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북한은 2023년 12월 26일∼30일까지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10차회의1)에서 기존 합의되어 온 남북관계로서 ‘1민족 1국가’에 기초한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적대적 2국가”로 규정2)하였다. 또한 김여정 역시 남북관계를 종래와 같은 “북남관계”로 표시하지 않고, “조한관계”로 명시하는 등 북한 당국은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라는 입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3) 또한 2026년 2월 개최된 제9차 당대회에서도 한국은 “변함없는 적대적 실체”라면서 같은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 따라 남북관계에서 적어도 북한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남한에 대해 별개 국가 즉, 외국과 같은 법적 취급을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배경과 의도 및 향후 남북관계의 설정과 전망에 있어 법적 진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북한발 2국가론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면 박정희정부 시절인 1973년 이른바 ‘6·23선언’에서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북한에 대한 국가성 내지는 별개국가로서의 활동에 대한 논의가 먼저 시작되었다4)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는 남북관계에 대한 법치주의적 인식이 부족하여 이러한 상황이 우리 법체계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성명 이후 1991년에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여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게 되면서 국제법적 평가와 국내법적 평가가 상호 달라질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엔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 자체는 국가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남북간의 관계를 법적으로 진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분단국가로서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발 “적대적 2국가론”은 두 가지의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하겠다. 첫째는 남북관계를 “적대적”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2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종래에 남북이 합의해온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별개의 국가를 지향하겠다는 의미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북한에서 제기된 2국가론 이전에는 남북관계에 대해 국내에서 특수관계를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이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의 주장대로 남북이 국제법상 별개의 국가이므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과 2국가론은 우리 헌법상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이 대별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처음 2국가론이 제기된 당시 윤석열 정부는 수용 불가의 입장으로 이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한 우리 헌법과 맞지 않은 반헌법적 발상이며 북한의 핵 위협 앞에 평화적인 2국가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또한 2국가체제는 결국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게 될 것이므로 통일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적 논의가 아닌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가치와 원칙을 흔드는 일이라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2025.6 이재명 정부에 들어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라는 담화5)를 내었으나 우리 정부는 “남북간 신뢰회복을 위한 과정”을 강조하고, “실효적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6) 이와 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은‘적대적 2국가론’을 정면에서 반박하지는 않으면서도 실질에 있어서는 이에 동의하지 아니하고, 남북간 평화로운 관계 구축을 통해 점진적인 민족통일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II. 북한발 “적대적 2국가론”의 배경과 합의된 특수관계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북한의 관계는 분단국으로서의 특수관계에 있다. 그러나 2023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하면서 2024년 1월에는 헌법에 통일 및 남북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을 삭제하여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2024년 노동신문은 이를 반영하였다는 보도를 하였고, 2026년 3월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었지만 헌법에 실제로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여하튼 북한에서 제기된 적대적 2국가론은 통일 전 독일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동독의 상황7)과 유사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국가의 체제전환 및 붕괴, 남북간의 경제적·문화적 격차 심화 등 국가 전반적인 역량의 부족에 따라 흡수통일에 대한 방어 필요성 대두, 대북제재 장기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의 불발에 따른 내부 체제 결속필요 등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북한발 2국가론 제기 이전의 남북관계는 분단국가의 특수성에 기초하여 상호간 체제를 부정하고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관계에 있었으나,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그 직후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상호불가침과 화해 및 교류협력을 약속하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에 합의하였다. 이는 독일 통일전 서독 정부의 특수관계론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초로 남북간에 특수관계가 등장한 것은 1990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의 합의에 따라 유엔 가입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개최된 남북한 실무대표의 접촉에서였다. 이후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서문에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합의하여 담게 되었다. 이는 통일지향성, 잠정성이라는 방향과 통일이라는 목적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재통일의 상대방으로서 인정을 한 것이었다. 즉, 남북한이 원래 하나의 국가에서 분단된 분단국가이며 외견상 복수의 국가이지만 재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에 합의한 것이므로 “쌍방적 특수관계”였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특수관계는 국내법인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관계발전법”)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교류협력법”)에도 반영되었다. 우리 국내법은 남북간의 관계 및 교류협력에 관하여 모두 특수관계에 기초한 입법을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운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된 “쌍방적 특수관계”는 북한의 일방적 파기에 따라 현재 “일방적 특수관계”로 변모된 상태라 하겠다.
그러나 적대적 2국가론은 우선 유엔에 가입한 정상국가로서 북한의 국제적 지위와 상응할 수 없다. 왜냐면 유엔헌장 전문8)과 제1장9)은 국제사회의 평화를 애호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대치 및 무력적 분쟁의 가능성을 내포한 관계 설정은 유엔회원국으로서의 법적 지위와 조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정부는 북한에서 주장하는 적대적 2국가론에 따른“적대적”관계 해소와 “2국가”관계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통해 특수관계를 재조명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북한발 적대적 2국가론은 통일 전 동독의 그것과 유사성을 가진다. 동서독은 분단 후 국제법상 독일을 대표하는 국가가 어디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서로가 독일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라는 주장을 60년대 말까지 하였다.
