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민사소송에서 활용되는 증거의 형태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민사소송에서는 문서, 증인, 물건과 같은 비교적 명확한 유형의 증거가 중심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전자메일, 메신저 기록, 데이터베이스 기록, 서버 로그, CCTV 영상, 클라우드 데이터 등 다양한 형태의 전자정보가 분쟁 해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증거조사 방식뿐 아니라 증거 확보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소 제기 이전 또는 변론 단계 이전에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절차의 중요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행 민사소송법은 전자정보를 독립적인 증거방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민사소송법 제374조의 “그 밖의 증거” 규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포섭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규정 방식은 전자정보를 기존 증거방법의 틀 안에서 처리하려는 보충적 규정에 불과하며, 전자정보의 특성을 반영한 체계적인 규율 방식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또한 현행 증거 규정은 기본적으로 증거방법에 따른 증거조사를 기본 구조로 하고 있어, 전자정보와 같이 대량성·비가시성·복제 가능성 등의 특성을 가지는 새로운 증거방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행 민사소송법에 증거수집 기능을 갖는 제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일정 범위에서 증거수집을 가능하게 하는 문서제출명령, 사실조회 및 증거보전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들은 각 증거방법에 결합된 형태로 산재되어 있어 통일된 증거수집절차로서 기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당사자의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전자정보의 수집에 관한 절차는 실효성 측면에서 미흡하다.
이에 비하여 미국은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를 통해 증거수집절차를 독립적으로 규율하면서, 문서, 전자정보 및 유형물 등을 포괄적인 증거수집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역시 독립증거절차를 통하여 전자정보를 비롯한 증거를 일정한 범위에서 수집·확보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법적 검토는 우리 민사소송법의 증거체계를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로 기능적으로 구분하여 재편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전자정보 증거의 등장과 그 특성을 검토하고,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체계가 가지는 구조적 한계를 분석한 후, 비교법적 검토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나아가 증거보전 제도를 중심으로 문서제출명령 및 목록제출명령 등을 통합하여 독립적인 증거수집절차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민사소송법의 증거 체계를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대 민사소송에서 활용되는 전자정보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는 전자메일이나 메신저 기록과 같은 전자문서 형태의 정보가 있다. 이러한 정보는 개인이나 기업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생성되며, 계약 체결 과정이나 거래 관계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정보시스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베이스 기록이나 서버 로그 역시 중요한 증거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분쟁에서는 거래 기록이나 접속 기록이 중요한 증거방법이 될 수 있으며, 지적재산권 분쟁이나 영업비밀 관련 사건에서도 시스템 로그나 접근 기록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밖에도 CCTV 영상이나 스마트 기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전자정보는 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확산으로 인해 정보가 특정 물리적 매체가 아니라 원격 서버에 저장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 역시 민사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방법1)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사회 전반의 정보 생성 및 저장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변화는 민사소송에서 활용되는 증거의 형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계약서나 공문서와 같은 종이 문서가 주요한 증거로 활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전자메일, 메신저 기록, 서버 로그, 데이터베이스 기록, CCTV 영상, 클라우드 데이터 등 다양한 형태의 전자정보가 소송에서 핵심적인 증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전자정보는 전통적인 문서나 물건과 비교할 때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전자정보는 대량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방대한 양의 정보가 자동적으로 생성되고 저장되며, 기업이나 기관의 정보시스템에는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는 전통적인 종이 문서와 비교할 때 그 규모가 매우 방대하며, 특정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둘째, 전자정보는 비가시성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종이 문서의 경우 인간이 직접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전자정보는 컴퓨터 시스템이나 특정 프로그램을 통하여야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데이터베이스 기록이나 시스템 로그와 같은 정보는 일반적인 문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처리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셋째, 전자정보는 복제 가능성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디지털 정보는 동일한 내용을 손쉽게 복제할 수 있으며, 동일한 데이터가 여러 위치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자정보의 보존이나 제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넷째, 전자정보에는 메타데이터(metadata)가 존재한다. 메타데이터는 전자정보의 생성 시점, 수정 시점, 접근 기록 등과 같은 정보를 포함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메타데이터는 종이 문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자정보의 고유한 특성 등2)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전자정보는 민사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특성은 전자정보의 수집과 조사 과정에서 기존의 증거와는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통적인 증거법에서 서증은 문서를 중심으로, 검증은 물건을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고, 그 자체가 증거능력과 관련하여 어떠한 법적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3)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의 생성·저장·전달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종이문서나 물건을 전제로 한 기존의 증거방법의 개념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정보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생성·전송되고 다양한 매체에 저장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원본과 동일한 형태로 손쉽게 복제·전송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전자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증거는 영속성이나 복제 가능성으로 인해 하나의 원본만을 전제로 하였던 전통적 증거개념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4)
