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와 관련하여 ‘형법 제270조 제1항 등’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1) 이 결정은 ‘독자적 생존능력’과 ‘임신 주수’ 등에 따라 보호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는 ‘Roe v. Wade 판결’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었다.2) 하지만,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돕스(Dobbs) 판결’을 통해 ‘Roe v. Wade 판결’을 파기하였다.3) 낙태죄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24년 미국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르페이지(LePage) 판결’을 통해 ‘체외 냉동배아’도 인간 생명이며,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상 미성년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4) 지금까지의 판결이 ‘모체 내 태아’의 낙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면, LePage 판결은 ‘체외 냉동배아’에 관한 판결로써, 체외수정(IVF) 등 보건의료산업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판결이었기에, 병원 등 관련기관·단체의 반발과, 사회적 논란이 극심하게 되었다.
태아, 배아 등 미출생 생명에 대해서 논란이 커지는 것은, 체외수정, 생식세포 기증(AID), 초미숙아 생존, 배아복제 등 첨단생명과학이 발달해가면서, 생명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활용하려는 과학계와 생명의 본질을 밝히고 이를 보호하려는 사회윤리학계의 입장이 더욱 치열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제 미출생 생명의 본질을 밝히고, 법적지위를 정립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LePage 판결은 많은 논란과 반발을 불러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출생 생명의 법적지위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의 법 개정과 입법에 있어서도, LePage 판결과 이와 관련한 논의들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LePage 판결은 앨라배마주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에 근거한 손해배상의 인정여부를 쟁점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고찰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체외 배아의 생명성에 관한 구체적 논거와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는 일이며, 둘째는 ‘배아의 불법적 파괴에 대한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우리 민법과 비교·검토하는 일이다. 필자는 두 번째 주제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연구논문으로 작성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첫 번째 주제와 관련하여 관련 법률과 자료,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게 고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한다.
제2장에서는 LePage 판결의 주요쟁점을 고찰한다. 판례 원문은 별도의 논문에서 이미 정리하였으므로, 본 논문에서는 주제별로 쟁점을 분류하고 핵심 내용을 검토하도록 한다. 특히, ‘Parker 대법원장의 의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제3장에서는 LePage 판결의 배경이 된 관련 사항들을 고찰한다. ‘관련 법률’, ‘판결 이후의 흐름’ 등을 정리하고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제4장에서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미출생 생명과 관련하여 판시한 결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LePage 판결과 비교·검토하도록 한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첨단과학적 상황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법 해석과 입법 방향을 고찰하도록 한다. 제5장에서는 LePage 판결이 주는 시사점과 법적 함의를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Ⅱ. Lepage 판결의 분석
LePage 부부, Fonde 부부, Aysenne 부부는 2013년부터 ‘생식의료센터’가 운영하는 불임클리닉에 가서 IVF 시술로 여러 개의 배아를 생성하였다. 그 중 일부는 모체 내에 이식하여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다. 그리고 잔여배아들을 센터가 운영하는 ‘동결보존실’에 보관하였다.5) 2020년 12월 병원의 환자 한명이 ‘동결보존실’에 들어와서 냉동배아들을 바닥에 떨어뜨려 파괴해버렸다. 이에, 세 부부는 병원을 운영하는 ‘협회’와 ‘생식의료센터’ 모두를 피고로 하여 ‘배아관리의 과실’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심법원은 ‘체외 냉동배아’는 ‘사람(person)’이나 ‘아이(child)’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으며, 원고들은 모두 항소하였다.6)
원고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근거는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이었다.7) 이 법은 미성년 자녀가 불법적으로 사망한 경우, 부모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모체(母體) 내 태아(胎兒)’의 경우에,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이 법의 미성년자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취하였고, 원고와 피고 모두 이견(異見)이 없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체외(體外) 냉동배아(冷凍胚芽)’는 이 법에서 말하는 미성년자에 해당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었다. 원고들은 ‘체외 냉동배아’도 ‘모체 내 태아’와 동일하게 이 법의 미성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고, 피고들은 예외라고 주장하였다.
