으나 2011년 판결에서 연명가능성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현저히 불성실한 의료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가능성을 제시하는 판결3)을 선고하였다. 즉, 일본에서는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된 사안에서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로 인해 환자의 연명할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침해되었다면 또는 연명가능성조차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가 이루어졌다면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치료기회상실이 문제가 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들에 대해 살펴본다.
위 판결(이하 ‘2000년 최고재판소 판결’이라 한다)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보호법익으로 생명·신체침해가 아닌 연명할 상당한 가능성의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결이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A는 새벽에 자택에서 갑자기 협심증이 발작하여 Y병원의 야간 응급실에서 의사 B의 진찰을 받았다. B는 1차적으로 급성수염, 2차적으로 협심증을 의심하고,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주사시키고, 급성수염에 대응하는 약을 더하여 링겔을 처방하였다. 그러나 A는 잠시 뒤 심각한 부정맥이 나타나고 병세가 급변하였으며, 불안정형 협심증부터 절박성 급성심근경색을 보이며 심부전에 의해 사망하였다. A의 유족들은 Y병원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초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1심4)은 (1) A의 사인을 확정할 수 없다, 또한 (2) 유족이 주장하는 사인의 가능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① 병세 급변 후의 구명가능성이 인정되지 않고 ② 적절한 초기 치료가 있더라도 A의 급사를 방지했을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며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1심은 연명에 대한 기대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5)은 흉부질환의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초기 치료로서 행해야 하는 기본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의사 B의 과실이 인정된다면, 환자에 대한 구명 가능성이 없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된다고 하였다. 의사의 진료행위에 과실이 있다면 환자는 적절한 의료를 받을 기회를 부당하게 빼앗겼던 것이므로, 이로부터 환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을 위자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배상은 위자료 200만 엔이라고 판시하였다. 항소심도 1심처럼 연명가능성조차 없다는 것은 인정하였다. 하지만 연명가능성조차 없더라도 의사의 과실로 인해 적절하게 치료받을 기회가 상실되었으므로 치료기회상실론에 입각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본 사안에서 질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진료를 담당한 의사의 의료행위에 과실이 있었으나, 의사의 과실 있는 의료행위와 환자의 사망 간에 인과관계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건처럼 의료수준에 적합한 의료가 행해졌다면 환자가 그 사망 시점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었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의사는 환자에 대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하였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이익이고, 그 가능성은 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이익이며, 의사의 과실로 의료수준에 적합한 의료를 받지 못함에 따라 환자의 법익이 침해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판결은 치료기회상실 사안과 관련하여 최고재판소가 처음으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판결 이전까지 손해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연명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생명·신체만을 보호법익으로 하였다. 즉, 이 판결 이전까지는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만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번 2000년 판결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연명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 즉 기대만으로도 손해배상을 인정한 최초의 최고재판소 판결이었다.
본 판결은 의사가 과실 있는 의료행위를 한 경우, 그 의료행위와 환자의 사망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만약 제대로 된 의료행위가 있었다면 환자가 그 사망 시점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입증된다면, 의사는 환자에 대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하였다. 즉 환자가 그 사망 시점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을 보호법익으로 구성하는 것이며, 그 법익침해가 손해배상대상이 된다고 한 것이다.6) 의료과오 소송에서 생명 외에 새로운 법익을 인정한 판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본 판결에 의해 보호법익을 연명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라고 보더라도 의사의 적합한 진료와 환자가 사망 시점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 사이에 사실적 인과관계의 존재는 필요하다. 이 경우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된다. 이전 판결들과 달리 고도의 개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라고 한 점에서, 사망시점에서 연명하고 있을 가능성이 50%가 되지 않아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 사안에 있어서 채택된 감정결과에 따르면 적절한 치료가 행해졌으면 구명되었을 확률은 20% 이하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명이익에 대한 기대를 침해하였다고 하여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으로 보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가능성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7)8)
위 판결에 대해 정리하면 1) 보호법익을 연명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아닌 연명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라고 파악하여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연명에 대한 기대를 보호법익으로 보고 있다는 점, 2) 연명에 대한 기대를 보호법익으로 삼았기에 이전 판결들과 달리 위자료만 손해배상의 범위로 보고 있다는 점9) 등에서 의의가 있다. 이 판결이 선고된 이후 많은 하급심 판례들이 본 판결의 취지대로 연명에 대한 기대가 입증된다면 위자료 배상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판결 이후 最高裁第三小法廷 平成15(2003)年 11月 11日 平14(受)1257号 판결(이하 ‘2003년 최고재판소 판결’이라 한다)을 통해서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을 침해한 사안(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지만 중대한 후유증을 갖게 된 경우)에도 위 논리를 확대하여 적용하였다. 