동독 역시도 분단 초기에는 동독이 독일의 전통을 계승한 국가라고 주장하였다. 1949년 동독 헌법 1조는 “독일은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이다”, “독일 국적은 단지 하나”라고 규정하였으나 1953년 노동자 봉기 후 울브리히트 서기는 두 개의 국가론을 주장하고 1955년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 Nikita Sergeyevich Khrushchev)10) 동독 방문시 2국가설(Zwei-Staaten-Theorie)을 제시하였다. 동독은 서독에 의한 동독의 국제법적인 승인을 요구하였다. 1968년 헌법 전문에 “전체 독일 민족에게 ... 책임을 지는 독일민주공화국의 인민”을 헌법제정자라고 하고 있고, 제1조에서는 독일민주공화국이 독일 민족의 하나의 사회주의 국가(ein sozialistischer Staat deutscher Nation)라고 규정, 제8조 제2항의 통일조항에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기초위에 두 개의 독일 국가(beiden deutschen Staaten auf der Grundlage der Gleichberechtigung)라고 명문으로 규정11)하였다. 즉, 동독과 서독은 한 민족이지만 서로를 상호 독립적이고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국제법적으로) 외국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아울러 동독은 1974년 10월의 개정 헌법에서 1968년 동독헌법 제1조의 “독일민주공화국은 독일 민족의 하나의 사회주의 국가”를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와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수정, 헌법의 “통일 및 민족”이라는 단어를 모두 삭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사회주의 이념으로는 통일이 실현될 수 없다는 점, 경제력으로 서독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 오히려 서독에 의한 통일시도를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 브란트가 2국가론을 인정함에 따라(단독대표권의 포기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지만) 국가론에서 민족론으로 논의주제가 변경, 사회주의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동독내의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함 등이 거론된다. 즉, 사회주의로의 통일이 어려워지자 통일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화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단 이후 서독의 아데나워는 동독을 인정하지 않고 ‘힘의 우위’(Politik der Starke)로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구상을 하였는데 60년대 중반까지는 동독을 국가나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서독만이 독일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전체독일을 대표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서독연방정부만이 가진다고 주장(단독대표권(Alleinvertretungsanspurch))하였고, 기본법 제정 전문에 기본법 제정에 참여하는 것이 거부된 독일인(대표적으로는 동독의 독일인)을 대신하여 서독의 독일 국민들이 기본법을 제정하였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12) 1955년 9월 서독의 외무부 차관(Staatssekretar)이던 발터 할슈타인(Walter Hallstein)은 할슈타인 원칙(할슈타인 독트린, Hallstein Doctrine)을 발표하였는데 할슈타인 원칙은 독일내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는 서독이고, 서독만이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는바 동독을 국가로 승인한 국가와는 외교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외교원칙을 발표13)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69년 집권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면서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외교정책으로 추진하였다. 폴란드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죄를 하고 동독과의 교류를 촉진하는 등 동독과의 협력을 통하여 통일을 해야 한다는 정책을 추진하여 아데나워와는 다른 방식으로 통일에 대하여 접근하였다. 동독을 인정하면서 독일에 2개의 국가가 있음을 인정하는 2국가론을 수용하면서 1민족 2국가론(Ein Nation zwei Staaten Theorie)을 주장14)하였다. 그런데 여기서의 2국가론은 동독과 서독간의 특수한 관계를 의미하는 말로 서독이 동독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독일 내에서 대화상대로서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고 국제법적으로는 하나의 국가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15) 구체적으로는 동독에 대한 국제법적 국가승인을 거부하고 통일에 대비해서 민족의 단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한에서 제기된 적대적 2국가론은 통일 전 독일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동독의 상황과 유사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국가의 체제전환 및 붕괴, 남북간의 경제적·문화적 격차 심화, 제반 국력에서의 비교에 따라 남한 주도 흡수통일에 대한 체제방어의 필요성 대두, 대북제재 장기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의 불발 등에 따른 내부 체제 결속의 필요성 등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북한발 2국가론도 통일전 동서독과 유사한 상황적 배경이 있으나 우리의 경우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 갖는 역사성, 무게, 헌법 제정권력의 결단 등에 비추어 볼 때나 정치적 상황이 독일의 그것과는 다르다. 독일의 경우 독일이라는 한 개의 국가내에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개의 부분국가가 존재한다는 논리를 펼쳤고 ‘동서독기본조약’에 대해서도 서독 연방헌재의 합헌 결정이 있었으나 우리의 경우 연방국가로서의 전통이 없고 영토조항의 해석상 북한에 대해 국가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거나 별개 국가로서 인정하는 문제는 법리적으로 간단하지가 않다. 또한 1991년 남북이 합의한 특수관계에 대한 부정이나 특수관계를 대체할 다른 논리가 구비되지 않는 한 2국가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여진다. 현재 상태에서 보건대 북한발 적대적 2국가론은 통일 전 동독의 그것과 유사성을 가지며 이에 대한 서독의 대응을 참고로 우리의 독자적인 대응논리를 구축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시 동독은 서독에 대해 적대성을 전면에 내세웠다고 하기는 어렵다.
III. 북한법에 비추어 본 2국가론의 검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회주의헌법(이하, “북한헌법”)은 1948년 제정 당시에는 통일에 관한 조항이 부재하였는데 이는 국토분단의 현실이나 남한의 존재를 규범적으로는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제7조에서 “아직 토지개혁이 실시되지 아니한 조선 안의 지역에 있어서는 최고인민회의가 규정하는 시일에 이를 실시한다”고 규정하였고, 제103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는 서울시다”라고 각 규정하여 간접적으로는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었다.16) 위 제7조와 제103조는 당시 헌법에서 통일에 관한 조항으로 해석할 수 있고 분단에 대한 부정을 통해 통일지향성을 규정하고 있는 형태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제헌헌법에서부터 존재하였던 제3조 영토조항과 비교해볼 때 상대방에 대한 부정이나 분단을 부정하는 형태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라 하겠다.
1972년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 처음으로 개정하여 2019년 개정까지 그 골격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변화를 거쳐왔다. 통일과 관련하여 동 헌법 제5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외세를 물리치고 민주주의적 기초 우에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여 완전한 민족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남조선혁명론”에 근거한 통일방안을 헌법에 규범화한 것이라는 평가17)가 가능하다.
위 1972년 헌법은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1992년 개정 헌법부터 현행 헌법인 2019년 개정 헌법은 서문에서 “전체 조선 인민은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받들어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할 것”이라고 규정하여 통일을 헌법의 기본방향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즉, 북한헌법은 조국통일을 헌법적 사명이며 국가의 본질적 목표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방식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및 북한 주도의 체제통일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통일에 관한 조항인 제1장(정치) 제9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로 변화되었다. 여기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1972년 체결된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원칙이라는 점에서 남북간 통일에 대한 합의를 헌법에 반영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위 규정에서 말하는 “북반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할 때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과 통일하여 하나의 조선을 만들 때 그 혁명적 과업의 혁명기지로서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형식적으로는 북한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일에 관한 헌법의 전체 조항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볼 때 실질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헌법 제9조에서 말하는 ‘자주’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며, ‘평화’는 통일의 방법에 있어서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 방법에 의할 것이며, ‘민족대단결’이란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18) 그러나 이 원칙에 대해 북한은 ‘자주’를 주한민국 철수의 논리와 결부 짓고 ‘평화’를 군축과 북-미간 평화협정체결의 근거로, ‘민족대단결’을 남북주민의 자유접촉 등을 위한 사상적·제도적 장벽으로서 국가보안법 폐지의 근거로 해석19)하고 있어 남북협상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2023년 개정된 헌법은 제58조를 보충하여 핵보유국가임을 규정하였는데 이는 외부에 의한 비핵화 요구를 헌법위반적 요구라는 논리로 활용하면서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체계를 구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변화는 현재 대두된 2국가론으로 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하겠다.