이하에서는 엘라베마주 대법원이 밝힌 핵심 논거와 취지, 그리고 톰 파커(Tom Parker) 대법원장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필자는 ‘Lepage 판결과 민법상 손해배상’을 정리한 논문에서, 판결의 원문을 정리하여 게재하였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핵심 쟁점만 별도로 분류하여 검토하도록 한다. 또한 판결이 나온 직후, Parker 대법원장의 개별의견(보충의견)이 여러 언론을 통해서 집중보도되고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Parker 대법원장은 대법관 중 한사람으로서 Mitchell 대법관이 작성한 판결문에 동의했을 뿐이다. 또한 신학적, 헌법적, 과학적 논거를 다양하게 제시했음에도 마치 대법원장의 ‘개인적인 신앙’이 판결문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호도(糊塗)하는 경우도 많았다.8) 하지만, 정작 Parker 대법원장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문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판례의 전반적인 취지를 편견없이 이해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이하에서는 Parker 대법원장이 밝힌 개별의견도 각 논점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이 판결에서 핵심 쟁점은 ‘자궁 외 아이(체외배아)’의 경우,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의 대상인 ‘아이(child)’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예외(unwritten exception)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였다.9) 주 대법원은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이나 ‘법원 판례’ 모두, ‘자궁 외 아이(extrauterine children)’를 이 법의 적용범위에서 제외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미출생자(unborn children)는 발달단계, 물리적 위치 또는 부수적인 특징과 무관하게 예외없이 ‘아이(children)’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의 내용 중,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주요 논거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872년에 제정된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은 아이(child)나 미성년자(minor)에 관하여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Mack v. Carmack 판결, Hamilton v. Scott 판결 등을 통하여 ‘미출생자(unborn child)’는 생존가능성이나 발달단계와 관계없이 이 법에서의 ‘미성년자(minor)’에 해당된다는 점이 확립되었다. 또한 법원이 인용하는 사전(辭典)이나,10) 최근의 판례(判例)도11) 동일한 입장이다.
이 법의 어떤 조항도 미성년자의 정의를 ‘물리적으로 자궁 내(in utero)에 있는 미출생자’라고 좁히지는 않는다. 헤밀턴(Hamilton) 사건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앨라배마주의 불법 사망법은 어떤 미출생자의 불법사망에 대해서도 소 제기를 허용한다.”
Parker 대법원장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앨라배마주 2022 개정 헌법’에 명시된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 36.06)’을 특히 강조한다.
피고는 ‘자궁 외 아이(extrauterine children)’는 형법상 살인죄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본 법원의 어떤 판례도 ‘형법상 살인’과 ‘민사상 불법 사망법’에서의 보호받는 사람의 범위를 일대일로 일치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형법상 살인에서의 ‘사람(person)’의 정의는, 불법사망 소송에서의 ‘사람 속성(personhood)’의 하한선을 제공할 뿐이다. ‘자궁 외 배아(extrauterine embryos)’의 사망에 대하여, ‘형법상(刑法上) 살인’으로 처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행위에 대한 ‘민사적(民事的) 책임’이 면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12)
피고들은 체외배아(자궁 외 배아)를 ‘아이(children)’로 인정하면, IVF 비용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고, 냉동보존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은 ‘출생했거나’, ‘미출생’인 모든 아이들(all children)에게 적용된다. 무엇이 현명한 정책인지와 관련하여 새로운 제한을 만드는 것은 법원의 역할이 아니다. 정책중심 주장은 법원이 아닌 입법부의 소관이다.13)
특히, Parker 대법원장은 이러한 정책은 ‘입법부’의 몫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나라들의 예를 들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훌륭한 법관은 헌법 자체가 (법관에게) 특정 정책을 따르도록 명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책 대신 헌법을 따른다. 이번 사례들과 관련해서, 그것은 ‘자궁 외에 존재하는 체외배아’를 포함하여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을 옹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앨라배마주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공공 정책 선언이 포함되어 있다.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과 ‘생명권을 포함한 미출생자의 권리’를 주(州)가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 공공 정책임을, 우리 주(州)는 인정하고, 선언하고, 확인한다.”15)
‘인간 생명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인정하고 있는 앨라배마주 헌법은, 앨라배마 법의 일부로 명백하게 편입된 ‘영국 관습법(common-law)’의 기본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16) “인간 생명은 다른 개체의 생명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며, 정당성(법) 없이 의도적으로 빼앗을 수 없다”는 원칙은, ‘신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된 때(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17) 신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 생명을 의도적으로 침해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근거가 된다.18)
앨라배마의 주민들이 채택한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다음을 포함한다.19)
공공정책의 선언으로서, 앨라배마주 헌법에 포함된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의 법적 효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20) § 36.06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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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과 ‘생명권을 포함한 미출생자의 권리’를 주(州)가 인정 하고 보호하는 것이 공공정책임을, 우리 주(州)는 인정하고, 선언하고,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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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또한, 적법하고 적절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미출생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공공정책임을 우리 주(州)는 인정하고, 선언하고, 확인한다.