즉,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 행위와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후유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만약 의사의 적절한 진료행위가 있었다면 환자에게 중대한 후유증이 발생하지 않았을 상당한 가능성이 입증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판례법리에 따라 위자료 배상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중대한 후유증으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판례이론을 후유증 일반에는 적용할 수 없고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중대한 후유증인지는 명백하지 않다.10) 뿐만 아니라 중대한 후유증이 남는 경우에는 사망과 달리 추가적인 진료비도 많이 들어가게 되므로 위자료 외에 재산적 손해가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지만,11) 생명이나 신체 그 자체가 아닌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만을 보호법익으로 삼는 것이라면 위자료 배상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0년 및 2003년 최고재판소 판결을 통해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정되더라도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에 대한 침해를 이유로 위자료 배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 판결에 의하더라도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의 침해마저도 부정되는 경우에는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있더라도 환자는 어떠한 배상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환자의 보호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
위 판결(이하 ‘2005년 최고재판소 판결’이라 한다)은 앞에서 살펴본 2000년 및 2003년 최고재판소 판결의 내용과 동일하며, 해당 판결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판결이다. 그러나 본 판결에서는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조차 없어도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가 보충의견 및 반대의견으로 개진되었다는 점에서 검토할 의의가 있다. 이하에서 상세히 살펴본다.
도쿄 구치소에 구류 중 발생한 뇌경색으로 인해 중대한 후유증이 남게 된 X가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법에 의해 위자료 및 변호사 비용을 청구한 사안이다. X는, 도쿄 구치소의 직원인 의사 Y가 X에게 뇌경색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조속히 외부의 의료 기관에 환자를 전송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게을리하여 X에게 위와 같은 후유증을 남게 하였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1심 판결12)은 뇌경색 발병 당시 X가 적시에 전원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더라면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뇌경색에 대하여 적절한 치료가 불가능한 도쿄 구치소는 X를 조속히 전문병원에 전원시켜 진료를 받게 하였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도쿄 구치소 의사인 Y는 그와 같은 의무를 위반하여 X로부터 뇌경색의 치료를 위해 필요한 혈전용해치료법을 받을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였기 때문에 국가는 X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하였고, 손해배상액은 120만 엔(위자료 100만 엔, 변호사 비용 20만 엔)을 한도로 인용하였다.
반면에 항소심 판결13)은 뇌경색 발병 당시 구치소에 있던 X가 외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구급차로 이송되어야 하는데 이송에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뇌내출혈인지 뇌경색인지 진단을 하기 위해서는 CT촬영이 필요한데 CT촬영을 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X가 뇌경색 증상 발병 후에 적시에 외부 의료기관에 전원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체된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적시에 전원되어 뇌경색 치료에 필요한 혈전용해치료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X에게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X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다.
최고재판소의 다수의견(甲斐中辰夫 재판관, 島田仁郎 재판관, 才口千晴 재판관)은 구류되고 있는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구치소 직원인 의사의 과실로 인하여 환자가 적시에 외부 의료기관으로 전원 받지 못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에 있어서, 적시에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전원을 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환자에게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입증된다면, 국가는 위와 같은 가능성을 침해받은 환자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설시하였다.
본 사안에 있어서는 X에 대해 조속히 외부 의료기관에 전원이 이루어져서 X가 외부 의료기관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X에게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그와 같은 가능성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구치소 직원인 의사 Y가 X를 외부 의료기관에 전원해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를 근거로 한 X의 국가배상청구는 인용될 수 없다고 하며, X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泉德治 재판관과 横尾和子 재판관)은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환자에게 존재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는 의료 수준에 적절한 검사 및 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받을 이익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익의 침해를 이유로 하는 국가배상청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1(島田仁郎 재판관)은 치료기회상실의 사안을 두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서 파악하였다. 먼저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의 침해가 입증된 경우에는 의사에게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존재한다면 의사는 환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그러나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조차 입증되지 않고 단순히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의 침해로 인하여 환자가 의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의사의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한 경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 사안의 경우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구치소 의사의 진료행위가 현저하게 부적절한 경우에 해당되어야만 X는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구치소 의사의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X는 국가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2(才口千晴 재판관의 의견)에 의하면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가능성의 입증이 없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의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소수견해는 앞의 2003년 최고재판소 판결 취지에 반하는 판단이므로, 판례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반박하였다.
