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대상판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다툼이 없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원고(임대인)는 2008. 7. 11. 피고(임차인)들과 50평의 식당 건물과 30평의 카페 건물을 2008. 11. 8.부터 2013. 11. 8.까지 5년 간, 보증금은 1억 5천만 원, 차임은 1000만 원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1차 계약이라 한다).
그리고 1차 계약이 끝날 무렵인 2013. 10. 8.경과 2013. 10. 18경에 원고 측에서 임대차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우편을 보낸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실제 1000만 원을 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송금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직후인 2013. 11. 20.경, 각 당사자는 그 내용을 달리하여 보증금 1억 5천만 원에 차임 1400만 원, 기간은 2013. 11. 30.부터 2016. 11. 30.까지 3년 간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2차 계약이라 한다). 1차 계약에서 2차 계약으로 됨에 따라 계약의 목적물 ‘식당 건물 및 카페 건물’에서 ‘식당 건물’로 변경되었으며, 보증금 및 차임의 액수가 달라졌다. 2차 계약의 특약사항으로 ‘만일 임대차를 추후에 연장할 경우 기간 24개월, 차임 월 2000만 원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로 약정’하였다.
2차 계약 이후 피고는 특약사항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2차 계약 기간 만료 다음 날인 2016. 12. 1.부터 영업을 중단하고 2016. 12. 29. 원고에게 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는 내용증명우편을 보내었다. 또한 이러한 보증금 반환에 관한 지급명령 신청을 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도 2017. 1. 3. 특약에 따른 재계약이 되지 않았으므로 계약은 종료되었으며, 차임들을 정산하여 나머지 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우편을 보냈다. 다만 피고의 지급명령 신청으로 인해 법원은 2017. 1. 12 지급명령을 하였고, 원고가 이의하여 소송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거래목적물인 건물의 증축 및 보수로 상황이 달라지자 피고는 임차보증금반환청구의 소를 취하하고 양 당사자는 다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번에는 증축된 식당 건물을 거래목적물로 하여 보증금 1억 5천만 원, 차임 1400만 원으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이하 3차 계약이라 한다). 이와 같은 계약 목적물의 증축 및 보수의 과정에서 피고들과 협의를 하였다거나 동의를 구하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위 임대차계약은 2021. 7. 5. 종료되었는데, 피고들이 2020. 10.부터 위 종료 시까지 차임 총 1억 5,200만 원(월 1,600만 원씩 9개월 15일치)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발생한 차임채권 중 1차, 2차 계약 중 발생한 것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하여 임대인이 연체차임 채권 전액(소멸시효가 문제된 부분도 포함)과 보증금의 공제를 요구하였다.
대상판결 사안에서 문제가 된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1, 2, 3차 계약의 연속성이 인정되는지에 관한 쟁점이다. 동일한 계약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1, 2차 계약에서 발생한 연체차임 채권 및 부가가치세채권(이하 차임채권 등)을 3차 계약 만료 시에 공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1, 2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등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이다. 피고는 소멸시효의 항변을 제기하면서 만일 1, 2차 계약과 3차 계약의 연속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1, 2차 계약에서 발생한 차임채권 등의 소멸시효인 3년이 경과하였으므로 이를 임대차보증금에 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소멸시효의 완성이 인정된다고 하였을 때, 이를 제495조(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 그 완성 전에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 채권자는 상계할 수 있다.)에 따라 상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이다. 제495조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계약의 만료 이전에 차임채권 등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기에 계약 만료 후 발생한 임대차보증금채권과 상계적상의 상태에 있었던 적이 없었으므로 제495조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아가 상계적상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상계 대신 공제의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문제되었다.
먼저 제1심 판결에서는 피고측의 소멸시효 항변을 대부분 인용하고,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였다.1)
제1심 판결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쟁점을 중심으로 하여 법리를 구성하였다.
첫째, 계약의 연속성이다. 제1심에서는 1, 2, 3차 계약의 연속성에 관하여 인정하지 않았다.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연속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우편을 보낸 사실 등 계약이 연속되지 않았다고 볼만한 사실관계들을 근거로 1, 2차 계약에 연속성이 없다고 보았다. 2, 3차 계약의 연속성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로, 계약 목적물이 증축 및 보수되는 등 연속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두 경우 모두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당사자의 의사, 계약의 목적물이나 보증금 및 차임의 변동, 기타 계약 간 공백 기간 동안 임대차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다고 볼 제반사정들을 고려하여 계약의 연속성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둘째, 1, 2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등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이다. 이 때 기산 시점은 임대차계약 종료 시부터라고 파악하였다. 사안에서는 1, 2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모두 기산 후 3년의 시간이 지난 상태이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판단을 기초로 1, 2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등의 공제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3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등의 공제만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원고가 항소하였다.
원심판결에서는 1심의 판단과 법리를 유지하고,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2) 다만 원고가 주장한 제495조에 따른 상계만을 검토하였으나, 상계적상을 부정하였다.
제495조에 의하면, 소멸시효 완성 전에 상계적상의 상태에 있었던 수동채권이 존재했던 사실이 있을 때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라 하더라도 상계를 가능하도록 한다. 이는 상계적상의 상태가 성립된 것을 전제로 이에 대한 양 당사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심판결에서는 사안의 경우 1차 계약 및 2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등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때는 각각 2016. 11. 8.경 및 2019. 12. 1.경이라는 점에 착안하였다. 이는 3차 계약 만료 시 즉 3차 계약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이행기가 도래하지 않은 때이기에, 원심은 1, 2차 계약의 차임채권 등과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 상계적상의 상태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원심판결에서 항소를 기각하였다.
추가적으로, 설령 원고의 주장을 1, 2차 계약 중 발생한 차임채권 등을 각각 1차 계약, 2차 계약에 따른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하여 상계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채무자가 상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 각각 2, 3차 계약의 임대차보증금의 지급에 갈음하여 자동으로 소멸하였다고 보지는 않았다. 이 판결에 대해 원고가 상고하였다.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상계적상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일부 공제는 가능하다는 취지로, 원고의 상고를 일부 인용하여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3)
대상판결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법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대법원은 임대차계약이 수차례 갱신되어 사실상 연속적 관계가 유지된 경우, 각 계약이 단절된 별개의 계약이라 할 수 없으며, 마지막 임대차 종료 시점에서 전체 관계를 기준으로 보증금 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원심판결과는 달리 계약의 연속성을 인정하였다.