“법률에 선언된 입법부의 의지가, 헌법에 선언된 국민의 의지와 반대되는 경우, 법관은 전자보다 후자를 적용해야 한다.”22) 따라서, 공공정책에 대한 헌법 조항인 § 36.06은, 미출생 생명에 관한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입법부의 판단을 제한한다. 따라서,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과 저촉되는 모든 입법(또는 행정) 행위는, 잠재적으로 앨라배마주 헌법에 따라 헌법적 도전의 대상이 된다. § 36.06이 미출생 생명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해결할 수는 없을지라도, 관습법, 법령, 심지어 헌법 조항이 생명 보호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이 다를 경우, § 36.06은 앨라배마 주 정부가 미출생 생명을 보호하는데 유리하도록 법을 해석하도록 지시한다.23)
Cook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 36.06과 불법사망법을 냉동배아에 적용하면, 앨라배마의 체외 수정(IVF) 산업에 재앙을 가져올거라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입법부의 몫이지만, 나는 다른 많은 서구화된 국가들이, 배아가 파괴될 가능성을 대폭 줄이면서, IVF 시술과 규정을 유지했다는 점을 지적한다.24)25)
배아 생성과 이식에 관한 이러한 제한은, 배아를 장기간 보관할 필요성을 줄이거나 제거하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탈리아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아의 냉동보존을 금지한다. 그 예외적인 경우는 심각한 건강상 위험, 또는 배아가 생성된 후 즉시 이식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경우이다.26)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많은 배아를 만들어 놓고, 이식 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배아들을 폐기해 버리는 관행 보다는, 다른 나라들에서 채택한 이러한 규정들(제한 규정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옹호하는데 훨씬 더 부합할 것으로 생각된다.27)
이 사안들에 적용해보면, 피고들과 그 변호사들의 주장은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에 관한 수정헌법의 관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앨라배마 주민들은 ‘미출생 생명이 신성하다는 것이 이 주(州)의 공공 정책이다’라고 선언했다.28)
모든 인간이 잉태된 순간부터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졌고, 신의 형상을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마치 앨라배마 주민들이 예언자 예레미아의 예언을, 주(州)의 모든 미출생자에게 적용한 것과 같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만들기 전에 나는 이미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너를 거룩하게 하였다”29)
정부를 구성하는 3부(府)는 모두, 미출생 생명을 경건하게 대해야 한다는 헌법상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번 사례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비록 그들(미출생 생명)이 작은 생명일지라도, 이 주(州)의 주민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 주(州)의 주민들은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한 거룩한 신에 대한 경외감에 따라 모든 인간을 대하라”고 재판부에 요구한다.
이러한 논거들과 주요 의견에 명시된 논거들에 근거하여, 나는 동의한다.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은 미성년자(minor)나 아이(child)에 관하여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앨라배마주 법원이 내린 Mack v. Carmack 판결, Hamilton v. Scott 판결, 특히 최근 연방대법원이 내린 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 판결 등을 통하여, 미출생자(unborn child)도 이 법에서 말하는 미성년자(minor)에 해당한다는 점은 이미 확립되었다고 Lepage 판결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인간생명은 수정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는 점에 대해서는 원고와 피고 양 당사자도 인정하고 있다고 명시하였다.
결국, 쟁점은 한가지에 귀결되었다. “‘수정된 개체’는 인간생명으로서 이 법에서 말하는 ‘미성년자(minor)’에 해당되지만, ‘체외(體外)에 있는 수정란’만큼은 예외로 보고 ‘미성년자(minor)’에서 제외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Lepage 판결은 ‘체외(體外)’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외로 볼 근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형사법상의 사람과 민사법상의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판시한 점이다. 형법상 살인죄 혹은 낙태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민사법상 손해배상의 대상인 사람은 될 수 있다. 법의 취지와 보호법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인죄와 낙태죄는 피해자인 사람과 태아의 생명자체를 보호법익으로 한다. 하지만, 미성년자불법사망법은 자녀의 불법적 사망으로 인한 ‘부모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전보(塡補)를 목적으로 하며, 이 경우 자녀는 출생자, 체내태아 뿐만 아니라, 체외수정을 목적으로 하는 체외배아도 포함될 수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Lepage 판결의 이러한 관점은 우리나라 민법의 해석과 관련해서도 깊이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민법 제752조는 ‘생명침해로 인한 위자료’를 명시하고 있다. 자녀가 불법적으로 사망한 경우, 그 직계존속은 특별한 입증책임 없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의 자녀는 출생자뿐만 아니라, 태아나 체외배아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부모(직계존속)의 정신적 충격을 전보한다는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태아의 사산’이나 ‘체외배아의 파괴’도 그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Lepage 판결은 이러한 해석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리 민법의 연구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법의 취지에 따라, ‘사람의 살인(殺人)’에 관한 개념을 ‘태아(胎兒)’까지 확대해석한 적이 있다.30)