다수의견의 논지는 앞의 2003년 최고재판소 판결과 다르지 않다. 본 판결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소수의견과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다.
앞서 살펴본 2000년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 본 판결에 이르기까지 의료사고에 있어서 그 보호법익을 생명·신체침해 외에도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으로까지 확장한 것은 환자의 이익을 위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판결에서도 문제된 것처럼 의사의 과실 있는 의료행위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행위와 환자가 연명할 상당한 가능성 사이의 인과관계가 부정되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 환자는 결과적으로 의사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연명 가능성(또는 후유장해 없이 회복될 가능성)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방식은,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실효성을 갖는다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14)
비록 다수의견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지만, 본 판결에 이르러 소수의견과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 침해가 없더라도 치료기회상실 그 자체로 인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설시를 하였고15), 이는 후술하는 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16)
위 판결(이하 ‘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이라 한다)은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조차 없는 경우에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본 판결이다. 기존에 언급하였던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라는 보호법익 외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또는 기대)을 보호법익으로 추가한 최초의 최고재판소 판결이다. 이하에서 상세히 살펴본다.
X는 1988년 10월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동년 11월 A병원에 입원하였고 정형외과의사인 Y의 집도에 의해 골접합술 및 골이식술(이하 ‘본건 수술’이라 한다)을 받았다. X는 본건 수술로부터 약 9년이 지난 1997년 10월 Y를 찾아가 본건 수술 후 왼발의 부기가 계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진찰을 받았다. Y는 뢴트겐 검사 등을 했지만 X의 상태에 대해서 특별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X는 그 후에도 3년 동안 2회 정도 Y에게 왼발의 부기 등을 호소했지만, Y는 피부과에서의 진찰을 권하는 등에 그쳤다. X는 다른 대학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좌하지심부정맥 혈전증 내지 좌하지 정맥 혈전 후유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X의 상기 질병은 1997년 10월의 시점에서는 이미 치료를 해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의사 Y가 의료 수준에 적합한 의료 행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X는 그와 같은 의료행위를 받는 기대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며, X는 Y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초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17)은 Y는 전문의에게 X를 소개하는 등의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했지만, 이 과실과 본건 후유증 간의 인과관계는 없으며, 본건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도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X의 기대권 침해 주장을 배척하고, X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항소심18) 역시 의사의 과실은 인정했지만, 인과관계 및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X는 그 증상의 원인을 모르는 채로 1997년 10월에 할 수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대를 침해받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하면서, X의 청구를 위자료 300만 엔의 한도로 인용하였다.
단순히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의 침해로 인하여 환자가 의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의사의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한 경우이어야 한다. 정형외과의사인 Y가 자신이 집도한 하지 골접합술 등의 수술 후의 합병증으로서 하지심부정맥 혈전증을 유발하여 그 후유증이 남은 환자에 대해서, 진찰을 의뢰한 발의 부기 등의 증상의 원인이 위 혈전증에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하고 혈관 질환을 다루는 전문의에 소개하지 않았어도, 다음의 (1)~(3)의 사실 관계 하에서는, Y의 의료 행위가 현저하게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X는 Y에게 적절한 의료 행위를 받을 기대권이 침해 되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다.19)
위 판결은 2005년 최고재판소 판결의 보충의견을 법정의견으로 확인한 판결이다. 위 판결은 의사의 과실과 연명(또는 후유증이 남지 않을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 의료행위가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였다면 환자의 기대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에 큰 의의가 있다.