다음으로, 상계에 관하여서는 원심판결과 같이 이를 부정하였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채무는 임대차 종료 시에만 이행기에 도달하므로, 임대차 존속 중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차임채권은 상계적상에 있지 않았었다고 보았다. 임대인이 차임채권 등 소멸시효의 완성 이전에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에 관한 기한의 이익을 포기하여4) 상계적상에 도달한 사실이 없는 이상 상계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5)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단순히 상계를 부정함에 그치지 않고, 제495조를 유추적용한 ‘공제’가 적용 가능한지에 대해 검토하여 이를 인정하였다. 즉, 대상판결에서는 ①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인에게 임차인의 차임채무 등에 관해 담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임대차계약 종료 시에 자동 공제되는데, ② 이러한 임대차보증금의 담보적 성질과 관련한 요지는 상당수의 종전 판례에서 확인됨을 지적한 후,6) ③ 해당 사안의 경우에도 임대차 관계가 장기간 유지된 동안 연체된 차임이 임대차보증금에 의해 공제될 것이라는 임대인의 신뢰, 그리고 임차인이 그 상태로 계약을 지속한 묵시적 의사 등을 고려할 때, 소멸시효가 완성된 차임채권 등 또한 보증금 정산 시 자동 공제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연체차임에 대해 상계 또는 공제가 문제된 사안이다. 기본적으로 상계적상을 부정하면서도 일부에 대하여는 공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로서는 공제가능성을 인정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필자는 연체차임의 경우 기본적으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상계가 아니라 공제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이 평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검토 및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상계와 달리 공제는 우리 민법상 상세히 규정되지 않은 제도이고, 이에 관한 논의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상 판례법리를 통하여 공제의 법리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공제와 상계의 법리에 관하여 양자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이를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 판례의 여러 계약 유형에서 드러나는 공제에 관한 공통적인 입장을 정리한 다음, 해외에서는 공제에 관하여 어떤 내용으로 규율하고 있는지 검토하도록 한다. 영미법에서 규율, 사용하고 있는 공제와 상계의 개념과 각국이 대상판결과 유사한 유형의 갈등을 어떤 법리를 통해 해소하였는지 조사한다.
둘째, 앞서 연구했던 공제 일반의 성격을 근거로 하여서 연체차임의 경우 기본적으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상계가 아니라 공제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이유 내지 법리적 근거에 관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의 제495조 유추적용 법리에 관하여도 검토한다. 해당 판례의 법리가 유추적용의 범위를 기존보다 넓힐 우려는 없는지, 공제와 상계의 요건 및 효과 상에서 두 개념은 유추적용을 하기에 충분히 적절한지 확인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에서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1, 2, 3차 계약 상호간의 연속성 또한 문제되었다. 임대차계약이 갱신이 된 것인지 또는 독립된 별개의 계약인지는 당사자간의 법률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바, 이 글에서는 연속된 계약의 갱신여부 또는 연속성 판단기준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특히 이를 판단하기 위한 당사자의 묵시적 의사의 해석 기준은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견으로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계약의 경우,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갱신된 것으로서 연속성을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세 가지의 논점을 기초로 법학적 시사점이 될 문제에 관하여 정돈하고 계약의 연속성 및 상계와 공제에 대한 대상판결의 판단이 타당한지 검토한다.
Ⅱ. 상계와 공제
상계는 민법상 명문의 규정이 있는 제도이다. 이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 채무를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채무들을 대등액에서 소멸하게 하는 단독행위로 정의된다. 상계는 민법 체계 속에서 채권 소멸의 한 방식으로서 존재한다. 그 입법취지를 보통 채무를 간편하게 정산함으로써 불필요한 이중지급 등을 방지하는 것에 둔다. 제493조는 상계적상의 상태에 있더라도 당연히 상계되는 것이 아닌, 상계의 의사표시가 있어야만 대등액에서 소멸되는 것으로 하였다. 다만 이 때의 의사표시는 일방적 의사표시이며, 따라서 상계는 원칙적으로 단독행위가 된다.
공제는 민법상 명문의 규정 없이 인정되고 있는 법리이다. 이에 관한 법제화는 먼저 세법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추후 민사상의 필요에 따라 공제 법리를 민사사건에 적용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판례에서는 공제와 상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데, “공제에는 원칙적으로 상계적상, 상계 금지나 제한, 상계의 기판력 등 상계에 관한 법률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부동산임대차관계 등 특정 법률관계에서는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원칙적으로 공제의 의사표시 없이도 당연히 공제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나아가 공제의 경우 “상계 금지나 제한과 무관하게 제3자에 우선하여 채권의 실질적 만족을 얻게 한다는 점에서 상계보다 강한 담보적 효력을 가진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7)
그 기능에 입각하여 생각해 보았을 때 공제란, 예정된 몫에서 일정한 금액이나 수량을 빼는 것, 즉, 재산·소득·채권 등에서 일정 부분을 차감하여 남은 금액만을 인정하거나 실제로 지급하는 행위라 정의할 수 있다. 상계가 채권 소멸의 방식으로서 강조된다면, 공제는 단순 정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 성질에 더 가깝다.
민사사건에 공제의 개념을 적용하게 된 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와 같은 법리가 먼저 사용된 세법상의 공제가 어떠한 필요로 도입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제는 세법상에서도 국세기본법이 아닌 개별법인 법인세법, 소득세법 등에 포진되어 있다. 이들은 주로 세금 납부 의무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특정한 경우 일정한 금액을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소득세법에서는 천재지변 기타 재해로 인해 납세가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동법 제58조), 8세 이상의 자녀가 있는 경우(동법 제59조의2) 등의 사유가 있을 때 세액공제 할 수 있도록 한다.
공제의 개념과 목적이 거래의 공정성 차원에서 사인간 거래에 적용되는 과정에 여러 가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본래 공제받고자 하는 이가 기관에 신청을 함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세액공제와는 달리, 당사자의 의사표시 없이 자동으로 공제되도록 하는 경우가 등장하였다는 점이 특히 유의미하다. 의사표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의사표시를 요하지 않는 준법률행위나 법률사실로 파악할 여지가 있다. 또한 세법상 공제의 경우 납세자의 의사표시가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반면, 민사상 공제로 되었을 때엔 그 의사표시의 방식이 비교적 자유롭다.8)
상계의 경우, 상계적상에 있어야 하고, 그것이 상계할 당시에 유지되고 있어야 한다. 제492조에서 도출할 수 있는 상계적상의 요건은 두 채권의 대립, 동종, 변제기의 도래 그리고 두 채권이 성질상 상계가 허용되는 것일 것9) 등이 있다. 그리고 두 채권이 상계할 당시에 현존하고 있어야 하는데, 대상판결에서 다루었던 제495조는 이 요건에 대한 예외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동일한 계약 내에서 발생한 채권의 상계가 가능한지 문제될 수 있다. 상계는 본래 서로 다른 계약에서 발생한 채권의 이행을 간편하게 정리하기 위한 것이기에, 그 요건을 엄격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동일한 계약 상의 정산에 활용할 경우 상계적상이 충족되지 않았으나 견련관계 있는 채권으로서 정산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처리하기 어렵다.