Parker 대법원장의 보충의견은 당시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보충의견의 전반부에 신학적 논거가 명시되어 있어서, Parker 대법원장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추측이 난무했으며, 실제 언론에서는 이러한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필자가 검토한 바로는, 보충의견 전체를 확인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Parker 대법원장이 전반부에 신학적 부분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은 앨라배마주 헌법의 기원과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2022년 개정 헌법의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즉, 헌법의 기원과 정신, 최근 개정조항을 언급하며, 미출생 생명 보호의 당위성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Parker 대법원장이 제시한 과학적 논거는,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을 비롯한 관련 법의 논의에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생성단계에서부터 ‘체외 배아’를 생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임신’을 목적으로 1∼2개의 배아만을 생성하여 전체를 모체 내에 주입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배아 생성의 제한이 없으며, 과배란을 통하여 몇 배의 배아를 생성하여 냉동 보관한 후 폐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우리나라 생명윤리법 제23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 취지에 실질적으로 반(反)한다고 볼 수 있다. 체외수정이 여러 차례 시행 될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10여개의 배아를 생성하여 냉동보관하는 관행은 형식적으로는 명분이 있어 보이지만, 다수의 배아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임신목적의 생성’이라는 생명윤리법의 취지에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Parker 대법원장은 보충의견을 통해, ‘생성단계’에서부터 배아를 생명으로 존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현재의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과 관련해서도, 주의 깊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Ⅲ. 관련 법률과 판결 이후의 동향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판결은 앨라배마주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의 적용범위가 핵심쟁점이었다. 법률의 해석을 위해서 주 대법원은 앨라배마주 ‘헌법’을 고찰하였고, 헌법의 기원과 정신, 개정내용과 취지 등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또한 판결이 나온 이후에는 IVF 산업의 보호를 위한 입법적 대안으로 ‘체외수정 면책법’이 제정되어 시행되었다.31)
이러한 헌법과 법률의 검토는, 본 판결의 이해에 필수적이다. 특히 IVF 산업의 유지를 위해 제정된 ‘체외수정 면책법’은 입법정책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향후 우리나라에서의 관련 법률 해석과 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하에서는 LePage 판결과 관련된 법률들과 그 결과로 제정된 법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LePage 판결이 나온 직후,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특히, 생명윤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옹호론과 체외수정(IVF) 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비판론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이하에서는 판결이 나온 지 2년여가 지난 후의 변화와 평가들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도록 한다.
앨라배마주 헌법은 2022년에 개정되어,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 36.06은 개정시에 ‘미출생 생명의 신성함(Sanctity of unborn life)’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제정되어 편입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32)
‘미성년자 불법 사망(Wrongful death of minor)’은 ‘미성년 자녀에 대한 상해(Injury to minor child)’와 함께 제22조에 규정하고 있다(Article 22. Injury and Death of Minor, § 6-5-390 to § 6-5-391). 사망한 자녀의 부모 등이 자녀의 죽음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배상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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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인, 단체, § 6-5-390에 명시된 부 또는 모의 대리인·종업원 등의 불법행위, 부작위, 태만에 의해 미성년자가 사망했을 때, 만약 부와 모가 모두 사망한 경우나 부모가 소제기를 거부하거나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 사후 6개월 이내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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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미성년자 불법 사망에 대한 (a)에 따른 소송은, ‘본 섹션(§ 6-5-391)’이나 ‘섹션 § 6-5-410’에 의한 또 다른 소송은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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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본 섹션에 따른 소송으로 회복된 모든 배상액은, 제43편 제8장 제3조(43-8-40에 따른 소제기)의 ‘무유언 상속법(the laws of intestate succession)’에 따라 배분된다.
‘자궁 외 아이(체외배아)’도 불법사망법의 보호대상인 미성년자(minor)에 포함된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체외수정(IVF)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배아를 폐기할 경우, 법적처벌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체외 인공수정’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판결이라는 비판 여론이 확대되었다.35)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하여, 2024년 2월 29일 앨라배마주 의회는 IVF 시술 제공기관의 보호를 위한 법안을 통과켰으며, 며칠 후인 3월 6일에는 주지사의 서명을 받아 시행하였다. 이 법률은 IVF 시술을 제공하는 기관에 대한 민·형사 면책권 부여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IVF 시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배아 손상·사망’ 등과 관련하여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함으로서 산업을 유지하고 난임부부도 난임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36) 이 법률은 향후, 우리나라의 법률검토에도 의미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37)
제41조. 체외수정(In Vitro Fertilization, § 6–5–810 to § 6–5–811)
§ 6-5-810. 체외 수정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받을 때, 배아의 손상 또는 사망에 대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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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체외수정과 관련하여, 어떠한 법률조항에도 불구하고(1975년 앨라배마 법전 제6편 제5장의 소송 원인을 포함하여), IVF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받았을 때, 배아 손상이나 사망에 대한 어떠한 소, 소송 또는 형사기소도 개인이나 단체에 제기 되거나 유지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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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이 조항(section)은 이 법의 발효일에 소송의 대상이 아닌 작위, 부작위 또는 서비스에 소급(遡及)해서 적용하도록 한다.