또한 전자증거는 생성과 저장, 관리 및 이전의 전 과정이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저장 위치 역시 유동적이며, 정보의 수정이나 변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특징으로 인해 전자정보를 소송상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존의 증거조사방법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전자정보의 탐색, 수집, 분석을 포함하는 새로운 증거개념과 이에 적합한 증거조사방법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자정보가 소송상 증거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법적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전통적인 증거법이 요구하는 증명의 기능을 본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증거는 사람의 오감으로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유형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 증거방법의 하나로 단순히 포섭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종래 증거로서 인정되는 문서는 문자나 이에 갈음하는 부호를 이용하여 일정한 사상이나 관념을 표현한 유형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5) 이러한 문서는 의사표시의 내용을 전달하고 이를 보존하며 법률관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서증이라는 방식에 따라 문서 자체를 조사하게 된다.6) 즉 전통적인 문서는 일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존제 자체를 증거조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전자정보는 문서와 마찬가지로 증거로서 재판에서 당사자의 승소을 위한 증명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정보가 생성되고 저장되는 방식 자체가 문서나 물건과 같은 기존의 유형적 증거와 본질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에 전자정보를 증거로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자정보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증거법적 이해, 즉 전자정보의 특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 규정은 기본적으로 특정 증거방법을 중심으로 증거조사의 절차를 규정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민사소송법은 문서, 검증물, 증인 및 당사자신문 등 개별 증거방법별로 증거조사의 절차와 방법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 방식은 오랫동안 민사소송에서 사용되어 온 전통적인 주요 증거방법을 전제로 형성된 것으로 문서나 증인, 물건 등 비교적 명확한 형태의 증거방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규정은 증거방법별 증거조사를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민사소송에서 증거수집 기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현행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범위에서 증거수집 기능을 수행하는 개별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문서제출명령 및 검증물제출명령 제도는 당사자가 상대방 또는 제3자가 보유하고 있는 문서나 물건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제344조는 일정한 경우 문서 소지자의 제출의무를 규정하고, 제366조는 검증 목적물의 제출에 관하여 문서제출명령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7) 당사자는 이러한 제도를 통하여 상대방이나 제3자가 보유한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사실조회 제도8)는 법원이 공공기관·학교, 그 밖의 단체·개인 또는 외국의 공공기관에 대하여 업무에 속하는 사항의 조사나 보관 중인 문서의 등본·사본의 송부를 촉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사자가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제3자 보유 정보를 획득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나아가 증거보전절차9)는 장래 증거조사가 곤란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미리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서, 소제기 전이나 후에 증거의 멸실이나 이용 곤란을 방지하는 증거수집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문서제출명령, 사실조회 및 증거보전은 모두 일정한 범위에서 증거수집의 기능을 담당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들은 모두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조사 중심 체계 안에서 개별 증거방법과 연계되어 있을 뿐, 일반적인 증거수집절차로서 독립적으로 규율되고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 현행 민사소송법은 개별 제도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증거수집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이를 통합적으로 규율하는 일반적·통일적인 증거수집절차는 마련하고 있지 않은바. 현행 민사소송법상 일관된 증거수집절차가 확립되어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자정보의 활용이 증가함에 따라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체계가 갖는 구조적 한계가 점차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 민사소송법상 증거 규정은 기본적으로 증거방법에 따른 증거조사절차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바, 이러한 구조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증거가 등장할 경우 이를 기존의 증거방법 중 어느 범주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전자메일이나 전자문서를 문서의 일종으로 볼 것인지, 또는 전자정보가 저장된 매체를 물건으로 보아 검증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판례10)와 학설11)에서도 전자정보를 기존의 문서 개념에 포함시키거나 정보저장매체를 물건으로 보아 처리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생각건대, 이러한 접근은 기본적으로 기존 증거방법의 개념을 확장하여 새로운 증거를 설명하려는 해석론적 해결에 불과하며, 전자정보의 특성을 고려한 체계적인 규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자정보는 대량의 데이터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정한 정보가 어느 위치에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 규정은 기본적으로 증거방법별 증거조사절차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자정보 자체를 독립된 증거방법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은바12), 당사자가 상대방이 보유한 전자정보를 어떠한 절차와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