판례는 동일한 계약에서 발생한 채권 간 상계를 인정하고 있지만, 사견으로는 동일한 계약 내에서는 상계가 아닌 공제를 적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판례는 동일한 계약 내에서 발생한 채권을 상계로 처리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도급계약에서 하자보수청구권과 공사대금 간 정산의 문제를 상계로 처리한 사례가 있는데, 상계적상에 관하여 기존과는 변형된 법리를 사용하였다.10) 그 결과 동일한 계약에서 발생한 채권 간에 상계를 적용하려는 사안에 대해서만 상계적상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공제가 임대차계약에서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과의 공제, 공사계약에서의 공사대금과의 공제 등 개별적인 사안의 유형에 따라 관습적으로 적용되어 왔다보니, 판례는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유형의 경우에만 공제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공제는 일률적인 요건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못하고, 단순히 관습적으로 굳어진 유형의 경우에 사용되어 왔을 뿐이다. 이는 공제의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데에도 혼선을 준다.
따라서 공제 또한 일정 유형의 계약에서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만 소모되게 하지 말고, 동일한 계약에서 파생된 두 채권의 정산이 필요한 경우 공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공제 법리가 먼저 사용된 세법상으로, 공제의 요건은 개별법에서 구체적인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민사상 공제의 요건은 아직 명문화된 바 없이 판례 내지 관습 상으로만 존재한다. 명문 규정은 없으나 판례 내에서 공제를 적용할 수 있는 경우는 일정 유형으로 정해져 있다. 대상판결처럼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차보증금의 담보적 성질에 대하여 사용되거나, 도급계약에 있어 공사대금에 하자보수비 등을 공제하는 사례가 정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11)
이러한 경향은 견련성이 강한 채권 사이에 적용되는 공제의 특성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공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헌이 공제의 요건을 양 채무 간 ‘견련관계’로 파악하고 있다.12) 이처럼 견련관계가 공제의 요건으로 작용하는 이상, 견련관계가 인정되는 기준에 대하여 분명하게 하여 두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견련성’이라는 용어는 본래 주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의 요건으로서 사용되었다. 동시이행의 항변권 성립요건으로서의 견련성에 관한 판례들을 살펴보면, ‘당사자 쌍방이 각각 별개의 약정으로 채무를 부담하게 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에 그 채무이행과 상대방의 어떤 채무이행을 견련시켜 동시이행을 하기로 하는 특약이 없는 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면서 별개의 약정이 아닌 하나의 약정에서 발생한 채무일 때 대개 그 견련성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3)14)
이에 비추어서 공제의 요건을 파악해 보았을 때, 대개 동일 쌍무계약에서 파생된 두 채권을 공제할 수 있도록 한다고 파악할 수 있다. 실무상으로 공제의 이러한 요건은 상계의 경우보다 비교적 충족되기 쉬운 것으로서, 견련관계 있는 채권 간에 마땅히 정산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상계를 사용하기 보다 공제를 사용하는 편이 당사자 권리보호에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상계의 효력은 제493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상계의 의사표시가 있으면 각 채권은 대등액에 관하여 소멸한다. 더하여 법률상 자동발생 또는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소급 적용될 수 있다. 상계적상에 있을 때에 이미 그 채권관계가 결제된 것이라고 취급하기에, 상계적상 이후에는 이자가 발생하지 않고 이행지체도 소멸된다.
공제의 경우는, 예정액에 일정 금액을 정산하여 지불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반대채무의 소멸’보다는 ‘단일한 채무의 감액’으로서의 본질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효력은 상계와 유사해 보이지만, 공제는 일정한 조건이 만족되는 때 자동으로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실무상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 발생하는 여러 법리적 문제가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동 공제를 가능케 할 경우 제3자에 대한 사실상의 우선변제권 부여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점, 그 결과 임대차계약일 경우 우선변제권에 관한 기존 임대차보호법 규정과 부분적으로 모순되는 법리가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자동공제를 인정할 경우 그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기존 임대차보호법 규정과의 모순에 대해서는 ‘임대차보증금의 자동 공제 법리’ 목차에서 다루는 것으로 하고, 우선 제3자에 대한 우선변제권을 부여하게 되는 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본다. 자동 공제가 되도록 하는 법리는 결국 임대인에게 우선변제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제3자의 압류/양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판례는 압류 또는 양도된 채권에 관하여서도 공제를 가능케 하면서 이중양도 등 법리적 문제에 봉착할 수 있을 만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15)
게다가 공제는 대상판결처럼 소멸시효의 완성이 문제된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며, 이미 양도된 채권에 관하여서도 공제를 가능하도록 하는 판례가 존재한다.16) 이처럼 공제는 여러 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용되는 강한 담보적 효력을 가진 개념이라고 보여지는데, 그 근거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에 관한 문제가 남는다. 이것과 관련하여 공제의 취지와 성질을 분명하게 하여 판례 상에서 공제가 이러한 법적 장애를 돌파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시하거나, 법적으로 공제 개념을 명시적으로 기재하여 해당 공제의 용례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자동공제 시기와 관련한 문제이다. 이는 계약의 종류에 따라 양태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계약당사자에게 마땅히 귀속되어야 하는 금액을 산정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를 설정하고자 하는 것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다. 임대차계약과 관련하여서는 대상판결 검토 부분에서 후술하고, 해당 목차에서는 공사계약 상의 자동 공제 시기에 대해 조사한다.
예컨대, 공사계약에서는 ‘기성고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정산한다. 판례에서는 기성고율에 대하여 “이미 완성된 부분에 소요된 공사비에다가 미시공 부분을 완성하는 데 소요될 공사비를 합친 전체 공사비 가운데 이미 완성된 부분에 소요된 공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라고 정리한다.17) 이 기성고율의 개념을 사용함을 통해서 공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에 따라 공제액을 달리 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자동 공제의 시기상 문제 또한 결국 공제액의 산정과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기성고율 산정의 시기를 자동 공제의 시기와 비슷하거나 동일한 취지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판례에서는 기성고율의 평가 시점을 “공사대금 지급의무가 발생한 시점, 즉 수급인이 공사를 중단할 당시를 기준으로”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18) 공사대금 지급의무는 수급인의 인도의무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기에 도급계약 해제 후 수급인이 기성고에 해당하는 부분을 도급인에게 인도한 시점에 발생한다. 따라서 판례는 도급계약 해제 후, 수급인이 기성고를 인도한 시점을 기준으로 기성고율을 평가한다고 판시하였다 해석할 수 있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임대차계약에서도 유사한 취지로 판시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반론적으로 정리해보자면 대체로 해당 계약 종료 후,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채무가 이행된 경우에 자동 공제된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19)
영미법상 공제 또한 그 시작은 조세 상의 세액공제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이를 민사사건에도 적용하여 그 의미를 확장하였다.