§ 6-5-811. 배상액; IVF와 관련된 형사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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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체외수정과 관련하여, 어떠한 법률조항에도 불구하고(1975년 앨라배마 법전 제6편 제5장의 소송 원인을 포함하여), (IVF 과정이나 저장된 배아의 운송을 용이하게 하는 제품을 만든) 제조업자(manufacturer)에 의해 야기된 배아의 손상이나 사망과 관련하여, 그 배상액은 ‘시험관 주기(vitro cycle) 내에서의 영향’에 대하여 지불되어야 하는 금액으로 계산된 배상액으로 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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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체외수정과 관련하여, 어떠한 법률조항에도 불구하고, IVF 과정이나 저장된 배아의 운송을 용이하게 하는 제품을 만든 제조업자(manufacturer)에 대해서는, 배아의 손상이나 사망에 대해 형사 기소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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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이 조항(section)의 본질은 시정(개선)이며, 소급(遡及)해서 적용하도록 한다.
LePage 판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직후,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특히, 체외수정(IVF) 산업의 존립이 위태롭다는 비판 여론이 확대되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전술한 ‘체외수정 면책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판결이 나온지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측에서는, LePage 판결이 Dobbs 판결 이후 ‘태아 인격 운동(fetal personhood movement)’의 전형을 보여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38) 또한, LePage 판결은 태아에 그치지 않고, ‘체외배아’를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목표를 진전시켰다고도 평가한다.39)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측에서는, 미국 내 다른 주의 법해석이나 판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거나, 과학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크게 저해할 수 있다는 등의 반론을 제기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앨라배마 대법원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 주(州)도 체외배아에 대해 ‘불법행위에 의한 사망’ 소송에서 ‘사람’으로 인정한 경우가 없었다. 따라서 향후에도 LePage 판결이 ‘불법행위에 의한 사망’이나 ‘태아 살인’ 등과 관련하여 다른 주에서의 법률해석의 선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40)41)
CRISPR-Cas9과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은 유방암, 낭포성 섬유증, 헌팅턴병 등의 유전성 질병을 퇴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LePage 판결은 유전자 편집 및 보조 생식 기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으며,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중대한 선례를 만들었다.42) CRISPR-Cas9을 활용하여 유전자 편집을 진행하는 연구자, 과학자 등은 불법 행위에 의한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43) 「미성년자 불법 사망법」이 제정되던 1872년에는 체외수정 기술은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미성년 자녀”라는 용어에 체외 배아를 포함시킬 수는 없다.44)45)
Ⅳ. 헌법재판소 결정과의 비교
LePage 판결은, 미국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그 파장은 세계 여러 나라에까지 이어졌다. 앞서 살펴본대로, 실제로 우리나라 여러 언론에서도 기사화 되었으며, 보건복지부 관련 기관에서는 “냉동배아도 인간?”이라는 주제로 LePage 판결을 주요이슈로 검토하기도 했다.46) 향후에는 우리나라 법률 개정과 판례에도 상당한 영향이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의 관련 판례들을 검토한 후, LePage 판결과 비교·분석하고, 주요 쟁점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미출생 생명인 배아·태아와 관련하여 총 4차례의 결정을 내렸다.47) ‘2004헌바81 결정’에서 “태아는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고 판시한 이래, 다른 3개의 결정에서도 이러한 취지를 따르고 있다. 특히, 체외 냉동배아의 생명권을 직접 검토한 결정은 ‘2005헌마346 결정’이며, 미국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결처럼 “‘태아’의 범주에 ‘체외 냉동배아’가 포함될 수 있는가?”하는 쟁점을 직접 검토하였다.