① 종래의 최고재판소 판결은 환자가 그 사망 시점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을 고도의 개연성의 입증이 된 경우(Ⅰ의 단계)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고, ② 2000년 최고재판소 판결이 환자가 그 사망 시점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입증된 경우(Ⅱ의 단계)에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지만, ③ 아직 ①도 ②도 입증되지 않는 경우(Ⅲ의 단계 즉,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의 침해만을 이유로 하는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최고재판소 판결은 나오지 않았었다.20) 그러나 일본의 학계에서는 Ⅲ의 단계에도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21)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로 Ⅲ의 단계에서도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22)
그러나 최고재판소가 기대권침해를 이유로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행위가 현저하게 부적절하여야 한다고 표현하였기 때문에 Ⅲ의 단계에서 배상이 이루어지는 근거가 기대권침해에 있는지 아니면 기대권이 아닌 치료를 받을 이익과 같은 것의 침해가 있는지 논의가 있게 되었다.23)24)
본 판결은 공간된 의료과오사건의 최고재판소판결에서 법정의견으로서는 처음으로 ‘기대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이는 당사자의 상고이유에 입각하여 판단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최고재판소가 기대권침해론을 채용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25) ‘기대권’은 ‘장래 일정한 사실이 발생하면 일정한 법률상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지위’를 뜻하며, 조건부권리나 상속권을 예로 들 수 있다. 상고이유로서 기대권침해를 주장하는 사건은 의료과오사건을 비롯하여 그 이외의 사건에도 다수 존재하나, 최고재판소가 기대권침해를 긍정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판결문에서 기대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26)27)
기대권을 ‘장래 일정한 사실이 발생하면 일정한 법률상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지위’라고 정의하는 한, 의료과오의 국면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28) 이에 반해 ‘치료기회의 상실’은 적시에 적절한 의료를 제공받을 환자로서의 지위의 침해이다. 본 판결에서 사용된 기대권은 환자의 주관적인 기대가 아닌, 객관적인 적시에 적절한 의료를 제공받는 권리자로서의 기대를 의미한다고 파악하여야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라면 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말하는 기대권은 치료기회를 보호대상이 아닌 주체의 측면에서 환언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양자는 동일한 개념이라 평가할 수 있다.
위 판결이 기대권침해를 받아들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① 의사의 과실과 연명 또는 연명가능성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의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고, ② 이와 같은 경우에는 생명·신체와 상관없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보호이므로 생명·신체를 보호법익으로 할 때보다 의사의 손해배상책임 인정에 있어서 좀 더 강화된 요건이 필요하다는 2가지 이유를 근거로,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경우라면 현저히 부적절한 의료행위가 있을 경우에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29)
다만, 위 판결 선고 이후에 위 판결의 논리가 적용되어 실제 손해배상까지 인정된 최고재판소 판결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이라는 새로운 보호법익이 만들어졌지만, 위 보호법익의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행위가 단순히 과실 있는 진료행위를 떠나서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행위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위 판결에서도 최고재판소는 의사의 진료행위에 과실은 있었지만 그것이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행위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본 다음 위자료 배상책임을 부정하였다.
치료기회상실과 관련하여 위에서 살펴보듯이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0년, 2005년, 2011년에 선고된 판례들을 통하여 그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하였고, 현재까지 변경된 내용은 없다. 치료기회상실과 관련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의료사고에 있어서 보호법익은 생명·신체이다.30)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환자의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만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존의 법리에 따른다면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환자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가 없다.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법감정에 비추어 볼 때,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손해배상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과오에서 생명·신체 침해 외에 다른 것을 보호법익으로 삼아, 해당 보호법익의 침해로 말미암은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 치료기회상실 논의의 핵심이다.31)
물론 이에 대해 의료과실과 사망·상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면 이는 단지 의료수준에 적합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에 불과하고, 이러한 치료기회상실은 손해가 아니라 채무불이행 또는 의무위반 그 자체이므로 손해배상은 불가능하다는 일본 내의 견해도 있다.32)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0년 판결 이후 치료기회상실 문제에 있어서 생명·신체와는 다른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을 독자적인 보호법익으로 인정하였다. 즉 종래에는 생명·신체만 보호법익으로 삼았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 생명을 유지하였을 것이라는 또는 중대한 후유장애가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보호법익의 범위를 확장하였다.33)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인정되면서도 의사의 과실행위와 연명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과의 인과관계마저도 인정되는 않는 경우가 있게 되자, 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을 통해 그 보호법익을 적절한 의료행위를 받을 환자의 기대 또는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하여 연명가능성과 무관한 것을 치료기회상실 사안에서 보호법익으로 확장하였다.34)
적절한 의료행위를 받을 이익은 연명할 상당한 가능성이 없는 경우라도 또는 연명할 가능성을 입증하기 곤란한 경우라도 환자에게 위자료를 인정해 줄 근거로 적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검사 및 치료가 현재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는 생명·신체 침해와 부적절한 치료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적절하고 충분한 검사나 치료를 받는 것 그 자체에 대한 환자의 이익이 침해된 점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35)
위와 같은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태도는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문제된 치료기회상실 사안에서 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36) 다만, 2000년 및 2003년 최고재판소 판결이 설시한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 생명·신체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법익인지 의문이다. 연명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생명을 가능성화 한 것으로서 그 기반이 되는 보호법익은 생명 그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신체를 가능성의 수치로 환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명할 또는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생명·신체라는 결과의 일부라 할 것이어서 생명·신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손해항목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37)