영미법에서의 실체법상 공제(abatement)에 관한 내용은 이렇다. 공제를 주로 일방당사자가 계약 상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하거나 계약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 기존 약정된 채무액에서 손해액을 산정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20) 계약 위반 시 이행을 강제하거나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에 소극적인 영미법의 특성상21) 불이행한 부분이나 하자 있는 부분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형태가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사례로는 매매계약이나 공사계약, 임대차계약상 공제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계약에서의 하자 등에 대하여서는 법적으로 계약대금과의 공제를 인정하지만, 계약상 당사자가 합의함으로 공제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다. 즉, 공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중에서도 공사계약과 관련한 판례를 찾아보면, 실제 공사대금에 대하여 수급인의 이행 또는 목적물의 하자를 손해액으로 환산하여 공제하는 사례가 보편적이라는 것을알 수 있다.22) 전술한 대로 공사계약에서 공사대금과 하자보수청구권의 동시이행관계로 인해 상계로 법리를 구성하는 것이 어려웠던 문제에 관해서 영미법의 용례를 참고하여 해결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하여, 미국의 각 주에서 사용하는 실체법상 공제에서 흥미로운 점을 찾아볼 수 있어 검토하였다. 주로 임대차계약과 관련된 공제였는데, 다만 임대차보증금(security deposit)보다 임대료(rent)의 공제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다. 임대료는 국내의 차임과 유사한 개념이다. 미국의 일부 주에 임대인이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 임차인의 신청을 통해 임대료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리가 마련되어 있었다.23) 이는 임대인의 의무불이행에 자동 공제의 불이익을 부여하면서 강력하게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진다. 다만 국내와는 달리 자동 공제가 아니라 임차인이 공제 등 구제를 요청하여야만 공제 가능성이 발생한다. 특히 뉴멕시코주의 경우 서면으로 요청할 것, 긴급 수리의 경우 7일이 경과할 것 등의 요건을 제시해두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코네티컷주에서는 임차인이 소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21일 전에 해당 사실을 관련 기관에 신고한 사실이 필요하다. 이러한 절차상의 한계는 임차인의 임대료 공제 남용 방지 및 공제율 산정의 용이성 향상에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임대인의 의무는 각 주의 임대차관계법(landlord-tenant law)에 명시해두고, 위반 시에 차임을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판례의 경향이다. 금전적 피해 뿐만 아니라, 이를 테면 임대인이 해충이나 쥐 등을 퇴치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도 임대료 공제가 인정된다.24) 국내의 경우 선급금에 대한 정산의 측면이 강하였는데, 미국 각 주의 경우는 금전적인 피해 뿐 아니라 임대인의 의무불이행 전반에 대하여 공제를 가능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국내와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사실상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미국 각 주법의 임대차계약 상 공제가 세법상의 공제의 성질을 더 깊게 승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법률로 정한 일정 사유에 한하여 세금(월세)를 감면할 수 있고, 이를 위하여서는 공제받고자 하는 자가 관련 기관에 신청하여야 하며, 주거 안정이라는 사회보장적인 목적을 가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기에 민사사건에 적용되는 공제라고 하더라도 세법상의 공제를 참고하여 규율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반면 전술하였듯 국내의 공제는 비교적 민사사건에 적용됨을 통해 많은 내용이 변경되었다. 상당히 새로운 내용의 개념으로 변형되었기에, 이 개념을 법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대상판결은 사안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를 확인하였다. 이는 임대차보증금의 자동 공제 법리에 관한 문제, 상계의 적용 가능성, 공제의 적용 가능성이다.
본 평석에서는 임대차보증금의 성질부터 시작하여 임대차보증금의 자동 공제 법리와 관련한 기본적인 내용을 먼저 정리하도록 한다.
그 다음으로 대상판결에서 공제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 정리하고, 공제의 개념을 상계에 관한 조문에 유추적용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검토해보면서 대상판결에서의 공제 및 상계와 관련한 논의를 마친다.
민법의 임대차계약과 관련된 조항들에서는 보증금에 관한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특별법인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 등에서 일부 규정을 두고 있지만(동법 제3조의2, 제7조, 제8조, 제12조), 구체적인 보증금의 성격에 대하여서는 판례가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대상판결 외 다수 판례에서는 “부동산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차관계가 종료되어 목적물을 반환하는 때까지 그 임대차관계에서 발생하는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보증금에 담보적 성격이 있음을 밝힌다.25) 이러한 보증금의 성격으로 인해 계약 종료 시에는 임대차보증금에 임차인의 채무가 자동 공제된다. 그리고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명도할 의무와 임대인이 명도 시까지 발생한 임차인의 채무를 공제한 나머지 보증금을 인도할 의무는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
다음으로 자동공제 법리 일반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한다. 판례에서는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차보증금과의 공제의 대상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연체차임 채권 뿐만 아니라 임대차계약 존속 중 목적물 사용으로 인한 손해배상 내지 부당이득반환채권,26) 임차목적물의 원상복구비용, 임대인이 연체차임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 발생하는 소송비용27)까지 공제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만 구체적인 기준에 대하여 이를 ‘임대차관계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임차인의 채무’로 한정한다.28) 따라서 단순히 임대차관계와 사실상 관련되어 있는 채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임대인의 구상금채권이 이에 해당한다.29)
관련한 문제로, 임대차보증금을 자동 공제하도록 하는 경우 지연손해금을 가산하여 손해배상하도록 하는 규정(제379조) 및 차임연체 시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제640조 및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8)과 배치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전자의 경우 임차인이 차임을 연체하면, 각 차임의 지급일 다음날부터 임차목적물 반환일까지 법정 이율(연 5%)로 지연손해금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보증금에 공제하는 과정에서 임차인의 부당한 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연손해금까지 보증금과 공제하도록 판시하고 있다.30)