‘체외 냉동배아’의 법적지위는 ‘모체 내 태아’의 법적지위를 전제로 비교검토하게 된다. 이하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미출생 생명인 태아와 배아의 법적지위에 관하여 판시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LePage 판결과 비교·검토하도록 한다.48)
‘2004헌바81 결정’은 ‘민법 제3조 등 위헌확인’에 관한 내용으로써, 태아의 법적지위에 관하여 내려진 첫 번째 결정이었다.49) 쟁점은 “민법 제762조 등 태아의 제한적 권리능력이 민법 제3조의 출생을 전제로 하는가?”였다. 헌법재판소는 법적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권리능력 발생 시기(始期)를 명확하게 확정해야 하기에, 권리능력 발생을 ‘출생’으로 보는 현재의 입법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이 결정이 가지는 가장 더 큰 의미는 “태아는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인가?”라는 논란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즉,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근거하여 이러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50) 이러한 입장은 이후, 2005헌마346 결정, 2010헌바402 결정, 2017헌바127 결정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51)
‘2010헌바402 결정’은 낙태와 관련한 ‘형법 제270조 제1항 등 위헌확인’에 관한 내용이었다.52) 이 결정에서는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로 생명권의 주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특히, 태아의 보호는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이라는 이유 때문이지, 독자적 생존능력이나 정신능력 등이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생물학적 분화나 임신주수 등을 기준으로 보호의 정도를 달리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53)
‘2017헌바127 결정’은 ‘형법 제270조 제1항 등 위헌확인’에 관한 내용으로, 7년만에 낙태와 관련하여 다시 판단한 것이다.54) 이 결정에서도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이고,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입장은 동일했다. 하지만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정도와 보호수단은 달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55) 특히, “‘독자적 생존능력’을 가진 이후에는 훨씬 인간에 가까우며, 임신 22주 이전까지는 국가가 보호수단 및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임신주수를 기준으로 보호정도를 달리해서는 안된다는 7년 전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56)
청구인 부부는 임신을 위하여 각자의 생식세포를 채취하여 체외수정을 하였다. 수정된 배아의 일부는 체내에 이식하고, 나머지 배아는 냉동보존하였다. 당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제16조에서 냉동배아의 보존기간을 5년으로 명시하였고, 이후 폐기하거나 연구에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58) 이에 이들 부부와 법학자, 윤리학자, 철학자, 의사와 더불어 ‘냉동배아들’도 청구인이 되어 생명윤리법 제16조 등에 대한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되었다. 특히, 냉동배아의 5년 보존과 폐기를 규정하여 보호에 불충분한 점, 냉동배아를 단순한 세포로 규정하면서 연구와 실험이 가능하도록 한 점 등에 관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법학자, 윤리학자, 철학자, 의사 등과 관련해서는, 이들에 대한 침해는 사실적·간접적 불이익에 불과한 것이므로, 기본권침해의 가능성 및 자기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적법 각하하였다.
생명윤리법이 규정한 ‘배아의 5년 보존기간’ 및 ‘5년 후 폐기의무’ 등과 관련해서는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특히, “배아 수의 지나친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및 부적절한 연구목적의 이용가능성을 방지하여야 할 공익적 필요가 크다”는 점을 밝히면서, 피해의 최소성이나 법익의 균형성을 잃지 않은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판시하였다.
냉동배아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체외 냉동배아’는 기본권주체성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체내 태아’가 헌법상 기본권주체성이 긍정된다고 한 내용과는 상반된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하였다.
“수정이 된 배아라는 점에서 형성 중인 생명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볼 여지가 있기는 하나, 아직 모체에 착상되거나 원시선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독립된 인간과 배아 간의 개체적 연속성을 확정하기 어렵다…, 배아의 경우…모태 속에서 수용될 때 비로소 독립적인 인간으로의 성장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수정 후 착상 전의 배아가 인간으로 인식된다거나 그와 같이 취급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회적 승인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다만, 헌법재판소는 초기배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는 인정하였다. “오늘날 생명공학 등의 발전과정에 비추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갖는 헌법적 가치질서로서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인간으로 발전할 잠재성을 갖고 있는 초기배아라는 원시생명체에 대하여도 위와 같은 헌법적 가치가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국가의 보호의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할 것이다.”59)
헌법재판소는 ‘체내태아’의 경우,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며(2004헌바81 결정), 지금까지도 이러한 입장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체외 냉동배아’의 경우에는 ‘생명권의 주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2005헌마346 결정).
같은 부모의 정자, 난자로 수정된 수정란이라 할지라도, 모체 내(母體 內)에 존재하느냐, 체외(體外)에서 냉동보존되고 있느냐에 따라 법적지위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앨라배마주 대법원이 “미출생자(unborn child)는 발달단계, 물리적 위치 또는 부수적인 특징과 무관하게 예외없이 아이(children)이다. 자궁 외 아이(extrauterine children)를 이 법의 적용범위에서 제외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론이다.