따라서 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처럼 치료기회상실에서는 생명·신체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보호법익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을 보호법익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며,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동향은 이러한 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 최고재판소는 치료기회상실 사안에 있어서 보호법익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적절한 의료행위를 받을 기대 또는 이익이다. 전자에 대한 침해가 있을 때에는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만을 요건으로 하지만(2000년, 2003년 및 2005년 최고재판소 판결), 후자에 대한 침해가 있을 때에는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한 의료행위에 해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 즉, 후자에 있어서는 위법성의 적극적 심사, 이른바 수인한도론을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 배상이 인정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은 있으나, 적절한 의료행위를 받을 기대 또는 이익의 침해에 따른 위자료 배상이 인정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는 있었지만 그것이 현저히 부적절한 의료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은 생명·신체 그 자체와는 동일시할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생명·신체 침해에 대한 가능성의 일종이므로 수인한도론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의료수준에 적합한 치료를 받을 이익 또는 기대는 생명·신체와 같이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보호법익이 아니므로 침해행위의 태양을 통하여 그 외연을 획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사라면 통상 실시할 것이 기대되는 의료수준조차 만족하지 못한 경우에만 치료기회상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38)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은 손해배상의 범위를 위자료 배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연명할 상당한 가능성 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지만, 위 보호법익의 침해로 발생하는 손해는 환자의 정신적 고통이라고 해석한다. 적시에 치료를 받게 되었다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와 같은 가능성조차 가지지 못하게 됨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미리 병명을 알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삶을 좀 더 잘 마무리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한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어 발생한 삶의 질 침해, 환자로서는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을 때 해당 치료행위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기대와 신뢰가 배신당함으로 인하여 받게 된 정신적 고통,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악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분노, 두려움, 초조감 등의 손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존엄이라는 인격적 이익의 침해가 있는 것이므로 정신적 손해의 배상이 인정되는 것이다.39)
생명·신체가 침해되는 경우에는 재산상 손해(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를 포함하여 정신적 손해(위자료)까지 배상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생명·신체가 아닌 보호법익(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 침해에 있어서는 위자료 배상만을 인정하는 것이 불합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가족 고유의 위자료청구권도 문제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은 치료기회상실 사안에 있어서 ‘연명할(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을 독자적인 보호법익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침해가 있다면 의사는 환자에게 불법행위책임에 따른 위자료 배상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때 가족들의 독자적인 위자료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았다.40) 일본의 판결들은 치료기회상실 사안에 있어서 법적 책임 구성을 채무불이행 책임으로 하든 불법행위책임으로 하든지 간에 가족들의 고유한 위자료청구권은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우리 민법에의 시사점
우리나라의 판결은 환자로 하여금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한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환자의 생명·신체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해당 의료과오로부터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이 때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경우로 사안을 해결하고 있다. 첫째는 의사로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아 볼 기회를 상실한 것을 이유로 하여 이로부터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을 인정하는 경우이다(이하 ‘제1판례’라 하며, 앞서 살펴본 2005년 최고재판소 판결의 소수의견과 유사하다).42) 둘째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이로 말미암아 환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의 배상을 명할 수 있다는 경우이다(이하 ‘제2판례’라 하며, 앞서 살펴본 2011년 최고재판소 판결과 유사하다).43)
우리 대법원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제1판례의 논리에 따라 치료기회상실의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는 주로 제2판례의 논리에 근거하여 치료기회상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44)
제1판례는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침해받았음을 이유로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판결들이다.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정되어 치료기회상실이 독자적으로 문제되는 사안에서 대법원이 직접 논거를 전개한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한 것을 이유로 위자료배상을 명한 하급심판결들을 그대로 확정한 점에서45) 치료기회상실 사안에 있어서 위자료배상을 인정한 하급심판결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46)
일본 최고재판소와는 달리 우리 대법원은 치료기회상실만이 문제되고 있는 사안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는 않다. 제1판례와 관련하여 세 건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세 건 모두 미공간 판결들이었으며, 세 건 모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한 것을 이유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판결들은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된 사안에서 환자의 생명·신체 외에 다른 독자적인 피해법익의 근거를 명시하고 있지도 않다. 즉 위자료 지급의 근거인 환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이 어느 법익의 침해에 의한 것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47) 다만 치료기회상실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만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위자료 배상만 인정하였다. 또한 가족들도 환자 곁에서 환자와 함께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고 하여 가족도 위자료 배상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제2판례의 논거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법원 2023. 8. 18. 선고 2022다306185 판결의 설시 내용이다.