후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640조가 임차인이 차임을 2기 이상 연체하면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8(이하 상임법)은 차임 연체액이 3기에 달하면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르면 임대차보증금 공제를 통해 충분히 손해가 전보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에게 해지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정당한지에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한다. 제640조와 상임법 제10조의8은 차임연체로 인해 발생하는 당사자간 신뢰관계 파괴를 근거로 하여 임대인의 해지권을 인정한다.31) 이 경우 자동 공제가 가능하게 된다면 해지권을 부여할 정도로 당사자 간 신뢰관계가 파괴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보증금이라는 담보가 있기 때문에 당장 계약을 해지할 필요성이 낮아질 수 있어 해지권을 인정하는 해당 조문의 효용성이 저하된다. 계약의 해제, 해지권의 부여는 존재했던 채권관계을 소멸시키는 사유인 만큼 최후수단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미 자동 공제라는 구제수단이 존재한다면 해지권을 부여하는 것의 실효도 덜할뿐더러 임대인의 권리를 불필요하게 과잉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하여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다음으로, 자동공제의 시점과 관련한 문제이다. 자동공제 시기와 관련하여 임대차계약에서는 자동공제 시점에 따라 공제해야 할 임차인의 채무액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공제의 시기가 늦어질수록 임차인의 불법점유에 따른 차임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차 뿐만 아니라 다른 계약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제해야 하는 일방 당사자의 채무액 또는 기타 금액이 달라지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동 공제의 시기는 공제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판례에서는 자동공제 시기를 어느 때로 판단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검토하도록 한다. 임대차계약에서의 공제와 관련하여서 대개 판례는 임대차계약 종료 전에는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당연히 공제되는 것은 아니며, 자동 공제가 가능한 때를 임대차계약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된 때로 보고 있다.32) 이를 통해 적어도 임대차보증금과 임대차계약과 관련된 임차인의 모든 채무가 자동 공제되는 시기는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후에 목적물까지 반환된 때일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임대차계약이 종료되기 이전에는 당연공제는 불가하더라도 공제한다는 별도의 의사표시를 통해 공제가 가능하다.33)
이러한 판시에서 미루어보았을 때, 임대차보증금이 자동 공제되는 시기를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차인이 목적물을 반환한 때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인다. 임차인이 목적물을 반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동 공제되도록 할 경우 자동 공제 시기로부터 목적물 반환 시기까지의 기간에 발생하는 차임채무의 정산이 곤란하여진다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제와 상계’ 목차에서 전술하였듯, 공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각 채무 간 견련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대상 판결의 공제 적용 자체에서 의문점을 표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 동일 계약에서 파생된 두 금전채권 간 정산이 필요하기에 공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의 경우 시기상 상계적상은 인정될 수 없었지만 견련성은 인정할 수 있었다. 또한 의사표시 해석론에 의하면 당사자의 묵시적 의사는 계약의 목적, 신의칙 및 거래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도출해내야 한다. 거래관행상 임대차보증금과 임차인의 채무는 공제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렇기에 임대인의 연체차임 채권 등이 공제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임대인의 의사를 도출해내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임대인이 상계의 의사표시를 한 다음에 채권을 소멸시키겠노라 예상했을 가능성보다,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도 정산이 될 것을 신뢰했을 것이라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다만 이러한 공제가 소멸시효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에 의문점이 생긴다. 이에 대해 판례에서는 제495조를 유추적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임차인이 차임연체 후에도 거래목적물 사용을 계속한 것에서 도출할 수 있는 묵시적 의사가 시효 중단 사유가 될 수 있을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유추적용을 통해 사례를 해결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나, 공제가 상계보다 더욱 느슨한 요건 아래에서 적용되는 개념인 만큼 무차별적으로 상계 관련 조문을 유추적용하도록 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선 대상판결에 있어서 시효 중단 사유가 존재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먼저 검토한 뒤, 공제를 상계 규정에 유추적용한 것이 적절하였는지 확인하도록 한다.
본건에 관하여, 연체차임에 대한 시효의 중단이나 시효이익의 포기 문제도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소멸시효 중단 사유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1, 2차 계약 중 발생한 연체차임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의 전제를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판결에 적용 가능할 만한 사유는 ‘승인’이며, 그 중에서도 임차인의 거래목적물 사용 계속이 소멸시효 중단 사유로서의 묵시적 승인으로 인정되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승인과 관련해서 민법에서는 특별히 그 정의를 설시하고 있지는 않고, 판례에서는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채무승인은 시효이익을 받는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채권을 상실하게 될 이 또는 그 대리인에 대하여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며, 그 표시의 방법은 아무런 형식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묵시적이건 명시적이건 묻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34)
대상판결의 경우 시효이익을 가진 자는 임차인이다. 그런 임차인이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한다. 종전 판례에서는 소멸시효의 승인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경우에 인정하고 있는데, 묵시적 승인이 인정되는 대표적인 경우로는 상대방 채권에 대하여 이자를 지급한 경우가 있다.35)
결국 시효이익을 받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권리를 어느정도 인지하여서 한 행동 또한 묵시적 승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의 지속, 그리고 그에 따른 연체차임의 존재를 인지하였기에 거래목적물 사용을 계속했다는 해석이 가능한지 검토할 수 있다. 임차인이 본인 차임의 연체 자체를 인지하였는지가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쟁점을 기반으로 확인하였을 때 보통의 계약 당사자의 입장에서 계약 당시 합의된 차임액이나 차임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여 연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는 희박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일반의 상식에 기반한다면,36) 임차인이 연체차임 채권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의 수는 생각하기 어렵다. 문제가 되는 것은 승인의 ‘표현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임차인의 거래목적물 사용 계속 정도라는 것인데, 이에 관해서는 개별 사안에 따라 임차인이 확실하게 임대인의 연체차임 채권 등을 승인하였다고 볼 만한 묵시적 의사표시를 증명하는 식으로 보충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만일 임차인의 거래목적물 사용 계속 자체가 묵시적 승인으로 인정된다면, 거의 모든 임대차계약 상 연체차임 채권의 소멸시효 개념이 사문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계속적 계약인 임대차계약의 특성상 양 당사자 간 채권채무 관계가 ‘임차인의 거주’라는 현상적인 형태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 소멸시효의 계속이 인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표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대상판결의 소멸시효의 중단 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검토해보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법리는 공제를 상계 규정에 유추적용하는 것이었다. 유추적용은 법문언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내용을 형성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정당성 검토가 필요하다.37) 관련하여 다음 목차에서 설명한다.
공제를 사안에 적용함에 있어서 제495조를 유추적용하도록 한 내용에 대하여 검토해보려 한다. 법문언에 직접적으로 나와있지 않은 ‘공제’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유추적용을 통해 법형성을 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제 개념을 상계 법문에 유추적용함을 통해서 대상판결에서는 소멸시효로 연체차임 채권이 소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제를 가능하도록 하는 법리를 설명한다.