헌법재판소는 ‘착상과 원시선’, ‘모태 내 수용’ 등을 논거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수정시(受精時)에 고유의 유전자가 확정되어 사망하는 때까지 이어진다. 이후의 분할, 착상, 분리, 출산 등은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착상과 원시선 이후에 개체가 확정된다는 주장은 과학적 측면에서 설득력이 없다.60) 또한, ‘모태 내 수용’과 관련해서는 급속히 발전해가는 의생명과학의 측면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인공자궁(artificial womb) 혹은 인공태반((artificial placenta)을 활용하여 쥐, 양, 돼지 등 동물 수정란을 상당 기간 성장시켰다.61) 이 기술은 난임이나 조산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62) 이러한 과학적 성과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모체 내 수용’이 없어도, 체외 냉동배아가 인간개체로 성장해갈 수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63)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출생자’와 ‘태아’, ‘체외배아’ 모두에 대해, 본질에 중점을 두고 법적지위를 판단하였다. 즉,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유전자를 형성하고 인간개체로 성장해 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따라서 발달단계, 물리적 위치, 부수적 특징과 무관하게 미출생자도 예외없이 아이(children)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자궁 외 아이(estrauterine children)라고 해서,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의 ‘암묵적인 예외(unwritten exception)’로 볼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형법(刑法)상의 살인죄’와 ‘민법(民法)상의 손해배상책임’의 대상이 되는 사람(人)을 구별한 점이다. 체외배아의 경우에는 형법상 살인죄의 객체로서의 사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민사상 징벌적손해배상책임의 객체인 사람에는 포함된다고 본 점이다. 본질에 중점을 두면서도, 보호범위에 있어서는 다르게 판단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체내태아(體內胎兒)’와 ‘체외배아(體外胚芽)’는 본질이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로 ‘착상과 원시선’, ‘모체 내 수용’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수정 후 10일경에 착상이 되었다고 해도, 그 시기에 아직 원시선이 생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모체 내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64) 또한 헌법재판소는 ‘형법(刑法)상의 낙태죄의 객체인 태아(胎兒)’와 ‘민법(民法)상 제한적 권리능력을 가지는 태아(胎兒)’를 구별하여 판단하지는 않고 있다.65) 결국, 같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수정란이라고 하더라도, ‘모체 내에 수용’되어 있으면, 인간생명(人間生命)인 태아(胎兒)로서 기본권의 주체가 되고, ‘체외 냉동’되어 있으면 물건(物件)으로서의 지위에 있게 된다.
사견(私見)으로는 본질(本質)과 법적안정성(法的安定性)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본질(本質)의 관점에서 판단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출생자인 태아(胎兒)는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상의 미성년자에 해당한다”는 확고한 해석과 판례가 이미 정립되어 있었기에, 결국 문제는 “태아와 냉동배아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하는 점이 핵심쟁점이 되었다.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본질이 동일한 것을 두고, ‘체외 냉동배아’만을 암묵적인 예외(unwritten exception)로 볼 수 없으며, 발달단계, 물리적 위치, 부수적 특징과 무관하게 예외없이 보호대상인 아이(children)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법체계 내에서의 ‘법적안정성(法的安定性)’에 보다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결정문에서 “수정 후 착상 전의 배아가 인간으로…취급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회적 승인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근거로 제시한 점을 볼 때, 현행 법체계를 존중하면서 법적안정성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행법은 ‘체외수정’과 ‘냉동보존’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출생을 예정한 체내태아와 비교할 때, 체외 냉동배아는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출생으로 이어지는 냉동배아보다 착상 실패, 폐기 혹은 실험에 활용되는 냉동배아가 수십배에 달한다.66) 이런 상황에서 냉동배아에게 ‘손해배상, 상속, 유증’등과 같은 권리능력을 인정한다면, 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민법이 제정되던 1958년에는 체외수정 냉동보존 등과 같은 의료기술은 없었기에 현재는 입법적 불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헌법재판소의 결론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사견(私見)으로는 우리 법해석에 있어서도, 향후에는 보다 전향적인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체외수정’,‘냉동보존’이라는 예측하지 못한 과학적 상황이 발생하였고, 현재는 입법적 불비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인 같은 것을 다르다고 결론을 내리고 법적안정성만을 추구해갈 수는 없는 일이다.67) ‘체내 수용’은 과학적으로는 이미 근거를 잃은 논리이기에, 같은 주장이 반복된다면 향후에는 ‘궁색한 논리’나 ‘본질을 외면한 억지’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筆者)가 본 연구를 해가면서 가장 주목한 것은,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형사(刑事)와 민사(民事)를 구분하는 섬세하고 전향적인 분석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인정되고 있다. 형법(刑法)상 태아는 모체 내에서 착상된 수정란을 말한다. 하지만, 민법(民法)상 태아의 시기(始期)는 학설마다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이렇게 형사(刑事)와 민사(民事)를 구분하고, 민사(民事) 안에서도 ‘체내태아’와 ‘체외배아’를 구분해서 권리능력을 인정할 수도 있다. 2004헌바81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법정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권리능력의 시기(始期)는 명확하게 확정되어야 한다…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본다고 하더라도…권리능력이 인정되는 시기(始期)는 ‘출생의 시점’으로 보는 현재의 입법태도는 정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이지만, 그 권리능력은 ‘손해배상, 상속, 유증 등’에 한정되고, 시기(始期)도 출생한 이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법적안정성의 확보’를 위한 조치이다. 마찬가지로 ‘체외 냉동배아’를 그 본질에 따라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하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조치를 통해 법적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다. 민법 제752조 ‘생명침해의 위자료’에서의 ‘생명’의 범위에만 체외배아를 포함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실제 앨라배마주 대법원도 미성년자불법사망법에 따른 ‘징벌적손해배상’에 한하여 냉동배아를 사람(人)으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이렇게 하면, 체외배아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권리능력의 범위는 지극히 협소할지라도, ‘인간생명(人間生命)’으로서 법적·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존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법적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본질이 같은 것을 굳이 다르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법이론(法理論)상으로도 묵과할 수 없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기에,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아갈 필요도 있다.