김정은은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상 ‘북반부’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할 것과 함께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가이면서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유사시 대한민국을 점령, 공정, 수복하고 북한 영역에 편입하는 문제를 반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는 남북관계를 동족 및 통일이라는 프레임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는 프레임으로 페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이를 헌법에 규정함으로서 남북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것이다. 또한 ‘북반부’라는 용어의 삭제를 통해 남북관계에서 의식하는 남한의 존재를 완전히 별개화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삭제는 1992년 헌법에서 반영한 ‘7·4남북공동성명’도 부정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상기와 관련하여 북한 매체는 2024년 10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하였다고 보도하였으나 통일이나 민족에 대한 문구의 삭제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즉, 통일과 관련한 북한 헌법은 1972년부터 2019년까지는 평화통일, 민족대단결과 ‘하나의 조국’이라는 전제가 있었으나 2024년 1월 이후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통일’, ‘민족’을 삭제하고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다양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통일의 상대방인 ‘하나의 조국’에서 ‘두 개의 별개 국가’로 전환을 꾀하는 입법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상과 같은 북한 내 일련의 흐름은 아직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통일이나 남북교류협력 등에 대한 축소 및 삭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2국가 관련 법제화가 추진중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고 한 2024년 10월 7, 8일 직후 열흘여가 지난 10월 17일 조선중앙통신은 보도에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라 한국과 연결된 도로와 철길을 끊어버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한편, 2025년 8월 14일 김여정 담화는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가장 적대적인 위협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고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는 바 이 문구에 따르면 아직 헌법개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 북한의 노동당 규약을 살펴봄에 있어 먼저 북한의 실질적 규범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헌법에서 헌법이 국가 최고의 법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당우위 국가로서의 면모를 규범적으로도 반영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보통 당규약-상급당의 지시-헌법-최고인민회의 상임위 결정 등-법률-내각의 결정 순으로 규범체계를 두고 있으나 북한의 경우 김정은의 명령-김일성, 김정일 교시-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보다 상위의 규범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로동당 규약의 효력은 헌법 제11조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당의 령도란 결국 당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은의 의사에 기인하므로 초헌법적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통일에 관한 사항도 헌법규정이나 개정여부에 관계없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북한 규범체계는 헌법이 최고의 규범이라고 하면서도 당의 영도에 따라 국가가 활동한다는 규정이 서로 얽혀 규범체계에 혼란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2016년에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규약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남조선혁명론과 우리민족끼리라는 통일전선 노선을 명확히 한 것이다. 즉, 이것은 당 규범차원에서 민족과 통일을 강조한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2021년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는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 수행”이라는 문구가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목적을 변경하고 통일에 관하여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평화통일”에서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 군사적 위협을 제압.....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로 바꾸었다. 이는 남조선혁명론에 대한 정책적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우리민족끼리”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국방력과 군사적 위협을 제압한다는 프레임을 대남파트의 전면에 내세우게 된 변화로서 남북관계의 변화를 암시한 것이었다.
위와 같은 노동당규약의 통일관련 서문의 변화는 정체성에 있어 민족이 아닌 국가대 국가의 프레임으로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고, 헌법에서 북반부,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대한 삭제를 지시한 것은 남북을 하나의 민족 내부가 아닌 두 개의 국가로 보려는 규범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대남기구의 폐지, 경의선 물리적 차단 등의 실질적 조치로 나타났다.
북한에서 통일 내지 남북관계에 관한 사항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기본법이라 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남북경협과 관련하여 “북남경제협력법”을 필두로 “개성공업지구법” 및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이 있었는데 모두 경제와 관련한 것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북한이 경제적 이익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나타낸다고 하겠다. 여하튼 북한의 남북관련 법률은 모두 남북간 경협을 중심으로 규율하는 법률이었지만 2024년 2월 7일 조선중앙통신은 “북남경제협력법”과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및 시행규정과 관련 합의서를 폐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특히 “북남경제협력법”은 남북경협에 관한 기본법적 지위를 갖고 있었으므로 이를 폐지한 것은 남북간 경협을 규율한 제도적 장치를 제거한 것으로 북한이 그간 중시해온 남북경협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물론 이 법률을 폐지하기 이전에도 남북관계나 경협에 관한 법률에 있어서 입법밀도가 높았다는 평가는 하기 어렵겠으나 이러한 조치가 남북간의 경협에 대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북한 당국의 의지를 확인한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법제정사업을 통해 당국의 정책적 의지를 내보여 왔던 그간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남북관계 법률의 폐지는 그 의사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두 국가노선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핵 보유국 관련 규정이다.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제정하였는데 이는 헌법 제91조 제4호에 따라 “국가의 대내외정책의 기본원칙” 수립조항을 근거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내용으로는 핵무력의 사명으로서 핵무력이 전쟁을 억제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는 목적을 정하고 핵무력의 구성, 지휘통제, 핵무기사용결정의 집행으로서 핵무기사용명령을 즉시 집행할 것을 정하였으며 핵무기의 사용원칙으로서 “외부의 침략과 공격에 대처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한 이 나라들을 상대20)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정하였다. 그리고 핵무기사용의 원칙으로서, 5가지 사유를 한정하여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명문화하였다.
또한 핵무기의 안전한 유지관리에 관한 사항과 핵무기 또는 관련 핵기술, 설비, 물질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는 그 내용이나 절차적인 측면 및 최고인민회의의 결의 형태로 제시되었다는 점 등에서 볼 때 법률적 위상을 가졌다고 할 여지가 있겠다. 그러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일반적인 법률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여 결의문 내지 강령으로 볼 수 있다. 우리식으로는 다소 납득이 곤란한 측면이 있지만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는 북한에서 절차적으로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결정하여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북한의 정치체제 등에서 볼 때 당의 방침으로서 시종일관 고수할 원칙적인 사항으로서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과 같은 원칙적 규범으로 법률 이상의 위상을 가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규범의 정립은 2023년 개정헌법 제58조의 핵보유국 규정과 더불어 최근 두 국가론과 관련한 입법정책의 선상에 있는 복선의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교시란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내리는 지시, 가르침, 지침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로서 실질적인 효력은 헌법이나 당규약보다 상위의 규범으로 인식되고 집행된다.
교시의 실질적 규범력은 김일성, 김정일의 그것 보다 김정은의 지시가 보다 규범력이 강한 것이라 하겠다.