판례는 유추적용을 함에 있어서, 법적 규율이 있는 사안과 없는 사안 간에 충분한 공통성 및 유사성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규범의 체계, 입법 의도와 목적 등에 비추어 유추적용이 정당하다고 평가되는 경우에 비로소 유추적용을 인정할 수 있다.38) 관련하여 상법 제64조의 상사시효 조문의 유추적용에 관하여 판단한 판례가 있다.39) 해당 판례에서는 상행위인 계약으로 인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달리 정하면서도 상행위인 계약의 무효로 인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였었다. 이는 상법 제64조를 상행위인 계약의 무효로 인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에 대해서도 유추적용함으로써 해결한 사안이다.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기존 계약의 이행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라도 동일하게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 보험계약 무효로 인한 보험료 반환채권의 경우 제662조에 따라 3년의 상사시효를 두는 등 신속한 처리가 강조되며 이는 보험자의 보험금 반환청구권에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들어 그 공통성 및 유사성을 인정하였다.40)
상계와 공제는 요건과 효과, 입법취지 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보였다. 두 개념 모두 당사자 간 정산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판례에서 밝힌 ‘당사자의 신뢰 및 묵시적 의사’가 제495조의 입법취지와도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 개념은 성립요건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핵심적으로는 공제의 적용범위가 더 넓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판례에 따르면 공제는 상계와 달리 압류 및 추심 채권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비판은 존재하나 양도된 채권에 있어서도 가능하다. 통상 상계보다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적용이 가능한 개념인 공제를 상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의문을 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상판결에서 공제를 유추적용한 것은 임대인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임대차보증금의 공제를 성립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필요한 것이었다. 압류, 양도된 채권에 있어서도 가능하도록 하는 공제의 강력한 담보적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소멸시효 완성 시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존 판례와의 개연성에 크게 이탈되지 않는다.
다만, 유추적용을 함에 있어서 그 기준이 명확해야 함은 분명하다. 적어도 판례 상에서 개별 사안에 따른 공제 적용의 적확한 틀을 밝혀두어야 한다고 본다. 공제 자체의 법적 개념을 형성하고, 상계가 가지고 있는 한계의 존재 이유를 파악한 후 고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판례에서 본래 공제의 의의를 왜곡하지 않도록 공제의 존재 의의와 목적을 밝히고, 이 사안에 공제를 적용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 명시와 공제 요건의 검토가 있어야 한다.
Ⅲ. 연속된 계약에서 갱신여부와 연속성의 판단
대상판결에는 연체차임 등의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인한 공제와 상계 뿐 아니라 계약의 연속성과 관련한 문제가 존재하였다. 1, 2, 3차 계약의 연속성에 관하여 원심판결과 대법원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 1심판결이 1, 2차 계약과 2, 3차 계약의 각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는 사안에서 당사자 간 계약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그 요지를 뒤집어 계약의 연속성을 전면 인정하였다.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계약의 연속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대상판결의 논지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을 분명히 설명하여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여야 추후 유사한 판례에서 계약의 연속성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사안에 있어서 판단 기준에 혼돈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계약의 연속성은 이론적으로 계약의 목적, 당사자의 의사, 거래관행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그 자체로 모호할뿐더러 계약의 성질과 개별 사안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묵시적 갱신의 개념을 살펴보며 법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적 방침에는 무엇이 있을지 검토해볼 것이다.
먼저 국내 민법에서의 갱신 제도를 살펴보도록 한다. 우리 법에서는 주임법 및 상임법 상에서 묵시적 갱신에 대해 규율한다. 기본적으로는 양 당사자의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도 임차인의 실거주가 유지되었으며 임대인이 이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 자동적으로 묵시적 갱신이 성립한다.41)
임대차 만료 후, 임차인의 점유 중, 임대인이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보지만, 존속기간만은 합의된 기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계약’으로 하여 변경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임차인 보호와 주거 안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는 현행 주임법 및 상임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42)
이러한 묵시적 갱신의 요건과 관련하여 각 당사자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의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판례 또한 비슷한 요지다. 이는 묵시적 갱신 여부 판단에 ‘법적 형식’ 뿐 아니라 당사자의 행동, 점유 실태, 명확한 의사표시 등 실질적 요소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43) 이 때 판례에서 핵심적으로 고려되는 사항 중 하나는 ‘임대인의 명확한 갱신 거절 의사표시’이다. 이러한 사실이 없는 경우 임차인이 계속 점유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묵시적 갱신이 성립된다고 본다.44) 그렇기에 ‘임대인의 명확한 갱신 거절 의사표시’를 어느 범주까지 파악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생긴다. 관련하여 ‘대상판결 검토’에서 자세히 후술한다.
다음으로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다. 주임법 상에서는 제6조의3, 상임법에서는 제10조에 그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도입 전에는 거래관행상 주택임대차의 경우 대부분 묵시적 갱신으로서 계약이 연장되었었다. 다만 묵시적 갱신의 경우 그 요건을 임대인이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임차인이 2개월 전까지 상호 간 계약 갱신 거절이나 조건 변경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로 하고 있는데, 이 때 유효하게 성립되는 계약 갱신 거절 또는 조건 변경 통지의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상판결의 경우와 같이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일부 반환한 경우 이를 ‘계약 갱신 거절’로 볼 수 있을 것인지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 것은 임차인의 입장에서 갱신 사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묵시적 갱신 법제 내에서 임대인으로 하여금 갱신 거절 사유를 밝히도록 하거나 갱신 거절의 시기를 정하는 등 그 판단 기준을 구체화할 수단들은 존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술할 해외 사례들에 비해 국내 법제의 경우 묵시적 갱신 여부를 판단할 정책적, 제도적 장치가 다소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고려한 입법으로 보인다.
더하여 종전의 거주 상태를 유지하며 묵시적 갱신을 통해 평화롭게 살아왔던 임차인 또한 갱신요구권을 행사하거나 불필요한 갱신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평가가 있다.45) 다만 이는 임차인 권익이 법제적으로 향상되는 과정에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임차인과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임대인의 갱신 거절은 법조문 상에서 주임법 제6조 및 제6조의3, 상임법 제10조에서 간접적으로 그 가능성을 설시해두었다. 주임법 상으로는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동법 제6조), 상임법 상으로는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동법 제10조 제4항)까지의 기간에 갱신 거절을 하여야 효력이 발생한다. 갱신 거절을 위해서는 묵시적 갱신으로 보는 것을 깨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46) 그렇지 않은 경우 임차인의 점유에 임대인이 묵인한 것으로 보아 묵시적 갱신이 효력을 가지게 된다.