Ⅴ. 결론
LePage 판결은 “인간생명은 수정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수정된 개체’는 인간생명으로서, ‘미성년자 불법사망법’상의 미성년자에 해당한다. 결국, 핵심쟁점은 “‘체외에 존재하는 냉동배아’는 예외(例外)로 보고 ‘미성년자’에서 제외할 것인가?”하는 점이었다.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체외’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외로 볼 근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LePage 판결과 관련해서 고찰해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체외 배아의 생명성에 관한 검토와 논거이다. 둘째는 체외 배아의 파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과 관련해서, 우리 민법과의 비교·검토이다. 두 번째 주제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논문으로 정리하였고, 본 논문에서는 첫 번째 주제와 관련해서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LePage 판결의 쟁점’을 정리함과 동시에, ‘Parker 대법원장의 견해’, ‘관련 법률’, ‘판결 이후의 흐름’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독창적 판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사항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후, 현재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판시한 결정들을 중심으로 두 사법기관의 입장을 비교·검토하였다.
LePage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형사법상의 사람과 민사법상의 사람의 범위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한 점이다. 형법상 살인죄 혹은 낙태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민사법상 손해배상의 대상인 사람에는 해당될 수 있다. 법의 취지와 보호법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민법도 제752조에서 ‘생명침해로 인한 위자료’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이때의 ‘생명’에는 출생자 뿐만 아니라, 태아나 체외배아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불법행위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정신적 충격을 전보하는 것이 입법취지이기 때문이다.
Parker 대법원장은 앨라배마주 헌법의 기원과 정신을 강조하면서, 특히 과학적인 논거를 제시하였다. 유럽연합(EU),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이 생성단계에서부터 체외배아를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 제23조는 임신목적으로만 배아를 생성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과배란을 통해 10여개의 배아를 냉동시켜 놓고, 잔여배아는 폐기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생명윤리법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Parker 대법원장의 견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해서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앨라배마 주에서는 LePage 판결로 인해, 체외수정 관련 산업이 위축될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체외수정 면책법’을 제정하였다. 이를 통해, 체외수정에 참여한 의료진 뿐만 아니라, 관련 물품을 공급하는 제조업자들까지 민·형사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적 원칙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관련 산업도 큰 타격 없이 존속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생명윤리법에서 배아의 생성과 활용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법적 원칙을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방안을 통해 둘의 조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LePage 판결’과 ‘체외수정 면책법’은 향후 보건의료의 정책 수립에 있어서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LePage 판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상존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활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판결이 나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부정론의 일관된 논거이다. 하지만, 2022년, “낙태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아니며, 이것은 임신주수와도 무관하다”고 밝힌 Dobbs 판결이 나온 이후, 2년 만에 나온 LePage 판결은, ‘체내 태아’뿐만 아니라, ‘체외 배아’로까지 미출생 생명에 관한 논의를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다. 향후, 이러한 논의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법 개정과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무엇보다 ‘법적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면,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본질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찰했다. 분명한 것은, ‘체내’와 ‘체외’라는 위치만 다를 뿐, ‘체내 태아’와 ‘체외 배아’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용화 단계까지 발전한 ‘인공 자궁’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LePage 판결은 ‘징벌적손해배상’에 한하여 냉동배아를 사람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듯이, 민법 제752조의 ‘위자료 청구’에 한하여 냉동배아를 생명으로 인정한다면 법적안정성은 해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제한적으로나마 이렇게 해석함으로써, 체외배아가 인간생명으로 존중되는 법적·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고, 법적지위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될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첨단과학이 생명의 본질을 밝혀 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법적인 측면에서도 이러한 본질에 부합하는 해석과 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향후에는 보다 진일보한 태도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