교시에 나타난 통일과 관련한 언급은 먼저 김일성은 민족해방과 조국 통일을 핵심의 과업으로 삼고 무력으로 통일을 완성하겠다는 것이었고, 김정일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3대 원칙을 강조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문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였다. 즉,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통일에 대한 교시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통일은 북한 주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 들어 통일에 관한 교시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왜냐면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부터는 한국의 보수정권과 대화나 교류가 부진하였으나 2018년 이후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 및 세 차례의 정상회담 등을 통한 대남 유화적 메시지가 많았고 2019년 하노이회담 노딜 이후부터 2023년말에 이르는 동안은 대남비방과 적대적 메시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교시에 일관성이 결여되는 과정이 김정은 집권 이후 반복된 것이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의 경우 자신을 신격화, 우상화하여 교시에 절대적 효력을 부여한데 비해 김정은은 그러한 방향보다는 법률제정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의 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교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선대의 그것과 같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헌법이나 로동당규약보다 교시의 규범력 우위를 부여한 논리가 약화된 상황이므로 북한주민에 대한 구속력 내지 설득력도 약화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당수이자 국무위원장으로서의 김정은 교시는 여전히 강한 효력을 지님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간에 큰 의미를 갖는 합의서로서 1972년에 체결된 “7·4남북공동성명” 및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남북정상간 합의서 등 “합의서”로 체결된 건수는 168건, “공동보도문”은 90건이 있다.
2국가론과 관련하여 북한은 남북경제협력과 관련된 합의서 및 남북기본합의서를 폐기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기존 북한은 남북합의서의 일부에 대해 “조약법”21)에 따라 조약과 같은 절차를 규정하여 부분적으로는 비준과 최고인민회의의 동의를 받기도 하였다.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관련하여 우리 법원과 헌재는 조약이 아닌 신사협정에 그치는 것으로 판단되기는 하였지만 조약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어느 일방이 폐기할 수 없다. 조약은 국가간 합의의 결과물이므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국제법의 기본 원칙에 따라 모든 당사국이 성실하게 준수할 의무가 있고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에 따라 폐기가 가능한 경우는 정해져 있다. 남북합의서가 조약은 아니지만 조약에 준하여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일방적 합의서 폐기에 대해서 법적 책임보다는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른 도의적 책임이나 정치적 책임 등을 추궁할 수 있을 뿐이라 하겠다. 아울러 남북이 특수관계로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우리 사법부는 법적 효력이 없는 신사협정이라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특수관계로의 복귀를 촉구할 수 있는 명문이 약하다는 문제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남북 양자 간이 아닌 국제사회 다자가 참여하는 틀 속에서 남북교류협력이 묶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간 남북은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특수관계로 정립하고 있는데 이 특수관계는 통일까지의 과도기간 동안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대원칙인 동시에 모든 남북한간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원칙과 기준으로 설명되어 왔다.22) 그러나 특수관계의 일방이 분단국 형태의 특성인 상호관계의 비국가성이라는 잠정성을 벗어나 완전한 국가성을 선언하여 특수관계에서 이탈하는 경우 이는 국제법상 일방행위(unilateral act)로서 법적 효과를 발생하며 타방이 그 합법성을 부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23)이에 대한 대응논리가 필요하다.
IV. 2국가론에 대한 국내법과 남북관계
우리 헌법은 통일과 남북관계에 관하여 전문과 제3조 영토조항 및 제4조 평화통일조항을 필두로 총 8개의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 헌법상 8개 조항은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통일을 무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추구할 것과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반영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할 것을 주문하는 공통성을 도출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직접적인 통일 및 남북관계에 대한 규정은 제3조 영토조항과 제4조 평화통일 조항이다. 이하에서 순서대로 검토하고자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토조항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북한지역에 대해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문언적으로 해석하면 북한지역에는 우리 주권이 미치지만 실효적 지배를 하지 못하는 주권행사의 장해상태로 보게되고 북한정권은 불법점거 집단이 된다.
영토조항의 본질적 의미는 그 나라의 영토의 범위를 획정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 제헌당시 논의24)를 보면 남북분단을 인정하지 않고 통일을 감안하여 규정하게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제국(舊韓帝國)의 판도로 정”한다고 하였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헌장” 제2조는 이를 받아 “대한민국의 강토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함”이라고 규정한데 이어 1948년 제헌헌법에도 현행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제헌과정에서는 제3조 영토조항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기도 하였으나 헌법제정과정에 비추어 볼 때 영토조항은 헌법이 효력을 미치는 범위를 규정한 것을 넘어 통일의 근거 조항이 될 수 있다고 보인다.25) 당시 분단을 전제로 한 임시헌법안들은 헌법의 실효적 범위를 38도선 이하로 명확히 한 반면, 통일정부수립을 목표로 한 헌법들은 남북한 모든 도(13도)를 표현하거나 조선반도 등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이는 통일 국가 수립시 영토의 범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26) 아울러 헌법안 작성에 참여한 유진오는 영토조항에 대해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 전체에 시행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하여 특히 본조를 설치한 것이다.”27)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아도 한반도는 고유의 영토에 해당하는 용어이고 임시정부 헌법에서 규정된 “고유의 판도”와 실질적으로는 같은 용어로 해석이 가능하므로 영토조항에 따라 대한제국-임시정부-대한민국의 동일성과 계속성은 헌법상 인정된다.28)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우리의 영토조항은 통일국가 수립을 염두에 둔 헌법 제정권력의 의지로 읽을 수 있고, 이는 단순한 물리적 영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국민 공동체의 기반으로서 영역의 온전성과 지속성을 담보하여야 하는 조항으로서 중요한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토의 ‘온전성’(integrity)이란 본래적 의미의 영토로서 물리적 공간적 요소인 경계와 그 범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영역이 공동체의 기반으로서 그 기반이 파괴, 소멸되지 않고 존속하여야 함29)을 말한다.
따라서 헌법 제3조는 분단상태에서 영역의 온전성을 회복하라는 통일을 명령하는 조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제3조는 통일과정과 그 이후에도 우리 공동체의 영속성을 위하여 그대로 두어야할 규정이라는 주장30)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제3조는 법조계(대한변협) 및 헌법학자간 논의(한국헌법학회) 및 헌법 제정권력인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개헌 논의과정에서 볼 때에도 그대로 존치하여야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제3조는 개헌보다는 적극적 해석을 통해 그리고 제4조와의 관련성 속에서 통일에 대한 우리의 헌법적 사명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이는 규범적인 당위의 표현이다.