임대인의 갱신 거절에 필요한 정당한 사유의 내용은 이렇다. 임대인의 실거주 및 친족의 거주, 그리고 임차인의 계약 위반이다. 임대인의 실거주 및 친족의 거주는 임대차목적물에 대한 임대인의 사용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임차인 계약 위반의 사유는 일방당사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계약 해지 개념과 유사한 취지로 파악할 수 있다.
임대인은 이러한 사유의 존재에 대하여 자신이 그 입증책임을 가진다.
국제적으로 임대차계약에서의 묵시적 갱신은 임차인 보호의 측면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계약 당사자가 갱신 제안을 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계약 상태가 유지되는 한 묵시적 갱신이 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한 원칙에 대응하여 임대인이 갱신 거절을 할 수 있는 사유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영미 및 독일, 캐나다, 일본 등 각국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거나 임차인 보호를 구조적으로 효과적이게 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노력의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목차에서는 독일, 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임대차 갱신 제도에 초점을 두어서 살펴본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계약’을 원칙으로 본다는 점에서 국내와 차별점이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계약으로 간주한다.47) 독일민법 제550조에서는 1년 이상의 임대차계약이 서면으로 체결되지 않은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로 본다. 이를 해지하는 것은 주거공간이 사용된 뒤 1년이 지난 이후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에서는 계약 갱신 성립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나, 임대인 해지권의 범위 문제가 발생한다.48)
이와 관련하여 독일민법은 통상해지와 특별해지로 나누어 규정한다. 통상해지는 임대인이 임대차관계를 종료시킬 만한 정당한 이익이 있는 경우에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독일민법 제573조 제1항 제1문). 이 때 정당한 이익으로 인정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임대인이 주거 공간을 자신이나 그의 가족 구성원 등의 주거로 사용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우리 주임법에서 규정하는 갱신 거절의 사유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특별해지란, 독일민법 제543조에 따라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임대차를 즉시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3개월의 기간을 두지 않고 해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상해지와 차이점이 있다. 대표적인 중대한 사유로는 임차인이 2개월 연속으로 차임을 미납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임대인에게 정당한 이익이 있거나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였음에도, 임대차 관계 종료 시 임차인 등이 대체 주거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가혹한 상황인 경우 임대인의 정당한 이익과 비교형량할 여지를 제공하며 임차인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만일 임차인의 가혹한 상황을 면하는 것이 보호할 이익으로서 더욱 가치가 크다면, 임차인은 계약의 계속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임대인이 두 번의 통지를 하여야만 임대주택 인도 청구(holdover proceedings petition)가 성립된다. 갱신 거절 통지와 종료 통지가 그 내용이다.49)
갱신 거절 통지는 임대차 종료 90일 내지 150일 전에 하여야 한다. 이는 일정한 내용상의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유효하다. 인도 청구가 직계가족의 실거주를 위한 사용이라는 점과, 임대주택을 인도해야 하는 날짜 등을 특정하도록 하고 있다.
종료 통지는 임대차 종료 30일 전에 해야 한다. 갱신 거절 통지를 하였으나 종료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통지를 하지 않거나 위법한 경우와 같이 인도청구의 기각 사유가 된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갱신 거절 통지가 부적법한 경우에 인도 청구의 위법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인도 청구 사실을 재판상 주장 및 입증하는 과정을 통해서 계약의 연속성 여부를 명확히 할 수 있다. 더하여 임차인이 선제적으로 인도청구 절차 금지를 청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갱신 거절이나 인도 청구 절차에 대해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부여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경우에는 자동 갱신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으며, 예외적으로 임차인 퇴거(eviction)50)의 경우 임대인의 명시적 갱신 거절을 요구하고 있다.51)
원칙적으로는 연속된 계약으로 파악하지만, 만일 임대인의 유효한 종료 통지가 있으며 임대차위원회에 대한 퇴거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계약의 연속성은 인정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임대인의 종료 통지 및 임대차위원회의 퇴거 절차를 까다롭게 설정하여, 계약의 연속성을 폭넓게 인정하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종료 통지가 유효하려면 종료 기일의 명시와 통지 기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통지 기간의 경우 국내에도 ‘임대차 종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통지하도록 하는 등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통지 시 종료 기일이 명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다음으로 퇴거 절차와 관련해서는 이렇다. 임대인은 임대차위원회에 대하여 임차인의 퇴거 명령을 신청하여야 한다. 이전에 임차인에게 종료 통지를 한 임대인만 신청이 가능하며, 통지 종료일로부터 30일이 지난 경우 신청할 수 없도록 하는 제한을 두었다. 신청이 접수된 경우 임대차위원회는 임대인이 주장한 퇴거의 정당한 사유를 판단하여 인용하거나 기각한다.
이처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임대인의 갱신 거절에 까다로운 요건과 절차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계약의 연속성을 광범위하게 인정함으로써 임차인의 주거안정 등을 보호하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차인보호가 주임법 등 임대차계약 관련 특별법에서 중요한 가치를 띄고, 여러 나라에서도 임차인보호를 중심으로 법률 체계가 형성되고 자리잡힌 만큼, 계약의 연속성 판단 기준 또한 광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갱신 거절의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판단하고 있는 것이 각국 임대차보호법의 특징이었다. 이를 토대로 국내 임대차보호법 상 묵시적 갱신의 성질과 갱신 거절의 범위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 제안한다.
우선, 임대인의 갱신 거절의 절차적 요건을 엄격하고 구체적으로 규율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현행 법령에서는 갱신 거절에 대하여 임대차기간 종료 6개월 이전부터 1개월 전52)까지 임차인에게 종료 사실을 통지만 한다면 갱신 거절의 효력이 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임대인의 실거주 등 임대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유까지 갱신 거절의 정당한 사유로 파악하고 있는 만큼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서 갱신 거절에 절차적 요건이 견고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통지 자체의 내용상 유효요건을 마련해두는 방식으로 계약의 연속성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법에서 활용하는 방식처럼 종료 기일을 명시한 통지에만 그 유효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방법이 있다. 종료 기일을 명시해 둔 경우 계약 해지에 대하여 임대인이 진정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파악할 소지도 높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준이 마련될 경우 계약 연속성 판단 기준을 분명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에서는 임대인의 통지 및 기타 계약의 연속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에 대하여 아직 절차상, 내용상의 요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은 실정이다. 현행으로 마련되어 있는 절차상, 내용상 요건은 다음과 같다. 임대인의 통지는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갱신 거절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그 사유를 밝혀야 한다. 더하여 갱신 거절이 임대차 기간 종료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1, 2차 계약 사이에 발생한 임대인의 ‘내용증명우편 발송 행위’가 임대인의 명확한 갱신 거절 통지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분석해볼 필요가 있으며, ‘계약 내용의 변경’의 범위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볼 수 있다.