앞으로는 전자정보의 범주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증거방법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현행 증거체계의 한계는 새로운 증거방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섭할 수 있는 일반적인 증거수집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민사소송법의 규율체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특정 증거방법을 중심으로 증거조사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구조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증거방법이 등장할 때마다 이를 기존 어느 범주에 포함하여 증거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자정보와 같은 새로운 증거방법의 등장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존 규정을 해석적으로 확장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증거방법에 따른 증거조사 중심의 증거 규정 자체를 재검토하고,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를 기능적으로 구분하는 방향으로 민사소송법의 증거체계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자메일, 메신저 기록, 서버 로그, 데이터베이스 기록, CCTV 영상 및 클라우드 데이터 등 다양한 형태의 전자정보가 민사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전자정보는 대량성, 비가시성, 복제 가능성 및 메타데이터의 존재와 같은 특성을 가지며, 생성·저장·관리 및 이전의 전 과정이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종래의 문서나 물건과 같은 전통적인 증거방법과는 구별된다. 이에 따라 전자정보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증거방법이 추가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종이문서와 유형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전통적인 증거개념과 증거조사방식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전자정보는 그 내용과 형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유형의 정보가 계속해서 등장할 가능성이 큰바,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증거방법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기존의 서증이나 검증 중 어느 범주에 포함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전자정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해석론적 논쟁을 반복하게 할 우려가 있다. 결국 현행 증거체계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은 전자정보라는 새로운 증거방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증거를 탐색·확보·보존하고 이를 증거조사로 연계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현행 민사소송법의 규정 체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전자정보 시대의 민사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증거방법의 개념을 해석적으로 확장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를 기능적으로 구분하고 양자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대표적으로 미국과 독일의 관련 제도를 비교법적으로 검토한 후, 이를 토대로 우리 민사소송법상 증거체계의 재편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Ⅲ. 비교법적 검토
미국 민사소송은 전통적으로 변론 전 단계(pre-trial)의 증거수집절차와 변론 단계에서의 증거조사로 구분하여 발전되어 왔다. 특별히 변론 전 단계에서는 당사자들이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광범위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를 디스커버리 제도라고 한다. 디스커버리는 변론 단계에서의 증거조사와 구별되는 절차13)로서, 당사자가 상대방 또는 제3자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 제도는 당사자 간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14)하였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이하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은 디스커버리의 범위와 방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디스커버리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문서 등의 제출요구(production of documents and things and entry upon land for inspection and other purpose), 질문(interrogatories), 진술녹취(deposition), 자백요구(requests for admission), 신체 및 정신감정(physical and mental examina-tion)의 다섯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문서 등의 제출요구 규정은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문서 뿐만 아니라 물건, 전자정보 등을 포함하여 증거로서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전자정보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15)를 가진다.
이와 같은 디스커버리 제도는 당사자가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재판 과정에서의 사실 확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다. 정리하자면 미국의 민사소송은 증거수집과 증거조사가 기능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디스커버리 제도는 증거수집 기능을 담당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민사소송에서 전자정보의 수집과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규정은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제34조이다. 제34조는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일정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문서(documents) 뿐 아니라 전자정보(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이하 ‘전자정보’), 유형물(tangible things) 등을 모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 주목할 점은 증거수집의 대상을 문서, 전자정보 및 유형물 등으로 포괄적으로 설정하여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을 수집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전자정보, 문서 및 물건 등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을 하나의 규정에서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증거방법이 등장하더라도 기존 규정의 틀 안에서 이를 유연하게 증거수집의 대상으로 포섭할 수 있다.
특히 전자정보와 관련하여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은 2006년 개정을 통하여 전자정보라는 개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전자정보가 민사소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과 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개정을 통하여 다양한 형태의 전자정보가 명시적으로 디스커버리 대상에 포함16)되게 되었다.