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그로 말미암아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할 수 있으나, 이때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는 점은 불법행위의 성립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증명하여야 한다. 의료진이 임상의학 분야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부합하는 진료를 한 경우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는 의료진에게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는, 환자에게 발생한 신체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진료 그 자체로 인하여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불성실한 진료로 인하여 이미 발생한 정신적 고통이 중대하여 진료 후 신체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마땅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제2판례도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침해받았음을 이유로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제1판례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생명·신체 외에 다른 독자적인 피해법익의 근거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즉 위자료 지급의 근거인 환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이 어느 법익의 침해에 의한 것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을 보이는 점은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이 표현대로라면 보호법익의 침해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만 크다면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48)
제2판례는 제1판례와 다르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와 같은 것의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려면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대법원 판례가 그 이유를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치료기회상실 사안과 같이 의료과실과 생명·신체 침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경우에, 그 피침해이익이 무엇이든 간에 이것은 그 보호의 정도가 생명·신체보다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경우에 위법성을 인정하여 손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침해행위의 불법성이 매우 커야만 한다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견해가 있다.49)
제2판례의 경우에도 만약 위와 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만을 인정하고 있으며,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의 위자료까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대법원에서 제2판례의 논거에 따라 위자료 배상을 인정한 예를 찾기는 어렵다. 대법원에서 제2판례와 같은 사안이 문제된 경우 현재까지는 의료진의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예가 없다. 오히려 원심에서는 의료진의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하다고 판시하였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한 경우만 존재한다.50)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대법원 역시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였음을 이유로 또는 그 진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하였음을 이유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처럼 그 보호법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비록 민법 제750조에서는 손해의 발생만 있으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논리의 전개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가해행위가 법익을 침해하고, 법익침해로부터 손해가 발생’하여야 한다. 치료기회상실의 법리가 문제되는 사안들은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라는 법익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사안들이다. 따라서 환자는 생명·신체침해로부터 발생한 재산적·비재산적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받을 수가 없다. 만약 이 경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였음을 이유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생명·신체와는 다른 어떠한 독자적인 피해법익이 침해당하였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을 보호법익으로 언급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 생명·신체와는 구분되는 별개의 보호법익인지는 의문이다. 연명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생명을 가능성화 한 것으로서 그 기반이 되는 보호법익은 생명 그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신체를 가능성의 수치로 환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명할 또는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생명·신체라는 결과의 일부라 할 것이어서 생명·신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손해항목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51)
또한 치유가능성이 본래 높지 않은 질병의 경우 또는 치유가능성조차 불분명한 경우에는 연명의 가능성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으며, 의사의 적절한 치료가 있었더라면 그 환자는 연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란 더욱 어렵다. 일본의 2005년 최고재판소 판결에서 보듯이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인정되면서도 의사의 과실과 연명할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환자는 의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연명할 또는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은 치료기회상실에 있어서의 보호법익으로 매우 한정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어서 타당하지 않다.52)
따라서 치료기회상실에 있어서의 보호법익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로 봄이 타당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 또는 이익은 생명·신체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보호법익으로서 일반적 인격권의 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53) 우리 대법원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처럼 치료기회상실 사안에 있어서 보호법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시가 필요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보호법익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보고 있다. 하나는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 또는 기대이다. 