통일 관련 조문과 함께 영토조항의 개정에 대한 검토를 한 국회의 연구보고서로서 제18대 국회의 헌법연구 자문위원회의 “헌법연구 자문위원회 결과보고서”, 제19대 국회 헌법개정 자문위원회의 “활동결과보고서1-3”, 제20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의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 제21대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결과보고서”를 종합하여 볼 때 모두 영토조항은 통일에 직결되는 조항으로서 “영토”에 대한 용어를 “영토, 영해, 영공”으로 나누어 제시하거나 “영역”으로 수정하자는 정도가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없으므로 현행과 같이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의견으로 나타났다.31)
이들 보고서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 검토의견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데, 현행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이유는 영토조항이 통일의 근거조항이라는 해석을 하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는 점을 보더라도 영토조항에 근거하여 통일의 당위성이 있는 것이며 통일을 포기하거나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분단을 고착화하는 정책은 위헌성이 커진다고 하겠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통일의 과정과 방법 및 원칙에 관한 준엄한 사명을 규정한 것이다. 또한 남북 분단을 인식하고 분단의 종식을 이념과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통일의 전 과정을 지배하는 헌법규범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므로 헌법상의 통일조항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통일의 헌법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그에 대한 헌법적 통제가 수반될 것이다.32)
제4조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우리 헌법재판소33)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 사유재산제, 선거제도, 시장경제”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같은 결정에서 북한에 대한 관계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고 하였고 대법원34)은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남북한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로서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내린 북한에 대한 법적지위 및 관계에 대한 판례에서 볼 때 이는 통일의 당위성을 규정한 제3조를 전제하고 통일의 방법과 원칙에 대한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제3조와 제4조를 문언적 해석에 입각하여 상호 모순된다는 입장이 있었고 이에 따라 제3조를 우선해야 한다거나 제4조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양 조항 중 어느 하나를 우선적으로 해석하여 한 조항을 사문화하는 방식의 해석이나 삭제를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데 많은 공감35)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간의 관계설정 및 제반 정책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소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국가로의 관계설정이 분단을 고착화하고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면 위헌이 됨을 말한다고 하겠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헌법은 “추상성과 개방성에 기초하여 정치규범성과 포괄성, 최고규범성을 가지므로 다양한 해석방법을 요하게 되고, 그 때문에 남북문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특정의 한 두 조문이 아닌 헌법제정권력의 결단과 헌법정신, 여타 조문과의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36) 즉, 헌법은 성립되면 정치를 규율하는 통제규범으로 기능하고 이러한 정치규범성으로 인하여 헌법의 해석에는 다른 법규범의 해석과는 달리 정치적 판단이 상대적으로 넓어질 수 있는 정당성을 갖는다.37) 그렇다면 남북관계에 관한 기본규범은 제3조와 제4조 양 조항의 관계로만 규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남북이 처한 국내외적 정치상황과 함께 헌법전문을 비롯하여 통일에 관한 제조항의 취지를 종합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우리 헌법상 통일을 규정한 조항은 모두 평화와 국민의 의사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 획득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에 관한 헌법조항의 해석에 기인하여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통일을 지향하는 제도 구축 및 정책추진에 대해서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제3조와 제4조의 관계에 있어 제3조는 물리적 영역뿐만 아니라 영토의 온전성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분단을 부정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규정으로 보고, 제4조는 통일에 관한 국가의 목표를 설정함과 동시에 그 방식을 정하는 규정으로 해석하여 양 조항이 지향하는 바가 근본적으로 같음을 인식하면 양 조항은 상호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다.38)
우리 헌법에서는 이른바 국가의 3요소라 일컫는 주권(제1조), 국민(제2조), 영토(제3조)에 대한 규정을 각 순서대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후 통일에 관한 조항을 제4조에 배치하고 있다. 그만큼 통일에 대한 사항은 국가의 이정표이며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성을 감안한 조치라 하겠다.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동포애”를 규정하여 대한민국이 갖는 국가로서의 정통성에 입각하여 통일을 지향함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 헌재는 설립 초기부터 헌법전문의 규범적 성격과 효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헌법의 본질적 기본원리에 기초하여 모든 법령해석의 기준이 되고 모든 국가와 국민이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최고의 가치규범이라고 판단하여 헌법 전문의 규범성을 인정하고 있다.39)
제66조 제3항은 대통령의 의무로서 평화적 통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평화통일의 원칙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에 구체적 의무로 부과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40) 여기서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선된 법적 신분에 따라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강력하게 부여된 공인으로서 헌법에 따라 평화적인 방법을 규정한 우리 헌법의 틀 내에서 통일정책 수립과 집행을 명령하는 것이므로 통일을 포기하거나 비민주적 방식의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
제69조는 대통령의 취임선서로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의 의무에 대해 헌법을 준수할 것, 국가를 보위할 것,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의무와 더불어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사항을 정하고 있다. 취임선서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특별한 법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의 수행 업무 가운데 국민 앞에 직접 선서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직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고41) 그 가운데 통일에 대한 의무는 평화적 통일이라는 어휘를 재차 사용하면서 국가의 평화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주된 목적과 방향으로 제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제92조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설치에 관한 규정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설치되는 임의적 자문기구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민주평통은 대통령이 의장이 되는 헌법 기관이며 막대한 예산이 사용되는 만큼 국민의 통일에 대한 공감대 확산과 여론수렴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재정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헌법에서 민주평통을 설치한 의도는 통일정책 추진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유지하도록 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밖에도 평화는 단순히 통일에 국한되는 원리가 아니라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을 지도하는 것으로서의 지위를 지니며 헌법 그 자체가 다수나 강자에 의한 소수자 및 약자의 희생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평화의 헌법적 가치는 헌법조항을 포함하여 모든 법령을 해석하는 규범적 기준이 된다는 점, 모든 국가작용을 규율하여 입법의 방향과 지침을 제시함으로서 입법권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 있다.42) 그리고 평화는 원천적으로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으로 정당한지 여부를 심사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평화가 갖는 중대성에 따라 폭력적 지배를 배척하고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통일정책은 헌법상 용인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통일정책과 관련 법제 및 시책은 이에 구속된다.