독일 민사소송법 제485조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립증거절차(selbständiges Beweisverfahren)는 종래의 증거보전절차(Beweissicherung)를 확대·개편한 법원의 증거조사절차이다.17)
독립증거절차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으나, 그 제도적 성격은 프랑스의 감정절차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18) 이 제도는 단순히 장래의 증거 멸실을 방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안소송에서 필요한 증거를 미리 확보하여 사실관계를 빠르게 확정하고 분쟁의 조기 해결을 촉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위하여 1990년 사법간소화법(Rechtspflege- Vereinfachungsgesetz)에 따라 종래 증거보전절차의 엄격한 요건이 완화하고, 적용범위를 확대하였다.19)
독립증거절차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독일 민사소송법 제485조부터 제487조까지와 제490조부터 제494조a까지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종래 존재하던 제488조와 제489조는 삭제되었다. 독립증거절차는 소가 제기되기 전뿐만 아니라 본안소송이 계속 중인 경우에도 이용할 수 있으며, 수소법원이 해당 증거에 관한 증거조사를 명하기 전까지 신청할 수 있다.20) 실무상으로는 건축 관련 분쟁, 임대차 목적물의 반환과 상태에 관한 분쟁, 의료분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21)
독일 민사소송법 제485조는 제1항과 제2항을 통하여 독립증거절차의 요건, 증명의 대상 및 증거방법을 구분하여 규율하고 있는데, 제1항은 상대방이 동의하거나 증거방법의 멸실 또는 장래의 이용 곤란이 우려되는 경우 소송계속 여부와 무관하게 검증, 증인신문 또는 감정의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제485조 제2항은 상대방의 동의나 증거방법의 멸실 또는 장래의 증거 이용 곤란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일정한 법률상 이익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독립증거절차의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람이나 물건의 상태 또는 물건의 가치, 인적·물적 손해나 물건의 하자 발생 원인, 그리고 그 하자를 제거하는데 필요 비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감정인에 의한 서면감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은 단순히 증거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증거보전 기능을 넘어, 소 제기 이전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증거수집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분쟁을 예방하고 신속한 해결을 도모하는 기능을 수행한다.22)
그렇다면 독립증거절차를 통하여 전자정보를 보전할 수 있을까?
종래에는 전자정보에 적합한 증거조사방법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이를 서증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검증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견해가 대립하였다. 그러나 이후 독일 민사소송법 제371조 제1항 제2문이 신설되면서 전자정보에 대한 검증이 법률상 명확히 인정23)되었다. 이에 따라 전자정보 역시 독립증거절차의 대상이 되어 검증의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전자정보 역시 멸실·변경되거나 장래에 이용하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일정한 법률상 이익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전자정보를 미리 조사·확보하는 절차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절차가 마련되었다.24)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하여 당사자가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문서, 전자정보 및 유형물 등을 포괄적인 증거수집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미국과 같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사자가 독립증거절차를 신청하여 전자정보를 비롯한 증거방법을 일정한 범위에서 수집·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와 독일의 독립증거절차는 제도의 목적과 범위에서 차이가 있으나, 증거조사와 구별되는 별도의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수집·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수집의 대상을 특정한 증거방법에 한정하지 않고 비교적 포괄적으로 규율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정보가 등장하더라도 기존 규정의 틀 안에서 이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전자정보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증거방법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우리 민사소송법에도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증거수집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Ⅳ. 민사소송법 증거체계의 재편 방향
전자정보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형태와 저장 방식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형태의 증거방법을 기준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또한 예상치 못한 증거방법의 등장으로 변론주의하의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와 무기대등의 원칙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따라 민사소송법상 증거 규정의 전체적인 재편 방향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증거방법이 등장하더라도 기존 규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않고 이를 포섭할 수 있는 일반적 규율 방안을 마련하고, 이어 증거수집절차의 체계화 방안으로 현행 증거보전제도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한다. 특히 증거보전제도가 민사소송법상 별도의 절에 마련된 증거수집제도라는 점과 증거방법의 종류와 관계없이 증거수집이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일반적인 증거수집절차로 확대·재구성하는 입법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 규정은 기본적으로 증거방법에 따른 증거조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민사소송에서 사용되던 주요 증거방법을 전제로 형성된 것이며, 변론주의하에 당사자에 의해 제출된 증거를 법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조사할 것인지에 관한 절차 중심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는 민사소송에서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이 제출될 수 있다는 점, 전자정보의 특징을 생각하면 증거의 확보 자체가 오히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증거방법으로서의 전자정보의 포섭, 전자정보의 증거수집절차의 중요성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증거와 관련된 절차는 기능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증거수집절차이고, 다른 하나는 확보된 증거를 법원이 심리하여 사실을 확정하기 위한 증거조사절차이다.