비교법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대개의 국가들이 갱신 거절 및 퇴거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상판결에서의 내용증명우편 발송 행위 또한 쉽게 갱신 거절 통지로서 유효하게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국내법상으로도 내용증명우편 발송 행위가 임대차 종료 6개월 전에서 1개월 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임대차계약 만료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갱신 거절의 시기상 요건이 충족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판례가 이를 갱신 거절 통지로 바라보지 않은 것은 타당하다고 보인다.
다음으로, 본건 2, 3차 계약 간에 이루어진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의사표시를 담은 내용증명우편이나 그에 대한 임대인의 내용증명우편에 대해서 검토해 볼 수 있다. 임차인은 언제든지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기 때문에(상임법 제10조 제4항 및 주임법 제6조의2 제1항) 시기상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건물의 증축 및 보수 이후로 임차인이 관련 소를 취하하였기에 사정이 변경되기 전의 의사표시를 근거로 계약의 연속성을 인정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
한편, 대상판결이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고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 즉 서로의 신뢰와 합리적 기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검토할 수도 있다. 법정 형식이 아닌 당사자의 행동에 따라 유추 가능한 진의를 바탕으로 갱신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기에, 사안에 따른 유동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대상판결은 스스로 계약의 연속성 관련 사실관계를 검토하여 당사자 자신이 1, 2, 3차로 이어진 계약을 연속성 있는 계약이라고 파악하였을 것이라고 본 기타 제반 사정을 근거로 연속성을 인정하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계약 내용에 변경된 내용이 있음에도 대상판결에서는 묵시적 갱신을 인정한 바 있는데, 묵시적 갱신의 법정 효과가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의 재임차’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묵시적 갱신을 인정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문제가 생긴다. 이 때 ‘동일한 조건’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야만 대상판결의 계약의 연속성 인정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무상 계약의 연속성을 부정하여야 할 경우와 긍정하여야 할 경우를 모두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우선 ‘동일한 조건’의 범위에 차임은 해당하지 않음을 상임법 제10조 제3항의 단서 조항에서 알 수 있다. 해당 조문에서는 계약갱신은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체결한 것으로 하지만 차임은 증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차임의 변경에 대하여서는 갱신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차임에 대한 협의에 제한을 가한다는 취지는 아니므로 문제되지 않는다.
대상판결의 사례에서는 거래목적물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연속성을 인정하였다. 이에 대해서 어떤 법적 근거를 들 수 있는지 검토해 보도록 한다. 사례에서 1, 2차 계약 사이에서는 ‘식당 건물 및 카페 건물’에서 ‘식당 건물’로의 변경이 있었으며 2, 3차 계약 사이에서는 건물의 증축 및 보수가 있었다.
이를 ‘동일한 조건’으로 바라본 판례의 입장에 대해서,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거래목적물 변경을 계약의 변경이 아닌 계약관계 내 당사자 간 묵시적 의사의 합치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해당 사례에서의 변경은 ‘동일한 조건‘의 범위 내에 포섭이 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거래목적물의 변경까지도 당사자 간 묵시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 것은 아닐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계약 자체가 달라져서 발생하게 된 차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계약관계는 유지하되, 즉 동일성은 인정하되 판례가 이를 단순 계약관계 내에서 발생한 합의에 따른 변경으로 파악한 것일 수 있다. 실제 하급심 판례에서 거래목적물을 변경하는 내용의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한 사례가 종종 있는 것으로 보아53) 대상판결도 이러한 전제를 두고 판결하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목적물 변경에 대한 묵시적 의사를 판례에서 인정한다고 직접 판시한 바가 없음에도 이를 근거로 드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할 수 없다면, 이에 대하여서 판례가 해당 사례에 한하여 거래목적물의 본질적인 내용은 변경되지 않았다고 파악한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동일한 조건’의 범위를 거래목적물의 본질적인 내용만 동일하면 된다는 식의 해석으로 넓히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을 기초로 한다면 ‘거래목적물의 본질적인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또 남게 된다. 관련하여서 구체적인 기준과 판례의 경향을 일반화하는 데에 있어서는 기존에 연구된 바가 희소하여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임차인 보호의 성질을 강하게 띄는 계약 갱신의 성질로 미루어 보았을 때 묵시적 갱신의 허용 범위는 최대한 넓게 파악하는 것이 옳다. 대상판결의 경우 양 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증명우편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 당사자가 동일한 목적물54)에 대하여 임대차계약을 이어갔으므로 이 때에도 계약의 연속성은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Ⅳ. 결론
대상판결에 관하여 공제 법리 적용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공제 일반을 정리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대상판결의 공제 법리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계약의 연속성에 대한 기준까지 다루었다.
우선, 대상판결의 공제 적용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공제에 관한 기초 개념을 먼저 정리하였다. 우리 법의 공제는 주로 상계적상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안에 대하여 그 견련성을 내세워 공제를 적용함으로 상계와 유사한 효력을 내는 도구로서 사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로 선급금의 반환관계가 있는 법률관계인 경우에 견련관계의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본 판례가 다수였다.
그러나 공제는 상계보다 비교적 그 요건의 충족이 어렵지 않고, 법적으로 규율된 내용 또한 아니어서 개념의 해석이 곤란하기 때문에 공제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공제의 취지와 성질을 고려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 실제 판례 내에서도 상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제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판례상에서 공제를 사용할 수 있는 분명한 경우에 대해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에서 문제되었던 또다른 쟁점인 묵시적 갱신의 기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본래 임차인 보호의 명목으로 출현하게 된 묵시적 갱신의 성질에 맞게 그 허용 기준을 최대한 넓게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상판결인 대법원 판결에 동의하는 바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서도 법리의 적용 과정을 보다 더 세밀하게 설시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다.
공제의 법리가 아직까지 충분히 논의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필자의 이와 같은 시도는 분명 뚜렷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자동공제 법리와 임대차보호법 상 차임연체 시의 해지규정이 모순되는 문제, 그리고 대상판결이 어떠한 법적 근거로 사례와 같은 거래목적물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연속성을 인정한 것인지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본 면에서 이렇다 할 해답을 내놓기에는 한계가 있어 더 검토하지 못하였지만, 앞으로 이에 대하여 후속 연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