현재 국내 남북관계에 관한 법률로서는 “남북관계발전법”, “남북교류협력법”, “남북협력기금법”,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북한인권법”, “통일교육지원법”,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남북관계를 직접 규정하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발전법”과 “남북교류협력법” 두 가지이다. 그리고 남북간의 교류나 협력 및 공동사업 추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국내 각종 행정법령에 있어 북한에 대한 교류협력 및 지원을 위한 특칙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를 분석하여 북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우리 법제의 특징과 문제점 및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도출하여 향후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남북간은 분단 이후 상호 체제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른바 ‘정통성 투쟁’을 벌여왔다. 동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기본적인 법률은 국가보안법이었고 교류협력에 국한하여 “남북교류협력법”이 적용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2000년 6월 15일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협력에서 나아가 남북관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남북관계의 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제정한 법률이 바로 남북관계발전법이다.
동 법률에서 남북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설정한 직접적인 규정은 제3조로서 제1항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선언하고 있다.
제1항에서 나타난 특수관계는 통일전 동서독의 관계설정을 참고한 것으로 남북관계는 독일의 그것과 같이 하나의 국가에서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된 국가이므로 상호 정통성 투쟁을 겪으면서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설정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논리적·법리적 모순을 애시당초 노정할 수 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일 국가내의 법질서로 보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점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는 분단국가43)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수성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제3조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면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정립하고 있으나 상술한 바와 같은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특수관계는 상황에 따라 법적용과 해석의 유동성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국내외 정치적 환경에 따라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가령, 대표적인 문제로서 남북합의의 산물인 남북합의서의 경우 조약인지 국내법인지 등 법적 성격이 모호하여 준수되기 어려운 한계가 나타난다. 또 북한주민의 법적 지위가 우리 헌법상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북한 헌법상은 북한 국민이라는 이중적 지위가 나타나 제3국에서 이들의 국적이 문제된다.
따라서 재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관계는 모호한 특수관계 보다는 차라리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설정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지적도 현출된다. 그러나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설정할 경우 현행 헌법상 제3조 영토조항 및 제4조 통일조항에도 반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여타 통일을 명령한 여러 헌법규정과 전문에도 반하는 위헌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행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입각하여 현재로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에 준하는 관계 설정 및 평화적 공존을 통해 상호 의존성을 높여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설정하여야 한다. 특히 2023년 말부터 북한에서 제기된 “교전중인 적대적 2국가”관계에서는 우선적으로 “교전중”인 관계44)를 해소하여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 “적대성”을 해소한 후에 평화적 공존관계를 설정하여 관계를 관리해 나아가는 것이 헌법과 남북관계발전법에 비추어 타당하다고 하겠다.
현재 이 법률은 남북관계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변화된 시대를 반영하는데 일정의 한계를 가진다는 지적과 남북합의서의 국내법적 효력 창출에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 등을 사유로 남북관계기본법을 새롭게 제정하거나 동법률의 대폭적인 개정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시대의 남북관계에 관한 기본법은 헌법적 사명인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함께 요구받고 있는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할 한반도의 일정기간 평화적 공존의 시대에 대한 규율밀도를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동 법률은 제1조에서 “군사분계선 이남지역과 그 이북지역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남북관계 설정이라는 측면에 비추어보면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 본 남북관계발전법이 남북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규율한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남북관계에 관한 기본법으로 일단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남북교류협력법은 먼저 제정되긴 하였으나 남북관계발전법에서 정한 관계 내에서 교류와 협력을 하기 위한 절차법이며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교류협력에 관한 절차 뿐만 아니라 체계, 거래의 원칙 등을 함께 규율하고 있다.
동 법률에서 남북관계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은 제12조에서 남북간의 거래를 민족내부의 거래로 한다는 부분이며 이는 남북관계발전법 제3조와도 같이 규정되어 있다. 이는 통상의 국가대 국가의 관계가 아님을 일찍이 규정한 것이며, 1991년 남북간 최초로 법적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특수관계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남북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격이 변한다면 민족내부 거래를 기초로 하는 이 법의 교류협력에 관한 규정은 대폭적인 수정이 요구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남북교류협력법 역시도 남북관계는 별개의 국가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성을 갖는 특수한 형태의 관계에 있음을 토대로 법률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남북협력기금법”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남북 간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남북협력기금을 설치하고 남북협력기금의 운용과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 법률 제2조에서는 “통상”이나 “무역”이라는 용어 대신 “교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외국과의 그것과 구분하고 있다. 아울러 제8조45) 기금의 용도에 관한 규정은 남북간 통일을 지향점으로 민족신뢰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목적으로 기금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 및 통일지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동법률에서 말하는 ‘통일’개념은 헌법과 남북교류협력법상의 그것과 동일하여 종속되는 개념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 하겠다.
동법률은 “통일교육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남북관계가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기 보다는 통일교육을 통해 통일을 지향하는 수단적 성격의 법률로 평가할 수 있다.
제3조 통일교육의 기본원칙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남북관계에서 평화와 통일을 강조한다. 즉, 통일이라는 목표를 두고 과정에서 평화를 그리고 수단으로서도 평화를 규정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제10조의246) 통일교육위원 위촉에 관한 조항은 평화통일 기반조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47)
특히 동 법률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교육과 기본계획 수립 등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법치주의, 시장경제, 복수정당제, 권력분립, 기본권 존중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일찍이 정립되었다.48) 이는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남북관계를 이러한 요소에 의하여 관리하면서 정책과 입법을 추진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헌재는 2014년 통진당에 관한 위헌정당해산심판49)에서 “헌법 제8조 제4항이 의미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 등이 현행 헌법상 주요한 요소”라면서 과거의 결정과 비슷한 취지의 정립을 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북은 국가를 가입자격으로 하는 유엔에 별개의 국가로 가입해 있는 만큼 국제사회에서 별개의 국가로 인정50)받고 있으며 각각 외국과 수교를 맺고 독자적인 국제법 주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2국가론은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특히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는 국가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및 미국, 일본 등은 북한이 유엔에 가입해 있다고 하여도 개별적 국가승인을 취하지 않고 있어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에 의한 별개국가의 주장에 대해 우리 우방인 국가들이 이를 인정하게 될 경우를 상정하거나 대비한 법적 검토가 사전에 이루어질 필요도 있다. 가령, 일본만하여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수상과 아베신조(安倍晋三) 전 수상은 일본인 납북자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국교수립 정상화 준비를 한바 있고 이는 현재도 멈추어 있지 않다.51) 아울러 미국의 경우도 북한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북한과의 국교수립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우리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은 것은 법률적 문제나 북한이 국가로서의 객관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직 북한을 국가로 승인함에 따른 법적 효과의 발생을 원하지 않는다는 외교 정책적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52)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결국 남북관계는 국제법상 “분단국가 이론”에 따라 설명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으나 한반도 주변의 정세변화나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분단국가론에 따라 남북관계를 해석해 나가는 것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볼 때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하고 있는 특수관계를 파기하고 일탈하는 경우 남북 사이에 법적으로 이를 원상복구하도록 북한에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부재하다. 또한 상술하였듯 우리 헌재와 대법원은 특수관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질을 단지 신사협정(Gentleman Agreement)으로 판단하였기에 북한이 이탈하여도 신의칙에 반할 뿐이지 이를 법적으로 원용하기는 어렵고 정치적 주장으로 치환될 수 밖에 없다.