특별히 양 절차의 주체는 분명히 구별되는데 증거수집은 당사자가 해당 절차의 주체로서 변론주의에 따라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을 의미하고, 증거조사는 법원이 해당 절차의 주체로서 당사자에 의해 제출된 증거를 조사함으로써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과정을 말한다.25)
그러나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 규정은 이러한 주체적·기능적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증거방법별 증거조사절차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서제출명령 등 일부 증거수집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도 증거조사 체계 안에서 제한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로 인해 증거수집절차는 일반적인 절차로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며, 당사자가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에 관한 규율 역시 충분하지 않다.
특히 전자정보는 그 형태와 유형이 다양하고 고유한 특성을 가지므로, 해당 정보를 적시에 확보하는 것은 민사소송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증거방법별 증거조사절차를 규정하는 현행 체계로는 충분하지 않고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와 무기 평등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적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증거수집절차를 체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민사소송법의 증거 규정은 증거방법별 증거조사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를 기능적으로 구분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전자정보를 민사소송법상의 증거방법으로 포섭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먼저는 증거 관련 규정을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로 구분하고, 증거수집과 관련된 규정에서는 증거수집의 대상을 특정한 증거방법에 한정하지 않고, 당사자의 주장 또는 방어방법과 관련된 자료라면 그 형태와 관계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제출된 증거방법을 각 특징에 따라 서증, 검증, 감정의 증거조사 방식으로 조사되도록 증거조사 방식을 열어둘 필요26)가 있다.
오늘날의 소송 환경에서는 전자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이 제출되고 있고, 또 제출이 예견되는바, 제출된 증거방법을 어느 증거조사 방식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해석하는 방식으로의 대응하는 것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제34조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증거수집의 대상을 문서(documents), 전자정보(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유형물(tangible things) 등을 하나의 조문에 의해 수집·제출되도록 규정하여 증거방법별이 아닌 유형을 중심으로 그 범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보가 등장하더라도 기존 규정의 틀 안에서 이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민사소송법의 경우에도 미국의 방식의 규정을 참고하여 증거수집 및 재출의 대상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그 증거방식을 열어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즉 증거수집절차를 별도로 마련하여 증거방법은 증거수집절차를 통해서 확보하고, 증거조사는 증거방법에 따라 법원이 현행 규정에서 정하고 다섯 가지 방식 –서증, 검증, 증인신문, 당사자신문, 감정 절차에 따라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증거수집의 대상을 특정 증거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포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면 특히 새로운 형태의 증거방법에 대해서도 기존 규정의 틀 안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375조는 증거보전의 대상을 특정한 증거방법으로 한정하지 않고 증인, 감정인, 문서, 검증물 및 당사자신문 등 모든 증거방법에 대하여 증거보전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증거보전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미리 증거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 장래 해당 증거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정, 즉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증인이나 당사자의 사망이 임박한 경우, 외국으로 이주할 예정인 경우, 검증물의 부패나 현상 변경의 우려가 있는 경우, 또는 문서의 멸실 위험이 있거나 즉시 조사하지 않을 경우 비용이 현저히 증가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27)
민사소송법 제375조는 증거보전의 요건으로 ‘미리’ 증거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 장래 해당 증거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미리’는 소 제기 이전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소송계속 중에도 본래의 증거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이라면 충족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변론준비절차 중이거나 증거조사 단계라 하더라도 아직 증거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다.28)
당사자가 증거보전을 신청할 때는 상대방의 표시, 증명할 사실, 보전하고자 하는 증거, 보전의 사유 등을 밝혀서 증거보전의 사유를 소명해야 하는데(제377조). 여기서 증명할 사실이란 증거신청에서의 증명할 사실(제289조 제1항)29), 문서제출신청에서의 증명할 사실(제345조 제4호)과 같은 개념으로 증명할 사실과 청구 원인과의 관련성, 증거로서의 필요성 등을 기재할 필요가 있다.30)
증거보전의 관할법원은 신청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먼저 소가 제기된 이후에는 해당 증거를 사용할 심급의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하여야 한다(제376조 제1항). 반면 소 제기 이전이거나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증거방법의 종류에 따라 관할법원이 결정되는데 인적 증거의 경우에는 신문을 받을 증인·감정인 또는 당사자의 거소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에, 문서에 대해서는 문서 소지인의 거소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에, 검증의 목적물이 있는 경우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에 신청하여야 한다(제376조 제1항 및 제2항). 한편 법원이 증거보전 신청을 받아들이면 증인신문, 서증, 검증 및 당사자신문 등 각 증거방법에 관한 증거조사절차를 준용하여 증거조사가 이루어진다(제375조).