전자의 침해에 있어서는 과실 있는 의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후자의 침해에 있어서는 과실 있는 의료행위가 현저히 부적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생명·신체와는 전혀 무관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 또는 기대의 침해에 있어서는 수인한도의 초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치료기회상실 사안에서 보호법익에 대하여 명확히 설시하지는 않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실 있는 의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정됨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점, 위자료 배상만 인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 또는 기대를 그 보호법익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때 우리 대법원 판례는 일본 최고재판소처럼 명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아 하급심에서는 치료기회상실이 있으면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제1판례와 더 나아가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행위가 있을 것까지 요구하는 제2판례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 수인한도론을 언급하며 통일된 방향을 제시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대법원도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경우 제1판례와 제2판례가 혼재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명확한 보호법익의 설정과 법익침해의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주장은 현재처럼 제1판례와 제2판례가 혼재되는 상황을 하나로 정리하자는 의미이지 치료기회상실에 있어서 제2판례와 같이 그리고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처럼 수인한도론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료기회상실의 법리가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생명·신체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적절히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였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여 환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는 법리임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제한은 오히려 환자에게 입증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54)
물론 이에 대해 제1판례의 논리를 따를 경우, 과잉진료나 방어진료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치료기회상실과 관련된 의사의 책임이 너무 넓어진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치료기회상실과 관련하여 제2판례의 논거와 같은 접근은 실질적으로 치료기회상실에 대해 어떠한 손해배상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서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제2판례의 논거를 설시한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보아도 전부 위자료 배상을 부정하였다. 결국,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생명·신체의 침해가 발생하거나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치료기회상실의 문제도 어찌되었든 간에 의사의 과실 있는 진료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의사에게 과실이 없다면(즉, 현재의 의학발전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하였다면), 손해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제1판례의 논거와 같이 의료과실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면, 과실의 중대성 유무와 상관 없이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고, 과실의 중대성 여부는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55)56)
일본 최고재판소는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환자 본인의 위자료 배상만을 인정하고 있으며, 가족의 위자료 청구권은 부정하였다. 우리 대법원은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위자료 배상만을 인정하는 것은 일본의 경우와 같으나 환자 본인의 위자료 뿐만 아니라 가족의 위자료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기회상실의 사안에서 가족들 고유의 위자료청구권이 당연히 인정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의료수준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을 상실한 것은 환자 본인이며,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은 환자의 인격권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생명·신체침해가 아닌 환자 본인에게만 인정되는 인격권의 침해만으로 환자의 가족들에게 당연히 고유한 정신적 충격이 발생한다고 인정하기는 매우 어려워보인다.57)58)
생명·신체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연명할 또는 후유장해가 남지 않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을 독자적인 보호법익으로 삼고 있는 일본 최고재판소조차도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명·신체와 무관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59)을 치료기회상실 사안에 있어서 독자적인 보호법익으로 본다면 치료기회상실의 사안에서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오직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만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특별한 판단 없이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우리 법원의 태도는 바뀌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내용을 우리도 다시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위의 내용이 치료기회상실과 관련하여 가족의 위자료 청구권이 무조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환자 본인의 치료를 받을 이익 침해로 인하여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였는지에 대해 민법 제750조에 따라 별도의 판단을 거친 후(즉, 치료기회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를 지켜봄으로 인해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였다는 점에 대해 민법 제750조 일반 불법행위책임의 요건을 충족하였는지 검토한 후), 가족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족들에게 위자료 청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Ⅳ. 결론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정리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왔다.
첫째, 보호법익과 관련하여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 또는 기대’를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둘째, 보호법익에 따라 구성요건을 달리하고 있다. ‘연명할 또는 중대한 후유증이 남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을 침해한 경우에는 과실 있는 진료행위와 위 보호법익의 침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만 존재하면 된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 또는 기대’를 침해한 경우에는 단순히 과실 있는 진료행위가 아닌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행위가 있을 것을 요구한다.
셋째, 보호법익의 침해가 있을 경우 그 보호법익이 생명·신체가 아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여 환자 본인의 위자료 배상만이 문제되며, 가족의 위자료 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우리 대법원도 치료기회상실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첫째, 일본과 달리 보호법익이 무엇인지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둘째,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행위가 있어야만 된다는 판례와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가 혼재하고 있고, 셋째, 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받을 이익이 침해된 사안에서 특별한 설명 없이 가족의 위자료 청구권도 인정하고 있다.
치료기회상실과 관련하여 치료기회상실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이 인정되어야 하는지부터 해서 만약 손해배상이 인정된다면 보호법익은 무엇인지, 수인한도론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손해배상의 범위와 대상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고,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법원이 지금처럼 보호법익에 대한 명확한 설시도 없이 정신적 고통을 당했음이 명백하므로 위자료 배상은 인정될 수 있다는 식으로 설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일본 최고재판소처럼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논리전개와 설시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치료기회상실과 관련하여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