분단국가란 원래 통일된 국가에서 분단되어 현재는 복수의 주권국가로 성립되어 있으나, 언젠가는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분단국 상호간에는 국가승인을 하지 않으며, 공식 외교관계도 수립하지 않는다. 분단 상대방을 외국으로 보지 않으며, 양자간의 경계를 국제법상의 국경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3국의 입장에서 볼 때 적어도 외교적으로는 분단국이 특별한 법적 현상이 아니다. 국제사회 대부분의 국가들은 분단국 양측을 별개의 독립 주권국가로 승인한다. 다만 분단국이 표방하는 통일의 목표를 국제법상 다른 국가에 대한 병합의사로 보지 않는다.
남북한은 양측이 각각 자신만이 한반도에 존속하던 구 국가를 계승하고, 자신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53)54)라고 주장하였다.
1986년 8월 8일 한국 정부는 대한제국이 체결한 다자조약 중 이미 다른 조약으로 대체되었거나 실효되었다고 판단되는 조약을 제외한 3건의 조약이 대한민국에 대하여도 계속 효력이 있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이에 새로운 조약 번호를 부여하고 관보에 공포하였다. 이러한 발표는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정신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 이전에도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의 수탁국인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을 대한제국의 법적 승계자로 판단하고 이미 이 조약의 당사국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1900년 1월 1일 가입한 “만국우편연합”의 경우 광복 후 대한민국은 신규 가입의 절차를 밟지 않고, 정부 수립 후 자동으로 구 회원국 자격의 회복을 인정받았다.55)
또한 대한제국 시절 일부의 국가는 국내에 외교공관을 개설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사용중인 주한 영국 대사관과 주한 미국 대사관저는 대한제국 시절부터 공관으로 사용되었다. 대한제국 시절 주한 러시아 공관은 폐허가 되어 재개발 후 대부분 민간에 분양되었다. 이후 구 소련과 외교관계가 개설된 이후 대한제국 시절 구 러시아 공관의 소유권 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공관부지의 제공과 2,750만 달러를 추가 지급하고 문제를 해결한바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과거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국제법적 책임을 다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이 대한제국과의 동일성을 주장하는지는 남한에 비해 명확하지 않다. 다만, 국적법 제2조 제1호는 “공화국 창건 이전에 조선의 국적을 소유하였던 조선 사람과 그 자녀”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한제국과의 동일성을 인정하는 듯 하지만 국기로서 태극기를 폐지하고 새로운 국기를 채택한 사정이나 북한의 국제법 교과서56) 등에 나타난 기술을 보면 봉건국가인 조선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국가의 탄생으로 보는 듯한 부분도 있다.57)
이상을 통해 볼 때 북한도 최소한 대한제국과의 연결성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새롭게 세워진 합법국가로 정의하는 경우에는 ‘두 국가론’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근거로 채용하게 될 것이다. 대한제국과의 연결성을 주장하는 것은 남한이 대한제국을 계승한 국제법적 조치가 자신들의 그것보다 체계정당성을 가진 것이었으므로 ‘새로운 국가형성’이라는 주장이 향후 지향할 ‘두 국가론’에 있어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기초로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법률에서는 북한에 대해 외국과는 다른 취급을 가하고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국내 남북관계의 근간을 규율하는 “남북관계발전법”이나 “남북교류협력법”모두 특수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공개된 북한헌법 제9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우리 헌법체계에서 북한을 온전한 별개의 국가 즉, 외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헌법개정 없이는 쉽지 않다고 판단된다.
최근 북한이 두 국가론을 제기하였어도 이는 교전상태의 확인과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개념이므로 정상적인 국가승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현재까지 통일에 대한 우리 헌법규정은 국민의 의사도 중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 포기, 군사적 긴장해소, 교류협력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의사에 따른 국가승인은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헌법만이 아니라 남북관계에 관한 법률 역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입법권이 있는 것이므로 국민의 의사는 투영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국가승인에 대한 정해진 룰이 존재하지는 않으므로 묵시적으로 국가승인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법률적 행위는 가급적 삼가되어야 한다. 다만, 현재까지 남북간의 회담 관행이나 국제사회에서의 활동은 북한에 대한 묵시적 국가성을 인정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향후 남북간에는 지금까지 이루어져온 국제사회에서의 입장을 크게 벗어나는 것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남·북한이 1991.9.17.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또 남·북한의 정부 당국자가 같은 해 12.13. 소위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여 이것이 발효되었는 바 이러한 사실들이 앞의 결정내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하여 보건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곧 남·북한 상호 간에 국가승인의 효력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58)하였다.
1972년에 동서독간 체결한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은 서독과 동독이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정상적인 선린관계를 발전시키고(제1조)59), 두 국가 중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대표하거나 대리할 수 없으며(제4조)60), 각 국가의 주권이 자국 영토로 제한된다는 원칙을 전제로 각 국가의 대내외 사안에서 독립성과 자주성을 존중한다(제6조)61)고 규정하였다.62)
이 기본합의서는 사실상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외교관계를 맺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는데63) 이는 곧 동독 당국의 ‘2국가론’을 뒷받침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64) 실제로 1972년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독은 1974년에 헌법개정을 통하여 당시까지 동독헌법상 존재하던 통일조항을 삭제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서로 분리된 국가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런데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본 조약의 위헌 논란이 서독 내에서 제기되었다. 바이에른 주 정부는 동 기본조약에 대한 이행법률 ““동서독기본조약”65)의 비준 동의 법률”(Gesetz zu dem Vertrag vom 21. Dezember 1972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über die Grundlagen der Beziehungen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에 대해 서독 기본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1973년 5월 29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였고 동년 7월 31일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합헌판결을 하면서 동서독의 법적 지위와 관련하여 독일제국의 계속성을 인정하면서 동독의 국제법 주체성까지도 인정하였다. 당시 기본합의서에서 쟁점의 하나가 된 동독에 대한 국가성 문제에 대해서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조약 제6조에서 내정불간섭 조항 등이 있다고 하여도 이는 국제법상의 국가로 대우한 취지는 아니며 서독기본법에 따라 동독주민에 대한 서독의 헌법상 보호의무는 지속된다고 해석하였고 이러한 헌법규정과 해석이 결국 동서독 통일에 있어 동독을 통합하는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얻었다.