증거보전은 본래의 증거조사를 기다릴 경우 증거의 조사나 이용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질 우려가 있는 때에 미리 증거를 조사하여 그 결과를 보전하기 위한 제도이다. 전통적으로는 장래의 증거조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증거보전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만, 현행 민사소송법은 소 제기 전후를 불문하고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 제기 이전에는 객관적인 증거를 기초로 분쟁의 실체를 사전에 확인하여 불필요한 소송을 예방하거나 당사자 간 화해를 촉진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며, 소송계속 중에는 집중심리의 실현과 증거 편재의 완화에 기여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증거보전은 전통적인 증거보전 기능을 넘어, 운용 방식에 따라 증거의 수집과 확보를 위한 실효적인 절차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크다.31)
이와 같이 판단한 이유는 먼저 증거보전 절차는 별도의 절32)에서 규정하고 있고, 그 증거방법을 제한33)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서증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서제출명령 등 증거수집 기능을 하는 규정과 통합·삭제한다면 독립적인 증거수집절차로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먼저는 독일의 경우와 같이 보전 필요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증거보전’의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34) 즉 증거방법의 멸실 위험, 혹은 나중에 사용 곤란의 위험이 없다고 하더라도35) 미국과 같이 증거방법을 망라하여 증거수집을 위한 당사자의 신청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36) 이러한 개정은 법원이 정당한 이익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본안의 증거조사 이전이라도 사실관계를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증거보전절차의 기능을 단순한 증거보전에 그치지 않고 사실관계의 확정과 분쟁의 예방·해결로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37) 특별히 독일의 입법례는 우리 민사소송법상 증거보전절차의 재구성 방향을 검토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별히 우리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이러한 독일 입법례의 취지를 일부 수용하여, 제3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일반 민사소송법과 달리 증거보전 신청에 ‘보전의 필요성’을 요구하지 않도록 규정하여 이를 통해 증거보전절차의 이용 요건을 완화하고, 보다 폭넓은 증거확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38)
따라서 우리 민사소송법의 경우에도, 예를 들어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당사자의 청구와 관련이 있다고 법원이 인정하면” 증거조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증거보전 요건과 별개의 요건으로 증거수집절차를 먀련할 수 있다. 또는 증거조사 이전에도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도록 보전의 필요성 요건을 전면적으로 삭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경우 신청의 남용 가능성이 있으므로, 독일 민사소송법 제485조 제2항을 참고하여 증명의 대상, 신청 사유 및 이용 가능한 증거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39)
이어서 현행 민사소송법상 증거수집 기능을 수행하는 규정들은 각 증거조사 규정에 분산되어 있어 증거수집절차의 일관성이나 체계 정합성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는바, 증거보전절차를 중심으로 문서제출명령 및 목록제출명령 등 개별 규정에 분산된 증거수집 기능을 통합하여, 일반적인 증거수집절차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이러한 통합적 증거수집절차의 구체적인 구조와 요건, 대상 및 절차적 통제방안까지 모두 검토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한바 이에 본고에서는 논의의 범위를 전자정보의 수집으로 한정하고, 현행 증거보전절차의 요건과 기능을 완화·확대하여 당사자가 상대방 또는 제3자가 보유한 전자정보와 그 밖의 자료를 수집·확보할 수 있는 별도의 증거수집절차를 마련하는 방향만을 제안하고자 한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여 민사소송법에 따라 전자정보를 민사소송법 증거 규정에 포섭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증거 규정의 구조를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로 구분하는 것이다. 증거수집절차는 당사자가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절차로서 규정하고, 증거조사절차는 확보된 증거를 법원이 심리하는 절차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증거보전 규정을 개정하여 증거수집절차로 마련하고, 문서, 전자정보, 유형물 등을 포괄적으로 수집40)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전자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
셋째, 증거조사 방식은 현행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특례 규정과 같이 증거의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증거조사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증거수집절차를 통하여 확보된 다양한 증거를 서증이나 검증 등 특정 증거방법에 일률적으로 귀속시키기보다는, 개별 증거의 성질과 내용에 따라 서증, 검증 또는 감정 등 민사소송법상 마련된 다양한 증거조사 방법을 탄력적으로 선택·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전자정보뿐만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형태의 증거도 기존 증거조사체계 안에서 유연하게 포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행 민사소송법 제374조의 그 밖의 증거 규정은 삭제한다.41)