또한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전체로서의 독일’의 동일성이 동서독 분단체제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동서독은 독일제국의 동일성을 각각 부분적으로 갖고 있다고 판시하였는데 동서독 간의 특수관계에 따라 국제법의 개념에서는 동독이 하나의 국가이고 국제법적 주체이지만 그렇다고하여 서독이 동독을 국제법적으로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오히려 동독은 독일의 한 부분으로 서독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외국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66) 그리고 기본조약의 법적 성질에 대해서도 독일제국이라는 기존의 단일국가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두 국가 간의 조약이며 조약의 종류에 따른다면 국제법상의 조약이지만 그 내용에 따른다면 독일 내부의 관계를 규율하는 조약이라는 이중적인 특징을 가진다고 판시하였다.
이처럼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제국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동독과 서독이라는 2개의 국가로 계속되고 있다고 보면서 동독에 대하여 국제법 주체로서의 국가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하여 동독을 자신들과 별개의 국가인 외국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실사구시의 판단을 하였다. 이것을 두고 독일제국이라는 한 국가안에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이른바 ‘지붕설’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소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논리구성에 따라 법적인 측면에서는 동독과의 합의를 조약으로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고 동독의 법률을 외국의 법률에 준하는 지위로 취급할 수 있는 근거로도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동서독기본조약”에 대한 서독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에 기초하여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한 기준있는 융통성을 마련해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남북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한일 강제병합 이전에 존재하던 대한제국이 소멸하지 않고 있다는 전제위에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구성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법적으로 국가성을 갖지만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전체로서의 한국의 한 부분으로서 외국으로는 간주할 수 없다는 설정을 통해 남북관계의 정상화 및 통일 시까지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통해 남북사이의 법적 지위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유연하게 극복해 나아갈 논리를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령 남북간의 합의에 대해서는 조약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여 그 효력과 모호성을 해소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다만 유의할 점으로서 동서독은 영토조항이 없었고 연방국가로서의 전통이 있어 상호 국가성을 인정할 수 있는 토대가 우리보다는 좋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을 통해 본다면, 우리도 북한 당국측이 특수관계론을 부인하고 구 동독과 같이 별개의 국가라는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종래와 같이 특수관계라는 입장을 보다 유연하게 해석하여 북한과 평화적 공존의 기간을 통한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Ⅴ. 결론
최근 제기된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은 분단된 이후 지속적으로 통일을 지향하여 온 남북관계에 있어 중대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이 문제는 분단국으로서의 특수성을 갖는 남한과 북한이 분단국으로서의 특수성을 벗어난 별개의 국가로서 입장을 정립하게 될 수 있는 헌법적 문제로 치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분단국 일방이 특수관계에서 이탈하는 경우 이를 제어할 실질적이고 제도적 수단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남북관계에 대한 규정에서 통일지향성을 명확히 명령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 법률의 해석, 적용, 집행 뿐만 아니라 정책도 헌법에 위반할 수 없다. 그러므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통일포기로 해석될 수 있는 입법이나 정책은 추진할 수 없고 북한발 2국가론 역시 통일포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어서 수용하기 곤란하다.
특히 통일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은 그 역사성, 무게, 제정과정에서의 논의, 헌법제정권력의 결단에 입각해 볼 때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다만, 남북간 적대적 행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 헌법 제정권력의 의지에 따른 헌법개정을 통해 2국가관계로의 설정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67) 따라서 현재 상태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교전중”인 상태와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데 중심을 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형성하는 각종 입법정책을 취하는 것이다.
기존에 유지하여 온 바와 같이 법적으로는 한 개의 국가론, 사실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론을 유지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확보하며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68) 이러한 관계설정은 결국 특수관계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유연한 특수관계’ 속에서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를 관리하여야 위헌성이 제거될 수 있다. ‘유연한 특수관계’는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평화적 공존관계를 형성하는 각종 입법정책 추진의 기초가 되어야 하고, 이는 통일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지배하는 원리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
통일전 동서독의 사례를 볼 때 우리는 대한제국의 정통성과 연속성에 기초하여 남한이라는 부분국가와 북한이라는 부분국가가 상호 공존하지만 이때의 국가는 국가성을 갖는 부분국이지 국제법상의 외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정부는 과거 박정희 정부때부터 북한의 유엔가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현재까지 북한이 유엔 회원국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분단국가로서의 특수성에 기초한 정책인 것이지 북한을 국제법상 외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유엔의 국가승인은 국제법상 집단적 국가승인으로 우리가 개별적으로 보유하는 개별적 국가승인과는 별개의 법적 행위라 하겠다. 북한의 법적 지위에 관한 우리의 헌법해석과 헌재 및 대법원의 판례 역시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였다고 하여 국가로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한 바 있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 헌법체계상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법리상 적지 않은 무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아니하며, 국가승인으로 간주·이해 내지는 오인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아니하고, 나아가 특수관계라는 기존의 입장에 따른 조치들을 계속 유지해 나아가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제4조 등에 따른 헌법상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북한 내 유사시 북한 지역에 대한 영토고권 등을 실효적으로 행사할 주체가 우리 대한민국임을 대외적으로 분명히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69)
현재 상황에서 북한의 2국가론이 법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향후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당규약, 헌법, 부문법의 제·개정 상황 등에 관한 정보를 계속 수집·분석하는 한편, 향후 남북 간 대화나 교류협력 재개 시 남북한 간 국가론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가령, 남북 간의 합의서 형태, 출입경 방식, 민족내부거래 유지 방안 등에 대비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2026년 2월의 제9차 당대회, 3월의 제1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언급된 북한의 헌법개정 언급은 남북이 별개의 국가라는 북한의 명확한 입장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의 틀 속에서 북한의 2국가론을 어느 선까지 감안한 대응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헌법상 ‘통일의 과정’으로 보면서 그 방향을 평화와 공존으로 대체해 나가는 입법정책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