이와 같은 방향으로 민사소송법을 개정한다면 증거수집절차와 증거조사절차를 기능적으로 구분하면서도 전자정보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증거를 기존 증거체계 안에서 포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전자정보를 현행 민사소송법의 증거체계에 적절히 편입하고, 이에 대응하는 증거수집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증거 규정 전반의 체계적인 정비와 구체적인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항을 본고에서 다루는 것은 논의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이하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입법례를 참고하되 우리 민사소송법 체계와의 정합성을 고려하여 증거보전절차를 활용한 전자정보 수집이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 방향을 제시하려고 하는데, 개략적인 개정 초안은 아래와 같다.
본고에서 제시하는 개정안은 증거수집절차의 기본적인 구조와 방향을 보여주기 위한 개략적인 초안에 불과하고, 실제 입법에 이르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문서제출명령, 검증물제출명령, 사실조회 및 증거보전 등 증거 절차에 분산되어 있는 증거수집 기능을 새로 마련되는 증거수집절차에 통합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관련 규정을 삭제·이관하거나 그 적용관계를 조정하는 등 증거규정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가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증거수집의 신청 요건과 대상, 신청 및 명령의 방식, 상대방과 제3자의 제출의무, 비밀·개인정보 및 영업비밀의 보호, 비용부담, 불복방법, 수집된 자료와 본안의 증거조사절차 간의 연계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규정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증거수집절차와 증거조사절차를 기능적으로 구분하여 민사소송법상 증거규정의 체계를 재구성한다면, 전자정보를 비롯하여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증거에 대하여 기존 증거방법의 어느 하나에 억지로 포섭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향후 새로운 증거방법을 추가하거나 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발생하더라도 증거조사규정 전체를 다시 개정하지 않고 독립된 증거수집절차 안에서 체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Ⅴ. 결론
전자정보의 활용이 확대됨에 따라 민사소송에서 증거의 확보 과정은 점차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있다. 전자정보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나, 이러한 정보는 대량성·비가시성·복제 가능성 등의 특성을 가지므로 기존의 증거조사 중심 구조만으로는 효과적인 확보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민사소송법은 증거방법에 따른 증거조사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자정보를 독립적인 증거방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문서 혹은 검증물제출명령, 사실조회, 증거보전 등 일정한 범위에서 증거수집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들 제도는 개별 규정으로 산재되어 있어 통일된 증거수집절차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당사자의 정보 접근을 제한하고 전자정보와 같은 새로운 증거방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를 초래한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 미국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증거수집절차를 독립적으로 규율하고 있으며, 문서, 전자정보, 유형물 등을 포괄적으로 수집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 역시 독립증거절차를 통해 전자정보의 수집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례는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를 기능적으로 구분하고,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을 포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우리 민사소송법의 증거 규정은 증거방법에 따른 증거조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증거수집과 증거조사를 기능적으로 구분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특히 증거보전 제도를 증거수집절차로 재구성하고, 서증 규정에 포함된 문서제출명령 및 목록제출명령 등을 통합하여 하나의 증거수집절차로 규율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전자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증거방법을 유연하게 포섭할 수 있으며, 당사자의 정보 접근권을 강화하고 민사소송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전자정보 시대에 적합한 민사소송 절차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에 따른 증거방법 중심의 증거조사 구조를 재검토하고, 증거수집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증거보전 제도를 중심으로 증거수집절차를 통합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이러한 재편 방향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